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동암 희순 에게 주다[與沈桐庵 熙淳][30] |
기러기 울고 첫서리 내리는데 또 이 국화 철을 만나게 되니 지난날 같은 무서운 더위를 겪을 적에는 이렇게 서늘한 오늘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지요.
바로 곧 서울 신편(信便)으로부터 영감의 서한과 아울러 몇 폭의 화묵(華墨)을 전해 받았으니 크게 흐뭇함에 그칠 뿐만이 아니외다.
연·행(聯行)의 여러 글씨는 모두가 마음을 놀래고 넋을 뒤집히게 하는 것이어서 봄철에 보던 것과 비교하면 단지 한 격만 나아간 것이 아니며 전고(前古)에 심전구수(心傳口授)하던 묘법이 다 글자 사이에 나타났으니 이는 바로 천기(天機)를 인함이요 인력은 아니외다.
종승가(宗乘家 불교계를 말함)를 들어 말한다면 쾌히 대인의 경지에 들어갔다 하겠으니 이 어찌 지도(指導)로써 미쳐갈 바이겠소. 찬송하여 마지않으며 우선 불선하외다.
예서(隸書)에는 암(庵) 자가 없어서 암(盦) 자로 가차(假借)하고 위에는 대(大)를 만들어 쓰는데 옛사람도 이와 같이 첨작(添作)하는 수가 있는지 모르겠소. 서법도 역시 몹시 군색한 데가 있으니 이는 한정된 종이로 형세가 국한된 까닭일 거외다.
대개 예서의 법은 차라리 졸(拙)할 망정 기(奇)가 없고 고(古)해도 괴(怪)하지는 아니하며 비록 척백(戚伯)·양두(羊竇)의 험(險)으로도 역시 기하지 않고 괴하지 않으니 기와 괴의 두 가지 뜻은 특별히 서법에만 아니라 일체에 있어 경계하는 게 좋을 거외다.
방춘번맹(方春番萌) 네 글자는 역시 기조(奇調)를 범했으니 사람들이 예(隸) 자에 있어 옛법을 보지 못하고 흔히 괴를 범하곤 하지요. 이는 예체(隸體)에 대해 미처 널리 보거나 많이 듣지를 못하고서 자기 의사로 만든 것이니 아무리 천변만화해도 괴이한 글자는 깊이 금단해야 될 것이외다.
영남 사람으로 신묘하게 붓 만드는 자가 있어 연전에 두서너 자루를 얻어 써보았는데 비단 국중의 제일 솜씨일 뿐 아니라 비록 천하의 제일 솜씨라 일러도 부끄러울 게 없을 정도였지요. 지금 그가 마침 올라왔는데 내게는 황모(黃毛)라곤 한 꼬리도 없어 장차 그대로 돌려보내게 되었으니 가석한 일이외다. 영감이 만약 뜻이 있다면 이 기회를 잃지 말고 시험삼아 한번 시켜봄이 어떻겠소? 그렇게 되면 혹 내게도 여력(餘瀝)이 미쳐올 듯싶어서이외다. 첫째 붓 재료를 그로 하여금 더할 수 없이 잘 골라서 만들게 해야만 산탁(散卓)에 뒤지지 않을 거요. 황산곡(黃山谷)이 무심산탁(無心散卓)을 사용하였다 함.
근래에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은 다 쓸 만한 게 없소. 북와필(北
여러 종류의 한비(漢碑)는 연운(煙雲)의 변멸(變滅)이 되어버리고 현재로는 하나도 보존된 게 없소. 아래 말한 것은 곧 옛날에 공력을 들였던 것이며 자기의 힘들인 것을 표면에 드러낸 것도 바로 이 등속에 있으니 만약 한두 본이라도 영감의 거룩한 뜻에 부응할 만한 것이 있다면 단연코 혼자서 숨겨두지는 않을 것이오. 공첩(空帖)을 내게 남겨 둔 것이 해를 지내고 또 해를 지냈으니 다음에 한번 계획해 보리다.
해서(楷書)는 조경(造境)하고 착력(着力)한 곳이 매우 깊으나, 다만 이는 일종의 과구(科臼)로서 곧 통행하는 습속이어서 사람의 안목에 단단히 집착되어 있으니, 모르겠소만 산음(山陰)의 진법(眞法)과 구·저(歐褚)의 문경(門徑)이 역시 이와 같았는지요? 이는 바로 엊그제 자못 고설(瞽說)을 늘어놓은 것이니 시험 삼아 다시 고개 돌려 생각해 주면 어떻겠소? 역시 감히 고설이 옳다고 자처하지는 않으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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