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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맑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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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혹 내려도 땅을 적시지 못하고 / 有雨不濕地
구름만 하늘 가득 채우다 사라질 뿐 / 有雲空滿天
오늘은 또 푸른 하늘 맑기만 하니 / 天晴碧無際
내 마음 더더욱 애가 탈 수밖에 / 益使吾心煎
내가 걱정한들 결국 무슨 도움 되랴 / 心煎竟何補
흰머리만 두 어깨에 늘어졌는걸 / 白髮垂兩肩
식량이 있어야 백성들도 먹고 살고 / 民生食司命
나라가 풍족해야 인재도 기르는 법 / 足國仍養賢
이런 일을 제대로 행하지 못한다면 / 如其慊於此
왕도를 온전히 펼칠 길이 없으리라 / 王道無由全
잔잔한 물처럼 고즈넉한 남쪽 창가에 / 南窓寂如水
내 앞에 와서 들려주는 새들 노랫소리 / 鳥聲來我前
낮게 웅얼대며 따라 하는 내 노래를 / 沈吟與相和
그 누가 알아서 이어받을 수 있을거나 / 情致誰能傳
성균관(成均館)의 시원(試員)인 이도은(李陶隱)이 4월 1일에 선비를 시험할 적에 하늘이 매우 맑아 응시생들이 습기를 피해서 시험장을 옮겨야 하는 걱정이 없었으므로 내가 이를 기뻐하여 한 수의 노래를 지어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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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에 가득한 선비들 붓 놀리는 소리뿐 / 群士盈庭筆有聲
햇빛 속에 솔 그림자 맑은 아침 하늘 / 日光松影曉天淸
황색에 흰색 짝 지워서 문채를 드러내고 / 抽黃配白生文采
달과 바람 읊으면서 태평을 묘사하는구나 / 味月吟風寫太平
빠뜨림 없는 감식안을 모두 인정하는 터에 / 具眼共期無漏失
점두가 또 분명한 걸 더 말할 게 있겠는가 / 點頭何況更分明
빗속에 땅이 축축해서 방해된 때도 있었기에 / 雨中曾記妨霑濕
오늘 아침 활짝 갠 하늘 무엇보다 기쁘도다 / 最喜今朝盡意晴
[주C-001]이도은(李陶隱) : 도은은 이숭인(李崇仁)의 호이다.
[주D-001]황색에 …… 드러내고 : 응시생들이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의 형식으로 멋진 답안을 작성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이다. 《서언고사(書言故事)》 문장류(文章類)에 “잘 지은 변려문(騈儷文)을 일컬어 추황대백(抽黃對白)이라고 한다.”는 말이 나온다.
[주D-002]빠뜨림 …… 있겠는가 : 이 숭인이 시관(試官)으로서 제대로 인재를 뽑을 것은 의심할 나위도 없다는 말이다.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지공거(知貢擧)로 답안지를 채점할 적에, 자신의 등 뒤에서 붉은 옷을 입은 사람 하나가 머리를 끄덕끄덕하는 것을 느낄 때마다 그 답안지가 합격되곤 하였는데, 이상하게 느껴져서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더라는 ‘주의점두(朱衣點頭)’의 고사가 전한다. 《天中記卷38 侯鯖錄》
이백승(李伯升)이 부친상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가려 하면서 나에게 그 일을 알리고 떠날 즈음에 내가 시를 지어서 곡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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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이전 좋은 벗들을 찾아서 놀던 시절 / 旌善從游未冠時
그대의 인품은 유하혜도 백이도 아니었지 / 爲人非惠又非夷
서로 의기투합하여 평생을 지내려 하였는데 / 同盟托契欲相得
망년의 벗 급제를 해서 또 얼마나 기뻤던지 / 及第忘年喜可知
부침하는 벼슬살이 운수가 있게 마련이라 / 宦海升沈應有數
글 숲에서 담소하기도 기약하기 어려웠네 / 書林笑語已難期
애처로워라 부친상에 달려가는 그대 모습 / 斬然衰絰奔喪去
늙은 이 몸 바람 맞으며 눈물만 뿌리노라 / 牧老臨風涕自垂
[주D-001]그대의 …… 아니었지 : 과 격하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中道)에 입각해서 행동하려고 했다는 말이다. 은(殷)나라 말기의 백이(伯夷)는 주(周)나라 조정에 벼슬하지 않고 굶어 죽었으므로 청성(淸聖)이라 일컬어지고, 춘추(春秋) 시대 노(魯)나라의 유하혜(柳下惠)는 세 번이나 파직을 당했어도 떠나지 않았으므로 화성(和聖)이라 일컬어지는데,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법언(法言)》 연건(淵蹇)에 “백이의 청(淸)도 아니고 유하혜의 화(和)도 아니요, 옳다고 하고 그르다고 하는 그 사이에 처한다고 할 것이다.[不夷不惠可否之間也]”라는 말이 나온다.
유감(有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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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이면 어디인들 돌아갈 곳 없으랴만 / 靑山何處不堪歸
처마에 구름이요 물이 사립문 두른 그곳 / 雲在簷間水遶扉
뒤숭숭한 세상일 예측하기 어렵나니 / 世事紛紛難逆料
해적들이 산골까지 쏜살같이 치달리네 / 懸崖海賊走如飛
황량한 늦가을처럼 참담한 인적(人跡)이요 / 人煙慘惔疑黃落
산등성이에 종횡으로 펼쳐진 조진이라 / 鳥陣縱橫在翠微
질풍 같은 일만 기병 있은들 무슨 소용일까 / 萬馬追風將底用
남쪽 하늘 바라보며 노옹은 눈물만 적시노라 / 老翁南望淚沾衣
[주D-001]조진(鳥陣) : 운조진(雲鳥陣)의 준말로, 구름처럼 모였다가 새처럼 흩어지듯 신출귀몰하게 변화하는 왜적의 진법(陣法)이라는 뜻이다.
어찌할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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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그대들은 생각하지 못하는가 / 奈何汝不念
백성의 고달픔이 전보다도 곱절인걸 / 民瘼倍於前
해적들은 나무 잘 타는 원숭이라면 / 海賊猿緣木
지방 군대는 연기 피하는 학이라 할까 / 鄕兵鶴避煙
등라덩굴 부여잡고 깊은 골짝 건너고 / 攀蘿渡深壑
바위에 기대어서 솟는 샘물 움켜 먹네 / 倚石掬飛泉
마치 사람 없는 땅을 밟는 듯하는지라 / 如蹈無人地
비통한 심정 하늘에다 눈물을 뿌릴밖에 / 興言淚洒天
정종지(鄭宗之)가 성에 들어와서 나를 찾아 주었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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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지는 평소에 병치레가 많았는데 / 宗之素多病
지금은 얼굴에 광채 나니 다행이로세 / 幸此面浮光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한 수 위라서 / 彊記少居右
시문을 통해 깨우침도 많이 받았지 / 蒙求多在章
선생은 사신의 부절을 쥐고 나가고 / 先生持使節
상장은 과거 시험을 주관하는구먼 / 上將闢科場
얼굴 보지 못해도 정이 얕지 않은 터에 / 未見情非淺
이렇게 만나 보니 기뻐서 가슴 터질 듯 / 相逢喜欲狂
[주C-001]정종지(鄭宗之) : 종지는 정도전(鄭道傳)의 자(字)이다.
[주D-001]선생은 …… 주관하는구먼 : 선생은 삼봉(三峯) 정도전을 가리키고, 상장은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을 가리킨다. 삼봉은 목은보다 9년 후배이고, 도은은 삼봉보다 10년 후배이다.
유감(有感)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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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짓는 책임을 오래도록 맡았다만 / 久忝文書監進
점획과 편방에 무슨 도움을 주었을까 / 何裨點畫偏傍
당시의 도필은 모두 재상에 올랐는데 / 刀筆今皆台鼎
나 홀로 약만 들며 자리에 누워 있네 / 還丹我獨沈綿
이로는 흰 수염이 다시금 까매지고 / 李老霜髭再黑
당생은 언제 봐도 늘 푸른 철면이라 / 唐生鐵面長蒼
나는 문 닫고 한가해서 제일 좋다만 / 最幸吾閑閉戶
외교 문서 돌보지 못해 부끄러울 뿐 / 唯慚吏學提綱
북조에 보낼 때는 혼후하게 글을 짓고 / 北朝模楷渾厚
남방에 보낼 때는 정화를 몸 받아야지 / 南方體□精華
초고 짓고 잘 꾸며서 다듬어 보낸다면 / 草創仍兼脩飾
외교 문서 잘못될 걱정 뭐가 있으리오 / 文移豈患差訛
[주D-001]이로(李老)는 …… 철면(鐵面)이라 : 이 로는 이광보(李光輔)를 가리키고, 당생(唐生)은 이숭인(李崇仁)을 가리킨다. 《목은시고》 제33권의 〈동가군(東嘉君) 이광보(李光輔)와 상장군(上將軍) 이자안(李子安)이 찾아왔다. 정종지(鄭宗之)가 먼저 와 있다가 함께 차를 마시고 헤어진 뒤에 혼자 앉아서 읊다.〉에 “평소 병치레하던 종지는 안색이 피어나고, 머리가 하얗던 동가는 다시금 까매지네. 호연지기 기르는 자안은 의를 모으는 중이고, 인을 행하는 목은은 바보처럼 되려 하네.[宗之素病色敷腴 髮白東嘉再黑初 養氣子安方集義 爲仁牧隱欲如愚]”라는 구절이 보인다. 자안은 이숭인의 자(字)인데, 그의 호가 도은(陶隱)이기 때문에 ‘도당(陶唐)’의 당(唐)을 취하여 당생(唐生)이라고 한 것이다. 철면은 보통 강직해서 사정(私情)을 두지 않는 것을 뜻하나, 여기서는 얼굴색이 검은 것을 가리킨다.
[주D-002]북조(北朝)에 …… 있으리오 : 원 (元)ㆍ명(明) 교체기의 격동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중지(衆智)를 모아 외교 문서를 작성해 보낸다면, 북조(北朝) 즉 원나라와 남방(南方) 즉 명나라 양쪽으로부터 트집을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정(鄭)나라에서는 외교 문서를 작성할 적에, 비침(裨諶)이 초고를 만들고[草創], 세숙(世叔)이 토론을 하고, 행인(行人)인 자우(子羽)가 수식(修飾)을 하고, 동리(東里)의 자산(子産)이 윤색(潤色)을 하였기 때문에, 실패하는 일이 적었다.”라는 말이 나온다.
유감(有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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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은 진정 큰길 위에 나서듯 해서 / 學術眞如大路遵
백성이 혜택 받게 임금을 이끄는 것 / 致君須要澤吾民
문장의 목적이 벼슬을 구함이 아니거니 / 文章本不媒遷擢
과거로는 숨은 인재를 나오게 못 하리라 / 科第無由蠱隱淪
불일을 통해 영광을 드러낸 양곡이라면 -쌍왕(雙王)이 지거(知擧)로 있을 적에 벌써 불일중휘송(佛日重輝頌)이 시험 제목으로 제출되었다. / 暘谷生光從佛日
왕춘을 펼치며 기운이 감도는 금릉이로세 / 金陵有氣布王春
제대로 인재 뽑는 법을 누가 얻었다고 할까 / 未知選法誰爲得
공론이 분명하리니 뒷사람에게 붙이노라 / 公論明明付後人
[주D-001]학술(學術)은 …… 것 : 정 치의 요체는 훌륭한 인재들이 조정에 많이 진출하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임금을 인도하여 백성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데에 있다는 말이다. 《시경(詩經)》 정풍(鄭風) 준대로(遵大路)에 “큰길 위에 따라 나서서, 그대의 옷소매를 부여잡노라.[遵大路兮 摻執子之袪兮]”라는 말이 나오는데, 모시(毛詩) 서(序)에서 ‘군자들이 조정을 떠나가지 않게 큰길에 나와서까지 만류하는 노래’라고 해설하였다.
[주D-002]쌍왕(雙王) : 쌍 기(雙冀)와 왕융(王融)을 가리킨다. 고려 때 처음으로 과거 제도를 실시한 광종(光宗) 9년 5월과 12년 4월의 두 차례 과거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 쌍기가 지공거(知貢擧)를 맡았고, 그 뒤 광종 17년부터 성종(成宗) 13년까지 11회에 걸쳐 한림학사 왕융이 지공거를 맡아 인재를 선발한 기록이 《고려사(高麗史)》 선거지(選擧志) 1에 나온다.
[주D-003]불일(佛日)을 …… 금릉(金陵)이로세 : ‘불 일(佛日)을’에서 ‘금릉(金陵)이로세’까지의 부분은 불교를 숭상하며 인재를 뽑는 고려와는 달리, 명나라에서는 바야흐로 새로운 왕조를 건설하면서 왕도정치에 입각한 과거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는 말이다. 불일은 부처를 가리키고, 양곡(暘谷)은 해 뜨는 동방이라는 뜻으로 고려를 가리키고, 금릉은 남경(南京)의 명나라를 가리키고, 왕춘(王春)은 천하를 통일한 제왕의 봄이라는 뜻으로 새로 시작되는 왕조의 책력(冊曆) 혹은 연호(年號)를 가리킨다.
맏손자 맹유(孟㽥)가 진사과(進士科)에 합격했다는 말을 듣고 기뻐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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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에 처음으로 십운과에 합격한 뒤 / 十四初登十韻科
지금은 흰머리로 한림원을 맡은 이 몸 / 白頭今日領鑾坡
우리 손자의 출발도 나와 정말 흡사한데 / 孟孫發軔眞相似
말년에 벼슬을 그만둘 땐 과연 어떨는지 / 末路休官定若何
대궐에서 합격 통지 정식으로 받고 나서 / 放牓傳臚出丹鳳
물렀거라 소리치며 청노새 타고 돌아오리 / 還家喝道耀靑騧
부엌에선 부산 피우며 새로 밥을 짓는다나 / 旋炊熱飯廚人走
말방울 소리 울리면서 하객이 몰려올 테니까 / 賀客如雲簇玉珂
[주D-001]열네 살에 …… 뒤 :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이 《목은문고》 제8권 〈십운시(十韻詩)의 서문〉에 자세히 씌어 있다.
남경 윤(南京尹)이 순채(蓴菜)를 보내왔기에 이에 사례하며 급히 붓을 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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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의 정수리마냥 살짝 비치는 주홍색 / 鶴頂微相暎
매끄럽기도 하여라 흡사 용의 침이로세 / 龍涎滑有餘
불현듯 일어나는 강동의 귀흥이여 / 江東歸興動
농어회만 이 자리에 빠졌군그래 / 只是欠鱸魚
[주D-001]불현듯 …… 빠졌군그래 : 진 (晉)나라 장한(張翰)이 낙양(洛陽)에서 관직 생활을 하다가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불현듯 고향의 순채와 농어회 생각이 나서 벼슬을 버리고 곧장 귀향했던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92 張翰列傳》 장한은 그의 자(字)인 계응(季鷹)으로 많이 불렸는데, 그가 오군(吳郡) 출신이기 때문에 강동 보병(江東步兵)으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칠원(漆原) 시중(侍中)과 제로(諸老)가 김 사재(金四宰)의 금릉(金陵) 사행(使行)을 전송하는 자리에 참석했다가 돌아와서 시 한 수를 짓다. 김 사재의 이름은 유(庾)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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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가물다 놀랍게도 가랑비 부슬부슬 / 旱甚俄驚零雨濛
아득히 떠나가는 금릉의 사신에 맞추었네 / 金陵行色渺茫中
인심이 천심과 들어맞아 순조롭게 되었으니 / 人心適與天心順
민생도 다시 왕업 따라 풍성하게 되리로다 / 民業更從王業豐
사전도 적셔 주시는 비 어찌 노래로 다할거나 / 霂霢及私吟不盡
기쁨을 기록한 춘추 역시 기대가 무궁했음이라 / 春秋志喜望無窮
시중과 제로의 뜻을 봐도 얼마나 은근하였던가 / □□諸老殷勤意
황은이 동방에 쏟아지도록 부디 힘써 주시기를 / 導霈皇恩洽海東
[주C-001]칠원(漆原) : 윤환(尹桓)의 봉호(封號)이다.
[주D-001]사전(私田)도 …… 비 : 《시경(詩經)》 소아(小雅) 대전(大田)에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 대지에 듬뿍 내리는 비. 공전에 먼저 내려 주시고, 사전도 적셔 주시기를.[有渰萋萋 興雨祁祁 雨我公田 遂及我私]”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주D-002]기쁨을 …… 춘추(春秋) : 《춘 추》 희공(僖公) 3년 조(條)에 “6월에 비가 내렸다.[六月雨]” 하였는데,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에서 “비가 온 것을 기록한 것은 기쁨을 표시한 것이니, 이는 민생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었다.[雨云者 喜雨也 喜雨者 有志乎民者也]”라고 해설하였다.
김 사재(金四宰)가 집에 찾아와서 작별을 고하기에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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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예순이 넘어서도 기상이 더욱 씩씩한 분 / 年過耳順氣彌豪
금릉 만리 길 조회하러 예물 받들고 떠나누나 / 萬里金陵奉幣朝
한 마디 말 좀 해 달라고 누항을 찾아 주시다니 / 只爲贈言臨陋巷
홀로 두각을 드러내며 전대하실 줄 알겠도다 / 可知專對獨揚翹
세공의 액수를 모두 채우긴 어렵다 하더라도 / 歲貢艱難充額數
군신 간의 의리 지켜 충성심만은 보여야겠지 / 君臣精意效純忠
표문을 윤색할 힘도 없는 것이 부끄러워 / 表章潤色慚無力
흰머리만 나부끼는 목은 노인 서글퍼라 / 白髮蕭蕭一牧翁
[주D-001]전대(專對) : 외국에 사신으로 나가서 임기응변하며 독자적으로 외교의 현안을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2]세공(歲貢)의 …… 하더라도 : 명 (明)나라에서 5년 동안 세공이 밀렸다고 하면서, 말 5000필, 금 500근, 은 5만 냥, 포(布) 5만 필을 한꺼번에 가지고 오라고 하였는데, 우왕(禑王) 8년(1382) 4월에 고려에서 김유(金庾)와 정몽주(鄭夢周) 등을 사신으로 보내면서 명나라가 요구한 액수의 5분의 1인 한 해의 세공만을 바치게 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도은(李陶隱)이 마련한 술자리에 초청받아 경사(京師)로 떠나는 정포은(鄭圃隱)을 전송하고 밤에 돌아와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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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진사과에 내 손자가 급제를 하였는데 / 今年進士有吾孫
합격 통지서 응시하며 아무 말도 못 했다오 / 看榜凝眸默不言
이 몸뚱이는 병이 많아 시달리고 있소마는 / 多病已諳身是患
세상이 사문을 높일 줄 아니 그래도 다행이오 / 斯文尙幸世知尊
연구도 짓고 술독도 비우고 얼마나 기뻤는지 / 稍欣聯句千鍾倒
풍악 잡히며 노는 것보다 훨씬 더 멋있었소 / 絶勝呈才兩部喧
다만 걱정은 무더운 날에 오천이 길 떠나는 일 / 只念烏川行犯暑
중국에 조회 끝마치고 얼른 돌아오시기를 / 朝王禮畢早還轅
[주D-001]오천(烏川) : 영일(迎日)의 옛 이름으로, 본관이 영일인 정몽주를 가리킨다.
유감(有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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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일이 많아 말 먼지 자욱한 때 / 四方多故起風塵
병들어 쇠한 몸은 흰머리만 나부끼네 / 白髮蕭蕭衰病身
비 오려나 하였더니 햇볕만 다시 쨍쨍 / 其雨其雨又出日
푸른 하늘이여 도대체 누구 때문인고 / 蒼天蒼天在何人
어려운 시기에 재정이라도 넉넉했으면 / 時艱所望國用足
운수도 사나운 때 국운이 새롭게 펴졌으면 / 數奇只幸邦命新
몽당붓 잡고서 문서 한 통 지어내려니 / 敗筆揮來洒濃墨
늙은이의 눈물 하염없이 수건을 적시누나 / 潸然老淚霑我巾
[주D-001]비 …… 쨍쨍 : 《시경》 위풍(衛風) 백혜(伯兮)에 “비가 좀 오려나 하였는데, 햇볕만 쨍쨍 비치누나.[其雨其雨 杲杲出日]”라는 말이 있다.
[주D-002]푸른 …… 때문인고 : 《시경》 왕풍(王風) 서리(黍離)에 “끝없이 푸른 하늘이여, 이렇게 된 것은 도대체 누구 때문인가.[悠悠蒼天此何人哉]”라는 말이 나온다.
동북면 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인 화령 부윤(和寧府尹) 장공(張公) 효온(孝溫) 에게 부친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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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극도 삼엄한 화령의 어른께서 / 和寧森畫戟
새로 문을 연 순문사의 연영이라 / 巡問闢蓮營
군민의 신임 받는 중한 인망 지니고서 / 望重軍民任
이하에게 골고루 은혜를 베푸는 분 / 恩均夷夏情
왜적을 소탕하는 구름바다 진동하고 / 觀鯨雲海動
군마를 풀어 놓은 교외 들판 평평해라 / 放馬霽郊平
피하기만 하는 땅에 막부를 개설하였으니 / 避地仍開府
머지않아 아름다운 명성을 칭송받으리라 / 他年頌美名
[주D-001]화령(和寧) : 함경남도 영흥(永興)의 옛 이름이다.
