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내 곁에 두지 않을 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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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조선 중기의 문인인 남주(南趎 ?~?)의 시이다. 그는 곡성(谷城)에 살면서 시문에 능하다는 명성이 있었다. 남곤(南袞)이 그를 천거하고자 불러서 보고는 화분에 심은 소나무를 소재로 시를 지어보라고 하자, 그 자리에서 이 시를 지었다.
소나무는 사시사철 언제나 푸르른 모습으로 인해 변치 않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게 되었다. 소나무의 이러한 모습은 비단 명산대천에 있는 낙락장송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원 한구석 화분에 심은 가냘픈 소나무도 이러한 유전자를 지녔다. 어쩌면 소나무의 모습이 잔약하면 잔약할수록, 눈보라가 매서우면 매서울수록 이러한 모습이 더더욱 두드러지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소나무의 꿈은 키가 크고 커서 결국 하늘에 닿는 것일 테다. 땅에 붙박인 채 중력을 거스르고 사는 모든 존재는 언제나 하늘을 향하고 있다. 하늘을 향하고 있는 것은 곧 생(生)을, 하늘을 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곧 멸(滅)을 의미한다.
남주는 자신을 이러한 소나무에 빗대고 있다. 화분에 심은 소나무가 연약하긴 하지만 지나긴 세월 동안의 모진 한파를 능히 견딜 수 있는 힘이 있다. 또 어떤 소나무보다도 훌쩍 자라 구름에 닿고 싶기는 하지만 원치 않는 도움을 받아서까지 이루고 싶은 꿈은 아니다.
문장이 뛰어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람의 천거를 받아가면서까지 벼슬길에 오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남곤의 의도를 간파하고 거절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한 셈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남곤은 이 시를 보자마자 크게 화를 내며 그와의 관계를 끊었다고 한다.
유가(儒家)에는 ‘벗을 통해 자신의 인덕(仁德)을 보완한다[以友輔仁]’는 관념이 있다. 이외에도 붕우 간의 관계를 강조하는 여러 격언이 있지만, 이러한 관념 때문이 아니더라도 벗의 품격이 곧 그 사람의 품격을 좌우한다는 측면에서 벗은 아주 중요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전통사회의 특성상 한 인간의 주요한 여러 관계 중 관계 맺기의 선택권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 다른 관계에 비해 벗은 선택해서 만나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면에서 남주는 사회적인 위치가 현저히 높은 남곤이 뻗어오는 손길을 과감하게 뿌리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을 내 곁에 두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지향과 성향이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을 내 곁에 두지 않느냐도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동탁(董卓)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다음 도주하고 있던 자신을 후하게 대접해 준 아버지의 친구 여백사(呂伯奢)를 오해하여 죽인 후 ‘저버릴지언정 저버림당하지 않겠노라[寧我負人 不人負我]’고 외쳤던 조조의 말이, 과격하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점은 있다고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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