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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모시관 안내

천하한량 2007. 1. 12. 02:49
 
 
   
이와 같이 과거 삼국시대부터 최고의 명성을 누려온 우리나라의 전통 천연섬유 서천군의 한산모시는 현재에도 한산면 일대에서 전통방식의 직조과정을 거쳐 모시가 많이 생산되고 있어서 서천군의 특산품으로 유명세를 이어오고 있으며 경제성뿐만 아니라 지역이미지 제고에도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서천군 한산면에는 한산모시관이 조성되어 있고, 한산모시문화제가 문화관광축제로 지정 되어 2005년 현재 16회에 이른다. 한산모시는 우리나라의 미를 상징하는 여름 전통 옷감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아 제작 기술을 보호하고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했다. 현재 한산모시짜기 기능 보유자로는 문정옥, 방연옥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한편 모시를 생산하는 과정은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같이 앉아 집안에서 삼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마을마다 사람들이 잘 모이는 장소에서 여럿이 한자리에 모여 일하는 일종의 두레형태로 모시생산의 전 과정에 걸쳐 분업과 협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한산일대 아낙네들 생활문화의 일부로 이루어져 왔다.

특히, 모시의 생산과정 중 모시짜기가 가장 어렵고 숙련을 요하는 작업공정이다. 모시는 습도가 모자라면 끊어지기 쉬우므로 더위에도 통풍이 안돼는 움집에서 짜야하고, 바람이 불거나 비오는 날에는 일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까다롭다.

모시짜기 공정에서 습도가 갖는 중요성 때문에 전통 방식 보다 개량된 모시짜기 방식은 개량 베틀의 사용으로 생산성이 조금 높아진 것과 움집을 벗어나긴 했지만 여름에도 실내에서문을 닫고 가습기를 사용해야 하니 모시짜기의 고충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우리나라 모시의 대명사 한산모시의 제작과정은 재배와 수확, 태모시만들기, 모시째기, 모시삼기, 모시굿 만들기, 모시날기, 모시매기, 모시짜기 모시표백 순이다.

 
저마는 숙근성 초본 다년생 작물로 한번 심으면 10년 정도 수확 할 수 있다. 재식 밀도는 토양조건에 따라 다르며, 재식한 첫해의 생육상태 즉, 모시풀의 굵기와 길이에 따라 최후까지 수확량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따라서 재배시의 시비관리 등이 중요하다. 서천군에서 재배하는 저마는 재래종과 백피종이 있는데 백피종이 주로 재배된다. 재래종은 가늘게 쪼개지고 윤이나며 질기나 길이가 1.24m이하로 짧고 수량이 적게 나오며, 백피종은 보통1.55m로 길이가 길고 수량이 많이 나온다. 이는 모시째기시 양팔을 벌린 간격이 1.5m로 더 길거나 짧으면 비능률적이기 때문이다.
 
저마수확은 심은 당년에는 2회 2년째 부터는 3회 수확을 할 수 있으며 가장 적당한 수확기는 대략 6월 하순에서 7월 초순, 8월 하순에 이수, 10월 상 하순에 삼수로 연간 세차례 수확한다.
 
태모시 만들기는 종근을 심어 저마를 재배하고 다 자란 모시풀을 베어 모시풀 바깥층을 벗겨내고 속껍질로 태모시를 만든다. 모시풀의 속껍질을 햇볏에 말리고 물에 적시기를 네다섯번 번갈아 하면 모시의 최초 섬유질을 추출하는 과정인 태모시가 생산 된다.
 
모시굿은 생산과 직접 연결되는 과정으로 모시굿을 만드는 사람은 대개 모시굿 만들기에만 종사하며, 모시굿을 모시필 생산자에게 판매하고 다시 태모시를 사다가 모시굿을 만든다. 모시굿은 모시째기와 삼기과정을 거쳐 생산되며 보통 한사람당 5~10일에 걸쳐 3~5개의 모시굿을 생산하게 된다.
 
태모시를 이로 쪼개서 모시섬유의 굵기를 일정하게 하는 과정으로 상저, 중저, 막저로 구분되는 모시의 품질이 나온다. 태모시의 품질과 모시째기의 숙련 정도에 따라 모시의 품질이 좌우된다.
 
모시째기를 끝마친 다음 모시섬유 한뭉치를 “쩐지”라는 버팀목에 걸어놓고 한올씩 빼어 양쪽 끝을 무릅에 맞이어 손바닥으로 비벼 연결시켜 광주리에 차곡차곡 쌓아놓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거침으로서 모시굿이 완성된다.
 
