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11.29 03:06
막판 깜짝 등재 성공
치아로 모시를 쪼개고 입술로 실 이어 붙이고… 꼬박 3~4개월 걸려야 완성
이란·아제르바이잔의 카펫과 같은 반열에 올라
치아로 모시를 쪼개고, 입술에 침을 묻혀 이어 붙이고, 무릎으로 삼아 정성으로 짜고….
1500년 동안 우리의 삶 속에서 시원한 바람이 되어준 모시. 소박하면서도 품격 있고 정갈하면서도 화사함이 넘치는 옷감, 한국 여인네들의 인고(忍苦)의 상징인 '한산모시짜기'가 28일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이란·아제르바이잔의 카펫짜기와 같은 반열에 오른 것.
◇막판에 등재 성공
문화재청(청장 김찬)은 이날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계속된 제6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이 등재 신청한 6건 중 택견과 줄타기, 한산모시짜기 등 3건이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고 밝혔다. 특히 택견은 세계 전통무예 중 세계무형유산에 오른 첫 번째 주인공이 됐다.
택견과 줄타기는 이미 예비 심사 단계에서 '등재 권고' 판정을 받아 유네스코 관례상 등재가 확실시됐지만, 한산모시는 예비 심사에서 '정보 보완 권고(등재 보류)' 판정을 받았다가 본회의에서 우리 측의 적극적 설명에 수긍한 위원들에 의해 극적으로 통과됐다.
이로써 한국은 2001년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을 필두로 2003년 판소리, 2005년 강릉단오제, 2009년 강강술래·남사당놀이·영산재·제주 칠머리당영등굿·처용무, 지난해 가곡·대목장·매사냥에 이어 모두 14건에 이르는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한 필의 모시가 태어나기까지
충남 서천군 특산품인 한산모시는 입지 않은 것처럼 가볍고 시원해서 예부터 여름철 옷감으로 각광받았다. '한산모시는 밥 그릇 하나에 모시 한 필이 다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섬세한 것으로 유명해 우리나라 모시의 대명사로 불려왔다.
1500년 동안 우리의 삶 속에서 시원한 바람이 되어준 모시. 소박하면서도 품격 있고 정갈하면서도 화사함이 넘치는 옷감, 한국 여인네들의 인고(忍苦)의 상징인 '한산모시짜기'가 28일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이란·아제르바이잔의 카펫짜기와 같은 반열에 오른 것.
◇막판에 등재 성공
문화재청(청장 김찬)은 이날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계속된 제6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이 등재 신청한 6건 중 택견과 줄타기, 한산모시짜기 등 3건이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고 밝혔다. 특히 택견은 세계 전통무예 중 세계무형유산에 오른 첫 번째 주인공이 됐다.
택견과 줄타기는 이미 예비 심사 단계에서 '등재 권고' 판정을 받아 유네스코 관례상 등재가 확실시됐지만, 한산모시는 예비 심사에서 '정보 보완 권고(등재 보류)' 판정을 받았다가 본회의에서 우리 측의 적극적 설명에 수긍한 위원들에 의해 극적으로 통과됐다.
이로써 한국은 2001년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을 필두로 2003년 판소리, 2005년 강릉단오제, 2009년 강강술래·남사당놀이·영산재·제주 칠머리당영등굿·처용무, 지난해 가곡·대목장·매사냥에 이어 모두 14건에 이르는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한 필의 모시가 태어나기까지
충남 서천군 특산품인 한산모시는 입지 않은 것처럼 가볍고 시원해서 예부터 여름철 옷감으로 각광받았다. '한산모시는 밥 그릇 하나에 모시 한 필이 다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섬세한 것으로 유명해 우리나라 모시의 대명사로 불려왔다.
치아 사이에 넣고 태모시 섬유를 가늘게 쪼개고, 입술로 찢는 전통 방식으로 제조하기 때문에 한산모시는 모시밭에 농약을 쓰지 않는다.
◇"입술 찢어진 고생 보상받은 듯"
"변덕스러운 사람보다 더 변덕스러운 게 모시예요. 바람 불고 날씨가 차면 모시가 먼저 바삭바삭 떨어져요. 덥고 습한 곳에서 모시를 짜야 하니까 예전에는 삼복더위에 부엌에 토굴을 파서 움막을 만들어 그 안에서 모시를 짰어요."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 한산모시짜기 보유자 방연옥(64)씨가 수화기 너머에서 웃었다. 본격적으로 모시짜기를 시작한 지 30년. 한평생 모시를 째느라 이가 닳고, 삼느라 무릎도 다 닳았다. 모시의 고장에서 태어난 방씨는 젖 뗄 무렵부터 모시짜는 어머니의 모습을 봤고 코흘리개 시절부터 자연스레 모시를 접했다.
1960년대 서천에는 모시를 생업으로 하는 집들이 많았다. 여인네들은 밤새 짠 모시를 새벽시장에 내다 팔아 자녀의 학비를 대고, 자식들 시집·장가를 보냈다. 하지만 1970년대 합성섬유의 등장 이후 위기를 맞았고, 이후엔 값싼 중국산 모시에 밀려 우리 전통 모시는 점차 자취를 감췄다.
-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 한산모시짜기 보유자인 방연옥씨가 충남 서천군 한산면 한산모시관에서 모시를 짜고 있다. /연합뉴스
방씨는 입술과 혀에 굳은살이 박였다. "처음에는 입술이 갈라져 부르트고 피가 나 밥도 잘 못 먹었지. 몇 달만 지나면 입술에 굳은살이 박일 정도예요. 치아로 문질러 쪼개니까 이가 닳아지다 못해 조각 나 떨어지더라고."
그렇지만 이렇게 힘들게 완성하면 어떤 천보다 더 시원하고 질겨서 볼수록 감탄하게 된다는 게 방씨의 말이다. 그는 "이제 세계인의 인정을 받은 만큼 기술을 배우는 후학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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