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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中秋)에 초야(初夜)에는 흐리다가 중야(中夜)에는 달이 대낮처럼 밝았다. 달구경 하러 나가지 못한 것을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별수 없이 내년이나 기다리기로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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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흐려서 서쪽 동산 나갈 생각도 못했는데 / 陰濃不擬赴西園
취한 꿈속에 달빛이 문에 가득할 줄 알았으랴 / 酣夢那知月滿門
베개를 괸 한 마음은 하늘땅처럼 넓건마는 / 枕上一心天地闊
시를 짓는 귀밑머리는 눈서리처럼 하얗도다 / 詩中雙鬢雪霜繁
오늘도 변함없이 약 방아 찧는 옥토끼요 / 依依玉兔弄藥杵
술잔에 떠서 넘실거릴 환한 은빛 물결이라 / 炯炯銀波浮酒尊
진솔한 사람들의 모임 특별히 못 열어 한스러워 / 恨不特開眞率會
우리네 인생 백년 세월 물처럼 빨리도 내닫건만 / 百年光景似川奔
옛날에 항아가 요란한 세상 잘도 도망쳤다는데 / 萬古姮娥善避喧
구천의 바람과 이슬 속에 흔적도 없이 말끔하군 / 九天風露淨無痕
구름이 홀연히 가린 것도 사람을 희롱하려는 듯 / 浮雲忽掩如相祟
노경에 무료한 이 사람은 원망을 또 할 수밖에 / 老境無聊亦甚冤
이광의 불봉을 나는 스스로 부끄러워하노니 / 李廣不封吾自愧
자방의 지족을 세상에서 그 누가 알아주랴 / 子房知足世誰尊
국화꽃 필 때 산에 오를 약속이 다행히 있으니 / 黃花幸有登高約
늘그막에 내린 성상의 은혜 조용히 보답하련다 / 晚景從容答聖恩
[주D-001]옛날에 …… 도망쳤다는데 : 후예(后羿)가 서왕모(西王母)에게서 불사약을 얻었는데, 그가 미처 복용하기도 전에 후예의 처인 항아(姮娥)가 몰래 훔쳐 먹고는 달로 도망쳐서 월선(月仙)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淮南子 覽冥訓》
[주D-002]이광(李廣)의 불봉(不封) : 실 력이 있는데도 임금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불우한 처지를 뜻하는 말이다. 이광은 한(漢)나라의 명장(名將)으로, 흉노(匈奴)를 격파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 그의 부하 장수들 모두가 제후로 봉해지는 상황에서도 정작 그만은 그러한 은총을 받지 못했으므로, 운명의 탓으로 돌리면서 탄식을 금하지 못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09 李將軍列傳》
[주D-003]자방(子房)의 지족(知足) : 세 상의 권세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혼자서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는 것을 말한다. 자방은 한(漢)나라 창업의 삼걸(三傑) 중 한 사람인 장량(張良)의 자(字)이다. 고조(高祖)가 그를 특별히 후대하려는 것도 거절한 채 그저 조그마한 유(留) 땅에 봉해지는 것으로 만족하였는데, 《사기(史記)》 권55 유후세가(留侯世家)에 “지금 세 치의 혀를 가지고 임금의 스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만호에 봉해지고 열후의 지위에 올랐으니, 이는 포의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영광으로서 나에게는 이미 충분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제는 인간 세상의 일을 버리고 적송자를 따라 노닐고 싶다.[今以三寸舌 爲帝者師 封萬戶 位列侯 此布衣之極 於良足矣 願棄人間事 欲從赤松子遊耳]”라는 장량의 말이 나온다.
유항(柳巷) 선생이 쌍청(雙淸) 안공(安公)에게 함께 가서 밤에 얘기나 나누자고 나를 불렀는데, 내가 눈병 때문에 사양하고는 시 한 수를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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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뼈로는 노천의 누대에 앉기 어렵고 / 病骨難於坐露臺
희미한 촛불도 흐린 내 눈 시기를 할 터 / 燭花應與眼花猜
쌍청정 위에는 민수처럼 술이 넘치리니 / 雙淸亭上如澠酒
달 속의 은두꺼비도 옥 술잔에 잠겼겠네 / 空想銀蟾浸玉杯
[주D-001]쌍청정(雙淸亭) …… 넘치리니 : 호 가 쌍청당(雙淸堂)인 안종원(安宗源)의 누대 위에 오늘 밤 술과 안주가 풍성하게 마련되었으리라는 말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 소공(昭公) 12년 조(條)에 “술은 민수(澠水)처럼 그득하고, 고기는 언덕처럼 쌓였다.[有酒如澠 有肉如陵]”라는 말이 나온다.
곡주(谷州)의 새 누각에 대한 기문(記文)을 짓고 나서 한 수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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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 산중에 숨어 있는 곡주 고을 / 谷州藏在萬山中
통행하는 외길도 뱀처럼 구불구불 / 詰曲蛇行道路通
고색창연하게 고목은 연무에 잠겨 있고 / 老木蒼煙形勢古
그림과 같다 할까 절벽에는 폭포로세 / 飛泉翠壁畫圖同
평지에는 사신들 영접하는 공관이요 / 一區華館當平地
반공 중엔 우뚝 백 척의 새 누각이라 / 百尺新樓倚半空
부끄럽네 순리열전에 전해질 재주도 없으면서 / 頗愧無才傳循吏
기문 썼다고 몽당붓 쥐고 시로 또 읊다니 원 / 强拈敗筆錄微功
[주C-001]곡주(谷州)의 …… 기문(記文) : 이 기문은 《목은문고》 제3권에 〈곡주(谷州) 공관(公館)의 새 누각에 대한 기문〉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
외출하려 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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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하려고 동복 불러 길 말랐나 보게 하고 / 欲出呼僮候路乾
쑥대머리 또 빗질하며 의관을 가다듬노매라 / 更梳蓬鬢整衣冠
하늘과 땅도 깨끗해라 가을 모습 조촐하고 / 乾坤淨麗秋容淡
바람과 해도 청랑해라 새벽 기운 썰렁하네 / 風日淸姸曉氣寒
높은 하늘만 봉황이 뛰어노는 줄 아시는가 / 不獨赤霄偏躍鳳
푸른 대에도 난곡이 서 있는 줄을 알아야지 / 須知翠竹好停鸞
거하루에 몸 부친 것이 나에게 얼마나 다행인고 / 托身自幸居何陋
기자가 당년에 구한에 와서 백성을 교화시켰느니 / 箕子當年化九韓
[주D-001]높은 …… 알아야지 : 중 국에만 한유(韓愈)와 같은 대문장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고려에도 그에 못지않은 인물이 있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은근히 목은의 자부심을 표출한 말이다. 이한(李漢)의 〈창려문집서(昌黎文集序)〉에 “한유의 문장이 기이하기로는 교룡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듯하고, 성대하기로는 범과 봉황이 뛰어노니는 듯하다.[詭然而蛟龍翔 蔚然而虎鳳躍]”라는 말이 나오고, 한유의 〈전중소감 마군 묘명(殿中少監馬君墓銘)〉에 “마군은 푸른 대와 벽오동에 난새와 고니가 우뚝 멈춰 서 있는 것 같았다.[翠竹碧梧 鸞鵠停峙]”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거하루(居何陋)에 …… 교화시켰느니 : 우 리 동방은 기자(箕子)의 교화를 받은 곳으로 일찍부터 군자의 나라라고 일컬어졌기 때문에, 공자 역시 동방에 와서 살고 싶다고 하였으니,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목은 자신도 행운이라는 뜻의 표현이다. 공자가 구이(九夷) 즉 동이족(東夷族)의 지역에서 살고 싶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누추한 곳이라고 걱정을 하니, “군자가 살고 있다면 그 땅이 누추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君子居之 何陋之有]”라고 대답하였는데, 본문의 ‘거하루’는 이 고사를 압축해서 우리나라라는 뜻으로 표현한 것이다. 《論語子罕》
유 대언(柳代言)의 부인 원씨(元氏)에 대한 만사(挽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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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씨는 북원의 대성이요 / 北原元大姓
유씨는 서해의 명문 집안 / 西海柳名家
일찍 홀몸 되어 심신은 고달팠어도 / 早寡身心苦
후손 많이 두어 벌열 가문 빛냈어라 / 多孫閥閱華
앞산은 가로놓여 새벽 햇빛 떠돌고 / 山橫浮曙日
바람은 솔솔 불어 아침노을 흩는 때 / 風細散朝霞
머리 돌려 바라보나니 여강의 상류 / 回首驪江上
돌아갈 하나의 길 아스라이 비껴 있네 / 迢迢一路斜
[주D-001]북원(北原) : 원주(原州)의 옛 이름이다.
[주D-002]서해(西海) : 서해도(西海道) 즉 황해도를 가리킨다.
기쁨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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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삼사사도 근래에 그만둔 데 이어 / 判三司事近來休
순군 만호후를 또 면하게 되었도다 / 又免巡軍萬戶侯
마음 고요히 기심 잊고 일상생활을 즐기면서 / 心靜忘機爲日用
몸도 가벼이 아무 탈 없이 소요유를 누리리라 / 身輕無累便天游
죄수 심문이 진실을 캐냈다 감히 보장하랴 / 問囚敢保眞情見
봉록 지급도 넉넉히 하기가 본래 어려웠더니라 / 給祿誠難本敷周
부끄러워라 우쭐거리며 잔뜩 위세 부리면서 / 愧殺揚揚逞威勢
흰머리로 뛰어다니며 땀만 흠뻑 흘렸으니 / 白頭奔走汗交流
경상도(慶尙道)의 안렴사(按廉使)로 나가는 여 총랑(呂摠郞)의 시권(詩卷)에 제(題)하다. 여 총랑의 이름은 칭(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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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고통 극심한 동남쪽 지방이요 / 民瘼東南甚
쓸쓸하게 초목도 지는 가을철이로세 / 蕭條草木秋
기쁘도다 그대가 단단히 마음 가다듬어 / 喜君方銳意
나의 시름을 조금이나마 덜게 해 주니 / 使我得寬憂
곳곳마다 용마루에 연무가 일어나고 / 處處煙生棟
고을마다 밝은 달빛 누대에 가득한 곳 / 州州月滿樓
선정 베풀고 즐긴 옛사람의 그 풍류를 / 古人行樂耳
오늘날 다시 이을 사람이 또 누구일까 / 誰復繼風流
유항(柳巷)이 비문을 쓰려고 떠날 적에 나는 몸이 고단해서 따라가지 못하였다. 이에 슬픈 생각이 들어서 여덟 구의 시를 지어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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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명 받들고 신도비를 쓰려고 떠나는데 / 奉勅去書神道碑
한 자루 염필만이 혼자서 따라가는구나 / 一枝恬筆獨相隨
맑고 고운 산천처럼 걸림이 없는 마음이요 / 山川淨麗心無累
훨훨 나는 난봉처럼 절로 기이한 필체로세 / 鸞鳳翶翔體自奇
온 세상에 이 늙은이 받아 줄 사람 없는 때에 / 擧世無人容老物
공만은 새 시 지어 나에게 화답을 허용한다오 / 唯公許我和新詩
얼굴 서로 못 보면 하루가 삼추 같은 분 / 分離一日三秋似
절뚝절뚝 지팡이 짚고 얼른 뒤쫓아갈거나 / 策蹇扶衰便往追
[주D-001]염필(恬筆) : 모필(毛筆)의 별칭이다. 진(秦)나라 장군 몽염(蒙恬)이 토끼털을 죽관(竹管)에 묶어서 처음으로 붓을 만들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반록(頒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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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에 또 봉군으로 지위와 명망 높여 주고 / 兩府封君位望尊
특별히 백미 내려 남다른 은총을 보이셨네 / 特頒白米示殊恩
오늘날 문교를 숭상하여 교화를 드높이시는데 / 右文此日方崇化
양로와 걸언은 어느 해에 또 보여 주실는지 / 養老何年更乞言
빈객의 음식 대접으론 모자란 점이 있다 해도 / 縱欠鮮醲及賓客
자손들 배불리 먹이는 은혜 잊어선 안 되리라 / 須知饜飫在兒孫
단지 시소가 마음에 걸려 면목이 없는지라 / 只因尸素心懷恥
여강 언덕 위의 마을 앉아서 자꾸 생각하네 / 坐想驪江岸上村
백발이 되도록 단심으로 지존을 받들어 모셨거니 / 白髮丹心奉至尊
어찌 한 그릇 밥이라도 은혜를 감히 잊었으리오 / 何曾一飯敢忘恩
뱀으로 착각한 병이리니 숭덕할 줄 알아야 하고 / 病成蛇執知崇德
늙은 몸 호의와 흡사하니 함부로 말을 말아야지 / 老似狐疑不放言
과거 급제가 두 아들뿐이라서 조금 유감스럽다만 / 稍恨登科唯二子
학업을 닦는 손자들 있으니 그런 중에도 기쁘다네 / 猶欣就學有諸孫
우리 집안이 지키는 것은 찬 얼음과 쓴 소태 / 吾家所守氷兼蘗
적적한 유거로 말한다면 유촌보다도 더하다오 / 寂寂幽居大類村
[주D-001]양부(兩府)에 …… 높여 주고 : 《목 은문고》 제5권 〈소재기(疏齋記)〉에 “양부(兩府)의 관직을 향유하고 문형(文衡)을 두 번이나 쥐었는가 하면, 병들어 있으면서도 군(君)의 봉작(封爵)을 받고 그 녹(祿)을 받아 먹은 것이 또 5년이나 되어 간다.”는 말이 나온다.
[주D-002]양로(養老)와 걸언(乞言) : 옛날에 임금이 나이 많고 덕이 높은 원로들에게 때때로 술과 음식을 대접하면서 그들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것을 말하는데,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와 내칙(內則)에 이 내용이 나온다.
[주D-003]시소(尸素) : 시위소찬(尸位素餐)의 준말로, 자격도 없는 사람이 벼슬자리만 차지하고서 국록만 축내고 있다는 뜻의 겸사(謙辭)이다.
[주D-004]백발이 …… 잊었으리오 : 국 가에 충성하는 마음으로 노년이 되도록 임금을 모셔 오면서, 조그마한 은혜를 받아도 일찍이 잊은 적이 없는데, 하물며 녹봉을 반급(頒給)받는 오늘에 있어서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느냐는 뜻이다. 한(漢)나라의 충신 소무(蘇武)가 흉노(匈奴)의 선우(單于)에게 사신으로 가서 절개를 굽히지 않고 19년 동안 머물다 돌아 올 적에 머리카락이 온통 하얗게 변했다는 고사가 《한서(漢書)》 권54 이광전(李廣傳)에 전하는데, 이를 소재로 한 당(唐)나라 두목(杜牧)의 시에 “양 치고 말을 몰며 오랑캐 옷은 입었어도, 백발이 되도록 그 단심은 모두 한나라 신하였네.[牧羊驅馬雖戎服 白髮丹心盡漢臣]”라는 구절이 나온다. 《樊川詩集 卷2 河湟》 또 한(漢)나라 창업의 삼걸(三傑) 중 한 사람인 한신(韓信)이 가난할 때 얻어 먹은 밥 한 그릇의 은혜를 나중에 천금(千金)으로 갚아 주었던 ‘일반천금(一飯千金)’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주D-005]뱀으로 …… 말아야지 : 목 은이 그동안 조정에서 소외감을 느끼면서 마음속으로 갖가지 의혹을 품고 번민과 갈등을 겪기도 하였으나, 이 모두가 착각과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는 만큼, 공자가 말한 대로 자기의 덕을 증진해 나아가야 할 것이요, 멋대로 불평을 늘어놓으면 안 될 것이라는 뜻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후한(後漢) 두선(杜宣)이 술잔 속에 비친 활 그림자를 뱀으로 착각하고 술을 마신 뒤에 기분이 언짢은 나머지 복통을 일으켰다가 진상을 알고서 쾌유했다는 ‘배궁사영(杯弓蛇影)’의 고사가 전한다. 《風俗通義怪神》 공자의 제자 자장(子張)과 번지(樊遲)가 숭덕(崇德) 즉 자신의 덕을 어떻게 하면 높여서 증진시킬 수 있는지 묻자, 공자가 대답해 준 말이 《논어(論語)》 안연(顔淵)에 나온다. 호의(狐疑)는 여우가 의심이 많다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쓸데없이 자꾸만 의심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6]과거 급제가 …… 유감스럽다만 : 대 를 이어 삼 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한 순흥 안씨(順興安氏) 집안의 화려한 명성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먼저 안축(安軸), 안보(安輔), 안집(安輯) 삼 형제가 등과(登科)한 뒤를 이어, 안축의 차남인 안종원(安宗源)의 아들 삼 형제가 등과하였는데, 특히 안종원은 목은과 신사년 진사시(進士試)에 함께 입격한 인연이 있다.
[주D-007]우리 …… 소태 : 목 은의 가풍은 청백(淸白)을 숭상한다는 말이다. 보통 곤궁한 속에서도 굳게 절조를 지키며 청고(淸苦)하게 사는 것을 비유할 때 “차가운 얼음물을 마시고 쓰디 쓴 소태를 씹는다.[含氷茹蘗]”는 뜻으로 빙벽(氷蘗)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주D-008]적적한 …… 더하다오 : 가 난하기는 하지만, 적적하고 그윽한 곳에 거처를 정하고 사는 감회를 읊은 두보(杜甫)의 그 집보다도 목은이 사는 곳이 더욱 정취가 있다는 말이다. 유촌(類村)은 두보의 “가난한 내 집은 마을 주위의 담장 같은데, 성 남쪽 망루 가까이 외진 곳에 있다오.[貧居類村塢 僻近城南樓]”라는 시구에서 유래한 것이다. 《杜少陵詩集 卷3 夏日李公見訪》 또 《목은시고》 제19권 〈즉사(卽事)〉에 “병중의 그윽한 생활 조용하기만, 마을 담장 같은 집이 푸른 산 자락 기댔어라.[病裏幽居靜 類村依翠微]”라는 표현이 또 보인다.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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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가 사람 기분 들뜨게 하고 / 鳥聲悅人意
새벽 창에 맑은 햇빛 젖어 드는 때 / 曉窓含淸暉
향을 사르며 오뚝하게 앉아 있나니 / 焚香兀然坐
마른 육신엔 솜옷이 그저 그만일세 / 瘦體宜綿衣
얼굴 씻고 머리 빗을 생각도 없이 / 無心盥以櫛
그동안 잘못한 일들이 부끄럽기만 / 只愧前日非
거취를 곧장 결정하려 하다가도 / 便欲決去就
행동에 옮길 때는 다시금 머뭇머뭇 / 欲動還依違
사람이 백이 숙제 아닌 다음에야 / 人非夷與齊
누가 서산의 고사리를 캐 먹을까 / 孰採西山薇
강동으로 돌아간 길손 있었다는데 / 江東有歸客
더구나 지금은 농어가 살졌음에랴 / 況今鱸魚肥
그만두게 그만두게 세상을 좇는 일은 / 止止莫趨世
세상길엔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까 / 世路多危機
[주D-001]사람이 …… 먹을까 : 백 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은(殷)나라 고죽군(孤竹君)의 아들인데, 주 무왕(周武王)이 은나라를 정벌하자 주나라 곡식을 먹는 것을 수치로 여기고는, 서산(西山) 즉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서 채미가(采薇歌)를 부르며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굶어 죽은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61 伯夷列傳》
[주D-002]강동(江東)으로 …… 살졌음에랴 : 진 (晉)나라 장한(張翰)이 낙양(洛陽)에서 벼슬살이를 하다가, 어느 날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의 순챗국[蒪菜羮]과 농어회(鱸魚膾) 생각이 나서 곧장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했던 고사가 있는데, 그가 오군(吳郡) 출신이기 때문에 강동 보병(江東步兵)으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世說新語 識鑑》
길창군(吉昌君)을 모시고 따라가서 칠원(漆原) 시중(侍中)을 배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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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옛 노인 된 우리 칠원 시중 / 漆原今故老
팔순의 연세에도 더욱 강건하시기만 / 八秩更强康
햇빛이 비취니 빛나는 기운이 떠돌고 / 日照浮光氣
바람이 불어오니 술 향기가 발산하네 / 風來散酒香
신선의 집이 어찌 하늘 위에만 있으리요 / 仙家非上界
부처의 정토가 바로 여기 서방에 있는걸 / 佛境卽西方
동자가 자주 말석에 끼일 수 있는 것은 / 童子頻隅坐
길창이 손 잡고 끌어 준 은혜 덕분일세 / 提携荷吉昌
삼가 듣건대 다음 달에 대가(大駕)가 남경(南京)으로 거둥하신다고 하였는데, 나는 맡은 관직이 없어서 호종(扈從)하는 반열에 끼일 수가 없기에, 슬픈 생각이 들어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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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운의 흥망성쇠 정밀하게 계산하니 / 國運興衰算得精
태평의 가기가 남경에 서려 있다네요 / 太平佳氣在南京
신하들은 분사로 떠날 기대에 부풀었건마는 / 羣賢摠望分司去
나만 유독 호가하는 행렬에 끼일 길이 없네 / 獨我無由扈駕行
궁궐을 안아 줄 듯 우뚝 솟은 화산이요 / 屹屹華山將抱闕
성곽을 에워쌀 듯 넘실거리는 한강이라 / 滔滔漢水欲環城
인화와 지리와 천시가 모두 갖추어졌으니 / 人和地利天時具
구태여 은하 쏟아 갑병 씻을 것 있으리오 / 何待銀河洗甲兵
[주D-001]분사(分司) : 나라에 특별한 일이 발생했을 때 도성 이외의 다른 지방에 임시로 설치하는 관아를 말한다.
[주D-002]화산(華山) : 삼각산(三角山)의 별칭이다.
[주D-003]인화(人和)와 …… 갖추어졌으니 : 《맹 자(孟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천시보다는 지리가 낫고, 지리보다는 인화가 낫다.[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라는 말과, “따라서 군자가 싸우지 않는다면 몰라도 일단 싸우면 반드시 승리한다.[故君子有不戰 戰必勝]”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4]구태여 …… 있으리오 :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소재로 지은 두보(杜甫)의 시에 “어떡하면 장사를 구해 은하수를 끌어다가, 갑옷 무기 깨끗이 씻어 길이 쓰지 않게 할까.[安得壯士挽天河 淨洗甲兵長不用]”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6 洗兵行》
임 동년(任同年)이 농원(農園)의 각종 채소를 보내 주었기에 우스개로 절구(絶句)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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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가 문에서 응하는 말 허황되지 않나니 / 奴婢應門語不虛
수염 멋진 임공을 포 상서라고 부르는구먼 / 髥任喚作匏尙書
지금 또 나를 턱 빠지게 웃게 해 주려고 / 如今更使吾頤脫
어느 곳의 원정이 채소를 보내 주셨는고 / 何處園丁送菜蔬
듣자니 교외의 저택이 보현사와 가까운데 / 聞說郊居近普賢
깊은 가을날 시냇가에 해화가 깜박인다고요 / 秋深蟹火傍溪邊
병든 몸이라 게를 잡으러 찾아가지 못한 채 / 病軀不得相尋去
성남의 달빛 가득한 하늘 앉아서 생각한다오 / 坐想城南月滿天
[주D-001]노비가 …… 부르는구먼 : 목 은과 동년인 임희좌(任希座)가 전에 박을 보내 준 적이 있으므로, 노비가 익살을 부리며 바가지[匏] 상서 댁에서 왔다고 목은에게 전갈했다는 말이다. 《목은시고》 제16권에 〈동년 임희좌가 박을 보내 주다.[同年任希座以匏見惠]〉라는 제목으로 재미있게 지은 장시(長詩)가 수록되어 있다.
[주D-002]해화(蟹火) : 게를 잡을 때 유인하기 위해 켜놓는 등불을 말한다.
옴[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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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와 땅이 졸지에 새로 바뀌었으니 / 風土乍云異
몸과 마음이 어떻게 안정을 얻으리요 / 身心何得安
기의 운행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면 / 氣行如不順
피부가 곧장 그 영향을 받게 마련인 법 / 膚受便相干
새 발톱으로 긁어도 오히려 무딜 텐데 / 鳥爪爬猶鈍
균수로 긁으려니 더욱 어려울 수밖에 / 龜手刮更難
밤새도록 가려워서 잠을 이루지 못했으니 / 終宵耿無夢
피가 간으로 흐르지 못할까 염려스러워라 / 恐阻血歸盰
[주D-001]새 발톱 : 마 치 새의 발톱처럼 길고 날카롭게 자라난 사람의 손톱을 말한다. 한 환제(漢桓帝) 때 선녀 마고(麻姑)가 신선 왕방평(王方平)을 만났을 때, 마고의 손톱이 새 발톱[鳥爪]과 같은 것을 채경(蔡經)이 보고는, 저 손톱으로 가려운 등을 긁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가, 왕방평에게 간파당하여 채찍으로 얻어 맞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神仙傳 麻姑》
[주D-002]균수(龜手) : 마치 거북의 등딱지처럼 얼어서 터진 뭉툭한 손을 말한다.