10개의 모시굿에서 “젖을대”의 구멍으로 실끝을 통과시켜 한묶음으로 한 후 날틀에 걸어 한필의 길이에 맞추어서 날실의 길이로 날고 새수에 맞추어 날실의 올수를 맞춘다.
 
바디는 대나무의 껍질로 만드는데, 3·4년이 지난 대나무라야 껍질이 단단하고 두터워 재료로서 적합하다. 제작과정을 보면 바디살 만드는 과정, 기둥살(일명 날대) 만드는 과정, 마구리를 끼우는 과정, 그리고 갓 붙이는 과정 등으로 구분된다. 바디의 종류는 모시베, 명주베, 무명베, 삼베 등 짜는 옷감의 종류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같은 모시베를 짜는 바디라 할지라도 베의 바탕 올이 가늘고 굵기에 따라 9새에서부터 18새까지 모두 다르다. 모시의 새수는 바디끼기에 의해 결정된다.
 
바디끼우기는 날실이 일정한 새와 폭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며 이 작업과 병행하는 것이 꾸리감기이다. 꾸리감기는 씨줄을 만드는 과정으로 모시짜기를 할 때 씨실 꾸리를 북에 담아 사용한다.
 
모시매기의 “매다”는 “다했다”는 완성의 의미가 있다. 이 과정만 거치면 모시짜기를 위한 준비과정을 모두 마치게 되는데, 무더운 여름에 불앞에서 작업해야 하는 고역을 견디는 힘든 작업이기도 하다.
모시매기는 바디에 끼워진 모시를 한쪽은 도투마리에 매고 다른 끝은 “끌게(도투마리를 감으면 끌려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에 매달아 고정시킨 후 콩가루와 소금을 물에 풀어 만든 풋닛가루를 뱃솔에 묻혀 날실에 골고루 먹인다. 그리고 이음새를 매끄럽게 하고 왕겻불로 말리면서 도투마리에 감는 과정이다.
 
모시새수 정하기, 모시날기, 바디끼우기 등을 거쳐 베틀에 올린 후 모시짜기가 시작되는데, 실내가 건조하면 실이 말라 바스러지는 등 많은 습기를 요하기 때문에 습도 조절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대부분 반지하의 움막에서 모시를 짜는 원시적인 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채광이 불량하고 온도 조절이 어려워 여름철에는 대부분이 고통스럽게 작업을 하며, 베틀에 않아 전신을 움직이며 하는 힘이 많이 드는 노동으로 지금까지 개선 된 것이 가습기를 틀어 놓고 작업하는 형태이다. 또 이 작업은 상당히 속련된 기술이 필요하며 숙련도에 따라 모시짜는 기간이 달라진다. 보통의 경우 3일에 1필정도를 짜는 것이 일반적이다.
 
 
 
생산된 모시는 서천군내 5일장인 한산장의 1일과 6일, 판교장의 5일과 10일에 유통되며, 거래량의 70% 이상과 질 좋은 세모시는 주로 한산장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모시하면 한산장을 일컽게 되는데 4~9월에 성시를 이룬다. 한산장에는 필모시와 모시굿장, 태모시장 등으로 나누어 거래된다.
 
 

모시 재배에서 여러 가지 고된 가공과정을 거쳐 베틀로 일정 규격에 맞게 짠 것을 필모시라 하는데 한산모시장 주된 거래상품은 필모시이다. 필모시는 상저, 중저, 막저의 3등급으로 나뉘어지며 올의 굵기와 짜임새에 따라 구분되어 등급이 정해진다.

한산모시장은 새벽에 열린다. 모시장이 새벽에 열리는 이유는 모시의 특성 때문인데, 모시는 습기를 흡수하고 발산하는 속도가 빠른 특성을 갖고 있어 새벽안개의 습기를 머금은 모시를 백열등 아래서 비춰보고 만져봐야 품질을 가늠할 수 있다는 오랜 전통의 모시감별법에 따르기 때문이다.

특히 한산모시장은 생산자가 팔려고 하는 모시가 한산모시인지를 우선 검사소에서 검사를 받아야 하며 이 검사를 마치지 않으면 유통을 할 수 없도록되어 있다. 한산모시의 신뢰성을 높이고 질좋은 모시가 유통되도록 하기위해 장내에 마련된 모시검사소는 확인도장을 받아야 비로소 유통 될 수 있다.

