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의 입담에 남은 구봉서 군수
조선 시대 서천군수 중 입담에 오른 전설적인 군수가 있다. 그가 남산아래 큰 방죽을 없애고, 물길을 장구리로 방향을 돌려 대대손손 겪던 홍수를 면하게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그의 업적은 지금까지 빛나고 있다. <서천군지>에 실린 그 전설을 살펴보자.
서천군의 관아는 세종 때까지 남산에 있었다. 남산에 있던 관아가 지금의 군청자리로 내려오면서 주변에 마을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산 아래에 큰 내가 흐르고 있어 좌우로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기 시작했다. 마을이 크게 번창하는 것은 좋았는데 어느 해 홍수가 나서 새로 지은 집들이 떠내려가고 제방이 무너져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후 비가 내리기만 하면 수해가 생겨서 고을이 다시 남산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소문까지 나돌게 되었다. 어느 해 서천에 구봉서라는 도학자가 군수로 부임해 오게 되었다. 그가 군수로 부임해 오던 날 마침 비가 온 뒷날이어서 방죽에서 개구리가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개구리도 풍류가 되나 음식이 되나?"하고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산으로 올라가 고을의 지형을 살피더니 "이대부자(二代富者)가 생길 수 없는 곳이고 재산은 개구리가 다 집어먹게 되었군. . . .쯧쯧. . . ." 하고 혀를 차더니 그 길로 내려와서 다시 말을 타고 고을 주위를 살피러 다니는 것이었다. 결국 구봉서 군수는 서천에 수해를 없게 하는 방법은 물길을 다른 곳으로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구봉서군수가 부적을 써서 이방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이 부적을 가지고 남산에 오르면 백발의 노인 두 사람이 바둑을 두고 있을 것이니 그 분들에게 전하라고 했다. 이방은 동헌을 떠나서 냇물을 건너는데 개구리들이 시끄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돌을 냇물에 던지며 "저놈의 개구리 잡아 없애는 귀신은 없나." 하고 소리지르니 개구리들은 더욱 요란하게 울어대며 이번에는 껑충껑충 뛰면서 그의 뒤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그는 바쁜 걸음으로 남산에 들어서자 개구리 소리는 멀리서 들리게 되었다. 그가 마침 남산에 다다르자 군수가 말 한대로 백발의 두 노인이 묵묵히 바둑을 두고 있었다. 바둑이 한 번 끝나기를 기다리고 서 있다가 그들이 바둑을 헤아릴 때 군수가 시키는 대로 부적을 한 노인에게 내 보였다. 그 노인은 알았다고 머리를 끄덕이더니 또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바둑 하나하나를 가지고 어떤 방법을 짜듯 두고 있는 그들이 너무나 고상하게 보여서 이방은 어디 사는 대감이시냐고 물었지만 그들은 대답도 하지 않고 묵묵히 바둑만 두는 것이었다. 그가 다시 노인들에게 말을 걸자 이번에는 한 노인이 웃으면서
"어서 가보게 날이 저물겠네. . . ." 하고 말함으로 그는 바삐 산을 내려와서 냇물 다리를 건너는데 이번에는 갈 때 보다 더 많은 개구리들이 그에게 덤벼들며 그를 귀찮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개구리에 쫓기는 사람처럼 달려오는데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뛰기 시작했다. 그래도 개구리는 여전히 껑충껑충 뛰면서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가 바삐 뛸수록 개구리들도 바삐 뛰면서 쫓아오는 것이었다. 마을에 들어서자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비를 피하는 사람처럼 빨리 뛰어 동헌 문을 들어서는데 앞이 캄캄해지며 남산에서는 하얀 물줄기 두 개가 하늘로 솟더니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자연 비를 피해서 산으로 올랐고 냇물 가까이 있던 마을은 완전히 침수되어 버렸다.
그 이튿날 동이 트면서 비가 서서히 개이자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라기 시작했다. 어제까지 흐르던 큰 방죽이 없어지고 들판 가운데에 큰 물길이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이 때부터 장구지 쪽으로 물이 빠지게 되었다. 이것은 모두 구봉서 군수의 신통력으로 개구리 방죽이 없어지고 장구만으로 서천의 물이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천에 홍수 피해가 없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이 전설의 주인공은 1636년에 서천군수로 부임하여 1년 동안 재직한 구봉서이다. 그는 도학자로서 치수관리를 잘하여 서천 사람들의 입에 오른 전설적인 군수이다. 그는 서천의 문제를 계획으로 끝낸 것이 아니고 실천적으로 군정을 살폈다. 그의 비석이 군청 앞에 우뚝 서있다. 그 비석은 우리에게 말한다. 서천 군민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군수가 군민의 사랑을 받았다고....
