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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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베네치아가 도시를 가로지르는 운하 위로 유유히 곤돌라가 떠다니는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한때는 강력한 해군력과 경제력으로 지중해와 아드리아해의 해상무역을 장악하고 이탈리아 동북부와 발칸반도의 서부 연안, 키프로스 등에 식민지를 거느린 강국이었다. 유럽에서의 위상이 높은 나라였기 때문에 선교사와 상인들을 통해 중국으로 소문이 전해져 책에 기록되었고, 조수삼이 그 책을 읽고 이 시를 지은 것이다. 그런데 이 시, 특히 3, 4구가 무슨 의미인지 아리송하다. 이 부분은 이 시에 붙은 주석을 봐야 이해할 수 있다. 물누차는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 돌벽돌로 건물을 짓고 구리벽돌로 성곽을 쌓는다. 땅이 비옥하고 백성이 많으며 수공예 솜씨가 매우 정교하다. 나라에는 군주가 없고 1년마다 지체 높은 가문의 사람들과 보통 사람들이 함께 현명한 인물을 선출하여 나랏일을 맡아보게 한다. 선출된 인물은 자기 일을 마치면 다시 평민으로 돌아간다. 산이 둘 있는데 하나는 끊임없이 불을 내뿜고 하나는 연기를 내뿜는다.[勿耨茶在海中. 作石塼高房, 以銅塼築城郭. 地饒民庶, 手藝絶巧. 國無君主, 每年大家衆人. 選賢者管事, 事畢復爲平民. 有二山一出火, 一出烟不絶.] 베네치아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제외하면 유럽에서 유일하게 공화정을 채택한 나라였다. 국가 원수인 도제(Doge)와 ‘10인 위원회’로 불린 핵심적인 공직자들을 모두 투표를 통해 선출했다. 도제는 종신직이었으나 나머지 공직자들은 1년 마다 새로 선출되었고 연임할 수 없었으며 같은 가문에서 두 명이 선발될 수 없었다. 이러한 정치 체제가 천 년 가까이 유지되었고, 이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번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삼황오제(三皇五帝)가 나라를 다스린 고대 사회는 한자문화권의 사람들에게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이상향으로 인식되었다. 군주는 농경·목축·어렵(漁獵) 등의 기술을 가르치고 생존을 위협하는 재난을 방비하여 백성들의 생활수준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사람들은 현명한 인물을 자신들의 군주로 추대했고 군주는 현명한 인물을 선발하여 나랏일을 분담했다. 군주는 자신의 지위를 자손들에게 세습하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능력과 인품이 뛰어난 사람에게 선양했다. 요임금은 순임금에게, 순임금은 다시 우임금에게. 조수삼은 이러한 삼황오제의 시대, ‘백성이 선출한 현명한 사람들이 이끄는 풍요롭고 강한 나라’를 베네치아에서 발견한 것이다. 당시의 조선은 베네치아와 달랐다. 명문가의 자제가 아니면 벼슬은커녕 과거에 급제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지도층은 백성들의 피폐한 삶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이권 다툼에만 열중했다. 신분이 미천하여 능력이 있어도 벼슬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수삼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이상향은 너무도 멀었다. 조수삼이 꿈꾸던 나라는 오늘날 우리의 꿈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곳에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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