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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동거’였나… 유로존, 해체 기로에 서다

천하한량 2011. 8. 23. 19:40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무너지고 있다. 맨 처음 위기는 이른바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들의 재정 파탄에서 비롯됐다. 여기에다 부채·신용위기로 불거진 미국발 악재를 만나면서 프랑스, 독일 등 탄탄하다고 여겨졌던 국가들이 가세, 유로존 위기는 걷잡을 수 없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반면 각국 수장들은 해결책을 내놓을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유로존은 계속 보조를 해줘야 할 몇몇 국가들을 탈퇴시키느냐 마느냐를 두고 해체 기로에 서 있다.

◇유로존 경제정부 가능성 있을까=지난 16일(현지시간) 파리 엘리제궁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공동경제위원회를 창설하겠다는 합의를 이끌어내며 한 사람을 위원장으로 추천했다.

헤르만 반롬푀이. 벨기에 총리를 역임한 뒤 2009년 12월부터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을 맡고 있다. 유럽 정치통합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리스본 조약이 2009년 12월 정식 발효되면서 새롭게 탄생된 EU의 대통령이다.

리스본 조약은 유럽의 정치통합을 이뤄낸 조약으로 평가받지만 실은 2005년 유럽헌법이 프랑스와 네덜란드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서 이를 대체하기 위해 추진됐다. 당시 유럽헌법이 부결된 이유 중 하나는 10%를 웃도는 높은 실업률이었다. 동유럽의 값싼 노동력이 유입되면 국내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질임금이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따라서 유럽헌법 제정 시도와 그 실패는 국민들의 정서와 괴리된 정치엘리트들만의 통합이라는 시각도 있다. 특히 각국의 경제사정과 정치적 이슈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면서 유럽 자체의 통합이 처음부터 현실적인 한계를 가지는 점도 사실이다.

반롬푀이 상임의장이 공동경제위원장을 맡게 되더라도 정례회의로 국한된 '경제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공동경제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려면 유로본드나 균형재정 실행에 필요한 강력한 정책수단을 마련할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독일과 프랑스가 유로본드 논의에서 한발 물러난 상황에서 유로존의 단일한 움직임은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통합의 꿈 무너지나=1999년 독일과 프랑스가 유로화 도입에 합의한 뒤 유로존이 출범할 때만 해도 11개 회원국은 단꿈에 젖어있었다. 독일과 프랑스 같은 경제 대국들과 넓은 소비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거대한 경제체제를 설립할 것이란 기대에 차 있었다.

2001년부터 올 1월까지 6개국이 추가 가입하면서 그 영역을 더 넓혀 가는 듯했다. 하지만 유로존은 경제 상황이 악화될 때 각국 이해 관계의 대립을 극복하고 정책 협력으로 단일통화 체제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지, 정책 공조가 잘 이뤄질지 비판이 계속됐다. "유럽중앙은행(ECB)이 개입하지 않을 경우 유로화의 하락은 계속될 것이며 심지어 해체될 위험까지도 있다"는 조지 소로스의 2000년 발언에도 그 의미가 녹아있다.

실제 서로 다른 산업구조를 가진 국가가 단일 화폐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을까.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유로존 회원국 간 무역불균형이 심화되면서 경쟁력 격차가 확대됐다. 그리스 등 유로존 변방국들은 저금리로 자금을 빌려 투자와 소비를 늘리면서 수출보다 수입이 증가한 반면, 선진국들은 수출경쟁력을 활용해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이러한 후유증은 몇몇 국가들의 재정위기로 나타났다. 성장률은 순식간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세수가 급격히 줄어들자 공공부채 비중은 위험수위를 넘었다. 수출을 늘리기 위한 환율정책도 단일통화체제 하에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었다. 이렇게 누적된 재정적자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더욱 심각해졌고, PIIGS국가들은 유로존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2009년 아일랜드는 246억 유로의 재정적자로 파산 직전에 이르기도 했다.

◇뜨거운 감자 유로본드(유로존 공동채권)=유로본드를 둘러싼 논란은 사분오열하는 유로존의 현 상황을 더욱 분명하게 해준다. 유로본드가 도입되면 회원국들이 단일채권 발행자가 된다. 따라서 재정위기를 겪는 국가들은 현재의 비용보다 훨씬 저렴하게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4400억 유로 규모의 유럽재정안정기금(EFSF)만으로는 유로존의 채무를 해결할 수 없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의 채무문제를 해결할 경우만 해도 최소 3조 달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유로본드 도입의 근거는 확실해졌지만 열쇠를 쥐고 있는 독일은 완고하다. 독일의 경우 유로본드를 발행하면 국채 금리가 현재보다 상승하기 때문에 국내총생산(GDP)의 1.9%에 해당하는 비용을 더 부담해야 한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지난 20일 "재정정책을 집단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면 단일 수준의 금리를 가질 수 없다"면서 "문제는 정치적 통합을 점차 키워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도 전날 르 피가로에 기고문을 보내 "일부에서 마치 만병통치약인 양 유로본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며 "(유로본드가) 프랑스 국채 가격을 높이고 AAA 신용등급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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