[주D-003]밤새도록 …… 염려스러워라 : 밤 에 잠을 자지 못한 후유증으로 건강에 이상이 생길까 걱정된다는 말이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 “사람이 누우면 피가 간으로 돌아 흐른다.[人臥 血歸肝]”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해설에 “사람이 누워서 피가 간으로 흘러야만, 눈과 발과 손과 손가락 등이 각각 그 피를 받아서 보고 걷고 쥐고 당길 수가 있는 것이다.[人臥血歸於肝 眼受血而能視 足受血而能步 掌受血而能握 指受血而能攝]”라고 하였다. 《類說 卷37》 또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8에 “사람이 잠을 잘 적에는 혈기가 모두 안으로 모여드니, 예를 들면 피가 간으로 흐르는 따위와 같다.[人寐時血氣皆聚於內 如血歸肝之類]” 하였고, 그 주(註)에 “지금 사람들이 잠을 이루지 못해서 간을 상하는 경우가 많다.[今人不睡者多損肝]” 하였으며, 《역경몽인(易經蒙引)》 권3 상(上)의 수괘(隨卦)를 해설한 대목에 “의서에서도 지적하고 있지만, 사람이 삼경에 이르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면, 피가 간으로 흐르지 못한 나머지 얼굴색이 청황색으로 변하고 낮 동안의 일도 자연히 정신이 없게 된다.[醫書敎人到三更不睡則血不歸肝而面色靑黃 日間所事自無精神矣]”라는 말이 나온다.
엄천(嚴川)에 머물고 있는 혜생(惠生) 승통(僧統)을 전송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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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불이 상대를 비난한 지 오래됐는데 / 儒釋相非久
누가 알까 나만은 친하게 지내는 것을 / 誰知我獨親
종적이야 비록 부처의 제자라 하더라도 / 跡雖爲佛子
마음으론 인간의 윤리 저버리지 않는걸 / 心不廢人倫
흐르는 세월 속에 고즈넉한 훤당이요 / 歲月萱堂靜
구름 낀 산에는 새로 지은 감우로세 / 雲山紺宇新
강론하는 틈틈이 자주 정성을 한다면 / 講餘時定省
풍속을 순박하게 되돌릴 수 있으리라 / 風俗想還淳
[주D-001]훤당(萱堂) : 혜생의 모친이 있는 집을 말한다.
[주D-002]감우(紺宇) : 불교 사원의 별칭으로, 감원(紺園) 혹은 감전(紺殿)이라고도 한다.
[주D-003]정성(定省) : 혼 정신성(昏定晨省)의 준말로, 어버이를 제대로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에 “자식된 자는 어버이에 대해서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 드려야 하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살펴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 인사를 올려야 한다.[冬溫而夏凊 昏定而晨省]”라는 말이 나온다.
환암(幻菴)에게 급히 써서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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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면서 서로들 만나기도 어렵다니 / 垂老難相會
덧없는 우리 인생 자유스럽지 못하구려 / 浮生不自由
예전에 맺은 약속 어떻게 내던지고 / 可能違素約
차마 맑은 놀이 저버릴 수 있으리까 / 而忍負淸遊
세월은 물과 같이 무심하게 흘러가고 / 歲月如流水
강산은 저무는 가을빛 띠려는 이때 / 江山欲暮秋
우리 공이 석장을 한번 날려 주신다면 / 公無靳飛錫
나도 조각배 타고 얼른 뵈러 가리이다 / 我亦上扁舟
유 밀직(柳密直)이 경사(京師)로 떠나는데, 나는 마침 몸이 고단해서 교외에 나아가 전송을 하지 못한 채 시 한 수만 지어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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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조해서 천자도 일찍 이름을 아시는 분 / 入朝天子早知名
다시 표문 받들고서 금릉으로 떠나시네 / 又向金陵奉表行
예로부터 대신은 위기를 잘 극복하였나니 / 自古大臣能濟險
지금은 모든 일이 지영에 달렸다 하리로다 / 於今萬事在持盈
창명의 물결 잠잠해라 하늘이 활짝 열렸으니 / 滄溟浪靜天何闊
양곡의 구름 걷히고 태양이 새롭게 비치리라 / 暘谷雲收日更新
정료위(定遼衛) 지나가다 보면 기쁜 기색 넘치겠지 / 道過定遼多喜色
사해의 수레와 문자 모두 태평을 누리게 됐으니까 / 車書四海共昇平
[주D-001]예로부터 …… 하리로다 : 명 (明)나라가 이제는 천하를 통일한 이상 창업(創業)할 때처럼 무력(武力) 등 강압적인 방식을 취하지 말고, 문교(文敎)에 바탕을 두고서 수성(守成)에 힘쓰도록 외교적 역량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지영(持盈)은 《노자(老子)》 9장에 나오는 말로, 이미 성취한 대업을 잘 보전하며 지키는 것을 뜻한다.
[주D-002]창명(滄溟)의 …… 비치리라 : 명 태조(明太祖)가 어지러웠던 중원을 평정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니, 고려도 이제 명나라가 주도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차츰 적응하며 안정을 되찾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창명은 대해(大海)의 뜻으로 중원을 가리키고, 양곡(暘谷)은 해 뜨는 동방이라는 뜻으로 고려를 가리킨다.
[주D-003]사해(四海)의 …… 됐으니까 : 명 나라의 문화권에 속하게 되어 앞으로 똑같은 교화와 혜택을 받게 되었다는 말이다. 《중용장구(中庸章句)》에 “지금 천하가 통일되어 수레는 바퀴의 치수를 똑같이 하고 글은 문자를 똑같이 하고 있다.[今天下 車同軌 書同文]”라는 말이 나온다.
서린(西隣)의 자제인 판서(判書)가 술과 음식을 올렸는데, 공이 나를 참석하도록 불렀으므로 실컷 먹고 마신 뒤에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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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간의 정이 서로 어우러진 곳이요 / 慈孝交相處
그다지 어렵거나 위태롭지 않은 때라 / 艱危未甚時
맛있는 요리는 비자 식탁에 그득하고 / 嘉殽堆棐案
맛 좋은 술은 황금 술잔에 넘치도다 / 美酒滿金巵
처마 끝엔 스며드는 푸른 산 빛이요 / 簷際山光入
뜨락 구석엔 옮겨 가는 해 그림자라 / 庭隅日影移
취해서 돌아오니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 醉歸多感激
태평 시대 만난 것이 정말 다행이로세 / 幸値大平期
느낀 바가 있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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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창에서 읊으려다 두려운 생각 들었나니 / 曉窓吟可畏
지붕 위에 가을 서리 듬뿍 내렸기 때문이라 / 瓦上秋霜繁
바깥에선 참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귀고 / 外面鳥雀噪
안에서는 아이들이 신나게도 떠드는데 / 內間童稚喧
머리칼이 눈 내린 듯한 늙은 이 몸은 / 老翁鬢如雪
존귀하신 천군을 마주 대하고 앉았노라 / 對越天君尊
천군은 뭇 이치를 밝고 밝게 분석하고 / 明明分衆理
넓고 넓은 세계의 근원을 찾아내거니와 / 浩浩窮大原
동할 때와 정할 때가 있는 줄도 익히 알아 / 素諳動有靜
조즉존의 도리를 새로이 점검해 보노라니 / 新檢操則存
어느 존재마다 하나의 태극을 지니고서 / 物物一太極
천지 음양의 문 안으로 들어가고 있더이다 / 往入乾坤門
[주D-001]천군(天君) : 마음의 별칭이다. 《순자(荀子)》 천론(天論)에 “마음이 가운데 빈 자리에 거하면서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다스리는 까닭에 마음을 하늘 임금님이라고 하는 것이다.[心居中虛 以治五官 夫是之謂天君]”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조즉존(操則存)의 도리 : 마 음의 속성을 말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붙잡으면 있다가도 놓아 버리면 없어지고, 일정한 때가 없이 들락날락하면서 어디로 가는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 이것이 바로 마음의 속성이다.[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라는 공자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주D-003]어느 …… 있더이다 : 《목 은문고》 제10권 〈중영설(仲英說)〉에 “내가 살펴보건대, 조수(鳥獸)나 초목들도 각자 하나의 태극[一太極]을 구비하고 있다. 동물 가운데 양(陽)의 기운을 얻은 것은 수컷이 되고, 식물 가운데 양의 기운을 얻은 것은 꽃이 되는데, 수컷이 있고 난 다음에야 암컷이 그 정기(精氣)를 받을 수가 있고, 꽃이 있고 난 다음에야 열매가 그 결실을 맺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큰 화기(和氣)를 서로 보전하고 합쳐서 곧고 굳은 결과로 돌아가기 때문에, 만물이 생겨나고 자라는 이치가 끝없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또 이른바 ‘일태극(一太極)’ 설은 송대(宋代) 성리학(性理學)의 ‘이일분수(理一分殊)’ 사상과 직결되는데, 참고로 《주자어류(朱子語類)》 권94에 “물건마다 하나의 태극을 지니고 있고, 사람마다 하나의 태극을 지니고 있다.[物物有一太極 人人有一太極]”라는 주희(朱熹)의 명제(命題)가 나오고, 《근사록(近思錄)》 권1 도체(道體) 〈태극도설(太極圖說)〉 부분에 “만물이 하나의 태극이다.[萬物一太極]”라는 말과 “하나의 존재 속에 하나의 태극이 각각 구비되어 있다.[一物各具一太極]”라는 말이 주희의 주석으로 나와 있다.
아자(我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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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가을만 되면 흥취가 넉넉한데 / 我自饒秋興
그 누구와 밤까지 노닐어 볼 수 있을거나 / 誰其共夜遊
달이 훤히 밝으니 술잔을 들어도 좋겠고 / 月明宜對酒
산이 마음에 드니 누대에 올라도 괜찮겠네 / 山好可登樓
일생 동안 노력한 일 구름장처럼 얇은데 / 業業如雲薄
무심한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만 가는구나 / 光陰與水流
가련하기도 하여라 정절 도 선생이여 / 可憐陶靖節
자연의 변화 따라 장차 멈출 걸 탄식하니 / 乘化歎行休
[주D-001]가련하기도 …… 탄식하니 : 목 은이 정절(靖節) 선생으로 존칭되는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가탁해서 자신의 처지를 탄식한 말이다. 〈귀거래사〉 중에 “만물이 제때를 만난 것을 부러워하며, 내 인생 장차 멈출 것을 느꺼워하노라.[善萬物之得時 感吾生之行休]”라는 말이 나오고, 맨 마지막에 “자연의 변화 따라 죽음으로 돌아갈지니, 주어진 천명 즐길 뿐 또 무엇을 의심하랴.[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라는 말이 나온다.
서린(西隣)에게 봉정(奉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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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고 붉은 꽃들이 꿈속에 아직도 아련한데 / 白白朱朱一夢餘
성 가득 꾀꼬리 소리 벌써 녹음의 계절일세 / 滿城黃鳥綠陰初
짙은 구름에 비는 안 오고 남창만 어둑어둑 / 密雲不雨南牕暗
책상 위의 농사 책들 먼지만 덮어쓰고 있네 / 床上塵棲種樹書
장단만 맞춘 조정의 일이 부끄럽기만 하오마는 / 唯唯都堂愧有餘
괜히 나라를 걱정하는 생각은 또 처음과 같소 / 憂君閑念又如初
썩은 선비가 어느 날에나 회포를 풀 수 있을까요 / 腐儒何日寬懷抱
그동안 글 읽기 좋아한 것이 정말 유감이오그려 / 恨殺從前嗜讀書
비 내린 뒤에 강변의 도롱이 쓴 어부 생각 / 江上漁簑想雨餘
이 몸이 직접 해 보는 건 벼슬을 그만둬야 / 身親只在掛冠初
하늘이 과연 내 소망을 들어 줄지 어떨지 / 未知天意從吾否
날이면 날마다 점 책만 들여다 보고 있다오 / 日日搜求卜筮書
[주D-001]비 …… 생각 : 《목은시고》 제32권 〈즉사(卽事)〉에 “긴 휘파람 불 곳이 끝내 없기야 하겠는가, 여흥 강변 도롱이 쓴 어부가 사는 그곳.[畢竟豈無長嘯處 驪興江上一漁簑]”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느껴지는 점이 있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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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께서는 외아들인 나 하나만 두셨는데 / 稼亭遺體獨吾存
하늘이 세 아들 주어 결혼까지 마쳤도다 / 天賜三男又畢婚
문장이야 대대로 전하게 할 수 있으랴만 / 豈有文章傳再世
청백의 가풍만은 자손들에게 물려줘야지 / 只將淸白遺諸孫
가을 모습 조촐하고 하늘 모습 엄숙하며 / 秋容淨麗天容肅
새벽 빛깔 분명하고 태양 빛깔 온화하네 / 曉色分明日色溫
만물의 생성이 끊임없이 계속 이어지리니 / 萬物生成終不已
위대하도다 만물을 내는 건원의 그 덕이여 / 大哉資始有乾元
[주D-001]세 아들 : 목은의 아들인 종덕(種德), 종학(種學), 종선(種善)을 말한다.
[주D-002]위대하도다 …… 덕이여 : 《주역(周易)》 건괘(乾卦) 단사(彖辭)에 “위대하도다 건원이여, 만물이 여기에서 나오나니, 이에 하늘의 일을 총괄하도다.[大哉乾元萬物資始 乃統天]”라는 말이 나온다.
술회(述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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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동파의 시를 좋아하는 것은 / 我愛東坡詩
호기가 티끌세상 초월했기 때문 / 豪氣超塵寰
지금도 계속해서 읊고 있다 보니 / 至今吟不休
아침부터 빙그레 웃음이 번졌다오 / 朝來微破顔
아이들 시집 장가 다 보낸 뒤에 / 願言畢婚嫁
손 잡고 명산에서 놀고 싶다나요 / 携手遊名山
이 구절은 날 위해 내놓은 것인 듯도 / 此句爲我發
심목간에 그 모습 선하게 떠오르네 / 瞭然心目間
명산은 방방곡곡 어디에나 있나니 / 名山在在是
새 나는 저쪽 쫑긋 솟은 안개 낀 산들 / 鳥外抽煙鬟
절로 높고 낮은 푸른 산봉우리 사이로 / 靑嶂自高下
흰구름이 때때로 갔다가 또 돌아오네 / 白雲時往還
귀찮은 세상일들 모두 날려 보낸 뒤에 / 世累已遣盡
몸도 홀가분하게 걸리는 일 하나 없이 / 身輕無所關
낙엽을 태워 백석을 구워서 먹는다면 / 拾葉煮白石
귀밑머리 센 것이야 걱정할 게 있으리오 / 何憂雙鬢斑
다만 걱정은 원래 조물이 하는 일이 / 但念造物者
사람에게 인색하게 구는 일이 많은 만큼 / 於人多所慳
나의 이 소원을 끝내 들어주지 않아 / 志願果遂否
나를 더욱 마음 아프게 하진 않을지 / 益使吾痌癏
그런 일은 놔두고서 더 이상 얘기하지 말게 / 置之勿復道
우선은 마음 놓고 한가히 지내면 될 것이니 / 且放神心閑
[주D-001]아이들 …… 싶다나요 : 소 식(蘇軾)의 시에 “십 년 동안 명산을 유람하면서, 산속에서 입을 옷을 스스로 만들었네. 바라건대 아이들 시집 장가 보낸 뒤에, 푸른 산에서 손 잡고 늙어 갔으면.[十載游名山 自製山中衣 願言畢婚嫁 携手老翠微]”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20 游淨居寺》
[주D-002]백석(白石) : 신선이 먹는 양식이라고 한다. 전설상의 고대 선인(仙人)인 백석(白石) 선생이 백석산에 살면서 항상 백석을 구워 먹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神仙傳卷2》
아이들이 서린(西隣)의 밤을 주워 왔기에 시 한 수를 지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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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밤이 우리 집 마당에 떨어졌는지라 / 西家栗子落東家
새벽부터 아이들이 신나서 떠들어 대는구나 / 童稚凌晨笑語譁
앉아서 놀리는 하얀 살은 눈을 뭉쳐 놓은 듯 / 坐玩素肌疑聚雪
벗겨 낸 빨간 껍질은 날리는 노을과 흡사해라 / 剝殘丹殼似飛霞
두보의 뜨락 적적하니 목은을 부러워할 만도 / 杜園寂寂牧堪羨
재아의 전율이란 대답 부끄럽게도 엉뚱했네 / 宰社遙遙戰可羞
내가 보아도 우스워라 늙은이 하는 일도 없이 / 自笑老翁無所事
곧장 화롯불 돋구면서 다시 입맛만 다시다니 / 旋添爐火更磨牙
[주D-001]두보(杜甫)의 …… 만도 : 두 보가 살림이 어려워서 밤을 주워 먹으며 살았던 때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신당서(新唐書)》 권201 두보열전에 “진주에서 객지 생활을 할 적에는 직접 땔나무를 하고 상수리와 밤을 주워 먹으며 살기도 하였다.[客秦州 負薪採橡栗自給]”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재아(宰我)의 …… 엉뚱했네 : 노 (魯)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의 제자 재아에게 토지신을 모시는 사(社)에 심는 나무에 대해서 물었을 때, ‘주나라 왕조에서 밤나무를 심은 것은 백성들을 전율시키려 한 것[周人以栗 曰使民戰栗]’이라고 대답했다가 공자에게 꾸지람을 당한 고사가 있다. 《論語 八佾》
삼가 주상 전하께서 동쪽 교외에 거둥하여 성렴(省斂)하시는 날을 만났는데도 나는 병으로 따라갈 수가 없기에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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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힘든 농사일에 상이 관심을 기울여서 / 南畝艱難軫上心
깊은 가을날 동교에 나가 성렴을 하시는 때 / 東郊省斂屬秋深
소호가 절하며 조정에 바친 일 찬송만 할 뿐 / 頌思虎拜呈文陛
송골매 날듯 우림을 빛낼 가망이 전혀 없어라 / 望絶鷹揚耀羽林
수 많은 벼는 하늘에 잇닿아 광야에 깔려 있고 / 多稼際天鋪廣野
조각구름은 해를 가려 엷은 그림자 희롱하네 / 斷雲遮日弄輕陰
지금은 바로 갑옷과 병기 미리 닦곤 하는 시기 / 政當克詰戎兵際
훈풍이 순금에 드는 날을 다시 기대해 보노라 / 更待薰風入舜琴
[주C-001]성렴(省斂) : 임금이 농촌 들녘에 나가서 추수의 상황을 점검하는 행사를 말한다.
[주D-001]소호(召虎)가 …… 없어라 : 소 호나 태공 망(太公望)처럼 국가에 큰 공을 세워서 왕의 덕을 칭송하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만, 이젠 늙고 병들어서 그럴 가능성은 없어지고 말았다는 뜻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소호는 주 선왕(周宣王)의 명을 받고 회이(淮夷)를 평정한 소목공(召穆公)으로, 《시경(詩經)》 대아(大雅) 강한(江漢)에 “소호가 엎드려 절하고 천자의 만년을 빌었다.[虎拜稽首 天子萬年]”라는 말과 “소호가 엎드려 절하고 임금님의 아름다운 명을 선양했다.[虎拜稽首 對揚王休]”라는 말이 나온다. 태공 망은 주 무왕(周武王)을 도와 은(殷)나라를 멸망시킨 여상(呂尙)으로, 《시경》 대아 대명(大明)에 “태사인 태공 망이 마치 송골매가 날듯, 무왕을 도와 상나라를 정벌하니, 회전(會戰)하는 그 아침은 맑고 밝았네.[維師尙父 時維鷹揚 涼彼武王 肆伐大商 會朝淸明]”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지금은 …… 기대해 보노라 : 보 통 이 시절에는 임금이 사냥을 즐기곤 하였는데, 지금은 그 대신 백성의 농사일을 보살피고 있으니, 앞으로 어진 임금이 될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뜻의 기대 섞인 표현이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입정(立政)에 “너의 갑옷과 병기를 사전에 제대로 닦아 두어야 한다.[其克詰爾戎兵]”라는 말이 나오는데, 보통 임금의 사냥을 비유할 때 이 말을 인용하곤 한다. 또 순(舜) 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어 남풍가(南風歌)를 부르면서 “훈훈한 남쪽 바람이여, 우리 백성의 수심을 풀어 주기를. 제때에 부는 남풍이여, 우리 백성의 재산을 늘려 주기를.[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이라고 기원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禮記 樂記》
다병(多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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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많으니 소외쯤은 감수해야지 / 多病甘疏慢
쇠년에는 물러나 쉬어야 하고말고 / 衰年可退休
잡초만 우거진 저녁의 시골 마을이요 / 草荒鄕井暮
구름도 끊어진 가을의 고향 산천이라 / 雲斷海山秋
필묵과 그런대로 서로 의지할 만하니 / 筆硯聊相托
가난이야 걱정하고 말 것이 있으리오 / 簞瓢不足憂
다만 가련한 것은 먹을 약이 떨어져서 / 只憐無藥物
느닷없이 남에게 구하는 나의 꼬락서니 / 倉卒向人求
삼가 상상해 보건대 교외에 설치한 행궁의 하늘이 맑게 개었으니 성상이 마음속으로 즐거워하는 가운데 무신(武臣)들이 환희 용약하며 하나의 기예를 바치려 생각할 것이라고 여겨졌다. 이에 내가 병중(病中)에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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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하고 빗질하고 남창에 기댄 백발옹이 / 盥櫛南窓白髮翁
두 눈 들어 행궁의 하늘 멀리 바라보노라 / 便將雙目望行宮
임금님 수레 위엔 찬란한 아침 햇살이요 / 已知出日臨黃屋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말끔한 창공이라 / 不見飛雲點碧空
무관은 부대 나눠 기예를 한창 선보이고 / 分隊材官方獻技
재상은 백관 인솔하고 충성을 바치겠지 / 押班時宰共推忠
용안이 기뻐하더라고 시신이 알려 주겠지만 / 侍臣相報天顔喜
장양부의 묘한 표현은 누가 배울 수 있을는지 / 誰學長楊賦語工
[주D-001]장양부(長楊賦)의 …… 있을는지 : 사 냥을 좋아하며 국사를 소홀히 하는 왕에게 완곡한 표현으로 시문을 지어 올려 바른 길로 이끌 사람이 과연 있겠느냐는 말이다. 장양(長楊)은 장안(長安) 부근에 있는 궁궐 이름으로 황제가 사냥할 때 머물곤 하였는데, 한(漢)나라 양웅(揚雄)이 성제(成帝)에게 장양부를 지어 올리면서 겉으로는 황제를 한껏 추어올리면서도 사실은 묘하게 기교를 부려 심각하게 풍간(諷諫)을 했던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87下揚雄傳》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구름이 하늘을 가득 뒤덮은 가운데 성긴 빗방울이 몇 점 떨어지기에 내가 매우 걱정하였는데, 몇 시간이 지나자 햇빛이 구름을 뚫고 새어 나왔으므로, 매우 기뻐서 또 한 수를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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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의도는 아득해서 알기 어렵나니 / 天公用意杳難知
삽시간에 흐렸다 개었다 변화막측일세 / 頃刻陰晴變化奇
빗방울 오락가락하며 번갯불 번쩍거리더니 / 雨點去來仍電掣
햇빛 새어 나오면서 구름도 옮겨 가는구먼 / 日光穿漏見雲移
제때에 성렴하실 일로 한창 걱정을 하는 중에 / 及時省斂憂方殷
비물이 포주를 채우리니 예를 제대로 지키겠네 / 備物充庖禮不虧
백성들 얼굴에 흔연히 모두 기쁜 빛 있으리니 / 擧有欣欣然喜色
노신도 덩달아 흥을 내어 홀로 시를 읊는다오 / 老臣乘興獨吟詩
[주D-001]제때에 …… 지키겠네 : 임 금이 언제나 성렴을 할까 걱정하고 있는 중에서도, 사냥을 해서 임금의 주방은 채우게 될 것이니, 그것은 그런대로 다행이라는 뜻의 풍자 섞인 표현이다. 또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천자나 제후가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경우에는, 1년 중 봄과 가을, 겨울 등 세 차례에 걸쳐 사냥을 한다. 사냥을 하는 첫째 목적은 마른 고기를 만들어 종묘의 제사에 쓰기 위함이고, 둘째 목적은 빈객을 접대하기 위함이며, 셋째 목적은 임금의 포주(庖廚)를 채우기 위함이다.[天子諸侯無事則歲三田 一爲乾豆 二爲賓客 三爲充君之庖]”라는 말이 나온다. 비물(備物)은 임금이 위의(威儀)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물품을 말한다.
