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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아홉, 늙어감에 대하여

천하한량 2017. 3. 18. 16:22
마흔 아홉, 늙어감에 대하여
번역문

   나는 모르겠다. 너의 얼굴에서 지난날엔 가을 물처럼 가볍고 맑던 피부가 어이해 마른 나무처럼 축 늘어졌느냐? 지난날 연꽃이 물든 듯 노을이 빛나는 것 같던 뺨이 어찌하여 돌이끼의 검푸른 빛이 되었느냐? 지난날 구슬처럼 영롱하고 거울처럼 반짝이던 눈이 어이해 안개에 가린 해처럼 빛을 잃었느냐? 지난날 다림질한 비단 같고 볕에 쬔 능라 같던 이마가 어찌하여 늙은 귤의 씨방처럼 되었느냐? 지난날 보들보들하고 풍성하던 눈썹이 어이해 촉 땅의 누에처럼 말라 쭈그러졌느냐? 지난날 칼처럼 꼿꼿하고 갠 하늘의 구름처럼 풍성하던 머리카락이 어이해 부들 숲처럼 황폐해졌느냐? 지난날 단사(丹砂)를 마신 듯 앵두를 머금은 것 같던 입술이 어이해 붉은빛 사라진 해진 주머니같이 되었느냐? 지난날 단단한 성곽 같던 치아가 어찌해 비스듬해지고 누렇게 되었느냐? 지난날 봄풀 갓 돋은 것 같던 수염이 어이해 흰 실이 길게 늘어진 듯 되었느냐?

원문

余不知, 女之面之昔之秋水之輕明者, 于何枯木之不揚也? 昔之蓮暈而霞晶者, 于何苔石之黝蒼也? 昔之珠瑩而鏡熒者, 于何霧日之無光也? 昔之熨錦而晾綾者, 于何老橘之房也? 昔之柔輭而豊盈者, 于何蜀蠶之殭也? 昔之劍嚴而雲晴者, 于何蒲林之荒也? 昔之飮砂而含櫻者, 于何退紅之弊囊也? 昔之圍貝而爲城者, 于何坡岮而垢黃也? 昔之春草之始生者, 于何素絲之繰長也?

-이옥(李鈺, 1760~1815), 『화석자문초(花石子文鈔)』, 「경문(鏡問)」

해설

   인생은 뜻밖의 일과 맞닥뜨려 예상과는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러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내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 삶을 끝없는 긴장으로 밀어 넣는다. 그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외롭게 버티어가는 사이,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해지고 흰머리가 수북하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라. 쓸쓸하게 늙어가는 내가 있다.

 

   이옥(李鈺)은 꽃과 물을 사랑했고 감수성이 풍부했다. 문체반정의 유일한 실질적 피해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군대 세 번 갔다는 사실이 더욱 인상 깊다. 이옥은 경기도 남양(南陽, 지금의 화성)에서 태어났다. 그 역시 남들처럼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 시험을 준비, 31세에 성균관 유생이 되었다. 36세 때 임금의 행차를 기념한 글을 썼는데, 글을 본 정조가 문체가 괴이하다며 정거(停擧), 곧 과거 응시 자격을 정지시키고 반성문을 쓰게 했다. 과거 시험일이 다가오자 충군(充軍)의 벌로 바꾸어 주었다. 충군은 군대를 다녀오는 것이다. 충청도 정산현(定山縣, 지금의 청원군)에서 몇 개월 군 복무를 한 그는 과거에 응시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조는 그의 문체가 초쇄(噍殺)하다고 지적하며 충군을 명했다.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초쇄한 음악이 일어나면 백성들이 슬퍼하고 근심한다.[噍殺之音作 而民思憂]”라고 하였으니, 초쇄란 슬픈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문체다. 그의 글엔 자신도 모르는 슬프고 근심스런 흔적이 배어 있었다.