[주D-002]연영(蓮營) : 막 부(幕府)의 별칭이다. 남조 제(南朝齊)의 위군 장군(衛軍將軍) 왕검(王儉)이 재사(才士)를 많이 영입하여 막부를 열자, 당시 사람들이 연화지(蓮花池) 혹은 연화부(蓮花府)라고 일컬었던 데에서 유래한다. 《南史 卷49 庾杲之列傳》
[주D-003]이하(夷夏) : 이적(夷狄)과 화하(華夏), 즉 중국인과 이민족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사월 초파일의 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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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가를 모셨던 대보름날의 관등 의식 / 扈駕觀燈在上元
당시의 전례가 겨우 이름만 남았구먼 / 當時典禮僅名存
오늘 밤만 돌아오면 여염이 온통 왁자지껄 / 閭閻每見喧今夜
소년들도 덩달아서 마구 날뛰고 있군그래 / 童稚猶如□□□
도시 이단의 작태인걸 괘념할 게 있으랴만 / 等是異端誰復念
우리 풍속이 가슴 아파 절로 말을 잊노매라 / 只傷吾俗自忘言
깊은 밤중에 또다시 서쪽 봉우리 올라가서 / 夜深更上西峯去
성안을 내려다보며 술 한 통을 비웠다오 / 俯視城中倒一尊
날씨가 너무도 맑기만 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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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씨 끝에는 비가 올 줄도 안다마는 / 晴極知將雨
사람이 궁박하니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 人窮怨在天
처음엔 하늘이 사람들을 경계시키려 했겠지만 / 始應垂警戒
마침내는 어여삐 여겨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지 / 終必賜恩憐
하지만 지금 골짜기의 푸른 풀도 말라 붙고 / 綠草乾中谷
논밭에는 누런 먼지만 풀썩거리며 일어날 뿐 / 黃埃起下田
한없는 통곡 속에 소리를 집어 삼키고서 / 呑聲哭不盡
홀로 서 있으려니 생각만 아득해지누나 / 獨立思茫然
유항(柳巷)과 함께 서봉(西峯)에서 관등(觀燈)놀이를 구경할 적에 아들놈들도 함께 따라왔는데, 부추(副樞)가 새로 거처를 마련한 산 위에 다시 올라서서 보니 그 광경이 더욱 장관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가랑비가 내렸는데, 피곤해서 곧장 잠에 떨어졌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아직도 빗방울이 떨어지고는 있었으나, 땅을 적실 정도는 되지 못하였다. 이에 느껴지는 점이 있기에 시 한 수를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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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은 도성 가득 끊임없이 이어지고 / 燈燈相續盈鳳城
무리 지어 치달리며 부처 이름을 외우는 밤 / 隊隊競馳呼佛名
청성의 호방한 기운 고금을 압도하는지라 / 淸城豪氣蓋今古
나가 노닐 뜻이 있어 노생을 불러내었어라 / 有意出游邀老生
늙은 몸도 그동안 병으로 신음만 해 오다가 / 老生邇來病在身
다시 흥에 편승하여 말 머리 나란히 하였는데 / 亦復乘興聯鞍行
작년보다 구경거리 더 많은 올해의 관등 놀이 / 今年觀燈勝去年
폭죽이 터지며 하늘 높이 유성처럼 흩어지네 / 火
용수산에 어리어 비치는 대궐 문의 모습이여 / 金門隱暎龍壽山
한 번 웃는 천안도 구름 사이로 보이는 듯 / 天顔一笑雲間傳
노신은 조정에 들어가서 모실 길도 없는지라 / 老臣無由侍螭㙄
눈썹 치켜들고 바라보려니 어찌나 망연한지 / 軒眉注目何茫然
작은 산에 의지하고 새로 마련한 부추의 거처 / 副樞新居倚小山
산머리 우뚝 솟아 인간 세상 굽어보나니 / 山頭突起臨人寰
동쪽 서쪽 어딜 봐도 막힘없이 툭 트인 곳 / 西瞻東眺面勢寬
이 몸뚱이 솟구쳐서 뜬 구름 위에 서 있는 듯 / 竦身如在浮雲端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늙은 다리에 힘이 없어 / 只嫌老脚困危梯
높은 사다리 오를 적에 남의 도움을 받은 것 / 上上却費人携提
돌아오는 길에 가랑비가 몇 방울씩 내렸는데 / 歸途微雨數點落
피곤해서 눕자마자 새벽닭 소리도 몰랐다가 / 困臥不覺呼隣鷄
훤해서 깨어 보니 아직도 듣는 빗방울 소리 / 天明滴滴又不止
재상이 드린 기도가 근거 없는 건 아니었군 / 宰相祈禱非無稽
앉아서 생각하노라니 청유도 이미 과거의 일 / 坐思淸游已陳跡
녹음 속에 꾀꼬리 소리만 또다시 들리누나 / 綠陰又有黃鶯啼
[주C-001]유항(柳巷) : 한수(韓脩)의 호이다.
[주C-002]부추(副樞) : 목은의 장남 종덕(種德)을 가리킨다.
[주D-001]청성(淸城) : 청주 한씨(淸州韓氏)인 한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주D-002]한 번 …… 듯 : 한 번 찡그리고 한 번 웃는 것도 아껴야 하는 임금님 역시 대궐에서 관등 놀이를 즐기며 웃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한(漢)나라 동방삭(東方朔)이 지은 《신이경(神異經)》에, 선인(仙人)인 동왕공(東王公)과 옥녀(玉女)가 투호(投壺) 놀이를 하는 것을 보고 하늘이 한 번 웃을 때마다 번개가 쳤다는 ‘천안소(天顔笑)’의 전설이 전하며, 《한비자(韓非子)》 내저설 상(內儲說上)에 “밝은 임금은 한 번 찡그리고 한 번 웃는 것도 아끼는 법이다.[明主之愛一嚬一笑]”라는 말이 나온다.
술회 1수(一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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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은 새만 지저귈 뿐 바람도 없이 조용한데 / 鳥啼庭院靜無風
백발 노인 어슬렁거리며 혼자서 흥얼거리노라 / 散步高吟白髮翁
드문드문 가랑비는 그쳤다 내렸다 반복하고 / 微雨疏疏止復作
하늘 가득 구름장은 묽었다 다시 진해지네 / 浮雲浩浩淡還濃
가로 비낀 청산을 보며 종일토록 고향 생각 / 思鄕盡日山橫翠
쌀이 넘쳐 썩을 만큼 언제나 재정이 풍족할까 / 足國何年粟腐紅
태평가를 부르면서 돌아갈 수만 있다면야 / 歌咏太平歸計遂
특별한 공을 세우려고 수고할 것도 없으련만 / 不須勤苦立奇功
강남(江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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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땅 아득해라 푸른 하늘 저 아래 / 江南縹渺碧天低
바다 구름은 날마다 서쪽으로 향하는데 / 海上飛雲日向西
유감일세 사신 행차 지금 단절되었으니 / 獨恨星軺今已絶
세공을 다시 맞추는 줄 알기나 하겠는가 / 誰知歲貢更方齊
어려운 시대 구할 계책 그 누가 마련할까 / 濟時良策誰爲得
병 고칠 약방문을 나도 생각해 볼 수밖에 / 療病奇方我所稽
처음에 자칫 잘못하면 엄청난 결과 빚을지도 / 豈或豪釐謬千里
창에 기댄 나의 귀에 벌써 낮닭의 울음소리 / 倚牕時聽午鷄啼
[주D-001]유감일세 …… 하겠는가 : 고 려와 명나라의 외교 관계가 악화된 가운데, 명나라에서 무리한 조공(朝貢)을 요구하며 고려 사신의 입경(入京)을 허락하지 않는 등 강경한 입장을 취했으므로, 고려에서 그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애써 노력하고 있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강남은 남경(南京)을 임시 수도로 정한 명나라를 가리킨다.
흥을 내어 시름을 달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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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신산 맛본 병골 새벽 한기가 겁이 나서 / 病骨辛酸怯曉寒
삼장 높이 해 뜨도록 의관도 제대로 못 차리네 / 日高三丈懶衣冠
고향 생각 날 때마다 자꾸만 누대에 올라가서 / 每思故里登樓數
시 지어 달래 보려 하나 글자 놓기도 어려워라 / 欲改新詩下字難
도학이 잡초에 뒤덮여서 시들해지고 말았으니 / 道學於今委蔓草
미친 물결에 뒤집히는 이 세상 인심을 어떡하나 / 世情從古倒狂瀾
어찌하여 흰머리로 표연히 떠나지 못하는고 / 白頭恨不飄然去
강 위에 청산이요 달이 또 두둥실 뜨련마는 / 江上靑山月又團
가난함이 나에게는 유익한 점이 많았나니 / 貧也於吾所益多
담박한 생활에다 지금은 또 파파국로로세 / 泊然今復鬢皤皤
맛있는 음식은 없더라도 그런대로 배 채우고 / 食無兼味腸猶飽
술독에 향기만 우러나면 얼굴이 벌써 불그레 / 酒僅生香面已酡
솜옷이면 충분한걸 겨울에 비단을 나는 몰라 / 綿襖不知冬錦繡
모시옷이면 너끈한걸 여름에 깁이 필요할까 / 苧衫何用夏紗羅
추위와 더위 대처하는 방법이 없지 않은 터에 / 掃除寒熱非無術
더구나 소공의 안락와가 나에게 또 있음에랴 / 況在邵公安樂窩
[주D-001]가난함이 …… 파파국로(皤皤國老)로세 : 가 난한 생활 덕분에 남달리 담박하게 지낼 수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머리가 또 본의 아니게 산신령처럼 빨리 하얗게 세어서 국가의 원로로 대접받는 처지가 되었다는 뜻의 해학적이면서도 자조적인 표현이다. 파파국로는 국가에서 존경받는 백발의 원로라는 뜻인데, 한(漢)나라 반고(班固)의 〈동도부(東都賦)〉 벽옹시(辟雍詩)에 “파파국로는 부형으로 모셔야 한다.[皤皤國老 乃父乃兄]”라는 말이 나오고,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태학에서 국가의 원로를 봉양하며 대접한다.[養國老于上庠]”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술독에 …… 불그레 : 술이 채 익기도 전에 마음이 벌써 급해서 술 향기가 조금 새어 나오기만 하면 떠 마시고 취한다는 말이다.
[주D-003]소공(邵公)의 안락와(安樂窩) : 누 추해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송(宋)나라 소옹(邵雍)이 낙양(洛陽)에 거주할 적에 초가집 한 채를 허술하게 지어 놓고 안락와라고 하였는데, 무명공전(无名公傳)에 “누워 자는 집을 안락와라고 불렀나니, 분에 넘치는 복을 구하지 않고, 그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지내려고만 하였다.”라는 말이 나온다.
칠원(漆原) 시중(侍中)의 초청을 받고 서쪽 이웃 사람과 함께 가서 참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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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에 용 서린 듯 푸르름이 무더기진 곳 / 梨峴龍盤翠作堆
남쪽으로 활짝 열린 우리 시중의 정원이라 / 侍中庭院向南開
금년에 가장 아픈 것은 동갑이 줄어든 일 / 今年最痛同庚減
종일토록 속인의 왕래 어찌 허용하셨으리 / 盡日寧容俗子來
선명해라 풀꽃 속에 비단장막 펼쳤나니 / 花卉鮮明張錦幄
정결해라 진수성찬 금술잔에 비취누나 / 珍羞豐潔映金杯
옛 친구로는 오직 한 분 송재의 후예 / 舊交只是松齋後
여기에 서생 하나 배석을 허락하셨구려 / 更許書生一箇陪
[주D-001]송재(宋齋) : 권준(權準)의 호이다.
제공(諸公)과 함께 정포은(鄭圃隱)을 전송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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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부절 쥐고 해마다 바다를 건너는 분 / 使節頻年涉海波
충간과 의담이 모두 산처럼 우뚝 드높아라 / 忠肝義膽共嵯峨
생사는 하늘에 달렸으니 나와는 상관없는 일 / 天邪有命何關我
국사에 집을 생각하랴 맹세코 딴마음 없고말고 / 國耳忘家矢靡他
월굴의 단계 독점한 뛰어난 재능을 소유하고 / 月窟才華擅丹桂
반궁의 청아를 읊으면서 풍화를 주도하시더니 / 泮宮風化詠菁莪
지금 또 집정에 참여하여 조회하러 떠나는 길 / 又參執政朝王去
황제가 이제 그야말로 난세를 평정했음이로다 / 皇帝如今正止戈
[주D-001]월굴(月窟)의 …… 주도하시더니 : 포 은(圃隱) 정몽주(鄭夢周)가 대과(大科)에 장원 급제한 실력으로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부임하여 인재의 교육을 맡고 있었다는 말이다. 진(晉)나라 극선(郤詵)이 과거에 장원 급제한 뒤에 월계수(月桂樹) 가지를 꺾었다고 자칭했던 ‘월궁절계(月宮折桂)’의 고사가 전한다. 《晉書卷52 郤詵列傳》 청아(菁莪)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인 청청자아(菁菁者莪)의 준말로 인재의 육성을 노래하는 내용이다.
오늘도 비는 오지 않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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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가뭄이 너무도 극심하니 / 今天旱旣甚
우리 농민들 어떻게 살아갈꼬 / 我農何以生
일천 마을마다 수심어린 기색이요 / 千村有愁色
일백 고을마다 이어지는 탄식이라 / 百邑連嘆聲
보리밭 두둑에는 푸른 물결 넘실대고 / 麥壟翠浪浮
뽕숲에선 꾀꼬리 소리 들려야 할 때 / 桑林黃鳥鳴
높고 높은 조정 위에 계신 분들도 / 巍然廟堂上
얼마나 급급하게 백성들을 걱정할까 / 汲汲憂民情
노부도 지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 老夫同在位
신세가 기러기 털보다 가벼운지라 / 身則鴻毛輕
시 읊고 나니 다시금 터지는 오열 / 詩成更嗚咽
어느 날에나 풍년을 볼 수 있을는지 / 何日臻豐年
[주D-001]노부(老夫)도 …… 가벼운지라 : 목 은도 관직을 지니고는 있지만 그저 허울 좋은 명예직에 불과할 뿐 막강하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실권(實權)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말을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는 말이다. 사마천(司馬遷)의 〈보임안서(報任安書)〉에 “사람이라면 모두 한 번은 죽게 마련인데, 어떤 사람의 죽음은 태산보다도 무거운 반면에, 어떤 사람의 죽음은 기러기 털보다도 가볍다.[人固有一死 或重于泰山或輕于鴻毛]”라고 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대목이 나온다.
진헌(進獻)하는 사신이 길을 떠날 때 나의 병이 발작하는 바람에 교외에 나가 전송하지 못하고 혼자서 읊은 한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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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별연 벌어질 서쪽 교외 동트는 새벽하늘 / 祖帳西郊曉色分
나무 머리 걸린 해에 그림자 어른거리겠네 / 樹頭初日影紛紛
동방의 문물 찬란하여 지금 천하를 압도하니 / 三韓文物傾天下
삼천리 반도 나라의 터전 안정시켜야 하고말고 / 千里邦基奠海濆
오직 황제만 바라보며 사대의 충성 바쳤으니 / 事大忠誠懸上帝
다시 선군의 시대처럼 두터운 은혜 내려 주리 / 更新厚渥似先君
큰 가뭄에 단비 만날 줄 벌써 기대에 부푼지라 / 已期大旱逢甘澍
종산의 한 조각 구름 눈 들어 한껏 바라보네 / 極目鍾山一片雲
[주D-001]종산(鍾山) : 중국 남경(南京)에 있는 자금산(紫金山)의 별칭으로, 명(明)나라를 비유한 말이다.
희우(喜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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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이 내려 땅속까지 적셔 주는 비 / 興雨祁祁入土深
사람 사랑이 결국은 하느님의 마음이라 / 愛人終是上天心
서쪽 교외에선 얼마나 또 얼굴 펴질꼬 / 西郊倍見欣然色
짐승 잡는 우림의 말 실컷 달리겠군그래 / 擊獸橫馳有羽林
나도 강 마을에 하나의 낚시터 있건마는 / 江村我有一苔磯
서울에 병들어 누워 홀로 문을 닫고 있네 / 病臥京華獨掩扉
홀연히 일어나는 푸른 도롱이옷의 흥치 / 忽起綠簑衣底興
어느 날에 고기 낚다 비 맞으며 돌아올꼬 / 釣魚何日雨中歸
날마다 시 읊조리며 입으로 중얼거린 것이 / 日日吟詩口出聲
창생을 위한 걱정인 줄 아는 이 누구일까 / 誰知有念在蒼生
오늘 아침 기쁘도다 하늘이 알아주신 것이 / 今朝一喜天應識
함포고복의 태평 시대 함께 누리려 하는 뜻을 / 鼓腹終期共太平
[주D-001]촉촉이 …… 비 : 《시경》 소아(小雅) 대전(大田)에 “뭉게뭉게 이는 구름, 촉촉이 적시며 내리는 비.[有渰萋萋 興雨祈祈]”라는 표현이 나온다.
[주D-002]푸른 …… 흥치 : 가랑비를 맞으며 낚시하는 멋을 말한다. 당(唐)나라 장지화(張志和)의 〈어부사(漁父詞)〉에 “푸른 삿갓 쓰고 푸른 도롱이 걸쳤으니, 비낀 바람 가랑비에 굳이 돌아갈 것 없네.[靑箬笠 綠簑衣 斜風細雨不須歸]”라는 명구가 나온다.
부엌일을 도맡던 하녀가 병으로 죽었기에 며칠 동안 시 읊는 일도 잊은 채 슬픔에 잠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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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 밥 먹을 때 없어서는 안 될 것은 / 朝夕餐飱不可無
싱겁고 짠 맛 비계와 살을 적당히 맞추는 일 / 調和鹹淡與膏腴
그녀가 매일 정성껏 보살펴 준 그 덕분에 / 憐渠每日施微力
몇 년 동안 병든 이 몸 보전할 수 있었어라 / 使我多年保病軀
어미와 자식 서로 만나 바야흐로 기쁠 때에 / 母子相逢方喜快
생사가 갈린 운명 그저 탄식만 나올밖에 / 死生有命但嗚呼
노소의 죽음이 바뀌는 일 예로부터 있긴 하나 / 老存少沒由來事
천도는 도시 알 수 없으니 누가 감히 따지리요 / 天道冥冥誰敢圖
민중립(閔中立)이 사위를 맞아 베푼 잔치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시 한 수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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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흰머리는 이미 남김이 없건마는 / 先生白髮已無餘
그래도 인정 베풀어서 초청을 해 줬구려 / 尙做人情入里閭
혼례에 감히 뒤지면 안 되는 줄 알고말고 / 婚禮固知非敢後
시골 풍속 여전한 것이 새삼스레 기뻤다오 / 鄕風猶喜尙如初
대낮처럼 환하게 밝힌 휘황한 촛불이요 / 煌煌蠟炬明如晝
밤 하늘 가득 교교하게 수놓은 은하수라 / 皎皎銀河掛在虛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 시중공 인망 중해 / 最幸侍中公□重
한 가문의 광채가 우리 동방을 비춰 주니 / 一門光彩照桑墟
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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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왕명 받들고 비문을 짓노라니 / 雨中奉勅作碑文
동이로 퍼붓는 듯 낙숫물 소리도 시원해라 / 簷溜浪浪快寫盆
달아오른 필봉도 물속에 잠깐 식혀질 듯 / 似與筆鋒俱淬水
하늘 위 구름까지 검기가 뻗쳐야 하고말고 / 應從劍氣屬浮雲
서경의 체재를 본받자니 어렵게만 느껴지고 / 典謨體裁深難法
시경의 가락 역시 못 들어 본 지 이미 오래 / 風雅聲音杳不聞
한당의 문장을 본뜨려 해도 삐걱대기만 하는지라 / 欲學漢唐猶戛戛
뜨락에 떨어져 그려내는 빗방울무늬만 보노매라 / 坐看庭際滴成紋
가난한 나의 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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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가난하니 안빈낙도 제격이라 / 家貧我當樂
내가 보전하는 것은 오직 청전뿐 / 所保唯靑氈
그냥 아침저녁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 苟其度朝夕
세상의 변천 모른 채 편안히 지내노라 / 安焉無變遷
자미도 남들 보기 부끄럽다 말하면서 / 子美恐羞澀
지갑 속에 달랑 한 푼 남았다 하였지만 / 囊中看一錢
이 역시 우스갯소리로 해 본 말일 뿐 / 亦是戲語耳
그도 단지 충의만을 보전하려 하였네라 / 但求忠義全
순식간에 지나가는 우리네 백년 인생 / 百年一瞬息
어질든 어리석든 한데 뒤섞여 살아가다 / 紛紛愚與賢
얼음 녹듯 자취없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데 / 相繼以澌盡
이 중에서 후세에 이름을 남길 자 몇 명일꼬 / 有幾能名傳
이름을 남기는 것은 빈부와 상관없나니 / 名傳非貧富
그저 나의 천성을 보전하는 데 있나니라 / 只在全吾天
[주D-001]청전(靑氈) : 선대(先代)의 유물(遺物)을 뜻한다.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의 집에 도둑이 들었을 때, 집안 대대로 전해 오는 푸른 모포[靑氈]만은 놔두고 가져가라고 말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80 王羲之列傳 王獻之》
[주D-002]자미(子美)도 …… 하였지만 : 자(字)가 자미인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에 “지갑이 텅 비어서 남들 보기 부끄러워, 그저 한 푼밖에 남지 않았는걸.[囊空恐羞澀 留得一錢看]”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8 空囊》
가랑비 속에 광명사(廣明寺)의 재공(齋公)이 내방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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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속에 가랑비 흩뿌리면서 / 微雨灑白日
맑은 바람 숲 속에서 일어나는 날 / 淸風生碧林
모정에서 고승을 마주 대하니 / 茅亭對高僧
내 마음도 깨끗하게 가라앉누나 / 淡然方寸心
우스개로 하는 말도 자못 묘한 경지 / 戲語頗造妙
알 만하네 선학이 얼마나 깊은지를 / 可知禪學深
속세의 일도 어느덧 얼음 녹듯 사라지고 / 塵機已氷釋
종소리 허공에 날아가듯 걸릴 것이 없어라 / 不碍如聲金
명교의 울타리를 한번 훌쩍 넘고 보니 / 超然名敎外
가슴속의 번뇌도 말끔히 없어질 듯 / 足以祛煩襟
하늘 위의 뜬구름이 정신이 되고 / 浮雲爲精神
흘러가는 물소리가 성음이 되노매라 / 流水爲聲音
이 몸은 늙은 데다 병이 또 많으니 / 我老又多病
언제 어디에서 서로 다시 만나 볼꼬 / 他年何處尋
한 유항(韓柳巷)이 강 언덕까지 뒤따라오고 권 대부(權大夫)가 또 이르렀는데 모두 자서(子壻)들과 동행하였다. 전별연을 일단 마치고 작은 봉우리에 올라가 강물을 굽어보며 실컷 구경하면서 몇 잔의 술을 마시고는 작별한 뒤에 배 안에 홀로 들어앉아서 한 수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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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등산임수(登山臨水)의 흥치가 새로운데 / 我有登臨興
공은 예전의 유람이 새삼 생각나는 듯 / 公懷夙昔遊
강호는 변함없이 눈앞에 분명히 있건마는 / 江湖明在眼
상설이 유독 머리 위에 듬뿍 내려앉았어라 / 霜雪獨蒙頭
까마득히 보이나니 삼각산(三角山) 봉우리요 / 渺渺三山境
유유히 흐르나니 일만리 강물 줄기로다 / 悠悠萬里流
술잔을 입에 대고 서로 작별 나눈 뒤에 / 含杯相別後
이제는 말을 타고 떠나는 배에 올랐도다 / 騎馬上行舟
바람도 멈춘 때에 돛을 내리고 정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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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조수 밀려올 때 인녕 나루 출발하여 / 朝潮引寧渡
뉘엿뉘엿 해질 녘에 암곶 마을 도착했네 / 夕陽巖串村
산 오솔길 끼고서 한 번 휘돌아 배를 몰자 / 一□遶山路
수문을 내려다보며 다가서는 인가 몇 채 / 數家臨水門
여기서 하룻밤 묵으려고 돛을 내리자 / 落帆將止宿
다투어 몰려와서 닻줄 끌어당기누나 / 引纜尙爭奔
바람귀신 고마워라 넙죽 절할밖에 / 拜手謝風伯
천지와 같은 은혜를 듬뿍 받았는걸 / 深蒙天地恩
암 곶(巖串)에서 하룻밤을 묵고 나서, 그다음 날 다시 배를 타고 용산탄(龍山灘)과 이탄(梨灘)과 하돈탄(河豚灘)과 신탄(新灘)을 지나갔다. 물이 얕은 곳을 만나면 배에서 내려 끌고 가고 바닥이 닿는 곳에서는 아예 등에 지고 배를 옮기는 등 있는 힘을 다해서 가까스로 빠져나가다가, 깊은 물을 만나면 돛을 달고 매우 빠른 속도로 나아가기도 하였는데, 이처럼 하루에 수십 리를 가는 동안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희열을 맛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중방원(重房院)에 이를 즈음에, 한양 윤(漢陽尹)이 배 안에까지 찾아와서 영접하며 신정(新亭)으로 올라가자고 초청하였으나, 굳이 사양하고는 술 몇 잔만 들고서 다시 길을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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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이 얕은 데다 물살이 또 세찬지라 / 灘水淺而急
배 젓기 무척이나 어려운 줄 알겠나니 / 操舟知甚難
흰머리로 처음 건너가는 험난한 길 / 白頭始涉險
마음속이 어찌 감히 편할 수 있으리오 / 中心焉敢寬
우리 한양 윤은 친척이요 또 오랜 벗 / 師尹親且舊
위로할 생각으로 술 자리를 베푼 뒤에 / 勞慰羅杯盤
신정에 올라가자 나를 초청하면서 / 邀我登新亭
판관까지 함께 대동하고 오셨는데 / 偕來有判官
갈 길 바쁜 몸이라서 땅을 밟지 못한 채 / 怱怱不下岸
뱃전에 기대 몇 잔만 조금 주고받았어라 / 倚舷少盤桓
중방원은 장군이 중병을 거느린 곳인 만큼 / 將軍領重兵
세심하게 마음 써서 대접을 해야 할 터 / 供億須精完
그래서 사실은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 所以不敢溷
곧장 작별하고 배 타고 떠난 것이라오 / 辭行又遡灘
아득히 펼쳐진 하늘과 땅 사이에 / 茫茫乾坤內
동정 간에 모두들 안식을 구하는데 / 動靜皆求安
늘그막이 되어서도 거꾸로만 행하는 몸 / 臨老乃反之
줄줄 흐르는 땀방울이 부끄러울 뿐 / 愧汗漿水翻
머리 돌려 바라보면 삼각산 봉우리가 / 回看三角山
푸른 하늘 뚫고서 뾰족하게 솟아 있고 / 聳碧高巑岏
강물도 깊은 데다 바람 또한 순탄하니 / 水深風又順
참으로 멋진 구경 이 얼마나 즐거운가 / 樂矣誠美觀
이렇게 한 수 적어 뒷사람에게 보이려니 / 書之示後來
말 없는 가운데 콧등이 시큰해지누나 / 默默鼻孔酸
유거(幽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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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히 지내는 몸 바쁜 일도 없어 / 幽居無冗事
병든 나그네 혼자서 시만 읊노매라 / 病客獨長吟
바람이 잠잠하니 나무 모습도 장중하고 / 風定樹容重
비가 많이 오니 이끼 색깔도 더 짙어라 / 雨多苔色深
지팡이에 의지하고 바라보는 개미 싸움 / 倚筇看鬪蟻
베개에 기대 듣노라니 새들의 노랫소리 / 欹枕聽啼禽
이만하면 천명을 즐기기에 충분한걸 / 足以樂天命
유유하여라 군자를 그리는 마음이여 / 悠悠君子心
[주D-001]이만하면 …… 마음이여 : 세 상의 일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의 변화에 몸을 맡긴 채 전원에서 한가로이 생을 보냈던 도잠(陶潛)의 풍모가 오늘 따라 새삼 그리워진다는 말이다. 도잠의 〈귀거래사(歸去來辭)〉 맨 마지막에 “자연의 변화 따라 죽을 때 되면 가면 그뿐, 주어진 천명 즐기면 되지 다시 무엇을 의심하랴.[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라는 말이 나온다.
