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국기원 건립 현장 태권도 상식 하나. '국기원'의 최초 명칭은 무엇일까. 정답은 이 사진 속에 나와 있다. 바로 '대한태권도협회 중앙도장.' 주변에는 농지와 초가집 밖에 없는 황량한 시골땅에 이제 막 건설되고 있는 장면이다. 1972년 11월 30일은 한국 태권도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날이었다. 대한태권도협회 중앙도장이 서울특별서 강남구(당시 성동구) 역삼동 산 76번지 구릉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최근의 국기원은 좋지 못한 모양새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건립 당시 국기원은 모든 태권도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었다. 국기원이 없던 시절, 태권도 경기 한번 개최하고자 하면 변변한 장소 하나 찾기도 힘들었다. 대부분 학교 체육관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대회를 진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태권도 전용 수련장과 경기장이 생겼으니 태권도인들에게는 벅찬 감동으로 다가 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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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사이트에서 국기원을 검색하면 ‘1972년 11월 30일 건립된 태권도 수련장’라고 나온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이다. 국기원이란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73년 2월 6일이기 때문이다. 중앙도장이란 명칭이 태권도의 본부라는 상징성과 맞지 않다고 판단, 국기원으로 명칭을 변경한 것이다. 그렇기에 ‘1972년 11월 30일 태권도 중앙도장으로 건립, 1973년 2월 6일 국기원으로 명칭 변경’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건립 당시 국기원은 최고의 건축물이었다. 국기원 설계를 담당했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이광노 교수는 “한국 태권도의 위세를 과시하는 상징적인 모습을 건축에 담고자 한국 고유의 얼이 담긴 청기와를 지붕에 덮고, 태권도 팔괘형에 부합하는 8개의 둥근 기둥을 건물 전명에 배치하는 등 우리 전통무예 도장의 면모를 갖추는 데 주력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격세지감’이라고 했던가. 국기원 건립 당시 논밭이었던 주변은 최첨단 건물들이 들어선, 도쿄와 오사카보다 땅값이 비싸다는 '서울 강남'의 핵심이 됐다. 당당했던 국기원 건물은 고층건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고, 심지어 서울 강남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건물만 초라해졌으면 상관이 없지만 요즘 국기원이 초창기의 권위를 잃어 버린 것 같아 더욱 아쉽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이 있다. 뭐 '죽기 전의 여우'는 아니지만 지금의 국기원, 그리고 태권도인들이 한번쯤 이 사진을 보고 '초심'을 되새길 필요가 있는 듯 싶다. [신준철 기자 / sjc@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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