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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견가(目司見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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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제대로 보는 것이 자기의 할 일 / 目兮司見是其職
만물은 형형색색 각각 차이가 있으니까 / 萬物異同紛五色
일월성신이 궤도를 돌며 찬연히 빛나고 / 日月星辰粲躔度
산악과 강하가 가로놓여 경계를 정하듯 / 山河嶽瀆橫畛域
존비의 윤리가 질서를 잃지 않게 하고 / 尊卑倫理不失序
제도와 문물이 법도가 모두 있게 하거늘 / 典章度數皆有則
어찌하여 백치처럼 거꾸로 행하면서 / 奈何顚倒似迷人
토탄을 옥식처럼 여기기도 하는 걸까 / 土炭有時如玉食
시장의 금 도둑이 사람을 보지 못한 것은 / 攫金於市不見人
보물이 마음을 암흑으로 만들었기 때문 / 尤物足令心地黑
그렇게 유인한 눈도 물론 죄가 있거니와 / 引之入者信有罪
천군은 또 어찌하여 제정신을 잃었고 / 天君胡然亦狂惑
맑은 아침 햇빛이 남쪽 창에 쏟아질 때 / 淸晨日色滿南牕
목로 홀로 처량한 생각에 높이 노래 부르노라 / 牧老高歌獨悽惻
[주D-001]토탄(土炭)을 …… 걸까 : 마 치 흙이나 석탄 가루를 진수성찬으로 여기는 병자처럼 어처구니없이 행동한다는 말인데, 유종원(柳宗元)의 글에 “내가 일찍이 보건대, 심복에 병이 든 사람이 토탄을 먹고 싶어 하고 식초와 소금을 좋아하였는데, 그것을 얻지 못하면 몹시 슬퍼하곤 하였다. 그래서 그와 친하게 지내면서 아끼는 이들이 차마 그 광경을 보지 못한 나머지 그것을 구해서 그에게 주곤 하였는데, 지금 내가 그대의 뜻을 보건대 마치 이와 같은 점이 있다고 여겨진다.[吾嘗見病心腹人有思啗土炭嗜酸鹹者 不得則大戚 其親愛之者 不忍其戚 因探而與之 觀吾子之意 亦已戚矣]”는 말이 나온다. 《柳河東集 卷34 報崔黯秀才論爲文書》
[주D-002]시장의 …… 것은 : 시장의 금은방에 들어가서 금을 움켜잡고[攫金] 나오다가 붙잡힌 사람에게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느냐고 묻자, “사람은 안 보이고 금만 보이더라.[不見人 徒見金]”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列子 說符》
[주D-003]천군(天君) : 사유의 기능을 담당하는 마음을 이른다. 《순자(荀子)》 천론(天論)에 “마음이 가운데 텅 빈 곳에 거하면서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을 다스리기 때문에 하늘의 임금님이라고 이른다.[心居中虛 以治五官 夫是之謂天君]”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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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제정신 아닌 행태를 보인지라 / 我其發出狂
백성들 종종대며 사방 갈 곳을 돌아보네 / 蹜蹜顧四方
저 까마귀 누구 집 지붕에 내려앉으려나 / 瞻烏止誰屋
집안의 어른도 황야로 모두 피신하였는걸 / 家耄遜于荒
큰물 건널 때 물가가 안 보이는 것과 같으니 / 涉水其無涯
마음속의 근심이 또한 얼마나 크다 하겠는가 / 心憂亦孔將
지금 하늘이 임금님에게 명철함을 내리실까 / 今天其命哲
그러면 봉황이 높은 뫼에 다시 날게 되련마는 / 鳳凰飛高崗
[주C-001]아광(我狂) : 우 리들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뜻으로, 《서경(書經)》 미자(微子)에 나오는 말인데, 사실은 당시의 임금인 주(紂)를 직설적으로 비판하여 배척할 수 없었기 때문에 허물을 미자와 비간(比干)과 기자(箕子) 자신들에게 돌려서 말한 것이다. 이 시는 난세를 당하여 현인들이 조정을 떠난 때에 새로 즉위한 임금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어 보려 하는 간절한 소망을 토로한 것이다.
[주D-001]우리가 …… 보인지라 : 《서 경》 미자에 “우리가 제정신 아닌 행태를 보인지라, 우리 집안 어른들도 황야로 몸을 피했다.[我其發出狂 吾家耄遜于荒]”는 말과, “지금 우리 은나라가 장차 멸망하게 되어, 마치 큰물을 건널 적에 물가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되고 말았다.[今殷其淪喪若涉大水 其無津涯]”는 말이 나온다.
[주D-002]저 …… 내려앉으려나 : 까 마귀는 부잣집에 내려앉는다고 하는데, 백성들 모두가 가난하니 어디에 내려앉겠느냐는 뜻이다. 소인들이 득세하는 난세를 풍자한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正月)에 “슬프다 우리 백성, 어디로 가서 먹고 사나, 저 까마귀 한번 보세, 누구 집 지붕에 내려앉을는지.[哀我人斯 于何從祿 瞻烏爰止 于誰之屋]”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3]지금 …… 되련마는 : 새 로 즉위한 임금이 지금부터 훌륭한 정사를 베풀면 떠나갔던 현신들도 다시 조정에 돌아와서 경륜을 펼 수 있게 되리라는 말이다. 《서경》 소고(召誥)에 “지금 하늘이 임금님에게 명철함을 내리실지, 길흉을 내리실지, 많은 햇수를 내리실지는, 지금 우리 조정의 첫 정사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今天其命哲命吉凶 命歷年 知今我初服]”라는 말이 나오고, 주(周)나라 소강공(召康公)이 성왕(成王)에게 현인을 등용하라고 권한 《시경》 대아(大雅) 권아(卷阿)에 “봉황새가 우나니, 저 높은 산등성이로다. 오동나무가 자라나니, 아침 해 뜨는 동산이라. 오동나무 무성하니, 봉황새 소리 어울리도다.[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 菶菶萋萋雝雝喈喈]”라는 구절이 나온다.
세모(歲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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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에 강산은 정적에 싸여 있고 / 歲暮江山靜
이 몸은 치아와 머리칼이 듬성듬성 / 吾生齒髮疏
귀향할 심산은 오래전부터 굳혔다만 / 乞歸謀已熟
병 낫게 할 방법은 모두가 허사로다 / 療病術皆虛
먼지만 잔뜩 쌓인 진번의 걸상이요 / 塵滿陳蕃榻
하늘도 나직한 제갈량의 초가로세 / 天低諸葛廬
씻을 길 없는 가슴속의 시름이여 / 幽懷竟未已
언제나 긴 파람으로 풀어 볼거나 / 長嘯幾時舒
[주D-001]먼지만 …… 걸상이요 : 반 가운 손님이 오래도록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후한(後漢)의 진번(陳蕃)이 현인 서치(徐穉)가 찾아올 때마다 그를 위해 특별히 걸상을 내려놓고 환담을 나누다가 그가 가고 나면 걸상을 다시 올려놓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後漢書 卷53 徐穉列傳》
[주D-002]하늘도 …… 초가로세 : 높은 곳에 위치한 은자의 거처라는 말이다. 유비(劉備)가 삼고초려(三顧草廬)하기 전에는 제갈량이 남양(南陽) 땅에서 은거했다고 한다. 《三國志 卷35 蜀書 諸葛亮傳》
절구(絶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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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얼음 뒤덮인 산천에 밥 짓는 연기도 드문데 / 氷雪山川煙火稀
마른 가지 추운 참새 저녁에 서로들 붙어 있네 / 枯枝凍雀晚相依
얼마 안 있어 봄바람이 천지에 가득 불어오면 / 春風不日滿天地
세상 만났다 화답을 하며 어디든 날아다니리라 / 得意和鳴隨處飛
느낀 점이 있어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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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이불로도 이제는 밤에 꽤나 추워 / 重衾始覺夜寒多
정신만 말똥말똥 잠이 안 오니 어떡하나 / 夢斷惺惺不奈何
도미가 뭉클 일어나며 온통 드러나는 실체요 / 道味油然盡呈露
기심에 빠져 오래도록 함께 치달린 세파로다 / 機心久矣共奔波
북방의 학자로 있다가 중도에 그만두고는 / 北方學者中而廢
남방의 시인으로 뒤처져 노래만 하시는가 / 南國騷人後也歌
한스러워라 쓸쓸하게 나이는 벌써 석양인데 / 恨殺蕭條年已暮
빈아를 따르고자 해도 이미 어긋나 버렸으니 / 欲追豳雅已蹉跎
[주D-001]북방의 …… 하시는가 : 일 찍이 원나라에서 공부하고 벼슬까지 했던 목은 자신이 고려에 돌아온 뒤로는 조정에서 소외된 채 비탄의 노래만 부르고 있다는 뜻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맹자(孟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진량은 초나라 태생인데, 주공과 중니의 도를 좋아한 나머지 북쪽으로 중국에 와서 공부하였다.[陳良 楚産也 悅周公仲尼之道 北學於中國]”는 말이 나오고, 전국 시대 초나라의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난 뒤에 〈초사(楚辭)〉를 지어 불렀던 고사가 있다.
[주D-002]한스러워라 …… 버렸으니 : 주 공(周公)이 성왕(成王)을 도와 왕업(王業)을 이룬 것처럼 목은 자신도 경륜을 펼쳐 선왕의 뜻을 계승 발전시키고 싶지만 이젠 그런 소망도 이룰 길이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빈아(豳雅)는 《시경》 빈풍(豳風) 칠월(七月) 편을 가리키는 말로, 전편의 내용이 일년의 농사를 주제로 이루어져 있으나, 모서(毛序)의 “칠월은 왕업에 대해서 이야기한 시이다. 주공이 변고를 만났기 때문에 후직과 선공의 풍화가 있게 된 연유와 왕업을 이루기가 어려웠던 것을 서술한 것이다.[七月陳王業也 周公遭變 故陳后稷先公風化之所由 致王業之艱難]”라는 말에 따라 이와 같은 뜻으로 시문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유감(有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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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천지의 기운과 본래 서로 통하나니 / 吾身天地本相通
혈기가 도는 속에 천지의 맥박이 뛰는도다 / 血氣周流脈在中
잘 길러 화평하면 성인의 경지가 되다가도 / 養得平和成聖域
한번 자칫 망녕되면 흡사 무당의 바람이라 / 動而狂妄似巫風
맑은 이름과 탁한 이익은 끝내 도와는 멀겠지만 / 名淸利濁終違道
의표와 모습 단정케 함은 충성 바치려 함이로다 / 表正形端在盡忠
남쪽 창가에 홀로 앉아 크게 탄식을 하노니 / 獨坐南牕成浩嘆
요즘에는 꿈속에서 주공을 뵙지 못했더니라 / 邇來無夢見周公
[주D-001]무당의 바람 : 《서 경》 이훈(伊訓)에 ‘삼풍 십건(三風十愆)’ 즉 세 가지 잘못된 풍조와 열 가지 허물이 나오는데, 그중에 “감히 언제나 궁실에서 춤추고 술에 취해 노래하는 것을 무당 바람이라고 한다.[敢有恒舞于宮 酣歌于室 時謂巫風]”고 하면서 이윤(伊尹)이 임금인 태갑(太甲)을 경계시킨 말이 있다.
[주D-002]맑은 …… 함이로다 : 명 예와 모습 같은 형식적인 것은 도의 차원에서 볼 때에는 미흡하다 할지라도, 우선 왕의 외면을 바로잡아 백성의 모범이 되도록 하려는 것은 신하로서 충성을 다 바치고자 함이라는 뜻이다. 《근사록(近思錄)》 위학(爲學)에 “명예와 이익은 맑고 탁한 면에서 비록 같지는 않다 할지라도, 이욕을 좇는 그 마음은 동일하다 할 것이다.[爲名與爲利 淸濁雖不同然其利心則一也]”라는 말이 있고, 《서경》 중훼지고(仲虺之誥)에 “하늘이 왕에게 용기와 지혜를 내려 주고 의표를 단정히 하여 만방의 모범이 되도록 하였다.[天乃錫王勇智 表正萬邦]”는 말이 나온다.
[주D-003]요즘에는 …… 못했더니라 : 이 루어 놓은 일도 없이 몸만 자꾸 늙어 쇠해진다는 말이다. 《논어(論語)》 술이(述而)에 “내가 너무도 쇠하였구나. 오래도록 꿈속에서 주공을 다시 뵙지 못하였으니.[甚矣 吾衰也 久矣 吾不復夢見周公]”라고 탄식한 공자의 말이 나온다.
남경 윤(南京尹)이 물고기를 보내 준 것에 감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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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물 넘실넘실 낚싯배 하나 떠 있나니 / 漢水滔滔泛釣船
눈 속의 하늘 아스라이 도롱이에 삿갓이라 / 渺然簑笠雪中天
목인이 꿈을 점친 것이 어찌 거짓말이리요 / 牧人占夢非虛語
앉아서 쌍어를 대하니 풍년 들 줄을 알겠도다 / 坐對雙魚想有年
[주D-001]한강 물 …… 삿갓이라 : 당(唐)나라 유종원(柳宗元)의 〈강설(江雪)〉이라는 오언 절구에 “도롱이에 삿갓 쓴 노인 외로이 배를 타고, 눈 덮인 추운 강 속에서 홀로 낚시질 하누나.[孤舟簑笠翁 獨釣寒江雪]”라는 명구가 있다.
[주D-002]목인(牧人)이 …… 알겠도다 : 《시 경》 소아(小雅) 무양(無羊)에 “목동이 꿈을 꾸니, 많은 물고기와 깃발들이라네. 점쟁이가 점을 치더니, 많은 물고기는 풍년이 틀림없고, 깃발들은 집안이 번창할 조짐이라나.[牧人乃夢 衆維魚矣 旐維旟矣 大人占之 衆維魚矣 實維豐年 旐維旟矣 室家溱溱]”라는 구절이 나온다.
서린(西隣)의 한 선생(韓先生)이 내 집에 들러 준 것을 감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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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골 선생께서 이웃에 살도록 허락하여 / 柳里先生許卜隣
태평 시대 즐기면서 몇 해나 서로 벗했다오 / 數年相伴樂昌辰
누대에서 달구경하면 여기가 바로 선경이요 / 登樓翫月通仙境
술잔 들며 산을 보면 저자 티끌도 저 멀리라 / 對酒看山遠市塵
어지럽게 휩쓸려서 명리를 따른 적 있으리요 / 擾擾何曾逐名利
한가로이 정신을 쾌하게 하면서 자족할 뿐 / 悠悠自足暢精神
새벽부터 나막신 끌고 왔다가 또 갔다가 / 凌晨曳履來還去
이 같은 풍류를 즐기는 이 또 몇 분이실까 / 似此風流更幾人
정포은(鄭圃隱) 추상(樞相)과 이도은(李陶隱)과 이둔촌(李遁村)이 방문해 준 것을 감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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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우정 나눌 분 지금 또 몇 분일까 / 淡交今復幾人存
쓸쓸한 골목에 낮에도 닫힌 나의 사립문 / 里巷蕭條晝掩門
다만 몇 분에 대해서는 신발 자주 거꾸로 신고 / 只爲數公頻倒屣
좋은 계절 맞을 때마다 함께 술동이 기울였지 / 每於佳節共傾樽
문장의 정통성을 누가 전하고 받았던가 / 文章正印誰相授
도덕의 후광 역시 세상이 존경하는 바라 / 道德餘光世所尊
병든 노인 다행일세 아직도 조정에 이름 끼어 / 自幸病翁蒙齒錄
등 따스한 울타리 아래 귀한 분 수레 마주하니 / 負暄墻下對高軒
[주D-001]다만 …… 신고 : 목 은이 정포은(鄭圃隱) 등 몇 사람에 대해서만은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이런 후배들이 찾아오기만 하면 바삐 맞이하느라 경황이 없어 신발도 거꾸로 신었다는 말이다. 후한(後漢) 말에 청년 왕찬(王粲)이 장안(長安)에 와서 채옹(蔡邕)을 방문하자, 채옹이 신발을 거꾸로 신고 문으로 나아가 맞이해 들어왔는데, 왕찬의 나이가 어린 데다 용모도 작달막하였으므로, 거기에 모인 빈객들이 모두 놀랐다는 고사가 전한다. 《三國志 卷21 魏書 王粲傳》
동산에 걸어서 올라갔다가 송 동년(宋同年)의 채마밭을 통해 나와서는 부추(副樞)의 새집에 이르렀는데, 이웃에 사는 조 판사(趙判事)가 술을 가지고 왔기에 약간 취한 상태에서 말을 타고 노래하며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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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짚고 아이 데리고 뒷산에 올랐다가 / 策杖携兒上後山
송 동년의 채마밭 사이를 뚫고서 지나왔네 / 行穿宋丈菜園間
오랜 옛적 동네의 자취 여전히 남아 있어 / 故居閭里存遺跡
선배 의관의 옛 얼굴을 대하는 듯하였다오 / 前輩衣冠對舊顔
금낭을 점검해 보건대 용이 돌아보는 형세 / 點檢錦囊龍自顧
처음 돌아온 화표의 학과 방불하다고나 할까 / 依俙華表鶴初還
소년 시절 노닐던 일 어제 일처럼 삼삼한데 / 少年行樂森如昨
이웃 노인 술 들고 와서 의기가 또 한유했네 / 携酒隣翁意氣閑
[주D-001]아이 : 목은의 장남인 부추(副樞) 종덕(種德)을 가리킨다.