[주D-002]백성들 …… 있으리니 : 어진 임금이 사냥하는 모습을 백성들이 보게 되면, 사냥도 건강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좋게 평가하면서, 모두들 얼굴에 흔연히 기쁜 빛을 띨 것[擧欣欣然有喜色]이라는 말이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나온다.
송산(松山) 가는 도중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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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타고 오르나니 산 정상까지 / 騎馬登山頂
아슬아슬 비탈길 구름 속으로 / 緣雲坂甚危
공을 굴리는 듯한 날은 아니라 할지라도 / 雖非丸走日
죽순을 캐던 때보다는 그래도 낫군그래 / 猶勝笋采時
우주는 장막을 걷은 듯 활짝 펼쳐지고 / 宇宙如褰幙
여염은 바둑판을 펴 놓은 듯 올망졸망 / 閭閻似布棊
가슴속의 이 회포를 누구에게 말하리오 / 有懷誰與語
나 개인을 위한 생각만은 아니련마는 / 不獨爲吾私
안 죽성(安竹城)을 만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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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에 창백한 얼굴 둘 다 병든 늙은이 / 白髮蒼顔兩病翁
곡봉 높은 곳에서 홀연히 서로들 만났어라 / 鵠峯高處忽相逢
나이는 많고 적은 차이가 있다 해도 / 年齡縱是分高下
기미는 세상 인심 섞일 틈이 없어라 / 氣味無由雜淡濃
강해의 서쪽 남쪽으론 큰 들판이 이어지고 / 江海西南連大野
송백의 좌측 우측으론 산들바람이 일어나네 / 松杉左右起微風
노년에 시대 걱정 가장 많은 줄 누가 알까 / 誰知老境憂時最
사는 열에 하나요 아홉은 공적인 근심인걸 / 一爲吾私九爲公
소나무 아래에서 음복(飮福)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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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과 향이 똑같구나 두 아들이 빚어 온 술 / 兩郞家釀色香同
진한 술맛 천연이라 안색도 다시 살아날 듯 / 醇味天然欲逞容
복 많이들 받으라고 아손에게 나눠 주며 / 分與兒孫流楅慶
햇빛 비치는 푸른 솔을 때때로 쳐다보네 / 時看白日照靑松
광평 영문하(廣平領門下)와 권 길창(權吉昌)과 정 월성(鄭月城)과 강 평장(康平章)과 이 광양(李光陽)과 김 동산(金洞山)과 밀직(密直) 조림(趙琳)을 배행(陪行)하여 동문 밖에서 대가(大駕)를 영접한 뒤에 돌아와 홀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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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묵은 남쪽 교외에 딱다기 소리 울리면서 / 信宿南郊虎柝鳴
사냥터 하늘 밝을 때까지 무관들 치달렸으렷다 / 材官馳突及天明
도성 백성은 발돋움하여 기마 행렬을 바라보고 / 都人跂望瞻廻騎
나라의 원로는 시생을 이끌고 달려가서 맞았다네 / 國老趨迎引侍生
종고와 우모에 기쁜 기색이 우러나오나니 / 鍾鼓羽旄生悅豫
산천과 일월도 태평의 기상을 띠고 있구나 / 山川日月寫昇平
하지만 어떡하지 추수할 곡식이 별로 없어 / 只憐壟畝稀秋實
쌀 구걸하는 글자가 삐뚤어질까 걱정되니 / 乞米先愁字不精
[주D-001]종고(鍾鼓)와 …… 우러나오나니 : 종 고는 종과 북으로 임금의 음악을 뜻하고, 우모(羽旄)는 깃털로 장식한 임금의 깃발을 말하는데, 어진 임금의 행차를 보고서 백성들이 기뻐할 것이라는 말이다. 임금 혼자서 즐길 경우에는 백성들이 종고 소리를 듣고 우모를 보면 이마를 찌푸리며 골머리를 앓는 반면에, 임금이 백성들과 함께 즐기면 백성들이 똑같은 종고 소리를 듣고 똑같은 우모를 보면서도 기쁜 기색이 얼굴에 가득 나타나게 마련이라는 말이 나온다. 《孟子 梁惠王下》
[주D-002]하지만 …… 걱정되니 : 백 성들의 고단한 농사일은 살피려 하지 않고 사냥만 즐기는 왕을 은근히 풍자한 말이다. 당(唐)나라 안진경(顔眞卿)이 이 태보(李太保)에게 “생계를 꾸리는 데에 졸렬해서 온 집안이 몇 달 동안 죽만 먹고 있는데 지금은 그것마저 다 떨어지고 말았다.[拙於生事 擧家食粥 來而數月 今又罄竭]”라는 내용으로 편지를 보내면서 쌀을 구걸한 이른바 ‘걸미첩(乞米帖)’의 고사가 있는데, 안진경이 서법(書法)의 대가(大家)로서 명필이기 때문에 목은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顔魯公集 卷11 書帖》 참고로 《목은시고》 제11권 〈즉사(卽事)〉에 “곤궁한 생활 버텨 낼 힘은 아직 남아 있다마는, 때때로 쌀 구걸할 때 글자가 삐딱한 것이 걱정.[只有固窮餘力在 時時乞米字橫斜]”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쇠잔한 인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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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잔한 인생 아무래도 돌아가야 할까봐 / 殘生萬事不如歸
강과 바다 처량하고 풀과 나무도 드문드문 / 江海淒涼草木稀
깊이 숨을 만한 곳은 바로 천암 만학이요 / 萬壑千巖深可隱
담담하게 사귈 벗은 바로 청풍명월이라 / 淸風明月淡相隨
안인 정도가 어떻게 추흥을 알 수 있으리오 / 安仁豈足知秋興
정절쯤 되어야 작비를 깨달을 수 있고말고 / 靖節元能悟昨非
상로가 하늘 가득하고 송국이 고즈넉한 이때 / 霜露滿天松菊靜
늘그막에도 꾀 내는 사심을 못 잊으니 가련해라 / 自憐垂老未忘機
[주D-001]천암 만학(千巖萬壑) : 신 선이 사는 동천(洞天)처럼 인적이 끊어진 곳을 말하는데, 진(晉)나라 고개지(顧愷之)가 회계(會稽)의 산수를 설명하면서 “일천 바위는 빼어남을 경쟁하고, 일만 골짜기는 다투어 물이 흘러간다.[千巖競秀 萬壑爭流]”라고 말했던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92 顧愷之列傳》
[주D-002]청풍명월(淸風明月) : 오 래 사귀어도 변하지 않는 자연과 같은 벗을 비유한 것이다. 남조(南朝) 시대 양(梁)나라의 사혜(謝譓)가 잡된 손님은 일체 자기 집에 오지 못하게 하면서, 이따금씩 홀로 술을 마시고 취하고 나면 “내 방에는 단지 맑은 바람만 들어오고, 오직 밝은 달을 대하며 술을 마실 뿐이다.[入吾室者 但有淸風 對吾飮者 唯當明月]”라고 말했던 고사가 있다. 《南史 卷20 謝弘微列傳 謝譓》
[주D-003]안인(安仁) …… 있으리오 : 안 인은 진(晉)나라 반악(潘岳)의 자(字)이다. 〈추흥부(秋興賦)〉는 그의 사부(詞賦) 중에서도 명작으로 꼽히는데, 다만 그가 나이 32세 때에 벌써 흰머리가 돋기 시작해서 이 글을 짓게 되었다는 말이 그 서문에 나오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4]정절(靖節)쯤 …… 있고말고 : 정절(靖節) 선생으로 존경을 받은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길을 잘못 들어섰어도 멀리 벗어나지는 않았나니, 지금이 옳고 예전에는 잘못된 것을 깨닫겠네.[寔迷途其未遠 覺今是而昨非]”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 동년(朱同年)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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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림이 매우 얕다면 곡주는 매우 깊은 곳 / 西林甚淺谷州深
늘그막엔 방촌의 마음 편안하게 해야지요 / 垂老欲安方寸心
아직도 고향 산천이 항상 꿈속에 보이건만 / 尙有鄕山長入夢
그저 바람과 구름 따라 매번 시로만 읊는다오 / 只因風月每成吟
당년에는 준족으로 그림자도 남기지 않으셨는데 / 當年逸足不留影
오늘날 슬프게 타는 음악 알아 줄 이 뉘 있으리 / 此日哀弦誰賞音
나는 병들어 제대로 이끌어 주지도 못한 채 / 我病未由相汲引
볼품없이 쇠한 머리만 옷깃을 덮고 있구려 / 颯然衰髮滿衣襟
[주D-001]당년에는 …… 않으셨는데 : 참고로 《목은시고》 제5권 〈동당 방방(東堂放榜)〉에 “그림자 남기지 않는 준마라고 모두들 말을 하니, 물고기 눈알이 무슨 수로 진주에 섞일 수 있으리오.[龍駒摠說無留影 魚目何從得混珍]”라는 표현이 나온다.
판사(判事) 신운길(辛云吉)의 죽음을 애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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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에 우리들 처음 알고 나서 / 少也始相識
수금 마을을 서로 왕래하곤 했지 / 水金閭往來
백성을 기를 때는 혜택을 끼쳤고 / 牧民流惠澤
사귄 벗들도 모두 영재들이었지 / 取友盡英材
노국의 향기는 지금 사라졌지만 / 魯國香今歇
공주의 비단은 이미 재단되었도다 / 公州錦已裁
뜻은 긴데 신세는 왜 이리 촉박한고 / 意長身世促
흘러간 물 끝내 되돌리기 어렵구나 / 流水竟難廻
[주D-001]수금(水金) : 전라도 정읍(井邑) 고부(古阜)에 있던 향(鄕) 이름이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33 全羅道 古阜》
[주D-002]노국(魯國)의 …… 재단되었도다 : 향 기가 허공 속으로 사라지듯 육신은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공주(公州)의 목민관으로 베푼 선정은 뒤에까지 남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노국은 영월(寧越)의 옛 이름으로 그의 관향(貫鄕)을 가리킨다. 또 춘추 시대 정(鄭)나라 자산(子産)이 대관(大官)과 대읍(大邑)을 비단옷에 비유하면서 솜씨가 서투른 사람에게는 작은 고을도 맡길 수가 없다고 말한 고사에서 유래하여, 유능한 자가 목민관으로 임명되어 선정을 베푸는 것을 재금(裁錦)에 비유하게 되었다. 《春秋左傳 襄公31年》
동북면 순문사(東北面巡問使) 장자온(張子溫)이 연어(年魚)를 보내 준 것에 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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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사 계신 곳은 항상 조용한데 / 兵馬常常靜
연어들이 진을 치고 몰려 왔구나 / 年魚陣陣來
흰 눈이 비치는 듯한 소서 한 통이 / 素書如映雪
푸른 이끼 생기려 하는 누항 속으로 / 陋巷欲生苔
나는 인각처럼 자취 감추고 사는지라 / 屛跡同麟角
표태는 아예 얻어 먹을 생각 없다오 / 無心食豹胎
어느 때나 해안 길 따라 그곳에 가서 / 何時循海去
잠시나마 모시고 담소를 나눠 볼거나 / 談笑暫時陪
[주D-001]흰 눈이 …… 속으로 : 사 람의 왕래도 드물어 이끼가 돋으려 하는 목은의 집에 장자온의 반가운 편지가 날아들었다는 말이다. 옛날에 물고기 뱃속에서 하얀 비단에 쓴 편지[素書]가 나왔다는 고사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文選 卷27 古樂府 飮馬長城窟行》
[주D-002]나는 …… 없다오 : 기 린은 성군이 다스리는 태평 시대가 아니면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고, 표범의 태반은 웅장(熊掌)과 함께 천하일품의 진미로 꼽히는 요리인데, 은주(殷紂)가 상아젓가락을 쓰자 장차 표범의 태반을 먹으려 할 것이라고 기자(箕子)가 예언하며 탄식한 고사가 전한다. 《韓非子 喩老》
김 좌윤(金左尹)이 함창(咸昌)에서 왔기에 기뻐서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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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의 노래 부르는 일 마치고 나서 / 鼓盆歌已闋
대궐에 나아오니 나의 기쁨 새로워라 / 赴闕喜方新
나는 끝내 녹봉도 없이 명예직만 지니고서 / 虛職終無祿
온 몸뚱이를 먼지로 또 더럽히고만 있다오 / 渾身又染塵
서경으로 나그네 되어 벼슬 살러 가시다니 / 西京將作客
우리나라엔 정녕 인재가 없나 보오그려 / 東海政無人
지금 손 잡은 것이 도리어 꿈만 같나니 / 握手還如夢
우리 서로 모쪼록 자주 얼굴 좀 보십시다 / 應須會面頻
[주D-001]고분(鼓盆)의 …… 마치고 나서 : 죽은 아내에 대한 거상(居喪) 기간을 마쳤다는 말이다. 장자(莊子)의 처가 죽었을 때 장자가 곡을 하는 대신에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鼓盆而歌]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莊子 至樂》
[주D-002]나는 …… 지니고서 : 참고로 《목은시고》 제17권 〈최옹요복위청어정방(崔翁邀僕爲請於政房)〉 시에 “대부 반열의 명예직 지니고 의기양양하기보단, 녹봉 받는 중랑의 직책이 낫지 않겠소.[揚揚虛職大夫聯 爭似中郞得俸錢]”라는 구절이 나온다.
동년(同年) 이몽유(李夢游)가 찾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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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년은 이미 새벽별처럼 드물기만 한데 / 同年已似曉星稀
또 보나니 가을빛이 산에 물드는 것을 / 又見秋光入翠微
그대가 혹 들러 주면 내가 어찌나 기쁜지 / 君或過門吾甚喜
나에게 술은 없지만 그대여 잘 쉬고 가소 / 我雖無酒子休歸
우물거리며 맞장구만 치다가 늙어 가는 몸 / 悠悠唯唯身將老
시끄럽게 휩쓸린 자취도 생각하면 잘못이라 / 擾擾紛紛迹也非
부귀는 재천이니 누가 또 아껴서 그러랴만 / 富貴在天誰更靳
백발 노인들 석양 속에 손 잡고 서 있구나 / 白頭携手立斜暉
[주D-001]부귀는 …… 그러랴만 : 불우한 것도 운명일 뿐이지 조정이 인색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닐 것이라는 뜻의 풍자 섞인 말이다. 《논어(論語)》 안연(顔淵)에 “사생은 명에 달려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死生有命 富貴在天]”라는 말이 나온다.
이천(伊川)의 전답을 뺏으려고 대드는 자가 있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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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 늙어 산속에 돌밭 하나 일구고서 / 我老山中有石田
온 가족이 입에 풀칠한 지 어언 몇 년 / 闔家糊口已多年
홀연히 듣건대 척원이 침노를 한다니 / 忽聞戚畹侵吾界
병상에 높이 누워 하늘에 호소할 수밖에 / 高臥病床呼彼天
불쌍히 여겨 은혜를 내려 주시면 다행이나 / 若賜恩憐眞幸也
혹시 강제로 뺏긴다 한들 할 말이 있겠는가 / 儻蒙豪奪亦宜焉
맹광은 구구한 내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고서 / 孟光不識區區意
툴툴거리며 문 닫고 모습을 보이지 않는구나 / 誚訕關門不向前
[주D-001]척원(戚畹) : 척리(戚里)와 같은 말로 왕의 외척(外戚)을 뜻한다.
[주D-002]맹광(孟光) : 후한(後漢)의 고사(高士)인 양홍(梁鴻)의 처의 이름인데, 가난한 집에 시집을 와서 부부가 동고동락하며 서로 경애(敬愛)하였으므로, 자기 아내의 대명사로 곧잘 쓰인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梁鴻》
가소(可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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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워라 병도 많은 이 늙은이가 / 可笑多病翁
꼭두새벽에 조랑말을 채찍질하며 / 凌晨鞭小驄
흰 모래 길을 급히도 치달려가서 / 馳向白沙道
명함 내밀고 굉장한 분을 뵈었다나요 / 傍門叅鉅公
서서 얘기하며 속마음을 털어놓고 / 立談倒肝肺
집에 오니 새빨간 아침 해가 둥실 / 歸來朝日紅
몸뚱이가 온통 욱신거리며 쑤시는데 / 酸辛遍支體
좌우에선 아동들이 왁자지껄 떠드누나 / 左右喧兒童
감흥이 일어나 붓끝에 옮기려 하며 / 有興寓於筆
푸른 산 보니 자꾸만 돌아가고픈데 / 靑山歸意濃
흰 구름이 홀연히 문 앞에 이르더니 / 白雲忽當戶
긴 바람 따라 조각조각 흩날리더라 / 片片隨長風
[주D-001]우스워라 …… 뵈었다나요 : 이 천의 전답 문제로 목은이 병든 몸을 이끌고 굳이 새벽부터 왕의 외척을 찾아가서 원만한 해결을 부탁했다는 말이다. 참고로 《목은시고》 제13권 〈추기전일녹정유항(追記前日錄呈柳巷)〉 시에 “문 옆에서 명함 내밀고 사람은 만나지 못한 채, 봄바람에 날리는 길거리 먼지만 실컷 보았다오.[傍門投刺不逢人 陌上東風滿眼塵]”라는 표현이 나온다.
보법사(報法寺)로 가서 원재(圓齋)의 사십구일재(四十九日齋)에 참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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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교도 원재를 끝으로 시들시들 / 世交零落到圓齋
늘그막까지 유유해라 사불해였네 / 老境悠悠事不諧
적막한 성남의 끝이 없는 이 감회여 / 寂寞城南無限意
향불 한 가닥 푸른 산에 피어오르네 / 香煙一穟碧山崖
[주D-001]세교(世交)도 …… 사불해(事不諧)였네 : 목 은과 원재의 우정이 노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유지되었는데, 이제는 원재가 죽었으니 허탈하기 그지없다는 뜻의 추억 어린 말이다. 세교는 보통 대대로 이어 오는 교분의 뜻으로 쓰이나, 여기에서는 세상 사람들과의 교분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원재는 정추(鄭樞)의 호인데, 이름보다는 자(字)인 공권(公權)으로 더 잘 알려졌다.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가 과부가 된 누이 호양공주(湖陽公主)의 배필로 송홍(宋弘)을 속으로 지목하고는, “귀하게 되면 친구도 바꿀 수 있고, 부유해지면 아내도 바꿀 수 있다.[貴易交富易妻]”라는 민간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의 의중을 슬며시 알아보려고 하였는데, 송홍이 “빈천할 때 사귄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되고, 어려움을 함께한 아내는 버려서는 안 된다.[貧賤之交不可忘 糟糠之妻不下堂]”는 말을 들었다고 대답을 하자, 광무제가 공주를 돌아보면서 “일이 뜻대로 안 되었다.[事不諧矣]”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26 宋弘列傳》
종학(種學) 부령(副令)이 송경(松京)에서 술과 음식을 싣고 와서 먹여 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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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자가 추위 무릅쓰고 양친 뵈러 왔나니 / 仲子凌寒拜兩親
양강의 역로도 티끌 없이 깨끗한 때로다 / 兩江官道淨無塵
술은 이슬 듣듯 하며 향기도 더욱 아름답고 / 酒如滴露香尤美
밥은 연주라 할까 몸 기운 절로 조화되도다 / 飯似蓮珠體自均
충으로 옮겨 임금님 일을 보좌하려 한다면 / 若欲移忠裨袞職
먼저 뜻을 봉양하며 인륜을 극진히 해야지 / 須先養志美彝倫
한 잔 술에도 벌써 취기가 조금씩 감도나니 / 一杯便見微曛處
눈 속에 호탕한 봄바람이 어느새 돌아오네 / 雪底俄廻浩蕩春
[주D-001]중자(仲子) : 목은의 둘째 아들인 종학을 말한다.
[주D-002]양강(兩江) : 고려 때 임진강(臨津江)과 예성강(禮成江)을 병칭한 이름이다. 동서강(東西江)이라고도 하였다. 《高麗史卷81 兵志 鎭戍》
[주D-003]연주(蓮珠) : 연밥의 별칭이다. “연밥을 갈아서 밥을 지어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기운이 불어나 강건해진다.[蓮子 可磨爲飯 輕身益氣 令人强健]”라는 말이 있다. 《農政全書 卷27》
[주D-004]충(忠)으로 …… 해야지 : 효 자라야 충신도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효경(孝經)》 광양명(廣揚名)에 “군자는 어버이에 대해 효성을 다 바치기 때문에, 나라에 대해서도 그처럼 충성을 다 바칠 수가 있는 것이다.[君子之事親孝 故忠可移於君]”라는 말이 나온다. 어버이의 뜻을 받들어 봉양한다는 말은 어버이의 육신만을 위하는 저급한 효도에 상대되는 말로서,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증자(曾子)를 예로 들어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자은(慈恩) 도실(都室)과 쌍청(雙淸) 안공(安公)과 유항(柳巷) 한공(韓公)이 남쪽 교외에서 나를 전별해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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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의 골육들과 근래에 소원한 가운데 / 斯文骨肉近來疏
자은과 함께한 건 유독 처음 같소그려 / 幸與慈恩獨似初
도성 교외 길에서 전별연 함께 열었나니 / 共敞祖筵城外路
물가 초막에서 독서나 하려는 이 몸 때문 / 欲披經卷水邊廬
부운과 낙엽 같은 나를 누가 돌아보리오 / 浮雲敗葉誰相顧
유수와 고산의 차원은 내가 어림없는걸요 / 流水高山我不如
세상 맛은 지겹도록 두루 맛을 봤소마는 / 世味悠悠嘗已遍
도심은 아직 황량해서 매우 부끄럽소이다 / 道情深愧尙荒虛
[주D-001]부운(浮雲)과 …… 어림없는걸요 : 뜬 구름이나 떨어지는 잎새처럼 영락한 목은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상황에서 벗들이 융숭하게 전별을 해 주는데, 목은 자신은 옛날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가 보여 줬던 것과 같은 지기(知己)의 우정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의 겸사이다. 춘추 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아가 높은 산[高山]에 뜻을 두고 연주를 하면, 친구인 종자기가 “멋지다. 마치 태산처럼 높기도 하구나.[善哉 峩峩兮若泰山]”라고 평하였고, 흐르는 물[流水]에 뜻을 두고 연주를 하면 “멋지구나. 마치 강하처럼 넘실대는구나.[善哉 洋洋兮若江河]”라고 평하였는데, 종자기가 죽고 나서는 백아가 더 이상 세상에 지음(知音)이 없다고 탄식하며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린 고사가 전한다. 《列子湯問》 《呂氏春秋 本味》
동강 야음(東江夜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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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산(花山) 권공(權公)과 민 개성(閔開城)과 권 밀직(權密直)을 비롯해서 권가원(權可遠), 민자복(閔子復), 민중립(閔中立), 민중리(閔中理), 권총(權總), 권집경(權執經) 등이 동강에 모여서 전별연을 열어 주었다. 그들이 떠나고 난 뒤에 피곤해서 누웠다가 밤중에 잠이 깨어 한 수를 지어 읊었다.
강물이 바로 옆에 있는 강변의 민가 / 江上人家傍江水
물빛 속에 비치나니 잇단 초가집들 / 草屋相連水光裏
엉성한 벽 깨진 창에 온기 없는 방구들 / 壁疏窓破突不黔
누가 말했는고 풍우만 피하면 족하다고 / 誰云足庇風雨耳
그동안 서리 이슬에 옷을 듬뿍 적신 데다 / 邇來霜露已霑衣
병골이라서 이불도 으레 두껍게 덮어 써야 / 病骨慣於重擁被
단지 몸이 고단해서 단잠을 잘 수 있었는데 / 只因身困得酣眠
새벽녘 혼이 맑아지며 세상 인연 잊었어라 / 向曉魂淸忘世緣
내 어찌 명교를 가벼이 여겨서 떠나리오 / 不是蔑名敎
도의에 탐닉해서 그런 것도 아니외다 / 不是耽道義
마음 근원 깨끗하게 아무 티끌이 없다가도 / 淡然心源無寸累
불현듯 먼지와 때가 끼는 그것이 유감이오 / 只恨須臾塵垢至
가동이 떠드는 속에 들려오는 독경 소리 / 家童喧嘩雜經聲
조수가 밀려 오며 하늘도 밝아지려는 때 / 潮水方張天將明
높이 읊조리노니 앞길 얼마나 험난할꼬 / 高吟不知行路難
거센 물길 오르자면 험한 산길 같을 테지 / 上瀨酷似登崢嶸
[주D-001]누가 …… 족하다고 : 수 (隋)나라 왕통(王通)이 당시의 권신(權臣)인 양소(楊素)로부터 벼슬을 권유받았을 때, “나에게는 선인이 남겨 준 오두막이 있으니 풍우를 피하기에 족하고, 땅뙈기가 있으니 죽을 끓여 먹고 살기에 족하고, 글을 읽고 도를 얘기하니 스스로 즐기기에 족하다.[通有先人之敝廬 足以庇風雨 薄田足以供餰粥 讀書談道 足以自樂]”라고 하면서 사양했던 고사가 전한다. 《御批歷代通鑑輯覽 卷47 龍門王通獻策不報》
날이 밝자 배에 올랐다. 인녕(引寧) 나루에 배를 대고는 조수(潮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는데, 바람이 불어 하루를 머물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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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백이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는고 / 風伯胡然作鬧
하느님은 반드시 동정해 주시겠지 / 天公必也相憐
고요히 앉아 눈 감고 기도를 드리나니 / 靜坐冥心有禱
종당에는 큰 물 건너는 것이 이로우리 / 終當利涉大川
[주D-001]큰물 …… 이로우리 :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말이 《주역(周易)》의 괘사(卦辭)에 몇 차례 나온다.
