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선생글 ▒

천마령(天磨嶺)을 넘어서 (강원도 회양)-이곡(李穀)-

천하한량 2007. 3. 3. 17:30

이곡(李穀)의 〈동유기(東遊記)〉에,

 

“지정(至正) 기축년 가을에 금강산을 유람하려고 천마령(天磨嶺)을 넘어서 산 아래 장양현에서 자고, 아침 일찍 잠자리 위에서 식사를 한 뒤에 산에 오르니, 구름과 안개가 덮여 어두컴컴하였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풍악(楓嶽)을 유람하는 이가 구름과 안개 때문에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일이 허다하다.’ 하니, 같이 유람하는 자들이 다 근심스런 빛으로 묵묵히 기도를 하였다. 산에서 5리쯤 되는 곳에 이르자, 검은 구름이 차츰 엷어지면서 햇빛이 새어 나오더니, 배재에 올랐을 때에는 하늘도 밝고 기운도 맑아서 산이 밝기가 닦아 놓은 것 같았다. 이른바 1만 2천 봉을 낱낱이 셀 수 있을 듯하였다. 이 산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은 반드시 이 재를 지나게 되는데, 재에 오르면 산이 보이고, 산이 보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마를 조아리게 된다. 그런 까닭에 배재(拜岾 절하는 고개)라고 한 것이다. 예전에는 집이 없어서 돌을 포개어 대(臺)처럼 만들어서 휴식하는 곳으로 썼는데, 지정(至正) 정해년에 지금의 자정원사(資正院使) 강공(姜公) 금강(金剛)이 천자의 명을 받들고 와서 큰 종을 주조하여 재 위에 종각(鐘閣)을 지어 걸어 놓고서 그 곁에 절을 지어 주고 종 치는 일을 주관하게 하였다. 우뚝 솟아 아름답게 채색한 집의 광채가 설산(雪山)에까지 반사되니 또한 산문(山門)의 일대 장관이었다.” 하였다. 금강대(金剛臺) 표훈사(表訓寺) 북쪽에 있다. 석벽(石壁)이 천길이나 되어서 사람은 오를 수가 없고 두 마리 검은 새가 그 위에 집을 짓고 산다. 그 곳에 사는 중이 그것을 현학(玄鶴)이라고 하였다. 만폭동(萬瀑洞) 금강산 가운데에 있다. 일백 군데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이 골짜기 속으로 쏟아지니, 그 형상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까닭에 만폭동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골짜기 어귀에 봉우리가 있으니, 오인봉(五人峯)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푸른 학이 그 모퉁이에 살고 있다.’ 한다. 깊고 큰 물 하나가 있으니, 관음담(觀音潭)이라고 한다. 관음담 가의 돌벼랑은 푸른 이끼가 끼어 발이 미끄러워서 사람들은 다 칡덩굴을 잡고서야 지나갈 수 있으므로 그 이름을 수건애(手巾崖)라고 한다. 돌 중심에 방아 절구처럼 움푹 패인 곳이 있는데, 세상에서 전하는 말에, ‘관음보살(觀音菩薩)이 손수건을 빤 곳이라.’ 한다. 보덕굴(普德窟) 앞에 이르자, 급한 여울이 돌을 휘감아 와서 벼랑의 허공에 부딪치니, 눈처럼 희게 날리는 물방울이 심하게 내뿜어져서 대낮인데도 어두워지려 한다. 돌바닥은 물이 깊어서 푸른 쪽빛과 같다. 또 두어 걸음 가면 성난 폭포가 깎아지른 듯한 언덕으로 쏟아지는데, 작은 것은 구슬을 내뿜고, 큰 것은 눈을 흩날려 섞여 내리는 것이 이루 다 셀 수 없으니, 주연(珠淵 구슬 못)이라고 한다. 또 한 개의 돌이 있어서 형상이 거북이가 못 가운데에 엎드려 있는 것 같으니, 구담(龜潭)이라고 한다. 또 한 개의 못이 있어서 깊이를 헤아릴 수 없으니, 화룡담(火龍潭)이라 하고, 그 위에 봉우리가 있으니, 사자암(獅子巖)이라고 한다. 수재(水岾) 금강산 동쪽에 있다. 세상에서 이르기를, “사람이 소리쳐 부르면 반드시 흐리고 비가 오는 까닭에 수재(물 고개)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한다. 골짜기가 매우 깊숙하다. 돌아가는 길은 점점 평탄해져서 바위는 적고 흙이 많다. 수십 리를 가면 유점사(楡岾寺)에 도착한다. 망고봉(望高峯) 즉 금강산의 동쪽 봉우리이다. 송라암(松蘿庵)에서 막혀 있는 벼랑을 지나가려면 벼랑이 돌난간과 같아서 쇠줄을 수직으로 드리우고 사람들이 그것을 붙잡고 올라간다. 세상에서 말하기를, “만약 떠들썩하게 지껄이면 갠 날에도 반드시 비가 온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