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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비엔날레 건축전] "내 건축의 토대는 비움"

천하한량 2012. 8. 29. 13:32

한국 유일 초청 건축가 승효상
이번 전시로 건축의 본질 생각… 동양인 초대 적은 건 아쉬워
가장 인상 깊었던 작가는 피터 뫼르킬리와 고트 스캇

"'커먼 그라운드'는 모든 건축가에게 '당신은 건축을 왜 하느냐'는 건축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나조차도 이번에 나의 건축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됐습니다. 건축가들이 거기에 어떤 대답을 내놓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건축가들이 (비엔날레를 통해) 무엇이든 내놓았다는 게 중요합니다."

제13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건축전에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초대받은 건축가 승효상(60)씨는 27일(현지시각) 베네치아 한 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커먼 그라운드'의 의미를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이번에 경기 퇴촌 주택, 경남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등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10개 주택 설계작'을 전시한다.

출품작들과 '커먼 그라운드'의 연관성을 묻자 승씨는 "10개 프로젝트의 공통 주제는 '비움에 관한 구축(構築)'이다. 비움은 우리 건축의 전통적 주제였지만 지금은 서양풍(風)의 영향을 받아 없어져 버렸다. 나는 줄곧 그것의 회복을 주창해 왔고, 그게 내 건축의 '공통의 토대'라고 생각해 선택하게 됐다"고 했다. "모든 터에는 자연이 또는 우리가 살면서 만든 인문적 무늬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데 우리는 지금 집을 만들면서 그 터 무늬를 모두 밀어버리고 있습니다. 터의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지 않으니 들떠 있는 집이 돼버리는 것이죠. 지금이라도 터의 무늬를 밝혀내 곁들여지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지문(地文)'의 건축론이 또한 내 '커먼 그라운드'입니다."

승효상씨의 퇴촌 주택 모형도. 이 집을 다룬 본지의 ‘집이 변한다’ 기사 스크랩이 함께 전시돼 있다. 위 사진은 승효상씨가 설계한 경기 퇴촌 주택. 하얀 박스 7개를 늘어놓은 듯한 모양이다. /신효섭 대중문화부장
올해 비엔날레를 전반적으로 평가해 달라고 하자 승씨는 "대체로 다이내믹한데 몇몇 작가는 늘 그랬듯 주제를 무시하고 자기 프로젝트만 얘기하면서도 큰 공간을 차지했더라"고 꼬집었다. '커미셔너가 동양을 너무 배려하지 않은 점'도 아쉬워했다. 실제 69명의 초대 작가·그룹 중 동양인은 승씨를 비롯해 일본·인도 출신 각 1명 등 3명뿐이다. "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고, 아시아 건축가들의 커먼 그라운드도 다양한데 그 부분이 제대로 내세워지지 않은 겁니다. 나도 그게 기분 나빠 한때 보이콧까지 생각했었죠."

개 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초대 작가를 소개해 달라고 하자 스위스 건축가 피터 뫼르킬리와 '렌조 피아노 워크샵'을 내놓은 영국 건축가 고트 스캇 등을 꼽았다. "뫼르킬리는 자신을 과시하지 않으면서 관람객들을 '사유(思惟)'로 몰아가죠. 스캇 등이 전시한 스케치는 피아노의 프로젝트 과정을 완벽히 담아내 글로 풀어내면 그대로 한 편의 다큐가 될 걸로 보였습니다."

일반 관람객들은 무엇에 감상 포인트를 둬야 할까? "작품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저변에 깔려 있는 건축가의 고민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보세요. 그렇지 않으면 '커먼 그라운드'라는 주제도 놓치기 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