9일 정오가 될 무렵에 순풍을 타고 배를 띄워 암곶(巖串)에 도착하였는데 그때 해가 아직 기울어지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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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바람 가벼운 배 얼마나 통쾌한지 / 風急舟輕亦快哉
산들도 치닫는 군마처럼 일시에 휙휙 / 山如陣馬一時廻
암곶에 돛을 내린 것이 잠시 동안의 일 / 落帆巖串須臾頃
앞길이 순탄할 것 같아 속으로 흐뭇 / 默喜從今順境來
독포(禿浦) 암하(巖下)에서 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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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옆의 시골 풍경 화폭을 펼쳐 놓은 듯 / 傍水村居似畫圖
노옹이 읊고 파람 부니 맑은 놀이 대신할 만 / 老翁吟嘯當淸娛
뱃사람은 앞길이 험하다고 다투어 말한다만 / 舟人爭說前途險
취사가 만 가지로 다른 것을 나는 잘 아니까 / 取舍明知有萬殊
[주D-001]뱃사람은 …… 아니까 : 뱃 사람은 파도 치는 험한 물길을 걱정하지만, 목은 자신은 그처럼 위험한 상황도 풍류로 즐길 수 있는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의 〈난정기(蘭亭記)〉에 “사람들마다 나아가고 물러서는 취향이 만 가지로 다르고, 조용하고 시끄러운 몸가짐이 서로들 같지 않다.[取舍萬殊 靜躁不同]”라는 말이 나온다.
이튿날 반연(飯淵)에서 묵고, 또 다음 날에는 도미원(都迷院)에서 묵었으니, 물이 얕아서 배가 올라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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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얕아 배를 끌기도 매우 어려운 형편이니 / 水淺牽舟勢甚難
노옹이 편히 앉았어도 마음이 감히 편안할까 / 老翁安坐敢心安
머뭇거리며 주저함은 발을 다친 사람인 듯 / 逗遛似是傷於足
배를 밀고 끈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꼬 / 推挽知其痛入肝
지척의 거리가 만리 길 마냥 무섭기만 한데 / 咫尺畏途如萬里
낮 짧은 해 써늘해라 벌써 높이도 치솟았군 / 蒼涼短晷又三竿
본래 성질을 참게 하여 잘하게 해 주는 법 / 由來忍性能增益
우선 봉창을 향하고서 갓을 다시 바로 쓰네 / 且向蓬牕更整冠
[주D-001]머뭇거리며 …… 아팠을꼬 : 증 자(曾子)의 문인인 악정자춘(樂正子春)이 마루에서 내려오다가 발을 다친 뒤에,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온전한 몸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면서 몇 달 동안이나 외출을 하지 않은 고사가 있는데, 그때 그가 문인들에게 일러 준 말 가운데 “길을 걸어 가더라도 지름길을 택하지 말 것이요, 배를 타고 가더라도 물속에 들어가 몸을 적시지 말 것이다.[道而不徑 舟而不游]”라는 말이 나온다. 《禮記 祭義》
[주D-002]본래 …… 법 : 《맹 자》 고자 하(告子下)에,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 사명을 내리려 할 때에는,……그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그의 성질을 굳게 참고 버티도록 하여, 그동안 잘하지 못했던 일을 더욱 잘하게끔 해 준다.[天將降大任於是人也……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는 말이 나온다.
남 정당(南政堂)의 별장에서 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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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배 안에서 밤을 보내다가 / 數日舟中宿
오늘 밤은 온돌 위에서 잠을 자누나 / 今宵突上眠
편안함과 위태함이 도처에 서려 있나니 / 安危隨處見
마르고 젖은 곳도 때에 따라 편할 대로 / 燥濕逐時便
산은 빽빽해라 구름이 골에서 생겨나고 / 山密雲生谷
서리는 청랑해라 달이 하늘에 가득하네 / 霜淸月滿天
이 세상 취미도 담박해져 줄어만 가니 / 悠然少塵趣
신선처럼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는구먼 / 便恐似神仙
독포(禿浦)에서 달빛을 타고 광진(廣津)까지 와서 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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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포 모래언덕 어스름 빛이 찾아오니 / 禿浦沙頭暝色來
다소곳이 에워 두른 먼 산과 평평한 들 / 遠山平野勢逶迤
뱃사람은 닻줄 풀고 강물이 흘러가는 대로 / 舟人解纜隨流下
나는 달 밝은 양주에서 좋은 시 거저 하나 / 月白楊州恰得詩
무포(務浦)에 와서 배에서 내린 뒤에 남경(南京) 동촌(東村) 왕심리(旺心里) 민가에서 묵었다. 그러고는 다음 날 행궁(行宮)에 가서 숙배(肅拜)하고 돌아오는 길에 읊었다. 이날은 10월 12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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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하도다 신경이여 경기의 장관이요 / 新京翼翼壯邦畿
저절로 기능 발휘하는 기화의 추이로다 / 氣化推移自有機
재상은 심원한 계책으로 주정을 정하였고 / 宰相深謀周定鼎
군왕은 성대한 덕으로 순의를 드리우셨네 / 君王盛德舜垂衣
외적을 막는 한강은 맑고도 빠르게 흐르고 / 漢江外禦流淸駃
가장 높은 백악은 푸르른 봉우리 솟았어라 / 柏岳中尊聳翠微
백발의 병든 이 신하 정말 얼마나 다행인가 / 白髮病臣眞萬幸
붓 빼들고 태양 옆에서 빛 더해 드리고 싶네 / 抽毫攢日欲增輝
[주D-001]신경(新京) : 경 기(京畿) 장단군(長湍郡) 임진현(臨津縣) 북쪽에 위치한 백악(白岳) 일대의 궁궐 터를 말한다. 공민왕(恭愍王)이 개경(開京)에서 남경(南京)으로 천도(遷都)하려고 했으나 점괘가 불길하게 나오자 다시 백악에 공사를 시작하다가 중지하였는데, 당시에 이를 신경이라고 일컬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東史綱目 卷14下 恭愍王 9年 7月》 또 고려 때 지리 쇠왕설(地理衰旺說)을 주장하는 도참(圖讖) 사상의 영향을 받아 국가의 기업(基業)을 연장시킬 목적으로 개경(開京) 주위에 좌소(左蘇)인 백악산(白岳山)과 우소(右蘇)인 백마산(白馬山)과 북소(北蘇)인 기달산(箕達山) 등 이른바 삼소(三蘇)를 설치하고 여기에다 각각 행궁(行宮)을 지은 뒤에 왕이 주기적으로 순행(巡幸)하며 머무르곤 하였다. 그런데 목은은 이 백악(白岳)을 백악(柏岳)으로 곧잘 바꿔서 쓰고 있다.
[주D-002]저절로 …… 추이(推移)로다 : 절기가 변해서 어느새 10월이 되었다는 말이다. 기화(氣化)의 추이란 음양의 기운이 변화하여 절로 생성하고 소멸하는 현상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주D-003]재상(宰相)은 …… 정하였고 : 재 상이 멀리 내다보는 안목으로 새 도읍지를 정했다는 말이다. 하우(夏禹)가 구정(九鼎)을 주조하여 구주(九州)를 상징하였는데, 그 뒤 상(商)과 주(周)를 거치는 동안 이를 전국(傳國)의 보배로 여겨 국도(國都)에 안치하였으므로, 나라의 도읍지를 정하는 것을 정정(定鼎)이라고 하게 되었다. 《춘추좌전》 선공(宣公) 3년 조(條)에 “주나라 성왕이 겹욕에 도읍을 정하고 구정을 안치하였다.[成王定鼎于郟鄏]”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4]군왕은 …… 드리우셨네 :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요 임금과 순 임금이 의상을 드리우고 무위의 정치를 펼치자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堯舜垂衣裳而天下治]”라는 말이 나온다.
반 밀직(潘密直)이 선온(宣醞)을 가지고 와서 하사하였으므로, 다음 날 대내(大內)에 가서 사은하고 돌아와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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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몸 시고 떫은 거야 더 무슨 말을 하랴 / 病軀酸澁更何言
그럼에도 좋은 술을 홀연히 군왕이 하사했네 / 忽被君王賜上樽
미천한 목숨만 보전해도 목석이 아닌 터에 / 只保微生非木石
천지와 같은 성대한 덕을 어떻게 보답할까 / 那酬盛德似乾坤
밝고 밝은 일월을 보소 천심이 따라 주지 않나 / 明明日月天心順
많고 많은 의관들 보소 국세가 얼마나 드높은지 / 袞袞衣冠國勢尊
직분상 찬송을 해야 하나 정력이 이미 쇠했으니 / 職在詠歌精力少
사직을 간청해 강촌에 돌아가 누워 있고 싶어라 / 乞身方欲臥江村
[주D-001]미천한 …… 보답할까 : 사람이 목석이 아닌 다음에야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가게만 해 준다 해도 그 은혜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상등의 술까지 내렸으니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주D-002]밝고 …… 드높은지 : 당 시의 바람직하지 못한 정치 상황을 반어적으로 풍자한 것이다. 곤곤 의관(袞袞衣冠)은 곤곤 제공(袞袞諸公)과 같은 말로, 자리만 차지한 채 그저 세월만 보내는 수많은 고관들을 뜻하는데, 두보(杜甫)의 시에 “수많은 고관들 즐비하게 관청에 오르는데, 광문 선생은 벼슬자리 유독 썰렁하다오.[諸公袞袞登臺省 廣文先生官獨冷]”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3 醉時歌》
이날 우 영공(禹令公)과 박 영공(朴令公)이 술을 가지고 왔고, 이날 밤에는 남경 윤(南京尹)이 판관(判官)과 함께 와서 음식을 대접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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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성 두 분께서 왕림하신 뒤에 / 宰省俱臨後
부관이 동행해서 또 찾아 주었네 / 府官同訪初
술과 안주 그야말로 얼크러진 가운데 / 杯盤眞錯落
정과 흥취 모두가 은근하고 한가했소 / 情興儘容與
마치 돈을 두르고 학을 탄 듯한 나의 기분 / 自訝纏錢鶴
칼자루 치며 고기 없다 노래한 이 누구더라 / 誰歌彈鋏魚
술에 취해 그런대로 포근한 잠 속으로 / 醉來聊就枕
화서 찾는 꿈은 더 이상 꾸지 않았다오 / 不復夢華胥
[주D-001]마치 …… 기분 : 이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기막히게 좋은 분위기를 만끽하였다는 말이다. 어떤 이는 양주 자사(楊州刺史)가 되고 싶다고 하고, 어떤 이는 많은 재물을 얻기를 원하고, 어떤 이는 학을 타고 하늘로 오르고 싶다고 하였는데, 이 말을 들은 한 사람이 “나는 허리에 십만 관(貫)의 돈을 두르고, 학을 타고서 양주로 날아가고 싶다.”라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淵鑑類函 鳥3 鶴3》
[주D-002]칼자루 …… 누구더라 : 전 국 시대 제(齊)나라 풍환(馮驩)이 맹상군(孟嘗君)의 식객으로 있을 적에, 밥상에 고기반찬이 없자 장검의 칼자루를 두드리면서 “장검이여 돌아가자, 밥상에 고기가 없으니.[長鋏歸來乎 食無魚]”라고 노래했던 고사가 전한다. 《戰國策 齊策4》
[주D-003]화서(華胥) …… 않았다오 : 이 날 기분이 너무도 흡족해서 다시 이상향을 찾아갈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다. 화서는 황제(黃帝)가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보았다는 이상 국가(理想國家)의 이름이다. 황제가 이 나라를 여행하면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이상적인 정치가 실현되는 꿈을 꾸고는, 여기에서 계발(啓發)되어 천하에 크게 덕화(德化)를 펼쳤다는 전설이 전한다. 《列子 黃帝》
부추(副樞)가 서울에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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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 틀어박혀 나 오기를 기다리다 / 占得村家待我歸
서울에 와서 아비를 또 보려고 하였구나 / 還京又欲觀庭闈
아내도 없이 이 겨울을 어떻게 넘기려는고 / 過冬不可無中饋
우리 같은 부자의 정도 세상에 흔치 않으리 / 慈孝俱豐世所稀
[주C-001]부추(副樞) : 목은의 장남인 종덕(種德)을 가리킨다.
[주D-001]아내도 …… 넘기려는고 : 참고로 《목은시고》 제20권 〈동정에게 배를 구하다.[從東亭求梨]〉에 “내 자식이 금년에 시종신 자리에 끼였는데, 처가는 깨어져 부서지고 아비 집은 가난하다네.[豚犬今年忝侍臣 妻家破碎父家貧]”라는 구절이 보인다.
궐정(闕庭)에 나아가서 안부를 여쭙고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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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리는 흰머리는 얼마 남지 않았어도 / 風吹白髮政蕭疏
야흥과 시정은 넉넉하게 남은 것이 있고말고 / 野興詩情摠有餘
대궐에 나가 문후하는 건 신자의 예절이건만 / 赴闕起居臣子禮
옆에서 보고는 비웃겠지 땅에 옷자락 끈다고 / 傍人應笑曳長裾
[주D-001]옆에서 …… 끈다고 : 총 애를 받아 출세할 목적으로 아첨을 떤다고 조롱할 것이라는 말이다. 한(漢)나라 추양(鄒陽)의 〈상서오왕(上書吳王)〉에 “고루한 마음을 꾸미려고만 든다면, 어떤 왕후의 문인들 긴 옷자락을 땅에 끌고 다닐 수가 없겠는가.[飾固陋之心則何王之門不可曳長裾乎]”라는 말이 나온다.
화산군(花山君)을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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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강가 얕은 산이 밝게 비칠 뿐 / 楊州江上淺山明
사방 온통 아득히 평평한 땅이로세 / 四顧茫茫面勢平
필마 타고 나들이길 이제부터 시작인데 / 匹馬出游從此始
문에서 맞는 사람도 바로 나의 문생이군 / 噟門還是我門生
하늘 낮은 해장에선 어버이 생각에 눈물이요 / 天低海藏思親淚
해 비치는 교궁에선 임금님 아끼는 정이로세 / 日照郊宮愛主情
노년에 함께 노니는 것도 전혀 싫지 않은 일 / 危境同游殊不惡
더구나 지금 조정에서 기영회 중하게 여김에랴 / 況今廊廟重耆英
[주C-001]화산군(花山君) : 목은의 처 숙부인 권중화(權仲和)의 봉호이다.
[주D-001]해장(海藏) : 사 찰 안의 불당(佛堂)인 해장전(海藏殿) 혹은 해장궁(海藏宮)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특히 목은의 부친인 가정(稼亭) 이곡(李穀)의 자취가 남아 있는 사찰을 가리킨다. 이곡이 남긴 사찰의 비문이 적지 않은데, 특히 그가 원 순제(元順帝)의 명을 받아 지정(至正) 3년(1343)에 지은 〈금강산장안사중흥비(金剛山長安寺重興碑)〉에 “아미타(阿彌陀) 53불(佛)과 법기보살(法起菩薩)과 노사나(盧舍那)가 해장궁(海藏宮) 안에 봉안되었다.”라는 말이 나온다. 《稼亭集 卷6》
[주D-002]교궁(郊宮) : 임금이 희생(犧牲)을 잡아 하늘과 땅에 제사를 올리는 곳을 말한다.
유감(有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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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집에서 태평의 연기 새로 이는 가운데 / 萬家新起太平煙
백악의 맑게 갠 빛이 푸른 하늘 비치누나 / 柏岳晴光照碧天
할 일도 없는 병든 신하 얼마나 행운인고 / 自幸病臣無一事
걸핏하면 붓 잡고서 오래 산 것을 노래하니 / 好將鉛槧頌高年
비연을 옹위하는 왕성한 이 가기여 / 鬱葱佳氣擁非煙
대궐 위의 개탕이 정오와 가깝도다 / 殿上開湯近午天
단지 유감은 중원과 내왕이 뜸한 것 / 獨恨中原來往少
아조가 한창 중흥의 시운을 맞았건만 / 我朝方値中興年
조복에 궁중의 향로 연기 몇 번이나 배었던가 / 朝衣幾染御爐煙
구구하나마 돌 구워서 터진 하늘 메우려 했지 / 鍊石區區欲補天
늘상 부끄러워라 정호의 용이 이미 떠났는데 / 永愧鼎湖龍已去
외로운 그림자 홀로 짝하며 여생을 보내다니 / 獨携孤影送餘年
[주D-001]비연(非煙)을 …… 가깝도다 : 임 금이 선정을 베풀어 태평한 시대를 맞게 되었다는 뜻이다. 비연은 태평 시대를 상징하는 경운(慶雲)을 말하는데, “운기도 아니고 연기도 아닌 것이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경운이라고 한다.[非氣非煙 五色紛縕 謂之慶雲]”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藝文類聚 卷98 孫氏瑞應圖》 가기(佳氣)는 임금의 덕을 상징하는데,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가향(家鄕)인 남양(南陽) 용릉(舂陵)의 지형을 술사(術士)인 소백아(蘇伯阿)가 살펴보고는 “상서로운 기운이 왕성하게 일어난다.[佳氣哉 鬱鬱葱葱然]”라고 말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後漢書 卷1 廣武帝紀》 개탕(開湯)은 탕왕(湯王)이 삼면의 그물을 걷고 한 면만 남겨 두었다는 ‘개탕망(開湯網)’의 준말로, 제왕의 인자한 정치를 뜻한다. 정오와 가깝다는 것은 중천에 해가 뜬 것처럼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말이다.
[주D-002]조복(朝服)에 …… 했지 : 공 민왕을 옆에서 도우면서 개혁 정치를 펼쳐 보려 했던 지난 일을 회상하는 말이다. 옛날 서북쪽 하늘이 이지러지자 여와씨(女媧氏)가 오색(五色)의 돌을 구워서 터진 하늘을 메우고 자라의 발을 잘라 사방의 기둥으로 받쳐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淮南子 覽冥訓》
[주D-003]늘상 …… 보내다니 : 공 민왕처럼 자신을 알아주는 임금이 세상을 떠났는데도, 아직 살아 남아서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내는 것이 부끄럽기만 하다는 말이다. 황제(黃帝)가 수산(首山)의 동(銅)을 캐어 형산(荊山) 아래에서 솥[鼎]을 만들었는데, 그 일이 다 끝나자 용이 내려와서 황제를 태우고 하늘로 올라갔으므로 그곳을 정호(鼎湖)라고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史記卷28 封禪書》
서린(西隣)이 숙직하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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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밤 며칠 계속 궁중에서 숙직함은 / 儤直宮中苦夜長
충의의 마음을 하늘에 사무치게 하시려고 / 欲將忠義徹蒼蒼
돌아와선 겨울 넘길 대책을 또 세웠나니 / 歸來又出禦冬策
머리 위의 광음이 나는 새처럼 바쁨이라 / 頭上光陰飛鳥忙
군읍은 도처에 봉홧불로 황폐해졌건만 / 郡邑彫零熢燧遍
조정은 기강을 떨치는 일에 한가하기만 / 國家閑暇紀綱張
국사에 이바지하려 노력하는 이때 / 政當努力供王事
이웃 노인은 물러나 숨으니 비웃겠구려 / 應笑隣翁獨退藏
잡흥(雜興)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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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두둑 사이에서 물을 길어 쌀을 일고 / 淘米田間水
울타리 가의 산에서 나무를 베어 오고 / 搬柴籬畔山
살림은 가난해도 절로 즐거운 마음이요 / 居貧心自樂
병으로 물러나니 자취도 함께 한가하이 / 病退跡仍閑
고을 원님이 음식 들고 찾기도 하고 / 邑宰或饋問
이웃 노인이 가끔씩 왔다갔다 하고 / 隣翁時往還
유유히 열흘을 꼬박 보내고 나니 / 悠悠度旬浹
호기가 얼굴에 떠오르려 하는구만 / 豪氣欲浮顔
눈을 놀려 서울 동네 실컷 구경하고 / 縱目覽京邑
대궐 뜰에 나아가서 국궁 재배한 뒤 / 鞠躬趨闕庭
돌아오다 승상부 찾아 인사드리고는 / 歸來謁黃閣
집에 편히 누워서 불경을 펴 본다오 / 退臥閱金經
외물의 취미 잊은 지 오래되었으니 / 久已忘聲色
내면의 정신 세계 이제는 기를 만도 / 眞堪養性靈
이따금씩 문밖을 나와 바라다보면 / 時時出門望
하늘가에 솟구친 몇 개 푸른 봉우리 / 天際數峯靑
맴돌고 떠돌며 뭔가 뜻이 있는 듯도 / 繚繞似有意
시골집 아침저녁 밥 짓는 연기로세 / 村家朝暮煙
처마 옆에 엉겨 붙어 떠나지 않다가도 / 傍簷凝不去
벽 틈으로 교묘하게 타고 올라가는구나 / 透壁巧相緣
기분이 울적하면 속이 불처럼 타오르며 / 氣鬱心如火
흐린 눈자위에 샘 솟듯 흐르는 눈물이여 / 眸昏淚逬泉
어떡하면 부엌의 아궁이 밥 멀리 하고서 / 何當遠廚竈
신선처럼 태양의 정기 들이마시며 살거나 / 嚥日似神仙
우제(偶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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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면 두 그릇 밥 뚝딱 해치우고 / 明銷兩粳飯
해가 지면 한바탕 잠 속에 떨어지고 / 暗爍一場眠
분명히 있는 이 주인공 무슨 물건인고 / 了了是何物
아득한 저 하늘이나 불러 볼 수밖에 / 悠悠呼彼天
새벽에 일어나니 가랑비가 내리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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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비 스산해라 옷이 젖어 들 듯 / 晚雨蕭疏欲濕衣
산빛이며 들판의 색도 모두 어렴풋 / 山光野色共熹微
지붕이 새면 우산 받쳐 들 걱정을 미리 하며 / 預愁破屋常持傘
호젓한 촌락의 반쯤 닫힌 사립문을 마주하네 / 坐對孤村半掩扉
나의 기세는 고기 원하는 굶주린 매와 같다면 / 勢似飢鷹思得肉
나의 육신은 굴레도 못 이길 늙은 말이라 할까 / 身如老馬不任鞿
초록 도롱이 푸른 삿갓 어느 때나 떠나갈꼬 / 綠簑靑篛何時去
서쪽 변방 멀리멀리 흰 새는 날아가건마는 / 西塞遙遙白鳥飛
[주D-001]지붕이 …… 하며 : 소식(蘇軾)의 시에 “지붕이 새면 언제나 우산을 받쳐 드는데, 땔감이 없으니 이제는 거문고라도 땔까 보다.[破屋常持傘 無薪欲爨琴]”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27 次韻朱光庭喜雨》
[주D-002]나의 …… 같다면 :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좋은 말 고를 때는 야윈 걸 동정해야 하고, 매를 불러서 쓰려면 배고플 때가 적격이라.[相馬須憐瘦 呼鷹正及飢]”라는 구절이 나온다. 《白樂天詩集 卷13 敍德敍情 四十韻》
[주D-003]초록 …… 떠나갈꼬 : 시 골에 가서 비를 맞으며 한가롭게 낚시하는 정취를 맛보고 싶다는 말이다. 당(唐)나라 장지화(張志和)의 〈어부사(漁父詞)〉에 “푸른 삿갓 쓰고 초록색 도롱이 걸쳤으니, 비낀 바람에 가랑비 온다고 굳이 돌아갈 것 없네.[靑篛笠 綠簑衣 斜風細雨不須歸]”라는 명구가 나온다.
