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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 중기 3대 여성시인으로 한산이 낳은 임벽당(林碧堂) 김씨는 누구인가?

천하한량 2007. 1. 9. 21:21

 
 
-신사임당,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 중기 3대 여성시인으로 명성 높아-


-시·문·서와 수예에 탁월한 재능-
서천라이온스클럽 20주년 봉사사업으로 세우게 된 시비의 주인공 임벽당 의성 김씨(義城金氏)는 1492년(성종 23년)에 태어나 1549년(명종 4년) 58세의 일기로 신사임당(1512∼1559), 허난설헌과 더불어 조선 중기 3대 여성시인으로 살다 간 자랑스런 이 고장의 인물이다.


-비인 남당리 유씨문중으로 출가-


그는 부여 중정리에서 김수천(金壽千·漢城庶尹贈 兵曹參判)과 어머니 한양 조씨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나 할아버지 김축(金軸·司諫院 司諫)으로부터 시·문·서(詩文書)를 익혔고, 이후에 수예(繡藝)에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고 한다.


서기 1509년(중종 4년) 18세에 비인면 남당리의 유여주(兪汝舟·進士)와 혼인하여 아들 유위(兪緯)를 얻었다.
당시 시아버지 유기창(兪起昌·忠淸水軍節度使 定平 甲山府使 僉知 中樞府使)은 중종반정 때 유배지 거제도에서 풀려나 병조참의 및 동지중추부사 등의 제수도 사양하고 비인면 남당리에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킴으로써 숙종조에 비인 청절사에 배향되었다.


남편 유여주 또한 기묘사화(중종 14년)가 터지자 남당리 도화동(桃花洞)에서 우거하면서 임벽당을 짓고 기묘의 의리를 지키면서 학인(學人), 현인(賢人), 처사(處士), 의인(義人) 등으로 추앙받았으며, 의성 김씨 또한 시·문·서·수에 정진하여 명원 임벽당 의성 김씨로 명성을 더해갔다.


-임벽당은 명나라 황제가 지어준 호-


임벽당은 김씨의 호이며, 이는 당시 중국의 황제가 내려준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생존시에도 명원으로 이름이 높았지만 사후(死後)에는 그 명성이 더욱 세상에 알려졌으니 1683년 (숙종 9년)에 애산 김두명(艾山 金斗明·書狀官)이 중국사행을 다녀오면서 명나라의 목재 전겸익(牧齋 錢謙益)이 편집한 열조시집이란 책자를 가져오면서 더욱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 열조시집에는 임벽당 김씨의 시 3수가 수록되어 있었으며 이를 본 조야(朝野)에서는 그제야 명나라에 까지 유명해진 임벽당 김씨의 뛰어난 시재에 경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명인 재상들이 다투어 서문(序文)과 발문(跋文)을 써 칭찬 하며 임벽당 유고가 높이 평해졌다. 따라서 당대의 유명한 시인이요 영의정이었던 남구만(南九萬)의 서문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명나라 열조시집에 수록되어
지금 전하는 시문은 임벽당 의성 김씨의 유품인 베개에서 전래되고 있는 것이라 하는데, 그 베개 양각에는 임벽당이란 글씨를 수놓고 베개 천에는 임벽당 시 두 수를 수놓았다 한다.


비인면 남당리에는 임벽당 내외분이 심었다는 은행나무 세 그루 중 두 그루가 보호수로 남아 있었으나 한 그루는 불에 탔고, 나머지 한 그루는 어른 여섯명이 둘러서야 잴 수 있는 크기로 그 위용과 함께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고 있으며, 연당배미라 부르는 논이 있는 곳에는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임벽당이라 부르던 정자와 다리에 쓰던 돌기둥은 그 일부가 청절사로 옮겨져 지금도 염립문(廉立門)을 떠받쳐주고 있다.