[주D-002]금낭(錦囊)을 …… 형세 : 그 곳의 형세가 풍수지리(風水地理)에서 말하는 바, 용이 제 몸을 휘감고는 다시 자기 꼬리를 되돌아보는 것과 같은 회룡고조(回龍顧祖)의 형국을 이루었다는 말이다. 《금낭》은 《청오(靑烏)》와 함께 대표적인 풍수지리서로 꼽히는 책인데, 《택당선생 별집(澤堂先生別集)》 권11 〈풍수험응설(風水驗應說)〉에 “조종조(祖宗朝)에서 고려(高麗) 시대의 폐단을 없애기 위한 일환으로, 지리(地理)에 관한 서적들을 모조리 불태워 버리고는, 오직 《청오》와 《금낭》 등 10여 권의 책만을 남겨 관상감(觀象監)에서 학습하도록 하였다고 한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주D-003]처음 …… 할까 : 목 은이 오랜만에 돌아보며 느낀 감정이 마치 학이 일천 년 뒤에 돌아와서 화표주(華表柱)에 앉은 것과 흡사하다는 말이다. 요동(遼東) 사람 정영위(丁令威)가 신선이 되고 나서 천년 만에 학으로 변해 다시 고향을 찾아와서는 요동 성문의 화표주 위에 내려앉았는데, 소년 하나가 활을 쏘려 하자 허공으로 날아올라 배회하면서 “옛날 정영위가 한 마리 새가 되어, 집 떠난 지 천년 만에 이제 처음 돌아왔소. 성곽은 의구한데 사람은 모두 바뀌었나니, 신선술 왜 안 배우고 무덤만 이리도 즐비한고.[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年今始歸 城郭如故人民非 何不學仙冢纍纍]”라고 탄식하고는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한다. 《搜神後記 卷1》
머리를 빗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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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 대기도 미안해라 짧은 머리 듬성듬성 / 短髮蕭蕭不滿梳
거울 속에 비친 모습 남김없이 하얗구만 / 鏡中相對白無餘
소년 시절의 풍채는 모조리 소진되었다만 / 少年風采都消盡
호기는 아직 남은 것을 누가 알기나 할까 / 豪氣誰知尙未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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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 부락 거주하는 머리 하얀 노인 / 丹溪村裏有蒼頭
온갖 걱정 몰려드는 쓸쓸한 살림살이 / 生理蕭條集百憂
어진 은택을 입어야만 살 수가 있겠기에 / 只被仁風存性命
목옹 홀로 누대에 올라 남쪽 바라보노라 / 牧翁南望獨登樓
[주C-001]합주(陜州) : 합천(陜川)의 옛 이름이다.
[주C-002]영각(鈴閣) : 지방 장관의 별칭이다.
영암사(靈巖寺) 당두(堂頭)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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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흠모한 백족의 풍도 / 白足歆風久
백발 노인 돌봐 준 은혜가 후하도다 / 蒼頭托蔭深
사람 사랑이야 유불이 다 마찬가지 / 愛人儒釋共
언제나 그 마음을 다시 논해 볼거나 / 何日更論心
[주C-001]당두(堂頭) : 주지(住持)의 별칭이다.
[주D-001]백족(白足) : 고승(高僧)의 별칭이다. 진(晉)나라 고승 담시(曇始)의 발이 얼굴보다도 희었는데, 진흙탕 길을 걸어도 더럽혀지지 않았으므로 백족 화상(白足和尙)이라고 불렀다는 일화가 전한다. 《高僧傳 卷10 釋曇始》
겨울날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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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겨울철 이젠 한 해도 막바지 / 閉塞成冬歲律窮
유유한 천지 속에 서 있는 쇠한 늙은이 / 悠悠天地立衰翁
부끄러워라 숲과 계곡 예전 모습 잃었는데 / 林慚磵愧聲容變
모질어라 눈과 바람 기세를 한껏 떨치누나 / 雪虐風饕氣勢雄
물시계 소리 듣는 군신 얼마나 나랏일 걱정하며 / 待漏君臣憂悄悄
화로에 둘러앉은 처자 얼마나 화기가 애애할까 / 圍爐妻子樂融融
초연히 세상을 벗어나서 나의 고독을 잊을지니 / 超然離世忘吾獨
푸른 하늘 기대고 선 백척의 장송을 볼지어다 / 百尺長松倚碧空
[주D-001]꽉 막힌 겨울철 : 《예 기(禮記)》 월령(月令)에 “초겨울 10월에 하늘의 기운은 위로 올라가는 반면에 땅의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는 관계로 두 기운이 서로 통하지 않은 채 꽉 막히면서 겨울의 계절을 이루게 된다.[孟冬之月 天氣上騰 地氣下降 天地不通 閉塞而成冬]”는 말이 나온다.
[주D-002]물시계 …… 군신(君臣) : 예전에 새벽부터 물시계 소리를 듣고 있다가 정해진 시각이 되면 조정에 나아가서 조회에 참석하곤 하였다.
성남(城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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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은 성남의 가장 외진 곳 / 城南居最僻
더구나 한 해도 장차 지려는 때 / 況此歲將闌
고목의 가지엔 바람 소리 급하고 / 樹老風聲急
높은 하늘엔 태양빛도 차가워라 / 天高日色寒
문장은 양한을 아울러 갖추었고 / 文章兼兩漢
기상은 삼한에서 으뜸이라 할까 / 氣像冠三韓
이만하면 한가한 맛 만끽하는데 / 剩得閑中味
다시 관을 걸어 놓을 필요 있으랴 / 何須更掛冠
[주D-001]다시 …… 있으랴 : 굳 이 벼슬을 그만두고 은거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동한(東漢)의 봉맹(逢萌)이 왕망(王莽)의 정사에 환멸을 느껴 인륜이 끊어졌다고 탄식하면서 관을 벗어 동쪽 도성 문에다 걸어 놓고는[解冠掛于東都門] 곧장 시골로 돌아갔던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逢萌》
강릉(江陵) 염사(廉使)가 생전복을 보내 준 것을 감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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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바다에서 사람이 하나 와서 / 人從東海至
우리 안렴사의 서신을 전해 주네 / 遺我按廉書
기쁘면서 한편으로는 계면쩍기도 / 喜動還羞澁
이가 흔들리니 건어를 깨물 수야 / 齒搖難決魚
해가 뜨면 밝은 구슬이 호수 위에 비치고 / 明珠日照後
바람 불면 띠 같은 풀이 한쪽으로 눕겠지 / 翠帶牽風餘
행리가 다행히 틈낼 시간 많은지라 / 行李幸多暇
초라한 내 집을 또 생각해 줌이렷다 / 更宜思弊廬
[주D-001]기쁘면서 …… 계면쩍기도 : 돈 이 없어서 계속 얻어먹기만 하니까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말이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지갑이 텅 비어서 남들 보기 계면쩍어, 달랑 한 푼밖에 남지 않았는걸.[囊空恐羞澀 留得一錢看]”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杜少陵詩集卷8 空囊》
전의(全義)에 있는 한 동년(韓同年)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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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에 강산은 멀기만 한데 / 歲暮江山遠
추운 날씨에 수목도 듬성듬성 / 天寒樹木疏
문장을 논할 날 다시 언제일까 / 論文更何日
그저 기러기 편에 소식만 전하외다 / 只有雁傳書
박 정당(朴政堂)은 나를 종백(宗伯)이라고 부르는데, 문생의 명족회(名簇會)가 열리는 날에 내 집을 찾아와서 초청하기에 병든 몸을 이끌고 가서 참석했다가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러고는 그다음 날에 대서(代書)해서 감사의 뜻을 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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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안고 몇 년째 홀로 문을 닫고서는 / 抱病年年獨掩門
불러 주면 이따금씩 함께 술잔 기울일 뿐 / 承招往往共傾尊
선조를 떠올리게 하는 행산의 성대한 모임이요 / 杏山盛集追先祖
후손을 빛나게 하는 옥순의 꽃다운 이름이로세 / 玉笋芳名照後昆
올해 경신년 만났으니 밤까지 마셔야 하고말고 / 適値庚申宜夜飮
지난 정해년 돌아보니 물이 급히도 흘러간 듯 / 回思丁亥似川奔
취중에 이 감격을 쏟아 내버리기 어려워서 / 醉中感激難陶寫
모영에게 내 대신 아침에 말하게 했소이다 / 毛穎朝來代我言
[주C-001]박 정당(朴政堂)은 …… 부르는데 : 박 정당은 박형(朴形)을 가리키는데, 그가 목은의 부친인 이곡(李穀)의 문생인 관계로 목은을 종백(宗伯)이라고 불렀다. 이에 대해서는 《목은시고》 제22권 〈지금 경신년, 동당 감시의 주사는 모두가……〉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는 충목왕(忠穆王) 3년(1347)인 정해년에 이곡이 동지공거(同知貢擧)를 맡았을 적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였다.
[주C-002]명족회(名簇會) : 문생들이 각자 이름을 써 넣은 족자(簇子)를 좌주(座主)에게 바치면서 연회를 베푸는 모임을 말한다. 박형은 우왕(禑王) 6년(1380)인 경신년에 동지공거로서 지공거(知貢擧)인 염흥방(廉興邦)과 함께 과거를 주관하였다.
[주D-001]선조(先祖)를 …… 모임이요 : 행산(杏山)이 박형(朴形)의 증조부인 박전지(朴全之)의 호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2]옥순(玉笋) : 훌륭한 문생을 가리킨다. 당(唐)나라 이종민(李宗閔)이 과거 시험을 주관하여 뽑은 문생들 모두가 준수한 인물들이었으므로 당시에 그들을 옥순이라고 불렀던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卷74 李宗閔列傳》
[주D-003]모영(毛穎)에게 …… 했소이다 : 남에게 붓을 잡고 대신 쓰게 했다는 말이다. 모영은 붓의 별칭인데, 한유(韓愈)가 붓을 의인화(擬人化)하여 〈모영전(毛穎傳)〉을 지은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아가(我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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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노래 누가 화답할까 애틋한 이 마음이여 / 我歌誰和思依依
흐르는 물 높은 산은 만나기 이미 어렵도다 / 流水高山世已稀
서리 달빛 발에 가득 길고 긴 추운 밤에 / 霜月滿簾寒夜永
처연히 오똑 앉아 거문고 줄을 퉁겨 보네 / 悄然危坐撫琴徽
[주D-001]흐르는 …… 어렵도다 : 이 세상에서 지기(知己)를 만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춘추 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타고 친구인 종자기(鍾子期)는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들었다. 그리하여 백아가 높은 산[高山]에 뜻을 두고 연주를 하면, 친구인 종자기(鍾子期)가 “멋지다. 마치 태산처럼 높기도 하구나.”라고 평하였고, 흐르는 물[流水]에 뜻을 두고 연주를 하면 “멋지구나. 마치 강하처럼 넘실대는구나.”라고 평하는 등, 백아가 생각한 것은 종자기가 반드시 다 알아들었다. 그래서 종자기가 죽은 뒤로는 백아가 자기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들을 사람이 없다 하여 마침내 거문고를 부숴 버리고 종신토록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列子 湯問》
시재(時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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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었으니 돌아갈 만도 한데 / 時哉可歸去
아직도 종남산을 못 잊어 하시는가 / 尙憐終南山
나라 위해 애태우는 한마음은 붉다마는 / 耿耿一心赤
스산하게 나부끼는 머리카락은 희끗희끗 / 蕭蕭雙鬢斑
밭두둑에 나가서는 농사일을 하고 / 農功畎畝上
바람 달 사이에선 스님과 얘기하고 / 僧話風月間
티끌세상 벗어나면 나로선 그저 그만 / 自足避塵世
이따금씩 나는 새 돌아오는 것도 보며 / 時看飛鳥還
[주D-001]아직도 …… 하시는가 : 종 남산(終南山)은 장안(長安)의 남쪽 50리 지점에 있는 산으로, 목은이 아직 미련이 남아서 도성을 떠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두보(杜甫)의 시에 “아직도 종남산을 못 잊어 하며, 머리 돌려 맑은 위수 바라본다오.[尙憐終南山 回首淸渭濱]”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1 奉贈韋左丞丈》
[주D-002]이따금씩 …… 보며 : 전 원의 한가한 생활을 묘사한 것이다. 도잠(陶潛)의 시 〈귀거래사(歸去來辭)〉에 “구름은 무심하게 봉우리에서 나오고, 새들도 날다 지치면 돌아올 줄을 안다.[雲無心以出峀 鳥倦飛而知還]”는 구절이 나오고, 또 〈음주(飮酒)〉 20수 중 다섯 번째 시에 “산기운은 저녁이 되면 더욱 좋은데, 나는 새들도 이때쯤 서로 어울려 돌아온다.[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는 구절이 나온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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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엔 바람 소리 초당은 냉랭한데 / 樹上風聲冷草堂
화로 속의 불기운에 인삼탕 보글보글 / 爐中火氣沸蔘湯
시월 달 지나고 나니 몹시도 추운 날씨 / 小春過了天寒甚
궤안 기댄 서생은 머리에 서리 내린 듯 / 隱几書生鬢似霜
곡성부(曲城府)에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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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건대 매화가 벌써 반이나 피었다니 / 聞道梅花已半開
얼음 자태 소쇄하게 요대를 비추겠네 / 氷姿瀟洒映瑤臺
주인은 삼달이라 존에 미를 겸했으니 / 主人三達尊兼美
문밖에 속객이 찾아온 적 있으리요 / 門外何曾俗客來
당일에 뭇 꽃들이 차례로 피어날 때 / 當日群花次第開
판삼사 어르신이 금대에서 놀게 했지 / 判三司老軟金臺
눈 속의 매화 소식 올해도 여전하건마는 / 雪中梅信依然在
활짝 핀 꽃 술잔 앞에 오지 않아 한스럽소 / 只恨樽前笑不來
도처에 매화가 피어 물가를 비칠 터이니 / 處處梅花照水開
강서 동절에서도 남대를 에우고 있으렷다 / 西江東浙拱南臺
소년 시절 혼자서 연경의 눈을 구경할 때 / 少年獨賞燕山雪
몇 송이 꽃이 월나라 사신을 따라왔었지 / 數朶曾隨越使來
[주D-001]얼음 자태 : 매화를 비유한 표현인데, 소식(蘇軾)의 시 〈영매서강월(詠梅西江月)〉에 “뼈가 옥 같으니 어찌 장무를 근심하랴, 자태가 얼음 같아서 절로 선풍이 있도다.[玉骨那愁瘴霧 氷姿自有仙風]”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2]요대(瑤臺) : 신화 속에 나오는 곤륜산(崑崙山) 위의 누대로, 신선이 사는 선경 속의 누대와 같다는 말이다.
[주D-003]주인은 …… 겸했으니 : 주 인이야말로 완전한 인격의 소유자라는 말이다. 삼달(三達)은 지(智)ㆍ인(仁)ㆍ용(勇)의 삼덕(三德)을 말하고, 존(尊)은 작위(爵位)와 고령(高齡)과 덕행(德行)의 삼달존(三達尊)을 말하고, 미(美)는 혜택을 베풀되 낭비하지 않고[惠而不費], 일하게 하되 원망을 받지 않고[勞而不怨], 원하되 욕심부리지 않고[欲而不貪], 여유가 있되 교만하지 않고[泰而不驕], 위엄스러우면서도 사납지 않은[威而不猛] 오미(五美)를 말한다.
