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땅끝마을', 300년 전 영국 땅 된 사연은? |
최근 스페인 정부는 영국이 점유하고 있는 지브롤터(Gibraltar)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지브롤터는 스페인 남쪽 끝에 지중해를 향해 뻗어 있는 곳이에요. 해안에는 길이 약 4㎞, 높이 약 400m의 깎아지르는 듯한 바위산 '지브롤터 바위'가 있는데, 산 위에는 군용 비행장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산 서쪽에는 군함과 무역선이 오가는 항구가 있고요. 지브롤터를 내놓으라는 스페인의 주장에 대해 영국 정부는 "지브롤터 주민 다수가 영국령으로 남기를 바라고 있다"며 영유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어요. 유럽 대륙 서쪽 끝과 아프리카 대륙 북서쪽 끝이 마주 보는 지브롤터는 아주 오래전부터 군사·경제적 요충지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나라가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지요. 그럼 지브롤터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고, 영국은 어떻게 지브롤터를 차지했는지 함께 알아볼까요? ◇'헤라클레스의 기둥'에서 '자발 타리크'로 고대 그리스·로마 사람들은 지브롤터를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고 불렀어요. 그리스 신화를 보면 엄청난 힘을 가진 영웅 헤라클레스가 아틀라스 산을 무너뜨려 바다를 메우고 소 떼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스·로마인들은 지브롤터 바위산을 보고 아틀라스 산이 무너진 일부라고 생각해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고 부른 것이죠. '헤라클레스의 기둥'으로 불리던 바위산이 '지브롤터'로 불리게 된 건 8세기 초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반도로 진출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7세기 초 아라비아반도에서 등장한 이슬람교는 빠르게 세력을 넓혀 아라비아반도 전체를 장악했고, 사산왕조 페르시아를 멸망시켜 제국으로 발전하였어요. 이들은 유럽 쪽으로도 세력을 넓히려 했지만 오늘날 터키와 그리스 일대를 차지한 비잔티움 제국이 이슬람 진출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러자 이슬람 군대는 말머리를 돌려 북아프리카로 세력을 넓혔고, 마침내 아프리카 대륙 북서쪽 끝에 닿았어요. 그리고 해협 너머로 보이는 이베리아반도로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타리크 이븐 지야드(Tāriq ibn Ziyād·?~720)가 이끄는 이슬람 군대는 해협을 건너 바위산을 점령한 뒤 사령관의 이름을 따 '자발 타리크(Jabal Tāriq·'타리크의 언덕'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바위산에 붙여주었어요. 이 '자발 타리크'가 후대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지브롤터'로 변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발 타리크를 넘은 이슬람 군대는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하던 서고트 왕국을 무너뜨렸고, 이후 15세기까지 이베리아반도에는 이슬람 세력권이 유지되었어요. 하지만 13세기부터 이베리아반도 내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려는 재정복운동(Reconquista)이 활발해지면서 이슬람 세력은 점차 작아졌고, 1492년 에스파냐 왕국 군대가 이슬람 세력의 최후 거점인 그라나다를 점령하면서 지브롤터는 에스파냐 왕국이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과 지브롤터 에스파냐 왕국이 다스리던 지브롤터를 영국이 차지하게 된 건 지금부터 약 300년 전인 18세기 초의 일입니다. 17세기 말 에스파냐 왕국은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인 카를로스 2세가 다스리고 있었어요.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독일 국왕, 오스트리아 대공, 에스파냐 국왕 자리를 모두 차지해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카를로스 2세가 후사를 남기지 않고 죽자 스페인 왕위를 누가 이을 것인지를 두고 여러 나라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어요. '태양왕' 루이 14세가 다스리던 프랑스는 "카를로스 2세의 조카 손자이자 루이 14세의 손자인 앙주 공작 필리프가 에스파냐 왕위를 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카를로스 2세가 앙주 공작 필리프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영국·오스트리아·네덜란드 등은 "카를로스 2세의 조카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 레오폴트 1세의 아들 카를 대공이 에스파냐 왕위를 이어야 한다"며 프랑스에 맞섰어요. 만약 앙주 공작 필리프가 에스파냐 국왕이 되어 프랑스와 스페인이 합병하면, 프랑스가 너무 강력해지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양쪽의 입장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프랑스와 영국·오스트리아·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동맹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어요. 이것이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1701~1713)'입니다. 10년이 넘는 전쟁에 지친 양측은 앙주 공작 필리프가 '펠리페 5세'가 되어 스페인 왕위를 잇는 대신 프랑스가 스페인을 합병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위트레흐트 조약을 맺어 전쟁을 끝냈어요.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에스파냐·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 각지에 가지고 있던 영토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등이 나누어 갖게 되었습니다. 영국도 위트레흐트 조약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차지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에스파냐 왕국으로부터 지브롤터를 할양받은 것입니다. 이때부터 지브롤터는 영국이 쭉 지배하게 된 것이죠. 영국이 지브롤터를 할양받은 건 지브롤터의 전략적 가치가 아주 높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중해 인근 국가들은 지브롤터를 지나야만 대서양으로 나갈 수 있었어요. 지브롤터해협이 봉쇄되면 이들에게 지중해는 호수나 다름이 없었지요. 이 점을 간파한 영국은 지브롤터를 차지함으로써 지중해 제해권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지브롤터는 군사 요충지로서 미군의 작전기지로 사용되었고, 지중해 제해권을 노린 독일 공군이 지브롤터를 폭격하기도 했지요. 20세기 이후 세계 각지에 있던 식민지를 포기한 영국이 오늘날까지 지브롤터를 포기하지 않는 건 역사로 증명된 지브롤터의 전략적 가치가 오늘날에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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