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자료 ▒

스페인 청년층 절반이 백수…"돈키호테처럼 위기로 치달아"

천하한량 2010. 2. 23. 05:51
■ '글로벌 경제위기 시한폭탄' 스페인 가보니…
폭탄세일 문구에도 찾는 사람 없어
관광객 발길도 끊겨 상인들 한숨만
정부 온갖 노력에도 시장반응 냉담
"침체골 깊어지면 지구촌 재앙 우려"

"제 친구들 가운데 절반 정도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놀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스페인 제2의 도시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광장 인근 바에서 일하고 있는 호세 게레라스(23)에게 "스페인 경기가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그는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들었다.

게레라스는 "지난해 말부터 경기가 급격히 하락세를 보이면서 실업률이 치솟고 있다"며 "근무기간이 1년 이상 된 실업자에게 45일치의 실업수당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업주들도 고용을 꺼리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포르투갈ㆍ이탈리아ㆍ그리스와 함께 글로벌 경제위기의 진앙지로 지목되고 있는 스페인의 경제상황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엘파스 등 현지 언론들은 스페인이 마치 풍차를 보고 돌진하는 '돈키호테'처럼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을 정도다.

스페인을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문제는 실업. 유로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스페인의 청년실업률(25세 미만)은 45%에 육박해 유럽연합(EU) 평균(20%)의 두 배가 넘는다. 25세 이상 실업률도 20%를 넘었다. 일부에서는 실업률이 25%에 이른다는 추정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스페인의 경제성장률은 -3.6%로 10년여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문제는 상황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바르셀로나 최고 번화가인 람블라스 거리의 상가마다 50% 이상 할인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 있지만 막상 가게에 들러 상품을 구입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한산한 분위기였다.

의류 매장의 한 종업원은 "지난해 말부터 경기가 나빠지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좀처럼 열지 않고 있는데다 최근에는 관광객들의 발길도 예전 같지 않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에 따라 스페인 대표 주가지수인 아이벡스35는 19일 1만676.7을 기록하면서 연초 대비 10% 이상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스페인을 '유럽의 시한폭탄'으로 보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그리스가 침체에 빠질 경우 이는 그리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유로존의 문제가 될 것"이라며 "여기에 스페인마저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 (유로존의 차원을 넘어) 재앙과 같은 상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총리를 비롯한 스페인 정부는 일단 위기의 불을 끄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스페인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2%에 육박하는 재정적자를 낮추기 위해 15년 만기 국채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스페인은 만기채권 상환 및 재정적자 보전을 위해 올해 970억유로를 차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파테로 총리는 "오는 2013년까지 500억유로(680억달러), 올해에는 50억유로의 지출을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엘레나 살가도 스페인 재무장관은 "스페인은 그리스가 관여한 파생상품 거래와 유사한 방식의 파생상품 거래를 하지 않았다"면서 "재정적자 규모를 2013년까지 GDP의 11.4%에서 3%까지 낮추겠다"고 강조했다.

호세 블랑코 스페인 공보장관은 "국제 투기꾼들과 언론들이 스페인 재정위기를 부풀리고 있다"면서 "투기꾼들은 유로화 공격을 그만둬야 하며 해외언론들도 종말론적 글쓰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보면서 10년여 전 아시아에 불어닥친 경제위기를 애써 외면하려 했던 한국 등의 대응이 문득 떠올랐다.

이 같은 스페인 정부의 대응에 전문가들의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 스페인 경제ㆍ노동 전문가들은 "아무도 스페인의 경제위기에 현실적이지 않다"면서 "특히 노동시장이 과잉보호되면서 비용부담이 과도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고 비평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스페인의 위기는 국가재정보다는 성장 가능성의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단기적인 위기를 모면하는 차원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스페인 주요 노조들은 정부의 복지축소와 재정긴축에 항의하면서 지역별로 파업을 선언했다. 스페인의 위기가 해결되기는커녕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바르셀로나=최인철기자 michel@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