[주D-004]활짝 …… 한스럽소 : 두보(杜甫)의 시에 “자던 새들은 줄을 지어 그래도 날아가는데, 뭇 꽃들은 활짝 핀 채 내 앞에 오지를 않는구나.[宿鳥行猶去 叢花笑不來]”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22 發白馬潭》
[주D-005]몇 송이 …… 따라왔었지 : 날 씨가 더워 눈 구경을 못한 남쪽 나라의 사신이 그때 눈 속의 매화를 신기하게 여긴 나머지 매화 가지를 꺾어 왔던 것을 회상하는 말이다. 눈이 오지 않는 월나라에 언젠가 눈이 내리는 이변이 발생하자 개들이 미친 듯 뛰어다니면서 짖어 댔다는 ‘월견폐설(越犬吠雪)’의 이야기가 유종원(柳宗元)의 〈답위중립논사도서(答韋中立論師道書)〉에 나온다.
부목 대선사(夫目大禪師)에게 화답해 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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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송광사 떠나셨더니 / 久矣離松廣
표연히 수원에 와 계시는구려 / 飄然在水原
목옹이 지금 목마르게 사모하는데 / 牧翁方渴仰
언제나 종문의 어르신 찾아뵐는지 / 何日過宗門
유항(柳巷) 선생이 찾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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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풍류를 둘이서 함께하게 했는지라 / 天敎韓李共風流
마주 앉아 노래하다 다시 말 타고 노닐기도 / 對坐高吟並騎遊
사흘도 멀다 하고 강산이 눈에 가득 / 三日爲疏山滿目
다섯 살 더 많다고 머리엔 눈이 듬뿍 / 五年以長雪渾頭
기발한 시구 찾는 시인 궁한 생활 지긋지긋 / 搜奇苦厭窮詩子
노인 길러 주는 덕에 열후에 끼어 감지덕지 / 養老深甘忝列侯
다만 하나 시마는 쫓아도 떠나질 않는지라 / 只有詩魔推不去
불러 주실 때마다 나란히 누대에 오른다오 / 每承招喚共登樓
[주D-001]사흘도 …… 가득 : 조 금만 서로 못 보아도 함께 어울려 노닐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는 말이다. 송(宋)나라 심구(沈遘)의 시에 “예전에 노닐던 강산이 눈에 가득한데, 언제나 그대를 따라 순채 안주에 취해 볼까.[湖山滿目舊遊在 何日從公醉紫蓴]”라는 표현이 나온다. 《西溪集 卷2 送密學施侍郞知杭州》
[주D-002]다섯 …… 듬뿍 : 목은이 유항 한수(韓脩)보다 5년 연상이다.
[주D-003]기발한 …… 지긋지긋 : 송나라 구양수(歐陽脩)의 〈매성유시서(梅聖兪詩序)〉에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기보다는, 사람이 궁하게 된 뒤에야 멋진 시가 나오는 것이다.[非詩能窮人 殆窮者而後工也]”라는 말이 있다.
좌윤(左尹) 형이 화답한 앞의 시에 ‘대상 풍우(對床風雨)’라는 말이 있기에 다시 한 수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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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산골의 새를 어찌하여 놀라게 했나 / 靜處寧敎谷鳥驚
책 거문고 방 하나면 평생 족한 분인 것을 / 琴書一室足平生
마음은 보국을 다짐하나 실현할 방법 없고 / 心期報國還無術
입으론 귀향을 말하지만 속내가 아닌 듯도 / 口說歸田似不情
바람은 잠잠해도 날씨는 한결 더 추워지고 / 風定天容寒更甚
구름 짙게 끼더니 저녁에 눈발이 흩날리네 / 雲濃雪意晚來成
늙어 가며 골육의 정 갈수록 애틋해지는데 / 老衰骨肉恩逾重
어느 때나 새벽까지 도란도란 얘기를 할까 / 夜話何時直到明
[주C-001]대상 풍우(對床風雨) : 형 제나 친구가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서 재회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을 말하는데, 당(唐)나라 시인 위응물(韋應物)의 시 〈시원진형제(示元眞兄弟)〉에 “어찌 알았으랴 눈보라치는 이 밤, 다시 이렇게 침상을 맞대고 누워 잘 줄을.[寧知風雪夜 復此對床眠]”이라는 구절이 나오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01]고요한 …… 했나 : 조 용한 산골 마을에 병란이 발생했다는 말이다. 《목은시고》 제30권에 〈외형(外兄) 김 좌윤(金左尹)이 영해(寧海)에서 왔기에 서로 만나게 된 것이 기뻐서 짧은 시를 읊조리다.〉라는 시가 있는데, 그중에 “소년 때부터 자유롭게 뛰놀던 시골 마을, 백발의 몸 지금은 병란을 당해 떠도누나.[鄕里優游自少年干戈飄泊在華顚]”라는 구절이 나온다.
자영(自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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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옹은 참으로 만족스럽게 느끼나니 / 牧翁眞足矣
부족한 게 있다면 귀거래사 읊는 것뿐 / 只欠賦歸歟
바람과 달이 찾아와 나의 단점 고쳐 주고 / 風月攻吾短
시서가 소외된 이 몸과 함께해 주는걸 / 詩書與世疏
시장에 호랑이 나타났다 떠들어 대고 / 紛紛市有虎
반찬에 고기 없다 급급해하는 세상 / 汲汲食無魚
나는야 기심(機心) 잊은 지 오래되는지라 / 賴是忘機久
뜬구름과 벗하면서 말았다 폈다 한다오 / 浮雲共卷舒
[주D-001]바람과 …… 주고 : 남 조(南朝) 시대 양(梁)나라의 사혜(謝譓)가 아무나 함부로 사귀지 않으면서 잡된 손님은 일절 집에 들이지 않은 채, 이따금씩 홀로 술을 마시고 취하면 “내 방에 들어오는 건 오직 맑은 바람이요, 나와 술을 마시는 건 오직 밝은 달이다.[入吾室者 但有淸風 對我飮者 唯當明月]”라고 말했다는 고사가 있다. 《南史 卷20 謝譓列傳》
[주D-002]시장에 …… 세상 : 온 갖 모함과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조금 더 대우를 잘 받기 위해서 모두들 안달하는 세상이라는 말이다.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날 리가 없건마는 세 사람이 잇달아 그런 이야기를 하면 누구나 그 말에 현혹되어 믿게 되고 만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의 고사가 전한다. 《戰國策 魏策2》 또 전국 시대 제(齊)나라 풍환(馮驩)이 맹상군(孟嘗君)의 식객이 되었을 때, 밥상에 고기반찬이 없자 장검의 칼자루를 두드리면서 “장검이여 돌아가자, 밥상에 고기가 없으니.[長鋏歸來乎 食無魚]”라면서 불만을 토로했던 고사가 전한다. 《戰國策 齊策4》
김군필(金君弼) 동년(同年)의 시를 보고 나서 차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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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의 구름이 넓은 평야 지대까지 / 山雲連大野
외딴 마을 밥 짓는 연기도 묽수그레 / 煙火淡孤村
난리를 피하느라 겁도 꽤 나겠지만 / 避亂雖□恐
문장은 꼼꼼하게 논해야 하고말고 / 爲文要細論
그대는 아직도 귀밑머리 검푸른데 / 君猶雙鬢綠
나는 벌써 두 눈이 어둠침침하기만 / 我已兩眸昏
서울에 앵화의 계절 가까이 다가오니 / 京洛鶯花近
서로 만나 술잔을 나눠야 하련마는 / 應須對酒樽
바람 소리를 듣고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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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게 귀에 들어오는 창밖의 바람 소리 / 牕外風聲入耳寒
가련토다 높은 산 헤매고 다닐 나무꾼이 / 可憐樵徑繞巑岏
누더기 옷 걸쳐 입고 두 발은 맨살을 보일 텐데 / 弊衣又見雙跟露
온돌방에선 귀한 분들 두 다리 뻗고 계시겠지 / 溫突仍將兩脚盤
고통과 즐거움 다른 두 길 누가 명으로 믿겠는가 / 苦樂異途誰信命
이장의 계책도 못 올리고 나는 벼슬을 쉬고 있네 / 弛張無策我休官
외로운 배 타고 아직도 남주로 떠나지 못한 채 / 孤舟尙未南州去
푸른 물굽이 비칠 매화 앉아서 상상할 뿐이라오 / 坐想梅花照碧灣
[주D-001]고통과 …… 있네 : 이 세상의 불평등한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편하게 가질 백성은 드물 텐데, 그들의 힘든 생활을 조금이나마 풀어 줄 계책을 조정에 올리지 못한 채 목은 자신은 그저 뒤로 물러나 쉬고 있다는 말이다. 이장(弛張)은 일장일이(一張一弛)의 준말이다.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연말에 지내는 사제(蜡祭)를 참관하고 돌아오자, 재미가 있었느냐고 공자가 물으니 자공이 “온 나라 사람들이 들떠서 미친 듯 좋아했지만 나는 무엇이 재미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는데, 이에 공자가 “그들은 일 년 동안 고생하다가 이날 하루를 마음껏 즐기는데, 이런 행사의 의미를 너는 모를 것이다.”라고 하면서 “활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기만 하고 풀어 줄 줄을 모르면 문왕(文王)이나 무왕(武王)이라도 어떻게 다스릴 수 없다. 또 풀어 주기만 하고 팽팽하게 당기지 않는 것은 문왕과 무왕이 하지 않는 바이다. 한 번 당겼다가 한 번 풀어 주는 것이 문왕과 무왕의 도이다.[一張一弛文武之道也]”라고 말한 내용이 《예기》 잡기 하(雜記下)에 나온다. 또 《열자(列子)》 역명(力命)에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오래 살거나 일찍 죽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信命者亡壽夭]”는 말이 나온다.
화엄(華嚴)의 당두(堂頭)를 찾아가려 하다가 추위가 겁나 움츠리고 앉아서 시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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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의 영수는 청량한 달빛 같으신 분 / 華嚴領袖似淸涼
광장설로 삼천 세계 우레처럼 흔든다오 / 雷振三千舌廣長
해장은 구름에 잇닿아 오묘한 빛을 떨치고 / 海藏連雲輝妙色
천화는 땅에 떨어져 남은 향기를 발산하네 / 天花落地散餘香
산중의 보배 사찰이라 영험이 가득 쌓여 있고 / 山中寶刹鍾靈異
새해 명절 아침이라 길상이 모여드는 이때 / 歲首良辰集吉祥
남양을 시주로 삼는다면 또 얼마나 다행이요 / 幸是南陽爲施主
신족을 치달려 성대한 모임 함께 가져 봤으면 / 願馳神足共張皇
[주D-001]화엄(華嚴)의 …… 분 : 일 체의 집착을 여의고서 맑고 시원한 달빛처럼 보살도(菩薩道)를 행하는 고승이라는 뜻이다. 《화엄경(華嚴經)》 이세간품(離世間品)에 “보살은 청량한 달빛 같아서, 집착 없는 필경공의 세계에서 노닌다.[菩薩淸涼月遊於畢竟空]”는 말이 나온다.
[주D-002]광장설(廣長舌) : 부처의 32상(相)의 하나로, 얼굴을 다 덮고 머리까지 올라간다는 긴 혀를 말하는데, 설법을 뛰어나게 잘하는 것을 말한다. 장광설(長廣舌)이라고도 한다.
[주D-003]해장(海藏) : 바다 속 용궁(龍宮)의 보장(寶藏)이라는 뜻으로 불경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특히 해인 삼매(海印三昧)를 강조하는 《화엄경》의 뜻으로 쓰였다.
[주D-004]천화(天花) : 부처가 설법할 때 하늘에서 연꽃 모양의 각종 만다라화(曼陀羅花)가 비처럼 쏟아졌다고 하는데, 보통 고승의 설법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法華經 序品》
[주D-005]남양(南陽)을 …… 봤으면 : 명 문으로 꼽히는 남양 홍씨(南陽洪氏) 집안이 시주가 된다면 종단으로서도 다행스러운 일이 될 것이니, 그 기회에 서울로 와서 함께 성대한 모임을 가져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이다. 신족(神足)은 불교에서 말하는 육신통(六神通)의 하나인 신족통(神足通)으로 왕래를 자유자재로 하는 신통력을 말한다. 장황(張皇)은 불교에서 흔히 쓰는 ‘장황불사(張皇佛事)’의 준말로 성대한 불교의 법회를 말한다.
화엄(華嚴) 도실(都室)을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한 수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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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가득 모래 바람을 감당할 수 없었지만 / 滿面風沙不可當
바쁜 일 있는 사람처럼 노옹이 말을 달렸나니 / 老翁驅馬似奔忙
한중의 맛을 아직도 느끼고 있는 줄 누가 알랴 / 誰知尙有閑中味
승창에서 마신 차 향기가 오장 속에 감도는걸 / 啜茗僧牕五內香
바람 소리가 귀에 가득한 때 갖옷을 걸치고 혼자 앉아서 읊조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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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소리 귀에 가득해도 중천을 넘어선 때 / 滿耳風聲日過中
환하디환한 남쪽 창가에 화로 불빛 빨갛도다 / 南牕明甚火爐紅
이불 덮고 홀로 앉으니 끝없이 펼쳐지는 생각 / 擁衾獨坐思無盡
붓 잡고 한가히 읊으니 저절로 묘해지는 시어 / 援筆閑吟語自工
큰길 거리에 고운 모래만 날리게 할 뿐이지 / 只許細沙飄廣陌
먼 하늘에 뜬구름 점 찍게 하실 리 있겠는가 / 肯容纖翳點長空
돛 달고 바다 건너는 것이 어찌 나의 일이리요 / 雲帆濟海非吾事
기억나는 건 바윗가에서 낚시꾼과 짝한 그 일 / 曾記隈巖伴釣翁
[주D-001]돛 …… 것 : 원 대한 뜻과 기걸찬 기백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남조(南朝) 시대 송(宋)나라의 좌위장군(左衛將軍) 종각(宗慤)이 소년 시절에 자신의 뜻을 이야기하면서 “장풍을 타고서 만리의 물결을 쳐부수고 싶다.[願乘長風破萬里浪]”고 한 고사가 전한다. 《宋書 卷76 宗慤列傳》 또 이백(李白)의 시에 “물결을 쳐부술 장풍이 불 때가 있으리니, 곧장 구름 돛 달고 푸른 바다를 건너리라.[長風破浪會有時 直挂雲帆濟滄海]”라는 표현이 나온다. 《李太白集 卷2 行路難》
유감(有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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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과 뼈는 욱신거리고 목덜미는 뻣뻣하고 / 肌骨酸辛項領頑
와서 밟는 계집애도 근심스러운 낯빛일세 / 小娃來踏帶愁顔
노쇠하니 육신이 근심덩어리임을 알겠는데 / 老衰始信身爲患
병으로 폐인 되니 한가한 생활은 자랑할 만 / 病廢堪誇迹亦閑
어느 때나 누대에 올라 치악산을 바라 볼꼬 / 何日登樓看雉岳
이따금씩 술잔 들고서 용수산만 마주할 뿐 / 有時擧酒對龍山
누가 알까 인간의 출처 운명과 관계되는 것을 / 誰知出處關天數
왕래가 자유로운 구름 앉아서 부러워하노매라 / 坐羨飛雲自往還
[주D-001]어느 …… 뿐 : 치악산이 바라보이는 여강(驪江)의 농장에 돌아가지 못한 채, 그저 개경에 머물면서 용수산만 대하고 있다는 말이다.