밥을 먹고 앉아서 졸다가 깨어나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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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쌀밥을 또 배 터지게 먹고 나서 / 朝來白飯又撑腸
시나 읊지 뭐하겠소 초야의 흥이 유유하니 / 只管吟哦野興長
시구를 얻어도 청고함과는 끝내 거리 멀고 / 得句竟非淸苦律
벽에 기댄 채 깜박 졸다 홀연히 꿈나라로 / 倚墻還入黑甛鄕
실실 내리는 가랑비는 산색을 하나 더하고 / 絲絲小雨添山色
한가한 조각구름들은 햇빛을 희롱하며 노네 / 片片閑雲弄日光
꿈을 깨자 반갑게도 눈앞이 맑게 트이나니 / 最喜夢廻淸眼界
양주의 강물 북쪽 작은 마을의 농장 풍경 / 楊州江北小村庄
태평의 풍월 읊는 것이 바로 사신의 몫 / 太平風月屬詞臣
무슨 죄로 나는 유독 이 난세에 태어났노 / 何罪吾生獨不辰
중원의 육로가 막혔으니 절서를 알 수도 없고 / 路梗中原迷節序
전란의 티끌 자욱한 채 동해의 배만 교역할 뿐 / 舶交東海暗煙塵
노송을 바치고 싶어도 결과는 허망할 뿐이니 / 欲陳魯頌徒歸妄
어찌 제우가 진짜에 다시 끼이는 걸 원하겠소 / 豈願齊竽復混眞
감흥이 일면 문득 읊고 읊고 나면 그만두고 / 有興便吟吟便輟
내 시 비평하는 일은 뒷사람에게나 맡겨야지 / 譏評付與後來人
[주D-001]시구를 …… 멀고 : 배 가 부르고 기분이 느긋해서 시를 지어도 끝내 청고한 시풍(詩風)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참고로 《목은시고》 제17권 〈일을 기록하다.〉에 “시풍을 크게 나누면 청고와 부화 두 가지, 소재가 되는 빙벽과 풍화 마치 항하의 모래일세.[淸苦浮華是兩家 風花氷蘗似恒沙]”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2]중원(中原)의 …… 없고 : 중국에서 새로운 책력(冊曆)을 받아 오지 못해 절기의 변화도 알 수 없다는 뜻으로, 당시에 명나라에서 고려의 사신이 오는 것을 금지한 것을 말한다.
[주D-003]노송(魯頌)을 …… 원하겠소 : 임 금을 도와 중국과의 외교 관계도 개선하면서 태평한 시대를 이룬 군주의 덕을 칭송하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 않으니, 무능한 사람이 어떻게 훌륭한 신하들과 어울려서 조정에 설 수 있겠느냐는 뜻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노송(魯頌)은 《시경》 노송 중의 비궁(閟宮)을 말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신하가 자기의 군주와 국가를 칭송하는 것이다. 제우(齊竽)는 제나라의 피리라는 뜻으로 자격도 없는 사람이 허명(虛名)만 지니고서 자리에 끼어 있는 것을 말하는데, 보통 겸사(謙辭)로 쓰인다. 제 선왕(齊宣王)이 피리 연주를 좋아하여 항상 300인을 모아 합주(合奏)하게 하자, 남곽 처사(南郭處士)라는 사람이 그 자리에 슬쩍 끼어들어 국록을 타 먹곤 하였는데, 선왕이 죽고 민왕(湣王)이 즉위한 뒤에 한 사람씩 연주하게 하자 본색이 드러날까 겁낸 나머지 도망쳤다는 고사가 전한다. 《韓非子 內儲說上》
또 절구 한 수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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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엔 짧은 해 그림자 시간 따라 옮겨 가고 / 簷間短景逐時移
문밖에는 찬바람이 땅을 쓸면서 불어오네 / 門外風寒卷地吹
꿈에 주공을 뵈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 夢見周公眞大幸
중니도 당일에 쇠했다고 탄식을 하셨으니 / 仲尼當日嘆吾衰
[주D-001]중니(仲尼)도 …… 하셨으니 : 《논어》 술이(述而)에 “내가 너무도 쇠했구나. 오래도록 꿈속에서 주공을 다시 뵙지 못하였으니.[甚矣吾衰也久矣吾不復夢見周公]”라고 탄식한 공자의 말이 나온다.
자은(慈恩) 도당(都堂)에 대한 감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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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 우세군이나 찾아가 볼까 / 有意西尋祐世君
찬 구름이 잠근 암학 숨기에 적격 / 藏宜巖壑鎖寒雲
첩건과 사리는 스님께 얻어 쓴다 해도 / 氎巾絲履從師費
단지 두려운 건 취토록 술을 권하는 것 / 只怕深盃勸十分
[주D-001]우세군(祐世君) : 자은종(慈恩宗) 도승통(都僧統)인 종림(宗林)의 호칭으로, 법천대사(法泉大師)라고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주D-002]첩건(氎巾)과 …… 해도 : 첩 건은 털실로 짠 수건이고 사리는 명주실로 만든 신발인데, 두보(杜甫)가 승려의 방에 묵으면서 지은 시에 “가늘고 푸른 명주실로 만든 신발이요, 하얗게 빛나는 털실로 짠 수건일세. 깊이 감춰 두고 노 스님에게만 바치는데, 이 몸이 쓰라고 선뜻 꺼내 주시누나.[細軟靑絲履 光明白氎巾 深藏供老宿 取用及吾身]”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卷4 大雲寺贊公房》
대궐에 가서 안부를 여쭙고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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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하라는 분부 내려 백관이 흩어지고 / 有旨停朝散百官
날씨도 추운 대낮에 적적한 궁궐 뜨락 / 宮庭寂寂午天寒
혼자 술을 하사받아 무척 감격스럽소만 / 獨蒙賜酒心多感
허리가 아파서 두 번 절하기 어려웠다오 / 只是腰酸再拜難
비루한 몸 병도 많아 휴직까지 하였는데 / 鄙夫多病已休官
추운 날씨 겁내면서 추진하려니 부끄럽군 / 愧底趨塵怯歲寒
머리 위의 저 하늘이 모두 안배한 일일 테니 / 頭上安排老天在
이 생을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움을 알겠도다 / 明知自斷此生難
여생을 보양하려면 시골에 가서나 벼슬해야 / 保養殘生托縣官
해진 갖옷도 겨울 추위 막아 내기엔 족할 테니 / 弊裘猶足禦冬寒
사람 만나면 공연히 전원의 낙을 말하오만 / 逢人謾說歸田樂
임금님 생각에 행로의 어려움 잊곤 한다오 / 戀主不知行路難
[주D-001]비루한 …… 부끄럽군 : 대 궐에 가서 안부를 물은 행위가 마치 명리(名利)를 좇는 세상 사람들처럼 아첨하는 격이 되지 않을까 해서 부끄럽다는 말이다. 진(晉)나라 반악(潘岳)이 세상의 명리를 좇아 석숭(石崇) 등과 함께 당시의 권신(權臣)인 가밀(賈謐)에게 아첨하면서, 가밀이 외출할 때마다 수레가 일으키는 먼지를 바라보며 절을 했다는 고사가 있다. 《晉書 卷55 潘岳列傳》
어제 박 판서(朴判書) 계장(契長)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새벽에 만사(挽詞)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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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은(樵隱) 어른 문생으로 제삼인 급제자 / 老樵門下第三人
집안 교육 훈도받고 기미가 진국이었어라 / 家敎熏陶氣味醇
갑자생 그대는 환갑 넘겨 얼마 뒤에 숨 거두고 / 甲子更端俄屬纊
무진생 나는 뒤에 남아 눈물로 수건 적시누나 / 戊辰居後獨霑巾
금거북 풀어 술 사 준 우정 얼마나 두터웠던가 / 解龜換酒情猶渥
촛불에 줄 긋고 시 짓던 일 이미 묵은 자취로세 / 刻燭題詩迹已陳
부음 듣고 하룻밤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으니 / 直得一宵眠不穩
만사를 어떻게 정신 나게 지을 수나 있으리까 / 薤歌焉得有精神
[주D-001]초은(樵隱) : 이인복(李仁復)의 호이다.
[주D-002]금거북 …… 두터웠던가 : 이백(李白)의 〈대주억하감(對酒憶賀監)〉 시 서문에 “하지장(賀知章)이 나를 처음 보고는 적선인(謫仙人)이라고 일컬으면서, 허리에 찬 금거북 패물을 풀어서 술을 사 주며 즐거워하였다.[解金龜換酒爲樂]”라는 말이 나온다.
즉사(卽事)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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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뒤 안락와에 터 잡고 산다마는 / 病後卜居安樂窩
기력은 쇠하고 난양이라 장차 어찌할꼬 / 氣衰難養欲如何
문을 나서니 푸른 산빛이 눈에 가득한데 / 出門滿眼靑山色
하늘 저쪽 한 쌍의 새 사이좋게 날아가네 / 空外一雙飛鳥過
밥 먹고 잠을 자고 나니 조금 가라앉는 기분 / 攤飯眠來氣稍平
주인의 집에선 낮 닭이 홰를 치며 우는 소리 / 主人家有午雞聲
붓 잡고 새 시들을 쓸어버리려 하다 보니 / 抽毫欲掃新詩出
오늘도 어느새 서쪽 창에 저녁 햇빛 비치네 / 又見西牕夕照明
[주D-001]안락와(安樂窩) : 송(宋)나라의 철인(哲人) 소강절(邵康節)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생활을 즐겼던 오두막집의 이름으로, 비록 누추하지만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거처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주D-002]난양(難養) : 상 대하기 힘들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목은과 부인 사이의 관계를 말한 것이 아닌가 한다. 《논어》 양화(陽貨)에 “유독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가 어려우니, 조금 가까이하면 공손치 못하고, 조금 멀리하면 원망한다.[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라는 공자의 탄식이 나온다.
[주D-003]붓 잡고 …… 비치네 : 앞으로 목은의 시를 능가할 작품이 나오지 못하도록 심혈을 기울여 시를 짓다 보니 벌써 저녁이 다 되었다는 말이다.
호노(豪奴) 내석(內石)에 대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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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노가 지금은 이미 늙어 아무 일도 못 한 채 / 豪奴今已老無能
타향에 떠돌며 비실비실 가을 파리 신세로세 / 流寓他鄕八月蠅
어렵고 힘들다는 호소 어찌 차마 들으랴만 / 告訴艱難那忍聽
짧은 처마에 기우는 해 혹 뛰어오를지도 / 短簷斜日或飛騰
[주C-001]호노(豪奴) : 성격이 거칠고 교활해서 다루기 힘든 종을 말한다.
[주D-001]짧은 …… 뛰어오를지도 : 호 노를 잘 대우해 주면 기울어진 가세(家勢)가 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뜻의 해학적이면서도 자조적인 표현이다. 《한서(漢書)》 권91 화식전(貨殖傳)에, 도한(刀閒)이라는 사람이 호노를 호의로 대하면서 그의 능력을 잘 이용한 결과 수천만 금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유 염사(柳廉使)가 술과 종이와 돗자리를 보내 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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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자리로는 나의 자리 포근하게 하고 / 席以煖我坐
술로는 나의 회포 풀어지게 하고 / 酒以寬我懷
종이로는 들창을 밝게 비치게 하면서 / 紙以明小窓
생나무 휘어 꺾듯 글씨도 써 봐야지 / 屈折吾生柴
어디에 쓸지 벌써 궁리해 두었다만 / 用意自有在
청재에 이바지해도 부족함이 없겠도다 / 亦足供淸齋
인생이 은혜와 사랑 서로 중히 여기면 / 人生重恩愛
세도도 어긋나 잘못됨이 있지 않을 터 / 世道無乖崖
안빈낙도야 내가 감히 자처하랴마는 / 安貧吾豈敢
구차히 얻는 것은 내가 물리치는 바라 / 苟得吾所排
단지 원하는 건 풍속이 아름답게 되어 / 但願風俗美
국가의 기업이 회수처럼 길게 되기만을 / 王業如長淮
구조의 덕을 하늘이 혹 내려 주신다면 / 耉造德或降
화락한 봉황 소리도 들을 수 있으련만 / 鳳鳥聞喈喈
[주D-001]생나무 …… 써 봐야지 : ‘팔 뚝에 힘을 잔뜩 주고서 억지로 생나무를 휘어 꺾으려는 것[怒張筋脈 屈折生柴]’처럼 서툴기만 한 초보자의 글씨를 그 종이 위에 한번 써 보고 싶다는 뜻의 겸사인데, 보통 서법(書法)에서 중히 여기는 심온단윤(深穩端潤)의 필법과 대비해서 폄하하여 쓰는 표현이다. 참고로 《목은시고》 제15권 〈자탄(自嘆)〉에 “정통 필법에 비교하면 크게 어긋나겠지만, 생나무 휘어 꺾듯 써 본들 무슨 상관이랴.[雖然大與筆法乖 屈折何害如生柴]”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2]구조(耉造)의 …… 있으련만 : 국 가의 원로를 예우하면서 그 경륜을 펼치게 한다면 태평 시대를 구가할 수도 있으리라는 말이다. 구조의 덕은 노성한 원로의 덕이라는 뜻인데, 《서경》 군석(君奭)에 주공(周公)이 소공(召公)에게 “그대와 같은 구조의 덕을 하늘이 장차 내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봉황의 소리를 다시 듣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耉造德不降我則鳴鳥不聞]”라고 한 말이 나온다.
서린(西隣)의 조 판사(趙判事)가 아자길(阿刺吉)을 가지고 왔는데, 그 이름을 천길(天吉)이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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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체에 기대지 않게 하는 술 속의 영특한 기운이여 / 酒中英氣不依形
가을 이슬로 둥글게 맺혀 밤 되면 톰방거리는 소리 / 秋露漙漙入夜零
생각하면 우스워라 청주의 늙으신 종사님이 / 可笑靑州老從事
하늘의 별과 맞먹도록 뻐기게 해 주시다니 / 猶誇上應在天星
연명이 이 술 얻고 나면 깊이 고개 숙일 터 / 淵明若見應深服
정칙이 맛을 보면 홀로 깨어 있으려 할지 / 正則相逢肯獨醒
반 잔 술 겨우 넘기자마자 훈기가 뼛속까지 / 强吸半杯熏到骨
표범 가죽 보료 위에 금병풍 기댄 기분일세 / 豹皮茵上倚金屛
[주C-001]아자길(阿刺吉) : 소주(燒酒)의 별칭이다. 고량(膏粱)으로 만드는데, 원(元)나라 때 처음 주조법(酒造法)이 나왔다고 한다.
[주D-001]형체(形體)에 …… 해 주시다니 : 오 래된 이 명주(名酒)를 마시면 마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른 사람처럼 느끼게 하는 효과가 있어서, 대문장가인 한유(韓愈)와 겨뤄 보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소식(蘇軾)의 〈조주한문공묘비(潮州韓文公墓碑)〉에, “그 반드시 호연지기의 소유자는 형체에 기대지 않고도 설 수 있으며……하늘에 있으면 별이 된다[其必有不依形而立……故在天爲星辰]”는 말이 나온다. 《古文眞寶後集》 진(晉)나라 환온(桓溫)의 주부(主簿)로 있는 사람이 술맛을 잘 감정하였는데, 맛 좋은 술은 ‘청주 종사(靑州從事)’라고 부르고 나쁜 술은 ‘평원 독우(平原督郵)’라고 불렀던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術解》
[주D-002]연명(淵明)이 …… 할지 : 진 (晉)나라 도연명은 술을 좋아하기로 유명하여 술에 얽힌 일화가 한두 가지가 아니고, 정칙(正則)은 전국 시대 초(楚)나라 굴원(屈原)의 이름인데, 그가 지은 〈어부사(漁父辭)〉에 “사람들 모두 취해 있는 속에 나만 홀로 깨어 있다.[衆人皆醉我獨醒]”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기사(紀事)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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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랑이 집 식구를 떠나는 배 편에 태웠는데 / 兔郞家口寄行舟
서강에 바람도 잘 부니 빨리 거슬러 오련마는 / 風急西江快遡流
단지 용산을 앞에 두고 아직 오지 못하다니 / 只隔龍山來不得
날씨도 차가운 이 한 밤에 남몰래 걱정되네 / 天寒一夜暗生愁
부엌 살림 고생시켜 늙은 처 보기 민망한데 / 主饋艱難愧老妻
좌소로 남행할 적에도 손 잡고 함께 왔더랬지 / 左蘇南幸亦提携
지금 또 내려와서 내 옆에 있으려 한다마는 / 如今又欲來相伴
지붕 낮은 오두막의 매운 연기가 걱정일세 / 只念煙熏草屋低
장안은 온통 눈보라로 처참한 모습 / 長安風雪慘愁容
남경만은 유독 짙게 깔린 꽃 향기 / 獨有南京花氣濃
이 시는 바로 경릉께서 지으신 악부인데 / 此是慶陵新樂府
노신이 오늘 다행히도 그 광경을 보는구나 / 老臣今日幸遭逢
[주D-001]토랑(兔郞) : 목 은이 묘년(卯年)에 태어난 아들을 사랑스럽게 부른 말로, 장남 종덕(種德)을 가리킨다. 《목은시고》 제33권 〈8일 동짓날에 한 청성(韓淸城)이 팥죽과 꿀을 보냈는데, 그 뒤를 이어 부추(副樞)가 들고 왔고 부윤(府尹)이 또 보내왔다.〉는 제목 아래에 “토랑의 가부가 끓인 팥죽 다시 맛을 보노라니[更啜兔郞佳婦饋]”라는 말이 나오는데, 부추는 바로 종덕이다. 그동안 종덕의 생년(生年)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었는데, 목은이 19세인 충목왕(忠穆王) 2년(1346)에 결혼하였고, 차남 종학(種學)이 목은 34세인 공민왕(恭愍王) 10년(1361)에 태어난 점을 감안하면, 종덕의 생년은 신묘년인 충정왕(忠定王) 3년(1351)이 아닌가 추정된다. 참고로 소식(蘇軾)이 기묘년에 태어난 아우 소철(蘇轍)을 묘군(卯君)이라고 불렀던 예도 보인다. 《蘇東坡詩集 卷37 子由生日云云》
[주D-002]좌소(左蘇) : 고 려 때 삼소(三蘇)의 하나로 백악산(白岳山) 일대에 있던 신경(新京)을 말한다. 삼소는 고려 때 지리 쇠왕설(地理衰旺說)을 주장하는 도참(圖讖) 사상의 영향을 받아 국가의 기업(基業)을 연장시킬 목적으로 개경(開京) 주위에 설치한 좌소 백악산과 우소(右蘇) 백마산(白馬山)과 북소(北蘇) 기달산(箕達山)을 말한다.
[주D-003]경릉(慶陵) : 충렬왕(忠烈王)의 능호(陵號)이다.
기사(紀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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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풍한을 겁내는 줄 노처가 잘 알고서 / 老妻知我畏風寒
꿰매 보낸 솜적삼이 따뜻하고도 편안하네 / 縫送綿衫燠且安
병골은 자유롭다마는 피부는 이미 쭈글쭈글 / 病骨自由皮已皺
올해도 또 이렇게 한 해가 저물려 하는구나 / 今年又是歲將闌
지팡이 짚고 손님과 산 구경도 할 수 있고 / 望山與客堪扶杖
안장에 앉아 눈 뚫고서 스님을 찾아갈 수도 / 冒雪尋僧可跨鞍
춥고 배고픈 우리 백성 볼 수 없게만 된다면야 / 得見吾民無凍者
오경에 대루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 없으련만 / 五更待漏亦何難
[주D-001]춥고 …… 없으련만 : 성 군(聖君)을 도와 태평 시대를 이룰 수만 있다면, 추운 새벽에 출근하여 대루원(待漏院)에서 조회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어려울 것이 없으리라는 말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나이 오십에는 비단이 아니면 따뜻하지 않고, 나이 칠십에는 고기가 아니면 배부르지 않다. 따뜻하지 못하고 배부르지 못한 것을 소위 춥고 배고프다고 표현하는데, 옛날 문왕의 백성 중에는 춥고 배고픈 늙은이가 있지 않았다.[五十非帛不煖七十非肉不飽 不煖不飽 謂之凍餒 文王之民 無凍餒之老者]” 하였다. 《孟子盡心上》 또 소식(蘇軾)의 시에 “새벽 조회 시간 기다리느라 신발에 서리 가득한 벼슬살이보다는, 한여름 해가 높이 솟도록 늦잠을 자며 북창의 시원한 바람을 즐기는 게 낫지 않으랴.[五更待漏靴滿霜 不如三伏日高睡足北窓涼]”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14 薄薄酒》
자은(慈恩) 도당(都堂)을 장의사(藏宜寺)로 찾아가서 앞서의 운으로 시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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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마을 기식함은 임금님 못 잊어서인데 / 寄食東村爲愛君
서쪽 산 스님 찾으려고 다시 구름 길 뚫었다오 / 尋僧西嶺更穿雲
세상 인연과 도의 맛이 하나로 돌아가는 이곳 / 世緣道味同歸處
하늘과 땅의 연못 속에 달그림자가 나뉘었네 / 上下池中月影分
이 시중(李侍中)을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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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에 남아 지키시던 우리 이 시중 / 留守松都李侍中
내일 아침엔 알현하러 백악의 행궁으로 / 來朝柏岳謁行宮
애달퍼라 병도 많은 옥당의 이 노인은 / 自憐多病玉堂老
외진 곳에서 뒤따라 좇을 길이 없으니 / 僻處無由趨下風
사직이 이미 돌아간 천재일우의 성군이요 / 社稷已歸千載聖
의관이 모두 귀부한 한 시대의 웅걸이라 / 衣冠共附一時雄
중흥을 이루려면 다른 방법이 또 있을까 / 重興的是非他術
장상이 서로 친해야 세도가 융성해진다오 / 將相交驩世道豐
[주D-001]장상(將相) : 이성계(李成桂)와 목은 자신을 가리킨 말이다.
정종지(鄭宗之)가 그의 아들 응두(應斗)와 함께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싸 가지고 와서 대접을 하고 또 상탑(床榻)을 선물로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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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 斯文不墜地
우리 벗이 과감히 스승으로 나섰도다 / 吾友敢爲師
벼슬길에서 쫓겨난 날이 많았으니 / 廢黜已多日
은혜를 받는 때도 있어야 하고말고 / 遭逢應有時
대를 이어 내려오는 친한 교분 속에 / 論交世相厚
자제를 보아도 예법에 흠이 없구나 / 見子禮無虧
진번의 걸상을 또 선물로 주었으니 / 更送陳蕃榻
높이 걸어 놓고서 누굴 기다릴거나 / 高懸欲待誰
[주D-001]사문(斯文)이 …… 나섰도다 : 정 종지 즉 정도전(鄭道傳)이 유학(儒學)의 진흥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고 인재를 기르는 성균관의 직책을 떠맡았다는 말이다. 당(唐)나라 유종원(柳宗元)의 〈답위중립논사도서(答韋中立論師道書)〉에, 괜히 스승으로 자처하여 세상의 비난을 사려고 하지 않는 때에 유독 한유(韓愈)가 과감하게 나서서 사설(師說)을 짓고 안색을 엄하게 하며 스승으로 나섰다는 ‘항안위사(抗顔爲師)’의 내용이 나온다.
[주D-002]대를 …… 속에 : 정도전의 부친 정운경(鄭云敬)이 목은의 부친 가정(稼亭)과 친하게 지낸 인연으로 정도전이 목은의 문하에서 수학한 것을 말한다.
[주D-003]진번(陳蕃)의 걸상 : 후한(後漢)의 진번이 다른 손님은 일체 접대를 하지 않다가, 현인 서치(徐穉)가 오기만 하면 특별히 걸상 하나를 내려놓고 환담을 하고 그가 가면 다시 올려놓았다는 현탑(懸榻)의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卷53 徐穉列傳》
어젯밤에 상당공(上黨公)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새벽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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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우리로 하여금 함께 풍류 즐기면서 / 天敎我輩共風流
외로운 절조 지키며 상종케 한 지 몇몇 해 / 孤節相從已數秋
남경에 호가한 것만도 참으로 큰 행운인데 / 扈駕南京眞大幸
동리에 이웃하였으니 또한 멋진 흥치로세 / 卜隣東里又高游
한중의 시는 못 지어 드려 빚으로 남았소만 / 文章尙負閑中債
충의만은 죽은 뒤에야 그만두리라 기약하오 / 忠義終期死後休
술을 얻으면 부지런히 병촉유를 해야지요 / 得酒且當勤秉燭
그밖에는 나의 시름 일으킬 일이 없소이다 / 更無餘事惹吾愁
[주D-001]병촉유(秉燭游) : 밤 에 촛불을 손에 쥐고 노닌다는 뜻으로, 무상한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실컷 즐기자는 의미로 흔히 쓰인다. 고시(古詩)에 “사는 나이는 백 년도 채우지 못하면서, 항상 천 년의 시름을 품고 있구나. 낮은 짧고 밤이 긴 것이 괴로우니, 어찌 촛불 손에 쥐고 노닐지 않을쏜가.[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 晝短苦夜長何不秉燭游]”라는 구절이 나온다. 《文選 卷29 古詩19首》
대사(大舍)가 두부를 구해 와서 먹여 주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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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맛없는 채소국만 먹다 보니 / 菜羹無味久
두부가 마치도 금방 썰어낸 비계 같군 / 豆腐截肪新
성긴 이로 먹기에는 두부가 그저 그만 / 便見宜疏齒
늙은 몸을 참으로 보양할 수 있겠도다 / 眞堪養老身
오월의 객은 농어와 순채를 생각하고 / 魚蓴思越客
오랑캐 사람들의 머리 속엔 양락인데 / 羊酪想胡人
이 땅에선 이것을 귀하게 여기나니 / 我土斯爲美
황천이 생민을 잘 기른다 하리로다 / 皇天善育民
[주D-001]오월(吳越)의 …… 생각하고 : 오 군(吳郡) 출신인 진(晉)나라 장한(張翰)이 낙양(洛陽)에서 벼슬을 하다가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불현듯 고향의 순챗국[蓴菜羮]과 농어회(鱸魚膾) 생각이 나서 벼슬을 버리고 곧장 귀향했던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92 文苑列傳張翰》
[주D-002]오랑캐 …… 양락(羊酪)인데 : 유목민들에게는 양락이 최고의 음식이라는 말인데, 양락은 양의 젖으로 만든 타락죽(駝酪粥)을 말한다.
