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은 1910년 9월 부터 헌병 경찰 통치제도 속에 식민지 수탈정책 을 노골적 이며 악랄하게 실시 했다 . 헌병경찰통치
는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 군대통솔권 을 갖고 무소불위 의 압력과 강제수탈정책 을 집행하며 , 온국토 를 입맛대로 분할
훼손하며 동양척식 의 배를 불렸다 . 따라서 민족분열 과 말살 (末殺) , 황국신민화 정책 은 강제징용 으로 인한 노동력착취 와 강제징병제도 , 강제성 을 뛴 지원제도 는 <한반도 > 의 젊은이 들을 전쟁의 총알받이 로 내 몰았고 , 젊은여인들
은 정신대 라는 이름아래 군수공장 과 위안부 로 굴욕스런 삶속에 고통스런 희생을 맞게 했다 .
교육정책 은 친일파 양성 의 일환으로 , 우리의 찬란한 문화 를 평가절하 하여 <한민족 (韓民族)>으로 태어난 것을 부끄럽
게 가르치고 , 민족주의 를 갈등과 분열로 이간 시켜 서로 반목 의 대상이 되도록 교육 시켰다 . 일본 은 을사보호조약 후
1906년 6월부터 야심을 드러내는 조선군사령부 (朝鮮軍司領府) 관사 를 서울 용산 에 준공하고 1910년 9월부터 본격적
으로 헌병 경찰통치 의 주도세력 인 헌병사령부 를 이곳에 설치하니 , 그 위용과 공포는 우리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
(사진은 당시 용산 의 헌병사령부 )
( 철문 사이로 보이는 조선군 사령부관사 (1906년 준공 )
강제징용 으로 징집되어 죽음의 전쟁터 로 아들을 보내는 어머니와 가족들 , 가식적 인 징집축하 <퍼레이드>, 여학생 들을
동원하여 영광스런 입대 처럼 요란하게 호들갑 을 떨었고 , 춘원 <이광수> ,시인 미당 <서정주> 육당 <최남선> 등 많은 친일 인사 들이 OO일보 에 황군 (皇軍)에 영광스런 입대를 찬양 과 권유하는 글을 자랑스럽게 발표하여 그를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씻지못할 오욕 을 남겼다 . 그러나 육당 은 깨진 벼루 의 명 (銘)이란 詩로 뉘우침 과 부끄럼을 불식하는 자기 변호 를 하였다 ,
지원입교(志願入校) 란 말로 강제입교 시킨 소년병 학교 (少年兵學校) 애들도 군사훈련을 받고 아침 조회시간 에 황국신민서사 (皇國臣民誓詞 )를 외어야 했던 어린 아이들 . 황국신민서사 : ( 1 ) 우리는 대일본제국 의 신민 이다 . ( 2 ) 우리는 마음을 합하여 황제폐하 ( 히로히또 일본천황 ) 께 충의 를 다합니다 . ( 3 ) 우리는 인고단련 (忍苦鍛練) 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 ( 황국신민서사 를 외우듯 나도 1950 년대 에 우리의 맹세 를 외우던 때가 생각 난다 . 이때도 친일파 천국 이 었다 . 이때는 일본 의 잔재가 만연했으므로 술집에서 왜놈노래가 심심찮게 흘러 나왔다 . 지금도 왜놈노래를 술취하면 향수에 젖듯 신나게 부르는 유명인사 들이 많다고 한다 . OOO 대통령도 신명나게 불렀다 한다 .
정신대 에 끌려가 위안부 로 굴욕스런 삶을 살았던 가련하고 애처러운 우리의 할머니 들 . 1944 년8월 23일 ,<총독부>는
여자정신대 근무령 을 공포하고 , 만 12세 부터 , 40세 미만의 배후자가 없는 여성 20만 명 을 일본 , 남양 등지로 끌고가
일본군 의 현지 성 노리개 로 희생 시켰다 . 그러나 우리나라의 해괴한 종자 들은 이를 부인한다 .
노동력을 착취 당하는 우리의 부녀자들 , 여기서 만든 물건들은 전량 일본 으로 넘어간다 .
일본 기마병 과 독 을 짊어진 노예 ? < 알렉스 헤일리 >의 뿌리 라는 책속의 흑인노예 와 백인 감독관 을 연상 시킨다 .
독을진 이름없는 우리동포 의 애환은 ? ......다시는 이땅에 이런 비극이 도래해선 안된다 는 교훈을 주는것 같다 .
우측에 얼굴만 보이는 이는 아주 애띤 얼굴이다 . 매국 으로 망하고 친일 로 침략자를 도운자 는 국정 전반
에 참여 해서도 안되고 , 퇴출 이 마땅하나 , 다만 숙연히 참회와 근신과 봉사 로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타당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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