무제(無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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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 소나무 심을 땅뙈기도 하나 없는 / 門前無地種長松
버들 골목 이끼 낀 뜨락의 이 한 늙은이여 / 巷柳庭苔一老翁
흰 눈만 쌓여 까마귀 소리 더욱 처량한데 / 雪滿烏鳶啼更苦
하늘 높이 기러기는 아득히 날아가는도다 / 天高鴻鵠去無窮
빙벽의 생활은 이미 가난한 선비와 같다마는 / 已將氷蘗同貧士
문장이야 어찌 감히 대가의 솜씨가 있다 하랴 / 豈有文章似鉅公
세모에 혼자 읊다가 절로 나오는 웃음이여 / 歲晚獨吟還自笑
소년 시절엔 나도 기운이 무지개 같았느니 / 少年吾亦氣如虹
[주D-001]문 …… 늙은이여 : 소 식(蘇軾)이 어려서부터 소나무 심기를 좋아하여 이를 소재로 해서 많은 시를 남겼는데, 그중에 “사람들은 모두가 버드나무나 심어 놓고, 울창한 그늘 생기기를 앉아서 기다린다마는, 나는 유독 소나무만 심어 놓고서, 변치 않는 이 마음을 지키려 하였다오.[人皆種楡柳 坐待十畝陰 我獨種松柏 守此一片心]”라는 구절이 나오고, 또 “나는 예전에 소년 시절부터, 동쪽 언덕 가득히 소나무를 심었지요.[我昔少年日種松滿東岡]”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17 滕縣時同年西園, 卷20 戲作種松》 참고로 《목은시고》 제3권 〈삼각산을 지나며[過三角山]〉에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동파의 시를 읽었다.[長松影裏讀東坡]”는 표현이 나온다.
[주D-002]흰 …… 처량한데 : 먹을 것을 욕심내는 까마귀로서는 눈만 가득 쌓였으니 더욱 처량해질 수밖에 없다는 말로, 당시 목은 자신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비유한 표현이 아닌가 한다.
[주D-003]빙벽(氷蘗)의 …… 하랴 : 좋 은 시는 빈궁한 생활 속에서 우러나온다고 말들 하는데, 자신은 생활만 그러할 뿐 정작 동파와 같은 대가의 솜씨는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보통 곤궁한 가운데에서도 굳게 절조를 지키며 청백하게 사는 것을 비유할 때 “맑은 얼음물을 마시고 쓰디쓴 소태나무를 씹는다.”는 뜻으로 빙벽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또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의 〈매성유시서(梅聖兪詩序)〉에 “시가 사람을 빈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빈궁해진 뒤에야 시가 멋들어지게 되는 것이다.[非詩能窮人殆窮者而後工也]”라는 말이 나온다.
유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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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몰아치며 번갯불 번쩍번쩍 / 急雨狂風狹迅霆
초겨울의 한기가 모정을 에워싸네 / 冬初寒氣擁茅亭
뜨락의 초목들은 누렇게 떨어지건마는 / 園中草木皆黃落
소나무는 여전히 혼자서 또 푸르구나 / 松樹依然又獨靑
견흥(遣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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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하여라 광활한 하늘과 땅 사이에 / 悠悠天地闊
음양의 기운 변화하여 절로 생성 소멸하네 / 氣化自推移
몸을 이루는 사대 모두 내가 아닌데 / 四大皆非我
삼생을 윤회하는 것은 과연 누구인고 / 三生果是誰
해님이 기울 쯤엔 시가 종이 가득 / 日斜詩滿紙
눈송이 떨어질 땐 술이 잔에 넘실 / 雪落酒盈巵
자연의 변화 속에 살다가 가면 그뿐 / 乘化聊歸盡
백세의 스승 될 것이 또 뭐가 있겠는가 / 何須百世師
[주D-001]사대(四大) : 불교 용어로, 이른바 우주를 구성하는 4대 요소, 즉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을 말하는데, 인간의 육신도 이 사대가 모여 조성된 일시적인 화합물로 여긴다.
송 동년(宋同年)의 죽음을 애도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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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것은 계사년에 급제할 때 / 登科癸巳始相逢
좌주 선생의 총애를 흠뻑 받았었지 / 座主先生愛所鍾
아름다운 풍채는 춘월류라 일컬어졌고 / 丰度共稱春月柳
곧은 마음가짐은 세한송을 자부했다오 / 貞心自負歲寒松
좋은 때 끝내 못 만난 것은 운명이라 할지 / 遭逢未竟天邪命
충직하기만 한 사람을 세상이 용납했겠는가 / 拙直無他世不容
다행히 응대를 잘 하는 아드님을 두었으니 / 幸有兒郞能應對
마사로 하여금 남긴 자취 잇도록 해야 하리 / 須敎馬史繼遺蹤
[주D-001]좌주(座主) 선생 : 목은이 계사년인 공민왕 2년(1353) 5월에 문과(文科) 을과(乙科)에서 장원(壯元)하였는데, 그때 이제현(李齊賢)이 지공거(知貢擧)였고 홍언박(洪彦博)이 동지공거(同知貢擧)였다.
[주D-002]춘월류(春月柳) : 진(晉)나라 왕공(王恭)의 풍채가 빼어났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봄철 달빛 속의 버들[春月柳]’과 같다고 찬탄한 고사가 있다. 《晉書 卷84 王恭列傳》
[주D-003]세한송(歲寒松) : 추운 겨울에도 변치 않는 소나무처럼 자신의 신념을 꿋꿋이 지켜 나가는 것을 뜻하는 말로, 《논어》 자한(子罕)에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송백이 제일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雕]”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04]마사(馬史)로 …… 하리 : 사마천(司馬遷)이 부친 사마담(司馬談)의 유지(遺旨)를 받들어 《사기(史記)》를 완성했던 것처럼, 부친이 다하지 못한 일을 계승 발전시켜야 하리라는 말이다.
혼자서 웃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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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들어 한가히 거하면서 왕래도 끊은 터에 / 病裏閑居斷往來
남에게 뭘 청하는 건 또한 어찌 된 일인고 / 從人求索亦何栽
손을 저어도 안 가다니 비린내 좇는 개미요 / 麾之不去腥招蟻
보면서 모른 체 하시다니 냉랭하기 매화로세 / 照以相忘冷似梅
일월처럼 밝고 밝은 제왕의 시대 개막되고 / 日月明明開寶曆
풍운이 곤곤히 금대를 휩싸고 있는 이때 / 風雲袞袞擁金臺
훌쩍 뛰어오를 기대 소옹은 이미 끊었건만 / 笑翁已絶飛騰望
전현도 시기를 혹 당하니 우습기만 하구나 / 可笑前賢或見猜
[주D-001]금대(金臺) : 황금대(黃金臺)가 있는 연경(燕京)을 가리킨다.
[주D-002]훌쩍 …… 하구나 : 목 은 자신은 높은 지위로 뛰어오를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데, 좋은 뜻에서 나온 어떤 하나의 일로 말미암아 남의 의심과 시기를 받게 된 것이 우습기만 하다는 말이다.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가 밥을 짓던 중에 티끌이 묻은 밥을 내버리기가 아까워서 주워 먹다가 동료들에게 의심을 받은 ‘습진(拾塵)’의 고사가 있다. 《呂氏春秋 卷17 審分覽 任數》 또 주(周)나라 윤길보(尹吉甫)의 효성스러운 아들 백기(伯奇)가 계모의 옷에 붙은 독벌[毒蜂]을 떼어 내려다가 무례하게 군다고 참소를 받은 ‘철봉(掇蜂)’의 고사가 있다. 《琴操 上 履霜操》
유감(有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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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또 예전처럼 쑤시면서 욱신욱신 / 肌骨酸辛又似前
잠 한숨 못 이룬 채 밤새도록 말똥말똥 / 終宵耿耿不成眠
높이 읊조린 풍월이 아마 일천 편은 될까 / 高吟風月千篇富
머리로 헤아린 강산이 일만 리에 뻗쳤어라 / 默數江山萬里聯
모르겠다만 돛 달고서 누가 바다 건넜더라 / 未識掛帆誰濟海
가련토다 우물 속에서 하늘 보는 이 몸이여 / 可憐坐井我觀天
진정 뇌락하다 할 만년의 궁벽한 나의 거처 / 幽居歲晚眞牢落
담박한 이 정회를 남에게 알려선 안 되렷다 / 淡泊情懷愼勿傳
[주D-001]모르겠다만 …… 몸이여 : 목 은이 젊은 시절에는 종각(宗慤)처럼 장풍 만리(長風萬里)의 원대한 뜻을 품고 중국에 건너가서 실력을 인정받아 당대의 석학들로부터 찬탄을 받기까지 하였는데, 귀국하고 나서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조그마한 세계에 안주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 가련하기도 하다는 말이다. 목은이 처음 원나라에 갔을 때 규재(圭齋) 구양현(歐陽玄)이 《장자(莊子)》 추수(秋水)에 나오는 하백(河伯)과 북해약(北海若)의 일화를 꺼내어 목은에게 희롱하는 말로 “술잔을 들고 바다에 들어왔으니 바다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구려.[持杯入海知多海]”라고 하자, 목은이 한유(韓愈)의 〈원도(原道)〉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며 “우물 속에 앉아 하늘을 보면서 하늘이 작다고 말하는 격입니다.[坐井觀天曰小天]”라고 응수하니, 구양현이 “우리 도의 의발이 해외에서 전해지겠구나.[衣鉢當從海外傳]”라고 극찬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참고로 《목은시고》 제13권 〈일을 기록하다.〉에 “의발이 해외에서 전해질 줄 누가 알았으랴, 규재의 그 말 한마디 아직도 귀에 쟁쟁하네. 요즘 들어 물가가 온통 치솟았건마는, 내 문장만은 제대로 값을 받지 못하누나.[衣鉢誰知海外傳圭齋一語尙琅然 邇來物價皆翔貴 獨我文章不直錢]”라고 탄식한 시구가 나온다.
둔촌(遁村)이 나를 찾아와서, 장차 도은(陶隱)과 함께 영은사(靈隱寺)에서 연말을 보내려 한다고 하였는데, 그 절은 중암(中菴)이 머물고 있는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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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암으로 말하면 일본 출신 스님으로 / 中菴出日本
티끌 한 점 없이 도의 기운이 충만한 분 / 道氣絶纖塵
외로운 밤 위로해 주려는 우리 두 분 이씨 / 二李慰獨夜
삼한 땅에서 몇 번이나 봄을 맞곤 하였던가 / 三韓知幾春
험한 돌길 굽이굽이 얼음 절벽 감아 돌고 / 氷崖紆犖确
첩첩산중에 구름 낀 봉우리 우뚝 솟구친 곳 / 雲嶺聳嶙峋
방 안에 누워 고상한 모임 상상해 보니 / 偃臥想高會
새로 지은 멋진 시구 내 귀에 들리는 듯 / 如聞佳句新
[주C-001]중암(中菴) : 일본의 승려로 호가 식목(息牧)인 윤중암(允中菴)을 말한다. 《목은시고》 제1권에 목은이 그를 위해 지어 준 〈설매헌 소부(雪梅軒小賦)〉가 있고, 《목은문고》 제12권에 〈식목(息牧) 장로(長老)에게 지어 준 찬〉이 있다.
[주D-001]두 분 이씨 : 이집(李集)과 이숭인(李崇仁)으로 이집의 호는 둔촌(遁村)이고 이숭인의 호는 도은(陶隱)이다.
서경(西京)의 박 영공(朴令公)이 연말에 선물을 보내 준 것을 감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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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을 뒤덮는 우리 박 영공의 위세 / 威稜蓋平壤
시절도 이제 새해의 봄과 가까운 때 / 歲律近新春
연말이면 선물한다는 글이 있긴 하지만 / 相餽文雖具
이를 통해 뜻이 매우 진실됨을 알겠도다 / 從知意甚眞
대동강 물 얼마나 곤곤히 흐르고 있을까 / 江流何袞袞
언덕과 진펄도 다시 고르게 개간되었으리 / 原隰更勻勻
멀리서도 상상되네 숭산 아래의 땅 / 遙想嵩山下
청명한 하늘에 티끌도 일지 않으리라 / 天晴不起塵
[주D-001]연말이면 …… 하지만 : 소식(蘇軾)의 〈세만사귀기자유(歲晚思歸寄子由)〉 시 서문에 “연말에 서로 선물을 주며 안부를 묻는 것을 궤세라고 한다.[歲晚相與饋問 爲饋歲]”는 말이 나온다.
[주D-002]언덕과 …… 개간되었으리 : 《시경》 소아(小雅) 신남산(信南山)에 “고르게 개간된 언덕과 진펄을, 증손자가 경작하고 있다.[畇畇原隰 曾孫田之]”는 말이 나오는데, 목은이 균(畇)을 균(勻)으로 바꾸어 썼다.
[주D-003]숭산(嵩山) : 평 양의 영명령(永明嶺) 즉 금수산(錦繡山)을 가리킨다. 기자(箕子)가 평양에서 교화를 펼쳐 생활이 안정되자, 백성들이 도읍의 강을 황하(黃河)에 견주고 산을 숭산(嵩山)에 견주어 찬미하는 노래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원주(原註)에 “강과 산은 대동강과 영명령이다.”라고 하였다. 《東史綱目 第1上》
은계(隱溪)의 시권에 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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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한 분 계시나니 그 마음 허공 같아 / 有上人兮心如虛空
사대해의 물이 모두 그 속에서 출렁출렁 / 四大海水居其中
눈구멍 작은 중생들이 엿볼 수 있으랴만 / 眼孔小者莫能覰
스님께선 어린애처럼 불쌍하게 여기시어 / 上人憐之嬰孩同
허리 낮춰 다가가서 방편을 보여 주시나니 / 俯而就之示方便
은계란 호도 뜨거운 번뇌 씻어 주기 위함이라 / 號曰隱溪所以滌彼爐火烘
오장을 두루 식혀 주는 청량한 그 물맛이여 / 一味淸涼遍五內
시혜를 잊는 공덕이야 구구하게 어디에 쓰랴 / 區區不用忘施功
감미롭기는 조계와 같고 차갑기는 설두와 같은 / 甘如曹溪冷似雪竇
그 풍도 형용하려 하면 심력이 모두 바닥날 판 / 有欲形容心力窮
푸른 산과 흰 구름이 꼭꼭 숨겨 에워싼 속에 / 靑山白雲封裹密
밝은 달 맑은 바람과 함께 유영하시는 분이랄까 / 明月淸風涵泳工
목옹의 모필도 이젠 늙어서 힘이 다 빠졌는데 / 牧翁毛穎今老矣
붓 잡고 쓰려니 작은 풀로 큰 종을 치려는 격 / 區畫寸筳撞巨鍾
언젠가 서로들 만나 경지에 함께 들게 되면 / 他年相尋入境界
채찍 하나 손에 쥐고 홍몽을 뛰어넘읍시다 / 一策握手超鴻濛
[주C-001]은계(隱溪) : 성이 임씨(林氏)인 승려의 시호(詩號)이다. 《목은문고》 제8권에 〈은계(隱溪) 임 상인(林上人)을 보내면서 지어 준 글〉이 실려 있다.
[주D-001]사대해(四大海) : 불교 용어로,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인류가 거주하는 사대부주(四大部洲)가 있는데,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함해(鹹海)라는 이름의 바다를 말한다. 《俱舍論卷11》
[주D-002]시혜를 잊는 공덕 : 은혜를 베풀어 주고도 베풀었다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뒤에 무량한 보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불경(佛經)에서 강조하여 말하는 공덕(功德)을 말한다.
[주D-003]감미롭기는 …… 같은 : 조 계산(曹溪山)과 설두산(雪竇山)의 물맛을 거론하여 은계의 가풍(家風)을 비유한 말이다. 중국 선종(禪宗)의 육조(六祖) 혜능(慧能)이 조계산에서 크게 불법(佛法)을 일으켰고, 《벽암록(碧巖錄)》 100칙(則)의 공안(公案)을 시로 읊은 송(宋)나라의 선승 중현(重顯)이 설두산에서 운문(雲門)의 종풍(宗風)을 드날렸다.
