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자료 ▒

'밑빠진 독' 스페인 …IMF 외면하면 '디폴트'

천하한량 2012. 6. 1. 19:26

'자산 엑소더스' 심각…석 달 사이 141조 빠져나가
IMF, 스페인 구제금융 여부 신중히 검토 중

[세계파이낸스]'스페인 재정위기'가 점점 심화되면서 자산 엑소더스 현상까지 벌어져 스페인 은행들은 심각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이미 은행들을 구제할 능력을 잃은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만을 바라보는 실정이다.

◆3개월만에 1000억유로 빠져나가…혼란의 도가니

스페인의 거듭 쌓이는 재정적자와 높은 실업률 때문에 각국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스페인중앙은행 집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 스페인에서 유출된 해외투자자금은 총 970억유로(한화 약 141조76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무 서운 속도로 자금이 빠져나가는 '엑소더스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예금이 대규모로 인출되는 '뱅크런'이 일어나면 은행이 망하듯이 국가도 자본의 해외 도피가 가속화되면 극심한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해외 투자자금이 급속도로 빠져나가면서 스페인 마드리드 증시와 채권 가격은 연일 급락세를 시현하고 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스페인 10년물 국채 금리는 연중 최고치를 다시 쓰면서 6.7%에 달해 '마의 7%'에 성큼 다가섰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도 이날 스페인 17개 지방정부 가운데 안달루시아, 아스투리아스, 바스크 등 8곳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이에 앞서 유럽중안은행(ECB)은 스페인 은행권의 4월 소매, 기업 예금이 전월보다 314억4000만유로 감소한 1조6240억유로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유럽 재정위기가 시작된 2010년말 이래 최저수준이다.

IHS 글로벌 인사이트의 라즈 바디아니 이코노미스트는 "스페인의 현재 상황은 아마 더욱 악화됐을 것"이라며 "우리는 더할 수 없이 나쁜 '퍼펙트 스톰'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대규모의 '자산 엑소더스'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스페인 은행들의 부실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특히 최근 국유화된 스페인 3대 은행 방키아의 부실을 메꾸기 위해 총 235억유로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스펙시트(스페인의 유로존 탈퇴)가 현실화되고 지난 2010년 11월 이상의 혼란이 불어닥칠 것"이란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분노한 EU와 ECB, "스페인 정신차려!"


스페인의 상태가 예상 외로 빠르게 악화되면서 유럽연합(EU)과 ECB는 한껏 당황한 눈치다.

무 엇보다 ECB가 각국 은행권의 국채 매입 지원을 위해 가동한 저금리 대출 프로그램(LTRO)의 효과를 잃은 것이 큰 두통거리다. 그간 스페인 은행들은 LTRO 자금으로 스페인 국채를 매입해 정부의 재정적자를 메꿨지만, 외국인 자금이 엄청난 속도로 이탈하면서 더 이상의 국채 매입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때문에 EU와 ECB는 분노의 화살을 스페인 정부에게 돌리고 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EU 이날 스페인 정부에 자국 은행들에 대한 구제 계획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같 은날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유럽 정치 지도자들이 유로존 예금자를 보호하고 은행 부도사태를 막기 위한 '은행동맹(Banking union)' 등 장기 비전을 내놓아야 한다"며 "방키아를 비롯한 유로존 은행 위기 해결의 책임은 ECB가 아닌, 유로존 정부에 있다"고 촉구했다.

드라기 총재는 또 이날 유럽 의회에서 "프랑스와 벨기에 합작은행 덱시아 부실이나 스페인 방키아 부실 규모 등이 예상보다 훨씬 더 크다"며 "은행 부실을 파악하기 위한 평가가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반복되는 등 일하는 방식이 최악"이라고 질타했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여러 국가들이 침소봉대에만 급급한 나머지 은행의 부실을 감추다가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방키아만 해도 스페인 정부는 당초 "45억유로의 구제금융으로 충분하다"고 장담했다가 다시 "190억유로가 더 필요하다"고 밝혀 큰 물의를 일으켰다.

◆믿을 건 IMF뿐


스페인 정부나 ECB에 더 이상의 여력이 없고, 유로안정화기구(ESM)의 은행 직접 지원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단호히 반대하는 가운데, 스페인의 마지막 희망은 IMF뿐인 것으로 사료된다.

이미 소라야 사엔즈 스페인 부총리는 구제금융을 요청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와 티모시 가이너 美 재무장관을 만났다.

스페인에 필요한 돈은 앞서 위기를 일으킨 그리스나 포르투갈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인 것으로 추산된다.

우 선 당장 방키아를 구제하기 위해 190억유로의 자금이 필요하지만, 스페인 정부는 90억유로밖에 없으므로 100억유로를 따로 마련해야 한다. 유로존 소식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스페인의 '자산 엑소더스'가 계속돼 국채가 더 이상 팔리지 않을 경우 향후 수년간 필요한 구제금융 규모는 5000억유로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IMF와 스페인은 일단 구제금융 요청 소식을 일축하는 분위기다.

게 리 라이스 IMF 대변인은 "스페인 부총리와 IMF 총재의 만남은 유로존의 경제 개발을 논의하는 자리"였다며 "스페인의 금융지원과 관련한 어떠한 계획도 짜고 있지 않으며, 스페인 역시 그런 요청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라가르드 IMF 총재도 31일(현지시간) "스페인 구제금융 계획은 없다"고 강하게 부정했다.

루이스 데 긴도스 스페인 재무장관은 "터무니없는 루머"라고 논평했다.

그 러나 주요 외신들의 보도는 "스페인이 이미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IMF는 신중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굳어지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IMF는 스페인의 재정 현황 및 채권 만기 등을 근거로 구제금융 규모를 책정할 전망이다.

IMF는 스페인에게 손을 벌릴까. IMF마저 외면한다면 스펙시트가 일어나고 '자산 엑소더스'가 더 거세게 몰아치면서 은행들은 도미노처럼 쓰러지고, 스페인 정부는 디폴트를 선언할 위험이 높다.

반 대로 구제금융을 제공한다 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EU와의 '재정적자 감축' 약속을 어기고, 올해 1분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나 늘어난 재정적자를 기록했다. 스페인 시민들도 여전히 심각한 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채 '재정 긴축 반대'만을 외치고 있다.

안재성 세계파이낸스 기자 seilen78@segyef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