적탄(赤灘)에서 하룻밤 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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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포에서 아침 먹고 잠깐 가는 길 멈추고는 / 朝飡禿浦暫停行
언덕에 올라 걸상 위에서 한 소리 읊노매라 / 上岸胡床嘯一聲
이제 막 산골로 들어가는 도미원의 앞길 / 道美院前初入峽
양쪽에 솟은 산들 어디를 보나 삐쭉삐쭉 / 兩邊山勢盡崢嶸
언덕 위의 평평한 밭 몇 이랑 기름지고 / 岸上平田數畝肥
안개 속에 파묻힌 남공의 별장 적막해라 / 南公別墅擁煙霏
나도 소년 시절에는 풍운의 기회를 맞았건만 / 少年又値風雲會
돌아갈 곳 없는 백발의 몸 부끄럽기 그지없네 / 白髮深慚無所歸
허리를 지지다가 감회가 일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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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기왓장 달궈 아픈 허리 지지다가 / 淸晨燒瓦熨腰肢
고통을 참고 붓을 꺼내 시 한 수 써 보노라 / 忍苦抽毫寫出詩
늘그막에 돌아갈 만한 강과 산 그 어드메뇨 / 何處江山可歸老
하늘 가득 바람과 이슬 쇠한 몸 일으키련마는 / 滿天風露似扶衰
관녕은 또 바다 건널 계책을 세우려 하겠지만 / 管寧又欲謀浮海
순욱이 어떻게 집 없이 떠도는 일을 면하리오 / 荀彧安能免撤籬
유유한 하늘과 땅 가운데 내 목숨도 다했나니 / 天地悠悠吾已矣
거울에 비친 백발을 보며 홀로 중얼거리노라 / 鏡中相語鬢絲垂
[주D-001]관녕(管寧)은 …… 면하리오 : 세 상일에 매이지 않은 사람이야 자유롭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세상의 환란을 걱정하며 구제하려 애쓰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떠돌이 생활을 면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후한(後漢) 말의 은자(隱者) 관녕이 요동(遼東)에서 37년을 지내다가 문제(文帝)의 부름을 받자 가족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 건너[浮海] 고향으로 돌아온 고사가 있다. 《三國志 卷11 魏書 管寧傳》 순욱(荀彧) 역시 후한 말의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왕좌(王佐)의 인재로 일컬어졌는데, 평생토록 난세(亂世)를 평정할 뜻을 품고 여러 곳을 전전하며 조조(曹操)를 돕다가 마침내는 핍박을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사가 전한다. 《三國志 卷10 魏書 荀彧傳》
병탄(幷灘)에서 하룻밤 묵다. 여강(驪江)과 용진(龍津)의 물이 여기에서 합류하기 때문에 병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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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따라 내려올 땐 사공도 한가하더니만 / 順流而下棹夫閑
험한 곳 만나자 경각간에 놀라며 소리치네 / 遇險驚呼頃刻間
저녁에 모래톱 정박하니 바람 이슬 차가운데 / 晚泊沙洲風露冷
등불 하나 구름 산 비추며 어두웠다 밝아졌다 / 一燈明滅照雲山
유월 초하룻날 새벽에 남 정당(南政堂)의 별장을 지나 독포(禿浦)에 이르러서 닻줄을 수리하였다. 그러고는 저녁에 남경(南京)의 사평진(沙平津)에서 하룻밤 묵고 나서 그다음 날 관악(冠岳)의 승려와 작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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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 나루 아래로 배를 띄워 내려오니 / 龍津津下放船行
운림을 벗어나면서 밝아 오는 들판이라 / 出得雲林野色明
이제 풍랑이 걱정되어 닻줄을 고쳤는데 / 理碇始爲風浪計
흡사 이익을 다투려고 남경을 온 듯하군 / 赴京如與利名爭
붓과 벼루 외엔 지닌 것이 없는 이 몸 / 隨身筆硯無他物
이 목숨 의탁할 강산 어디에 있으리오 / 何處江山托此生
사평에 묵은 하룻밤 날도 쉽게 새는데 / 夜泊沙平天易曉
헤어지는 승려는 아무 생각도 없는가 봐 / 野僧分袖似無情
[주C-001]남경(南京) : 고려 시대 삼경(三京) 중의 하나로, 지금의 서울을 말한다.
이 날 밤 잠자리에 든 지 벌써 한참이나 되었는데, 깊은 밤중에 마침 빠져나가는 조수(潮水)의 흐름을 타고 순탄하게 내려오는 동안, 사공이 교대로 불러 대는 뱃노래 소리에 잠이 들었다 깼다 하였다. 그러다가 인녕(引寧) 나루에 와서 배를 세우고 한잠 푹 자고는 날이 밝아오자 동강(東江)으로 들어가서 상륙한 뒤에 두 아들을 이끌고 말을 달려 성안으로 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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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섬 실을 용양의 배 내 눈으로 보았으니 / 眼見龍驤萬斛舟
왜구를 소탕할 일 걱정할 것이 또 있으랴 / 掃平倭寇更何憂
사공은 진작부터 태평가 부르고 있다마는 / 棹夫已奏昇平曲
시인의 가슴속엔 오히려 노대의 시름이라 / 詞客猶懷老大愁
전각의 구름 걷히니 해 같은 임금님 뵈옵는 듯 / 雲卷殿前如睹日
말 위에 부는 서늘한 바람 홀연히 가을인 듯 / 風涼馬上忽疑秋
푸른 산에 돛 그림자 비치던 때를 생각하니 / 回思帆映碧山處
먼지에 찌든 속된 모습 나 스스로 부끄럽군 / 俗狀塵容吾自羞
[주D-001]만 섬 …… 배 : 거대한 전함(戰艦)을 표현한 말이다. 서진(西晉)의 용양장군(龍驤將軍) 왕준(王濬)이 촉(蜀)에서 건조한 거대한 전함을 이끌고 금릉(金陵)을 공격하여 오(吳)나라를 멸망시킨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晉書 卷42 王濬列傳》
[주D-002]시인의 …… 시름이라 : 목 은 자신은 늙도록 하나의 일도 이루지 못한 채 공연히 시름에 잠기고 있다는 말이다. 악부(樂府) 장가행(長歌行)에 “젊고 힘 있을 때 노력하지 않으면, 나이 늙어 공연히 슬픔에 잠기리라.[少壯不努力 老大徒傷悲]”라는 말이 나온다. 《樂府詩集 相和歌辭5》
신부(新婦)가 와서 인사를 드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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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신부 내외의 절을 앉아서 받는 자리 / 坐受佳兒佳婦禮
아무쪼록 공검으로 가문을 길이 빛내기를 / 願渠恭儉永家聲
시서는 은약하니 한평생 종사할 일이요 / 詩書隱約終身事
천지처럼 인온하여 만물을 생성할지니라 / 天地絪縕萬物生
처음 태어날 때 철명을 받았다 할지라도 / 縱是在初貽哲命
앞으로 더욱 힘써 꽃다운 명성을 떨치기를 / 還須逐後播芳名
벼슬이나 재물 따위는 굳이 따지려 하지 말고 / 班資財賄且休問
청백한 자손 되는 일을 좌우명으로 삼을지라 / 淸白子孫爲座銘
[주D-001]시서(詩書)는 …… 일이요 : 종 신토록 성현(聖賢)의 경서(經書)에 담긴 간략하면서도 심오한 뜻을 탐구하며 실천해 나가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사기(史記)》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시경》과 《서경》의 글이 간략하면서도 뜻이 심오한 것은, 작자가 자신의 생각을 그러한 방식을 통해 드러내려고 했기 때문이다.[夫詩書隱約者欲遂其志之思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천지처럼 …… 생성할지니라 : 음 양(陰陽)의 두 기운이 화합하여 만물을 생성하는 것처럼 앞으로 아들 부부가 많은 아들 딸을 낳아 기르라는 말이다. 《주역(周易)》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하늘과 땅은 음양의 두 기운을 합하여 만물을 생성하고, 남자와 여자는 정기(精氣)를 합하여 자식을 낳아 기른다.[天地絪縕 萬物化醇 男女構精 萬物化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처음 …… 떨치기를 : 훌 륭한 가문에서 뛰어난 자질을 품부받고 태어났다 할지라도 더욱 분발해서 가문의 명예를 드날리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서경》 소고(召誥)에 “처음 태어날 때에는 스스로 밝은 명을 지니지 않는 경우가 없다.[罔不在厥初生自貽哲命]”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4]벼슬이나 …… 말고 :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 “재물이 있고 없는 것만을 헤아리고, 지위와 봉록이 높고 낮은 것만을 계산한다.[商財賄之有亡計班資之崇庳]”라는 말이 나온다.
동정(東亭)이 소장한 장언보(張彦輔)의 산수도(山水圖)에 제(題)하였는데, 이 그림은 곡성(曲城)이 평소에 수집해 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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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의 저택 얼마나 깊숙하고도 그윽한지 / 曲城甲第何沈沈
맑은 향기가 종일토록 옷자락에 감도누나 / 淸香盡日凝素襟
좌우에 벌여 서 있는 이름난 꽃 기괴한 돌 / 名花異石列左右
일만리 구름 산 그림이 그 속에 또 걸렸어라 / 中有萬里之雲岑
원근의 풍경이 잇따르며 어두웠다 밝아졌다 / 聯絡遠近乍明晦
깊은 곳 어디선가 원숭이 울음도 들리는 듯 / 深處髣髴聞猿吟
여기가 혹시나 구지의 소유천은 아닐는지 / 是或仇池小有天
원래 선골이 아니라면 찾을 길이 없으렷다 / 非自仙骨無由尋
중자에 대한 공의 사랑 워낙 특별하였으니 / 公之鍾愛在仲子
천금 같은 이 그림도 선뜻 건네주었겠지 / 持以與之如千金
부러워라 그림을 통한 부자간의 그 정이여 / 丹靑慈孝足模楷
이 산수화 만고토록 선망의 대상이 되리로다 / 直照萬古令人歆
[주C-001]곡성(曲城) :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염제신(廉悌臣)으로, 동정(東亭) 염흥방(廉興邦)의 부친이다.
[주D-001]구지(仇池)의 소유천(小有天) : 소 유천은 중국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골짜기의 이름이고, 구지는 감숙성(甘肅省)에 있는 산 이름인데, 구지산 정상에 고여 있는 물이 땅속을 통해서 소유천으로 흘러내린다고 일컬어진다. 소유천은 도교(道敎)에서 말하는 36동천(洞天) 중의 하나로, 보통 선경(仙境)을 뜻하는 말로 쓰이는데,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만고토록 구지에 고인 물이, 땅속으로 몰래 소유천으로 흐른다네.[萬古仇池穴 潛通小有天]”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7 秦州雜詩14》
동정이 소장한 행촌(杏村)의 묵죽(墨竹)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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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죽(風竹)
행촌의 마음은 텅 빈 대나무 속과 같다 할까 / 杏村心似竹心虛
소쇄하고 단장한 양면 모두가 넉넉하고말고 / 蕭洒端莊兩有餘
청창을 향해 완연히 상대하듯 그린 묵죽 / 寫向晴窓宛相對
만고 청풍을 이처럼 묘사하기도 어려우리 / 淸風萬古畫難如
노죽(露竹)
아침마다 여린 추위 보내 주는 안개와 이슬 / 霧露朝朝送薄寒
하늘이 푸른 대나무 깨끗이 씻어 주려나봐 / 天敎淨洗碧琅玕
분명코 행촌과 서로 닮은 이 대나무여 / 分明與杏村相似
곧은 절조를 속인의 눈으로 볼 수 있으랴 / 直節寧容俗眼看
[주C-001]행촌(杏村) : 이암(李嵒)의 호이다.
유항(柳巷)과 함께 홍 오재(洪五宰)를 위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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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서 알아본 아름다운 그 풍채 / 江南曾賞美風儀
언동이 종용해서 실기하지 않았지요 / 言動從容不失機
가는 길 중도에서 도로 막히게 하다니 / 行到半塗還見阻
조정의 논의가 옳은지 정말 모르겠소 / 不知朝論是邪非
내 가 두루 찾아보는 길에 강남(江南)에서 돌아온 김 사재(金四宰)는 길이 막혀서 만나지 못하였고, 정 첨서(鄭簽書)는 만나 보았고, 김 추상(金樞相)은 만나지 못하였고, 이 추상(李樞相)은 만나 보았다. 그러고는 마정(馬井)에 이르러서 이상(二相)과 삼재(三宰)를 만나 본 뒤에 돌아와 종덕(種德)의 새 정자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의 장인인 유공(柳公)이 또 왔기에 종일토록 담소하다가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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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하나마 마음을 써서 사신을 위로하려 했고 / 用意區區勞使臣
이어서 깍듯이 예의 차려 집정을 찾아뵈었노라 / 仍參執政禮儀眞
이제 금방 공사를 끝낸 새로운 정자 위에 / 新亭結構功初畢
두 노인이 올라 서니 흥치가 더욱 새로워라 / 二老登臨興更新
달 이슬을 치달리는 붓끝의 묘한 그 솜씨요 / 筆下抑揚驅月露
바람 티끌 벗어난 술동이 앞의 담소였네 / 樽前笑語隔風塵
늦게 돌아올 때는 다시 시를 재촉하는 비 / 晚歸更値催詩雨
이런 청한한 정취를 또 몇 사람이나 느꼈을꼬 / 似此淸閑更幾人
[주D-001]두 노인 : 목은과 목은의 아들 종덕의 장인인 유공(柳公)을 가리킨다. 유공의 이름은 유혜손(柳惠蓀)으로, 목은과 친한 권주(權鑄)의 매형인데, 권주의 부친은 찬성사(贊成事)인 현복군(玄福君) 권렴(權廉)이다.
[주D-002]시를 재촉하는 비 : 여 럿이 어울려 노닐면서 더위를 식히다가 저녁 무렵에 비를 만나 지은 두보(杜甫)의 시에 “머리 위에 시커멓게 떠 있는 조각 구름, 시를 재촉하는 비가 틀림이 없으렷다.[片雲頭上黑 應是雨催詩]”라는 표현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3 陪諸貴公子丈八溝携妓納涼晚際遇雨》
19일 입추(立秋)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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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병들어 더위라도 가셨으면 바랐는데 / 我病思消暑
하늘이 동정하여 입추를 또 맞게 했네 / 天憐又立秋
바람 부는 탑상에는 매미 소리 감돌고 / 蟬聲遶風榻
별 뜨는 누대에는 기러기 그림자 가까워라 / 雁影近星樓
건강을 지키는 일 더욱 힘써야 마땅하니 / 保養當加謹
밖으로 치달리는 일은 조금 쉬어야겠지 / 驅馳且少休
사람 마음에 꼭 드는 초가을 서늘한 날씨 / 新涼可人意
강 위에 띄운 조각배 벌써 눈에 보이누나 / 江上有扁舟
밤에 비가 내리더니 새벽까지 이어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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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비가 내리더니 새벽까지 주룩주룩 / 夜雨連平旦
초가을의 서늘한 기운 하늘에 가득해라 / 新涼滿大虛
항상 읊조린다마는 좋은 시구 나올 리야 / 長吟無好句
병이 많으니 또 집에 앉아 있을 수밖에 / 多病且安居
태평한 세상에 말 타고 고향에 돌아가면 / 世泰方歸馬
몸이야 쇠했어도 낚시는 할 수 있으련만 / 身衰可釣魚
가을바람 부는데 어째서 못 돌아가시는가 / 秋風胡不去
흰머리도 이미 빠져 얼마 남지 않았는걸 / 白髮已蕭疏
[주D-001]가을바람 …… 돌아가시는가 : 진(晉)나라 장한(張翰)이 낙양(洛陽)에서 벼슬살이를 하다가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고는 고향의 농어회와 순챗국이 생각나서 곧장 귀향했던 고사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晉書 卷92 張翰列傳》
박 정당(朴政堂)이 술과 고기를 보내 준 것을 감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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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섯 해 동안 깊은 우정 맺어 온 분 / 三十六年交契深
얼굴 마주 대해야만 마음을 준 적 있으리오 / 何曾當面始輸心
맑은 술에 연한 고기 보내는 이도 적은 오늘 / 淸樽軟肉今來少
흰머리로 얼근히 취해 또 한 수 읊어 보네 / 白髮醺然又一吟
[주D-001]얼굴 …… 있으리오 : 서 로 얼굴을 보지 못할 때에도 한결같이 속 깊은 우정을 보여 주었다는 말이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늘그막에 젊은 친구와 사귀어 보려 하였더니, 얼굴 앞에선 마음을 주다가도 얼굴 돌리면 비웃는구나.[晚將末契託年少 當面輸心背面笑]”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14 莫相疑行》
유항(柳巷)과 함께 포은을 위로하러 갔는데 나의 집 아이도 동행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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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위해 두 번이나 만리 길 치달리시다니 / 萬里奔馳再
중년에 이산(離散)하는 일이 많기도 하오그려 / 中年聚散頻
우리의 우정은 늘그막에 더욱 소중해지는데 / 交情臨老重
세상일은 시름 속에 갈수록 새롭게 변해 가네 / 世事與愁新
도성 남쪽 교외의 들판 짓누르는 누대라면 / 樓壓城南野
서울 거리 먼지 하나 볼 수 없는 문이로세 / 門無陌上塵
한 잔 술 앞에 하고 서로 마주한 이곳 / 一尊相對處
인간의 윤리 밝히기에도 충분하였도다 / 亦足以明倫
유항과 함께 광양군(光陽君)을 초치해서 하과(夏課)의 시험을 치르는 제생(諸生)을 보러 갔는데, 비가 내려서 야외에 있기가 불편하기에 구산사(龜山寺)로 장소를 옮겨 각촉부시(刻燭賦詩)를 행하였다. 교관(敎官)이 술자리를 마련했기에 약간 취해서 돌아왔는데, 이날 수행한 사람은 유항의 차자(次子)인 상경(尙敬)과 나의 아들인 종학(種學)ㆍ종선(種善)과 문생인 송문중(宋文中)이었으며, 거기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은 김제(金淛), 강회중(姜淮仲), 신권(辛權), 박관(朴貫), 유겸(柳謙) 등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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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노인네 어슬렁거리며 찾아가서는 / 二老翶翔去
여러분을 그곳에서 우연히 만났어라 / 諸公邂逅來
산에 오르니 우러나오는 도의 맛이여 / 登山生道味
각촉부시 역시 천재를 보려 함이러라 / 刻燭見天才
햇빛을 머금은 정초 우거진 창이요 / 庭草牕含日
술잔에 가득 담긴 솔바람 소리라니 / 松風滿酒杯
그런데 앞으로 우리 사문과 명교가 / 斯文與名敎
혹시나 부러지고 무너지지는 않을는지 / 只恐兩摧頹
[주C-001]광양군(光陽君) : 이무방(李茂芳)의 봉호인데, 목은보다 나이가 9년 위이다.
[주D-001]그런데 …… 않을는지 : 목은이 그날 응시생들의 답안지를 보고 난 뒤의 실망감을 토로한 말인 듯하다.
감진색(監進色) 제공(諸公)과 함께 광평(廣平) 시중(侍中)을 찾아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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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서생은 일을 보는 것이 느린데도 / 白髮書生見事遲
매번 불러 주시어 말씀을 잘 해 주시누나 / 每承招喚閏言詞
평소에 정하신 조정의 계책 산처럼 굳건하고 / 廟謨素定山難轉
종횡으로 치닫는 붓 하루 해가 또 모자라네 / 筆勢縱橫日又移
보완해 보려 해도 흠잡을 것이 없으신 분 / 欲補之而無所缺
절의를 일으켜 세워 위태롭게만 안 했으면 / 須扶節義莫令危
그동안 어떤 일도 대적할 사람이 없었나니 / 由來大小眞非敵
어려움 많은 지금 한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오 / 不獨多艱此一時
[주C-001]광평(廣平) : 광평부원군 이인임(李仁任)을 가리킨다.
[주D-001]일을 …… 느린데도 : 사 태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민첩하게 일 처리를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사기(史記)》 권79 범수열전(范睢列傳)에 “양후(穰侯)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인물이라고 내가 들었는데, 지금 그가 일 처리하는 것은 실로 느리기만 하다.[其見事遲]”라는 말이 나온다.
