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사
1. 총칼로는 안된다 힘으로도 안된다 침략자는
무릎을 꿇어라 용기와 신념으로 본을 보이신
월남 이상재 선생님 젊은이여 너희는 나라의
기둥 힘써 배우고 익혀 배우고 익혀 뜻을
펼쳐라 어둠 속에 헤매는 가슴에 굳센 의지
심어 주셨네 깨어라 이땅의 청년들아
외치는 월남 선생님
2. 개나리 꽃 보인다 일본경찰 보인다 개나리의
뜻을 아느냐 재치와 웃음으로 일깨워 주신
월남 이상재 선생님 젊은이여 너희는 내일의
희망 1분 1초 아껴서 힘을 길러라 절망속에
방황하는 이여 그의 말씀길이 새겨라
보아라 이 땅의 청년들아 광복이 눈앞에 있다
♬ 해설
이상재(李商在: 1850∼1927)
사회 운동가, 애국 지사. 호는 월남(月南)이다. 충남 한산에서 태어나 일찍이 박정양, 홍영식 등과 사귀며 사회 개혁에 큰 뜻을 두었다. 1894년 갑오개혁 후 박정양이 내무 독판에 오르자 학무 국장으로 신교육령을 폈다. 이듬해 학부 참사관, 법부 참사관을 지내고, 이어 중추원 1등 서기관을 거쳐 의정부 총무국장이 되었다. 뒤에 서재필과 함께 '독립 협회'를 조직하여 민중 계몽에 힘썼고, 개혁당 사건으로 복역중 크리스트 교도가 되어, 기독교 청년회에 들어가 신앙 운동을 통하여 민족 정신을 불어넣었다. 1923년에 소년 연합 척후대(보이 스카우트) 초대 총재, 1924년에 조선 일보사 사장, 이어 1927년에는 신간회 초대 회장이 되어 활약하였다. 여러 차례 일제에 의해 옥살이를 하기도 한 그의 생애는 오로지 일본에 항거하는 애국심으로 일관된 것이었다. 그가 77세로 세상을 떠나자 장례는 우리 나라 최초의 사회장으로 거행되었다. 1962년에 대한 민국 건국 공로 훈장 복장(지금의 건국 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위 노래 가사 중 '개나리' 부분은 다음의 일화와 관련이 있다.
봄에 피는 개나리가 있는데 울타리나 벼랑에 아무렇게나 늘어져 피어 있기 때문에 나리(꽃)에 개 자가 붙은 것이다. 그런데 일제시대 개나리 꽃이 일본 순경을 뜻하는 은어로 쓰인 적이 있다. 일본 관헌을 뒤에서는 '개(犬)'라고 불렀고 앞에서는 존칭으로 '나리'라고 불렀는데 그것을 한데 합치면 개나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월남 이상재 선생이 YMCA에서 강연을 할 때 일본 형사들이 청중 속에 있는 것을 보고 먼 산을 바라보면서 " 허, 개나리가 만발하였구나!" 라고 하여 폭소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1. 총칼로는 안된다 힘으로도 안된다 침략자는
무릎을 꿇어라 용기와 신념으로 본을 보이신
월남 이상재 선생님 젊은이여 너희는 나라의
기둥 힘써 배우고 익혀 배우고 익혀 뜻을
펼쳐라 어둠 속에 헤매는 가슴에 굳센 의지
심어 주셨네 깨어라 이땅의 청년들아
외치는 월남 선생님
2. 개나리 꽃 보인다 일본경찰 보인다 개나리의
뜻을 아느냐 재치와 웃음으로 일깨워 주신
월남 이상재 선생님 젊은이여 너희는 내일의
희망 1분 1초 아껴서 힘을 길러라 절망속에
방황하는 이여 그의 말씀길이 새겨라
보아라 이 땅의 청년들아 광복이 눈앞에 있다
♬ 해설
이상재(李商在: 1850∼1927)
사회 운동가, 애국 지사. 호는 월남(月南)이다. 충남 한산에서 태어나 일찍이 박정양, 홍영식 등과 사귀며 사회 개혁에 큰 뜻을 두었다. 1894년 갑오개혁 후 박정양이 내무 독판에 오르자 학무 국장으로 신교육령을 폈다. 이듬해 학부 참사관, 법부 참사관을 지내고, 이어 중추원 1등 서기관을 거쳐 의정부 총무국장이 되었다. 뒤에 서재필과 함께 '독립 협회'를 조직하여 민중 계몽에 힘썼고, 개혁당 사건으로 복역중 크리스트 교도가 되어, 기독교 청년회에 들어가 신앙 운동을 통하여 민족 정신을 불어넣었다. 1923년에 소년 연합 척후대(보이 스카우트) 초대 총재, 1924년에 조선 일보사 사장, 이어 1927년에는 신간회 초대 회장이 되어 활약하였다. 여러 차례 일제에 의해 옥살이를 하기도 한 그의 생애는 오로지 일본에 항거하는 애국심으로 일관된 것이었다. 그가 77세로 세상을 떠나자 장례는 우리 나라 최초의 사회장으로 거행되었다. 1962년에 대한 민국 건국 공로 훈장 복장(지금의 건국 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위 노래 가사 중 '개나리' 부분은 다음의 일화와 관련이 있다.
봄에 피는 개나리가 있는데 울타리나 벼랑에 아무렇게나 늘어져 피어 있기 때문에 나리(꽃)에 개 자가 붙은 것이다. 그런데 일제시대 개나리 꽃이 일본 순경을 뜻하는 은어로 쓰인 적이 있다. 일본 관헌을 뒤에서는 '개(犬)'라고 불렀고 앞에서는 존칭으로 '나리'라고 불렀는데 그것을 한데 합치면 개나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월남 이상재 선생이 YMCA에서 강연을 할 때 일본 형사들이 청중 속에 있는 것을 보고 먼 산을 바라보면서 " 허, 개나리가 만발하였구나!" 라고 하여 폭소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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