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엄마와 딸의 예술 여행 가우디 건축을 만나다
오스트리아의 예술가이며 현대 회화 및 건축에 자연 친화적인 영향을 준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의 대규모 전시회가 2011년 우리나라에서 열렸다.
이 전시는 국내에서 열린 전시 중 손꼽힐 만한 수준이었고, 우리 가족은 그의 건축에 매료되어 재미난 유럽 건축물 기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아직 세상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올해 아홉 살인 나의 아름다운 아이에게'커다란 예술'을 보여주고 싶었다.
구엘 공원 풍경. 언덕 위에 있는 공원에서 내려다보는 바르셀로나의 전경과 저 멀리의 지중해 푸른 바다는 여행의 기쁨을 느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느 날 아이가 그림을 보고,"색종이… 마티스 작품이지? 아이스크림 구름, 르네 마그리트다! 엄마~ 내 거, 잭슨 폴락 보다 더 멋지지?" 얘기 하는 순간, '그래! 바로 이거야. 아이가 몸으로 느끼고 기억하는 거!!!' 그래서 우리는 또 떠난다. 꼬마와 함께하는 예술 여행. 아이가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레고를 들고 "나 가우디처럼 만들 거야"라며 어마어마한 대작에 몰두하기를 기대하며, 2013년 드디어 우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구엘 공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불안하게 지어진 인공 석굴을 지나 돌기둥 울타리와 팜 트리까지 자연의 냄새를 물씬 느끼며 걸어서 내려오면, 맞은편엔 가우디의 장식적인 타일로 치장된 구불구불한 의자와 기둥 계단이 주변을 정돈해준다.
난 천재를 정말 사랑한다
가우디, 달리, 미로, 피카소, 고야, 벨라스케스…. 스페인이 낳은 이 천재들 때문에 스페인의 에너지가 무척 궁금했다. 우리가 이번에 스페인을 찾은 목적은 바로 가우디.
그의 건축은 모두가 바르셀로나를 찾는 이유이며, 마드리드보다 바르셀로나에 관광객이 더 많은 이유이다. 장거리 비행에 지친 내 꼬마를 위하여 가볍게 구엘 공원(Park Guell)부터 가본다.
구엘 공원은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간 후 내려오면서 구경하는 것이 힘이 덜 든다고 알려준 어느 현지인의 얘기를 따라 그렇게 움직여본다.
아이는 도착하자마자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같이 비둘기에게 먹이주며, 삼형제인 듯 놀고 있다. 세상의 아이들은 모두 내 친구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당초 스페인 부유층의 전원주택 단지로 계획된 이 공원은 결국 미완성인 채로 남아 지금은 세계인의 휴식처가 되었다. 언덕위의 공원에서 내려다보는 바르셀로나의 전경과 저 멀리의 지중해 푸른 바다는 여행의 기쁨을 느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 바르셀로나~.
선인장 뿌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불안하게 지어진 인공 석굴을 지나 돌기둥 울타리와 팜 트리까지 자연의 냄새를 물씬 느끼며 걸어서 내려오면, 맞은편엔 가우디의 장식적인 타일로 치장된 구불구불한 의자와 기둥 계단이 주변을 정돈해준다.
역시 가우디다.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형태와 색채라는 표현이 딱 맞다. 난데없이 나타난 그리스식 신전 건축물의 규칙적인 기둥을 보자 아이는 자연스레 숨바꼭질 놀이를 시작한다.
그의 건축을 보면서 계속해서 드는 생각인데, 가우디의 생각은 아이들과 가까운 것 같다. 가우디의 후원자인 구엘 백작이 그리스 신화에 심취해 이 건축물이 지어졌다고 한다.
공원 입구의 계단 중앙에는 도마뱀 조각물이 중심을 잡고 서 있다. 아이는 도마뱀과 대화를 나누며 그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한다. 결국 자그마한 도마뱀 한 마리를 데려온다.
그 기념품 가게로 쓰이는 건물 내부는 해피 블루와 은빛 회색의 어울림이 연출하는 색다른 조화가 인상 깊다. 가우디의 건축물이 가지는 공통적인 특징은 곡선으로만 그려졌다는 점이다.
건물 내부와 외부의 모서리, 문짝, 유리창, 담장, 굴뚝 등 건축물의 구성에 직선은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이 자연과 꼭 닮았다. 바르셀로나 시내에 위치한 카사 밀라[Casa Mila, La Pedrera(돌로 만든 산이라는 뜻)로도 알려짐] 역시 물결치는 듯한 곡선으로만 이루어져, 건물을 보고 있노라면 음악이 들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곡선의 복도와 계단을 걸어갈 때는 마치 나비가 된 것처럼 발걸음도 사뿐사뿐해진다. 기분 좋은 건축물이다. 건물의 중앙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타원형 하늘이 보인다.