[주D-004]작은 …… 격 : 자 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않고 무모하게 덤빈다는 뜻의 겸사이다. 한(漢)나라 동방삭(東方朔)의 〈답객난(答客難)〉에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엿보고, 바가지로 바닷물을 재며, 풀줄기로 종을 치는 격이다.[以筦窺天 以蠡測海 以筳撞鍾]”라는 말이 나온다. 《文選 卷45》
[주D-005]홍몽(鴻濛) : 우주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있어 온 천지의 원기, 혹은 그와 같은 혼돈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강릉(江陵)의 염사(廉使)가 김을 보내 준 것을 감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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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힌 밥은 사발에 넘쳐 새하얗고 / 軟炊盈椀白
새로 딴 김은 소반에 가득 푸르도다 / 新擷滿盤靑
김에 싸서 밥을 먹는 대낮의 창가 / 和合午牕下
치아에 은은히 묻어나는 그 향내여 / 齒牙微有馨
장난삼아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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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이 반을 넘겼는데 시를 읊지 못하다니 / 春風過半不吟詩
엉성한 생애 늙을수록 멍청이가 돼 가나 봐 / 草草生涯老更癡
허튼소리 귀에 가득 세도의 변화를 탄식하며 / 滿耳訛言傷世變
왕도의 비평도 감수한 채 상황에 맞춰 행동하네 / 甘心枉道逐機宜
술잔 앞의 광태를 보면 또 다른 내가 있는 듯도 / 樽前狂態疑非我
거울에 비친 쇠한 얼굴 묻노니 그대가 누구인고 / 鏡裏衰翁問是誰
그래도 공자님 배운 옛 버릇 남아 있는 덕에 / 賴有孔門餘習在
선사를 사모하며 때때로 사물을 읊조린다오 / 時時四勿慕先師
[주D-001]왕도(枉道)의 비평 : 도 를 굽혀서 행동하는 것, 즉 원칙에 입각해서 신념대로 행하지 못한다고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을 말한다. 《논어》 미자(微子)에 “도에 입각해서 사람을 섬긴다면 어디 간들 세 번 쫓겨나지 않겠는가. 만약 도를 굽혀서 사람을 섬긴다면 굳이 부모의 나라를 떠날 이유가 있겠는가.[直道而事人焉往而不三黜 枉道而事人 何必去父母之邦]”라는 유하혜(柳下惠)의 말에서 연유한 것이다.
[주D-002]사물(四勿) : 공 자가 안회(顔回)에게 극기복례(克己復禮)가 곧 인(仁)이라고 가르쳐 주면서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物言 非禮勿動]”고 구체적으로 지시한 말이 《논어》 안연(顔淵)에 나온다.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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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건듯 동풍이 사람을 넘어뜨릴 듯도 / 昨日東風吹倒人
아침 되니 티끌 없이 조용한 골목길이로세 / 朝來里巷靜無塵
알겠도다 수목들도 기쁨이 넘쳐흐르니 / 便知樹木欣欣甚
요옥부소의 기상이 얼마나 산뜻할지를 / 遶屋扶蘇氣像新
[주D-001]요옥부소(遶屋扶蘇) : 울 창한 나무로 둘러싸인 시골집의 풍경을 말한다. 도잠(陶潛)의 시에 “초여름에 풀과 나무 더부룩 자라나서, 오두막 빙 둘러 잎과 가지들 무성해라. 뭇 새들도 의지할 곳 있어서 즐거운 듯, 나 역시 내 초막이 그지없이 좋고말고.[孟夏草木長 遶屋樹扶疏 衆鳥欣有託 吾亦愛吾廬]”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부소(扶蘇)는 부소(扶疏)와 같은 뜻이다. 《陶淵明集卷4 讀山海經》
김 광수(金光秀) 원사(院使)가 곡성(曲城)과 칠원(漆原) 두 분 시중(侍中)을 위시해서 정 월성(鄭月城), 권 길창(權吉昌), 한 정당(韓政堂), 영녕군(永寧君), 순흥군(順興君), 소(少) 한 정당(韓政堂) 및 나를 초청하여 성찬(盛饌)을 마련하고 풍악을 베풀었는데, 이때 강 평장(康平章)이 주인의 우측에 앉았다. 내관(內官) 김실(金實)은 주인의 양자(養子)인데, 다른 한 명의 내관과 함께 양전(兩殿)의 선온(宣醞)을 받들고 왔으므로 빈주(賓主)가 절하고 마시다가 날이 어두워져서야 자리를 파하였다. 그러고는 술이 깬 뒤에 앉아서 생각해 보니, 여러 원로들 모두가 원(元)나라 조정의 은명(恩命)을 받은 분들이었다. 원사(院使)는 지정(至正) 황제를 모시면서 자정원(資政院)의 장관을 역임하였고, 곡성(曲城)은 원나라 조정에서 누차 벼슬을 하고 정동성(征東省)의 낭중(郞中)에 임명되었으며, 칠원군(漆原君)도 낭중의 임명을 받았다. 월성(月城)은 원외랑(員外郞)을 지냈고, 길창(吉昌)은 왕부 단사관(王府斷事官)이 되었다. 영녕(永寧)은 연경(燕京)에 하정사(賀正使)로 가서 한림 승지(翰林承旨)에 제수되었고, 순흥(順興) 역시 입근(入覲)하여 우승지(右承旨)에 제수되었으며, 소 한 정당은 정동성의 유학 제거(儒學提擧)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요행히 대를 이어 원나라 과거에 급제하여 공봉 한림(供奉翰林)이 되었고, 뒤에 정동성의 낭중이 되었는데,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나 중국에 명(明)나라의 황제가 새로 출현하게 되었다. 아, 곡성은 칠원과 같은 해에 태어나 지금 연세가 일흔둘인데, 강건(强健)하고 정민(精敏)한 모습이 조금도 쇠하지 않았다. 월성은 두 분 시중보다 한 살 연하이고, 길창은 세 살 연하이며, 노(老) 한 정당은 다섯 살 연하이고, 영녕은 예순아홉이며, 다른 분들도 모두 육순에 가깝다. 내가 그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말석에 끼었으나 그래도 나이가 쉰다섯인데, 이런 성대한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이 어찌 그지없는 행운이 아니겠는가. 이에 시 한 수를 지어 읊으면서 이 영광을 스스로 자랑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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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달존은 덕망과 관작과 연치 / 天下達尊德爵齒
동한은 예로부터 이 풍속 지켜 왔나니 / 東韓古來風俗美
상산사호가 한나라 사직을 중하게 하였듯이 / 商山四皓重漢鼎
제공이 우리 왕의 아드님 함께 추대했더니라 / 諸公共戴吾王子
소강의 이 시대 맞아 잔치 열고 노니는 자리 / 及此小康式宴遊
담소하고 술잔 건네며 바깥일 모두 잊었나니 / 談笑獻酬忘外事
대원 제국의 전성기에 이 땅에 태어나시어 / 生於大元全盛日
명나라 황제의 출현을 목도하신 분들이라 / 目睹中原聖人出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상유의 저녁 풍경 / 桑楡晚景雜悲懽
연회 열릴 적마다 노래도 얼마나 점잖은지 / 每肆賓筵歌秩秩
태평 시대의 광경으로 이보다 더할 수 있을까 / 形容太平最逼眞
새처럼 빨리 날아가는 광음이 아쉬울 뿐이로다 / 只恨光陰飛鳥疾
옛날 술만 잘 먹어도 이름을 후세에 남겼는데 / 古人徒飮尙留名
더구나 이 술자리는 송악과 높이를 견줌에랴 / 此會直與松嶽同崢嶸
점잖으신 군자님들 신명이 부축해 주실 테니 / 愷悌君子神明所扶持
구전단 들지 않으셔도 응당 오래 사시리라 / 不餌九轉應長生
말석에 낀 목은 소년 이런 행운이 있으랴만 / 牧童何幸忝座下
내놓는 말들이 때때로 촌스러워서 부끄러워 / 吐詞往往慙鄙野
오직 소원은 삼한 벽상공신 원로들의 뒤를 따라 / 願從三韓壁上之丹靑
천추 만세토록 동방에 비춰지기만을 / 萬歲千秋照東夏
[주D-001]달존(達尊) : 누구나 존경하는 것을 말하는데, 《맹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이 세상에 누구나 존경하는 것이 세 가지 있으니, 관작과 연치와 덕이 그것이다.[天下有達尊三爵一齒一德一]”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상산사호(商山四皓)가 …… 추대했더니라 : 충 혜왕(忠惠王)의 서자(庶子)인 충정왕(忠定王)을 폐위시키고 충숙왕(忠肅王)의 아들이요 충혜왕의 동생인 공민왕(恭愍王)을 즉위시키는 데에 이 원로들이 힘을 합쳤다는 말이다. 한 고조(漢高祖)가 당시 태자(太子)로 있던 혜제(惠帝) 대신에 척 부인(戚夫人)의 소생인 조왕(趙王)을 후계자로 삼으려 하자, 당시에 80여 세의 나이로 상산(商山) 속에 숨어 살던 네 명의 은자 즉 사호(四皓)가 장량(張良)의 권유를 받고 조정에 나와서 태자를 보필하며 고조의 계획을 무산시킨 결과 혜제가 등극했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주D-003]소강(小康) : 유가(儒家)에서 이상(理想)으로 삼는 대동사회(大同社會)의 전 단계로, 소란하던 세상이 어느 정도 안정된 시기를 말하는데, 《예기》 예운(禮運)에 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주D-004]상유(桑楡) : 노년을 뜻한다. 서쪽으로 지는 햇빛이 뽕나무와 느릅나무[桑楡] 가지 끝에 비친다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주D-005]옛날 …… 남겼는데 : 이백(李白)의 시에 “예로부터 잘난 이들 죽으면 자취도 없지만, 술 잘 마신 사람들만은 그 이름을 남겼네라.[古來賢達皆寂寞 惟有飮者留其名]”라는 구절이 나온다. 《李太白集 卷2 將進酒》
[주D-006]구전단(九轉丹) : 아홉 번 구워서 만든다는 도가(道家)의 선약(仙藥)으로, 이것을 복용하면 장생불사(長生不死)한다고 한다.
윤이월 초사흗날에 대가(大駕)가 서남쪽 교외에 거둥하여 사냥을 관람하고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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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낮은 야외의 불탔던 땅도 푸릇푸릇 / 天低野外燒痕靑
안개 낀 물 구름 산 모두 멀리 아득아득 / 煙水雲山共渺冥
탕 임금의 한쪽 그물 인덕이 드러났는지라 / 一面湯羅仁已著
늙은 신하 우러러보며 홀로 뜰을 거니노라 / 老臣瞻望獨行庭
[주D-001]하늘 …… 푸릇푸릇 : 예 전에 불을 놓아 짐승을 쫓으며 사냥했던 화렵(火獵)의 터에도 풀이 다시 푸르게 돋아나기 시작할 것이라는 말이다. 《목은시고》 제28권 〈병중(病中)이라서 대가(大駕)를 호종(扈從)하며 사냥 구경을 할 수 없기에……〉의 시에 “남쪽 교외의 화렵은 이미 관례로 굳어진 일[南郊火獵案成規]”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2]탕 임금의 …… 드러났는지라 : 은 탕왕(殷湯王)이 사면(四面)에 그물을 치고서 사냥하는 사람을 보고는, 삼면(三面)의 그물을 치운 뒤에 “왼쪽으로 가려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려면 오른쪽으로 갈 것이요, 내 말을 듣지 않는 놈들만 그물 속으로 들어오라.”고 하였는데, 제후들이 이 말을 듣고는 “탕 임금의 덕이 지극해서 금수에까지 미쳤다.”고 하면서 모두 귀의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史記 卷3 殷本紀》
김공립(金恭立)이 달력을 보내 주고 또 청어(靑魚)를 선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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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살아갈 때 없어선 안 될 달력이요 / 黃曆資日用
맛없는 아침밥 입맛을 돋궈 주는 청어로다 / 靑魚助晨飡
달력을 보면 길일 흉일 훤히 눈에 들어오고 / 吉凶判在目
청어를 먹으면 내장에 원기가 충만해지리라 / 氣味充於肝
주옥이 어찌 아름다운 물건이 아니랴만 / 珠玉豈不美
자칫하면 탐욕을 늘려 자라나게 할 따름 / 適足滋貪奸
의로움을 중시하고 보물을 중시하지 않은 / 重義不重物
옛사람의 그 이름 없어질 리가 있겠는가 / 古人名不刊
내 이를 글로 써서 자리 옆에 놔둔 뒤에 / 書之置座右
길이 우리 자손들 볼 수 있게 하리로다 / 永爲子孫觀
[주D-001]의로움을 …… 있겠는가 : 송 (宋)나라 사람이 옥(玉)을 자한(子罕)에게 바치자, 자한이 받지 않으면서 “나는 탐내지 않는 것을 보배로 삼고 그대는 옥을 보배로 삼는다. 따라서 그대가 이 옥을 나에게 주면 두 사람 모두 보배를 잃는 것이 되니, 차라리 각자 자기 보배를 지니는 것이 좋겠다.[我以不貪爲寶 爾以玉爲寶 若以與我 皆喪寶也 不若人有其寶]”라고 말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春秋左傳 襄公15年》
염동정(廉東亭)이 돌아와서 나를 찾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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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일천 상자 전독하러 떠났다가 / 轉藏千函去
산길 따라 여덟 잎 지니고 돌아왔네 / 循山八葉回
도의 마음 저절로 얻어 얼마나 좋겠소만 / 道情甘自得
간절한 충성심 또한 뒷사람을 일깨우리 / 忠懇勸將來
뱃속엔 아직 산속의 안개와 노을 기운 / 腹有煙霞氣
몸은 우뚝 국가의 대들보와 기둥 재목 / 身爲梁棟材
서쪽 교외 봄풀이 초록빛을 띠어 가니 / 西郊春草綠
다시 함께 어울려서 술잔을 기울여야겠네 / 更擬共傾杯
[주D-001]대장경(大藏經) …… 돌아왔네 : 국 가의 안녕(安寧)을 기원하기 위하여 왕명을 받들고 불경(佛經)을 전독(轉讀)하러 갔다가, 여덟 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연화(蓮花)의 삼매를 산사(山寺)에서 얻어 가지고 돌아왔다는 말이다. 전독은 방대한 분량의 불경을 모두 읽을 틈이 없을 때 상(上)ㆍ중(中)ㆍ하(下)의 대목을 뽑아 읽음으로써 독경을 마친 것을 상징하는 불교의식을 말한다. 일천 상자는 대장경을 뜻하는 시어인데, 참고로 《목은시고》 제3권 〈원주 의춘군 반룡사의 시권에 제하다.[題袁州宜春郡蟠龍寺詩卷]〉에 “패엽으로 된 대장경 일천 상자를 담아 백척의 높이로 탑을 쌓았다.[貝葉千函塔百尺]”는 구절이 나온다. 또 범부가 비록 확연히 깨닫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각자 팔엽(八葉)의 연화(蓮花)와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는 만큼 이 마음을 관조하여 활짝 피우는 것과 같은 삼매를 불교에서 ‘팔엽연화관(八葉蓮花觀)’이라고 한다. 《宗鏡錄 卷26》
유항(柳巷)과 함께 동정(東亭)을 위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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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시간 길어지는 기쁜 이 봄날에 / 春日欣初永
우리들 잠시 헤어져서 아쉬웠나니 / 吾曹惜暫違
서로 만나자마자 술잔을 기울이며 / 相逢便傾倒
일찍 돌아온 것을 함께 위로했다네 / 共慰早來歸
자욱한 가랑비는 뜰에 가득 어둠침침 / 小雨盈庭暗
봄바람은 옷소매를 흔들며 살랑살랑 / 和風拂袖微
촛불 쥐고 부지런히 노래를 불러야지 / 歌呼勤秉燭
이 세상일도 석양 따라 지려 하거니 / 世事逐斜暉
[주D-001]촛불 …… 불러야지 : 덧 없는 인생을 아쉬워하면서 밤 늦도록 어울려 노니는 것을 말한다. 고시(古詩)에 “사는 나이 백년도 채우지 못하는데, 언제나 천년의 시름 품고 있도다. 낮은 짧고 밤이 긴 것이 괴로우니, 촛불을 손에 쥐고 노닐지 않을쏜가.[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 晝短苦夜長 何不秉燭游]”라는 구절이 나온다. 《文選 卷29 古詩19首》
절간(絶磵)이 남쪽으로 환암(幻菴)의 법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집에 들러서 작별을 고하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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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풍헌 속의 한가한 도인 한 분 / 松風軒裏道人閑
아스라이 천마산 속을 싸돌아다니더니 / 脚踏天磨縹渺間
중생 교화한답시고 이제는 훌쩍 남방으로 / 忽向南方行化去
누가 말했던고 새들도 날다 지치면 돌아온다고 / 誰言飛鳥倦知還
환암은 시와 술로 젊어서 어울렸던 벗님 / 幻菴詩酒少同遊
중년엔 참선이요 늙어선 모든 일 마쳤는데 / 中歲參禪老歇休
세상을 불쌍히 여겨 불법을 크게 펼치시니 / 俯爲世人弘大法
진리 구하는 중생을 보산도 응당 보리로다 / 寶山應見衆來求
나는 너무 쇠했는데 게다가 병마까지 / 吾衰也甚病相仍
재미 하나도 없는 생애 흡사 선승일세 / 冷淡生涯似衲僧
여강 거슬러 빼어난 경치 찾아가고파 / 欲遡驪江尋勝境
선창에 층층이 흰 구름 걸려 있는 곳 / 禪牕掛在白雲層
[주D-001]송풍헌(松風軒) : 조계(曹溪)의 승려 윤절간(倫絶磵)의 당호(堂號)이다. 《목은문고》 제5권에 그를 위해서 목은이 지어 준 〈송풍헌기(松風軒記)〉가 있다.
