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본래 고려시대 문충(文忠)이란 효자가 지은 것이다. 『고려사』 권71 「악지(樂志)」에 따르면, 문충은 오관산(五冠山) 아래에 살았는데 30리 길이나 되는 개성을 매일 오가며 벼슬살이하여 받은 녹봉으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문안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늙어가는 것을 한탄하여 이러한 노래를 지은 것이다. 이 노래는 향악의 형식으로 전래되다가 이제현이 한문으로 한역(漢譯)하여 악부(樂府)의 형식으로 현재까지 전하고 있다. 『고려사』에는 「오관산곡(五冠山曲)」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후세에는 「목계가(木鷄歌)」, 「당계곡(唐鷄曲)」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문충의 기사는 『고려사』 121권 「효우열전(孝友列傳)」에도 실려 있다. 이후 이익(李瀷)의 해동악부(海東樂府)와 『기언』, 『급암시집』, 『임하필기』 등 많은 전적에 「오관산곡」의 일화가 인용되었고, 수많은 시인이 효성을 주제로 읊을 때 그의 시를 인용하기도 하였다. 시의 내용은 매우 단순하다. 악부는 본래 민간의 노래를 수집한 것에서 비롯된 형식이므로 내용도 일반 백성들의 정서를 그대로 담아 진솔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효자가 나무토막을 가지고 작은 당닭을 조각하였는데 그 크기는 젓가락으로 집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작다. 이를 벽 위 횃대에 올려놓고 이 나무 닭이 울어 때를 알리면 그때야 비로소 어머니가 석양에 지는 해처럼 늙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나무 닭이 울 리가 없으니 불가능한 것을 전제로 하는 시인의 마음에서 어머니가 늙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더욱 간절히 느낄 수 있다. 불로불사를 바랄 수는 없으나 되도록 더디 늙으시기를 기원하는 것이리라. 언젠가부터 나이가 들면서 주변 지인들을 장례식장에서 만나는 일들이 잦아진다. 외람되지만 고인의 나이를 부모님의 나이와 견주어 보며 아직은 괜찮다 자위하기도 한다. 부모의 늙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식의 성장을 인정하는 것보다 더 버겁다. 한때는 단단한 벽 같았고, 한때는 온 세상 같았던 부모가 조금씩 작아지고 약해지고 위축되어 가는 모습은 아직 낯설기만 하다. 효심의 발로라기보다는, 아직은 좀 더 내 손을 잡아주었으면, 비빌 언덕이 되어주었으면, 찾아가면 앙상한 손목으로 여전히 내 등을 쓸어주기를 바라는 욕심으로 부디 더디 늙으시길 바란다. 나의 이 쪼그라든 세상이 아직 무너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