한산모시장은 필모시 외에 모시의 원료인 태모시와 모시굿을 사고 파는 장터기도 하다. 태모시는 모시굿 생산자에게, 모시굿 생산자는 필모시생산자에게 각자의 상품을 거래하는 곳이다. 태모시는 종근을 심어 저마를 재배하고 다 자란 모시풀을 베어 모시풀 껍질에서 섬유질을 추출하는 과정을 거쳐 생산하게 되며, 모시굿은 생산과 직접 연결되는 과정으로 생산자가 이(齒牙)로 직접 실처럼 가늘게 쪼개는 모시째기를 거쳐 만들어진 실토막들을 무릅 맨살에 올려놓고 잇는 모시삼기과정을 한번 더 거쳐 생산되며 보통 한사람당 5~10일에 걸쳐 3~5개의 모시굿을 생산하게 된다.

직사각형의 긴 탁자와 의자, 그리고 삿갓을 씌운 백열등이 설치되어 있는 필모시장의 새벽 5시. 백열등 불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 모시 생산자와 거간꾼벌이는 진풍경은 어두운 곳이지만 한눈에 보아도 곱디 고운 세모시를 한푼이라도 싸게 사려는 중간상인과 더운날씨에 비지땀을 흘리며 한올 한올 정성을 기울였을법한 최상품의 필모시를 자식처럼 곱게 간추리며 제값을 받으려는 모시생산자간의 입씨름은 언성은 높지 않으면서 두런 두런 옛이야기 하듯 정겨운 풍경이다.

 
한산모시는 서천군 한산면을 중심으로하여 화양면, 기산면, 시초면, 문산면, 판교면 등 서천군 한산면 인근 마을에 생산농가의 폭이 넓었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 필모시 1,500호, 모시굿 생산농가가 약 5,000호로 서천군 전체농가의 46%에 이르렀던 적이 있으며 소량 생산농가를 합치면 이러한 통계수치를 훨씬 넘는 것으로 파악 되었다.

한산모시는 1950년대만 해도 모시의 수요와 생산량이 계속 늘어 연간 20,000여필에 달하였으나 나일론 계통의 화학섬유가 들어오면서 197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그 수요감소하여 1985년경에는 연간 5,000필 정도에 머물게 되어 한산모시의 명맥이 사라져갈 위기까지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1980년대 후반부터 생활수준의 향상과 함께 우리의 고유 민속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옛것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 수요가 크게 늘어났으며, 1985년경부터 정부지원의 도움으로 한산지방의 저마재배면적이 늘어나고 그에 따른 생산량도 늘어 1980년 이후 1991년까지 9배의 생산량 증가를 가져와 한산모시가 여름철 의류로 활기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모시직물의 역사가 유구하고 한때는 그 유통이 왕성했음에도 모시제품은 상품으로서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로는 100% 수공품이어서 높은 가격이 형성되어 있는 점에도 기인하지만, 전통의상 재료라는 고정관념도 한몪을 하고 있다.

 
 
서천군은 한산모시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우선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량생산체제의 생산기술 및 시설 개발과 대중이 즐겨 입을 수 있는 상품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현대인의 감각에 맞게 변화시키고, 모시가 가지고 있는 식 재료로서의 기능성을 활용하여 모시음식을 개발하여 한산모시의 생산 쳬계와 제품개발의 혁신을 이룬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서천군은 이러한 계획에 따라 모시섬유의 대량생산을 위한 방적기술 개발하여 실용화 단계에 이르렀으며 모시를 이용한 사계절상품개발, 모시제품 대량생산체제 구축에 따른 수요를 맞추고자 저마 종근사업 확장을 위한 농가 지원사업, 현대적 모시제품 생산 및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한 특화사업인 모시제품 직영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타 섬유에 비하여 통풍성이 월등하기로 유명하며, 습기를 흡수하고 발산하는 속도가 빠르고, 모시의 깔깔한 질감과 흡수성으로 인하여 무더운 여름에는 오히려 옷을 입지 않은 것 보다 모시옷을 입는 것이 더 개운함과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 특징을 갖고 있는 천연섬유 한산모시의 대량 생산은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국민 모두가 즐겨 입는 한산모시의 재탄생이자 우리 민족의 지혜가 담긴 의복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세계인이 즐겨 입는 한국 최고의 천연섬유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중 서천군 한산면은 모시길쌈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며 한산모시는 옛부터 나라에 진상함은 물론 외국에도 수출도 하였던 모시중의 모시였다. 나라에서는 생산을 장려하기 위하여 길쌈의 경연대회가 있었다는 문헌(삼국사기)을 통하여 볼 때 일찍부터 모시길쌈과 관련된 민속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이 문헌에 근거하여 서천군 한산면에서 저산팔읍길쌈놀이가 발굴되기에 이른다.