가우디는 이 건물을 하늘을 담는 액자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건물 내부 각각의 공간들은 마치 벌집처럼 오밀조밀하고, 손가락으로 조물조물 만든 자연스러운 철문은 거미줄을 쳐놓은 듯하다.
가우디의 집안은 대대로 주물 제조를 업으로 삼고 있었다. 가우디는 그 덕분에 공간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얘기하였으며, 그의 건축물에서 철을 주무르듯 다룬 장식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자마자 아이가 옥상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데 마치 조각 공원에서 뛰노는 것 같다. 특히 사람 형상을 한 채 아래를 내려다 보는 모양의 굴뚝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굴뚝을 이리 신경 써서 만든 건축가가 또 있을까? 눈에 잘 띄지 않아 그 기능만 다하면 되는 굴뚝 하나하나도 예술 작품으로 만든 그 발상이 놀랍고, 그 아름다움과 완성도에 한번 더 감탄한다. 산타 할아버지가 좋아할 것 같다.
카사 바트요(Casa Batllo). 이 건물은 가우디가 처음부터 설계한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외관은 해골을 연상하게끔 하는데 내부로 들어서자 가우디식의 반전이 일어난다. 내부는 테라스와 홀, 식당 등 공간의 구성이나 그 꾸밈에 현대적인 아름다움이 넘친다. 계단을 내려오는 손잡이 역시 구불구불 온통 가우디의 곡선이다.
구불구불 온통 가우디의 곡선이다
카사밀라 근처에 위치한 가우디의 또 다른 건축물 카사 바트요(Casa Batllo)에 도착하였다. 매표소의 긴 줄 끝에 서서 다른 여행객들과 대화도 나누고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내 차례가 되자 매표소 직원이 나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방문객 통계를 목적으로 상투적으로 묻는 것인데, 이럴 경우 나는 늘 코리아라고 답했다.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하여 강남에서 왔다고 답하였다. 그러자 매표소 창구 내의 두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일어나서 '강남스타일' 말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싸이의 유명세를 직접 확인하고 덩달아 춤추는 아이와 마주 보며 웃었다. 이후부터는 상점에서건 레스토랑에서건 강남에서 왔다고 말하며 다녔는데, 그러자 스페인 사람들이 말춤으로 반응하고, 한결 더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 같다. 내가 온 곳에 대해 낯선 사람들이 친근감을 느낄 때 그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 건물은 가우디가 처음부터 설계한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외관은 해골을 연상하게끔 하는데 내부로 들어서자 가우디식의 반전이 일어난다.
내부는 테라스와 홀, 식당 등 공간의 구성이나 그 꾸밈에 현대적인 아름다움이 넘친다. 계단을 내려오는 손잡이 역시 구불구불 온통 가우디의 곡선이다. 아이는 궁금한 듯, 아니면 번호 누르는 재미로 건물 구석구석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을 챙겨 들으며 다닌다.
입구에서 나누어 줘서 아이가 끼고 다닌 가면을 보고 있자니, 해골 외관 베란다가 바로 이 가면과 같은 모양이다. 그리고 카사 밀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건물 옥상에는 아름다운 색채의 타일 조각을 이용한 모자이크 장식의 굴뚝과 옥탑이 서 있는데,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이다.
우리는 석양과 더불어 조명아래에서 옥상의 야경을 감상하였는데 동화 속 궁전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가우디의 건축물에는 타일을 이용한 장식이 빈번히 등장한다.
그와 같은 시대에 타일 공장을 운영한 사업가 비센(Vicens)은 가우디가 디자인한 타일을 지속적으로 생산해준 훌륭한 파트너였다. 가우디의 초기 건축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카사 비센(Casa Vicens)이 바로 그의 저택이다.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이 건축물은 현재 개인 소유라 내부는 공개가 되지 않아 외관만 둘러볼 수 있는데 가우디의 초기 타일장식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 건물은 2007년에 2700만 유로, 약 400억원에 매물로 나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비해 부동산 가격 수준이 매우 낮은 스페인이지만, 가우디의 작품이기에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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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에 성당. 성당 외부와는 대조적으로 현대적인 감각을 넘어서는 성당 내부의 장식은 마치 가우디가 미래를 여행하고 와서 만든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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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담고 있는 가우디 건축(구엘 궁전)은 아이에게 더 이상 보통의 건축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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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시내에 위치한 카사 밀라 역시 물결치는 듯한 곡선으로만 이루어져, 건물을 보고 있노라면 음악이 들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이가 조각품을 읽는 게 신통방통하다
다음 날, 건축과 자연과 종교에 심취했던 가우디의 대작. 2세기에 걸쳐 건설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에(Sagrada Familie, 성 가족 성당)를 방문하였다.
