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기자에 대하여 상고하다[其子攷]

천하한량 2007. 3. 7. 00:13
기자에 대하여 상고하다[其子攷]

촉재(蜀才)는 고문(古文)에 따라 기자(其子)가 썼다. 기(其)의 옛 음(音)이 해(亥)이기 때문에 '해'로 읽기도 하고 기(箕)로도 쓴다. 유향(劉向)은 말하기를 "지금 《주역》의 기자(箕子)를 해자(荄茲)로 보아야 한다." 하였다. 《회남자(淮南子)》에는 "萁를 때서 밥을 짓는다.[爨萁燧火]" 하였는데, 고유(高誘)의 주석에 "萁의 음은 해비(該備)의 해(該)와 같다." 하였다. 해(該)와 해(荄)가 같은 물건이기 때문에 《삼통력(三統曆)》에 이르기를 "해에서 풀뿌리가 갈무리되고 자에서 초목의 싹이 난다.[該閡於亥 孶萌于子]"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명이괘(明夷卦 :

)의 오(五)는 본디 곤(坤)인데, 곤은 해(亥)에서 마치고 건(乾)은 자(子)에서 나오므로, 어두움을 인하여 밝아져서 그 밝음을 지식시킬 수 없기 때문에 기자(其子)의 명이(明夷)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속유(俗儒)들이 《주역》을 전(傳) 낸 대의(大義)를 알지 못하고서 단전(彖傳)에 기자(箕子)라는 글이 있는 것을 근거로 마침내 기자를 오(五)에 해당시켰다. 그러나 오는 천위(天位)인데 신하인 기자를 임금의 자리에 해당시켰으니, 《주역》의 관례에 어긋나서 막대한 오역(忤逆)이라 하겠다.
그 잘못된 설(說)이 유전한 것은 서한(西漢)에서 비롯되었다. 서한의 박사(博士) 시수(施讐)가 기(其)를 기(箕)로 읽었으므로, 당시 맹희(孟喜)의 고제(高弟)인 조빈(趙賓)이 맹씨의 학문을 계술하여, 시수의 잘못을 배척해서 말하기를 "기자명이(箕子明夷)는 음기(陰氣)로나 양기(陽氣)로나 기자(箕子)는 붙일 데가 없으니 기자란 곧 만물이 한창 자라나는 것[荄玆]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조빈이 고의(古義)를 의거하여 이렇게 제유(諸儒)를 힐난하자, 제유가 모두 굴복하였다. 그러자 시수(施讐)와 양구하(梁丘賀)가 모두 조빈을 미워하였다.
시수·양구하는 맹희와 함께 전왕손(田王孫)을 섬겼는데 양구하가 먼저 귀현(貴顯)하게 되었다. 양구하는 또 아들 임(臨)에게 학문을 전하였고, 임은 시수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시수를 천거하여 박사가 되게 하였다. 맹희는 귀현하지 못했으나 학문은 가장 높아서 시수와 양구하가 모두 그를 따르지 못하였다.
그리고 맹희가 전(傳)한 괘기(卦氣) 및 역가(易家)의 음양 재이(陰陽災異)를 점치는 학설은 모두 전왕손에게서 전해받아 양인(梁人) 초연수(焦延壽)에게 전수된 것인데, 양구하가 그를 미워하여 이런 일이 없었다고 말하고 시수를 끌어대서 증명하였다. 또 이 말을 상(上)에게 알림으로써 이에 선제(宣帝)는 맹희가 스승의 학설을 바꾸었다 하여 그를 박사로 등용하지 않았으니, 이는 양구하의 참소를 입은 때문이었다. 또 시수와 양구하는 맹희를 미워하여 맹희의 제자인 조빈까지 미워하였다.
그런데 반고(班固)는 《주역》에 통하지 못하여 맹희의 열전(列傳)을 지을 적에 또한 시수와 양구하의 한쪽 말만을 사용하였으니, 모두가 실록(實錄)이 아니다. 유향(劉向)의 《별록(別錄)》에서는 오히려 맹희의 학문을 좇았으므로, 그의 영향을 입은 순상(荀爽)만이 유독 시수의 잘못된 점을 알고 조빈의 고의(古義)를 회복시켜 기자(其子)를 해자(荄玆)로 읽었다.
그런데 위(魏)·진(晉) 시대 이후로는 경사(經師)의 도가 상실되어 왕숙(王肅)이 정현(鄭玄)을 헐뜯음으로써 체제(禘祭)와 교사(郊祀)의 의리가 어긋나 버렸고, 원준(袁準)이 채복(蔡服)을 헐뜯음으로써 명당(明堂)의 제도가 망해 버렸으며, 또 진(晉) 나라 추잠(鄒湛) 같은 이가 순상의 기자(其子)에 대한 옛 뜻 회복시킨 것을 비난함으로써 《주역》의 학이 또 어두워져서 분분한 가운데 추궁하여 힐난할 수도 없다.
명이괘(明夷卦)의 기자명이(箕子明夷)와 중부괘(中孚卦)의 기자화지(其子和之)와 정괘(鼎卦)의 기자무구(其子无咎)가 다같이 한 뜻이니, 기자(箕子)가 바로 기자(其子)라는 것을 더욱 증명할 만하다.

[주C-001]기자에 대하여 상고하다[其子攷] : 이 글은 명이괘(明夷卦) 육오효사(六五爻辭)에 나오는 '기자지명이(箕子之明夷)'의 기자를 세속에서 모두 은(殷) 나라 태사(太師)인 기자로 보는 데에 대하여, 기자는 곧 해자(荄玆 : 초목의 뿌리가 한창 자라나는 것을 뜻함)의 잘못이라고 고증 논박한 것이다.
[주D-001]촉재(蜀才) : 진(晋) 나라 때 도사(道士)로 이름이 높았던 청성 처사(靑城處士) 범장생(范長生)을 이름. 범장생이 《주역》에 통했다고 하는데, 그의 저서는 상고할 수가 없다.
[주D-002]괘기(卦氣) : 《주역》의 육십사괘(六十四卦)를 각각 기후(氣候)에 분배시킨 학설(學說)을 말한다.
[주D-003]왕숙(王肅)이……어긋나 버렸고 : 삼국(三國) 시대 위(魏)의 경학자 왕숙은 정현(鄭玄)의 학(學)을 좋아하지 않아 비난을 가하였고, 조정의 전제(典制)·교사(郊祀)·종묘 등의 예제에 대해서도 많은 논박을 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4]원준(袁準)이……망해 버렸으며 : 원준은 진(晋) 나라 때의 경학자로서 많은 저서를 남기었고, 채복(蔡服)은 바로 후한(後漢) 때의 경학자인 채옹(蔡邕)과 복건(服虔)을 합칭한 말인데, 명당(明堂)의 제도가 망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