현재 서천군 한산면은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모시의 명맥을 잇고 있으면서 매 5일마다 모시시장이 형성되어 전국 각처에 모시를 공급하고 있다. 한산 모시의 우수성을 널리 보급함은 물론 민속놀이를 보존·계승코자 모시길쌈놀이를 체계적인 고증과 구성 연출을 통하여 「저산팔읍(苧産八邑)길쌈놀이」를 발굴하여 1922년 제23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하였고, 그후 '86년에도 도대표로 출전 국무총리상을 수상한바 있다. 매년 모시문화제 행사시 시연을 통해 국내외에 홍보하고 있다.


서천 저산팔읍 길쌈놀이는 모시짜기로 유명한 한산지방을 중심으로 발달한 베짜기에 관한 민속놀이로 주로 부녀자들의 가내수공업이었다. 신라 유리왕(재위 24∼57)이 두 왕녀로 하여금 부내의 여자들을 나누어 길쌈을 하게하고, 추석날에 결과를 심사하여 진 편에서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였다는 『삼국사기』기록으로 미루어 일찍부터 모시길쌈이 있었으며, 나라에서도 이를 장려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길쌈놀이는 모시를 베어다 모시베끼기, 모시삼기, 모시꾸리감기, 모시날기, 모시매기,모시짜기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노래와 행위로 표현하고 있다.노래는 민요풍으로 여인네의 애환과 체념,그리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또 저산팔읍을 예찬하는 노래에 맞추어 흥겹게 춤추면서 농사의 고달품을 잊고,이웃과 화합을 꾀하며 협동을 다진다.발표가 끝나면 모든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장원을 한 마을을 축하해준다.

서천 저산팔읍 길쌈놀이의 전통은 근래까지 전승되어 농촌 부녀자들이 7월에서 8월까지 일정한 장소에 모여 공동으로 길쌈을 하였으며, ‘두레길쌈’이라고 하여 서로 겨루기보다는 함께 돕는 품앗이 같은 두레의 성격이 짙다.

서천군은 지역의 우수한 문화유산인 저산팔읍길쌈놀이를 보존하고자 저산팔읍길쌈놀이 전수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산면민을 중심으로 이 놀이를 전수하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와 충남 무형문화재 제1호인 한산의 모시짜기는 「택리지(擇里志)」 복거충편에 “진안의 담배밭”, “전주의 생강밭”, “임천과 한산의 모시밭”, “안동과 예안의 왕골논”이라는 구절이 있을 만큼 예로부터 유명하였다. 특히 한산 세모시는 섬세할 뿐만 아니라 단아하고 청아한 멋이 있어 모시의 대명사 처럼 불려왔다. 그러나 섬유공업의 발달로 이 지방의 모시짜기는 점차 쇠퇴하여 그 제작기술의 보전이 절실하였다.

정부는 이 기능을 보호하고 전승하기 위하여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로 문정옥(文貞玉)씨를 기능 보유자로 지정하였고 충남도는 무형문화재 제1호로 나상덕(羅相德)씨를 기능 보유자로 지정하였다.

 

한산모시관은 한산면 지현리일대 약 28,193平의 공간에 공공시설물, 상업시설물, 교양시설물, 휴양시설물, 등으로 구분 배치하여 약 450平 규모의 부지에 전통공방을 부각시켜 지방문화의 우수성을 선양, 보급, 전승, 육성하는 목적으로 기능보유자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실연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전통민가 양식을 가미하여 문간채, 토속관, 안채의 배치를 응용한 5동의 건물을 세웠다.