상상(上相)이 강가에서 전함(戰艦)을 시찰했다는 말을 듣고 짓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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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위에 가로놓여 떠 있는 전함 / 戰艦橫江上
동방의 당당한 위풍을 떨치도다 / 威風振日東
경영하는 것은 유능한 관리의 몫 / 經營屬能吏
지휘하는 일이야 원수가 있지 않소 / 指授在元戎
설도는 평야를 물 뿌리며 지나가고 / 雪棹灑平野
장오는 먼 하늘을 힘차게 날아가리 / 檣烏飛遠空
도적을 소탕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 / 寇平蹺足待
전술 전략 뛰어나서 군웅을 압도하니 / 武略蓋羣雄
가랑비 내리는 도성 남쪽 길 / 小雨城南路
교외의 산 위에 구름이 떠다니네 / 浮雲野外山
수풀 옆엔 새소리도 조용한 걸 알겠거니 / 傍林知鳥靜
절간을 바라보면 한가한 승려도 부러우리 / 望寺羨僧閑
얼굴은 술기운에 홍조를 띠기도 하오마는 / 顔帶得酒暈
머리칼은 나라 걱정에 더욱더 희끗희끗 / 鬢添憂國斑
어느 때나 모시고서 담소를 나누다가 / 何當陪笑語
해질 녘 다 되어서 돌아올 수 있을꼬 / 直到夕陽還
나는 원래 강변 마을 거주하면서 / 我本居江國
때때로 어부들과 어울려 놀았지요 / 時從漁者游
비 올 때는 푸른 도롱이가 적격이요 / 綠簑宜冒雨
달 밝을 땐 뱃놀이가 얼마나 좋았던지 / 明月好行舟
늘그막에 이르러선 돌아갈 곳도 없이 / 到老歸無所
지금까지 멈추지 않는 전란의 연속 / 如今戰不休
그래도 분투하는 우리 전함 있으니 / 官船尙格鬪
나의 시름 조금은 위로가 되오그려 / 足以慰吾愁
[주D-001]설도(雪棹)는 …… 지나가고 : 노를 저어 눈빛 같은 흰 물결을 사방에 뿌리면서 만경창파(萬頃蒼波)를 헤쳐 나간다는 뜻이다.
[주D-002]장오(檣烏) : 돛 위에 매단 까마귀 모양의 풍향계(風向計)를 말한다.
[주D-003]비 …… 적격이요 : 빗속에 낚시질하는 흥치를 말한다. 당(唐)나라 장지화(張志和)의 〈어부사(漁父詞)〉에 “푸른 삿갓 쓰고 푸른 도롱이 걸쳤으니, 비낀 바람 가랑비에 굳이 돌아갈 것 없네.[靑箬笠 綠簑衣 斜風細雨不須歸]”라는 명구가 나온다
급우(急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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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남짓 물동이 쏟듯 세차게 퍼붓는 비 / 急雨傾盆數刻餘
폭포수처럼 포말을 날리며 뜨락에 가득 찼네 / 暴流浮沫滿庭除
아이 불러 낮은 곳으로 물길을 트라 하다 보니 / 呼童決去從低處
고고 사재 당시의 일이 완연히 눈에 보이는 듯 / 宛似呱呱四載初
[주D-001]고고(呱呱) …… 일 : 옛 날에 우(禹)가 중국의 홍수를 다스리던 때의 일을 말한다. 당시에 어린 아들 계가 울어 댔으나[啓呱呱而泣] 귀여워할 틈도 없이 중국 전역을 치달리면서 오직 네 가지의 탈것을 타고서[乘四載] 치수(治水)에 온 힘을 쏟았다는 이야기가 《서경》 익직(益稷)에 나온다.
유항(柳巷)에게 증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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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에 잘 봐 달라고 청탁을 하다니 원 / 自憐垂老做人情
속진에 물든 모습 비평할 가치도 없소마는 / 俗狀塵容不足評
그래도 기쁜 것은 한가함 조금 많아져서 / 尙喜淸閑餘半點
창 가득 풍우성에 글 읽는 소리 섞이는 것 / 滿窓風雨雜書聲
비 바람 소리 쓸쓸해라 풀만 사립에 비칠 뿐 / 風雨蕭蕭草暎扉
하루 종일 적막하게 왕래하는 사람도 없네 / 闃然長日往來稀
서린도 나와 같이 한가한 정취를 음미하며 / 西隣也共閑中味
누대에 홀로 기대고서 푸른 산 기운 바라보리 / 獨倚高樓對翠微
들 절에서 돌아와서 버들골에 누운 뒤로 / 野寺歸來臥柳村
조정의 높으신 분께 안부도 못 드렸소 / 廟堂尊重絶寒暄
나는야 가엾게도 문장 빚을 못 갚아서 / 自憐尙負文章債
무더위 속에 갓끈 매고 대궐로 향한다오 / 觸熱纓冠向紫門
[주D-001]서린(西隣) : 서쪽 이웃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유항(柳巷) 즉 한수(韓脩)를 말한다. 한수는 목은과 절친한 벗으로 자는 맹운(孟雲)이다.
감진색(監進色) 제공(諸公)이 와서 정료위(定遼衛)에 보낼 이문(移文)을 의논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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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요망한 싹이 자라난 지 벌써 몇 년 / 國家妖孼已多年
세도와 인심 양쪽 모두 휩쓸리며 무너졌네 / 世道人情兩靡然
어쩔 수 없으니 차라리 부엌신에게 잘 보일까 / 無可奈何寧媚竈
어떻게 할 줄 모른다면 하늘에 호소할 수밖에 / 不知所以但呼天
구름도 태양에 찌는 더위 도망칠 수 없는 때에 / 雲蒸赤日逃難去
나무에 이는 맑은 바람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네 / 樹産淸風喜欲顚
태평 시대 구가하기엔 이 몸이 이미 늙었으니 / 歌詠昇平吾已老
조정에 글 올려 시골로나 돌아가 쉬면 좋으련만 / 可從廊廟乞歸田
[주D-001]어쩔 수 …… 수밖에 : 위 (衛)나라의 실권자인 왕손가(王孫賈)가 “아랫목귀신과 같은 왕에게 잘 보이려 하기보다는, 차라리 부엌귀신처럼 실력이 있는 자에게 잘 보이라.[與其媚於奧 寧媚於竈]”는 뜻으로 공자에게 말하자, 공자가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獲罪於天 無所禱也]”라고 대답하였다. 《論語 八佾》
급우(急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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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있다 부리나케 땅 위에 내리면서 / 急急來何處
구름 속에서 번갯불을 또 맞아 오시는가 / 雲間逆電蛇
지붕을 흔들어대는 소리 홀연히 들리더니 / 忽聞鳴屋瓦
뜨락으로 달아나는 불빛이 금세 보이도다 / 旋見走庭沙
넘쳐흐르는 물은 마치 바다가 뒤집힌 듯 / 泛溢如翻海
다만 아쉬운 것은 흐드러지게 핀 꽃잎들 / 紛披只惜花
누가 알기야 하겠는가 천년 세월 지난 오늘 / 誰知千載下
숲 속에 들어간 중화를 생각하고 있는 줄을 / 納麓想重華
[주D-001]숲 속에 …… 중화(重華) : 《서 경》 순전(舜典)에, 요(堯) 임금이 순(舜)을 시험하기 위하여 큰 숲 속으로 몰아 넣은 적이 있었는데[納于大麓], 그때 사나운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지면서 천둥 벼락이 쳤는데도 방향을 잃지 않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중화는 순 임금의 문채가 요 임금과 거듭 합치되었다는 뜻으로, 순 임금의 별칭으로 쓰인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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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쟁이가 날마다 문 앞에 와서 독촉하니 / 債主臨門日日催
노옹이 읊조리는 일을 피할 수 있겠는가 / 老翁吟嘯竟難廻
부운은 해와 장난치며 열었다 다시 닫고 / 浮雲弄日開還合
소낙비는 바람 따라 멈췄다가 또 오누나 / 急雨隨風止又來
앉아서 듣노라니 버들골의 꾀꼬리 소리 / 坐聽綿蠻啼柳巷
걷다가 보노라니 뜨락을 비추는 개똥벌레 / 行看熠燿照庭苔
어떡하면 빚진 것을 모조리 갚고 나서 / 何當逋負俱還盡
도롱이에 삿갓 쓰고 표연히 낚시터 향할거나 / 簑笠飄然向釣臺
탐라(耽羅) 성담(性曇) 공의 편지를 받고 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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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멀리 제주에서 사람이 찾아와서 / 人自耽羅海國來
서한과 버섯들을 책상 가득 쌓아 놨네 / 素書香茸案頭堆
뜬구름처럼 정처 없이 왔다갔다하시는 분 / 浮雲去住身無定
동갑의 존망을 생각하면 뼈가 으스러질 듯 / 同甲存亡骨欲摧
물처럼 청랑해라 가시는 곳마다 도량이요 / 處處道場淸似水
우레처럼 울려라 때때로 들리는 법고로세 / 時時法鼓震如雷
오십삼 선지식을 아직 다 찾아보지 못해 / 卽今五十三參未
보재를 본떠 남쪽으로 여행하신 줄 알겠도다 / 知是南游學菩財
[주D-001]동갑의 …… 듯 : 거의 모두 세상을 떠난 동갑의 친구들을 생각하면 새삼 처창한 생각이 든다는 말로, 동갑인 성담(性曇)에 대한 애틋한 정을 표시한 말이다.
[주D-002]법고(法鼓) : 고승의 설법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3]오십삼 …… 알겠도다 : 성 담(性曇)이 더 깊은 불도(佛道)의 수행을 위해 남쪽으로 제주를 찾아갔으리라는 말이다. 보재(菩財)는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 즉신성불(卽身成佛)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형상화하여 등장시킨 구도 보살(求道菩薩) 선재동자(善財童子)를 가리키는데, 처음에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찾아간 뒤에 다시 남쪽으로 여행하여 모두 53인의 선지식(善知識)을 방문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꾸며져 있다.
자안(子安)이 와서 운남(雲南)의 평정(平定)을 하례(賀禮)하는 표문에 대해서 상의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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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의 산빛이 아스라이 푸르스름한데 / 漢拏山色望蒼然
그 아래로 만리 길 금릉으로 배 떠나네 / 下有金陵萬里船
물길은 희부옇게 끝도 없이 펼쳐지고 / 水道微茫不知畔
돛단배는 경주하듯 경쾌하게 내닫누나 / 風帆飄忽似爭先
힘으로 육조를 개통시킨 운남 지역이요 / 力通六詔雲南地
위엄이 삼한을 진동시킨 해외의 바다로세 / 威振三韓海外天
백성의 풍속 유례없이 바꿔 준 이 시대 맞아 / 盛代移民超萬古
늙은이 길게 읊조리며 시를 또 하나 지었도다 / 老翁長嘯得新篇
[주D-001]육조(六詔) : 운 남성(雲南省)과 사천성(四川省)의 서남쪽 지역 일대를 일컫는 말로, 보통 운남의 대명사로 쓰인다. 조(詔)는 만어(蠻語)로 왕 혹은 수령을 뜻하는 말인데, 당(唐)나라 때 이 지역에 여섯 부족의 만족(蠻族)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공주 목사(公州牧使) 최유경(崔有慶)에게 답하면서 급히 붓을 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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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의 풍도 이어 청백하고 공근하니 / 淸白公勤繼父風
공사에 인정을 흠뻑 베풀 줄 알고말고 / 已知仁政洽於公
무더위에 시달리는 병객이 안타까워 / 應憐病客愁炎熱
은하수 대신 찻종을 보내 준 것이렷다 / 欲代銀河寄茗鍾
서린(西隣)의 길창군(吉昌君)을 모시고서 칠원(漆原) 시중(侍中)과 철원(鐵原) 시중을 배알하고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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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에 계신 두 분 시중 찾아 뵈온 길 / 梨峴登門兩侍中
큰 거리 남북의 기운 상서롭게 어렸어라 / 大街南北氣蔥蔥
풍운의 성세에 맞은 영예 그 누가 견주리요 / 風雲盛世榮無對
화목으로 이름난 동산 흥치가 또 끝없어라 / 花木名園興不窮
지금도 소박한 생활 세상의 풍속을 바꾸는 분 / 朴素只今移世俗
예로부터 어려울 땐 영웅의 힘을 입었더니라 / 艱難自古賴英雄
소년이 다행히도 원로를 따라다닌 덕에 / 少年幸接耆英武
주졸과 아동도 모두 목옹을 알아 준다오 / 走卒兒童識牧翁
[주D-001]풍운(風雲)의 성세(盛世) : 훌륭한 임금과 신하가 제대로 만나 펼쳐내는 태평 시대라는 뜻으로,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文言)의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雲從龍 風從虎]”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2]주졸(走卒)과 …… 준다오 : 참고로 사마광(司馬光)의 인덕을 칭송한 소식(蘇軾)의 시에 “아이들도 선생의 자인 군실을 외우고, 하인들도 선생의 성인 사마를 안다오.[兒童誦君實 走卒知司馬]”라는 표현이 보인다. 《蘇東坡詩集 卷15 司馬君實獨樂園》
길창군(吉昌君)과 한 창성(韓昌城)을 따라서 광평(廣平) 시중(侍中)을 찾아뵈었는데, 눈병을 이유로 손님을 맞으려 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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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이름은 중원까지 흘러넘치고 / 高名溢夷夏
원로의 덕망은 공신 중에도 으뜸이라 / 耆德冠親勳
장막 속에 든 손님 주옥과 같다 하면 / 入幕賓如玉
길거리 메우는 말 구름과 같다 할까 / 塡街馬似雲
게으름 부린 허물 스스로 꾸짖어야 할 때 / 疏慵方自責
존귀하신 어른께서 또 뭐라고 하셨을까 / 尊重更何云
집에 돌아와 빈 마루에 홀로 누워서 / 歸臥虛堂上
석양이 다 되도록 길게 읊조릴 수밖에 / 長吟到夕曛
[주D-001]장막 …… 손님 : 막 부(幕府)의 참모를 가리키는 말이다. 진(晉)나라 사안(謝安)이 환온(桓溫)을 찾아왔을 때 환온이 자신의 참모인 치초(郗超)에게 장막 속으로 들어가서 엿듣도록 하였는데, 마침 바람이 불어와 장막이 걷히자 사안이 웃으면서 “치생은 장막 속의 손님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郗生可謂入幕之賓矣]”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卷67 郗鑒列傳 郗超》
[주D-002]길거리 …… 말 : 의장대(儀仗隊)를 선도(先導)하는 마병(馬兵)의 집단을 가리킨다.
철원(鐵原) 시중(侍中)이 사직했다는 말을 듣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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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이 치솟은 만리장성을 무대로 하여 / 萬里長城聳碧空
말을 달리며 요기를 휩쓸어 버린 그 풍도여 / 妖煙散盡馬蹄風
조정에 건의한 고견은 태산처럼 무거웠고 / 臨朝高議如山重
일을 진정시키며 흉모를 눈처럼 녹였어라 / 遇事兇謀似雪融
소제가 밝게 살핀 덕에 참소임이 드러났고 / 昭帝見明知譖說
성왕을 열심히 공부시켜 강공을 이루었네 / 成王學困致康功
어린 임금 부탁한 일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 / 托孤盛典今猶古
뒷날 사업 번창하여 풍에 비할 수 있으리라 / 事業他年要比豐
[주D-001]하늘 …… 풍도여 : 공 민왕 3년(1354)에 원(元)나라에서 장사성(張士誠) 등을 토벌하면서 고려에 구원병을 요청하자, 철원부원군(鐵原府院君)인 최영(崔瑩)이 군사 2000명을 거느리고 원나라에 건너가 고우(高郵)ㆍ회안로(淮安路)ㆍ팔리장(八里莊) 등에서 싸워 용맹을 떨친 일을 가리킨다.
[주D-002]소제(昭帝)가 …… 드러났고 : 최 영이 신돈(辛旽)의 참소를 받고 계림 윤(雞林尹)으로 좌천되었다가 귀양을 갔으나, 공민왕 20년(1371)에 신돈이 처형되면서 다시 소환되어 찬성사(贊成事)가 된 것을 말한다. 한 소제(漢昭帝) 때 대장군(大將軍) 곽광(霍光)을 무함하는 상소문이 올려졌는데, 소제가 그 상소문의 내용 자체가 거짓임을 꿰뚫어 보고는 곽광의 결백을 입증해 주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68 霍光傳》
[주D-003]성왕(成王)을 …… 이루었네 : 주 공(周公)이 어린 성왕을 보좌하여 치세(治世)를 이루었던 것처럼, 최영이 10세에 즉위한 우왕(禑王)을 보필하며 어려움을 극복해 갔다는 말이다. 강공(康功)은 백성을 편안케 하는 정사를 말하는데, 《서경(書經)》 무일(無逸)에 “문왕이 허름한 옷을 입고서 백성을 편안케 하고 길러 주는 일을 행하였다.[文王卑服卽康功田功]”라는 말이 나온다. 최영은 우왕의 장인이기도 하다.
[주D-004]풍(豐) : 《주역》의 풍괘(豐卦)를 말한다. 이 괘는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것처럼 온 천하가 밝게 빛나는 가운데 만물이 풍성해지고 성대해지는 것을 상징한다.
양벽운(楊碧雲)이 와서 절구(絶句)를 지어 읊었는데, 그가 떠나고 나서 여기에 화운하여 세 수를 지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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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이슬은 방울방울 눈을 씻어 맑게 하고 / 竹露娟娟洗眼明
손바닥 속에선 번갯불이 놀래듯 달아나네 / 掌中飛電走如驚
고희가 다 되건마는 아직도 청수한 동안 / 年將七十童顔秀
사조 역시 세상 벗어나 맑고 신선하고녀 / 詞調淸新物外情
진맥의 비결 전수받고 손만 대면 금세 알아 / 脈訣相傳指下明
귀신도 놀랄 만큼 오장육부를 훤히 보네 / 洞看臟腑鬼神驚
해동에서 그의 의술 덕을 안 본 이 있으랴만 / 海東皆被刀圭力
그중에서도 목옹이 제일 고마워해야 하리 / 㝡是牧翁多感情
시법과 의방 양쪽 모두 견식이 뛰어난 분 / 詩法醫方見得明
기막힌 발상으로 사람을 왕왕 놀라게 하네 / 出奇往往使人驚
뱃속 가득 호탕한 기운 완전히 숨길 수야 / 滿腔豪氣難韜盡
술잔을 들면 자꾸 비우는 뇌락한 모습이여 / 對酒頻傾磊落情
[주D-001]대 이슬은 …… 하고 : 의술(醫術)에 정통한 양벽운이 목은의 눈병을 낫게 하려고 대나무 이슬 같은 안약(眼藥)을 넣어 주었다는 말이다.
[주D-002]손바닥 …… 달아나네 : 초 서(草書)를 휘갈기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이백(李白)이 회소(懷素)라는 스님의 초서 솜씨를 노래한 시에 “왼쪽으로 구부리고 오른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마치 놀란 번개인 듯, 그 모습 마치 초한이 서로 공격하며 싸우는 듯.[左盤右蹙如驚電 狀同楚漢相攻戰]”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李太白集 卷7 草書歌行》
유감(有感)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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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껏 만족하며 살려고 노력한다마는 / 謀生本知足
무슨 일 생기면 가난이 매번 부끄러워 / 遇事每羞貧
혼례는 예로부터 중하게 여겨 왔나니 / 婚禮由來重
인륜이 여기에서 새로워지기 때문이라 / 人倫自此新
사치는 내가 원래 바라는 바가 아니지만 / 奢非吾所尙
그렇다고 초라하게 치를 수야 있겠는가 / 儉豈我當遵
유행을 따르는 것과 어기는 그 사이에서 / 違衆與從俗
신경을 쓰다 보니 골머리만 아파 오네 / 徒然勞我神
밤중에 비가 내려 띳집을 뚫고 들어오니 / 夜雨侵茅屋
쇠한 늙은이 감회에 젖어 장탄식할 수밖에 / 衰翁感嘆長
공부의 우산 손에 쥐고 빗물 받아 내는 몸 / 自持工部傘
누가 마주하였을까 자첨의 그 잠자리를 / 誰對子瞻床
방 안에 홀로 묵다 보니 더해지는 적막감 / 獨宿彌岑寂
일부러 기운 내 보려고 길게 노래 부르노라 / 長歌欲奮揚
천년 세월 유유해라 오늘날에 이르러서 / 悠悠千載下
남은 향기에 무젖는 사람 몇이나 될꼬 / 幾箇襲餘芳
고궁이란 성인의 말씀도 생각난다마는 / 固窮思聖訓
병이 많으니 인생이 덧없게만 느껴지네 / 多病感浮生
후대에 남겨 주는 것도 중하다고 하겠지만 / 垂裕豈不重
지금 편하게 하는 것도 경시하면 안 되겠지 / 引恬當勿輕
아첨과 교만은 없어진 지 오래되었어도 / 諂驕無也久
예법을 정하게 강구하기는 실로 어려워라 / 典禮講難精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집은 비록 썰렁해도 / 只幸家徒壁
빗소리 들으면서 길게 읊을 수 있다는 것 / 長吟對雨聲
[주D-001]공부(工部)의 …… 잠자리를 : 공 부는 두보(杜甫)의 별칭이고 자첨은 소식(蘇軾)의 자(字)인데, 목은이 공부와 자첨을 혼동해서 뒤바꿔 놓은 듯하다. 두보의 시에 “잠자리마다 빗물 새어 마른 곳이 없는데, 삼대 같은 빗발은 끊임없이 퍼붓누나.[床床屋漏無乾處 雨脚如麻未斷絶]”라는 구절이 나오고, 소식의 시에 “지붕이 새니 언제나 우산을 받쳐 들고, 땔감이 없으니 이제는 거문고라도 땔까 보다.[破屋常持傘 無薪欲爨琴]”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10 茅屋爲秋風所破歌》 《蘇東坡詩集 卷27 次韻朱光庭喜雨》
[주D-002]고궁(固窮) : 곤 궁한 처지에서도 분수를 지키며 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에 “군자는 곤궁해도 자신의 절조를 굳게 지키지만, 소인은 곤궁해지면 못 할 짓이 없게 된다.[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03]후대에 …… 것 : 명예나 업적을 후손에게 남기는 것을 말한다. 《서경》 중훼지고(仲虺之誥)에 “의로 일을 바로잡고 예로 마음을 제어하여 후세에 넉넉하게 남겨 주어야 한다.[以義制事 以禮制心 垂裕後昆]”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4]지금 …… 것 : 《서경》 재재(梓材)에 “윗사람은 아랫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편안하게 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引養引恬]”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5]아첨과 …… 오래되었어도 : 부귀와 빈천은 이미 오래전에 마음에 두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논어》 학이(學而)에 “빈천해도 아첨함이 없고, 부귀해도 교만함이 없다.[貧而無諂 富而無驕]”라는 말이 나온다.
