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자료 ▒

그리스의 복수, 세계 경제가 떤다

천하한량 2012. 6. 27. 17:19

그리스는 6월17일 재총선 결과와 상관없이 유로존을 이탈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최근엔 전문가들 역시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을 전제하고 그 여파에 대해서만 의견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결국 관심은 이 사건이 좁게는 유럽연합(EU), 넓게는 세계경제 전반에 어느 정도의 충격을 줄 것인가로 모인다.

어떻게 보면 그리스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EU 부자 나라들의 '위기 극복 대안'이 처음으로 실험된 무대다. 이 대안의 핵심은, 위기 국가의 경제를 살리려면 그 나라에 강력한 재정긴축과 노동시장 개혁(임금 삭감, 노동시장 유연화)을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실험의 희생물이 된 그리스는 2010년 5월과 지난 3월 두 차례에 걸쳐 모두 24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가혹한 재정긴축 프로그램을 강요당했다. 이에는 최저임금 및 연금의 대규모 삭감, 세금 인상, 고용조건 완화, 공무원 해고 등도 포함되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그리스 경제는 긴축 프로그램으로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리스 GDP는 올해 1분기에도 6.5%나 줄어들었다. 불황은 이미 4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경제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은, 돈 벌어 외채를 갚을 능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그래서 그리스에는 외채를 갚기 위해 다시 외채를 빌리고 이에 따라 전체 채무 규모가 계속 증가하는 악순환이 나타난다. 지난 5월 총선의 결과는, 이런 절망적 현실에 대한 그리스 민중의 저항이었다. 긴축 프로그램에 찬성하는 양대 중도 좌우파 정당이 몰락하고 급진 좌파 정당인 시리자가 '긴축 파기'라는 공약을 내걸며 일약 제2당으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그리스 정당들은 정부를 구성하지 못했고 급기야 6·17 재총선을 치르게 됐다. 그리스의 경우, 국회에서 제1당이나 정파연합이 전체 300석 중 151석 이상을 점유하지 못하면 총선을 다시 실시해야 한다. 문제는 긴축 수용파(양대 중도 좌우파 정당)가 이기든 긴축 반대파(시리자 등 급진 좌파)가 이기든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은 불가피해 보인다는 것이다.








ⓒReuter=Newsis 5월3일 아테네에서 신민주당의 사마라스 대표가 연설하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이탈한 그리스, 1~2년 동안 경제 붕괴하겠지만…

만약 시리자가 승리한다면 그리스는 EU와 IMF를 대상으로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다(이 기사는 그리스 재총선에 앞서 작성되었다). 요구 내용은 긴축 중단, 채무상환 기간 연장 등이다. 그러나 독일 메르켈 총리를 중심으로 한 EU 수뇌부는 그리스의 재협상 요구에 대해서 매우 완고한 거부 의사를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결국 사태는 그리스 신정부의 채무상환 거부나 EU 측의 자금 제공 중단으로 치달을 것이고 이는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긴축을 수용한 중도 우파 신민주당이나 중도 좌파 사회당이 정권을 인수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긴축정책이 지속되는 한 그리스 경제의 채무상환 능력은 개선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빚을 갚기 위한 돈을 빌리려고 EU에 계속 손을 벌릴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EU 역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중단할 수밖에 없고, 이는 그리스의 유로존 축출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유로존을 이탈한 그리스는 어떻게 될까? 전문가들은 그리스가 향후 1~2년 동안 파국적인 경제 붕괴에 시달릴 것이라고 내다본다. 유로존을 이탈한 그리스는 예전의 자국 통화 드라크마화를 부활시킬 것이다. 그런데 드라크마화의 통화가치는 유로화에 비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낮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인 < 마켓워치 > 에 따르면, 드라크마화의 가치는 유로화의 50%, 심지어 20% 정도에 그칠 것이다. 이로써 당장 문제되는 것은 그리스 기업, 은행들이 지금까지 유로화로 빌린 부채다. 예컨대 유로화 이탈로 인해 기업과 은행의 부채상환 부담이 2배(드라크마화 가치가 유로화의 50%일 경우)에서 5배(20%일 경우)까지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채무상환이 어려워진 그리스 기업·은행들이 연쇄 도산하면서 이 나라를 지옥처럼 만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IMF는 EU 이탈 첫해에 그리스 GDP가 최소한 10% 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본다.

그러나 지옥 같은 1~2년이 지난 뒤엔 그리스 경제가 급성장할 것으로 보는 예측이 일반적이다. 예컨대 유로화 대비 드라크마화의 가치가 크게 낮은 만큼, 그리스가 수입하는 EU산 제품의 가격이 폭등할 것이다. 이에 따라 그리스인들은 국내 생산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이는 국내 산업의 발전과 고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와 함께 그리스의 수출실적이 크게 개선될 것도 기대된다(수출품 가격이 폭락할 것이므로).

그러나 이 시나리오 역시 어디까지나 '그리스 충격'이 EU와 세계경제의 전반적 위기로까지 이어지지 않을 때 가능한 것이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에 따르면, 그리스는 EU와 회원국 정부들에게 4500억 달러 정도의 빚을 지고 있다. 그리스의 디폴트로 이 정도 규모의 돈이 사라진다는 것은, EU의 금융기관들과 정부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민간은행의 경우, 대출금을 상환받지 못하게 됐다는 것은 이 은행의 재무구조가 그만큼 악화되었다는 의미다. 이런 경우, 금융기관들은 가급적 대출을 피하는 반면 상환 독촉에 나서 신용 위축과 경기 악화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현상이 바로 EU와 회원국 정부들에 대한 신뢰도 저하다.

민간은행보다 더 심각한 정부 신용도

정부는 국채 발행을 통해 민간에서 돈을 빌려 각종 재정사업을 펼친다. 발행한 국채의 만기가 다가오면 다른 국채를 발행해 빚을 상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정부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낮아지면 이전보다 훨씬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국채 매각이 가능하다. 그리고 '높은 금리'는 재정 부담으로 돌아온다. 스페인은 6월9일 100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했으나 고작 3일 후인 6월12일 국채금리(10년 만기)가 유로존 가입 이후 최고 수준인 7%에 육박했다.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투자자들이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를 매입하지 않으면 이 두 나라는 기존 부채를 상환할 수 없어 재정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아가 EU에서 경제규모 3~4위인 양국이 재정위기에 빠지는 경우, 유럽 전반으로 재정위기가 도미노처럼 번질 것이라는 추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다른 EU 국가들로 전염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EU 전체가 전염되면, 전체 교역량 중 EU가 차지하는 비중이 40%인 중국과 미국도 무사할 수 없다. 6월12일 나온 IMF의 한국 컨설팅 보고서는 "한국이 유럽과 직접적으로 금융 거래한 규모는 크지 않다. 그러나 유럽의 금융 취약성이 미국과 중국으로 전염되는 경우 한국 역시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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