 

이중 “ㄱ”자형의 전통공방(정면 3칸, 동측면 4칸, 서측면 3칸)을 방, 마루 등으로 구획하여 설치하였고 “ㄴ”자형의 문간채(13칸)를 설치하였으며 “一”자형 초가집(정면 2칸, 측면 1칸)을 토속관으로 명명하여 배틀을 설치하였다. 한산모시관의 본관 건물은 모시의 과거현재미래를 볼 수 있는 모시종합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다. 또 한 동은 충남 무형문화재 제1호 저산팔읍길쌈놀이 기능 전승장으로 활용하며 저산팔읍길쌈놀이 관련 민속자료를 전시하는 공간이다.

 
전통공방에서는 모시풀 재배부터 태모시 만들기, 모시째기, 모시삼기, 모시날기, 모시매기, 모시짜기등을 재연하고 있어 모시의 제작과정을 볼 수 있으며, 특히 전통공방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된 문정옥(文貞玉)씨와 충청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호 나상덕(羅相德)씨가 상주하며 필모시를 직접 생산하고 있어 무형문화재의 보기 드문 시연을 관람할 수 있다.
 
전수교육관에 있는 전시실에는 모시의 역사가 기록된 고증 서적과 옛베틀 및 모시길쌈에 필요한 도구 등이 진열되어 있으며 한복을 비롯한 다양한 모시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한산 모시의 원류를 찾고 풍성한 내일을 기원하는 서천군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한산 모시를 처음 재배하던 건지산 기슭에 세운 제당이다.
 
“ㄴ”자형의 문간채(13칸)에 모시직조 및 농촌생활과 관련된 민속자료 13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저산팔읍길쌈놀이 전수관에는 길쌈놀이의 유래, 구성도, 모시예찬가, 모시직조과정과 청동기시대 양인석부외 시대별 유물 62점을 전시하고 있다.
 
 
항공 : 서울∼군산 1일 3회 왕복운행/ 제주∼군산 1일 3회 왕복운행
철도 : 장항선 서울∼서천 약4시간 소요/ 경부선 서울∼대전∼서천(버스) 약4시간소요
시외버스 : 서울∼서천 (약4시간30분소요)/ 대전∼서천 (1시간40분소요)
자가용 : 서울(서해안고속도로) - 서천(서천나들목)-한산모시관(2시간 소요)
 
하절기 : 09:00∼18:00
동절기 : 09:00∼17:00
    ※ 연중휴무
 
어른 : 1,000원 (단체:500원)
중학생/고등학생 : 500원 (단체:300원)
초등학생 : 300원 (단체:200원)
 
주소 :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 60-1
전화 : (041)951-4100
FAX : (041)951-4102
인터넷주소 : http://www.mosi.go.kr
 
일시 : 2006. 5. 4 ~ 5. 9 (6일간)
장소 : 웰빙관
한산모시짜기 국가ㆍ충청남도 무형문화재 방연옥여사와 나상옥여사가 직접 지도하는 가운데 모시가 섬유로 되어 가는 모든 과정을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는 행사입니다.
체험내용 : 모시베기⇒태모시⇒모시째기⇒모시삼기⇒모시날기⇒모시메기⇒모시짜기

 
 
 
 
일시 : 2006. 5. 4 ~ 5. 9 (6일간)
장소 : 한산모시관 안채
남녀노소 모두의 전통의상과 현대의상을 비치하여 관람객이 직접 모시옷을 입고 패션쇼도 해 보는 모시옷 체험행사입니다. 또 관람객이 원하시면 행사장에 설치된 간이스튜디오에서 무료사진촬영을 해드리고 주소를 남기시면 우편으로 인화된 사진을 발송해 드립니다.

일시 : 2005. 5. 4 ~ 5. 9 ( 6일간)
장소 : 모시관 광장 체험장 부스
한산모시 천과 소품 등을 이용하여 염색전문가와 함께 천연염색을 직접 해보는 행사입니다. 천연염색재료로 천연섬유를 염색하는 과정을 습득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장입니다.
기간 : 2006. 5. 4 ~ 5. 9 (6일간)
장소 : 전수교육관
모시옷 디자인 공모전 포트폴리오 전시장에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아름답고 멋스러운 다양한 모시옷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기간 : 2006. 5. 4 ~ 5. 9 (6일간)
장소 : 모시관광장, 웰빙장
모시옷의 재료로만 생각했던 모시풀은 음식재료로서도 훌륭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모시음식의 아주 특별한 체험 모시빵, 모시차, 모시떡
기간 : 2006. 5. 4 ~ 5. 9 (6일간)
장소 : 한산모시관내 건지산 예식장
전 시 품 : 공예품 경진대회 출품작중 우수작
서천군민의 세련되고 섬세한 손길과 안목을 느낄 수 있는 공예전시장입니다. 모시공예와 다양한 전통?현대공예품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기간 : 2006. 5. 4 ~ 5. 9 (6일간)
장소 : 제2주차장 체험부스
1500년 전통모시의 고장 서천의 전통을 이어가는 무형문화재들의 시연을 살피고 즉석에서 체험도 할 수 있는 소목, 대목, 바디, 부채, 갈꽃, 베틀제작, 짚공예 등의 다양한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출처- 한산모시문화제)
 