서린(西隣)의 맹운(孟雲) 선생에게 기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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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이 세상일 차마 듣기 어려워서 / 世事紛紛不忍聞
창가에 높이 누우니 비가 동이로 퍼붓누나 / 小窓高臥雨傾盆
연꽃 감상한 옛날의 일 재현해 보고 싶은데 / 賞蓮故事今當講
비단결 무늬 비추는 붉은 꽃 어디에 있을꼬 / 何處紅粧照縠紋
하늘 끝 남쪽으로 나잔자가 떠난 뒤로 / 懶殘南去有天涯
광제사 못 속엔 비스듬 버들 그림자만 / 廣濟池中柳影斜
듣건대 벽통도 몇 자루 남지 않았다니 / 聞說碧筒無幾柄
올해도 불어난 흰머리가 새삼 가련하이 / 更憐雙鬢歲添華
평소 행한 일마다 선현에 부끄럽소마는 / 平生事事愧前賢
연꽃 사랑은 나름대로 염계에 비할 수도 / 竊比濂溪獨愛蓮
서린이 소쇄한 풍류 함께하지 않는다면 / 不是西隣共蕭洒
누구와 말고삐 나란히 못가로 향하겠소 / 有誰聯騎向池邊
[주D-001]벽통(碧筒) : 술 그릇으로 쓰는 연 잎사귀와 대롱을 말한다. 삼국 시대 위(魏)나라 정공(鄭公)이 여름날에 손님을 초청하여 연잎에 술을 부어 담은 뒤에 대롱 구멍을 통해서 함께 빨아 마셨다는 기록이 전한다. 《酉陽雜俎 酒食》
[주D-002]연꽃 …… 수도 : 송유(宋儒) 주염계(周濂溪)가 연꽃을 군자의 꽃이라고 찬탄하면서 〈애련설(愛蓮說)〉을 지었는데, 목은 자신도 연꽃을 좋아하는 마음만은 염계에 뒤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29 일 한밤중에 비지(批旨)를 내려, 판삼사사(判三司事) 홍공(洪公)과 이상(二相) 이공(李公)을 함께 시중(侍中)으로 임명하고, 광평(廣平)은 영문하(領門下)로, 철원(鐵原)은 영삼사(領三司)로 삼았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차서에 따라 승진시켰는데, 새로 문하성(門下省)에 들어온 사람은 노공(盧公)뿐이었고, 추밀원(樞密院)에 들어온 사람은 권 대부(權大夫)와 반 지신사(潘知申事)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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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이 이어진 남양과 청양의 가문에서 / 南陽渺渺接靑陽
선마를 함께 받고 정부의 어른이 되셨도다 / 同拜宣麻壓省堂
청명한 회신은 기상이 바야흐로 늠름하고 / 懷愼淸明方凜凜
영채를 발하는 안인은 의기 더욱 양양하리 / 安仁英氣更揚揚
공명이 크기도 해라 은퇴한 두 분 시중이여 / 侍中退老功名大
은택이 많기도 해라 관직 옮긴 참상 관원들 / 參上移官德澤霶
화원을 생각하노라니 나 자신도 마냥 기뻐 / 念及花原私自喜
막내 자제가 대간의 기강 떨치게 되었으니 / 那知季子振臺綱
[주D-001]아스라이 …… 되셨도다 : 시중으로 임명된 두 사람이 각각 남양 홍씨(南陽洪氏)와 청양 이씨(靑陽李氏)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선마(宣麻)는 마지(麻紙)에 쓴 임금의 조서(詔書)로, 재상을 임명할 때 곧잘 쓰는 표현이다.
[주D-002]청명한 …… 양양하리 : 노공과 반 지신사를 두고 한 말이다. 회신(懷愼)은 당(唐)나라의 추밀사(樞密使)인 노회신(盧懷愼)을 가리키고, 안인(安仁)은 서진(西晉)의 문장가인 반악(潘岳)의 자(字)이다.
[주D-003]두 분 시중(侍中) : 광평부원군 이인임(李仁任)과 철원부원군 최영(崔瑩)을 가리킨다.
[주D-004]화원(花原) : 목은의 장인인 화원군(花原君) 권중달(權仲達)을 가리킨다.
맹운(孟雲)과 함께 서린(西隣)을 모시고 마정(馬井)의 이 시중(李侍中)을 찾아뵌 뒤에 상당(上黨)의 저택에서 말을 쉬게 하면서 술을 조금 마시고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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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의 시중공에게 새로 인사를 드리고는 / 新參馬井侍中公
뺨에 홍조를 띤 선경의 복숭아 맛을 봤네 / 細嚼仙桃臉帶紅
그러고는 북애로 상당의 저택을 찾아가서 / 更向北崖尋上黨
채워도 빈 듯한 맑은 명주 몇 잔 마셨다네 / 數杯名酒淡如空
정 월성(鄭月城)이 참외[甛苽]를 보내 준 것에 대하여 감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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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의 계절도 초가을로 접어들어 / 別墅秋初入
새로 딴 참외 맛 꿀보다 더 달아 / 新苽蜜不如
맘속에 어여뻐라 옛 벗의 아들이여 / 心憐故人子
궁벽한 내 집에 고이 싸서 보내다니 / 封裹送幽居
서원군(西原君)의 홍 부인(洪夫人)에 대한 만사(挽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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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 선생의 후실 댁은 / 上黨先生繼室
남양 외척의 명문 출신 / 南陽外戚名家
자손들 대처럼 늘어섰는데 / 眼見諸孫如竹
아 우리 인생 유한함이여 / 嗚呼生也有涯
하늘 끝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 天末秋風又動
풀잎의 아침 이슬 어느새 스러졌네 / 草間朝露俄晞
상여 노래 아련해라 어드매로 향하는고 / 薤曲依依何處
푸른 산빛 뚝뚝 들어 옷깃을 적시는 곳 / 山光滴翠霑衣
[주D-001]아 …… 유한함이여 :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에 “우리의 삶은 유한한데, 욕망은 무한하다.[吾生也有涯 而知也無涯]”라는 말이 나온다.
매미 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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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소리 듣고 나니 가슴이 새삼 울렁울렁 / 蟬聲入耳動吾情
비루하도다 늙어서도 생을 탐하는 내 모습이 / 鄙哉老矣猶貪生
육신은 잘 길러서 살지게 하고 / 有身養得肥
마음은 잘 살펴서 편하게 할 일 / 有心存得平
임금님 섬길 때는 있는 힘 모두 기울이고 / 事君致吾力
어버이 모실 때는 나의 정성 다 바칠 일 / 事親盡吾誠
젊어선 힘껏 일하다가 늙어선 쉬어야 할 텐데 / 壯而行兮老而藏
무슨 욕심 잔뜩 부려 이처럼 정신이 없으신고 / 夫何役志兮營營
눈과 귀로 보고 듣는 봄꽃과 가을 벌레 소리 / 春花秋虫我耳目
만물도 모두 분분히 철따라 모습을 바꾸는걸 / 紛紛萬物皆生成
장차 세상 맛을 잊기로 기약하고 / 將期忘世味
담박하게 나의 소신 속에 품고서 / 淡然抱吾貞
느긋하고 유유하게 세월 보내며 / 優悠送歲月
귀거래의 옛 맹세를 어기면 안 될 텐데 / 庶不寒我盟
오늘 홀연히 어찌하여 처량한 생각에 휩싸여서 / 奈何今日忽悽惻
철따라 나는 물건에 거꾸로 놀라게 되었는고 / 反爲節物之所驚
내 마음이 쇠했는가 어쩔 수 없는 인정의 발로인가 / 不知吾心之衰抑人情之所不免耶
빈 집의 새벽 해뜰 적에 매미 소리의 노래로다 / 虛堂曉日吟蟬聲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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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근처 외진 곳 반 묘의 담장에 산다마는 / 僻近城南半畝宮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면 흥취가 또 끝없다오 / 遐觀細履興無窮
한쪽 편으론 산을 따라 빗발이 희부옇고 / 一邊雨脚循山白
몇 떨기 꽃송이는 이슬을 받들고 붉도다 / 數點花心承露紅
도성에 올라와 벼슬한 것이 어제 일만 같은데 / 輦下宦遊如昨日
가을바람 또 불어와 강동의 귀흥을 일으키네 / 江東歸興又秋風
이제는 몸도 늙은 데다 병마도 잇따라 침노하니 / 身今老矣仍多病
날아다니는 신선에게 기러기 타는 법 배워 볼까 / 欲向飛仙學駕鴻
[주D-001]반 묘(半畝)의 담장 : 지극히 빈한한 선비의 누추한 거처를 말한다. 《예기(禮記)》 유행(儒行)에 한사(寒士)의 생활을 표현하면서 “유자는 일 묘의 담장을 두른 집에서 산다.[儒有一畝之宮]”고 한 말이 나온다.
[주D-002]강동(江東)의 귀흥(歸興) : 진 (晉)나라 장한(張翰)이 낙양(洛陽)에서 관직 생활을 하다가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불현듯 고향의 순채와 농어회 생각이 나서 벼슬을 버리고 곧장 귀향했던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92 張翰列傳》 장한은 그의 자(字)인 계응(季鷹)으로 많이 불렸는데, 그가 오군(吳郡) 출신이기 때문에 강동 보병(江東步兵)으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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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시루에다 푹 삶은 뒤에 / 瓦甑蒸梨出
서당에서 마음껏 맛보노라니 / 書堂盡意嘗
약간 신맛이 입 안에 시큼시큼 / 微酸生齒舌
남은 열기가 뱃속에서 뜨끈뜨끈 / 餘熱入肝腸
배고픈 느낌도 어느새 사라지고 / 食氣俄消歇
졸음귀신도 곧장 줄행랑치누나 / 眠魔便走藏
생각나네 깊어 가는 연경의 어느 날 밤 / 燕京欲深夜
이 배 먹고 싶다고 문간에 소리치던 일이 / 曾記叫門墻
[주C-001]증리(蒸梨) : 배를 껍질을 벗겨 삶은 뒤에 끓인 꿀물이나 설탕물에 담근 것을 말한다. 배숙[梨熟]이라고도 한다.
가을밤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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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처럼 서늘한 가을날 밤에 / 秋夜涼如水
외로운 몸 침상에 누워만 있네 / 孤生偃在床
흐린 등불은 내 눈을 오히려 시새우고 / 燈光猜兩眼
쇠한 뱃속에선 술 좀 달라고 보채누나 / 酒氣鬪衰腸
우리 유학도 적막해지게 되었으니 / 洙泗應蕭索
요순의 시대 기약하긴 더욱 까마득 / 唐虞更渺茫
마음속으로 부질없이 애만 태울 뿐 / 有心空耿耿
귀밑머리엔 벌써 흰 서리가 엉겼어라 / 雙鬢已凝霜
아역(我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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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시끄러움 피하는 사람인데 / 我亦避喧者
금마문을 드나드는 신세가 되었다가 / 而游金馬門
병든 기회 이용하여 높이 드러누워 / 因病得高臥
창문 열고 남쪽 산을 바라보노라니 / 開窓見南山
운무가 수려한 산색을 희롱하는지라 / 雲煙弄秀色
순식간에 경치가 새롭게 자꾸 바뀌누나 / 變化俄頃間
곤궁하고 외롭다는 생각도 들지 않으랴만 / 豈不念窮獨
그래도 다행인 건 단표의 안자가 있는 것 / 幸有簞瓢顔
마음 자취를 나도 진정 해명하기 어려운데 / 心迹固難辨
뭇사람의 비평을 문제 삼을 게 있겠는가 / 衆論何足患
그저 나의 평소 신념 굳게 지키면서 / 但當守我素
생사의 관두까지 이를 보존해야 하리 / 保此生死關
[주D-001]나 …… 되었다가 : 목 은 역시 마음[心]은 진(晉)나라의 은사(隱士)인 도잠(陶潛)과 다를 바가 없는데, 자취[迹]는 사뭇 달라서 아직도 벼슬살이에 매여 있다는 말이다. 도잠의 〈음주(飮酒)〉 20수 중에 “사람 사는 곳에 움막을 엮었으나, 수레나 말의 시끄러움 느끼지 못하노라.[結廬在人境而無車馬喧]”라는 구절이 나온다. 금마문(金馬門)은 임금의 명령을 기다리던 곳으로, 조정의 별칭으로 쓰인다.
[주D-002]병든 …… 바라보노라니 : 도 잠의 〈여자엄등소(與子儼等疏)〉에 “북쪽 창가 아래에 높이 누워서[高臥北窓之下] 잠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노라면 희황(羲皇) 때의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는 말이 나오고, 〈음주〉 20수 중에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유연히 남쪽 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단표(簞瓢)의 안자(顔子) : 공 자의 제자 안회(顔回)가 보여 준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생활을 말한다. 공자가 “한 그릇 밥[一簞食]과 한 바가지의 물[一瓢飮]로 누추한 골목에서 사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한결같이 변치 않으니, 안회는 참으로 어질다.”라고 칭찬하였다. 《論語 雍也》
한 청성(韓淸城)이 순흥군(順興君)과 나에게 자기 외구(外舅)의 별장 연못에서 연꽃을 감상하자고 초청하였는데, 나는 마침 병이 또 발작하였고 순흥군도 몸이 좀 아팠다. 사람의 일이 이처럼 자꾸 어긋나기만 하기에, 붓을 잡고 곧장 써서 한 청성에게 부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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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접어들면 생각도 치밀하지 못해 / 老境宜疏曠
엉뚱한 꾀만 갈수록 황당해지기 마련이라 / 狂謀漸謬悠
나도 평소의 꿈 이루지 못할 줄 알았소만 / 自知違雅望
하늘 역시 맑은 나들이 인색하게 구는구려 / 天又靳淸遊
운무 감도는 물 위를 푸른 잎사귀 가득 덮고 / 翠蓋煙浮水
이슬 씻긴 이 가을날 붉은 꽃 단장했으련만 / 紅粧露洗秋
백옥 같은 우리 님 서로 마주하실 적에 / 玉人相對處
그 누구와 더불어 멋진 풍류 나누실꼬 / 誰與共風流
홀로 앉아서 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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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청성은 별장에 나가 노닐면서 / 淸城遊別墅
푸른 연못 비치는 연꽃을 감상하실 텐데 / 萏菼照□池
이 몸은 홀로 문생의 술을 마시면서 / 獨酌門生酒
촌 노인의 시만 소리 높여 부르노라 / 高吟里老詩
진주이슬 물방울은 둥글게 굴러 떨어지고 / 露珠圓自瀉
바람 맞은 연 잎새는 서로 몸을 기댈 텐데 / 風蓋倚相持
백로가 또 어디에선가 날아 온다면 / 白鷺來何處
옛날 번천 목지의 시가 떠오르리라 / 樊川想牧之
[주D-001]백로(白鷺)가 …… 떠오르리라 : 목 지(牧之)는 당(唐)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자(字)이고 번천(樊川)은 그의 별호인데, 그의 시에 “밝은 달밤 연꽃 따는 여인의 노래 들리는 곳, 붉은 누대 사면에 화려한 주렴이 걷혔도다. 안개 가르며 날아 오는 백로의 하얀 빛 선명한데, 바람도 멈춘 잔 물결 위엔 푸른 잎새 간들간들.[一聲明月采蓮女 四面朱樓卷畫簾 白鷺煙分光的的 微漣風定翠惉惉]”이라는 구절이 있다. 《樊川詩集 卷4 懷鍾陵舊游》
이날 비가 오기에 또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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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감상하노라면 마음도 절로 묘해지고 / 賞蓮心自妙
술을 마주 대하면 자취도 더욱 맑아지련만 / 對酒跡彌淸
나는 속된지라 자리에 끼이기 어려워서 / 我俗難參座
한가한 아이를 나 대신 가도록 하였다오 / 兒閑得代行
코끝에 들락거리는 연기를 보던 차에 / 氤氳鼻端氣
귓가에 들리는 방울방울 빗소리라니 / 點滴耳邊聲
그 누가 이 흥취를 묘사할 수 있으리오 / 興味誰描得
유명한 화가들도 그저 이름뿐이리라 / 丹靑謾有名
[주D-001]코끝에 …… 차에 : 마음을 가라앉히고 묵상에 잠긴 것을 말한다. 코끝에 정신을 집중하고 호흡을 관찰하면 마치 흰 연기처럼 숨기운이 출입하는 것을 보게 된다는 소위 ‘비단백(鼻端白)’의 교설이 《능엄경(楞嚴經)》 권5에 나온다.
가을 구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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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구름 새하얗기 눈과 같은데 / 秋雲白如雪
바람 따라 동쪽 바다 날아 가누나 / 隨風向東海
동쪽 바다에는 봉래산이 있다는데 / 東海有蓬萊
아득해라 어느 곳에 숨어 있을까 / 茫茫何所在
가고는 싶어도 날개가 없는 이 몸 / 欲去我無翼
나이만 먹고 자꾸만 늙어 가는데 / 年華改又改
어떡하면 상쾌하게 날아가 볼꼬 / 何時冷然行
땅을 굽어보면 먼지만 보이리라 / 俯視但塵滓
천상 세계에는 신선이 많이 살아 / 上界多神仙
수레 타고 줄 지어 날아다닐 테니 / 葳蕤接飛蓋
보허사 낭랑하게 부르는 그 속에서 / 朗詠步虛詞
항해를 떠 마시며 소요유를 즐기련만 / 逍遙飡沆瀣
[주D-001]어떡하면 …… 보이리라 : 《장 자》 소요유(逍遙遊)에, 하늘이 아지랑이와 먼지 등으로 가득 뒤덮인 채 파랗게 보이는데 붕새가 구만 리 창공 위에서 땅을 내려다보아도 그럴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또 열자(列子)가 바람을 타고 올라가 상쾌하게 노닐다가[冷然善也] 보름 뒤에 돌아오곤 한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주D-002]보허사(步虛詞) : 보허는 신선이 허공을 밟고 돌아다닌다는 뜻으로, 보통 도교(道敎)에서 경을 외우며 찬미하는 노래를 말한다.
[주D-003]항해(沆瀣) : 밤에 맺힌 맑은 이슬을 말하는데, 신선이 봄에는 아침노을을 삼키고 겨울에는 밤이슬을 마신다는 말이 있다.
염 시중(廉侍中)의 부인에 대한 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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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의 집에서 태어나서 시중의 짝이 됐건마는 / 生侍中家配侍中
평생 검소한 모습 보여 풍속을 바꾸려 하였네 / 終身儉素欲移風
과거 급제는 물론이요 재상도 많이 배출하며 / 門多宰相科名盛
국대부인의 신분으로 국록의 봉양이 풍성했네 / 國大夫人祿養豐
좋은 땅에서 싹트는 복록 더욱 굳어질 것이요 / 美壤儲祥應更固
강물처럼 흐르는 경사 앞으로 끝이 없으리라 / 鉅川流慶儘無窮
상여 노래 지금 다시 마천의 길을 향하나니 / 薤歌又向麻川路
한 쌍의 봉분 만고토록 바다 동쪽 비추리라 / 萬古雙墳照海東
7 월 7일은 성상의 탄일이다.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과 영문하(領門下) 광평군(廣平君)과 영삼사(領三司) 철원군(鐵原君)을 위시해서 길창군(吉昌君) 권공(權公)과 재령군(載寧君) 강공(康公)과 영평군(鈴平君) 윤공(尹公)과 상당군(上黨君) 한공(韓公)과 상산군(商山君) 김공(金公)과 청성군(淸城君) 한공(韓公) 및 내가 궐문에 나아갔다. 내관(內官) 김실(金實)이 예물을 받아 들고 안에 들어갔는데, 하례(賀禮)를 받지 않겠다는 비지(批旨)가 내렸다. 이에 물러난 뒤에 새로 짓는 궁궐에 들어가 두루 구경하면서 공사를 감독하는 여러 관원들을 위로하고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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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속에서도 용의주도한 원로들 / 諸老雖閑用意深
쇠한 얼굴 백발에도 모두 일편단심이라 / 蒼顔白髮共丹忱
풍운의 성세에 국가의 현안을 처리하며 / 風雲慶會匡時略
금석과 같은 마음으로 임금을 사랑하네 / 金石同堅愛主心
전요 홍류라 다시금 돌아온 명절이요 / 電繞虹流回令節
휘비 조혁이라 웅장한 신축 건물일세 / 翬飛鳥革跨層陰
서연이 바로 연꽃못에 자리하였는데 / 書筵正直蓮花沼
언제나 임금님께 급찰 받아 읊어 볼꼬 / 給札何當對御吟
[주D-001]풍운(風雲)의 성세(盛世) : 훌륭한 임금과 신하가 제대로 만나 펼쳐내는 태평 시대라는 뜻으로,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文言)의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雲從龍 風從虎]”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2]전요 홍류(電繞虹流) : 임 금의 생일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 황제(黃帝)의 모친인 부보(附寶)가 기(祁) 땅 들판에 있을 때, 번개가 크게 치며 북두칠성의 첫째 별을 휘감는 것[大電繞北斗樞星]을 보고 감응하여 잉태한 뒤 24개월이 지나서 황제를 낳았다는 전설이 실려 있고, 《제왕세기(帝王世紀)》에 소호씨(少昊氏)의 모친이 마치 무지개처럼 큰 별이 흘러내리는[大星如虹下流] 꿈을 꾸고서 소호씨를 낳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주D-003]휘비 조혁(翬飛鳥革) : 웅 장하고 화려한 건물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시경》 소아(小雅) 사간(斯干)에, “공중에 우뚝 선 건물의 모양은 마치 새가 깜짝 놀라서 날개를 펴는 듯하고[如鳥斯革], 화려하게 장식된 추녀는 마치 꿩이 날아오르는 것 같다.[如翬斯飛]”는 표현이 나온다.
[주D-004]언제나 …… 읊어 볼꼬 : 목 은이 왕의 인정을 받고서 다시 조정의 자리에 복귀하여 측근에서 모시고 싶은 심정을 표현한 말이다.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지은 〈자허부(子虛賦)〉를 무제(武帝)가 보고는 감탄한 나머지, 그를 조정에 불러들인 뒤에 상서(尙書)에게 명하여 그에게 붓과 종이를 주게 했던 ‘급필찰(給筆札)’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유감(有感) 1수(一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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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구경하러 표연히 몇 차례 떠났는데 / 賞蓮幾度共飄然
올해는 연꽃이 와서 나의 곁에 머물렀군 / 今歲蓮來在我邊
다만 이 꽃구경을 고사라고는 못 할 텐데 / 只此看花非故事
풍속이 예전과 다른 것을 알 수 있도다 / 可知風俗不同前
[주D-001]연꽃 …… 머물렀군 : 예전에는 큰 마음 먹고 날을 잡아서 함께 연꽃 구경을 가곤 하였는데, 지금은 연꽃이 핀 못 근처에 거처하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주D-002]다만 …… 있도다 : 지금 사람들은 꼭 따라서 행해야 할 고사처럼 여기면서 귀찮을 정도로 뻔질나게 연꽃 구경하러 오는 것을 풍자한 말이다.
청성(淸城)과 함께 동가군(東嘉君) 이광보(李光輔)를 방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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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가까운데 마치 깊은 골짜기 / 近市如深洞
문에 다다르니 작은 누대가 서 있네 / 臨門有小樓
하늘 위에서는 신선의 바람이 불어오고 / 仙風來上界
차를 마셔 보니 바로 중국의 맛이로세 / 茗飮卽中州
뜬구름 세상이라 일도 어찌 많은지 / 浮世仍多事
타향에서 또 하나의 가을을 보내누나 / 他鄕又一秋
연라에 벼슬하는 첩경이 있다는데 / 煙蘿捷徑在
유독 한스러운 것은 하얀 나의 머리 / 獨恨白吾頭
[주D-001]연라(煙蘿)에 …… 있다는데 : 아 마도 이광보가 은거하다가 조정에 진출하여 요직을 차지한 것을 풍자한 말인 듯하다. 당(唐)나라 노장용(盧藏用)이 벼슬할 마음을 품고는 짐짓 종남산(終南山)에 숨어 살다가 마침내 부름을 받고 고관이 되자, 도사(道士)인 사마승정(司馬承禎)이 “종남산이야말로 벼슬길에 오르는 첩경이 된다.”라고 풍자한 ‘종남첩경(終南捷徑)’의 고사가 전한다. 《大唐新語 卷10》
이호연(李浩然)이 방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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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여강 위에서 만났는데 / 夏遇驪江上
가을에는 곡령 앞에서 만났구나 / 秋逢鵠嶺前
여전히 씩씩하게 호기 넘치는 그대라면 / 君狂猶矍鑠
갈수록 허위적거리는 허약한 이 몸이라 / 我弱更沈淪
비좁은 골목에는 연기가 땅에 떠 있고 / 陋巷煙浮地
높은 누대에는 산이 하늘에 닿았다만 / 高樓峀際天
둘 다 모두 잊고서 일 삼는 일 없이 / 何如兩無事
어딜 가든 표연히 소요함만 같겠는가 / 到處共飄然
[주D-001]곡령(鵠嶺) : 개경 송악산(松岳山)의 별칭이다.