임벽당 김씨는 이율곡 선생의 어머니인 신사임당과 유명한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의 누님인 허난설헌의 유명세에 비해 그분들과 옥석을 가리기 어려울 만한 작풍(作風)과 좋은 작품을 남겼으면서도 5백여년을 그늘에 가려진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비 건립, 주변 정비사업 추진


따라서 후세사람들이 이를 안타깝게 여기 던 중 서천라이온스클럽에서 20주년 기념 봉사사업으로 시비를 세워 그 뜻을 기리게 되었다.
서천군에서는 후손(대표:兪忠根)들과 연계하여 임벽당 유적주변 정비사업을 추진중에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은행나무 보호수 관리, 임벽당 유고 간행, 임벽당 시훈당 복원, 임벽당정자복원(연차사업), 유허지, 유허비 건립, 의성 김씨 사적비 건립, 임벽당화, 임벽당 교실 건축 등의 사업을 추진키 위해 1억8천만원의 소요 경비중 일부 사업비를 도에 신청중이다.

 


-그의 유시를 감상해 보기로 하자.-


□ 임벽당(林碧堂)


① 小洞幽深別一區 / 膏 泉石可忘憂 / 人間非是渾無累 / 花發知春葉洛秋
작은 골의 조용하고 깊숙한 이 한 구역은
벼슬을 버리고 산수를 즐기며 근심을 잊을 만 하다
인간의 시비(是非)와는 전혀 무관하니
꽃이 피면 봄을 알고 잎이 지면 가을인 줄 아네


② 依林一堂絶纖塵 / 只合幽人養性眞 / 閑枕憩來春睡足 / 無爲恰似太初民
수풀에 의지한 집에 티끌 하나 없으니
다만 은자(隱者)가 천성을 기르기에 알맞구나
한가히 베개 베고 쉼에 봄잠이 만족하니
하는 일 없음이 마치 태초(太初)의 백성 같도다


□ 증질자(贈姪子)


骨肉浮雲散 / 那知今日親 / 遠尋多厚意 /黎구不羞貧
육골이 뜬구름 같이 헤어졌는데
오늘 만날 줄 어이 알았으리오
멀리서 찾아오니 한없이 고맙구나
소식(蔬食)이지만 가난을 부끄러이 여기지않네


□ 증별 증손(贈別 從孫)


地僻人來少 / 山深俗事稀 / 家貧無斗酒 / 宿客夜還歸
땅이 후미지니 오는 사람 적고
산이 깊으매 속세의 일이 드물고나
집이 가난하여 술 한 말도 없으니
잘 손님 밤에 되돌아 가네


□ 별증(別贈)


恨別逾三歲 / 衣구獨御冬 / 秋風吹短비 / 寒鏡入衰容 / 旅夢風塵祭 / 離愁關塞重 / 徘徊思遠近 / 流한滿房 
이별을 한탄하며 헤어진지 3년이다
갓옷 입고 홀로 앉아 추위를 막았네
가을바람이 단비에 부니
찬 겨울에 쇠약한 얼굴 비치네
풍진 속에 고향 생각 절로 날제
나그네의 깊은 시름 관새(關塞) 속에 더하누나
생각없이 서성이며 지난 일을 생각 하니
떠도는 한탄만이 방안에 가득하구나


□ 빈여음(貧女吟)


夜蘭織未休 /   鳴寒機 / 機上一匹練 / 終作阿誰衣
밤중에도 쉬지 않고 비단을 짜니
바디소리 짤깍짤깍 울려 퍼지네
베틀에 감긴 이 한 필의 명주여
어느 님의 옷으로 지어지려나


□ 가객사(賈客詞)


朝發宜都渚 / 北風吹五兩 / 船頭水요酒 / 月下齊 裝
아침에 서울 포구를 떠나니
북풍에 오량(五兩)은 나부끼고
뱃머리에는 물방울이 넘쳐 고이는데
달밤에 가지런히 노를 젓는다


□ 양유사(楊柳詞)


① 條적纖腰葉적眉 / 息風愁雨盡低垂 / 黃芩穗短人爭挽 / 更被東風折一枝
가지는 가는 허리요 잎은 눈썹을 생각하는 듯
비바람 두려워서 모두 낮게 드리웠다
황금 빛 고운 가지 사람들은 다투어 당기고
다시 봄바람에 한가지 꺾였도다


② 按 營中占一春 / 藏雅門外外麴絲新 / 生憎파水橋頭樹 / 不解迎人解送人
안비영중에 봄이 찾아드니
장아문 밖의 청황색 줄기가 새롭구나
얄미운 패수 다리 근처 버드나무여
사람맞고 보내는 마음 알까 모를까

 


<참고문헌/충남향토 23호(충남향토연구회 2000년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