 

 

 

▲ 전통모시베틀로 모시를 짜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인 방연옥씨.
ⓒ2005 윤형권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이라면 푹푹 찌는 삼복더위 정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원한 여름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여름철 최고의 옷감은 뭐니 뭐니 해도 모시가 최고다. 요즈음 나오는 '쿨 울(cool wool)', '땀을 흡수하는 기능성 섬유'니 하며 첨단섬유기술을 자랑하지만 모시만 못하다.

하얗게 마전(모시를 삶아서 표백을 하는 것)한 모시적삼은 잠자리 날개처럼 송송 뚫린 올과 올 사이로 바람이 솔솔 들어가 땀이 날 틈을 주지 않는다. 속살이 보일 듯 말 듯한 세모시 저고리를 입은 아낙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시원함을 준다. 쌀 풀물을 들여 다듬이로 두드린 모시 바지저고리는 선비의 기상이 물씬 배어 있다.

모시는 쐐기풀과에 속하는 모시풀의 속껍질로 만든 직물이다. 저마라고도 하는데, 삼베인 대마와는 전혀 다른 종자다. 한국,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등에서 재배하고 있다. 한국의 모시는 키가 180cm 정도까지 자라며 다른 나라의 모시에 비해 질기며 윤기가 뛰어나기 때문에 품질이 월등하다.

▲ 쐐기풀과에 속하는 모시. 모시 잎으로 떡을 해먹으면 송편못지 않게 맛있다.
ⓒ2005 윤형권
모시의 한자어로는 저포(苧布), 저마포(苧麻布)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모시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 신라가 당나라에 모시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계림유사>에는 '저왈모저(苧曰毛苧), 포왈모시배(布曰毛施背)'란 기록이 있다.

모시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우리 조상들의 여름철 옷감으로 각광을 받았다. 우리 한민족의 삶과 함께 한 천연섬유다. 아마 우리 한민족을 일컬어 '백의민족'이라는데 모시도 일조를 했을 것이다.

전국적으로 모시 재배지로 유명한 곳은 충남 서천군 한산면의 한산모시가 가장 유명하고, 충남 청양군의 청양저, 전남 장성의 장성저, 충남 부여군 홍산저 등이 유명하다.

모시의 직조과정은 ▲태모시 만들기 ▲모시째기 ▲모시삼기 ▲모시날기 ▲모시매기 ▲모시꾸리기 ▲모시 짜기 등으로 되었다.

이처럼 모시 한 필이 나오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는데 모시 재배하는 사람, 태모시를 만드는 사람, 모시 째기와 모시삼기까지의 모시원사를 제공하는 사람, 모시원사를 사다가 모시를 짜는 사람 등 완전히 분업화되었다. 모시 한 필이 나오기까지의 자세한 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 태모시 만들기

모시나무를 베어 모시의 겉껍질을 벗기는 과정이다. 모시나무에서 겉껍질을 벗긴 후 다시 부드러운 속살만을 골라내는데, 낫과 같이 생긴 손가락 크기의 특수한 칼로 훑어서 겉껍질과 속살을 분리시킨다. 벗겨낸 속살을 한주먹의 다발로 묶어서 4~5회 물을 반복해서 적시며 양지에 말린다.

▲ 태모시를 만들고 있다.
ⓒ2005 윤형권
▲ 태모시를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
ⓒ2005 윤형권
▲ 태모시. 이 분이 입고 있는것이 '세모시 옥색치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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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모시째기

잘 말린 태모시를 이와 입술을 이용해 쪼개는 과정인데, 이때 모시의 굵기가 결정된다. 모시는 굵기에 따라 올의 굵기가 가장 가는 상저(세모시), 중간 정도 중저, 가장 굵은 막저로 구분한다. 따라서 모시의 품질은 바로 우리 어머니의 입술에 달려 있다.

