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체시(近體詩)의 절구(絶句)를 보면, 특정 시어(詩語)의 경우 그에 따른 일정한 전개 방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의 독자들은 한시를 직접 지을 일이 없기 때문에 크게 와 닿지 않겠지만, 과거의 문사(文士)들은 이런 패턴에 각별히 유념하면서 학습과 창작을 하였다. 이를 유형별로 정리한 책이 바로 『연주시격(聯珠詩格)』인데, 조선 초기에 시인들의 학습서로 유행하였다. ‘~라고 말하지 마라’라는 의미의 ‘막위(莫謂)’나 ‘막언(莫言)’, ‘~로 향하지 마라’라는 의미의 ‘막향(莫向)’, ‘~을 비웃지 마라’라는 의미의 ‘막소(莫笑)’ 등과 관련된 패턴도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데, 시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수법 중의 하나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제3구에서 ‘막위(莫謂)’ 등의 글자를 놓고, 제4구에서 그렇게 말한 이유를 밝혀 주는 방식이다. 당연히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제4구에 담겨 있다. 이 방식은 전구(轉句), 즉 제3구에서 이루어지는 시상의 전환을 독자들이 더욱 분명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세속적인 벼슬길에서 벗어나 초야에서 유유자적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것은 과거 동양권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인식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서를 토로하는 대상으로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갈매기이다. 기미를 알아채는 감각이 뛰어난 데다 물가를 배경으로 한가로이 지내는 회화적 이미지가 강해서일 것이다. 이런 유의 시는 주로 세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갈매기를 통해 부끄럽게 자각한다는 식의 내용 전개가 이루어진다. 소재를 시 속에 소극적으로 참여시켰다고 할 수 있다. 고려 때의 문신인 유숙(柳淑)이 지은 「벽란도(碧瀾渡)」라는 시가 대표적이다. 강호의 기약을 저버린 지 오래 / 久負江湖約 풍진 속에서 어느덧 스무 해를 보냈네 / 風塵二十年 갈매기도 나를 비웃는 듯 / 白鷗如欲笑 끼룩대며 누대 앞으로 다가오네 / 故故近樓前 | 조선 중종조(中宗朝)의 문신인 정수강(丁壽崗)의 이 시는 그런 면에서 차이가 있다. 갈매기를 대화의 직접적인 대상으로 설정하는 적극성을 보여준다.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하는 「백구사(白鷗詞)」라는 노래에서, 백구야 펄펄 나지 마라, 너 잡을 내 아니로다. 라고 한 것처럼, 마음을 비우고 살아가는 자신을 몰라주고 놀라 피하는 갈매기에게 적극적인 변명을 하고 있다. ‘막위(莫謂)’의 패턴은 이런 설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수법이다. * 본문의 봉창(篷窓)은 배에 달린 창문을 말하는 것으로, 배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