후번(後番)의 녹봉으로 보리 한 섬을 받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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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를 길러서 국가의 명맥을 도우려고 / 養賢充國脈
녹봉을 내리시니 또한 임금님 은혜로세 / 頒祿亦君恩
병화를 입은 데다가 흉년까지 들었는데 / 歲歉兵荒際
법제를 보존하려 하니 마음이 기쁘도다 / 心欣法制存
소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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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새벽에 소나기 세차게 내리더니 / 急雨來淸曉
나직한 천둥소리 먼 하늘로 잦아드네 / 輕雷隱遠空
이끼 자국도 번들번들 윤기가 나고 / 苔痕方滑澤
산의 색깔도 푸르름 더욱 선명하네 / 山色更蔥蘢
앉아서 대하노니 동쪽 창가 해님이요 / 坐對東窓日
노래를 읊노라니 북쪽 창가 바람일세 / 吟來北牖風
멋진 이 흥치를 누구와 함께 말하리오 / 有懷誰與語
녹비옹을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네 / 思見鹿皮翁
[주D-001]녹비옹(鹿皮翁) : 사슴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산속의 목각(木閣)에서 살았다는 전설적인 선인(仙人)의 이름인데, 큰비가 내려 홍수가 났을 때 종족들을 산 위로 피신시켜 구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列仙傳》
역사책을 읽고 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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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한 계책을 하늘이 간혹 돕는지라 / 奸計天或相
충신의 말이 때때로 용납되지 못하도다 / 忠言時不容
나라가 위급한데 사당만 기승을 부리고 / 國危私黨偏
임금은 허약해서 허수아비와 한가지라 / 君弱偶人同
변옥이 연석과 한자리에 끼어 있고 / 卞玉參燕石
산묘가 간송에 그늘을 지우는 세상 / 山苗蔭澗松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씻어 닦으면서 / 潸然抆淸淚
감정을 억누르고 맑게 갠 하늘 바라보네 / 掩□向晴空
[주D-001]변옥(卞玉)이 …… 끼어 있고 : 훌 륭한 사람이 못난 자와 똑같은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말이다. 변옥은 천하의 보옥(寶玉)으로 일컬어지는 초(楚)나라 변화(卞和)의 화씨벽(和氏璧)을 말하고, 연석(燕石)은 연산(燕山)의 보통 돌멩이인데 얼핏 보면 옥처럼 보인다고 한다.
[주D-002]산묘(山苗)가 …… 세상 : 아 무 능력도 없는 자들이 권력의 비호를 받고 현자(賢者)의 위에 군림하면서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다는 말이다. 진(晉)나라 좌사(左思)의 〈영사시(詠史詩)〉에 “골짜기 속엔 울창하게 소나무가 서 있고, 산 위엔 늘어진 채 묘목이 서 있는데, 직경 한 치에 불과한 저 묘목이, 백 척의 소나무 가지에 그늘을 지우누나.[鬱鬱澗底松離離山上苗 以彼徑寸莖 蔭此百尺條]”라는 말이 나온다.
구름을 노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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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비를 자식 삼아 초목을 적셔 주니 / 雲能子雨澤羣萌
그 공이 신룡과 짝하여 자취가 아득한데 / 功配神龍跡渺冥
얼핏 보니 함께 가다 서쪽으로 또 흐르니 / 乍見同行又西去
풍백이 홀로 신통한 것을 비로소 알겠도다 / 始知風伯獨爲靈
반쯤 가린 누대의 달도 삼경에는 휘영청 / 半遮樓月三更白
가로질러 간 시골 산도 만리에 푸른 하늘 / 橫斷鄕山萬里靑
허나 무심한 저 구름을 조롱한들 소용 있나 / 只是無心嘲不得
지팡이 짚고 종일토록 홀로 뜰을 거닐밖에 / 杖黎終日獨行庭
[주D-001]구름은 …… 삼아 : 순황(荀況)의 〈운부(雲賦)〉에 “대지에 몸을 의탁하고 천하를 떠돌아다니면서, 바람을 벗으로 삼고 비를 자식 삼는도다.[託地而遊宇 友風而子雨]”라는 구절이 나온다.
짚신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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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신은 산중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 / 山屨山中物
살이 닿는 곳마다 매끄럽고 향기로워 / 肌膚滑且香
새로 짚신 닦는 곳을 알고 싶으신가 / 欲知新拭處
시냇가 여인 아침 화장 끝내는 그곳 / 溪女罷朝粧
생각나네 그 옛날 소년 시절에 / 憶昔少年日
산속 절간에서 글을 읽을 적에 / 讀書山寺中
옷을 걷어붙이고 맨발을 벗고 / 褰衣仍赤足
솔바람 밟고서 뛰어다닌 일이 / 馳走踏松風
조정의 구두 벗어 버린 지 오래 / 我脫朝靴久
산 다락 산보하니 발걸음 가뿐 / 山亭野步輕
홍진이 묻을래야 묻을 수 있나 / 紅塵汚不得
삶을 지켜 주는 네가 고맙도다 / 謝汝爲吾生
[주D-001]새로 …… 그곳 : 그곳에서 씻으면 신발에도 향기가 묻어날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새벽안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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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안개 자욱해서 지척도 안 보이는 터에 / 曉霧昏昏咫尺迷
먼 교외 동쪽 서쪽을 어떻게 다시 분간하랴 / 遠郊那復辨東西
창가에도 아지랑이 어른거릴 기색 없이 / 絶無野馬窓間動
난간 밖 숲 속에서 꾀꼬리만 울어댈 뿐 / 只有林鶯檻外啼
산과 언덕 잠겼으니 무엇이 우뚝 솟겠는가 / 山嶽平沈誰特立
하늘과 땅도 뒤섞여서 구분하기 어렵도다 / 乾坤混沌自難稽
한바탕 맑은 바람 어찌 이렇게 더디신고 / 淸風一陣來何晚
앉아서 시 읊노라니 낮 닭 울 때 다 됐네 / 坐詠新詩近午鷄
맑은 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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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바람이여 어디에서 불어와서 / 淸風何處來
이렇게 금세 시원하게 해 주는고 / 灑然相遇初
한 점 티끌 없이 하늘은 공활하고 / 纖塵淨寥廓
무더위도 교외 들판에서 사라지네 / 溽暑收郊墟
그뿐인가 나의 한 치 가슴속에도 / 而吾方寸間
홀연히 얼음과 눈이 들어앉은 듯 / 忽疑氷雪如
옛날 군자를 청풍에 견주었던 것도 / 比之古君子
그 속성상 이름이 헛되지 않았나니 / 有德名不虛
그 명성을 한번 듣기만 하더라도 / 聲聞之所觸
속된 마음을 털어낼 수도 있으리라 / 吝消仍或祛
밝고 밝게 빛나는 가을밤의 달과 / 明明秋月輝
맑고 맑게 담겨 있는 가을날의 물 / 淡淡秋水渠
그 속에 청풍의 한 맛이 있다는걸 / 兩間只一味
제대로 아는 사람 누가 있을는지 / 會此其誰歟
도 당(都堂)에서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과 영문하(領門下) 광평(廣平)과 영삼사(領三司) 철원(鐵原)에게 회의에 참석해 달라고 청하였다. 이때 강 평장(康平章)과 한 상당(韓上黨)과 성 하성(成夏城)과 박 척산(朴陟山)과 한 청성(韓淸城)과 내가 그 뒤를 따라 모시고 들어갔다. 도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파했는데, 마침 비가 오기에 팔구(八句)의 시를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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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어려움이 어느 때보다 더 심하니 / 國步多艱甚此時
호걸들이 잘 유지하라는 하늘의 뜻이렷다 / 天敎豪傑善維持
용이 날아 도서가 나올 성스러운 이 시대에 / 龍飛聖代圖方啓
제후의 땅을 잠식하다니 형세가 의심스럽도다 / 蠶食侯封勢可疑
풍성한 도당의 음식 그 누가 공경치 않으랴만 / 堂饍潔豐誰不敬
적절한 조정의 계책 내가 또 무엇을 돕겠는가 / 廟謀深切我何裨
사도를 치달려 돌아오다 성긴 비를 만나고 보니 / 馳歸沙道來疏雨
삿갓 쓰고 도롱이 걸친 그 시가 홀연히 떠오르네 / 忽記簑衣蒻笠詩
[주D-001]용(龍)이 …… 시대에 : 용 덕(龍德)을 갖춘 성군(聖君)이 출현해서 장차 하도낙서(河圖洛書)와 같은 상서가 나올 만한 시대라는 말이다. 《주역》 건괘(乾卦) 구오(九五)에 성군의 시대를 상징하는 말로 “용이 하늘로 날아오른다.[飛龍在天]”는 표현이 나오고,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복희(伏羲)와 우왕(禹王)의 시대에 황하에서 하도(河圖)가 나오고 낙수(洛水)에서 낙서(洛書)가 나왔다.[河出圖洛出書]”는 기록이 있다.
[주D-002]사도(沙道) : 달리기 좋게 모래를 깔아 놓은 재상의 전용 도로를 말한다.
[주D-003]삿갓 …… 시 : 당(唐)나라 장지화(張志和)의 〈어부사(漁父詞)〉에 “푸른 삿갓 쓰고 초록색 도롱이 걸쳤으니, 비낀 바람 가랑비에 굳이 돌아갈 것 없네.[靑箬笠 綠簑衣 斜風細雨不須歸]”라는 표현이 나온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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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세상일이 천지의 화기를 손상시켜 / 由來世事損天和
도당에 부름을 받았다만 머리가 벌써 세었는걸 / 赴召都堂兩鬢華
고단해 눕다 보니 산비가 온 것도 몰랐는데 / 困臥不知山雨過
새벽에 보니 뜨락에 빗물 흔적이 흥건해라 / 曉看庭際水痕多
공명의 길은 끝났어도 이제 족한 줄 알겠다만 / 功名已矣仍知足
늙고 병들어 쇠하는 것은 어찌 할 도리 없네 / 老病衰哉不奈何
긴 휘파람 불 곳이 끝내 없기야 하겠는가 / 畢竟豈無長嘯處
여흥 강변 도롱이 쓴 어부가 사는 그곳 / 驪興江上一漁簑
노래(老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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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 가며 세상에서 버림받았으니 / 老來爲世棄
이젠 조금 마음 편히 살고 싶어라 / 欲少得心安
한가한 중에 익힌 것은 시나 읊는 일 / 嘯咏閑中慣
병든 몸으로 무슨 일을 추구하겠는가 / 營求病後難
시름은 진나라 땅 나무에 이어지고 / 愁連秦地樹
꿈은 한나라 궁궐 난에서 끊겼도다 / 夢絶漢宮蘭
천운은 까마득하니 알 수 있는가 / 天運茫無際
유연히 홀로 난간에 기댈 수밖에 / 悠然獨倚欄
[주D-001]시름은 …… 이어지고 : 객 지에서 떠돌며 고향에 가지 못하는 애달픈 심정을 토로한 말이다. 이 구절은 이백(李白)이 고향 생각을 하며 누대 위에서 읊은 〈등신평루(登新平樓)〉 시를 목은이 요약한 것인데, 그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고향을 떠나와 이 누대에 올라서니, 돌아가고픈 생각으로 늦가을에 가슴 아파. 긴 하늘 저 멀리 해는 떨어지고, 맑은 물에 찬 물결 일렁이누나. 고개 위 나무에 일어나는 진나라 땅의 구름이요, 모래톱에 내려앉는 오랑캐 땅의 기러기라. 푸르고 푸른 몇만 리 하늘이여, 눈 들어 바라보니 시름만 몰려드는구나.[去國登茲樓 懷歸傷暮秋 天長落日遠 水淨寒波流 秦雲起嶺樹 胡雁飛沙洲 蒼蒼幾萬里 目極令人愁]”
[주D-002]꿈은 …… 끊겼도다 : 임금이 자신의 계책을 들어 주지 않는 안타까움과 허전한 심정을 토로한 말이다. 난은 한나라 궁궐 안의 장서각(藏書閣)인 난대(蘭臺)의 준말로, 비서성(祕書省)을 가리킨다.
궤좌(几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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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바람 불어오는 궤안에 기대어 앉아 / 几坐淸風榻
정신으로 노닐어 보는 요순의 궁궐 뜨락 / 神遊堯舜庭
비와 이슬 내려 주어 생령을 사랑했고 / 好生施雨露
천둥 벼락 내리치듯 죄인을 성토했지 / 討罪擊雷霆
태양이 떠오르니 구름도 모두 사라지고 / 日出雲皆散
하늘이 맑아지니 대지도 다시 편안한데 / 天淸地又寧
홀연히 사적인 마음이 슬슬 일어나자 / 忽然私意動
밝은 기상이 어느새 어둠침침해지누나 / 氣像已冥冥
출유(出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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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 노닐기 좋은 곳 궁리하다가 / 出游何處好
비를 무릅쓰고 삼지를 찾았더니 / 冒雨傍三池
옛 분들의 풍채만 괜히 기억날 뿐 / 風采憶前輩
지금은 쓸쓸한 광경이 가슴 아파라 / 蕭條傷此時
붉은 연꽃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고 / 紅粧渾不見
푸른 연잎도 옛 모습 찾기 어려운데 / 翠蓋亦難追
눈에 띄는 것은 옥당 노인 한 사람 / 只有玉堂老
지금도 흰머리 드리우고 계시더군 / 今猶垂鬢絲
나는 이제 늙어서 취미도 줄어들고 / 我老少歡趣
시대도 어려워서 나들이도 못 하는데 / 時艱無樂遊
연못마저 지금 망가지고 말았으니 / 蓮池今又廢
어느 곳에서 나의 시름 풀어 볼거나 / 何處寫吾憂
옛 모습만 공연히 기억에 떠오를 뿐 / 故態徒能記
남은 향기도 더 이상 맡을 수 없는데 / 餘香不可求
옛날처럼 만나면 내 마음 모두 쏟으면서 / 相逢定傾倒
백발에도 풍류를 한껏 즐길 수 있으련만 / 白髮尙風流
서쪽 이웃과 약속한 대로 함께 수레 타고 / 欲赴西隣約
한나절쯤 한가롭게 보낼까 생각도 했지만 / 同乘半日閑
벌써 뜻이 어긋나 흥치가 사라졌는지라 / 參差高興廢
이젠 멀리 나가 놀고 싶지도 않네그려 / 決定遠游難
일렁이는 물결 속에 나무 끝에서 바람 일고 / 水動風生樹
환하게 핀 꽃들 속에 빗발이 산을 비추는데 / 花明雨映山
회포가 있어도 풀 수 없는 이 몸이여 / 有懷舒不得
병도 많아 의관을 차리기도 귀찮구나 / 多病懶衣冠
농지 관리인 박장(朴莊)이 햅쌀을 가지고 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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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의 전지에서 매입한 밭 한 뙈기 / 柳浦田頭買一區
일년 농사를 박장의 종이 도맡았다네 / 主耕終歲朴莊奴
올해 처음 익은 쌀을 또 보게 되었으니 / 今年又見稻初熟
병 많아 바싹 마른 몸을 어찌 걱정할까 / 多病不憂身甚癯
기장에 뒤따라서 종묘에 천신할 햅쌀 / 宗廟薦新隨黍稷
진흙 속에서 고생한 농부의 소산일세 / 農家作苦溷泥塗
군왕이 또 내려 주실 태창의 이 곡식이여 / 太倉更荷君王賜
부유를 길러 주는 천지에 감사를 드려야지 / 深謝乾坤養腐儒
밤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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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가 연속해서 다음날까지 / 夜雨連明日
쉬지 않고 자욱하게 흩뿌리누나 / 霏微洒不休
물 흔적 여기저기 불어난 오솔길이요 / 水痕添曲逕
구름 기운 휩싸고 도는 높은 누대로세 / 雲氣擁高樓
늙은 눈이라 올라가서 구경하기도 시름겹고 / 老眼愁登眺
쇠한 몸이라 밖에 나가 노닐기도 겁나도다 / 衰躬怕出遊
하느님이여 모쪼록 유념해 주시기를 / 天公願留意
들판에 가을 추수 때가 임박하였으니 / 田野近秋收
자영(自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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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에 군의 봉호만도 세상에 드문 터에 / 省宰封君世已稀
삼중대광의 높은 품계 더더욱 영광일세 / 三重階峻更光輝
병이 깊어도 벗들은 나를 외롭게 하지 않고 / 病深不見親朋薄
녹봉이 후하니 처자들은 살질 수 있겠도다 / 祿厚可知妻子肥
백록동에 사학(私學)은 없어졌다 하더라도 / 白鹿洞雖無學院
황려강에 낚시터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 黃驪江幸有漁磯
국은을 보답 못 해 마음이 늘상 꺼림칙해서 / 國恩未報心中惡
몇 번 떠나려 하면서도 아직도 못 돌아가네 / 幾度欲歸猶未歸
낮 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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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외지니 문 닫고 지내기도 적당하고 / 地僻閉門可
가을 기운 서늘하니 베갯머리도 편하도다 / 秋涼高枕便
꿈나라로 빠져들며 어느덧 혼돈의 세계로 / 氣變俄混沌
별의별 일들이 생시보다 더욱 얽혀드는구나 / 事雜更牽聯
확실히 기억되는 것은 단지 반이나 될까 / 的實只居半
어렴풋해서 완전하게 떠올리기 어려워라 / 依俙難記全
주관이 폐해진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 / 周官廢已久
꿈을 점치는 법을 누가 전해 받았을지 / 占法有誰傳
[주D-001]주관(周官)이 …… 받았을지 : 《주례(周禮)》 춘관(春官) 종백 하(宗伯下)에, 꿈을 해석하며 점치는 관원에 대한 내용과 함께 3몽(夢)과 6몽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대우행(大雨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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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금년 들어 큰비가 내리는 날 / 今年大雨在今日
벽력이 또 위세 도와 빠르게 내려치나니 / 霹靂助威來也疾
집이 혹시 무너질라 아이는 달려가 숨고 / 兒童走藏恐屋破
날뛰는 말처럼 낙숫물은 뜨락을 치달리네 / 簷溜走庭如馬逸
내가 전에 배를 타고 여강에서 돌아올 때 / 我初舟泛驪江回
죽령에서 내려온 물이 나를 따라 왔었는데 / 竹嶺之水隨我來
당시에 가뭄 끝에 비가 너무도 안 내려서 / 是時旱餘雨甚少
한강은 이제 막 발효하는 포도주 빛이었지 / 漢江葡萄初發醅
그때 뱃사람들 말이 큰물이 밀려 온다고 / 舟人共言潦水集
쏟아져 내리는 그 기세 얼마나 웅장하였던지 / 奔流氣勢何雄哉
하루에 곧장 천리 길을 쏜살같이 내닫을 뿐 / 一日千里矢也直
조금 머물고 싶어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오 / 縱欲少留那可得
언덕에 바람 쌩쌩 일며 산들은 뒤로 질주하고 / 羣山退走岸生風
두 눈도 꼼짝을 못 한 채 천지가 캄캄하였나니 / 兩目不動天地黑
그때 일을 듣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 當時聞之心尙悸
지금 앉아 상상하면서 시 한 수 또 짓게 됐네 / 坐想今朝鶴頭側
가을 곡식 땅에 가득 백성들 추수를 바라는 때 / 秋禾滿地民望秋
하늘의 뜻 필시 있으련만 종내 알 수 없어라 / 天意有在終悠悠
[주D-001]한강은 …… 빛이었지 : 참고로 이백(李白)의 시에 “멀리 한강 물은 청둥오리 머리의 푸른색, 흡사 이제 막 발효하는 포도주 빛이로세.[遙看漢水鴨頭綠 恰似葡萄初發醅]”라는 표현이 나온다. 《李太白集 卷6 襄陽歌》
동년(同年)인 주인성(朱印成)을 못 본 지 십 년 만에 그가 홀연히 찾아왔기에 너무도 기쁜 나머지 한 수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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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에 뜻을 두고 함께 공부한 좋은 인연 / 同盟同學好因緣
나이는 나보다도 열하고도 한 해 위라 / 生在吾先十一年
나는 벼슬길 치달리다 홍진에 눈이 흐릿하고 / 宦路驅馳塵昧目
그대는 어깨에 달빛 받으며 수루에서 읊조렸네 / 戍樓吟嘯月臨肩
부침은 비록 다르다 해도 이제는 모두 늙은이들 / 昇沈雖異俱老矣
서로 달라진 우리의 운명 참으로 우연이오그려 / 稟賦不齊眞偶然
오늘의 이 단란한 모임 하늘의 선물이라 할까 / 今日團圓天所賜
두 사람 마주 대하노라니 옛날로 돌아간 듯하네 / 兩人相對宛如前
어젯밤 뜨락에 달빛이 가득한 가운데 풀벌레가 울어 대기에 뭔가 느껴져서 한 구절을 얻고 나서는 새벽에 일어나 이를 보충해서 한 수를 완성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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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며 앉은뱅이 승려와 정말 다름없어 / 老來眞似躄浮圖
밤에도 가을 마루 앉아 벽오동을 대하노라 / 夜坐秋堂對碧梧
옥토끼는 나의 삼탄식 몰래 엿보는 듯 / 玉兔似窺三歎息
풀벌레는 칠오호에 화답을 하려는 듯 / 草虫相和七嗚呼
산과 강은 아득하게 하늘 끝에 이어지고 / 山河縹渺連天際
바람 이슬 희미하게 자리 옆에 스며드네 / 風露淒迷入座隅
백발이 다 되도록 국은에 보답을 못 했으니 / 白盡我頭無寸效
어느 날에나 사직하고 강호로 돌아갈거나 / 乞身何日向江湖
[주D-001]삼탄식(三歎息) : 달 밝은 밤에 병든 몸을 거듭 탄식한다는 뜻인데, 소식(蘇軾)의 시에 “달이야 병든 나를 어찌 알기나 할까, 노래하는 누대가 텅 빈 것만을 볼 뿐이지. 베개를 매만지며 세 번 탄식하고 나서, 지팡이 짚고 일어나 달그림자 따라가 보네.[月豈知我病 但見歌樓空 撫枕三歎息 扶杖起相從]”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17 中秋月》
[주D-002]칠오호(七嗚呼) : 객 지에서 고달프게 생활하며 가족들과 고향을 생각하는 절실한 마음을 일곱 수의 율시에 담아 각각 결구에서 ‘오호(嗚呼)’라고 탄식하며 읊은 두보(杜甫)의 시를 빗대어 목은이 자신의 심경을 비유한 것이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권8에 〈건원중우거동곡현작가칠수(乾元中寓居同谷縣作歌七首)〉라는 시가 나온다.