조선 시대 서천군수 중 입담에 오른 전설적인 군수가 있다. 그가 남산아래 큰 방죽을 없애고, 물길을 장구리로 방향을 돌려 대대손손 겪던 홍수를 면하게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그의 업적은 지금까지 빛나고 있다. <서천군지>에 실린 그 전설을 살펴보자.
서천군의 관아는 세종 때까지 남산에 있었다. 남산에 있던 관아가 지금의 군청자리로 내려오면서 주변에 마을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산 아래에 큰 내가 흐르고 있어 좌우로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기 시작했다. 마을이 크게 번창하는 것은 좋았는데 어느 해 홍수가 나서 새로 지은 집들이 떠내려가고 제방이 무너져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후 비가 내리기만 하면 수해가 생겨서 고을이 다시 남산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소문까지 나돌게 되었다. 어느 해 서천에 구봉서라는 도학자가 군수로 부임해 오게 되었다. 그가 군수로 부임해 오던 날 마침 비가 온 뒷날이어서 방죽에서 개구리가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개구리도 풍류가 되나 음식이 되나?"하고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산으로 올라가 고을의 지형을 살피더니 "이대부자(二代富者)가 생길 수 없는 곳이고 재산은 개구리가 다 집어먹게 되었군. . . .쯧쯧. . . ." 하고 혀를 차더니 그 길로 내려와서 다시 말을 타고 고을 주위를 살피러 다니는 것이었다. 결국 구봉서 군수는 서천에 수해를 없게 하는 방법은 물길을 다른 곳으로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구봉서군수가 부적을 써서 이방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이 부적을 가지고 남산에 오르면 백발의 노인 두 사람이 바둑을 두고 있을 것이니 그 분들에게 전하라고 했다. 이방은 동헌을 떠나서 냇물을 건너는데 개구리들이 시끄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돌을 냇물에 던지며 "저놈의 개구리 잡아 없애는 귀신은 없나." 하고 소리지르니 개구리들은 더욱 요란하게 울어대며 이번에는 껑충껑충 뛰면서 그의 뒤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그는 바쁜 걸음으로 남산에 들어서자 개구리 소리는 멀리서 들리게 되었다. 그가 마침 남산에 다다르자 군수가 말 한대로 백발의 두 노인이 묵묵히 바둑을 두고 있었다. 바둑이 한 번 끝나기를 기다리고 서 있다가 그들이 바둑을 헤아릴 때 군수가 시키는 대로 부적을 한 노인에게 내 보였다. 그 노인은 알았다고 머리를 끄덕이더니 또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바둑 하나하나를 가지고 어떤 방법을 짜듯 두고 있는 그들이 너무나 고상하게 보여서 이방은 어디 사는 대감이시냐고 물었지만 그들은 대답도 하지 않고 묵묵히 바둑만 두는 것이었다. 그가 다시 노인들에게 말을 걸자 이번에는 한 노인이 웃으면서
"어서 가보게 날이 저물겠네. . . ." 하고 말함으로 그는 바삐 산을 내려와서 냇물 다리를 건너는데 이번에는 갈 때 보다 더 많은 개구리들이 그에게 덤벼들며 그를 귀찮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개구리에 쫓기는 사람처럼 달려오는데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뛰기 시작했다. 그래도 개구리는 여전히 껑충껑충 뛰면서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가 바삐 뛸수록 개구리들도 바삐 뛰면서 쫓아오는 것이었다. 마을에 들어서자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비를 피하는 사람처럼 빨리 뛰어 동헌 문을 들어서는데 앞이 캄캄해지며 남산에서는 하얀 물줄기 두 개가 하늘로 솟더니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자연 비를 피해서 산으로 올랐고 냇물 가까이 있던 마을은 완전히 침수되어 버렸다.
그 이튿날 동이 트면서 비가 서서히 개이자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라기 시작했다. 어제까지 흐르던 큰 방죽이 없어지고 들판 가운데에 큰 물길이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이 때부터 장구지 쪽으로 물이 빠지게 되었다. 이것은 모두 구봉서 군수의 신통력으로 개구리 방죽이 없어지고 장구만으로 서천의 물이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천에 홍수 피해가 없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이 전설의 주인공은 1636년에 서천군수로 부임하여 1년 동안 재직한 구봉서이다. 그는 도학자로서 치수관리를 잘하여 서천 사람들의 입에 오른 전설적인 군수이다. 그는 서천의 문제를 계획으로 끝낸 것이 아니고 실천적으로 군정을 살폈다. 그의 비석이 군청 앞에 우뚝 서있다. 그 비석은 우리에게 말한다. 서천 군민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군수가 군민의 사랑을 받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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