[주D-002]누가 …… 돌아온다고 :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구름은 무심하게 봉우리에서 나오고, 새들도 날다 지치면 돌아올 줄을 안다.[雲無心以出峀鳥倦飛而知還]”는 말이 나온다.
[주D-003]진리 …… 보리로다 : 무 의미하게 살다가 한평생을 허무하게 보내는 일반 중생들과는 달리 환암(幻菴)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많은 구도자들이 모여들 것이라는 말이다. 불교에서 수도하도록 각성을 촉구하며 흔히 쓰는 말 중에 “보배가 가득한 산에 들어왔으면서도 빈손으로 돌아가기만 한다.[入寶山 空手歸]”는 표현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밀직(密直) 유번(柳藩)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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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술문 아래 두 산을 옆에 끼고서 / 鴟述門底夾兩山
한 가닥 푸른 시내 졸졸 흐르는 곳 / 一條溪水碧潺潺
고요함 좋아하는 주인 그칠 줄 알다마다 / 主人愛靜仍知止
노물도 그윽한 경치 찾아 함께 심심풀이했네 / 老物幽探共破閑
주진이 여기 말고 다른 데 또 있으리요 / 已信朱陳非是外
유완이 그 속에서 노니는 듯도 하였다오 / 更疑劉阮在其間
붉은 노을 피어오르는 도화의 계절 가까우니 / 桃花又近蒸霞日
혼자 왔다 돌아간 풍류 나도 흉내를 내볼거나 / 準擬風流獨往還
[주D-001]치술문(鴟述門) : 열 녀문(烈女門)을 말한다. 신라 눌지왕(訥智王) 때 일본에 사신으로 간 박제상(朴提上)이 돌아오지 않자, 그의 부인이 치술령(鴟述嶺)에 올라가서 바다를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죽어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佔畢齋集 卷3 東都樂府》
[주D-002]고요함 …… 알다마다 : 《대학장구(大學章句)》에 “그칠 줄 알게 된 뒤에야 일정함이 있게 되고, 일정함이 있게 된 뒤에야 고요해질 수가 있고, 고요해진 뒤에야 편안해질 수가 있다.[知止而後有定定而後能靜 靜而後能安]”는 말이 나온다.
[주D-003]주진(朱陳) : 백거이(白居易)의 〈주진촌(朱陳村)〉이라는 시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동네에서 화목하게 지내는 두 성씨의 집안을 말한다. 《白樂天詩集卷10》
[주D-004]유완(劉阮) : 동한(東漢) 때 천태산(天台山)의 선경에 들어가서 약초를 캐다가 선녀를 만나 반년을 살았다는 유신(劉晨)과 완조(阮肇)를 말한다.
[주D-005]붉은 …… 내볼거나 : 무 릉도원(武陵桃源)을 혼자서 배 타고 찾아갔다가 돌아왔다는 어부처럼 복사꽃이 만발한 경치를 만끽하고 싶다는 말이다. 도잠(陶潛)의 〈도화원기(桃花源記)〉를 소재로 한 그림을 보고 한유(韓愈)가 지은 시에 “복숭아 곳곳에 심었나니 보이는 것은 활짝 핀 꽃, 원근의 산천에 붉은 노을 피어올랐네.[種桃處處惟開花 川原遠近蒸紅霞]”라는 표현이 나온다. 《韓昌黎集 卷3 桃源圖》
어제 쌍청(雙淸) 안공(安公)이 명함을 주고 갔기에 한 수를 지어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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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의 안 나가고 공은 오는 게 드물더니 / 我出旣罕公來稀
오늘은 천만뜻밖에도 나는 나가고 공은 오고 / 今日萬幸還乖違
원래 조물은 사람을 놀려 먹는 데 선수랄까 / 由來造物戲人耳
엉큼한 그 심보를 어느 누가 또 눈치 챌까 / 冥冥誰復探其機
바쁘고 한가함 다를 때야 취향이 다른 게 당연해도 / 閑忙異途固異趣
똑같이 한산한 지금이야 서로들 기대야 마땅할 터 / 俱在散地宜相依
물 남쪽이고 물 북쪽이고 모두가 푸르른 산 / 水南水北皆靑山
연무가 자욱이 일어나는 아침저녁 산기운 / 山氣朝夕生煙霏
봄기운 천지 가득 흐드러지게 피어올라 / 春氣氤氳成一片
새들도 벗을 찾아 서로 뒤쫓아 나는 시절 / 禽鳥求友相追飛
제때를 만나 즐겁게 재잘대는 새소리여 / 嚶嚶此鳴惟其時
사람이 듣는 그 느낌이 어찌 얕다 하겠는가 / 感人也深夫豈微
옛사람들도 부지런히 병촉유를 즐겼나니 / 古人勤樂夜秉燭
서산에 해 지는 이 만년을 헛되이 보낼 수야 / 詎肯虛度西飛暉
나이는 이 몸이 비록 삼사 년이 적다 해도 / 我雖少少三四莫
얼굴은 벌써 누렇게 말라 살찔 겨를 없는데 / 面已黃瘦無由肥
공은 육순이 될 나이에 뺨에는 광채가 나고 / 公將耳順光浮頰
자손들이 집안에 가득 위의도 대단하오그려 / 子孫滿堂多威儀
조정에 크게 쓰일 때에 갑자기 물러나시다니 / 方膺大用遽求退
쌍청정 위엔 비평과 기롱이 다시는 없겠지요 / 雙淸亭上無評譏
얼음과 눈처럼 마음도 맑고 자취도 맑아 / 心淸迹淸氷雪如
바람과 달만 출입하며 항상 에워싸는 곳 / 只許風月常繞圍
모쪼록 술자리 베풀어 우리도 좀 불러 주오 / 公須置酒喚我輩
주옥과 같은 시에 유항이 붓을 또 잡을 테니 / 柳巷落筆如珠璣
[주C-001]쌍청(雙淸) : 쌍청당(雙淸堂)을 줄인 말로, 안종원(安宗源)의 호이다.
[주D-001]제때를 …… 하겠는가 : 이 좋은 봄철을 맞아 사람도 새들처럼 벗을 찾아 한껏 즐겨야 하리라는 말이다. 《시경》 소아(小雅) 벌목(伐木)은 친척과 벗들을 모아 놓고 연회할 적에 부르는 노래인데, 그중에 “나무 찍는 소리 쩡쩡 울리고, 새들은 재잘재잘 즐겁게 노래하네. 깊은 골짜기에서 훌쩍 날아올라, 높은 나무 위로 자리를 옮기누나. 재잘재잘 즐겁게 노래하는 새들이여, 서로들 벗을 구하는 소리로다. 저 새들을 보아도 벗을 부르는데, 하물며 사람인 우리들이 벗을 찾지 않을쏜가.[伐木丁丁 鳥鳴嚶嚶 出自幽谷 遷于喬木 嚶其鳴矣 求其友聲 相彼鳥矣 猶求友聲 矧伊人矣 不求友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병촉유(秉燭游) : 밤 에 촛불을 밝히고 노닌다는 뜻으로, 덧없는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즐겨 보자는 의미로 흔히 쓰인다. 고시(古詩)에 “사는 나이 백년도 채우지 못하는데, 항상 천년의 시름을 품고 있도다. 낮은 짧고 밤이 긴 것이 괴로우니, 어찌 촛불 손에 잡고 노닐지 않을쏜가.[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 晝短苦夜長何不秉燭游]”라는 구절이 나온다. 《文選 卷29 古詩十九首》
[주D-003]나이는 …… 해도 : 안종원의 출생 연도는 1325년이고, 목은은 1328년이다.
[주D-004]자손들이 …… 대단하오그려 : 안종원의 세 아들인 경온(景溫)ㆍ경량(景良)ㆍ경공(景恭)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5]얼음과 …… 맑아 : 마 음과 자취가 맑다는 뜻의 쌍청(雙淸)의 의미를 풀이한 것인데, 이는 두보(杜甫)의 “흰머리 따라오는 것은 명아주 지팡이뿐, 마음과 자취 둘 다 맑은 것이 기뻐라.[杖藜從白首 心迹喜雙淸]”라는 시에서 유래한 것이다. 《杜少陵詩集 卷10 屛迹》
[주D-006]바람과 …… 곳 : 남 조(南朝) 시대 양(梁)나라의 사혜(謝譓)가 잡된 손님은 일절 집에 들이지 않은 채, 홀로 술을 마시고 취하면서 “내 방에는 오직 맑은 바람만 들어오고, 술 마실 땐 오직 밝은 달만 상대한다.[入吾室者但有淸風 對我飮者 唯當明月]”고 말했던 고사가 있다. 《南史卷20 謝譓列傳》
[주D-007]유항(柳巷) : 목은의 절친한 벗인 한수(韓脩)의 호인데, 명필로 유명하였다.
새벽에 읊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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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손자는 뭔가 웅얼거리며 누워 있고 / 孟孫語且臥
둘째 손자는 한창 곤히 잠들어 쿨쿨 / 仲孫方爛眠
늙은 할아비 억지로 일찍 일어나니 / 老翁強起早
해가 불쑥 동남쪽 하늘에서 떠오르네 / 日上東南天
마읍에는 봄풀이 푸릇푸릇 돋아나고 / 馬邑春草生
여강에는 구름 낀 나무들 이어졌으리 / 驪江雲樹連
언젠가는 내 마땅히 동관의 손을 잡고 / 終當携童冠
돌아가서 남은 생애 즐겨야 하리로다 / 歸去樂餘年
봄바람이 나의 숲에 불어오면 / 春風吹我林
나의 가지에선 꽃봉오리 터지고 / 蓓蕾生我枝
봄바람이 나의 못에 불어오면 / 春風吹我池
나의 물가엔 잔물결이 넘실대고 / 淪漪盈我湄
봄바람이 내 머리에 불어오면 / 春風吹我鬢
날마다 불어나는 하얀 머리카락 / 日日添素絲
흰 머리칼 누가 다시 검어졌으리 / 素絲誰復緇
후손 위할 계책이나 생각해야지 / 祗念孫謀貽
후손을 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貽謀將如何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 / 源潔流斯淸
나무가 곧은데 굽은 그림자 있으며 / 直木無曲影
정대한 음악에 음탕한 소리 있던가 / 正樂無淫聲
나의 몸에 선을 쌓아 놓지 못했는데 / 我躬不積善
무엇을 가지고 후생에게 보여 줄까 / 何以示後生
아득히 넓고 먼 하늘과 땅 사이에서 / 茫茫天地內
나의 마음 알아줄 이 누가 있을거나 / 誰與吾同盟
[주D-001]마읍(馬邑) : 한산(韓山)의 옛 이름이다.
[주D-002]동관(童冠) : 공 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늦봄에 봄 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어른[冠者] 오륙 명과 사내아이[童子] 육칠 명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쐰 뒤에 노래를 하면서 돌아오겠다.”고 자신의 포부를 말하여 공자로부터 허여를 받았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論語先進》
즉사(卽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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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 병들어 한가한 생활 매번 뻐기면서 / 老病閑居每自多
풍파 곧잘 일어나는 벼슬길을 돌아보네 / 回頭宦海足風波
청산 어느 곳으로 내가 돌아가야 할까 / 靑山何處可歸去
밝은 달빛 아래 때때로 노래하면 그뿐 / 明月有時□嘯歌
마음이 편하면 명경지수라 뽐내다가도 / 謾擬安心如止水
혀만 놀리면 폭포수처럼 쏟아 내니 원 / 常嫌掉舌似懸河
금서뿐인 방안에 향 연기 꼬불꼬불 / 琴書一室香生篆
다시 모시 펴 놓고 벌가를 읊조리네 / 更把毛詩咏伐柯
[주D-001]혀만 …… 원 : 진(晉)나라 왕연(王衍)이 곽상(郭象)의 구변(口辯)에 대해 “폭포수처럼 쏟아져서 마를 줄을 모른다.[懸河瀉水 注而不渴]”고 형용한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賞譽》
[주D-002]벌가(伐柯) : 《시경》 빈풍(豳風)의 편명인데, 모서(毛序)에 “주(周)나라 조정의 신하들이 주공(周公)의 위대한 덕을 알지 못하는 것을 풍자한 시이다.”라고 하였다.
가랑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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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내리니 뜨락 안이 어둑어둑 / 微雨庭中暗
지붕 위에는 가벼운 연기 하늘하늘 / 輕煙屋上浮
시절도 한식이 가까워 오는 이때 / 年光近寒食
봄비가 마치 우유처럼 기름지도다 / 春澤似酥油
경치를 보니 새삼 더하는 한가한 기분 / 玩物閑尤甚
시 읊는 일 늙었다 해서 쉴 수야 없지 / 吟詩老不休
금관성에 붉게 물들어 젖어 있던 곳 / 錦官紅濕處
그 풍류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을 듯도 / 髣髴想風流
[주D-001]금관성(錦官城)에 …… 곳 : 붉 게 핀 꽃이 가랑비에 살포시 젖어 평소보다 무겁게 보이면서 축 늘어져 있는 시적인 광경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시에 “아침에 일어나 붉게 젖어 있는 곳을 보라, 금관성에 꽃이 무겁게 매달려 있으리니.[曉看紅濕處 花重錦官城]”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목은이 이 구절을 떠올린 것이다. 《杜少陵詩集 卷10 春夜喜雨》
동갑(同甲)인 백운(白雲) 스님의 서한을 받았는데, 이것을 가지고 온 자의 말에 의하면 지금 나주(羅州) 흥룡사(興龍寺)에 있다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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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의 사찰을 떠나자마자 / 纔離迦智寺
혜종의 사당을 또 받들게 되었구려 / 又奉惠宗祠
잘되고 못되는 건 모두 운명 탓 / 得失皆由命
인연도 원래 시기가 있지 않으리까 / 因緣自有時
원숭이 매달린 가지 구름에 걸린 산이거나 / 猿枝雲裏掛
고래등 물결 해 쪽에서 불어 닥치는 바다거나 / 鯨浪日邊吹
분명코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을 / 的是安心處
뒷날 다시 스님에게 물어보리이다 / 他年更問師
[주D-001]혜종(惠宗)의 사당 : 혜 종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맏아들로 2대 왕으로 즉위하였는데, 그의 모친인 장화왕후(莊和王后) 오씨(吳氏)가 흥룡사 터에서 임신하여 그를 낳았으므로, 흥룡사 안에 혜종사(惠宗祠)를 세워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35 羅州牧》
강릉(江陵)에서 김용수(金龍壽)가 나를 찾아와서는 두 분 최씨(崔氏) 모두 탈 없이 잘 계신다고 말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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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국의 높은 명성 그야말로 난형난제 / 蘂國名高大小難
연주 첩벽으로 삼한을 환히 비추도다 / 連珠疊璧照三韓
한가한 생활 담박하니 마음에 걱정 있으리요 / 閑來淡泊心無悶
노년에 더욱 강건하니 몸도 절로 편하시리라 / 老益强康体自安
오대산에서 향불 피우며 적막하게 지내시다가 / 香火臺山形影薄
총석정에서 풍류 즐기며 쌓인 회포도 푸시겠지 / 管絃叢石性情寬
병든 이 몸 공연히 머리만 돌리니 가련해라 / 獨憐病客空廻首
어느 때나 행주하며 옥반을 함께해 볼거나 / 何日行廚共玉盤
[주D-001]예국(蘂國) : 강릉(江陵)의 옛 이름이다.
