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주석과 최홍희총재) 최홍희 총재가 평양 방문 시범단 구성을 시작 한 것은 1979년이다. 오랫동안 전 세계를 순회 하면서 직접 태권도를 지도한 그가 태권도 세계화에 한계를 느낀 것은 그가 만든 태권도를 가르칠 수 있는 우리 민족 사범들이 부족한 것이었다.
북한에 친 혈육인 형이 생존해있다는 소식과 34년 만에 고향땅을 밟는 다는 것은 최홍희 총재 자신의 희망 이였다고 전한다. 최홍희 총재는 1980년 북경을 경유, 북한에서 보내준 특별기편으로 시범단과 함께 평양에 들어갔을 정도로 북한 정부에서 그의 방문을 어느 정도 준비 했는지 짐작 할 수가 있다.
그는 계획했던 되로 김일성 주석을 만나, 태권도를 북한에 보급할 것을 제의 했다. 김일성 주석은 태권도가 주는 신체 건강함과 태권도 틀 중에서 중근틀 ,삼일틀, 광개틀,등의 민족정신을 발견하고 더욱 ITF와 최홍희 총재를 신임하게 되면서 북한 전역에 태권도를 보급 하도록 지시한다.
(1981년 김일성주석과 최홍희총재 그리고 ITF임원들과) 태권도를 가지고 북한을 방문한 최홍희 총재는 34만에 북한에 생존한 형님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의아스럽게 생각 했다고 한다.
한국군의 창설자 이며 6.25동란 때 북한에 총 뿌리를 겨눈 자신을 환대 하는 것과, 당시 북한의 입장 에서는 남한 정부에서 장군으로 있었던 자신의 가족들이 생존한 사실이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북한 정부의 환대를 받은 최홍희 총재는 15명의 한국인, 외국인을 포함한 시범단 을 이끌고 평양에서 최초의 ITF 태권도를 시범하고 북한 전역에 태권도를 보급하게 된다.
(최초북한방문 시범단) *북한ITF방문단: 폴도네리,림원섭,이석희,최홍희총재,이기하,박정태,최중화,김석준,/뒷줄,좌로부터,부루싸,디미트리,한삼수,마이클코맥,칼 니코라티,찰스 세레프* 2002년 8월 글 정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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