이호연(李浩然)이 한림(翰林)으로 있는 아들을 데리고 술과 음식을 가지고 와서는 밤이 되어서야 돌아갔기에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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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의 호탕한 기운 유림을 뒤덮는 가운데 / 浩然豪氣蓋儒林
세상 길 미끄러지면서도 곧바로 오늘까지 / 蹭蹬風塵直至今
단지 하나 사문의 은혜와 의리가 있는지라 / 只有斯文恩義在
영일을 말할 때면 눈물이 옷깃을 적시누나 / 每談迎日淚沾襟
교분은 내가 또 타인에 비할 바가 아닌 터 / 論交我又非他比
멋진 시구로 그대와 함께 읊을 자 누구일까 / 得句誰能與子吟
술과 고기 들고 온 정 새삼 중하기만 한데 / 牛酒特過情更重
천금 같은 아들을 또 손잡고 데려 왔구려 / 携來況復是千金
[주D-001]호연(浩然)의 …… 오늘까지 : 호연은 이집(李集)의 자(字)로, 그의 호는 둔촌(遁村)인데, 《목은문고》 제1권 〈둔촌기(遁村記)〉에 이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
[주D-002]단지 …… 적시누나 : 이 집은 목은(牧隱) 이색(李穡),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등 이른바 삼은(三隱)과 교분이 두터웠는데, 정몽주에 대한 일을 이야기할 때면 눈물을 흘리곤 했다는 말이다. 영일(迎日)은 정몽주의 본관이다.
어제 호연(浩然)과 함께 제정(霽亭)을 방문하기로 약속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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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들 모두가 세상을 떠나시고 / 耆舊彫零盡
하늘이 제정 한 분 남겨 두셨네 / 天留一霽亭
그 교화 흠뻑 받은 것은 오직 소자뿐 / 歆風唯小子
명성이 달 가까이 있는 것과 같았다오 / 伴月似明星
강물은 비단 띠가 횡으로 이어지고 / 江水橫羅帶
구름 산은 깁 병풍을 펼쳐 놓은 때 / 雲山列錦屛
서로 손 잡고 좌하에 절을 올려야만 / 相携拜床下
내 마음이 비로소 안정을 얻겠도다 / 始得我心寧
[주C-001]제정(霽亭) : 이달충(李達衷)의 호이다.
[주D-001]그 교화 …… 같았다오 : 목 은이 벼슬길에서 이달충의 도움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았다는 말이다. 명성 즉 금성(金星)을 새벽에는 계명(啓明)이라 하고 저녁에는 장경(長庚)이라 하는데, “금성이 달에 가까이 있는 것을 ‘장경 반월(長庚伴月)’이라고 하는바, 이것은 관복(官福)이 한 몸에 모여드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말이 있다. 《星命總括 卷中》
계장(契長) 최원유(崔元濡)가 어사(御史)인 자제를 이끌고서 술과 고기를 가지고 나를 찾아왔기에 한공(韓公)의 집으로 가서 배불리 먹고 취한 다음에 서로 헤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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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술을 쉽게 얻을 수 있으리오 / 淸樽非易得
저민 고기 또한 구하기 어려운 일 / 大胾亦難求
적막해라 썰렁한 나의 궁한 거처 / 寂寞窮居冷
짧은 햇빛 머무르면 즐겁기만 해 / 懽忻短景留
보국과 견줄 만한 시인의 명성이요 / 詩名齊輔國
형주보다 중한 인망을 지니신 분 / 物望重荊州
한산자가 유독 부끄러울 수밖에요 / 獨愧韓山子
백 척의 누대에서 소리 높이 읊었으니 / 高吟百尺樓
[주D-001]보국(輔國)과 …… 분 : 최 계장의 시는 당(唐)나라의 시인 최 보국(崔輔國)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한공의 인망은 당나라의 한 형주(韓荊州)보다도 더 중하다는 말이다.
한유항(韓柳巷)과 함께 대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제공(諸公)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어젯밤에 눈이 조금 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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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래에 옥촉이 꽤나 조화를 잃었는데 / 年來玉燭頗乖和
목은 선생은 이제 늙었으니 어떡하나 / 牧隱先生奈老何
소춘이 박두한 때에 눈이 조금 내렸으니 / 已近小春微有雪
내년에 크게 흉년 들 걱정은 없겠구만 / 不憂來歲大無禾
하늘 낮은 궁중 안에선 옥 술잔을 기울이고 / 天低紫闥傾金斝
햇빛 받는 저택엔 말 방울 소리들 울리렷다 / 日照朱扉簇玉珂
우스워라 백성 걱정 옛날 습관이 남아 있어 / 自笑憂民餘習在
매번 길흉 점치면서 긴 노래 지어 부르다니 / 每占休咎發長歌
[주D-001]연래에 …… 어떡하나 : 음 양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게 하여 계절에 따라 알맞은 기후가 펼쳐지도록 하는 것이 재상의 임무인데, 날씨가 계속 시절에 맞지 않는 이때를 당하여 목은은 늙어서 국정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어떻게 하겠느냐는 뜻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옥촉(玉燭)은 사시(四時)의 기운이 화창하게 펼쳐지는 것으로, 보통 태평성대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주D-002]소춘(小春) : 겨울철 첫달은 그래도 봄처럼 온화한 기운이 남아 있다고 해서 음력 10월을 소춘 혹은 소양춘(小陽春)이라고 불렀다.
기사(紀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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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동복들이 춥다고 다투어 아우성 / 曉來僮僕競呼寒
홑옷으로 어렵게 또 한 해를 보내게 되었다나 / 又値衣單卒歲難
묵은 솜 짧은 옷에 바람은 거세게 몰아치고 / 故絮短綿風發發
깨진 창 뚫린 벽에 긴 밤은 끝없이 이어지네 / 破窓疏壁夜漫漫
잘 사는 기술 없는 것이 과연 누구의 탓인고 / 治生無術是誰過
타고난 운명 다르다고 항상 자위할 따름일세 / 賦命不同常自寬
아침저녁 밥 짓는 연기 그래도 다행 아닌가 / 尙幸炊煙朝暮起
게다가 또 친구들이 먹을 것 보내 주는데야 / 況兼親舊送盤飡
소년 시절 연경에 달려가 유학할 그 당시엔 / 少年游學走燕京
집 생각 간혹 했어도 마음이 매우 가뿐했지 / 縱或思家亦甚輕
늙고 병든 지금 혼자서 자는 게 당연한 일 / 老病如今宜獨宿
있고 없는 분수 따라 서로들 살아갈 수밖에 / 有無隨分共治生
경계가 순하면 탈이 없는 줄 잘 알고말고 / 固知順境心無累
다행이로세 태평성대 녹봉 받는 이 영예여 / 幸際昌辰祿以榮
여기에 또 밤새도록 중궤의 길함만 얻는다면 / 更得終宵中饋吉
송가를 지어 태평 시대 보답할 수도 있으련만 / 庶將歌頌答昇平
[주D-001]경계가 …… 알고말고 : 자 신이 처한 환경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거역하지 않으면 마음속에 갈등을 빚을 일도 없게 되리라는 말이다. 참고로 《목은시고》 제28권 〈유감(有感)〉에 “경계가 많이 순해짐을 점차 느끼는 늙은 나이, 신명은 정직하니 고충을 보살펴 주시리라.[漸覺老年多順境 神明正直保孤忠]”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2]중궤(中饋)의 길함 : 아 내가 남편을 위해 술과 음식을 장만해서 먹여 주는 것을 말한다. 중궤는 《주역》 가인괘(家人卦) 육이(六二)에 “집 안에 거하면서 밥을 먹여 주면 마음이 곧아서 길하리라.[在中饋 貞吉]”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아내의 내조를 뜻하는 말로 곧잘 쓰인다.
병풍(屛風)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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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 가지 위에 따스한 바람이 솔솔 / 杏花枝上暖風微
새들이 서로 따르며 쪼고는 또 푸르릉 / 燕雀相隨啄又飛
병풍에 기대어 아무리 보아도 안 질려 / 閑倚小屛看不足
소춘이 동할 때에 봄 볕이 하 좋으니까 / 小春將動好陽暉
[주D-001]소춘(小春) : 겨울철 첫달은 그래도 봄처럼 온화한 기운이 남아 있다고 해서 음력 10월을 소춘 혹은 소양춘(小陽春)이라고 불렀다.
8일 동짓날에 한 청성(韓淸城)이 팥죽과 꿀을 보냈는데, 그 뒤를 이어 부추(副樞)가 들고 왔고 부윤(府尹)이 또 보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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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옹이 팥죽 보낸 것은 송경 때와 같다마는 / 隣翁送粥似松京
부윤이 마음을 써 주다니 기쁘고도 놀라워라 / 府尹得來喜且驚
토랑의 가부가 끓인 팥죽 다시 맛을 보노라니 / 更啜兔郞佳婦饋
태배의 노친에 대한 정이 어떠한지 알겠도다 / 可知鮐背老親情
우리 민간의 멋진 풍속 이만하면 인수의 나라 / 鄕風俗禮稍仁壽
절물의 시구를 보아도 모두 태평의 노래로세 / 節物詩聯寫大平
이 일이 남경과 더불어 응당 고사가 될 것이니 / 應與南京爲故事
반심의 우리 시골집도 덩달아 이름을 전하리라 / 班心村舍亦傳名
[주D-001]토랑(兔郞)의 가부(佳婦) : 목 은의 큰며느리를 말한다. 토랑은 목은이 묘년(卯年)에 태어난 아들을 사랑스럽게 부른 말로, 장남 종덕(種德)을 가리킨다. 《목은시고》 제33권 〈8일 동짓날에 한 청성(韓淸城)이 팥죽과 꿀을 보내오고, 부추(副樞)가 잇따라 가지고 왔다.〉는 제목 아래에 “다시 토랑의 가부가 조리한 팥죽을 먹었다.[更啜兔郞佳婦饋]”라는 말이 나오는데, 부추는 바로 종덕이다. 그동안 종덕의 생년(生年)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었는데, 목은이 19세인 충목왕(忠穆王) 2년(1346)에 결혼하였고, 차남 종학(種學)이 목은 34세인 공민왕(恭愍王) 10년(1361)에 태어난 점을 감안하면, 종덕의 생년은 신묘년인 충정왕(忠定王) 3년(1351)이 아닌가 추정된다. 참고로 소식(蘇軾)이 기묘년에 태어난 아우 소철(蘇轍)을 묘군(卯君)이라고 불렀던 예도 보인다. 《蘇東坡詩集 卷37 子由生日云云》
[주D-002]태배(鮐背) : 복어의 껍질처럼 살가죽이 여위고 거칠어진 것을 말하는데, 노인을 형용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주D-003]인수(仁壽)의 나라 : 태 평성대를 구가하는 점잖은 군자의 나라라는 뜻이다. 《논어》 옹야(雍也)에 “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장수를 누린다.[仁者壽]”라는 말이 나오고, 《한서(漢書)》 권22 예악지(禮樂志)에 “온 세상의 백성들을 인도하여 인수의 경지로 끌어 올린다.[驅一世之民躋之仁壽之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4]반심(班心) : 어 사(御史)가 있는 곳을 말한다. 소식(蘇軾)의 시에 “번구의 추억은 처량하게 묵은 자취 되었는데, 반심에 우뚝 돋보이게 장대한 몸을 드러냈네.[樊口淒涼已陳迹 班心突兀見長身]”라는 구절이 있는데, 자주(自註)에 “어사가 서 있는 곳을 대리(臺吏)들이 반심이라고 한다.”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29 次韻張舜民自御史出倅虢州留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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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활한 선비에게까지 하사한 소춘의 당반이여 / 小春唐飯賜迂儒
은혜가 해동까지 미쳐 춤추며 뛸 듯 기쁘도다 / 蹈舞恩榮洽海隅
우물 밑에서 하나의 양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 井底一陽才動盪
인간 만물이 벌써부터 발그레 혈색이 도는구나 / 人間萬物已敷腴
시절을 따라 성대히 펼쳐지는 군신 간의 예악이요 / 君臣禮樂隨時盛
세상에 유달리 빛을 발하는 우리 부자의 공명이라 / 父子功名照世殊
골수에 스민 성상의 은혜 두 번 절을 올리노니 / 再拜聖恩醺骨髓
지금은 강호로 떠나는 꿈을 꾸는 일도 없겠네 / 只今無夢到江湖
[주C-001]나연(那衍) : 왕공(王公) 혹은 장관(長官)을 의미하는 몽고어 ‘noyan’의 음역(音譯)으로 보통 귀족을 뜻한다. 나안(那顔), 나연(那延), 나연(那演) 등으로도 음역된다.
[주C-002]당반(唐飯) : 수수밥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수수처럼 붉은 팥밥의 의미로 쓰였다.
[주D-001]소춘(小春) : 보 통은 음력 10월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음기(陰氣)가 물러가고 양기(陽氣)가 발동하기 시작하는 겨울의 계절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초학기(初學記)》에 “겨울철에 양기가 발동하면서 만물이 귀의할 곳을 얻게 되는바, 그 기운이 봄처럼 따뜻하게 되기 때문에 소춘 혹은 소양춘(小陽春)이라고 한다.”는 말이 나온다.
[주D-002]우물 …… 시작하자 : 순 음(純陰)의 달인 10월을 지나 복괘(復卦)에 해당하는 동짓달에 이르러 일양(一陽)이 시생(始生)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동짓달에 샘물이 일렁이기 시작한다.[仲冬之月 水泉動]” 하였는데, 소식(蘇軾)의 시에 “우물 밑에 하나의 양기가 돌아왔는지 어떤지.[井底微陽回未回]”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8 冬至日獨遊吉祥寺》
[주D-003]세상에 …… 공명이라 : 목은의 부친인 이곡(李穀)과 목은 자신이 고려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원(元)나라 제과(制科)에 똑같이 급제하여 벼슬하면서 황제의 은총을 듬뿍 받았다는 말이다.
고풍(古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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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을 다시 일으킬 수 있나 / 古人不可作
국풍은 지금 아득하기만 하여라 / 國風今杳然
공자는 왜 그리도 불우했던고 / 孔子一不遇
칠십 제자 공연히 유능했도다 / 七十徒爾賢
제로 역시 도와는 멀기만 한 채 / 齊魯遠於道
적막해라 교외 들판 연무만 자욱 / 寂寞郊墟煙
천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까지 / 至今千載下
하늘의 일월처럼 밝게 비치나니 / 日月明在天
아 마음이 같은 우리 벗들이여 / 嗟嗟我心友
그 풍도 길이 전해지게 하자꾸나 / 庶以永厥傳
인생에는 본래 운명이 있다 해도 / 人生自有數
도의야 끌고 가는 것이 있겠는가 / 道義無所牽
다만 우리가 있는 힘을 다 쏟아서 / 但當努吾力
항상 떳떳한 도리를 꼭 행할지로다 / □至理常然
[주D-001]칠십 제자 : 《사기(史記)》 권47 공자세가(孔子世家)에 “공자가 시서예악을 가르친 약 3000명의 학생 가운데 육예를 통달한 자가 72인이었다.[孔子以詩書禮樂敎 弟子蓋三千焉 身通六藝者七十有二人]”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제로(齊魯) …… 채 : 《논 어》 옹야(雍也)에 “제나라를 한 번 변화시키면 노나라의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고, 노나라를 한 번 변화시키면 선왕의 도의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다.[齊一變至於魯 魯一變至於道]”라고 공자가 기대하면서 자신감을 표출했던 말이 나오는데, 끝내는 공자가 이를 시험해 보지 못하였다.
[주D-003]도의(道義)야 …… 있겠는가 : 누 가 이끌어 주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도의를 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참고로 송(宋)나라 사마광(司馬光)의 〈독락원기(獨樂園記)〉에 “명월이 때맞춰 떠오르고 청풍이 절로 불어오면, 이끄는 것이 없어도 그쪽으로 가게 되고 붙잡는 것이 없어도 멈추게 된다.[明月時至 淸風自來 行無所牽 止無所抳]”라는 말이 나온다.
또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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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면 동쪽 창문 환히 밝아 오고 / 日出東窓明
해가 지면 서쪽 창문 어둑어둑해지고 / 日入西牕昏
찬바람에 백발만 목덜미에 나부낄 뿐 / 白髮颯飄領
엄동설한에 언제나 문 닫고 앉아 있네 / 嚴寒長閉門
대내(大內)에 들어가서 사은하고 돌아와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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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으로 자사를 절하게만 하였는데 / 鼎肉徒令拜子思
지금은 누가 빈사의 처우를 얻고 있나 / 至今誰得處賓師
보잘것없는 말학은 정말 얼마나 다행인고 / 區區末學眞多幸
정중한 선조께서 끼쳐 주신 바 있으시니 / 穆穆先朝有所貽
대를 이은 작위와 봉군(封君)은 명인 줄 알겠다만 / 世爵就封知是命
경연에서 전대할 날은 다시 어느 때나 될꼬 / 經筵轉對復何時
백발로 앉아 생각하는 나의 평생의 일이여 / 白頭坐念平生事
기두와 같은 허명을 감히 면할 수 있으리오 / 敢避虛名斗與箕
[주D-001]정육(鼎肉)으로 …… 있으시니 : 자 사(子思)와 같은 현인도 임금으로부터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였는데, 목은 자신은 자사에 비해 학덕이 보잘것이 없는데도 선조(先朝)인 공민왕 때부터 정중하게 예우를 받은 덕택으로 지금까지도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고 있다는 말이다. 정육은 삶아서 익힌 고기를 말하는데, 자사가 노 목공(魯穆公)으로부터 정육을 자주 하사받고는 그때마다 번거롭게 절하게 하는 임금의 처사를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이는 군자를 대접하는 도리가 아니다.[非養君子之道]”라고 하면서 거절했던 고사가 나온다. 《孟子 萬章下》 빈사(賓師)는 관직이 없는데도 임금으로부터 정중한 대접을 받는 인물을 말한다.
[주D-002]기두(箕斗) : 실 제 내용은 없이 이름만 지닌 것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으로, 《시경》 소아(小雅) 대동(大東)의 “남쪽 하늘에 기성이 떠 있어도 나락을 까불 수 없고, 북쪽 하늘에 북두성이 있어도 술을 떠 마실 수 없네.[維南有箕 不可以簸揚維北有斗 不可以挹酒漿]”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일찍 일어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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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뜨끈 온돌 위에 푸근한 잠자리요 / 突熱穩眠席
창문이 훤해지면 차려 오는 밥상이라 / 牕明進食盤
몸을 잘 기르는 일 특별한 방법 없나니 / 養身無異術
성정을 따르는 외에 다른 일이 있겠는가 / 循性匪他觀
책과 칼은 사람과 더불어 늙어만 가고 / 書劍人將老
강과 산은 또 어느새 차가운 계절이라 / 江山歲又寒
가만히 읊으며 그윽한 흥취 부치노라니 / 微吟寄幽興
하늘가의 길이 끝간 데 없이 펼쳐지네 / 天際路漫漫
[주D-001]책과 …… 가고 : 책 과 칼은 옛날 선비들의 일상 소지품으로, 곧 학문과 의기를 뜻한다. 당(唐)나라 고적(高適)의 시에 “동산에 한 번 은거하여 흘려 보낸 삼십 년 봄, 책과 칼이 풍진 속에 늙어갈 줄 알았으랴.[一臥東山三十春 豈知書劍老風塵]”라는 구절이 나온다. 《高常詩集 卷5 人日寄杜二拾遺》
열악(閱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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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엔 남행하여 서원에 있었는데 / 壬寅南行在西原
오늘은 양주에서 홀로 문을 닫고 있네 / 今日楊州獨掩門
송악의 구정에 우뚝 솟은 팔대의 장관이여 / 松岳毬庭八臺聳
변함없는 묘기에 사람들 신나게 떠들겠지 / 呈才依舊萬人喧
[주D-001]서원(西原) : 청주(淸州)의 옛 이름이다.
[주D-002]팔대(八臺) : 팔 관회(八關會) 때 가무를 연희하는 무대라는 뜻으로 산대(山臺)의 별칭이다. 산대는 산대놀이를 벌이는 높다란 연극 무대로 채붕(綵棚)이라고도 하는데, 높이 50척 되는 봉래산(蓬萊山) 연화대(蓮花臺) 모양의 채색된 무대를 구정의 양쪽 편에 설치했다고 전한다. 《목은시고》 제33권의 〈동대문(東大門)에서부터 대궐 문 앞에 이르기까지 산대 잡극(山臺雜劇)의 무대가 펼쳐졌는데 예전에는 보지 못하던 것들이었다.〉에 “산대를 얽어 만든 것이 봉래산과 흡사하니, 과일 바치는 선인이 바닷속에서 오겠구나.[山臺結綴似蓬萊 獻果仙人海上來]”라는 구절이 보인다.
한 청성(韓淸城), 권 화산(權花山)과 함께 대내(大內)에 가서 문안을 올렸는데, 중관(中官)이 나와서 술을 하사하였으므로 절하고 마신 뒤에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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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원 호종하여 대궐을 옹위한 가운데 / 扈從千官擁紫宸
군의 봉호를 받은 이는 우리들 세 사람뿐 / 諸君只見我三人
하늘 가까이 전각 섬돌에 바짝 다가가서 / 昵趨殿陛璇霄近
궁중의 새 옥로술에 나란히 절을 하였다오 / 聯拜宮壺玉露新
오일에 한 번 조회하며 나부끼는 백발이여 / 五日一朝飄白髮
삼한 땅에 만고토록 봄빛을 빚어내리로다 / 三韓萬古釀靑春
태평 시대 이 기상을 누가 제대로 그려낼까 / 大平氣像誰能畫
시를 지어도 미흡해서 부끄럽기 그지없네 / 愧殺詩中寫不眞
청성(淸城)이 악모(岳母)의 주년(周年)을 맞아 송경(松京)으로 돌아가는데, 나는 병들어 바람을 쏘일 수가 없었으므로 멀리 나가서 전송하지 못한 채 창연한 심정으로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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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밝자 말 타고서 벌써 치달려 갔을 텐데 / 天明歸騎已飛騰
이불 덮은 이웃 노인은 아직도 안 일어났군 / 擁被隣翁尙未興
체력은 나이를 못 속이니 누가 뛰어넘으랴만 / 衰壯有時誰敢越
기거에 절도 없는 것은 자신도 밉기 그지없어 / 起居無節自深憎
선조를 능가한다 누구나 말하는 공의 풍류 / 風流共說公超祖
지금 흥취를 잃은 나는 절간의 중과 흡사하이 / 冷淡方知我似僧
며칠 동안 나 혼자서 어떻게 읊고 파람 불까 / 數日獨吟仍獨嘯
층층의 백운 뚫고 삼각산 드높이 꽂혀 있네 / 華山高揷白雲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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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들 불어나 뜨락을 점점 채워 가는데 / 眼見兒孫漸滿庭
노옹의 귀밑머리 어떻게 항상 검을 수야 / 老翁雙鬢肯長靑
가난해서 너희들에게 배 대추는 못 먹이고 / 貧無梨棗與爾啖
인삼 복령 달이면서 병든 몸만 부지할 뿐 / 病以蔘苓扶我寧
심지 돋우며 몇 번이나 밤비 소리 들었던가 / 剪燭幾回聞夜雨
초막 얽어 봄날의 별빛 휘감게 하고 싶어라 / 結亭終欲帶春星
뒷날 우리 자손 중에 글자 아는 자 있으면 / 雲來異日有識字
나의 기행시 읽고는 응당 눈물을 떨구리라 / 讀我紀行應涕零
[주D-001]심지 …… 들었던가 : 당 (唐)나라 이상은(李商隱)이 촉(蜀) 땅에서 지은 〈야우기북(夜雨寄北)〉 시에 “돌아올 날 묻는다만 기약을 할 수 있나, 파산의 밤비 소리만 가을 못에 넘쳐 나네. 언제쯤 창문 아래 등불을 켜고 함께 앉아, 오늘 파산의 밤비 얘기 나누어 볼꼬.[君問歸期未有期 巴山夜雨漲秋池何當共剪西窓燭 卻話巴山夜雨時]”라는 구절이 있다.