[주D-002]연주 첩벽(連珠疊璧) : 구 슬을 꿴 것과 같은 뛰어난 시문을 말한다.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에 “백낙천의 연주 첩벽을 입으로 읊기만 할 뿐, 비조와 경사 같은 그 글씨는 없어져 볼 수 없네.[空詠連珠吟疊璧 已亡飛鳥失驚蛇]”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38 天竺寺》
[주D-003]오대산(五臺山)에서 …… 푸시겠지 : 《목 은시고》 제20권에 〈강릉에 계신 최 상국의 생각이 나서[奉懷江陵崔相國]〉라는 시가 있는데, 그중에 “승려와 같은 노년의 생활을 보내고 있다.[老年行止一頭陀]”는 구절과, “적막한 절간엔 달빛 속의 시냇물이요, 아득한 금강산엔 하늘 가의 파도로다.[寥寥蕭寺月中澗 渺渺蓬山天際波]”라는 구절이 보인다.
[주D-004]행주(行廚) : 음 식을 싸 들고 찾아가서 대접하는 것을 말한다. 당(唐)나라 엄무(嚴武)가 술과 음식을 가지고 두보(杜甫)를 찾아갔을 때 지은 시에 “대나무 숲에선 옥쟁반을 씻으며 음식 대접 한창이요, 꽃 옆에는 황금 안장 말들이 줄지어 섰네.[竹裏行廚洗玉盤 花邊立馬簇金鞍]”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11 嚴公仲夏枉駕草堂兼攜酒饌》
한식(寒食)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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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한식만 오면 나그네 심정 울렁울렁 / 寒食年年動客情
고향 산천 아득해라 푸른 물결도 잔잔하리 / 鄕山縹渺碧波平
어떡하면 띳집에 돌아가 성묘를 하고 나서 / 何當拜掃回茅舍
땅을 밝히는 배꽃 아래 취해서 누워 볼거나 / 醉臥梨花照地明
정릉 광암 골짜기 어언 몇 번째 봄이런가 / 正陵巖谷幾番春
온 나라 치달리는 속에 거리엔 먼지 자욱 / 闔國奔馳路起塵
쌍분의 공역이 이제 홀연히 끝나게 되었는데 / 忽見雙墳功役畢
지금껏 말고삐 나란히 한 것은 오직 서린뿐 / 至今聯騎獨西隣
동교에 비 온 뒤에 한결 맑은 냇물 소리 / 東郊雨過水泠泠
병든 뒤끝 이 몸도 답청 놀이 좋고말고 / 病後吾猶喜踏靑
누가 나를 불러 주면 내 곧장 쫓아가서 / 如有喚吾吾便去
취하면 누워서라도 긴 술병 옆에 끼련만 / 醉來卽臥伴長甁
[주D-001]쌍분(雙墳)의 …… 서린뿐 : 쌍 분은 노국공주(魯國公主)와 공민왕(恭愍王)의 능인 정릉(正陵)과 현릉(玄陵)을 가리키고, 서린(西隣)은 한수(韓脩)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 능 근처의 광암사(光巖寺)를 정릉과 현릉의 명복을 비는 원찰(願刹)로 삼았는데, 이때 목은이 비문을 짓고 한수가 글씨를 썼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목은문고》 제14권 〈광통보제선사(廣通普濟禪寺) 비명(碑銘)〉에 이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실려 있다.
글을 받고 한 동년(韓同年)에게 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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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소식 없어 그리움 더욱 깊었는데 / 久無音信倍相思
더구나 봄바람 호탕하게 불어오는 때임에랴 / 又是東風浩蕩時
우리들 모임 멋진 자리 한번 여시겠다고요 / 結社自言開盛會
늙어 가며 완전히 백치는 안 된 것이 기쁘구려 / 喜公垂老不全癡
면양부(沔陽府)에서 미곡을 실은 배가 도착했기에 기뻐서 기록하였으니, 이에 앞서 유언비어가 퍼졌기 때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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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이 미곡 운송하는 바닷길 머나먼데 / 南船送米海天長
한밤중에 거센 바람 산을 찢어 놓을 듯 / 一夜顚風欲裂岡
더군다나 유언비어 귀에 한번 들렸으니 / 況有訛言一經耳
자꾸 애태우며 탄식을 어찌 안 할 수야 / 豈辭沈嘆九回腸
부지해 준 은혜는 전적으로 신명의 힘 / 扶持惠出神明力
뛰고 싶은 기쁨을 짧은 시로 다하리요 / 喜躍情形短小章
어느 날에 섬 오랑캐 완전히 소탕하여 / 何日島夷禽獮了
사방 어디나 마음 놓고 농사를 짓게 할꼬 / 坐令四境遍農桑
유 항(柳巷)과 함께 광암사(光巖寺)에 가서 능을 참배한 뒤에 들어가 장로(長老)를 찾아뵈었더니 밥상을 차려 주었다. 이날 두 분 박공(朴公)이 비문을 새기는 일로 먼저 와 있었으며, 문생(門生) 노상(盧相)의 자녀들이 술을 가지고 국청사(國淸寺)에서 영접하였다. 이에 집에 돌아와서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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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적한 광암사에 동천(洞天)의 문이 열렸나니 / 光巖寂寂洞門開
이끼 위에 길게 드리운 솔 그늘 점차 보겠도다 / 漸見松陰長綠苔
매년 새해가 되면 함께 참배를 했었는데 / 每歲新年同一拜
올해는 한식날에야 처음으로 따라왔네 / 今年寒食始相陪
비문 새기지 못한 것이 공은 아직 언짢은데 / 碑陰未刻公猶歉
해 그림자 기울려 하자 나는 돌아갈 생각만 / 日影將斜我欲回
방장의 맛있는 음식 참으로 예전 맛이었는데 / 方丈珎羞眞舊味
게다가 귀로에 또 잔 가득 술 맛을 보았다나 / 歸途又見酒盈杯
이번 길은 그다지 쓸쓸하지 않았다.
몸이 피곤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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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동안 노닐며 한가함 만끽하였다고 / 一日遨遊剩得閑
사지가 갑자기 욱신거리며 쑤시다니 원 / 四支酸痛忽相關
장구한 환락 예로부터 적다는 것도 안다마는 / 明知長樂古來少
남은 인생 지금 점점 힘들어지는 게 유감이라 / 稍恨殘生今漸艱
자욱하게 바람 티끌 뒤덮인 도성 거리라면 / 漠漠風塵迷紫陌
곱디고운 구름 달빛 가득한 푸른 산이로세 / 娟娟雲月滿靑山
벼슬 버리고 떠나려 하는 다른 뜻이 또 있겠소 / 掛冠欲去非他意
입장을 바꾸면 우직도 안자와 같았을 것이니까 / 禹稷還同易地顔
[주D-001]벼슬 …… 것이니까 : 난 세(亂世)를 만나 경륜(經綸)을 펴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초야(草野)로 돌아가서 안회(顔回)처럼 안분지족(安分知足)하며 살아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말이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우왕(禹王)과 후직(后稷)은 태평한 세상을 만나 자기 집 문 앞을 세 차례나 지나가면서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천하의 일에 부지런하였던 반면, 안자(顔子)는 혼란한 세상을 당하여 누추한 골목에서 거처하였다고 전제한 뒤에, “우왕과 후직 그리고 안자가 서로 입장이 바뀐다면 모두 상대방처럼 행동하였을 것이다.[禹稷顔子 易地則皆然]”라고 말한 내용이 나온다
정종지(鄭宗之)가 찾아왔기에 대작(代作)하다.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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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마로 군대 따라 삭방으로 향했다가 / 匹馬從戎向朔方
돌아오니 봉화가 고향을 또 비추누나 / 歸來烽火照家鄕
누가 알랴 베갯머리 끝없는 이 생각을 / 誰知枕上無窮意
텅 빈 섬돌 빗소리에 밤은 더욱 긴데 / 雨滴空階夜更長
강호의 떠돌이 생활 어언 십 년 세월 / 流落江湖已十年
조정의 아는 이들 부러 동정하는 척 / 朝中親舊枉相怜
구괘 삼진에도 분명히 드러나 있으니 / 明明九卦三陳處
다시 무슨 마음으로 하늘을 원망하랴 / 更有何心敢怨天
선인께서는 말 한마디로 분란을 해소시켜 / 先子談鋒立解紛
한 시대의 호걸들이 은근한 정을 바쳤는데 / 一時豪傑致慇懃
나는 지금 입만 열면 비방을 초래하곤 하니 / 我今開口翻招謗
이것이 명인가 시운인가 참으로 부끄럽도다 / 命也時耶愧十分
[주C-001]정종지(鄭宗之)가 …… 대작(代作)하다 : 종지는 정도전(鄭道傳)의 자(字)인데, 목은이 그의 심경을 대변해서 지은 것이다.
[주D-001]구괘 삼진(九卦三陳) : 《주 역(周易)》 계사전 하(繫辭傳下) 제7장에, 아홉 개의 괘를 나열하고 각각 이에 대해서 간단한 해설을 붙인 내용이 나오는데, 그중에 어렵고 힘든 처지를 상징하는 곤괘(困卦)와 관련하여 “곤괘를 보고서 원망하는 마음을 줄여야 한다.[困以寡怨]”고 덧붙인 내용이 보인다. 송(宋)나라 진단(陳摶)이 이 제7장의 내용을 기초로 해서 괘의 이름과 체(體)와 용(用)을 해석하여 이른바 ‘삼진 구괘’의 ‘용도(龍圖)’를 발표하였는데, 송유(宋儒)들이 대체로 이 설을 채용하였다.
삼가 주상 전하께서 남쪽 교외에 납시어 수렵을 관람하시는 날을 맞았는데도, 병든 이 몸은 따라가 모실 길이 없기에 슬픈 마음이 들어서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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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가 성군을 보호해 주는 덕에 / 天地扶神聖
국가가 태평을 누리고 있는 이때 / 邦家屬太平
수렵으로 훈련을 시키지 않는다면 / 非因講田獵
어떻게 무비를 닦을 수 있으리요 / 何以詰戎兵
가랑비가 흩뿌릴 뿐 적시지는 않고 / 微雨灑不濕
여기에 또 따스한 바람이 살랑살랑 / 和風吹更輕
병든 신하 맡아서 하는 일도 없이 / 病臣無所執
편히 앉아 날씨 걱정만 하고 있구나 / 安坐念陰晴
[주D-001]수렵으로 …… 있으리요 :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으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수렵을 통해서라도 군사들을 조련해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서경》 입정(立政)에 “너의 갑옷과 병기를 사전에 제대로 닦아 두어야 한다.[其克詰爾戎兵]”는 말이 나온다.
정원재(鄭圓齋)를 방문했다가 취해서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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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을 그만두고 군에 봉해진 우리 원재 / 圓齋罷相受封來
물처럼 흐르는 세월 다신 오지 않겠기에 / 歲月如流不再回
개침과 같은 깊은 우정 스스로 확신하고 / 自信芥針深契在
홀로 술병 들고 가서 좋이 회포 풀었다오 / 獨携樽酒好懷開
난간 앞의 빗방울에 살구꽃 벙그러질 듯 / 杏花欲吐檻前雨
섬돌 위의 이끼에 번져 가는 대나무 빛 / 竹色相侵堦上苔
다만 한스러운 것은 얼마 안 남은 동년들 / 只恨同年已無幾
고인의 술잔 연거푸 또 들어야 하고말고 / 更須連擧古人杯
[주C-001]정원재(鄭圓齋) : 원재는 목은과 동년(同年)인 정추(鄭樞)의 호이다.
[주D-001]개침(芥針) : 호박이 지푸라기를 달라붙게 하고, 자석이 바늘을 끌어당기는 것[琥珀拾芥 磁石引針]처럼 친구 간에 서로 의기투합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2]고인의 …… 하고말고 : 병 촉유(秉燭遊)를 즐겨야 마땅하다는 말이다. 병촉유는 밤에 촛불을 밝히고 노닌다는 뜻으로, 덧없는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즐겨 보자는 의미로 흔히 쓰인다. 고시(古詩)에 “사는 나이 백년도 채우지 못하는데, 항상 천년의 시름을 품고 있도다. 낮은 짧고 밤이 긴 것이 괴로우니, 어찌 촛불 손에 잡고 노닐지 않을쏜가.[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 晝短苦夜長何不秉燭游]”라는 구절이 나온다. 《文選 卷29 古詩十九首》
이날 두 분의 한씨(韓氏)가 함께 자리에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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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한씨 나를 불러 종백이라 추키면서 / 兩韓呼我爲宗伯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예 차리고 정을 주네 / 禮數情親異衆人
누가 알았으랴 선군의 은택이 남았을 줄을 / 誰識先君餘澤在
온통 백두신으로 꽉 차 있는 이 세상 속에 / 世間皆是白頭新
[주D-001]두 분 …… 추키면서 : 두 사람 모두 목은의 부친 이곡(李穀)이 지공거(知貢擧)로 있을 때 과거에 급제한 인연이 있기 때문에 목은을 특별히 높여서 대우해 준다는 말이다. 《목은시고》 제22권 〈지금 경신년, 동당 감시의 주사는 모두가……〉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주D-002]백두신(白頭新) : 백 두여신(白頭如新)의 준말로, 흰머리가 되도록 오래 사귀었는데도 불구하고 서로 깊이 알지 못한 나머지 항상 처음 만난 사람처럼 관계가 서먹서먹한 것을 말한다. 한(漢)나라 추양(鄒陽)의 〈옥중상서자명(獄中上書自明)〉에 “흰머리 되도록 사귀었는데도 처음 만난 사람과 같은가 하면, 수레를 서로 멈추고 처음 대했는데도 오래 사귄 사람과 같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제대로 알아주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 때문이다.[諺曰 白頭如新 傾蓋如故 何則 知與不知也]”라는 말이 나온다. 《史記 卷83 鄒陽列傳》
증각사(證覺寺) 도중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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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머리에 비치는 산빛 어두웠다 밝아졌다 / 馬頭山色晦還明
천공이 비를 내리려다 다시 개이게 함이로다 / 欲雨天公又欲晴
멋진 시 지으려면 신령의 도움이 필요한 법 / 應爲詩聯作神助
붓끝으로 베끼는 경치 그 얼마나 청랑한지 / 筆端模寫十分淸
돌아오는 길에 1수(一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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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의 요리사들 줄 이어 계속 성안으로 / 廚人絡繹入城來
며칠간의 행궁 사냥 끝내고 돌아오시니까 / 數日行宮獵罷回
자허 오유의 부를 지어 바치고도 싶다마는 / 欲獻子虛烏有賦
백두는 거칠어서 그런 재주도 없으니 원 / 白頭荒澁愧非才
밤비가 천막을 적신 거야 무슨 상관 있으랴만 / 不嫌夜雨侵廬帳
봄추위에 술잔을 가까이 안 하고 놔둘 수야 / 肯放春寒近酒杯
임금님 수레 맞으러 동문에 나란히 서 있는 때 / 迓駕東門方鵠立
엷은 구름 지는 햇빛에 물은 돌고 또 휘돌고 / 淡雲殘照水洄洄
[주D-001]자허(子虛) …… 싶다마는 : 한 (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상림부(上林賦)〉를 지어 무제(武帝)의 수렵 행위를 찬미하면서도 은근히 풍간(諷諫)했던 것처럼, 목은도 사냥을 좋아하는 임금에게 시를 지어 바쳐서 바른길로 이끌고 싶다는 말이다. 〈상림부〉가 자허(子虛)와 오유 선생(烏有先生)과 무시공(无是公) 3인의 대화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동정(東亭)의 술자리에 초대를 받고 참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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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교에 호가하여 수렵을 끝내고 돌아와서 / 扈駕南郊獵罷回
깊은 술잔 들이부어 마른 폐를 적시는 때 / 灌來生肺有深杯
노부 한껏 마셨더니 걱정하던 내장이 축축 / 老夫劇飮愁腸潤
원객의 높은 노랫소리 입도 웃음으로 벙글 -원객(遠客)은 이민도(李敏道)를 가리킨다. / 遠客高歌笑口開
나무들도 즐거워라 기쁨을 아는 듯도 한데 / 萬木欣欣如有喜
동풍이 호탕하게 불어 봄날을 또 재촉하네 / 東風蕩蕩又相催
꽃 필 적에도 다시 홍군에 취하게 만든다면 / 花時更著紅裙醉
유광에 보답할 재주 없는 게 부끄러우리라 / 報答流光愧不才
[주D-001]꽃 …… 부끄러우리라 : 다 음에 꽃 필 적에도 이렇듯 호화로운 자리를 만든다면, 그저 기녀들 사이에서 잔뜩 취하기만 하고 시는 못 지을 테니까 봄 경치에 부끄러울 것이라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홍군(紅裙)은 붉은 치마라는 말로 미녀나 기녀를 뜻하는 시어이다. 한유(韓愈)의 시에 “장안의 부자 아이들은, 고기와 훈채를 소반에 잔뜩 차려 놓고, 시 지으며 마실 줄은 알지 못한 채, 오직 기녀의 붉은 치마에 취할 줄만 안다네.[長安衆富兒 盤饌羅羶葷 不解文字飮 惟能醉紅裙]”라는 구절이 나온다. 《韓昌黎集 卷2 醉贈張祕書》
동 당시(東堂試)의 지공거(知貢擧)로 흥녕군(興寧君) 안공(安公)과 판개성(判開城) 윤공(尹公)과 성균 시원(成均試員) 이숭인(李崇仁)이 낙점을 받고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술 마신 후유증으로 몸이 피곤해서 곧장 방문하여 축하하지는 못하였으나, 정회를 그만둘 수 없기에 시 네 수를 지어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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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칠 세 나이에 문예의 각축장 횡행하면서 / 十七橫行戰藝場
일년에 연달아 급제하여 조정 반열에 드신 분 / 一年連中入朝行
시과에 가장 어렸던 나는 지금 벌써 늙었는데 / 詩科最少吾今老
처음 지공거 되신 분은 두 뺨이 아직 빛난다오 / 始掌文闈兩頰光
십삼 세 과거 응시로 놀라게 하였는데 / 十三射策已驚人
박학다식하기로 지금 다시 월등한 분 / 博洽如今更絶倫
겨우 오순을 넘겨 지공거가 되시다니 / 才過五旬司貢士
한 시대의 풍채가 동료들을 비추리라 / 一時風采照臣隣
십사 세에 처음 진사과에 오른 뒤로 / 十四初登進士科
문장이 곧장 천하를 끌어 오려는 듯 / 文章直欲挽天河
국대부인 모시는 지금 얼마나 행복하오 / 幸今國大夫人在
마루에서 헌수가를 함께 들으시리니 / 共聽堂前獻壽歌
태평 시대 빛내는 사문의 성대한 일 / 斯文盛事耀昌辰
좌주가 금년에 또 인재를 얻게 됐네 / 座主今年又得人
쇠한 몸 끌고 하객의 틈에 끼고도 싶다마는 / 甚欲扶衰參賀客
술에 취해 시중의 보료에 토할까 그게 걱정 / 唯愁醉吐侍中茵
[주D-001]십칠 …… 빛난다오 : 흥녕군 안종원(安宗源)에 대해서 읊은 것이다. 충혜왕(忠惠王) 2년(1341) 신사년의 성균시(成均試)에서 목은이 14세의 최연소 나이로 시과(詩科)에 합격하였는데, 이때 목은보다 3년 연상인 안종원이 함께 급제하였다.
