강추금 호 에게 주다[與姜秋琴 浩][2] |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 하였는데, 어찌 하는 것이 예입니까? 마는 것이 바로 예라면, 보지 말면 예가 되고 보면 예가 아닐 것이니, 보고 보지 말고 하는 사이가 눈 한 번 움직이는 찰나이온데 어떻게 삼백의 경례(經禮)와 삼천의 곡례(曲禮)에 범박하게 미쳐 갈 수 있겠습니까. 이 말도 역시 억견으로 만든 것에 속할 줄 생각되오나, 다만 지기와 더불어 한번 상론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서없이 기록하여 올리옵니다. 추금(秋琴)의 질문.
내교(來敎)와 같은 극기(克己)의 설은 납득하였거니와, 경전의 "예가 아니면 보도 듣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말라." 한 것은 성인이 특별히 일컬은 말로서 사문을 접응하는 사이에 있어 밖으로부터 오는 사(邪)를 제재하고 안에 지닌 성(誠)을 보존하여 예문에 합치되게 하였을 따름이었는데, 지금 보면 예가 아니라고 지적하여 말한 것은, 가령 눈을 가리고 칠실(漆室)에 앉아서 전혀 물을 보지 않는 것을 예에 합치되는 것으로 여긴다는 격이니, 이것이 말이 된다 하겠는가.비유하건대, 사람이 약하고 또 외로운 몸으로 졸지에 강적을 만났을 경우 반드시 제 힘을 다하고 죽게 된다면, 비록 이기지는 못했을지라도 이것을 극(克)하는 도라 이르며, 혹시 예가 아닌 일이 우연히 눈에 들어와 걸린다면 당초에 보지 않을 이치가 없는데, 스스로 마음에 불안함을 느끼어 장차 조심하여 멀리하고 다시 보지 말게 하자는 것이니, 어찌 보지 말면 예가 되고, 보면 예 아닌 것이 되는 일이 있겠는가.
또 한 마디 말로써 파혹(破或)시킬 수가 있으니, 가사 "하늘이 낳고, 하늘이 명한다.〔天生天命〕"는 네 글자를 가지고서 만약에 생천(生天)·명천(命天)을 만들어 쓴다면 이 또한 말이 된다 하겠는가.
지금 예 아니면 보지 말라는 것을 들어서, 보지 말면 예가 된다로 만들어, 그것만을 견지한다면 생천·명천의 설과 무엇이 다르다 하겠는가. 이는 반드시 그럴 만한 까닭이 있어 특별히 물은 거라 생각되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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