[주D-002]초막 …… 싶어라 : 두보(杜甫)의 〈야연좌씨장(夜宴左氏莊)〉 시에 “땅 밑에 숨은 물은 꽃길을 흘러가고, 봄날의 별빛은 초막을 휘감고 있네.[暗水流花徑春星帶草堂]”라는 구절이 있다.
동가군(東嘉君) 이광보(李光輔)와 상장군(上將軍) 이자안(李子安)이 찾아왔다. 정종지(鄭宗之)가 먼저 와 있다가 함께 차를 마시고 헤어진 뒤에 혼자 앉아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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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치레하던 종지는 안색이 발갛게 피어나고 / 宗之素病色敷腴
머리가 하얗던 동가는 다시 까맣게 바뀌는 중 / 髮白東嘉再黑初
호연지기 기르는 자안은 한창 의리를 축적하고 / 養氣子安方集義
인을 행하는 목은은 어리석은 이처럼 되려 하네 / 爲仁牧隱欲如愚
겨울도 반쯤 지날 무렵 한강 가에서 만난 자리 / 盍簪漢水冬將半
송도에서 헤어진 지 어느덧 한 달이 넘은 때라 / 分袂松都月已餘
모이고 흩어짐은 원래 하늘이 정해 준 것 / 聚散自來天所賦
다시 어느 곳에 모여 함께 찻잔을 기울일까 / 更於何處共茶甌
[주D-001]종지(宗之) : 정도전(鄭道傳)의 자(字)이다.
[주D-002]호연지기(浩然之氣) …… 축적하고 : 자 안(子安)은 이숭인(李崇仁)의 자인데, 이집(李集)이 집의(集義)의 집(集)으로 이름을 삼고 호연지기의 호연(浩然)을 취하여 자신의 자로 삼은 데 대하여, 이숭인이 해설을 해 준 내용이 《목은문고》 제1권 〈둔촌기(遁村記)〉에 나온다. 또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호연지기를 설명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중에 “그 기운은 의리가 몸 안에 축적된 결과 나오는 것이다.[是集義所生者]”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인(仁)을 …… 하네 : 공 자에게 수제자 안연(顔淵)이 인에 대해서 묻자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대답해 주었는데, 안연에 대해서 공자가 “내가 종일토록 그와 이야기를 해도, 그는 반문하는 일도 없이 어리석은 사람처럼 듣고만 있다.[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라며 찬탄한 말이 나온다. 《論語 爲政》
문생(門生)인 하 판사(河判事)가 진양(晉陽)으로 돌아가겠다면서 하직 인사를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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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친이 권력을 장악한 지 십 년이 넘건마는 / 姻親秉國十餘年
자네는 아직도 판사의 줄에서 배회하는구나 / 汝尙低回判事聯
하늘이 정한 일이리니 운명을 또 어찌하랴 / 命也奈何天數在
백발의 좌주 애달파한들 부질없는 일이로다 / 白頭座主枉相憐
강산은 적막해라 금방이라도 눈 내릴 듯 / 江山寂寞應逢雪
촌락은 쓸쓸해라 밥 짓는 연기도 보이잖네 / 墟落蕭條不見煙
말 타고 기행시 짓는 것이 유자의 일이거니 / 鞍馬紀行儒者事
시사를 기록해 전현의 뒤를 이어 보려무나 / 要將詩史繼前賢
[주C-001]진양(晉陽) : 진주(晉州)의 옛 이름이다.
[주D-001]시사(詩史) : 마치 사관(史官)처럼 사회적 사건을 기록하면서 역사적인 의미를 그 속에 담은 시 작품을 말한다. 두보(杜甫)가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만나 농촉(隴蜀)에 떠돌면서 기록한 시를 두고 당시에 시사라고 일컬었다.
자영(自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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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뜨는 나라 서쪽 끝의 오활한 선비 하나 / 扶桑西畔一迂儒
중원을 달렸던 몸이 사해의 구석에서 늙네 / 曾走中原老海隅
높디높고 희디흰 것도 우리 무리 아니지만 / 皦皦嶢嶢非我輩
시끄럽고 요란한 것은 또 누구네 패거리인고 / 紛紛擾擾是誰徒
조정의 의례는 참된 군자에게나 걸맞은 일 / 朝儀只在眞君子
시장 이익을 끝내 비루한 사내가 차지하네 / 市利終歸賤丈夫
백발에 벼슬 못 버릴 줄 나도 잘 안다마는 / 白髮自知抛不得
강호에 가득 아득히 이는 감흥은 어떡하나 / 渺然情興滿江湖
[주D-001]높디높고 …… 아니지만 : 혼자 고상한 척 뻐기는 사람들을 풍자하는 말이다. “높디높은 것은 허물어지기 쉽고, 희디흰 것은 더럽혀지기 쉽다.[嶢嶢者易缺 皦皦者易汚]”라는 말이 있다. 《後漢書 卷61 黃瓊列傳》
[주D-002]시장 …… 차지하네 : 소박하게 물물교환하는 시장에 비루한 사내[賤丈夫]가 나타나더니 술수를 써서 이익을 독점했으므로 세금을 징수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맹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나온다.
촌가(村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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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가 살다 시골 마을 와서 / 居鄕從世上
예전 규모대로 집 하나 얽었나니 / 結屋案前規
네 모퉁이 완전히 입 구 자 모양 / 四角全如口
중심선은 가느다랗기 눈썹이로세 / 中心細似眉
문은 앞산을 마주 대할 수 있게 / 門從山作對
창은 달님이 찾아와 엿볼 수 있게 / 牕可月來窺
내가 여기에서 길이 살고 싶나니 / 我欲遂居此
소도 시를 알아듣게 해 주리로다 / 應敎牛解詩
[주D-001]네 모퉁이 …… 눈썹이로세 : 정사각형의 모양을 갖춘 지붕의 중앙에 있는 선이 허공 속에 마치 가느다란 눈썹처럼 흘러내렸다는 말이다.
궁전 뜨락에서 의식(儀式)을 예행 연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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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자시 반의 시절을 맞게 되면 / 歲歲子之半
군신이 뜻을 정밀하게 가다듬는 법 / 君臣精意時
차가운 날씨에 술맛을 먼저 보고 / 天寒嘗酒味
해질 녘에 조정 의례를 연습했다오 / 日晏習朝儀
내가 예전에 홀을 쥐고 섰을 적엔 / 伊我曾拖笏
누군들 하사한 술 마시지 않았으랴 / 其誰不盡巵
남경에서 송악의 하늘 바라보면서 / 南京望松岳
옛날 일 생각에 홀로 시를 읊노매라 / 懷古獨吟詩
[주D-001]자시(子時) 반(半)의 시절 : 동지(冬至)를 말한다. 동짓날 한밤중 자시 반에 일양(一陽)이 시생(始生)한다는 송유(宋儒) 소강절(邵康節)의 학설이 있다.
조금 비가 뿌리기에 감회를 서술하다.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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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해에 성근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 疏雨洒白日
푸른 하늘에 조각구름 떠 가는구나 / 片雲行碧天
홀연히 뒤바뀐 산과 강의 모습 보고 / 山川忽改觀
대우 맞춰 나는 또 시 하나 지었도다 / 對偶又成篇
마음에 걸림 없어진 지 이미 오래전 / 久矣心無累
신선의 뼈 되려나 가뿐하게 날아갈 듯 / 翛然骨欲仙
뜨내기 인생의 마음에 맞는 이 경지를 / 浮生得意處
속인에게 전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우리 / 難與俗人傳
출중한 인재들 원래 호걸스럽지만 / 羣材自豪傑
음양의 변화도 역시 영령하다 하리 / 二氣亦英靈
머리칼은 눈을 상대로 흰빛을 다투고 / 髮與雪爭白
눈은 산색을 머금고 다 함께 푸르러라 / 眼將山共靑
물을 잔뜩 삼켰는지 우중충한 하늘이요 / 太空呑積水
흐르는 번갯불 따라 명멸하는 경치로다 / 迅景逐流霆
홀로 초연히 서서 파람 한 번 부노라니 / 一嘯立於獨
구름 끝에서 빗방울이 점점이 떨어지네 / 雲端疏雨零
[주D-001]홀로 …… 부노라니 : 《장자(莊子)》 전자방(田子方)에 “외물도 떨쳐 버리고 인간 세상도 벗어나서 홀로 초연히 서 있는 듯하다.[似遺物離人而立於獨也]”라는 말이 나온다.
목빙(木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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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에 재이가 자못 줄을 잇는 가운데 / 春秋災異頗相仍
목빙도 성인께서 분명히 기록하셨도다 / 聖筆明書尙木氷
예로부터 인사에 따라 천심을 보이는 법 / 自古天心在人事
중니의 신령스런 교화 어느 때나 일어날까 / 仲尼神化幾時興
언뜻 보니 나무숲이 흰 상복을 입었더니 / 乍見樹林爲縞素
다시 보니 산언덕에 갑옷 투구 덮였도다 / 還如介冑被崗陵
한거하며 경물을 읊는 뜻이 또 없지 않나니 / 閑居詠物非無意
그 누가 화기로 상서를 빚어낼 수 있을는지 / 和氣致祥誰所能
[주D-001]목빙(木氷)도 …… 기록하셨도다 : 목 빙은 비, 눈, 서리 등이 나무에 맺혀 있다가 추위를 만나 얼음으로 굳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춘추(春秋)》 성공(成公) 16년 조(條)에 “나무의 빗방울이 얼음으로 굳어 맺혔다.[雨木氷]”라는 기록이 보이는데,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과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에서 각각 “뜻밖의 재이(災異)를 기록한 것이다.” 하였다.
[주D-002]중니(仲尼)의 …… 교화 : 성 인이 이르는 곳마다 백성들 모두가 감화되어 영원히 그 정신의 영향을 받게 되는 이른바 과화존신(過化存神)의 교화를 말한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지나가는 곳마다 교화가 되고, 머물러 있는 곳마다 신령스럽게 변화된다.[所過者化所存者神]”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언뜻 …… 덮였도다 : 난 세가 평정된 뒤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기를 갈망하는 목은의 뜻이 은연중에 담겨 있는 표현으로 보인다.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군대를 출동시켜 항우(項羽)를 칠 적에 제후(諸侯)들에게 “항우가 의제(義帝)를 죽여 대역무도한 죄를 지은 만큼, 과인이 친히 발상(發喪)을 할 것이니, 제후들도 모두 흰색의 상복으로 갈아입도록 하라.”라고 명했던 고사가 있다. 《史記 卷8 高祖本紀》
기사(紀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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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물에 진흙 이겨 벽 틈을 때웠나니 / 熱水和泥補壁間
추위에 떠는 동복의 얼굴이 안쓰러워서 / 只緣僮僕凍愁顔
노옹은 조그만 새 정자를 언제나 가져볼까 / 老翁狂甚新亭小
눈 내린 뒤의 사방 산 바라보기에 좋을 텐데 / 雪後還宜望四山
대회(大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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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01]광음은 …… 생생해서 : 《목은시고》 제20권 〈대회가 열린 날에 밤에 돌아오다.[大會日 夜歸]〉에 “다시 팔관회에 나아가 직접 헌수하였다.[更向八關親獻壽]”라는 말과 “감귤 품고 꽃 꽂은 위에 음식을 또 하사받았다.[懷橘簪花賜飯廳]”라는 말이 나온다.
화산군(花山君) 권공(權公), 전 밀직(密直) 이공(李公)과 함께 대내(大內)에 가서 문안을 올렸는데, 도당(都堂)에서 불러 공사(公事)를 의논하고는 당식(堂食)을 차려 주기에 술과 밥을 실컷 먹고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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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안 인사 닦으러 대내에 들어갔나니 / 詣內修朝禮
듬성듬성한 머리칼 마치 서리 내린 듯 / 蕭蕭鬢似霜
술 내리신 은혜에 절을 올린 뒤에 / 蒙恩拜宣醞
국사를 의논하러 도당에 모였다오 / 議事集都堂
물 빠진 사람 구하려면 배와 노가 필요하고 / 求溺須舟楫
기우는 집 세우려면 기둥과 들보가 있어야지 / 扶傾要棟梁
하늘이 도와주실 것을 분명히 알겠노니 / 明知天道在
국가의 원로가 아직도 건강하게 계시니까 / 國老尙康强
달빛을 타고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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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의 동쪽 끝 양주 땅에 올 때까지 / 馬場東畔是楊州
넓은 들판 질펀하게 흘러내리는 달그림자 / 大野茫茫月影流
두 분을 목송하였나니 모습이 멀어질 때까지 / 目送兩公行色遠
내 집도 마다 않고 달빛이 머리에 부서지네 / 不嫌吾屋打吾頭
차득(借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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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이 빌려 와서 화로로 대신 쓰고 / 借得童盆作火爐
큰 항아리 속에는 조호미를 담았다오 / 仍將大甕貯雕胡
손자들은 번갈아 와서 대추 밤 졸라대는데 / 諸孫迭索棗兼栗
늙은 할배는 그저 책과 그림만 훑어볼 뿐 / 老我流觀書又圖
이욕으로 다툴 때는 초한의 전쟁 같다가도 / 利欲戰爭疑楚漢
화기롭게 읍양할 땐 요순 시대와 같다 할까 / 中和揖讓似唐虞
집안도 하나의 천지라서 절로 생기는 태와 비 / 一家天地自泰否
거울 대해 때때로 하얗게 센 수염만 바라보네 / 對鏡時時看白鬚
[주D-001]조호미(雕胡米) : 구황(救荒) 식물로 많이 먹었던 고미(苽米) 즉 줄풀의 열매를 말한다.
[주D-002]늙은 …… 뿐 : 한적한 전원생활을 읊은 도잠(陶潛)의 시에 “주 목왕(周穆王)의 전기를 두루 열람하고, 《산해경(山海經)》의 그림을 대충 훑어본다.[汎覽周王傳 流觀山海圖]”라는 구절이 나온다. 《陶淵明集 卷4 讀山海經》
[주D-003]태(泰)와 비(否) : 《주역》의 태괘(泰卦)와 비괘(否卦)를 말한다. 태는 하늘과 땅의 기운이 조화되어 만물이 형통하는 것을 말하고, 비는 그 기운이 통하지 않고 막힌 것을 말하는바, 영고성쇠(榮枯盛衰)의 비유로 많이 쓰인다.
혼자 웃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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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에 휘감긴 몸 군에 봉해져 집안에만 / 封君就第病纏身
편히 거하며 참된 성품 길러야만 할 텐데 / 只合安居養性眞
산림 속으로 향하진 않고 세월만 허비한 채 / 未向山林消歲月
조시를 따라다니면서 풍진 속에 섞여 있네 / 尙趨朝市混風塵
새벽별만이 나의 단심을 알아주며 깜박깜박 / 曉星獨與丹心耿
한 해의 마지막 눈과 함께 흰 머리칼 새록새록 / 臘雪仍將白髮新
노년을 맞은 내 몰골을 스스로 점검해 보건대 / 自撿老年光景了
한강 가에서 조롱박만 그리고 있는 꼴이로세 / 葫蘆□□漢江濱
[주D-001]한강 가에서 …… 꼴이로세 : 임 금의 인정을 받지 못한 채 불우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심정을 토로한 것이다. 송(宋)나라 한림학사 도곡(陶穀)이 오랜 기간 한림원에서 발휘한 자신의 재질을 자부하면서 지위가 낮은 것에 불만을 품고 은근히 승진을 바라고 있던 중에, 태조(太祖)로부터 “그가 지은 글을 보면 옛날 사람들이 지어 놓은 것을 살짝 말만 바꾼 것일 뿐이다. 이는 세상에서 말하는 ‘매달린 조롱박을 보고 그럴듯하게 본떠서 그려내는 것[依樣畫葫蘆]’일 따름이니, 그가 힘을 쓴 것이 뭐가 있다고 하겠는가.”라는 핀잔을 받자, 스스로 옥당(玉堂)의 벽에 이 내용을 반추(反芻)하면서 원망하는 시를 지어 붙여 놓았는데, 태조가 이 시를 보고는 중용하지 않으려는 뜻을 더욱 굳혔다는 고사가 전한다. 《東軒筆錄 卷1》
감진(監進) 제공(諸公)이 나에게 와서 사대 문자(事大文字)를 의논하였다. 이때 판서 유운(柳雲)이 선온(宣醞)을 받들고 이곳에 왔기에 절하고 마신 뒤에 자리를 파하였는데, 판서도 감진 중의 한 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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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뒤로 내 정신이 열에 아홉은 줄었는데 / 病後精神減九分
문서를 윤색해 달라는 제군의 부탁을 받았네 / 書詞潤色賴諸君
천자에게 올리는 글 탈고하느라 애태우다가 / 奏章脫藁心肝苦
궁중의 술이 잔에 가득 골수가 훈훈해지누나 / 宣醞盈樽骨髓醺
일월이 빛을 드리워 우주를 환하게 비춰 주고 / 日月垂光明宇宙
산천은 색을 희롱하며 연운 속에 잠긴 이때 / 山川弄色雜煙雲
중원의 길이 아직 막혀 황제를 뵙지 못하다니 / 中原尙阻朝天路
사해가 이제는 궤와 문을 같이해야 하련마는 / 四海須同軌與文
[주D-001]일월이 …… 비춰 주고 : 명나라가 중원(中原)을 장악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중원(中原)의 …… 하련마는 : 이 제 천하가 명나라에 의해 하나로 통일되어 고려도 같은 문화권에 속하게 된 만큼, 고려의 사신도 중원에 들어가서 조공(朝貢)을 바치며 교화를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중용장구(中庸章句)》에 “지금 천하가 통일되어 수레는 바퀴의 치수를 똑같이 하고 글은 문자를 똑같이 하고 있다[車同軌 書同文]”라는 말이 나온다. 당시에 명나라 사신이 고려에 왔다가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고려와 명나라의 외교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어 고려 사신의 입경(入境)을 명나라에서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경상도 안렴사(慶尙道按廉使) 여공(呂公)이 포(脯)를 보내왔기에 사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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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는 깃발 아래에 둘려 있고 / 山海縈麾下
풍진은 붓끝으로 말려 올라갔네 / 風塵卷筆端
편지 써서 어른에게 문안 인사드리며 / 修書問耆舊
아침 밥상에 건육이 오르게 하였구나 / 乾肉照朝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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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를 환히 비친 성랑의 관옥 같은 얼굴 / 省郞冠玉照茅亭
사륙문의 솜씨도 빛나 해와 별을 쏘는구나 / 四六詞華射日星
우스워라 기두와 같은 헛된 이름 지니고서 / 自笑虛名似箕斗
조어만 가지고 단청에다 견주려 하다니 원 / 只將助語擬丹靑
체두를 혹 잘못 쓰면 사람들이 비웃을 테니 / 誤書杕杜人應笑
내가 지금 당한 꼴이 의양호로와 똑같구만 / 依樣葫蘆我所丁
다행히 소손은 면했다만 부끄러워 어떡하나 / 幸免素飡深可恥
소년 때부터 경서 공부 괜히 고생만 하였구먼 / 少年辛苦枉窮經
[주C-001]표문(表文)의 …… 부탁하다 : 제 두(提頭)는 주문(奏文) 가운데 존칭이나 명호(名號)나 공유(恭惟) 등의 말이 나올 때마다 존경하는 표시로 줄을 바꿔서 쓰는 것을 말하고, 권점(圈點)은 글 가운데 잘된 곳이나 내용상 중요한 곳을 표시하기 위하여 찍는 둥근 점을 말한다. 참고로 《목은시고》 제34권 〈즉사(卽事)〉에 “중추에 항해하여 황제를 뵈어야 하는지라, 표문의 원고 작성하고 제두까지 마쳤나니.[航海朝王在仲秋表章脫藁又提頭]”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시 속에는 대체로, 서 정언이 보통 원고를 작성할 때 가장 나중에 마무리하는 제두까지 하고, 여러 사람의 검토를 마쳐 권점까지 찍은 뒤에, 나름대로는 완벽하게 작성했다고 생각하면서 목은을 찾아와 형식적으로 교정을 부탁하더라는 풍자 섞인 뜻이 들어 있지 않나 한다.
[주D-001]초가를 …… 쏘는구나 : 서 정언이 외모도 잘생긴 데다가 그가 지은 사륙문 역시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말이다. 관옥(冠玉)은 모자를 장식한 아름다운 옥을 말하는데, 미남으로 소문났던 한(漢)나라 진평(陳平)에 대해서 주발(周勃)과 관영(灌嬰) 등이 “진평이 비록 외모는 잘 생겨서 관을 장식한 옥과 같다고 할 수 있지만, 속마음까지 꼭 그렇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平雖美丈夫 如冠玉耳 其中未必有也]”라고 평한 기록이 보인다. 《史記 卷56 陳丞相世家》
[주D-002]기두(箕斗) : 실 속 없이 허명만 지닌 것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대동(大東)에 “남쪽 하늘에 기성이 떠 있어도 나락을 까불 수 없고, 북쪽 하늘에 북두성이 있어도 술을 떠 마실 수 없네.[維南有箕 不可以簸揚 維北有斗 不可以挹酒漿]”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체두(杕杜)를 …… 똑같구만 : 목 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표현으로 고쳐 주고 싶어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천박하다고 비웃을 테니, 남들이 하는 대로 상투적인 표현만 답습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체두는 《시경》 소아(小雅)의 편명인데, 당 현종(唐玄宗) 때의 권신(權臣) 이임보(李林甫)가 ‘체두(杕杜)’의 체(杕) 자를 알지 못한 나머지 이부 시랑 위척(韋陟)에게 장두(杖杜)가 무슨 말이냐고 물었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학식(學識)이 매우 천박한 것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舊唐書 卷106 李林甫列傳》 의양호로(依樣葫蘆)는 새로 짓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저 과거의 것만 본뜨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송(宋)나라 한림학사 도곡(陶穀)이 오랜 기간 한림원에서 발휘한 자신의 재질을 자부하면서 지위가 낮은 것에 불만을 품고 은근히 승진을 바라고 있던 중에, 태조(太祖)로부터 “그가 지은 글을 보면 옛날 사람들이 지어 놓은 것을 살짝 말만 바꾼 것일 뿐이다. 이는 세상에서 말하는 ‘매달린 조롱박을 보고 그럴듯하게 본떠서 그려내는 것[依樣畫葫蘆]’일 따름이니, 그가 힘을 쓴 것이 뭐가 있다고 하겠는가.”라는 핀잔을 받자, 스스로 옥당(玉堂)의 벽에 이 내용을 반추(反芻)하면서 원망하는 시를 지어 붙여 놓았는데, 태조가 이 시를 보고는 중용하지 않으려는 뜻을 더욱 굳혔다는 고사가 전한다. 《東軒筆錄 卷1》
[주D-004]소손(素飡) : 자격도 없이 자리만 차지한 채 국록을 축내고 있다는 뜻으로, 시위소찬(尸位素餐)과 같은 말이다.
