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남이상재 ▒

월남 정신

천하한량 2007. 3. 8. 00:25

월남 정신

 

사람이 죽을때 남긴 말에는 그 인생에서 가장 절실했던
원한이 농축돼 있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계속된 가뭄으로 왕위까지 물리고 죽은 태종의
마지막 말은,해마다 내가 죽은 날에만은 반드시 비를
내리게 하리라,는 것이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날 수주 변영로가
임종을 하고자 제동집을 찾아갔던 것같다
방안에 들어서자 몽롱해져 있던 월남은 갑자기 기운을
차리더니,이놈의 자식-너 나뒈졌나 안뒈졌나 보러 왔지
하고 일갈하고 까무려쳤다 한다
이것이 월남의 마지막 말이 된 것이다
찾아온 사람이 누구인지 분별할 기력이 없었을 것이다
다만 월남에게는 이 인영이 평생 동안 사무쳤던 증오와
원한의 표적인 왜놈으로 보였음직하다


월남은 해외에 나갈 일이 이따금 있었다
하지만,일본여권으로는 천당에서 오라고 해도 가지 않는다
는 고집을 일관시킨 것으로 미루어 천당에 들때도 문지기
베드로에게 한국여권을 내어보이고 천당에 드셨을 것이다
그렇게 타계한 지 60년만에 월남 이상재 선생의 동상이
얼마전에 제막되었다
물론 월남형상의 제막이 아니라 월남정신의 제막이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기만 하다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에 파천해 있을 때 의정부 참찬이던
월남이 임금을 뵈러 들어갔던 일이 있다
나인들이 사사로이 매관매직하는 첩지(사령장)를 싼 자주빛
보자기를 들여 놓은 것을 보았다
이에 월남은 상 께서 계신 방에 왜 이다지 추운가,하고 파이어
프레이스에다 그 첩지묶음을 불태우고 임금의 앞에 엎드려
대죄를 하였다
그 강직함이 월남 정신이다


우도궁 일본군 사령관과 사석에서 만난 일이 있었다
유행선 감기에 걸려 콜록콜록하자 월남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대포를 쏘아서도 못 고치는 걸 보니 그놈의 감기 조선땅보다 무섭구만 ...

그래서 일본 고관이나 귀족들이 월남 만나기를
무서워 했다던 그 두려움없는 기개가 월남정신이다


민충정공이 자결한 곳에서 혈죽이 솟아났다는 말이 파다했을 때
월남은 이완용과 만난 자리에서,대감이 죽은 자리에서는 뺑대쑥
이 날거요,하여 파랗게 질리게 하기도 했다
의를 꺾고 이에 부합하는 것을 증오하는 것이 월남정신이다


3.1운동이 절정에 이를 때 한국에 온 미의원단 앞에서 월남은
연설을 했다
미국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것은 미국이 부자라서가 아니오,
군비가 강대해서가 아니라 오직 정의와 인도와 자유를 사랑하기
때문이오
미국은 조선의 실정에서 이 존경의 조건에 어긋나지 않게 해주길
바라오
오늘날 말해도 들어맞을 말을 66년전에 하고 있다
바로 그 정의,인도,자유가 월남정신이다


월남은 오욕의 땅위에서,장,이 되는 것을 완강하게 마다하였다
오로지 조선일보 사장에만 취임하고 있는데 꽁꽁 묶였으면서
발악을 해서라도 민족의 입만은 살려야겠다는 안간힘에서였다
그것이 월남 정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