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증언 마산 지산리 조규헌 옹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을 아십니까? 귀환선 우키시마호 생존자 조규헌 옹 윤승갑 기자 하지만 광복60년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우키시마호 귀환선에 대한 애닯은 사연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는 이가 있다. 마산면 지산리 조규헌(87)옹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가 살아온 궤적을 추적해 보면 우리 현대사의 아픔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조 옹은 “우키시마호는 일본군의 의도적 폭침이었을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확실하지 않지만 그때 상황을 기억하자면 의도적 폭침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1942년 9월 당시 25세였던 조 옹은 마산면에서 12명의 동료들과 함께 일제 군속으로 징용돼 3년간 일본에서 지옥 같은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 부산에서 시모노세끼로 이동한 조 옹은 이렛 동안 열차를 이용해 아오모리현으로 이동, 일본군의 전략 요충지였던 가바야마 화산에 배치됐다. “가바야마 화산은 그야말로 생지옥 이었어~” 허리춤까지 차오르는 눈과 살을 에이는 칼바람, 그것만으로도 조 옹에게는 혹독함 그 자체였다. 당시 가바야마 화산은 일본군의 전략적 군사 요충지로 비행장을 조성하고 반공호를 만들어 대포를 설치하는 대포진지. “잠자고 일어나면 허리춤까지 눈이 오는데 산이 눈에 묻혀 없어질 정도였어, 아~참! 강제징용된 한국인 모두 그랬겠지만 나 역시 일본놈들에게 혹독하게 당했어!” 1년 계약으로 가바야마 화산에 배치된 조 옹은 다시 일본인들의 강제에 1년을 연장했다고. 일하는 동안 잦은 미군의 폭격으로 피신할 때면 이곳에서 살아남아 한국으로 되돌아 가리라는 오기만 더욱 생겨났다고 말한다. 강제징용 3년 후 그에게 있어 그동안 참아왔던 고통만큼이나 더 혹독한 경험은 광복 후 귀환 이야기다. 일본 천황의 항복 소식을 일주일 후에야 들을 수 있었던 조 옹은 항복발표 이후 더욱 악랄해진 일본인들의 행동을 이겨내고 문제의 우키사마호에 승선하게 됐다. “우키시마호는 7층 높이의 엄청 큰 배였어, 승선자 대부분이 아오모리현에 강제징용 당한 한국인으로서 승선인원만도 7~8천명 이었어” 부산으로 향하던 우키시마호의 유류공급을 위해 마이즈루항으로 향하던 그때. 쿵! 하는 폭발음과 함께 우키시마호에 승선한 7천여명 이상이 그대로 바다에 떨어졌다. 침몰하는 우키시마호에서는 일본인들이 각종 문서와 물품을 바다로 던지고 한국인들은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변한 것이다. “말도 말어! 나도 배에서 떨어졌는데 사람들이 어찌나 나를 붙잡고 살기 위해 바둥거리는지…. 떨어진 사람들을 짓누르고 올라와야 살았으니까?” “해방 때까지 사선을 넘나들며 살아야겠다는 생각만으로 견뎌왔는데 여기서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참!” 다행히 조 옹은 살겠다는 신념 때문이었는지 산산조각난 우키시마호 잔재물을 잡아 다행히 구조됐다.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조 옹은 마이즈루 항에서 한 달여간 지체하면서 귀환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단다. 다행히 시모노세끼행 배에 올라타 다시 시모노세끼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배에 승선한 조 옹. “우키시마호가 폭침 당하지 않았더라면 보고 싶었던 사람들 더 빨리 볼 수 있었을꺼여. 그때 살아남은 것만도 기적이지” 우끼시마호 폭침으로 바다에서 처참히 몸부림치며 살려달라고 외치다 죽은 한국인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그려진다는 조 옹. 가바야마 화산에서의 3년 생활로 지금도 거동이 불편하고 속이 매스껍다는 조 옹. 일제치하의 핍박과 서러움을 잘 아는 만큼 당시 삶에 대한 의욕도 컸다는 조 옹은 다시 한번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의 진상은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당시 기억속을 찾아 나선다. 입력 : 2005/03/02 1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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