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신라 진흥왕의 능에 대하여 상고하다[新羅眞興王陵攷]

천하한량 2007. 3. 7. 00:15
신라 진흥왕의 능에 대하여 상고하다[新羅眞興王陵攷]

태종무열왕릉(太宗武烈王陵)의 위에 사대릉(師大陵)이 있는데 읍인(邑人)들은 이를 조산(造山)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이른바 조산이라는 것이 다 능이다. 봉황대(鳳凰臺) 동서편에 조산이 가장 많았던 바, 연전에 산 하나가 무너졌는데 그 속에는 깊이가 한 길 남짓 되는 검푸른 빛의 공동(空洞)이 있어 모두 석축(石築)으로 되어 있었으니, 이는 대체로 옛날의 왕릉이요 조산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조산이 능이라는 한 가지 증거이다.
《지(志)》에 이르기를 "진흥왕릉은 서악리(西嶽里)에 있고, 진지왕릉(眞智王陵)은 영경사(永敬寺)의 북쪽에 있다."고 하였는데, 영경사의 북쪽이란 것이 바로 서악리이다. 태종릉 또한 영경사의 북쪽에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영경사의 북쪽이란 것이 곧 서악리가 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문성(文聖)·헌안(憲安) 두 왕릉은 모두 공작지(孔雀趾)에 있다고 하였는데 공작지란 것 또한 서악리의 일명(一名)이다. 그러니 혹은 서악리라 하고 혹은 영경사의 북쪽이라 하고 혹은 공작지라 하여 똑같은 지역을 글만 각각 조금씩 다르게 쓴 것이다. 이 때문에 태종릉 위의 사대릉은 조산이 아니고 바로 진흥·진지·문성·헌안 사왕(四王)의 능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성왕과 헌안왕은 모두 태종의 후왕들이니 의당 태종릉의 위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도장(倒葬)의 법은 후인들이 금기했던 것이고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또 태종릉과 사대릉과의 거리가 비록 한 기슭이기는 하나 약간 우측으로 올려서 간격을 두었으니, 진실로 또한 서로 방애될 것이 없다. 그러니 사산(四山)이 곧 사릉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겠다.
내가 그 고을의 고로(故老) 여러 사람과 함께 그 부근을 두루 찾아보았으나 끝내 다른 능은 없었고, 지리(地理)로 징험해 보나 사지(史志)로 상고해 보나 사릉과 사산의 숫자가 이와 같이 일일이 들어맞았다. 아, 진흥왕같이 우뚝한 공훈과 성대한 업적을 지닌 분으로도 그의 유해가 묻힌 곳이 민몰(泯沒)하여 전해지지 못하니, 그 이하 세 왕릉에 대해서 또 무슨 말을 하겠는가.

[주D-001]조산(造山) : 공원(公園) 같은 곳에 인공(人工)으로 쌓아 만든 산을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