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했던 어느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너의 고통을 내가 진정으로 공감하고 함께 아파했기에 가능한
표현이다. 조선시대 성군(聖君)으로 알려진 정조(正祖)도 위와 같은 말을 했다. 백성들을 자식처럼 생각했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정조는 숙빈 최씨(淑嬪崔氏, 영조의 어머니)의 묘소가 있는 소령원(昭寧園) 부근 논에서 추수한 벼를 대궐 뜰에
가져다가 말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곡식을 만져보고는 “이 벼를 심은 땅은 토질이 좋고 인력이 많이 들어갔는데도 쭉정이가 반이나 된다.
그렇다면 이보다 못한 곳은 어떨지 알 만하다. 앞으로 닥칠 백성들의 일이 실로 아득하다.” 하였다. 그리고 벼를 말리다가 낟알이 자리 밖에
떨어져 있으면 내시를 꾸짖으며 하나하나 주워 올리게 하고는 “이 하찮게 보이는 낟알 하나도 농부들이 갖은 고생을 하며 키운 것이니, 참으로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래서 나는 밥을 먹을 때 물에 말아 남긴 것을 내시들이 먹기 싫어 땅에 버릴까 봐 배가 불러도 매번 다 먹는다.”
하였다.
직접 농사짓는 현장을 가지는 않더라도 올해 농사지은 벼를 손 위에 올려놓고 살피면서 팔도 백성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을까 헤아리는 정조의 모습이 그려진다. 곡식 한 톨 버려지는 것을 볼 때마다 굶주려 죽어가는 백성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기에 이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나라 다스리는 위정자를 왜 ‘백성의 부모’라고 불렀을까? 그것은 아마 모든 부모가 자식을 자기 몸보다 더
사랑하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정치인들도 백성들을 그렇게 보고 있을까? 만일 정치인들이
‘백성의 부모’라는 자세를 가지고 정치를 했다면 젊은이들이 취업이며 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하는 이런 절망적인 사태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대궐 뜰에서 벼를 꼼꼼히 살펴보고, 곡식 한 톨 버려지는 것을 아까워한 애민 군주(愛民君主) 정조의 자세를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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