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글은 농암 김창협의 「가을 느낌」이라는 시의 앞부분이다. 『시경』 「당풍(唐風)」 실솔(蟋蟀) 편에는 “귀뚜라미가 마루 밑에서 우니 한 해가 드디어 저물어 가네[蟋蟀在堂 歲聿其莫]”라고 하였고, 삼국시대 오(吳)나라 육기(陸璣)의 『모시초목조수충어소(毛詩草木鳥獸蟲魚疏)』에는 “유주(幽州) 사람들은 귀뚜라미를 취직(趣織)이라고 불렀으며, 속담에 귀뚜라미가 울면 게으른 아낙이 놀란다.[幽州人謂之趣織。里語曰:趣織鳴,嬾婦驚是也。]” 라고 하였다. 농암은 이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농부들은 이른 봄부터 여름까지 부지런히 파종하고 김매고 가을의 결실을 기대하며 나름대로 앞만 보고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절기가 바뀌면서 해가 짧아지고 어느 날부터 하늘이 높아지며 가을바람이 불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그동안의 노력이 제대로 결실이 되었는지 점검하며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젊은 시절은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가 장년이 지날 무렵, 게다가 절후가 선들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면 갑자기 마음 한구석에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에 대한 무상함과 그동안 별로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것에 대한 후회 때문에 처량한 감상이 일어날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 시를 쓴 농암 선생의 마음도 이러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 한여름엔 수십 년 만에 겪는 더위라고 늘 야단이지만 처서가 지나고 백로도 지나면,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선들바람이 불고 길가에 벌레소리도 요란하게 들릴 것이다. 이렇게 흘러가는 세월이야 어차피 잡을 수 없더라도 오늘도 알차게 보내었는지 돌아보고 반성하여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귀뚜라미 소리에 놀라는 나부(懶婦)가 되지 않을 것이며, 지는 잎을 바라보며 슬퍼하고 후회하는 노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