유항(柳巷)의 누대 위에서 술을 조금 마시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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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익은 술은 맑기가 물과 같고 / 舊釀淸如水
새로 지은 밥은 부드럽기 우유로세 / 新炊軟似酥
이와 혀에 감치는 맛 어찌 좋은지 / 稍欣宜齒舌
살과 피부에도 윤기가 금방 돌듯 / 便覺潤肌膚
붓끝 따라 살아서 움직이는 기운이여 / 氣走毫鋩動
먹물이 번지는 대로 번득이는 광채여 / 光翻墨跡濡
시구가 졸렬해도 부끄러울 것 있겠는가 / 不慚詩句拙
은빛 갈고리처럼 빛나는 붓이 있는데 뭐 / 光彩似銀鉤
[주D-001]시구가 …… 뭐 : 목 은이 시를 잘 짓지 못해도 붓으로 잘 써 주면 사람들이 눈치를 채지 못할 것이라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으로, 명필인 유항(柳巷) 한수(韓脩)의 붓글씨 솜씨를 찬양한 말인데, 진(晉)나라 색정(索靖)이 서법(書法)을 논하면서 ‘멋지게 휘돌아가는 은빛 갈고리[婉若銀鉤]’라는 표현으로 초서(草書)를 형용한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晉書 卷60 索靖列傳》
원재(圓齋)가 세상을 하직했다는 말을 듣고 곡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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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알고 / 科場初識面
간원에서 마음을 함께 논했나니 / 諫院共論心
법주가 생기면 나를 불러 마셨고 / 法酒邀吾酌
시 지으면 나에게 읊도록 허락했지 / 新詩許我吟
뭉게구름처럼 그리운 정 일어나면 / 寄懷雲靄靄
깊은 밤중에도 흥을 내곤 하였는데 / 乘興夜沈沈
앞으로 만날 날 얼마나 또 남았다고 / 歲月今無幾
이렇게 옷깃에 눈물 흘리게 하셨는고 / 胡然淚洒襟
뜻이 고결하니 세상을 따르기 어려웠고 / 志潔難趨世
자질이 고매해서 인정한 사람도 드물었지 / 才高少可人
간인을 공격한 것이 명예 때문이었겠나 / 擊奸非賣直
원래 안빈낙도라서 벼슬도 마다하였는걸 / 養拙自安貧
서연에서 은총을 듬뿍 받았던 옛날이요 / 寵在書筵舊
다시 은혜 입고서 작읍을 받은 오늘이라 / 恩從爵邑新
어찌하여 하늘은 봉양을 못 하게 하였는고 / 天胡奪榮養
마루 위에 아직도 늙은 모친이 계시는데 / 堂上有慈親
뜬구름 같은 인생 누군들 죽지 않으랴만 / 浮生誰不死
오늘 내가 유달리 마음이 아파 오는 것은 / 今日我偏傷
공적으론 하늘처럼 크나큰 도를 소유했고 / 公道如天大
사적으론 강처럼 긴 우정을 지녔기 때문이라 / 私情與水長
가을 산은 암담하게 가로 비껴 서 있고 / 秋山橫暗淡
아침 비는 처량하게 마지막 길 전송하네 / 曉雨送凄涼
상여 소리 어떻게 귀로 들을 수 있으리오 / 薤曲那堪聽
명정도 펄럭펄럭 바쁜 듯 빨리도 가는구나 / 銘旌去似忙
[주C-001]원재(圓齋) : 정추(鄭樞)의 호인데, 정추는 자(字)인 공권(公權)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유항 한수와 함께 목은의 절친한 벗이었다.
[주D-001]뭉게구름처럼 …… 하였는데 : 보 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면 언제나 서로들 찾아보곤 하였다는 말이다. 진(晉)나라 왕휘지(王徽之)가 눈 내린 밤에 친구인 대규(戴逵)가 보고 싶어서 조각배를 타고 그 집 앞까지 갔다가 돌아와서는 “흥이 나서 갔다가 흥이 다해서 돌아왔다.[乘興而行 興盡而返]”라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任誕》
[주D-002]간인을 공격한 것 : 정추가 공민왕 15년(1366)에 신돈(辛旽)을 탄핵한 것을 가리킨다. 이때 처형당할 위기에 몰렸으나 목은이 구해 준 덕분에 동래 현령(東萊縣令)으로 좌천되는 정도로 그쳤다.
가을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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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 늙어 많은 병에 시달리다가 / 我老支多病
서늘한 가을 맞으니 옛 벗 만난 듯 / 秋涼似故人
엷은 구름장은 푸른 하늘 떠 가고 / 薄雲行碧落
성긴 비는 맑은 아침 씻어 주누나 / 疏雨灑淸晨
문을 여니 끝없이 나래치는 사념이여 / 開戶思無極
흥이 절로 새로우니 붓대를 들 수밖에 / 抽毫興自新
강동을 향해 돌아가야 할 나의 길 / 江東有歸路
어느 날에나 풍진을 떠날 수 있을꼬 / 何日離風塵
가을 구름 막막하게 산천을 뒤덮으니 / 秋陰漠漠蔽山川
문 닫고 앉은 서생 기분이 울적해라 / 閉戶書生氣鬱然
세상을 놀라게 할 큰 재주가 있을 리야 / 豈有雄才足驚世
시 한 편도 제대로 지어내지 못하는걸 / 頗慚佳句少全篇
수풀 사이 땅에서 소초나 뜯어 올 뿐 / 拾來小草林間地
바다 위 하늘의 반도를 어찌 바라리요 / 望絶蟠桃海上天
어떡하면 창공에서 부운을 말끔히 걷어 내고 / 安得碧空纖翳盡
오직 순일만 남게 하여 요년을 비추게 할꼬 / 唯留舜日照堯年
또 읊다.
산과 강은 어찌 그리도 막막하며 / 山川何漠漠
구름과 비는 어찌 그리도 침침한고 / 雲雨何沈沈
군자의 기분 바야흐로 울적하건만 / 君子政鬱鬱
누가 알꼬 사방 한 치의 그 심중을 / 誰知方寸心
그동안 세도가 참으로 아름다워 / 世道諒休美
시원스럽게 덕음이 흘러내려서 / 霈然流德音
널리 사해를 흡족하게 하였나니 / 汪洋洽四海
밝은 태양이 뭇 음기를 녹여내고 / 白日銷羣陰
어진 바람이 또 산들산들 불어와서 / 仁風又微扇
뛰어난 인재들이 숲처럼 많았어라 / 吉士多如林
나도 그 덕분에 띳집에 물러 나와 / 而我茅屋下
책도 뒤적이고 거문고도 뜯었는데 / 閱書或鳴琴
어쩌다가 홀연히 날씨가 음산해져 / 奈何忽昏曀
가슴속에 번민이 가득하게 되었는고 / 煩懣塡胸襟
하지만 언젠가는 만리 하늘 청명해져 / 終當萬里晴
지팡이 짚고 곡잠에 오를 수 있으렷다 / 杖策登鵠岑
[주D-001]강동(江東) : 고 향을 말한다. 진(晉)나라 장한(張翰)이 낙양(洛陽)에서 관직 생활을 하다가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불현듯 고향의 순채와 농어회 생각이 나서 벼슬을 버리고 곧장 귀향했던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92 張翰列傳》 장한은 그의 자(字)인 계응(季鷹)으로 많이 불렸는데, 그가 오군(吳郡) 출신이기 때문에 강동 보병(江東步兵)으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주D-002]풍진(風塵) : 벼슬살이하는 도성을 가리킬 때 흔히 쓰는 시어(詩語)이다.
[주D-003]수풀 …… 바라리요 : 고 작 자신의 한 몸을 추스리기에만 바쁠 뿐, 임금의 신임을 얻어 경륜을 펼칠 날은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뜻을 비유한 것이다. 소초(小草)는 지혜를 많게 하고 의지를 강하게 한다는 약초의 이름으로, 뿌리를 원지(遠志)라 하고 싹을 소초라고 하는데, 진(晉)나라 사안(謝安)이 학륭(郝隆)으로부터 “벼슬하기 전에는 원지(遠志)를 품고 있다가 조정에 나온 뒤로는 소초(小草)가 되고 말았다”는 말을 듣고는 부끄러워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排調》 반도(蟠桃)는 고대 신화 속에 나오는 선도(仙桃)로, 동해 도색산(度索山) 속에 있다고 한다.
[주D-004]어떡하면 …… 할꼬 : 조정에서 멋대로 권세를 휘두르는 간신들을 몰아내고서 순일(舜日) 요년(堯年)과 같은 태평 시대를 만들고 싶다는 뜻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5]곡잠(鵠岑) : 곡령(鵠嶺)과 같은 말로, 개경 송악(松岳)의 별칭이다.
공권(公權)의 장례식에 내가 병으로 결국 참석하지 못하고 말았기에, 비참하게 느껴진 나머지 또 한 수를 지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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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병 때문에 뜨락도 지팡이를 짚는 이 몸 / 病脚行庭亦杖黎
어떻게 상여 줄 잡으리오 더군다나 진흙 길을 / 那堪執紼更衝泥
동년은 점점 줄어드는데 나는 여태 살아 있으니 / 同年漸少吾猶在
오늘 분명히 알겠도다 만물이 불평등하다는 걸 / 今日明知物不齊
눈에 가득 구름도 수심에 잠긴 듯 떠다니고 / 滿眼雲愁浮浩浩
상심해 우는 듯 빗방울도 처량하게 떨어지네 / 傷心雨泣灑淒淒
이젠 정말 모양 없는 하나의 존재를 이뤘으니 / 眞成一箇無形子
어떻게 다시 진세에서 손 잡아 볼 수 있으리오 / 塵世何從手再携
우중(雨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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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 고생 끝에 추수를 바라보는 때에 / 農家辛苦望秋成
어째서 해는 뜨지 않고 비만 계속 내리는고 / 胡奈連陰雨不晴
노경에 하는 일 하나 없이 한가히 지내면서 / 老境閑居無一事
창가에 오똑 앉아 창생을 걱정만 하는구나 / 矮窓危坐念蒼生
교외 들판 멀고 가까운 누런 구름 잠기우고 / 郊原遠近黃雲沒
산기슭 높고 낮은 지대 흰 물결로 평평해라 / 林麓高低白浪平
나 이제 늘그막에 고향에 가고도 싶다마는 / 老矣鄕中吾欲去
다만 꺼려지는 것은 이웃들 걱정하는 소리 / 只嫌隣里有愁聲
[주D-001]누런 구름 : 누렇게 익은 벼와 보리 등 곡식을 뜻한다.
유항(柳巷)에게 증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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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골에 사는 우리 두 노인네 / 柳里有二老
평생토록 조용하고 고적한 생활 / 窮年守幽獨
봄바람 불 땐 뜨락의 꽃에 취하고 / 園花醉春風
무더울 땐 누대에서 비를 읊는다오 / 樓雨吟炎溽
견우와 직녀가 은하에서 반짝이고 / 牛女耿銀河
서늘 기운 집에 또 가득한 이때 / 又覺涼滿屋
중추절이 오면 달빛을 감상해야 하고 / 中秋當賞月
중구일이 오면 국화가 또 있지 않소 / 九日當賞菊
끝도 없이 이어지는 즐거운 일들이여 / 樂事不可窮
그윽한 이 회포를 어떻게 퍼 담을거나 / 幽懷無由掬
낮은 짧고 밤 시간만 점점 길어지니 / 晝短夜漸長
어찌 촛불 잡고 놀아 보지 않을쏜가 / 胡不勤秉燭
마음에 맞는 사람 세상에 흔치 않은 터에 / 可人世不多
게다가 왕왕 저승 세계로 떠나 버리는걸 -원재(圓齋)가 죽은 것을 말한다. / 往往登鬼錄
내가 어떻게 머리를 굽신거리면서 / 何能低我頭
애면글면 세상을 따를 수 있으리오 / 僶俛隨流俗
멋진 흥치 만나면 드높이 노닐면서 / 遇興卽高遊
애오라지 속박에서 해방되고자 한다오 / 聊以謝羈束
[주D-001]낮은 …… 않을쏜가 : 좋 은 때를 놓치지 말고 즐겁게 놀아야 한다는 뜻이다. 고시(古詩)에 “사는 햇수는 백년도 채우지 못하건만, 항상 천년의 시름을 품고 있네. 낮은 짧고 밤이 긴 것이 괴로우니, 어찌 촛불 잡고 놀아 보지 않을쏜가.[生年不滿百常懷千歲憂 晝短苦夜長 何不秉燭遊]”라는 구절이 나온다. 《文選卷29》
[주D-002]원재(圓齋) : 정추(鄭樞)의 호인데, 정추는 자(字)인 공권(公權)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유항 한수와 함께 목은의 절친한 벗이었다.
빗속에 홀로 앉아 술 한 잔 들고 싶어도 술이 없기에 자조(自嘲)하며 시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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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넘치는 술잔 극력 사양하였는데 / 滿酌苦辭思往時
지금은 없는 술 마시려 하니 나도 쇠했나봐 / 無酒欲飮知吾衰
평생의 의지와 기개 방탕한 적이 없었으니 / 平生志氣不流蕩
숙수와 양락이 어찌 바꾸게 할 수 있었으리 / 菽水羊酪何能移
정신이 멀쩡한 굴원도 어울릴 벗이 아니었고 / 屈之醒也非我徒
늘상 취한 도잠도 본받을 스승이 못 되었지 / 陶之醉也非吾師
그 속의 중도를 취해 나의 갈 길을 삼으면서 / 是有中道兮吾所
걷는 걸음 하나하나 법도에 맞도록 하였다오 / 周旋折旋皆矩規
어떡하나 욕망이 동해 이 마음 또 달아나서 / 奈何欲動情又逸
있는 힘껏 물리쳐도 어느새 성하게 일어나니 / 盡力屛去俄紛披
그대 지금 흰머리라 역시 늙었다 할 것인데 / 汝今白頭亦老矣
이처럼 정체가 탄로났으니 누구에게 허물할까 / 敗露至此將咎誰
질욕의 분명한 가르침을 행여 잊어버린다면 / 窒欲明訓苟茫昧
도척이 되고 마는 일을 어찌 면할 수 있겠는가 / 盜跖之歸寧可辭
할 수 없게 된다면 그 얼마나 위태한고 / 寧可辭何其危
그동안의 노력이 애석하니 깊이 생각할지어다 / 前功可惜宜深思
[주D-001]숙수(菽水)와 …… 있었으리 : 빈궁과 부귀에 흔들림 없이 자신의 신념을 고수했다는 말이다. 숙수는 콩과 물을 겨우 먹을 정도의 가난한 생활을 말하고, 양락(羊酪)은 양의 젖으로 만든 타락죽(駝酪粥)으로 부유한 생활을 말한다.
[주D-002]정신이 멀쩡한 굴원(屈原) : 전국 시대 초(楚)나라 굴원의 〈어부사(漁父辭)〉에 “사람들 모두가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衆人皆醉我獨醒]”는 말이 나온다.
[주D-003]늘상 취한 도잠(陶潛) : 진(晉)나라 도잠은 술을 워낙 좋아하여 술에 얽힌 일화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의 문집에 〈음주(飮酒)〉 시 20수가 전하기도 한다.
[주D-004]질욕(窒欲) :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주역》 손괘(損卦) 대상(大象)에 “군자는 이 괘를 보고서 분노를 징계하고 욕망을 억제한다.[君子以懲忿窒欲]”는 말이 나온다.
야장(夜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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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긴데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 夜長眠不穩
곧장 나의 생을 버리고도 싶었는데 / 直欲舍吾生
새벽 찬 기운에 일찌감치 일어나니 / 曉冷起來早
도의 마음 엉기는 듯 조금 즐거워져 / 稍欣凝道情
산이 밝아오면서 아침 해 두둥실 / 山明初日出
가까운 나무숲엔 맑은 바람 산들 / 樹近細風淸
단지 두려운 건 풍진의 일 때문에 / 只恐有塵事
나를 찾는 사람의 발소리 들리는 것 / 門庭聞履聲
동경(同庚) 황 회산(黃檜山)을 곡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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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에 원나라 조정의 자형을 의지하고 / 少依姊婿在元朝
궁정을 출입하며 호방한 기운 키웠던 분 / 出入宮庭志氣豪
밥상에 표태가 오를 만큼 호화로운 생활이요 / 食雜豹胎蒙養侈
원비와 같은 활 솜씨로 전공도 높이 세웠어라 / 射同猿臂戰功高
선왕의 두터운 은혜 누구보다도 듬뿍 받고 / 先王厚渥超羣輩
아상의 높은 반열에서 우리를 압도하였는데 / 亞相崇班壓我曹
홀연히 들리는 상여 노래 어디로 떠나는가 / 忽此露歌何處去
이승에선 다시 함께 오궁을 받칠 수 없겠구나 / 此生無復共持鰲
[주C-001]황 회산(黃檜山) : 회산부원군 황상(黃裳)을 말한다.
[주D-001]표태(豹胎) : 표범의 태반으로, 웅장(熊掌)과 함께 천하일품의 진미로 꼽힌다.
[주D-002]원비(猿臂)와 …… 솜씨 : 한 (漢)나라 명장 이광(李廣)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원숭이처럼 팔이 길어서 활을 잘 쏘았다는 말이다. 《史記 卷109 李將軍列傳》 실제로 원 순제(元順帝)가 황상에게 활을 쏘아 보게 하고는 그의 팔을 직접 만져 보았다는 기록도 전한다. 《東史綱目 卷15 恭愍王14年》
[주D-003]오궁(鰲宮) : 금중(禁中)의 궁전을 뜻한다. 전설 속의 자라가 삼신산(三神山)을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궁전의 섬돌에다 큰 자라 모양을 조각했던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서린(西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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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태양 내리쪼이는 서쪽 이웃 모정 / 西隣白日照茅亭
줄 지어 선 꽃나무들 마치 비단병풍일세 / 花木成行似錦屛
가문의 부귀함을 그 누가 흉내를 내랴마는 / 富貴家門誰擬跡
술잔 드는 풍류 속에 나는 형체를 잊었노라 / 風流樽酒我忘形
가을이 깊어 이끼는 시 읊는 옆에 짙푸르고 / 秋深苔色吟邊碧
구름 엷어 산 색깔은 눈 밖에 쪽빛이로다 / 雲薄山光望外靑
원로들이 하나 둘 흐르는 물처럼 가시는 때 / 耆舊凋零如逝水
칠원께서 강녕하시니 이 얼마나 다행인고 / 漆原深幸共康寧
우제(偶題) 1수(一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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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래 기걸찬 기운을 지니고서 / 我本有奇氣
한번 토하면 꽃구름을 이루는지라 / 吐之成彩雲
감히 혼자 감추고서 감상할 수 없기에 / 不敢自祕玩
붉은 섬돌 천자님에게 바쳐 올렸다오 / 丹墀呈大君
천자님이 얼굴 펴고 활짝 웃으시자 / 粲然蒙一笑
오색 기운이 황궁을 뒤덮은 가운데 / 五色凌紫□
마침내 백옥당으로 뽑혀 들어가자 / 歸之白玉堂
온 세상이 맑은 향기 흠모하였다오 / 擧世歆淸芬
그때 일이 지금 벌써 몇 년 전인가 / 回頭今幾年
그동안 또 얼마나 변화가 많았던지 / 變化何紛紛
어느새 푸른 개로 바뀌는 세상 속에 / 須臾似蒼狗
결국은 동쪽 바닷가에 머물게 된 몸 / 竟屯東海濆
신령스러운 이 물건이 때를 만나면 / 神物會有遇
끝없이 은택을 베풀어 줄 수 있으련만 / 澤物終無垠
[주D-001]백옥당(白玉堂) : 한림원(翰林院)의 별칭이다. 목은은 나이 28세 때인 공민왕 4년(1355)에 원나라에서 한림원 권경력(翰林院權經歷)을 지냈다.
[주D-002]어느새 …… 몸 : 반 복 무상한 세태 속에 목은도 결국에는 원나라에서 고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두보(杜甫)의 시에 “하늘 위 뜬구름 백의 같더니, 어느새 푸른 개로 바뀌어졌네.[天上浮雲似白衣 斯須改變如蒼狗]”라는 말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21 可歎》
[주D-003]신령스러운 …… 있으련만 : 용이 비를 내려 주듯이 목은도 자신을 알아 주는 임금을 만나면 자기의 경륜을 마음껏 발휘하여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뜻이다.
운무(雲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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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욱이 덮인 운무 속에 나의 뼈는 욱신욱신 / 雲霧冥冥我骨酸
창문 닫고 부질없이 드넓은 천지만 상상하네 / 閉窓空想地天寬
강이 가로지른 들 밖에는 멀리 물결치는 소리 / 江橫野外波聲遠
이슬 듣는 숲 사이에는 새벽 기운이 차가워라 / 露滴林間曉氣寒
이미 족함을 알았나니 한바탕 꿈속의 공명이요 / 夢裏功名已知足
이제야 편안함 구했나니 병든 뒤끝의 거처로다 / 病餘居處始求安
맑게 갠 밤 하늘로 곧장 높이 날아올라 / 快晴直欲登高去
은하를 또 끌어당겨 저 옥쟁반 씻고 싶네 / 更挽銀河洗玉盤
일을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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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출렁 흘러가는 한강 물이요 / 漢水沄沄去
만 길 넘게 솟구친 삼각산 봉우리라 / 三峯萬仞餘
주나라 경영하며 터를 잘 닦은 뒤에 / 營周攻位後
태보를 이어 지금 막 영강을 하였도다 / 胤保景岡初
밝은 시대 전해진 도참서에 의거해서 / 祕錄傳昭代
푸른 강물 비추며 우뚝 선 이궁이여 / 離宮照碧虛
화원의 외손이 지금 또 번성해서 / 花原外孫盛
사필을 유독 대를 이어 쥐었구나 / 史筆獨聯書
[주D-001]주(周)나라 …… 뒤에 : 남 경(南京)인 한양에다 이궁(離宮)을 세울 터를 닦았다는 말이다. 《서경》 소고(召誥)는 성왕(成王)이 낙(洛) 땅으로 도읍을 옮기려 할 즈음에 소공(召公)이 그곳에 먼저 가서 왕궁 터를 닦은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거기에 “낙수 북쪽 물구비에다 궁궐 터를 닦기 시작하였다.[攻位于洛汭]”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태보(太保)를 …… 하였도다 : 이 궁을 낙성하였다는 말이다. 궁궐의 낙성을 축하하는 내용으로 된 《시경》 대아(大雅) 공류(公劉)에 “해 그림자 살피고 언덕에 올라가서 음지와 양지를 관찰하였다.[旣景迺岡 相其陰陽]”라는 말이 나온다. 또 《서경》 낙고(洛誥)에 주공(周公) 자신이 태보(太保)인 소공(召公)의 뒤를 이어 동쪽 땅을 크게 둘러 보았다[予乃胤保 大相東土]는 말이 나온다.
[주D-003]화원(花原) : 목은의 장인인 화원군(花原君) 권중달(權仲達)을 가리킨다.
채 옹주(蔡翁主)의 죽음을 애도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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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에서 아득히 성산까지 맺은 인연 / 燕山迢遞接星山
뜬세상 슬픔과 기쁨 한 꿈 사이로다 / 浮世悲歡一夢間
적막해라 구천에선 누구와 얘기할까 / 寂寞九泉誰與語
흰 구름 푸른 산 졸졸 흐르는 시냇물 / 白雲靑嶂水潺潺
유항(柳巷)이 적전(籍田)의 별장에서 노닐면서 연꽃을 감상하자고 초청했는데 병이 들어서 사양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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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노니는 벗은 오직 유항뿐 / 同游唯柳巷
별장에는 연꽃이 볼 만도 하지 / 別業有蓮花
가랑비에 입을 도롱이도 있건마는 / 細雨簑衣在
쇠한 나이에 약물로 지탱하누나 / 衰年藥物支
하릴없이 남은 목숨 유지하면서 / 悠悠保殘喘
이따금씩 시나 지어 읊조리는 몸 / 往往得新詩
고상한 이 흥치를 그만둘 수 있나 / 高興無由廢
더구나 지금은 또 초청을 받았는데 / 承招又此時
답답함을 풀어 보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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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질구질 비 내리면 사지가 쑤시고 / 陰雨支節痛
날씨가 활짝 개면 정신이 화창하고 / 淸明神氣舒
어찌 생각했으리 한 덩어리 이 몸이 / 那期一塊肉
부앙 간에 하늘땅과 함께할 줄을 / 俯仰同堪輿
생각건대 천지를 채우는 호연지기는 / 念玆浩然氣
몸속에 의가 쌓여야 넉넉해지는 법 / 集義乃有餘
그 기운을 기를 방법 찾고자 한다면 / 如求所以養
맹자의 글에 분명하게 나와 있는데 / 灼灼鄒國書
어찌하여 그 쪽에다 힘을 쓰진 않고 / 胡爲不用力
늘그막에 이르러 괜히 탄식하시는가 / 老至空欷歔
참으로 크도다 이 우주 공간에는 / 大哉宇宙內
영웅호걸의 호연지기 가득 차 있건만 / 英豪之所居
정신없이 끝까지 외물을 쫓아다니다가 / 紛然竟馳逐
만고토록 무덤의 뼈만 되려고 하시는가 / 萬古唯丘墟
[주D-001]생각건대 …… 법 : 《맹 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사람이 지대 지강(至大至剛)한 호연지기를 직(直)에 입각해서 잘 길러 나가면 천지 사이에 가득 차게 되는데, 이는 몸속에 정의감이 충만하여 계속 쌓여야만 생겨나는 것이다.[集義所生者]”는 말이 나온다.