▲ 10살 때부터 모시를 삼기 시작한 김정옥(69세) 할머니. 한산면 종지리에 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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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시삼기를 하는 한산면 동산리에 사시는 오정례(73세) 할머니는 11살때부터 모시를 삼았는데, "모시짜는 일 아니면 죽는줄 알고 일했다"며 모시짜기가 천직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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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모시삼기

모시째기가 끝난 모시는 '쩐지'라는 틀에 걸쳐놓고 한 올씩 입술의 침을 이용해 이어붙이는 과정이다. 한 주먹 정도의 모시 한 타래를 '한 굿'이라고 한다. 10굿 정도가 돼야 한 필의 모시를 짤 수 있다. 숙련된 사람이 이틀에 한 굿씩 삼을 수 있을 정도니까 한 필의 모시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여인네의 수고가 있는지 짐작이 간다.

④ 모시날기

모시째기가 끝난 모시는 '젖을대'라는 틀에 매어 한필의 모시를 짤 만큼의 실을 감는 과정이다. 실이 엉키지 않도록 쌀겨를 뿌려 놓고 작업을 하는 지혜가 돋보이는 과정이다. 모시날기를 할 때 실이 엉키지 않게 잘 해야 모시를 잘 맬 수 있다.

▲ 모시날기. 나상덕(73세) 충남도지정무형문화재와 딸 박미옥(4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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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모시매기

모시날기가 끝난 모시를 모시짜기에 앞서 날실을 부드럽고 보푸라기가 생기지 않도록 콩풀을 먹이면서 모시베틀에 얹을 '도투마리'라는 틀에 감는 과정이다. 이때 왕겨불로 콩풀을 말리면서 작업을 한다.

한여름 찜통더위에서 왕겨불을 가까이서 모시를 짜는 수고를 거쳐야 시원한 세모시가 태어난다는 것이 안쓰럽기도 한 것이, 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해산의 고통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모시나무에서 처음 겉껍질을 벗겨낸 것을 '태모시(胎毛施)라고 하는가 보다.

▲ 모시매기. 매듭부분을 매끄럽게 하려고 콩물을 바른다. 남색옷 입은 분이 충남도무형문화재 제13호인 홍경자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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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꾸리감기

모시는 날줄과 씨줄로 엮는다. 모시매기는 날줄로 쓸 모시원사이고, 씨줄로 쓸 모시를 고무신 모양의 '북'이라고 하는 곳에 감는 과정을 꾸리감기라고 한다. 모시굿 10개로 한 필을 짤 수 있다.

▲ 모시꾸리기. 씨실로 쓸 모시 올이 엉키지 못하게 검은 콩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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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모시짜기

모시매기 과정을 거쳐 날실이 감긴 도투마리를 베틀의 누운 다리 위에 올리고 바디를 끼운 날실을 빼어 각각의 잉아에 번갈아 끼운다. 다음에는 날실을 바디에 끼워 '매듭대'에 매어 팽팽하게 감아 놓는다.

베틀의 '쇠꼬리채'를 발로 밟아 잡아당기며 날실을 벌리고 씨실이 담긴 북을 좌우로 움직이며 엮어 짠다. 기가 막힌 음양의 상생이요, 조화다. 이렇게 해서 천지자연의 이치대로 한 필의 모시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마치 갓난아이가 태어나듯이 말이다.

모시의 종류

모시는 굵기의 종류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세모시는 아주 가는 올로 짠 것을 말하며, 중저는 중간 굵기의 올로 짠 것을 말하고 막저는 가장 굵은 올로 짠 것을 말한다.

대개 모시 한 필은 21.6m, 폭은 31cm 정도다. 중국모시는 국산모시에 비해 폭이 좀 넓으며 세탁을 하면 힘이 없이 축 늘어지며 수명이 짧다. 한산모시는 시집올 때 갖고 오면 평생 입다가 며느리에게도 줄 수 있을 정도로 질기고 세탁을 할수록 윤기나 나고 새것 같다고 한다.

세모시는 주로 여성들의 옷감으로 쓰이는데, 한산지방에서 한 필에 60만~70만원 정도에 거래된다. 모시 한 필로 여자의 치마저고리 한 벌과 남자용 상의 남방 하나를 만들 수 있다.

모시는 콩풀을 했기 때문에 취향에 맞게 백색으로 표백을 하거나 쪽물이나 감물 등 염색을 해서 쓰기도 한다. / 윤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