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不知]” 종종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기도 하는 이 말이, 한시에서는 전편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때가 있다. 절구시(絶句詩)에서 제3구인 전구(轉句)의 1~4자에 ‘주어+不知(不識)’의 형태로 쓰일 경우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제1구와 제2구에서 황량, 암울한 현실을 묘사하고, 제3구에서 이런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주체를 설정한 다음, 제4구에서 그 주체가 그저 한가로운 행위만 한다는 식으로 엮어나가는 기법이다. 앞 두 구절의 황량, 암울함이 더욱 극대화되는 효과가 있다. 애처로운 마음을 강조하거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는 세태를 한탄할 때 옛 시인들은 이런 틀을 즐겨 사용하였다. 이 시는 고려조의 문신인 박인량(朴寅亮)이 송(宋)나라에 사신 갔을 때 춘추시대 오(吳)나라의 지략가인 지략가인 오자서(伍子胥)의 사당을 지나면서 감회를 읊은 것이다. 오자서는 월(越)나라를 패망 직전까지 몰아쳐서 오나라의 원수를 갚는 큰 공을 세웠지만, 훗날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자결하였다. 머지않은 장래에 오나라가 멸망할 것을 직감한 그는 죽어서도 멸망을 지켜보겠다며 자신의 눈알을 동문 밖에 걸어두라는 유언을 남겼다. 과연 승리에 도취되어 자만에 빠졌던 오나라 왕은 절치부심한 월나라의 공격을 받고 대패하여 죽었다. 이 고사의 본질은 바로 안이한 현실 인식으로 인한 패망인데, 후인들은 오로지 오자서의 원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인은 이 교훈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럴 때 오자서의 고사에 담긴 이면의 교훈을 구구절절 표현하지 않고, 강물을 매개로 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부지(不知)’, ‘불식(不識)’의 기법으로 처리한 것이 절묘하다. 조선 선조조의 문장가인 석주(石洲) 권필(權韠)의 「정부원(征婦怨)」이라는 시도 이런 기법을 사용하여 깊이를 더 한 것이다. 출정한 낭군이 죽은 줄도 모르고 / 征婦不知郞已沒 아내는 밤 깊도록 겨울옷을 다듬이질하네 / 夜深猶自擣寒衣 | 어린 자식이 부모의 죽음을 모른 채 상가에서 천연스럽게 노닐 때, 보는 사람의 슬픔은 배가 되기 마련이다. 전장에 징발되어 간 남편이 죽은 것을 알고 울부짖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보다, 남편이 죽은 줄도 모른 채 남편을 위해 겨울옷을 다듬이질하는 설정이 더 공감을 자아낸다. ‘부지(不知)’의 주체가 사람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직접적인 감정의 표현이 없는 산천초목이나 조류, 어류를 의인화할 수도 있다. 당(唐)나라 시인 잠삼(岑參)의 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뜰의 나무는 사람들 다 떠나간 줄 모르고 / 庭樹不知人去盡 봄이 오자 여전히 옛 꽃을 피우네 / 春來還發舊時花 | 번성했던 한(漢)나라가 망한 뒤 황폐해진 황실 동산. 감상해 줄 이들이 없는데도 무심히 핀 꽃이 망국의 슬픔을 더 크게 느끼게 만드는 촉매가 되는 것이다. 부지(不知)의 용법은 위에서 보듯이 간결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효과가 있다. 이처럼 편장을 구성하는 작법까지 아울러 살펴보는 것도 한시 감상의 묘미를 더하는 한 방법이 될 것 같아 소개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