자영(自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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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으로 벼슬자리 훔치고는 있다마는 / 竊位虛名耳
집에 전할 남은 경사는 그래도 있으렷다 / 傳家餘慶存
가난하긴 해도 딸 없는 것이 유감일 뿐 / 雖貧恨無女
늘그막에 손자가 많은 것 역시 다행일세 / 未老幸多孫
빗줄기 속에 어둑한 뽕과 삼의 밭길이요 / 雨暗桑麻徑
가을이 깊어 가는 토란과 밤의 동산이라 / 秋深芋栗園
단란하게 세월을 보내면 그저 그뿐 / 團圓度歲月
구태여 속세를 떠날 필요 있으리오 / 何必避塵喧
[주D-001]집에 …… 있으렷다 :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선행을 쌓은 집안에는 후손이 받을 남은 경사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積善之家 必有餘慶]”라는 말이 나온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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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의 계절에 벌써 너무 썰렁하니 / 中秋涼已甚
병든 뼈에 솜옷을 입혀야 하겠구만 / 病骨可綿衣
낡은 집엔 바람이 숭숭 뚫고 들어오고 / 疏屋風相透
새벽별도 드문드문 얼마 남지 않았네 / 殘星曉正稀
인을 행하면 그것이 편안한 집이요 / 爲仁是安宅
이익을 좇으면 위기를 초래하는 법 / 趨利是危機
마음속에 탈이 없는 이른 이 아침에 / 及此心無累
그동안 잘못됐다는 걸 분명히 깨달았네 / 分明悟昨非
[주D-001]인(仁)을 …… 집이요 :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인은 사람이 거처할 편안한 집이요, 의는 사람이 걸어야 할 바른 길이다.[仁人之安宅也 義 人之正路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그동안 …… 깨달았네 :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길을 잘못 들긴 했어도 아직 멀리 벗어나지는 않았나니, 지금이 옳고 그동안은 잘못된 것을 깨달았네.[寔迷途其未遠 覺今是而昨非]”라는 명구가 나온다.
농사를 권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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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제도 덕에 전토를 나눠 받았으니 / 分田蒙國制
씨 뿌려서 추수하는 기쁨을 맛봐야지 / 下種得秋收
요즘에 듣자 하니 인심이 교활해져서 / 近見人心巧
지력을 기른다고 많이들 땅을 놀린다나 / 多將地力休
너희는 이런 폐단 부디 짓지 말지어다 / 爾無深作弊
이 몸도 돌아갈 심산을 단단히 세웠으니 / 我亦熟歸謀
우리 함께 농막(農幕)을 왔다갔다 하면서 / 茅舍同來往
좋은 계절에 서로들 술잔을 주고받자꾸나 / 良辰共獻酬
중추절(仲秋節) 하루 전날에 유항(柳巷)에게 증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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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들어 맑은 하늘 보니 정말 흐뭇한데 / 目送晴天喜氣多
모르겠네 내일도 정녕 하늘이 맑아 줄지 / 不知來日定如何
노년의 소망은 명절에나 술잔 주고받는 것 / 老年祗在酬佳節
가을 달도 은빛 물결 감상하도록 해 줘야지 / 秋月還須賞素波
만리 관산의 아들 소식 부모들 애를 태우면서 / 萬里關山愁客子
오경의 바람과 이슬 속에 항아에게 물어보리 / 五更風露問姮娥
지척에 있는 서쪽 이웃 높은 누대에 오르도록 / 西隣咫尺高樓在
선생이 매번 허락해 주시니 얼마나 행운인고 / 每幸先生許我過
첫서리가 내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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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몸이 유난히 떨려 웬일인가 놀라면서 / 淸曉心驚偏體寒
의관도 차리지 못한 채 창가에 오똑 앉았더니 / 小窓危坐懶衣冠
귀에 잇따라 두런두런 아이 종들의 얘기 소리 / 家僮相語聲相續
서리 이슬 차가운데 아직도 홑옷을 입었다나 / 霜露吾衣尙爾單
물고기 모여든 못물의 빛은 맑아서 교교하고 / 魚聚池光淸皎皎
기러기 나는 하늘 색은 푸르러 끝간 데 없는데 / 雁飛天色碧漫漫
이 몸은 홀로 어찌하여 오래 머물러 있으면서 / 胡爲我獨長留滯
추위 참으며 험난한 인생길 높이 읊조리는가 / 忍凍高吟行路難
향교(鄕校) 1수(一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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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도가 쇠퇴한 지 오래되었으니 / 世敎久陵替
누가 다시 근원을 궁구할 수 있을거나 / 誰復窮源流
생각하면 슬프도다 유생들이여 / 哀哉靑衿子
머지않아 흰머리만 나부낄 테니 / 未幾成白頭
누가 알까 백성이 바라는 것은 / 那知民所望
단지 행귀우주에 있다는 것을 / 只在行歸周
풍수가 날마다 동쪽으로 흐름이여 / 灃水日東注
나의 생각 유유하고 유유하도다 / 悠悠復悠悠
미인을 만나기가 참으로 어려워서 / 美人諒難見
나의 마음 부질없이 시름만 깊어 가네 / 我心徒增憂
[주D-001]누가 …… 것을 : 옛 날 밝은 임금의 시대처럼 충성스럽고 신의 있는 사회가 도래하기를 백성들 모두가 바라고 있다는 말이다. 《시경》 소아(小雅) 도인사(都人士)에 “행동이 충성과 신의로 귀일되는 것, 그것이 바로 만백성의 소망이로다.[行歸于周萬民所望]”라는 말이 나온다. 주희(朱熹)는 주(周)를 호경(鎬京)으로 해설하였으나, 본 국역에서는 정현(鄭玄)의 설을 취하여 주(周)를 충신(忠信)으로 풀이하였다.
[주D-002]풍수(灃水)가 …… 유유하도다 : 옛 날 우(禹) 임금이 홍수를 다스렸던 것처럼 성군이 나와서 교화를 펼쳐 주기를 고대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는 말이다. 《시경》 대아(大雅) 문왕유성(文王有聲)에 “풍수가 동쪽으로 흘러감이여, 우리 우 임금의 공적이로다.[豐水東注 維禹之績]”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미인(美人) : 성군을 뜻한다. 《시경》 패풍(邶風) 간혜(簡兮)에 “누구를 그토록 그리워하시는가, 바로 서주(西周)의 거룩한 임금님이로세.[云誰之思 西方美人]”라는 말이 나온다.
여강(驪江)의 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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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죽기 전에 유후로 만족하겠는가 / 何人未死足封留
서풍에 눈 치켜뜨고 쉬지 않고 치달리겠지 / 蒿目西風走不休
늙은 이 몸 돌아가려 한 지도 지금 이미 오래 / 老我欲歸今已久
황려의 강가엔 올해 다시 가을이 깊어졌으련만 / 黃鸝江上又深秋
[주D-001]어떤 …… 만족하겠는가 : 공 을 이룬 뒤에 겸허하게 물러나서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 것이라는 말이다. 한 고조(漢高祖)가 개국공신인 장량(張良)에게 제(齊)의 3만 호(戶)에 봉해 주려고 하자, 장량이 고조와 처음 만났던 유에 봉해지면 충분하다[願封留足矣]고 하면서 유후(留侯)가 되는 것으로 만족했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주D-002]서풍(西風)에 …… 치달리겠지 : 사 람들 대부분이 권신(權臣)에게 빌붙어서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안달할 것이라는 말이다. 진(晉)나라의 권신 유량(庾亮)의 자(字)는 원규(元規)인데, 그가 있는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 티끌을 날리면[西風塵起], 왕도(王導)가 항상 부채로 얼굴을 가리면서 “원규의 먼지가 사람을 오염시킨다.[元規塵汚人]”라고 말했던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65 王導列傳》
[주D-003]황려(黃鸝) : 여주(驪州)의 옛 이름이다.
서린(西隣)이 적전(籍田)의 별장에 놀러 가자고 부르기에 너무나 기뻐서 곧장 한 수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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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도 상상되네 남쪽 교외 여행 길 / 坐想南郊路
말고삐 나란히 얼마나 흥이 끝없을까 / 聯鞍興渺然
적요해라 말 탄 수행원도 하나 없이 / 寂寥無騎從
소쇄해라 그 모습 신선처럼 여겨지리 / 蕭洒似神仙
비 온 뒤 정적 속의 드넓은 들판이요 / 雨後平原靜
하늘가엔 줄 지어 선 첩첩 산봉우리 / 天涯疊嶂聯
여기에 또 우리들이 그곳에 가게 되면 / 更敎吾輩去
농가에서 태평 시대의 연기가 오르리라 / 田舍大平煙
적전(籍田) 별장에 있는 길창(吉昌)의 누대 위에서 연꽃과 대화를 나누다. 2수(二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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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지기라면 염계라 할 것인데 / 我家知己是濂溪
목은 선생이 함께 끼이려고 하시네요 / 牧隱先生欲與齊
바람 이슬 하늘 가득 가을 색도 엷은 이때 / 風露滿天秋色薄
홀로 머물러 안부를 묻는 그 뜻 처량하외다 / 獨留相候意凄迷
녹정에 홍감이야 옛날과 같다 하더라도 / 綠淨紅柑似舊時
천연의 묘한 그 경지는 누가 알아보겠소 / 天然妙處有誰知
깊은 가을 성남의 길 밟아 보지도 못하는 몸 / 秋深不踏城南路
내가 너무도 쇠한 것을 그대가 아는 듯하구려 / 如覺吾今甚矣衰
[주D-001]본인의 …… 것인데 :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가 〈애련설(愛蓮說)〉을 지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이 절구는 연꽃의 말이다.
[주D-002]녹정(綠淨)에 …… 알아보겠소 : 연 꽃과 감귤이 어우러진 중국 남쪽 지방의 경치야 지금도 예전과 같겠지만, 연꽃 속에 내포된 깊은 의미는 아마도 목은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라는 뜻의 자부심 넘치는 표현이다. 소주(蘇州)의 풍경을 읊은 당(唐)나라 장적(張籍)의 〈송종제대현왕소주(送從弟戴玄往蘇州)〉 시가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되었는데, 그중에 “달빛 아래 붉은 감귤나무요, 가을바람 속에 하얀 연꽃이라.[夜月紅柑樹 秋風白藕花]”라는 표현이 나온다. 녹정은 푸른 못 속에 깨끗하게 우뚝 서 있는 연꽃을 비유한 말로, 〈애련설〉의 “멀수록 더욱 맑은 향기 풍기면서, 깨끗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香遠益淸 亭亭淨植]”라는 말에서 나온 것인데, 염계(濂溪) 역시 소주(蘇州)와 마찬가지로 동정호(洞庭湖) 부근에 있다.
[주D-003]내가 …… 듯하구려 : 공자의 “너무하도다, 나의 쇠함이여. 주공을 꿈에서 뵙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으니.[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라는 말을 목은이 슬쩍 차용해서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論語述而》
뒤에 다시 읊은 팔구(八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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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이슬이 모래섬 같은 연못가에서 / 池塘風露似汀洲
연꽃 마주하고 앉아 누대에 함께 기대었소 / 坐對蓮花共倚樓
공은 아우를 따르게 해서 적막하지 않았고 / 公以弟隨非寂寞
나는 아이를 데리고 가서 또한 편안하였지요 / 我將兒去亦優悠
물고기로 어떻게 배부름 구할 수 있었으리 / 纖鱗豈是求於飽
술 마신들 시름을 죄다 씻어 낼 순 없었다오 / 浮蟻焉能洗盡愁
세상 밖 벗어난 흥치 아는 이가 뉘 있을까 / 有興超然知者少
지금껏 나의 신세 한 마리 모래톱 물새로세 / 至今身世一沙鷗
[주D-001]물고기로 …… 있었으리 : 《논어》 학이(學而)에 “군자는 먹음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으며, 거처함에 편안함을 구하지 않는다.[君子 食無求飽 居無求安]”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비를 대하고 회포를 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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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옹의 자연의 흥치 철 따라 새록새록 / 衰翁野興逐時新
추분과 가까운 때 비가 또 자주 오네 / 節近秋分雨下頻
위세등등하던 삼복더위 숨을 죽일밖에 / 三伏威加曾屛氣
서늘하게 지내는 은혜 온몸을 감싸도다 / 一涼恩重已渾身
교활한 아전 탓에 백성들 떠돌아다닐 뿐 / 鄕閭流徙餘奸吏
훌륭한 대신이 있으니 사직은 무사하렷다 / 社稷安危有大臣
행여 나의 여생 제대로 보전만 된다면 / 儻是吾生保殘齒
풍진 없는 여강에서 지낼 수 있으련만 / 黃鸝江上少風塵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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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무릅쓰고 아침에 조문을 갔다가 / 力疾淸晨與弔廬
귀가해서 오뚝 앉아 홀로 탄식하노라 / 歸家兀坐獨欷歔
궁행을 하면 임금님 은혜 없을 걸 걱정하랴 / 躬行豈患天無語
역사에 기록될 태교임을 알아야 하리로다 / 胎敎須知史可書
산색은 의의해라 운무가 엷게 감싸고 / 山色依依煙靄薄
가을구름 막막해라 나무숲 성글도다 / 秋陰漠漠樹林疏
흰머리로 행여 고향에 갈 수 있다면 / 白頭儻或還鄕去
소쇄한 그 행장 그림도 그만 못하련만 / 行李蕭然畫不如
빈자(貧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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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면 사람들에게 버림받게 마련 / 貧者棄於人
무슨 말을 한들 누가 들어 주려 할까 / 有言誰肯之
그런 중에도 꽤나 자부하는 바 있나니 / 其中頗自恃
외물에 끌려 옮겨 다니진 않는 것이라 / 不見隨物移
혹시라도 부귀를 가지고 나를 유혹하면 / 或誘以富貴
날 위해 말을 잘 해 달라 부탁하리라 / 曰善爲我辭
고달픈 생 무슨 낙이 있냐고 묻는다면 / 苦哉何所樂
읊조리며 곧바로 시 한 수씩 짓는 것 / 吟哦便成詩
시 속에 기막힌 맛이 본래 있는걸 / 詩中自有味
왕후장상(王侯將相)을 어디에다 쓰겠는가 / 焉用侯王爲
급급하게 명리만을 뒤쫓다 보면 / 汲汲逐名利
왕왕 위태롭게 되기가 쉬운 반면 / 往往多傾危
물 마시고 바람과 달 읊는 사람은 / 飮水咏風月
백 살까지 충분히 살 수 있나니라 / 足以保期頤
내가 융숭한 대접 바라지도 않았다만 / 鮮醲旣非望
수전노의 행태를 보니 더욱 우습구나야 / 守錢尤可媸
[주D-001]날 …… 부탁하리라 : 그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칠 것이라는 말이다. 계씨(季氏)가 공자의 제자 민자건(閔子騫)을 비(費) 땅의 책임자로 임명하려 하자, 민자건이 사자(使者)에게 “나를 위해 말을 잘 해 달라. 만약 나를 다시 부른다면 나는 노(魯)나라를 떠나서 벌써 문수강 가에 가 있을 것이다.[善爲我辭焉 如有復我者 則吾必在汶上矣]”라고 말하였다. 《論語 雍也》
8월 10일에 곡성(曲城)의 부인 권씨(權氏)의 장례식에 비를 무릅쓰고 참석하다 보니 매우 피곤하였다. 그다음 날 돌아오는 중에 잠깐 휴식을 취하면서 점심을 먹고 성안으로 들어오니 해가 벌써 서산에 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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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무릅쓰고 도성 동쪽으로 가서 / 冒雨城東行
영구를 전송하니 아직도 남은 비애 / 送殯有餘悲
하얀 모래밭 위에 언치 깔고 앉아 / 坐韉白沙地
푸른 솔 가지에 두건 벗어 걸었소 / 掛巾靑松枝
밥상을 마주해도 배부를 수가 없고 / 對食不能飽
술이 있어도 나는야 또 사양했다오 / 有酒吾復辭
백골을 보고 술잔을 입에 대었다는 / 含杯見白骨
옛사람을 어떻게 따를 수 있으리오 / 古人如可追
도성에 들어오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 / 入城已晚矣
슬픔 속에 애오라지 시 한 수 짓노매라 / 惻愴聊題詩
[주C-001]권씨(權氏) : 권한공(權漢功)의 딸로,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염흥방(廉興邦)의 부인이다. 권중달(權仲達)이 장인인 목은에게는 처 고모가 된다.
[주D-001]백골을 …… 있으리오 : 두 보(杜甫)의 시에 “홀연히 떠오르네 비 올 때 무너진 무덤 속의 광경, 고인의 백골에 푸른 이끼 돋아났던데, 어떻게 술 안 마시고 처량하게 있을쏜가.[忽憶雨時秋井塌古人白骨生靑苔 如何不飮令心哀]”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卷4 蘇端薛復筵簡薛華醉歌》 그리고 소식(蘇軾)이 또 이 시를 인용해서 “비가 와서 무덤이 무너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람의 백골을 보고서야 입에다 술잔을 댈 것이 또 뭐가 있겠는가.[不須更待秋井塌見人白骨方銜杯]”라고 읊은 구절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21 次韻孔毅父久旱已而甚雨》
맑게 갠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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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에 맑은 하늘 나는 기러기 보이는데 / 天晴萬里見飛鴻
높은 누대 오르자니 병든 늙은이 겁이 덜컥 / 欲上高樓怯病翁
창가에 앉아 빠른 해 그림자를 읊노라니 / 端坐小窓吟迅景
미풍 만난 강물과 완연히 같다고나 할까 / 宛同流水遇微風
서늘한 벼 속의 개구리 소리는 성 아래까지 / 稻涼吠蛤連城底
비췻빛 산은 고둥처럼 줄 지어 서서 해동까지 / 山翠排螺到海東
장요를 배불리 먹고 다리 힘을 얼른 길러 / 飽喫長腰添脚力
천길 벼랑에 옷 날리며 장공을 굽어보아야지 / 振衣千仞俯長空
[주D-001]서늘한 …… 아래까지 : 소식(蘇軾)의 시에 “벼에 선들바람 불자 개구리들 울어 대고, 버들잎도 늙어서 반쯤은 벌레 먹은 책장.[稻涼初吠蛤 柳老半書蟲]”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7 宿餘杭法喜寺後綠野堂云云》
[주D-002]장요(長腰) : 장요미(長腰米)의 준말로, 가장 품질이 좋은 쌀의 별칭이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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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대낮 빈 집에 시원한 바람 선들선들 / 晝靜虛堂生嫩涼
생각에 깊이 잠겼다가 어느새 깜박 꿈나라로 / 冥心誤入黑甛鄕
새 울음 한 소리에 불현듯 잠을 깨고 보니 / 一聲啼鳥俄驚起
이것이 바로 내 평생 바라던 좌망의 경지 / 驗得平生得坐忘
[주D-001]좌망(坐忘) :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나오는 말로, 주객(主客)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道)와 합일된 정신의 경지를 뜻한다. 불가(佛家)의 삼매(三昧)와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술회(述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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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몸 허락한 늙은 신하의 마음이요 / 許國老臣意
전토를 내려 주신 밝은 임금의 은혜로다 / 賜田明主恩
나라를 위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해도 / 雖然心尙赤
나이 따라 눈이 자꾸 흐려지니 어떡하나 / 奈此眼從昏
곡령의 하늘 아래 타향에 거처하거나 / 鵠嶺天低屋
여강의 달이 비치는 고향 집에 있거나 / 驪江月照門
사는 곳을 어찌 꼭 가릴 필요 있으랴만 / 所居何用必
그저 소란스러움만 피하고 싶은 마음일세 / 只欲避塵喧
[주D-001]곡령(鵠嶺) : 개경 송악산(松岳山)의 별칭이다.
안 학사(安學士)가 성묘하러 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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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쌍청 학사 문생들을 거느리고 / 雙淸學士領門生
도성 동쪽 성묘를 하니 세상의 영광이라 / 上塚城東世所榮
삼랑이 제미를 하였으니 얼마나 또 기쁠까 / 更喜三郞能濟美
응당 서로 잇따라 문정을 잇게도 되리로다 / 也應相次繼文貞
송당의 문하에서 문형을 손에 쥔 사람은 / 松堂門下掌文衡
우리 선생과 늙은 이 몸 둘이 있을 따름 / 只有先生與老生
예를 맡는 정당께서 친히 제례를 돕는 터에 / 揆禮政堂親助奠
마침 몸이 고단해서 턱만 받치고 있으니 원 / 適因身困坐支頤
하늘 밖 아득해라 나의 고향 한산 땅 / 韓山渺渺在天涯
무덤가 나뭇가지 서리 이슬 젖었으리 / 霜露霑濡宰樹枝
설혹 말미 얻어 돌아가 성묘한다 해도 / 縱得乞身歸拜掃
삼과의 반인인들 어떻게 데려가겠는가 / 三科豈有半人隨
[주D-001]쌍청 학사(雙淸學士) : 호가 쌍청당(雙淸堂)인 안종원(安宗源)을 가리킨다.
[주D-002]삼랑(三郞)이 …… 기쁠까 : 안 종원의 장남 경온(景溫)과 차남 경량(景良)과 삼남 경공(景恭) 모두가 문과에 급제하여 훌륭한 부친의 뒤를 잇게 되었다는 말이다. 제미(濟美)는 후계자가 전인의 업적을 계승하여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우수한 자제를 칭찬할 때 곧잘 쓴다.
[주D-003]문정(文貞) : 근재(謹齋) 안축(安軸)의 시호인데, 안종원은 그의 막내아들이다.
[주D-004]송당(松堂) : 김광재(金光載)의 호이다. 신사년(1341)에 그가 주관한 진사시(進士試)에서 안종원이 목은과 함께 입격(入格)하였다.
[주D-005]마침 …… 원 : 목 은 자신도 송당의 묘소를 참배해야 마땅한데, 몸이 불편해서 함께 참석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토로한 말이다. 송(宋)나라 전유연(錢惟演)의 〈촉질(屬疾)〉 시에 “궤짝을 열고 약 처방을 뒤져 보면서, 턱을 받치고 고향 노래만 뇌까리누나.[發篋尋桐籙 支頤動越謳]”라는 표현이 나온다.
[주D-006]삼과(三科)의 …… 데려가겠는가 : 아 들 삼 형제가 모두 급제한 안종원에 비하면, 목은 자신은 급제한 아들이 아직 두 사람도 못 된다는 뜻으로, 이 시는 아마 장남인 종덕(種德) 한 사람만 급제했을 때의 작품이 아닌가 한다. 목은의 선친인 이곡(李穀)이 안축(安軸)을 스승으로 모신 데다 안축의 아우인 안보(安輔)와 동년(同年)이었으며, 목은 역시 안축의 아들인 안종원과 동년인 인연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유감을 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목은문고》 제8권 〈죽계 안씨(竹溪安氏) 삼 형제의 등과(登科)를 축하한 시의 서문〉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201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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