하루 종일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감탄사를 쏟아내기는 드문 일인데, 여기 있는 모든 방문객이 같은 모습이다. 가우디는 자연의 것을 완벽히 모방하여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건축 조각가이고, 사그라다 파밀리에는 미래에서 온 예술가의 과거 작품이다.
공사 중인 것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경이로운 이 건축물에 들어선 순간, 아이도 감탄하며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고, 나 역시 세상의 모든 축복을 우리가 고스란히 받는 기분을 느꼈다.
가우디는 인간의 시선과 상상력을 넘어서는 직관을 가지고 있다. 거인이 모래장난으로 세운 고층 아파트 크기의 모래 궁전에, 모래 국물 뚝뚝 흘려 만든 원시적인 이 성당의 겉모습에서 로키 산맥의 암벽 산을 맞닥뜨린 기분이 들었다.
거대한 자연을 마주 하였을 때의 숨막힘이 엄습했고, 성당 앞에 선 자그마한 내가 보잘것없는 모래알 같음이 상기된다. 심장이 쿵쾅거림을 느끼며 내심 아이가 걱정되었는데, 나만큼 충격적이진 않은 듯 보여 다행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림이 글을 대신했던 중세 종교 전파의 전통에서와 같이, 성경에 등장하는 장면과 메시지가 현대적인 조각으로 건물 외벽의 곳곳에 박혀서, 마치 거대한 성경책을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아이와 함께 조각품들을 둘러보며 성경의 장면들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다. "음… 저기 저분이 예수님이지. 오른쪽 옆에 있는 저 사람은 12제자 중 누구일까?" "저 사람은 뭘 하고 있는 거지?" 아이가 조각품을 읽어가는 것이 신통방통하고, 그것을 통해 성경 이야기를 깨우치는 것이 사뭇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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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를 보고 나서부터 공간 만드는 일에 흥미를 갖고 연구 중이다. 입체로 만들기 위한 스케치를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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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 굴뚝. 가우디 도마뱀 주변에 색색의 종이접기로 굴뚝을 만들어 놓았다. 굴뚝을 만들어보겠다더니 그냥 뚝딱뚝딱 접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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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우가 구엘 궁전에서 여행 스케치를 하고 있다. 꿈은 과학자다. 아이에게 예술을 접하는 일은 무척 익숙하다. 아이에게 미술관은 놀이터고, 예술은 놀이다.
자연이라는 기호를 사용한 가우디의 설계
성당 외부와는 대조적으로 현대적인 감각을 넘어서는 성당 내부의 장식은 마치 가우디가 미래를 여행하고 와서 만든 느낌을 준다. 유럽의 여느 도시에서 보아왔던 고딕 성당과는 차원이 다르고, 규모와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상상 이상이다.
천장은 고개를 완전히 들어야만 보일 정도로 높고, 고급스런 상아빛 대리석으로만 장식되어 화려하고 세련되며,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것보다 멋지다. 난생처음 보는 압도하는 규모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보석처럼 반짝거리며 눈부시다.
실내로 쏟아져 들어온 형형색색의 빛 속에 있으니, 고딕 시대의 그들이 느낀 대로 이 아름다운 곳이 천국이 아닐까 싶었다. 지금도 스페인의 후배 건축가들은 가우디의 의도가 왜곡되지 않도록 이 성당을 신중하게 천천히 완성해가고 있다.
10년, 20년, 30년쯤 후에 다시 와도 여전히 미완성일 테지만 진화하는 건축물의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롭겠다는 생각을 하며, 반드시 이곳을 다시 찾으리라 아이와 다짐한다.
엘리베이터로 첨탑 위에 올라가면 첨탑 사이에 좁은 다리를 놓아 옆에 있는 첨탑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이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성당의 모습이 아찔하고 새롭다.
특히 가우디의 여유 있는 위트가 색색의 과일 봉헌 첨탑에서 시각적으로 드러나 있다. 무엇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어마어마한 규모의 모티브가 나뭇잎, 해바라기 꽃, 나무뿌리와 같은 자연의 모습에서 왔다는 점이다.
