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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취종필(大醉縱筆)

천하한량 2017. 3. 18. 16:14
대취종필(大醉縱筆)

대취종필(大醉縱筆)

 

오래된 거문고 고요히 소리 없는 것은
태곳적 마음을 간직해서라네.
세상 사람들 종자기가 아니니
아양곡의 높고 깊은 정취 그 누가 알아줄까.
높고 깊은 정취 분별할 이 없다면
소리를 내든 말든 내 마음대로 하리.
아아! 세상에 백아는 늘 있었지만
종자기가 없을 뿐이로구나.

 

古琴澹無音고금담무음
中藏太古心중장태고심
世人非子期세인비자기
誰識峨洋高與深수식아양고여심
高深旣莫辨고심기막변
有聲無聲唯我志유성무성유아지
吁嗟乎無世無伯牙우차호무세무백아
而無子期耳이무자기이

- 심의(沈義, 1475~?), 『대관재난고(大觀齋亂稿)』 권2

해설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그로 인한 슬픔이 잘 드러나 있다. 백아의 거문고 솜씨를 알아본 종자기와 같은 인물이 심의(沈義)의 주위에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 불우한 처지가 서글펐던지 세상에 자신의 재주를 숨긴 채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하리라 다짐한다.

 

   비관적, 염세적 정취가 강하게 느껴지는 이 시의 제목은 ‘대취종필’이다. 즉, 술에 잔뜩 취해 내키는 대로 쓴 시라는 의미이다. 맨정신에 한시를 짓기도 상당히 까다로운 일인데, 만취한 상태임에도 고사까지 응용해 자신의 심정을 술회한 것을 보면, 심의는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가 아닐 수 없다. 그의 문집인 『대관재난고』에는 「인취종필(因醉縱筆)」, 「취서(醉書)」, 「취서신력(醉書新曆)」 등 음주와 관련된 작품이 다수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종종 술을 마시고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시로 남겼던 것 같다.

 

   역사적으로 많은 시인이 술을 즐겼다. 음주를 통해 동양적 풍류의 극치를 보여 준 이백,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술과 사랑에서 찾았던 예이츠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인과 술은 깊은 관계를 맺어 왔다. 한시의 경우 취중 작품 가운데는 이백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낭만적 정취를 그린 것이 많다. 위 작품처럼 분노와 슬픔을 표출하여 비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은 그에 비해 드문 편이다.

 

   취중에 지은 시들은 온유돈후(溫柔敦厚)한 면이 결여되기 쉽다. 술로 인해 격앙된 감정과 과잉된 자의식으로 시의 내용과 표현이 다소 거칠어질 수 있고, 나아가 ‘낙이불음 애이불상(樂而不淫 哀而不傷)’과 같은 관념적인 작시 규범의 경계를 넘어갈 수도 있다. 비관적 분위기의 작품이 드문 이유는 이러한 위험성을 고려한 시인들의 자기검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위 시의 지은이인 심의를 포함해 많은 시인이 취중 작시를 그만두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술을 마셨을 때 낭만적 정감이 한껏 일어나거나 묵혀 두었던 내면의 목소리가 자연스레 나온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성의 통제를 느슨하게 하고, 진솔한 감정을 자연스레 표출하는 데는 술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심의가 이 작품을 쓰던 순간을 상상해 본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 정신이 없는 가운데 가슴속 묵혀둔 울분을 거침없이 붓을 휘둘러 쏟아내는 모습을 말이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저게 뭐하는 짓이냐며 눈살 찌푸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는 당시 그가 지닌 고민을 솔직히 고백하고 마음속 울분을 씻어내는 행위였다. 이백의 “술 석 잔에 대도를 통하고, 한 말에 자연과 하나 된다.[三杯通大道 一斗合自然]”라는 시구는 어쩌면 이러한 카타르시스적 행위를 두고 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김준섭
글쓴이김준섭(金俊燮)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주요 논문
  • 「졸옹 홍성민 문학 연구」,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4
  • 「지봉 이수광 당시관의 실제」, 한문학보 32권, 우리한문학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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