 

   두 번째 군 복무는 경상도 삼가현(三嘉縣, 지금의 합천군)이었다. 이 상황이 힘들었을 테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과거를 준비했다. 그리하여 다음 해 2월, 별시의 초시(初試)에서 당당히 일등을 차지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정조는 그가 쓴 책문(策文)이 격식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꼴등으로 강등시켰다.

 

   과연 그는 의도적으로 문학적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걸까? 계속 과거 시험에 도전한 것을 보면 과거에 합격해서 꿈을 펼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그는 그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오는 내면화된 자기 문체 혹은 기질.

 

   다음 해 그는 실의에 젖어 고향인 남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삼가현에서 군대 소환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예전 삼가현에 다녀올 때 행정 절차를 밟지 않아 그의 이름이 여전히 군적에 등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또다시 군대를 가야 했다. 그리하여 그는 역사상 군대를 세 번 다녀온 흔치 않은 사람이 되었다.

 

   그의 꿈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스스로 고백했듯, 길 잃은 사람[失路之人]이었다. 재능이 뛰어났던 한 젊은이의 꿈은 절대 권력의 핍박으로 좌절되었다. 그는 출세를 위한 글을 쓰는 대신 자신의 글을 쓰기로 했다. 그것은 소품(小品)의 글쓰기였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기대를 걸었을 부모의 자식으로서, 그 모든 삶의 무게를 끌어안고 가야 하는 외로운 길이었다. 그러나 철저히 고립되었을 그 자신을 구해줄 방편 또한 글쓰기였다. 그는 글을 씀으로써 근심을 잊었고 글을 씀으로써 자기를 구원해 갔다.

 

   나이 오십을 한 해 앞둔 어느 날, 거울을 보던 이옥은 깜짝 놀랐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폭삭 늙어 있었다. 위의 글은 그런 그가 거울에게 자신의 늙음을 하소연하는 장면이다.

 

   자기 얼굴의 쇠락을 이토록 애잔하면서 절절하게 표현한 글을 본 적이 있던가? 얼굴 부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곡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문체 때문에 평생의 꿈이 막히고 이러구러 하는 사이에 인생은 흘러 쭈글쭈글 늙고 말았다. 그는 팍 삭아버린 얼굴이 퍽 서러웠을 것이다. 허나, 그는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자신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는 자는 문제로부터 도망가지 않는다. 저 반복되는 자기 늙어감의 표현은 뼛속 깊은 억울함과 외로움에 무너지지 않고, 자신의 초라한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함으로써, 고된 삶에 굳건히 맞서가려는 자기 의지의 표현 방식으로 읽힌다.

 

   거울은 다음과 같이 위로한다.

아름다움은 진실로 오래 머무를 수 없고 명예는 진실로 영원토록 함께 못한다. 빨리 쇠하여 변하는 것은 진실로 이치이다. 그대는 어찌 절절히 그것을 의심하며 또 어찌 우울히 그것을 슬퍼하는가?[美固不可以長處, 譽固不可以久與, 早衰而變, 固其理也. 子何竊竊然疑之, 又何戚戚然悲之也?]

   영원한 것은 없고 변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니 담담히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거울의 말은 스스로에게 건네는 자기 위로이자 안간힘이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나아가겠다는 자기 다짐이기도 하다.

 

   7년 뒤 이옥은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비록 지금은 그의 무덤조차 찾을 길 없지만, 그가 끝까지 붙들었던 자기 글은 오래도록 남아 오늘의 나를 위로해 주고 있다.

박수밀
글쓴이박수밀(朴壽密)
한양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미래인문학교육인증센터 연구교수

 

주요 저서
  • 『박지원의 글 짓는 법 』, 돌베개, 2013
  • 『알기 쉬운 한자 인문학』, 다락원, 2014
  • 『옛 공부벌레들의 좌우명』, 샘터, 2015
  • 『고전필사』, 토트, 2015 외 다수의 저역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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