주인 부부가 와서 음식을 대접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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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를 대우하는 융성한 시대 풍속 / 盛代容儒老
밝은 창 아래 주인에게 감사하노라 / 明窓謝主人
시루떡은 아직도 김이 무럭무럭 / 蒸餻氣猶熱
거른 술은 여전히 맛이 진국일세 / 壓酒味仍醇
산해의 차가운 모습 적막한 속에 / 山海寒容寂
띳집에는 새벽빛이 산뜻하기만 / 茅茨曉色新
명절이 오면 우리 함께 보내십시다 / 庶將同伏臘
나도 오래전에 풍진 세상 떠났으니 / 久已離風塵
술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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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술이 없어서는 안 되지만 / 酒不可一日無
마시는 건 반 잔도 많아서 안 된다네 / 飮不可半盞多
화기를 끌어들여 더러운 기운 씻는다면 / 導行和氣滌邪穢
은하수 끌어다 갑병을 씻는 것과 같겠지만 / 如洗甲兵挽天河
행여 입에 달아서 술주정하기에 이른다면 / 或甘於口至於酗
그 고질병 어떤 약도 고칠 수가 없는 법 / 百藥無計痊沈痾
그래서 인인과 의사는 예법으로 절제하고 / 仁人義士節以禮
광부와 호객은 푹 빠져서 화기를 잃느니라 / 狂夫豪客流失和
청산이 자리 가득 고요한 한낮일 때도 있고 / 靑山滿座白日靜
문 앞에 귀인의 수레 왕림해 마실 때도 있고 / 門前或値高軒過
신발 거꾸로 신고 맞아 이석투수할 때도 있고 / 倒屣相迎石投水
이 잡고 좌담하며 서릿발 칼날 갈 때도 있나니 / 捫虱坐談霜磨戈
이것이 과연 누구의 힘이라 할 것인가 / 是誰之力也歟哉
국생의 풍도요 국생의 포용력이로다 / 麴生之風兮麴生之薖
조정이 주연을 베풀면 천지의 기운이 서로 통해 / 朝廷燕享天地泰
상하 사방 모두가 바로 안락한 집으로 변하리니 / 六合便爲安樂窩
우리 생령을 몰아서 수역에 들어가게 하면 / 驅我生靈入壽域
이 몸도 남훈가 지어서 위에 바쳐 올리리라 / 我亦製進南熏歌
[주D-001]은하수 …… 같겠지만 : 두보(杜甫)의 “어떡하면 장사를 구해 은하수를 끌어다가, 갑옷 무기 깨끗이 씻어 길이 쓰지 않게 할까.[安得壯士挽天河 淨洗甲兵長不用]”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杜少陵詩集 卷6 洗兵行》
[주D-002]신발 …… 있고 : 반 가운 손님을 맞아 서로 의기투합(意氣投合)한 가운데 술을 마실 때도 있다는 말이다. 후한(後漢) 말에 청년 왕찬(王粲)이 장안(長安)에 와서 채옹(蔡邕)을 방문하자, 채옹이 신발을 거꾸로 신고 문으로 나아가 맞이해 들어왔는데, 왕찬의 나이가 어린 데다 용모도 단소(短小)하였으므로, 거기에 모인 빈객들이 모두 놀랐다는 고사가 전한다. 《三國志 卷21 魏書 王粲傳》 또 장량(張良)이 황석공(黃石公)의 병법을 터득하고 나서 군웅(群雄)에게 유세할 적에는 마치 물을 돌에 던지는 것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以水投石 莫之受], 한 고조(漢高祖)에게 유세를 하자 마치 돌을 물에 던지는 것처럼 모두 받아들여졌다[以石投水 莫之逆]는 이야기가 전한다. 《文選 卷53 運命論》
[주D-003]이 …… 있나니 : 때 를 만나지 못해 가슴속의 원대한 경륜을 발휘하지 못한 채 시사(時事)에 비분강개하며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술을 마시기도 한다는 말이다. 전진(前秦)의 왕맹(王猛)이 박학한 데다 병서(兵書)를 특히 좋아하였는데, 은거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동진(東晉)의 대장군 환온(桓溫)을 찾아가 천하 대사를 의논할 적에, 누더기 옷에서 이를 잡아 죽이면서 기탄없이 담론을 했던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114 王猛列傳》 또 송(宋)나라 서적(徐積)의 시에 “적요하게 한가한 곳에서 곧잘 노래를 부른다만, 가슴속엔 삼엄하게 일만 개 칼날을 지녔도다. 큰 포부 끝내는 펼치리라 스스로 말을 한다마는, 시대 상황이 결국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천금 따위는 두엄 같으니 마음속으로 원하겠소, 하나의 칼 서릿발처럼 나라 위해 갈고 있다오.[寂然閒地好絃歌胸中森森萬刃戈 自道壯圖終有用 未知時事竟如何 千金似糞無心願 一劍如霜爲國磨]”라는 구절이 나온다. 《節孝集 卷26 偶述》
[주D-004]국생(麴生) : 술의 별칭으로, 국선생이라고도 한다.
[주D-005]우리 …… 올리리라 : 백 성들 모두가 안정된 생활을 누리면서 편히 살 수 있게만 된다면, 목은 자신도 태평성대의 노래를 지어서 조정에 바치겠다는 말이다. 수역(壽域)은 인수지역(仁壽之域)의 준말로, 천수(天壽)를 다하며 살 수 있는 태평성대를 뜻하는데, 《한서(漢書)》 권22 예악지(禮樂志)에 “한 세상의 백성들을 몰아서 인수의 지역으로 인도한다면, 풍속이 어찌 성강 때처럼 되지 않을 것이며, 수명이 어찌 고종 때처럼 되지 않겠는가.[驅一世之民 濟之仁壽之域 則俗何以不若成康 壽何以不若高宗]”라는 말이 나온다. 또 순(舜) 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처음으로 만들어 남풍가(南風歌)를 지어 부르면서 “남쪽 바람 훈훈하니, 우리 백성의 수심 풀어 줄 수 있겠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오니, 우리 백성의 재산을 늘려 줄 수 있겠도다.[南風之薰兮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라고 노래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禮記 樂記》
서경(西京)의 이 소윤(李少尹)이 평계(平桂)를 보내 준 것을 감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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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계는 영락없이 널빤지 모양이요 / 平桂眞如板
소서는 또 흰 서리가 듬뿍 내린 듯 / 素書還似霜
서경의 풍속이 모조리 변한 이때 / 西京風俗變
우리 소윤의 마음 씀이 갸륵도 하이 / 少尹用心長
[주C-001]평계(平桂) : 밀 가루나 쌀가루를 반죽해서 네모진 모양으로 납작하게 빚어 바싹 말린 뒤에 기름에 튀겨 꿀을 바르고 그 위에 튀밥이나 깨고물을 앞뒤에 입힌 유밀과(油蜜果)를 말한다. 중계(中桂) 혹은 박계(朴桂)라고도 하는데, ‘중배끼’라는 우리말이 아직도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평계는 박계와 마찬가지로 우리말 ‘배끼’의 취음(取音)이 아닌가 한다. 처음에는 둥글게 만들다가 나중에는 높이 쌓지 못하는 불편함 때문에 네모지게 만들었는데, 또 《목은시고》 제20권 〈동정에게 배를 구하다.[從東亭求梨]〉라는 시에 “직강의 붉은 관복 팔관회를 비추던 때, 연석 앞에 유밀과가 산처럼 쌓였었지.[直講緋衫照八關 筵前平桂積如山]”라는 구절이 나오기도 한다. 《與猶堂全書 1集 卷24》 《雅言覺非 卷3 藥果》
[주D-001]소서(素書) : 편지의 흰 종이를 말한다. 옛날 물고기 뱃속에서 하얀 비단에 쓴 편지[素書]가 나왔다는 고사가 있다. 《文選卷27 古樂府 飮馬長城窟行》
화산군(花山君) 등 제공(諸公)과 함께 가서 판사 최원유(崔元濡)를 만나 수원 부사(水原府使) 이 계장 서원(李契長舒元)을 전별(餞別)하였는데 박 정당(朴政堂)도 와서 참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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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늙은 데다 가진 것 없는 가난뱅이 / 我老貧無物
그대는 젊은 데다 베풀기 좋아하는 사람 / 君强惠及人
부사의 깃발이 떠날 날이 다가왔으니 / 旌旄行有日
술과 고기를 이웃집에서 얻을 수밖에 / 酒肉乞諸隣
새의 날갯짓 끊어진 눈 덮인 산속에서 / 鳥絶千山雪
꾀꼬리 날아가네 봄기운 돋는 나무 위로 / 鸎遷萬木春
뒷날 역사 책의 순리열전을 찾아보면 / 他年循吏傳
꽃다운 이름 전해짐을 응당 보게 되리로다 / 會見播芳塵
[주D-001]술과 …… 수밖에 : 가 난한 목은 자신의 자조와 해학이 뒤섞인 표현이다.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누가 미생고(微生高)를 정직하다 하는가. 어떤 사람이 그에게 식초를 얻으려 하였을 때, 자기에게 없으면 없다고 해야 할 것인데, 굳이 이웃집에 가서 얻어다 주기까지 하였으니.”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02]새의 …… 위로 : 이 계장이 그동안 불우하게 보내다가 높은 자리로 승진하게 된 것을 말한다. 당(唐)나라 유종원(柳宗元)의 오언 절구 〈강설(江雪)〉에 “일천 산에는 새들의 날갯짓 끊어지고, 일만 길에는 사람의 발자취 사라졌네.[千山鳥飛絶 萬徑人蹤滅]”라는 구절이 나오고, 《시경》 소아(小雅) 벌목(伐木)에 “깊은 계곡에서 꾀꼬리 날아올라, 높은 나뭇가지 위로 옮겨 가누나.[出自幽谷遷于喬木]”라는 구절이 나온다.
어떤 일로 느껴지는 점이 있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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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가 몇 자의 발을 가로 걸어 놓아 / 誰將數尺葦簾橫
내 눈 뜨게 하는 창문의 밝음을 뺏었는고 / 奪我西牕刮眼明
발을 말아 올려 홀연히 되찾은 옛 경지여 / 卷去忽然還舊觀
이 일 하나만으로도 평생의 경계를 삼겠도다 / 看來足以戒平生
어둠 속 습기가 굳어지면 난세를 초래하고 / 從昏習久成迷亂
밝게 깨우쳐 공 쌓으면 태평 시대 이루는 법 / 納約功成致太平
발 밑에서 이 늙은이 길게 탄식하노니 / 下有老翁長太息
한사 존성할 그날은 언제나 오려는지 / 閑邪何日竟存誠
[주D-001]밝게 …… 법 : 《주 역》 감괘(坎卦) 육사(六四)에 “조촐한 술과 음식을 질그릇에 담아 노끈으로 묶어서 밝은 창문을 통해 들여보낸다.[樽酒簋貳用缶 納約自牖]”라는 말이 나오는데, 신하가 임금을 깨우칠 때 임금이 환히 보고서 잘 알 수 있는 것부터 정성을 다해 인도하는 비유로 흔히 쓰인다.
[주D-002]한사 존성(閑邪存誠) : 사악함을 방지하고 성실함을 보존한다는 뜻으로,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나온다.
부생(浮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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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우리 인생 그 누가 명을 믿으랴만 / 浮生誰信命
늘그막까지도 세상의 흐름을 붙좇다니 원 / 晚節尙趨時
길어진 밤에 읊조림이 갈수록 고달프니 / 夜永吟彌苦
추운 날씨에 아침 기상도 늦어질 수밖에 / 天寒起自遲
촌 연기 새어나오는 기울어진 기둥이요 / 村煙出欹棟
들판의 햇빛이 반사하는 성긴 울타리라 / 野日照疏籬
이만하면 그윽한 흥취 부치기에 족하련만 / 足以寄幽興
아직도 미련 못 버리고 귀거래사 읊고 있나 / 依然歸去辭
[주D-001]덧없는 …… 믿으랴만 : 모든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고서 체념하고 달관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달 25일에 판삼사(判三司)의 명을 받았기에, 조 시중(曺侍中)과 함께 숙배(肅拜)하고 나서 돌아와 이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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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의 영웅이 시중에 임명되는 때에 / 一代英雄拜侍中
미천한 이 몸 역시 판삼사를 맡게 됐네 / 判三司命及微躬
무진생 내가 먼저 백발이 된 것이 부끄러워 / 戊辰獨愧頭先白
갑자생 시중은 지금도 뺨이 불그레하건마는 / 甲子方頰尙爾紅
단지 거문고 책과 함께 한가히 날을 보냈는데 / 但與琴書閑送日
낭묘 위에서 가까이 우러러 뵐 줄을 알았으랴 / 豈期廊廟昵趨風
하기야 예로부터 정력의 쇠장을 막론하고 / 古來精力無衰壯
곧잘 큰 공 세워 중흥도 이루곤 했으니까 / 好至中興樹大功
[주D-001]한 시대의 영웅 : 조민수(曺敏修)를 말한다.
이른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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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병이 깊어 풍한을 겁내면서 / 年來病骨怯風寒
아침 내내 뜨뜻하게 이불만 덮고 지내다가 / 擁被終朝燠且安
일찍 일어나 용모를 닦자니 참으로 무리 / 早起修容眞勉强
묽은 음식도 맛이 없어 남기기 일쑤라오 / 淡飡無味每留殘
들판에 날리는 구름은 말 갈기를 따라오고 / 飛雲大野隨絲鞚
봉우리에 지는 달은 옥쟁반으로 걸린 새벽 / 落月高峯掛玉盤
시중이 먼저 출근할까 그래도 마음 안 놓여서 / 尙恐侍中先下馬
빨리 몰아 달리려니 육신이 배나 더 고되구만 / 驅馳支軆倍酸辛
합좌소(合坐所)에서 매번 먼저 나가겠다고 청하는 것이 부끄럽기에 한 수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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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당에서 맞장구만 치니 얼마나 부끄러운고 / 唯唯都堂愧十分
아침 출근 저녁 숙직 열심히 해야 마땅한데 / 朝衙夕直合勤勤
뻔질나게 뒤에 와서 먼저 나가니 어떡하노 / 奈何後入頻先出
이 또한 망녕된 인간이니 말해 무엇하리오 / 亦是妄人何足云
고기를 먹으며 초야의 습성을 따르면 되겠는가 / 肉食豈宜從野性
지위가 함께 높다 해도 천문을 살피지 않아서야 / 同尊敢不仰天文
너는 지금 늙었으니 돌아가도 좋다 하고 / 汝今老矣可歸去
동해 가에 황금이나 듬뿍 내려 주셨으면 / 倘賜黃金東海濆
[주D-001]고기를 …… 되겠는가 : 일 단 조정의 관원이 되었으면 초야에 묻혀 멋대로 지내던 때의 습관은 버려야 마땅하다는 말이다. 육식(肉食)은 보통 벼슬아치들을 낮춰 부를 때 쓰는 말로, 《춘추좌전(春秋左傳)》 장공(莊公) 10년 조(條)에 “고기 먹는 자들이 잘 알아서 할 텐데, 우리가 끼어들 일이 또 뭐가 있으리오.[肉食者謀之 又何間焉]”라는 시골 사람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
[주D-002]지위가 …… 않아서야 : 신하들 사이에서는 지위의 존비(尊卑)가 서로 같아서 혹 용인이 된다 하더라도, 하늘과 같은 임금님의 기색은 살피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주D-003]너는 …… 내려 주셨으면 : 한 선제(漢宣帝) 때 동해(東海) 난릉(蘭陵) 출신인 소광(疏廣)이 태자 태부(太子太傅)로 있다가 자기 조카인 태자 소부(太子少傅) 소수(疏受)와 함께 상소하여 사직하자, 천자가 그들이 노쇠했다는 점을 인정하여 돌아가게 하면서 황금 20근을 하사하였으며, 태자가 또 황금 50근을 선물로 주었던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71 疏廣傳》
청풍(淸風)으로 부임하는 안 사군(安使君)을 전송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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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을 다스리는 방법이 원래 많겠지만 / 作吏自多術
그대 집안에 모범이 있는 것이 기쁘다네 / 喜君家有師
청풍의 원님 노릇 어제 일처럼 지나가고 / 淸風如昨日
황각의 재상으로 뒷날 또 우뚝 서리로다 / 黃閣又他時
희게 빛나는 달빛 속에 천 자 되는 누대요 / 月白樓千尺
갠 날 구름 아래 보리 이삭 두 개씩이리 / 雲晴麥兩歧
산에 올라 눈 아래 농촌 들녘 바라보며 / 登臨觀稼處
그대에게 보낸 시를 다시 읽어 보시게나 / 更讀送君詩
[주D-001]희게 …… 누대요 : 달밤에 누대에 올라 풍류를 즐길 것이라는 말인데, 청풍(淸風)에서 한벽루(寒碧樓)가 유명하다.
[주D-002]갠 …… 두 개씩이리 : 고 을 백성들이 수령의 선정(善政)을 칭송하리라는 말이다. 후한(後漢)의 장감(張堪)이 호노(狐奴)에서 전답을 개간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 주자, 백성들이 ‘보리에 이삭이 두 개씩 달렸다[麥穗兩歧]’고 좋아하면서 노래를 불렀다는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31 張堪列傳》
정 해년의 진사시(進士試) 동년(同年)들이 남경(南京)에 처음 모였을 때 장원(壯元) 박공(朴公)이 나를 불러 자리에 끼이게 했었다. 그런데 그다음 모임에서도 우 사재(禹四宰)가 또 나를 초청하였는데, 그 모임을 주선한 사람은 광주(廣州)의 이 판사(李判事)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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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시 함께들 급제한 지 어언 삼십육 년 / 同榜同盟卅六年
남경에 모여 마시는 술 어찌 의미가 없으리오 / 南京會飮豈徒然
광주 호연의 정교한 솜씨가 좌석을 놀래키고 / 廣陵精巧能驚座
풍양 조공의 비대한 체구가 연석을 또 비췄네 / 豐壤肥膏又照筵
외객이 초청을 받았으니 사양할 리가 있으리오 / 外客承招寧少讓
제공의 흥취가 발동하자 나도 덩달아 흥겨웠소 / 諸公發興意相牽
말없이 생각하니 이 모두 선군이 끼치신 은택 / 默思摠是先君澤
우정을 나눈 우리 기록 대대로 끝까지 전하리다 / 交記終當世世傳
우공(禹公)은 바로 선군(先君)과 동년인 분의 아들이고, 박공(朴公)은 선군의 문생이고, 조공(趙公)은 친구의 아들이고, 호연(浩然)은 동년의 아우이다.
[주D-001]진사시 …… 삼십육 년 : 충 목왕(忠穆王) 3년(1347) 정해년에 목은의 부친인 이곡(李穀)이 동지공거(同知貢擧)로 진사시를 주관하였다. 이때 목은은 원(元)나라에 있었으므로 진사시와는 상관이 없었으나, 좌주(座主)의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초청을 받고 참석하게 된 것이다.
남경(南京)의 이른 봄날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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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 속에는 눈이 하늘 가득한 채 / 三角山中雪滿天
승창도 적적하게 찬 연무에 갇혔는데 / 僧窓寂寂鎖寒煙
남경은 지척에서 춘풍이 얼굴에 솔솔 / 南京咫尺風吹面
이 변화 누가 알랴 조물의 권한인걸 / 變化誰知造物權
조정에서 개경(開京)으로 돌아갈 일을 의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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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시와 인사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은지라 / 天時人事兩輪車
성주께서 육록의 글을 일찍이 숭상했더니라 / 聖主曾崇六錄書
유감일세 지금은 새로 주고받지를 못했으니 / 恨不至今新授受
옛것을 좋아한다 한들 취허와 마찬가지로세 / 縱然好古亦吹噓
동 트는 한강의 빛깔은 붉은 해가 둥둥 / 漢江曉色浮紅日
맑게 갠 백악의 산빛은 창공 속에 우뚝 / 柏岳晴空照碧虛
대가를 옆에서 모시자니 내 백발 유독 부끄러워 / 陪輦獨慚吾髮白
세 조정 섬기며 읊은 노래 일월만 허비하였구만 / 三朝賦語費居諸
[주D-001]천시(天時)와 …… 숭상했더니라 : 고 려 태조가 도선(道詵)의 이른바 《옥룡비기(玉龍祕記)》를 높이 평가하면서 그 힘에 의지하여 자신의 포부를 펼쳐 보려 했다는 말이다. 신라 말 풍수지리설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옥룡자(玉龍子) 도선의 《비기》가 〈옥룡자 십승지지비결(玉龍子十勝之地祕訣)〉, 〈십승지지외 논보신산수지소(十勝之地外論保身山水之所)〉, 〈옥룡 비결(玉龍祕訣)〉, 〈옥룡자 기(玉龍子記)〉, 〈옥룡자 시(玉龍子詩)〉, 〈옥룡자 청학동 비결(玉龍子靑鶴洞祕訣)〉 등 6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육록(六錄)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도선이 고려 태조 왕건의 탄생을 예언하여 그대로 되었다고 하는 설이 있는데, 이 때문에 태조 역시 도선의 《비기》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면서 〈훈요십조(訓要十條)〉 제2조에서 이를 숭상하고 어기지 말 것을 지시하기까지 하였다.
[주D-002]취허(吹噓) : 피 리 부는 흉내를 낸다는 취우(吹竽)와 같은 말로, 자격도 없이 관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국록(國祿)만 축내고 있다는 뜻이다. 남곽처사(南郭處士)가 피리 부는 실력도 없으면서 삼백 인이 합주(合奏)할 때에는 시늉만 하며 그 자리에 끼어 있다가, 한 사람씩 독주(獨奏)하게 하자 그만 줄행랑을 놓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韓非子 內儲說上》
호가(扈駕)하는 도중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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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이 앞뒤로 모시는 길에 먼지 하나 없이 / 千官導從路無塵
가운데 황의 입으신 분이 바로 우리 임금님 / 中有黃衣是聖人
무예 강습에 말을 빨리 달린들 상관 있으리오 / 講武豈妨馳馬疾
다투어 길들인 매 바치며 재주를 선보이는구나 / 效才爭進養鷹馴
광활한 들판 불탄 흔적에 금방 비가 거쳐 가고 / 野闊燒痕初過雨
구름 걷힌 산빛에 봄기운 부옇게 뜨려는 때 / 雲收山色欲浮春
시중은 호방한 기상 끝내 숨길 수 없는가 봐 / 侍中豪氣終難□
이따금 화살 비껴 잡고 닫는 노루 겨눠 보네 / 撚箭時時望走麕
풍천(楓川)의 납발(納鉢)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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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생이 나를 불러 황량한 시골에 묵게 하고 / 門生邀我宿荒村
음식물 정성껏 대접하고 잠자리도 따뜻하게 / 食物多精寢席溫
이 모두가 현릉께서 남겨 주신 은택이라 / 摠是玄陵餘澤在
백발 노인 다시 보니 수레 탄 학 같구만 / 白頭還似鶴乘軒
[주C-001]납발(納鉢) : 거란의 말을 음역(音譯)한 것으로 납보(納寶)라고도 하는데, 요(遼)ㆍ금(金)ㆍ원(元) 때에 제왕의 행재소(行在所)를 뜻했다.
[주D-001]백발 …… 같구만 : 임금으로부터 분수에 넘치는 총애를 받아 문생에게 가서 묵도록 허락을 받았다는 말이다. 춘추 시대 위 의공(衛懿公)이 학을 좋아해서 대부가 타는 수레에 그 학을 태우고 다녔다는 고사가 있다. 《春秋左傳 閔公2年》
장단(長湍)의 납발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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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왕이 말 달리며 봄 사냥 즐기는 곳 / 君王馳馬習春蒐
눈 녹은 파평 땅에 풀빛이 부옇도다 / 雪盡坡平草色浮
강물 낀 양안에 석벽이 묘하기도 한데 / 石壁巧成江兩岸
물 굽어보는 고루를 누가 또 세웠는고 / 何人臨水起高樓
초천(椒川)의 납발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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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의 맑은 산빛이 이제는 눈 안으로 / 鵠嶺晴光入望中
용안의 기쁜 얼굴빛이 행궁에 가득 / 天顔喜色滿行宮
내일은 나도 예모 갖추고 가야 할 터 / 明朝我合修容去
호가에 어떻게 백발 노인이 없어서야 / 扈駕那無白髮翁
유도 재상(留都宰相)이 백관을 이끌고 선흥사(禪興寺) 동쪽의 교외에 나와서 어가(御駕)를 영접하는 가운데 성균관(成均館)의 제생(諸生)이 환영하는 가요를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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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경을 순주하게 하신 우리 태조의 교훈이여 / 巡駐三京我聖謨
우리 동방을 만세토록 보전케 하려 하심이라 / 心期萬世保東隅
하늘이 성군을 내어 유훈을 받들게 하였는데 / 天生聖主遵遺訓
태사에 몸 담은 이 신하는 비유라서 부끄러워 / 臣忝台司愧鄙儒
쳐다보도록 허용하신 공중의 빛나는 태양이요 / 瑞日當空容仰見
다시 살려 주려는 듯 매만져 주는 봄바람이라 / 祥風觸物似來蘇
길 옆에 서서 송가를 부르는 흰 도포 유생들 / 白袍道左呈歌頌
거리를 메운 도성 백성의 모습도 곧 보게 되리 / 想見都人塞九衢
[주D-001]삼경(三京)을 …… 교훈이여 : 삼 경은 송경(松京), 서경(西京), 남경(南京)으로 지금의 개성, 평양, 서울을 가리키는데, 고려 태조의 이른바 〈훈요십조(訓要十條)〉 중 제5조에, 서경은 수덕(水德)이 순탄해서 우리나라 지맥(地脈)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만큼 만대(萬代)의 대업(大業)을 누릴 만한 곳이니, 정해진 시기마다 그곳에 순행(巡行)하여 유주(留駐)하라고 한 내용이 나온다.
동대문(東大門)에서부터 대궐 문 앞에 이르기까지 산대잡극(山臺雜劇)의 무대가 펼쳐졌는데 예전에는 보지 못하던 것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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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대를 얽어 만든 것이 봉래산과 흡사하니 / 山臺結綴似蓬萊
과일 바치는 선인이 바다 속에서 오겠구나 / 獻果仙人海上來
잡객의 북소리 징소리 땅을 온통 뒤흔들고 / 雜客鼓鉦轟地動
처용의 소맷자락 바람에 날리며 돌아 가네 / 處容衫袖逐風廻
긴 장대 위의 사나이는 땅에서처럼 노닐고 / 長竿倚漢如平地
하늘로 치솟는 폭죽은 번갯불처럼 빠르도다 / 瀑火衝天似疾雷
태평 시대의 이 분위기 제대로 전하고 싶다마는 / 欲寫太平眞氣像
노신의 붓 솜씨 형편없어 부끄럽기만 하네그려 / 老臣簪筆愧非才
201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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