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산자료실 ▒

한산 관아 건물이 지금의 동백정으로 오게된 연유

천하한량 2007. 1. 10. 00:54

이사진은 동백정 화력발전소 준공시 고 박정희 대통령이 부리핑 받은 사진입니다.

장항 전통시장에 사진이 있어 찍어 올립니다. 

 

동백정 해수욕장은 서천 사람들에게 하늘이 준 소위 천혜의 선물이다. 유명한 해수욕장들의 해안선이 곡선을 이루듯 동백정 해수욕장 역시 동백정 당산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곡선을 이루고 있어 그 아름다움이 여인의 가는 허리에 비유할 수 있었다.

 

찾는 사람마다 그 명사 십리에 감탄을 자아냈으며 곳곳의 해당화는 고향의 정감을 더해주곤 하였다. 동백정에 올라서면 신선이 노닐 던 봉래산을 가까이 옮겨 놓은 듯 한 발에 뛰어 넘고 싶은 심정을 자아내는 오력도가 있다. 그래서 더욱 신비함을 더해 준다.

  
1980년! 그 해는 서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해이었지만 누구도 그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던 해이다. 바로 신선이 노닐 것만 같은 동백정 해수욕장이 단숨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서천화력발전처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해괴한 철가방이 자리잡고 있어도 사람들은 옛날의 향수와 지금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 500원을 거침없이 내고 동백정에 오르고 있다. 그뿐인가 80그루의 동백나무가 어우러진 숲 속에 들어가면 바다의 시원함을 대신하는 공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5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는 바깥 더위를 식혀주듯 냉풍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 이 공간은 동백정의 역사를 대신하듯 기와조각, 자기조각들이 그대로 박혀 있어 역사의 뒤안길을 살펴 볼 수 있다.


지금의 동백정은 한산군 관아 건물을 1965년에 이 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이는 동백정 현판에 보면 조병호가 쓰고 간지를 을사라고 명기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1905년은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정치를 시작하기 위해서 을사조약을 맺던 해가 아닌가 그리고 60년이 지난 을사년은 1965년이 되는 것이다.

 

그 해는 우리 서천군에 박정희 대통령도 비인공업단지 입지선정을 위해 방문했던 해이기도 하며 당시 김종필 정보부장도 서천을 찾았던 해이다. 윗분에게 보이기 위해 명소가 바로가 동백정이었던 것이다. 1530년부터 자리했던 동백정이 사라진 그 곳은 썰렁하기 그지 없자 알아서 기었던 것이 한산 관아 건물이 지금의 동백정으로 오게된 연유이다.


지금에 와서 동백정이 있어 그 풍치를 더해 주고 있다. 그 위에 올라서 오력도를 바라보면 해무속으로 누군가 나타날 것만 같다. 아니 저 멀리 중국 땅에서 동백꽃의 전설을 만들어낸 중국 사람들이 소나와 을나를 잡으러 오는 것만 같다.

 

소나와 을라네 가족은 본래 중국에서 지도층이었던 아버지가 악당에게 정치권력을 빼앗기자 멀리 도망하여 자리 잡은 곳이 마량리이다. 그 후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악당은 소나와 을라의 가족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려 그 부하들이 이곳 저곳을 찾던 중 마량 앞바다에서 고기잡던 부부를 발견하게 되었다.

 

멀리 육지에서 죽어가던 부모를 보던 소나와 을라는 살아 남기 위해서 산을 향해 뛰었지만 중국사람들이 그 어린 것들을 잡아 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그 후 그 자리에 피어난 꽃이 소나는 분홍색, 을라는 빨간 색 동백꽃으로 피어났다는 것이다. 전설은 전설인가보다 동백정의 동백꽃은 모두 빨간색뿐이다.

 
아름다운 경관과 깨끗한 바닷물을 제공하여 이화여자대학 별장까지 있었던 동백정 해수욕장 지금은 온데 간데없이 전설만 간직하고 있다. 춘장대, 선도리, 장포리, 갈목 해수욕장!

 

김철수의 말대로 우리는 잠깐 지나가는 객에 불과하다. 올 여름! 자라고 있는 후손을 위하여 있는 그대로 활용하고 자연에 반납하자. 누구나 잠시 지나가는 객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