공사장 인부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로 쓰였던 단층 부속 건물의 지붕 모양을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리드미컬하게 만든 것이 친근하다. 이 부속 건물의 파란 하늘과 노란 문은 고흐의 그림 같기도 하면서 『백설공주』에 나오는 일곱 난쟁이가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자연이라는 기호를 이용한 가우디의 설계는 구엘 궁전(Palau Guell)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자연을 담고 있는 가우디 건축은 아이에게 더 이상 보통의 건축물이 아니다.
아이는 건물을 보고 장미꽃, 해마, 꽃 수술을 찾고, 은행잎을 찾더니 색까지 보이는 것처럼 요란스레 즐거워한다. 단언컨대 이 아이는 또래 중에서 예술을 제일 많이 접한 아이들 중 한 명이다.
가우디의 대단한 건축물이 이 아이에게 어떻게 보여졌을지 내심 궁금하다. 또한 어렸을 때 본 가우디의 건축물을 이 아이가 절대 잊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뿌듯하다. 내가 어렸을 때 이런 걸 보았더라면 좀 다르게 성장하지 않았을까 아쉬움도 느껴진다.
구엘 궁전은 가우디의 후원자이며 조력자인 구엘의 거처였다. 후원자의 거처를 대충 지었을 리 없으니 추측컨대 이 건축물의 완성에는 앞서 보았던 다른 건물보다 더 많은 노력과 자원을 투입했을 게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가 구엘 궁전에 도착했을 때는 가랑비가 오락가락한다. 빗방울이 굵어지면 옥상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 하여 우리는 서둘러 옥상부터 올라갔다.
가우디 스타일의 또 다른 조각 공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여지없이 과일, 무지개색의 타일로 장식된 굴뚝들이, 씨가 박힌 사과 모양의 덩어리가 거인의 식탁 위를 연상하게끔 한다. 그곳을 분주히 다니는 아이가 걱정될 정도다. 혹시나 거인의 손가락이 금방이라도 포도송이를 들 것 같아서.
가우디의 작품은 약 100여 년 전 완성된 건물임에도 어색함이나 부족한 구석을 찾을 수 없다. 가우디 건축을 장식하는 회화적인 색채의 타일 조각. 곡면 위에 타일을 깨서 조각조각 붙였는데 그게 꽤 감각적이다.
대가들이 점 하나만 찍어도 영혼이 담겨 있는 것을 표현하듯이 말이다. 특별한 주제 없이 독특한 색채 형식으로만 만들어 흥미로운 가우디만의 스타일. 후에 이 스타일은 니키 드 생팔, 그 외에 스페인 하면 생각나는 건축의 장식적인 스타일로 자리 잡는다.
아이는 어느새 옥상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굴뚝을 자기 스케치북에 그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아이가 "도마뱀이다!"라고 외치길래 살펴보니 굴뚝 하나에 검은 줄을 따라 달려가는 누런 도마뱀이 붙어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만든 미니어처 조각 같은 이 도마뱀으로 가우디의 익살과 장난스러움을 엿볼 수 있다. 보는 우리도 이렇게 재미있으니, 만든 이는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짐작이 된다.
가우디 건축을 둘러보며 새로움이 시야에 잡힐 때마다 심장이 찌릿찌릿했다. 내가 어렸을 때, 루브르 미술관에서 7일 동안 7시간씩 작품들을 보면서 이런 거 보다 죽어도 좋겠다 싶어 전공을 바꾸어 예술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그 기분을 오랜만에 또 느껴본다.
몸이 충전되고 정신이 힐링된다. 보통 건축을 볼 때는 하늘을 막는 답답함, 콘크리트 냄새부터 나는 딱딱하고 차가움, 그 외엔 '높다' 정도가 건축물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가우디 건축은 다르다. 산, 나무, 하늘, 바다. 이 모든 자연의 언어를 사용하기에, 동시에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었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건축물을 만드는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특별하게 그가 갖고 태어난 열정, 예술성, 조형성, 균형 감각, 조화, 배치가 그의 작품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가우디의 작품을 보면서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려고 노력하기보다 자연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고, 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그런 사람이 되어간다면 갈등과 시기 같은 불필요한 것들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을까?
글쓴이 구아영은
현재 대학에서 미술 이론을 강의하면서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과학기술 앰배서더로 활동하며, 학생 및 일반인에게 과학과 예술의 융합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예술사 자료를 제공하고 국내외 전시를 추천하는 블로그(art.nstory.org)를 운영한다. 세상의 아이들은 밝고 건강하고 자유로울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아이를 존중하는 엄마이기도 하다.
기획_강승민 사진_구아영
여성중앙 2013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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