[주D-002]문장이 …… 듯 : 도 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의 문장을 보면, 마치 은하수를 끌어다가 과거의 진부한 글들을 모조리 씻어 버리려는 것과 같은 인상을 받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말인데, 두보(杜甫)의 시에 “어떡하면 장사를 구해 은하수를 끌어다가, 갑옷 무기 깨끗이 씻어 길이 쓰지 않게 할까.[安得壯士挽天河 淨洗甲兵長不用]”라는 명구를 전용(轉用)한 것이다. 《杜少陵詩集卷6 洗兵行》
[주D-003]국대부인 …… 들으시리니 : 급제한 문생들이 좌주(座主)의 집을 찾아가 인사 드리며 어버이에게 헌수를 할 테니, 그때 모친과 함께 헌수하는 노래를 들으면 얼마나 행복하겠느냐는 뜻이다.
[주D-004]술에 …… 걱정 : 목 은이 술에 취해 혹시 실수라도 해서 멋진 자리를 망치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참석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한(漢)나라 승상 병길(丙吉)의 수레를 모는 관리가 술에 취한 나머지 수레 위의 보료에다 오물을 토했던 고사가 있다. 《漢書 卷73 丙吉傳》
유감(有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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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넓고 큰 하늘과 땅 사이에도 / 茫茫天地內
질서 정연하게 위의가 펼쳐져 있나니 / 秩秩有威儀
해와 달은 황도를 따라서 운행하고 / 日月循黃道
뭇별들은 북극을 향해 절을 하도다 / 星辰拱紫微
나는야 물위에 떠다니는 부평초랄까 / 萍浮隨水動
바람에 나부끼는 버들개지 같은 신세 / 絮落逐風飛
천지 정돈한 일 누구 힘인지 알겠으니 / 整頓知誰力
돌아갈 사람은 아무렴 빨리 돌아가야지 / 歸人宜早歸
[주D-001]천지 …… 알겠으니 : 자 기의 공을 자랑하며 거드름을 떠는 사람들에 대한 풍자 섞인 표현으로, 두보(杜甫)의 시에 “두세 분 호걸이 이 세상 위해 출현하여, 천지를 정돈하며 어려운 시국을 구제했네.[二三豪俊爲時出 整頓乾坤濟時了]”라는 시구를 전용(轉用)한 것이다. 《杜少陵詩集卷6 洗兵行》
서울에 돌아온 밀성(密城)의 두 분 박 선생(朴先生)을 방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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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도화 만발한 그늘 아래 달이 황혼에 떠 있을 때 / 碧桃花下月黃昏
긴 가지 다투어 휘어잡자 눈발이 술잔에 흩뿌렸지 / 爭挽長條雪洒樽
당시에 함께 노닐던 분 지금은 몇이나 남아 있나 / 當日同遊幾人在
애달파라 그림자 끌고 나 혼자 다시 찾아가다니 / 自怜携影更敲門
바닷가에서 돌아온 분 귀밑머리 희끗희끗 / 海上歸來鬢二毛
모래톱 물새 신세 다 함께 표표히 떠도누나 / 沙鷗身世共飄飄
정원의 꽃나무들 새로 심은 것 많은 속에 / 園中花木多新種
그래도 소나무만은 역시 푸른빛 여전하네 / 只有長松獨後凋
흑사의 긴 냇물이 섬돌을 휘돌아 흐르는지라 / 黑寺長溪遶砌流
주인이 그래서 영남으로만 노닐러 가시나 봐 / 主人偏愛嶺南遊
돌아오니 알던 이들도 예전 모습과는 딴판 / 歸來故舊非前日
하기야 연소한 나도 지금 백발이 됐으니까 / 年少吾今亦白頭
병들어 한가히 거하며 왕래도 끊었나니 / 病裏閑居絶往來
창엔 가득 산색이요 뜰엔 가득 이끼로세 / 滿牕山色滿庭苔
외모는 변했건만 가난한 살림은 여전해서 / 形容改盡貧如舊
술잔 드는 대신에 새 시만 자꾸 짓는다오 / 只把新詩當酒杯
[주D-001]긴 가지 …… 흩뿌렸지 : 예 전에 이 집에서 가졌던 술자리에서 복사꽃이 하얀 눈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정취를 맛보았다는 말이다. 소식이 달밤에 살구꽃 아래에서 술을 마시며 지은 시에 “꽃 사이에 술자리 벌이니 맑은 향기 발하는데, 다투어 긴 가지 휘어잡으니 꽃잎이 눈처럼 떨어지네.[花間置酒淸香發 爭挽長條落香雪]”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10 月夜與客飮酒杏花下》
[주D-002]흑사(黑寺) : 청기와로 지붕을 덮은 사찰을 민간에서 일컫는 말이다.
윤월(閏月) 24일에 광평(廣平) 시중(侍中)이 여러 기로(耆老)들을 초청하여 흥국리(興國里) 저택에서 연회를 베풀 적에 나도 참석했다가 늦게 돌아와서 높이 읊조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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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과 칠원은 연세가 가장 많고 / 曲城漆原年最高
광평과 철성은 지금 모발이 반백 / 廣平鐵城今二毛
삼달존인 네 분 시중공을 위시해서 / 四侍中公三達尊
혁혁한 여러 원로들도 모두 호걸들 / 諸老赫赫皆人豪
화려한 장막 안에 비단 병풍 펼쳐지고 / 羅幃繡幕錦屛張
높이 솟은 저택에 금화로의 향불 연기 / 庭宇高峻金爐香
하늘 맑고 바람 없이 흰 해는 길고 긴데 / 天晴不風白日永
악기 소리 간간이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 / 樂聲間作歌聲揚
임금님이 하사하여 중관이 가져온 술 / 君王賜酒中官來
황금 술잔에 따르니 포돗빛이 넘실넘실 / 葡萄灩瀲黃金杯
제공이 절하고 마시면서 희색이 만면 / 諸公拜飮有喜色
마음 들뜬 기쁨이 흡사 춘대에 오른 듯 / 煕煕酷似登春臺
모두 축원하기를 임금님 오래 사시면서 / 共言聖壽齊蒼穹
인자한 은택을 무궁토록 흘려보내시어 / 仁聲惠澤流無窮
태평성대 속에서 우리 생령이 살게 하고 / 驅我生靈納壽域
구준 앞에 춤추면서 풍년만 들게 합소사 / 衢樽蹈舞年婁豐
내 듣건대 신선이 사는 방장과 봉래산은 / 吾聞方丈蓬萊山
약수 너머 몇 만리나 까마득히 멀다는데 / 弱水萬里何茫然
홀연히 옮겨 온 듯 이곳이 바로 선경이니 / 移來怳惚是眞境
굳이 환골탈태하여 비선을 따를 것 있으리요 / 不待換骨追飛仙
하지만 부앙 간에 벌써 지나간 과거의 일 / 人間俯仰已陳跡
그저 필묵으로 남겨 함께 후세에 전할 따름 / 只與筆墨俱流傳
[주D-001]삼달존(三達尊) : 누구나 존경하는 세 가지를 말하는데, 《맹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이 세상에 누구나 존경하는 것이 세 가지 있으니, 관작과 연치와 덕이 그것이다.[天下有達尊三爵一齒一德一]”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마음 …… 듯 : 《노자(老子)》 20장에 “사람들 기분이 마냥 들떠서, 마치 진수성찬을 먹은 듯도 하고 봄 누대에 오른 듯도 하네.[衆人煕煕 如享太牢 如登春臺]”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구준(衢樽) : 사 람마다 실컷 마시도록 대로(大路)에 놓아둔 술동이라는 뜻으로, 임금의 어진 정사를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회남자(淮南子)》 무칭훈(繆稱訓)에 “성인의 도는 마치 대로에 술동이를 놔두고서 지나다니는 사람마다 크고 작은 양에 따라 각자 적당히 마시게 하는 것과 같다.[聖人之道猶中衢而致樽邪 過者斟酌 多少不同 各得所宜]”는 말이 나온다.
[주D-004]약수(弱水) : 봉 래산이 있는 섬으로부터 약 30만 리쯤 떨어져서 인간 세상과 격리시키며 그 섬을 둘러싸고 있다는 전설상의 물 이름인데, 그 물은 새털처럼 가벼운 물체도 바로 가라앉히기 때문에 사람이 도저히 건널 수가 없다고 한다. 《海內十洲記》 《太平廣記 神仙》
서린(西隣)의 초청을 받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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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삼사사 어른은 팔순에 가까운 연세 / 判事三司近八旬
송재께서 남긴 경사 아직도 새록새록 / 松齋餘慶尙新新
목동이 과분하게 자주 말석에 끼이다니 / 牧童分外頻隅坐
버들 색깔 황금빛 또 하나의 봄이로세 / 柳色黃金又一春
[주D-001]송재(松齋) : 고려 말기에 벼슬이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에 이르고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진 권준(權準)의 호이다. 그의 아들 권적(權適)도 길창군에 봉해졌는데, 여기서 서린(西隣)은 곧 권적을 가리킨다.
정 첨서(鄭簽書)와 김 정언(金正言) 두 분 회장(會長)이 찾아왔다. 그들이 떠난 뒤에 박 정 자허(朴正子虛)와 사문(斯文) 이유(李㽥)가 또 집에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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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 없는 나도 당일에 용두회에 끼었는데 / 不才當日忝龍頭
늙고 병들어 지금은 나가는 일도 드물기만 / 老病如今少出遊
잇따라 내 집을 찾아 주신 회장님 세 분 / 會長三人連下馬
옛 술에 새 차 마시며 풍류들이 넘쳤다오 / 舊醅新茗摠風流
모두 부러워하나니 집안의 보배 천금익이요 / 傳家共羨千金翼
일찍이 들어맞았나니 고기 먹는 만리후라 / 食肉曾隨萬里侯
벼슬길 부침하는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일까 / 宦路升沈非偶耳
천명을 알고 즐기는데 다시 누구를 탓하리요 / 樂天知命更誰尤
[주D-001]용두회(龍頭會) : 장원 급제자들의 모임을 말한다.
[주D-002]천금익(千金翼) : 당(唐)나라 손사막(孫思邈)이 지은 《천금익방(千金翼方)》이라는 옛 의서(醫書)를 말한다. 모두 30권으로 되어 있는데, 그 전편(前篇)이라 할 《천금요방(千金要方)》과 합쳐져서 세상에 전해진다. 《四庫提要 子 醫家類》
[주D-003]고기 먹는 만리후(萬里侯) : 국 가에 큰 공을 세워 봉호(封號)를 받은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 반초(班超)의 관상을 보는 이가 “턱은 제비와 같고 목덜미는 호랑이와 같아 날아다니면서 고기를 먹을 것이니, 장차 만리후에 봉해질 상이다.[燕頷虎頸飛而食肉 此萬里侯相也]”라고 하였는데, 과연 반초가 공을 세워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진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47 班超列傳》
[주D-004]벼슬길 …… 탓하리요 : 조정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도 운수 소관으로 돌리면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천명을 알고 즐기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樂天知命 故不憂]”는 말이 나온다.
유감(有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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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읍은 조락하고 전야는 황량하고 / 縣邑凋零田野荒
사람 사는 곳곳마다 기색이 처량하네 / 人煙到處色凄涼
바닷가 다스리는 분에게 내 말 전하노니 / 寄聲岸海觀風者
아무쪼록 계책 세워 묘당에 올리시기를 / 須作新圖獻廟堂
귀법사(歸法寺)의 물가에서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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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 도는 맑은 시내 바위 위로 흐르는 곳 / 百轉淸溪石上流
급할 땐 말 달리는 듯 완만할 땐 머무는 듯 / 急如馳去緩如留
백발 되어 보는 냇물 소년 시절과 방불한데 / 白頭髣髴童時見
너와 함께 언제나 크게 한번 쉬어 볼거나 / 與爾何時大歇休
개성(開城) 윤성(尹成)을 찾아가려 하면서 느껴지는 점이 있기에 한 수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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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한 몸뚱이에 온갖 질병이 모여들어 / 衰躬萃百病
늘그막에 외로운 삶을 서글퍼 하였는데 / 晚年悲孤生
봄빛에 홀연히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 春光忽動盪
뭇 새들의 흥겨운 노랫소리 들려오네 / 衆禽相與鳴
얼마나 즐거운가 대자연의 변화 속에 / 樂哉共乘化
소리만 들어 봐도 화락하고 청랑한데 / 聲氣和且淸
나만 유독 어찌하여 서글피 탄식하며 / 我何獨悲嘅
성정을 못 풀고서 가슴 아파 할까보냐 / 而以傷性情
날이 밝아 오자 나도 벗 찾아 나서면서 / 平明出求友
파평 윤공 댁으로 말 머리를 돌렸나니 / 駕言適坡平
파평이야말로 옛 군자라고 일컬을 분 / 坡平古君子
외방의 관원으로 월성에 부임하였다가 / 分閫臨月城
지금 막 조정으로 다시 돌아왔는지라 / 還朝今甫爾
군영을 급히 찾아 문후하고 있으리니 / 候勞馳群英
다른 이들 먼저 하고 나를 뒤로 한 것은 / 衆先我乃後
마음속의 경중과는 아무 상관없으렷다 / 非關情重輕
꽃이 활짝 피었으니 봄 술도 익었을 터 / 花開酒亦熟
속마음 털어놓고 술잔 기울이면 됐지 / 好將肝肺傾
부질없이 내가 다시 무엇을 바라리요 / 悠悠復何望
술 마시면 허명에서 해방도 될 텐데 뭘 / 飮也可逃名
동 정(東亭)의 갑인년 문생들이 연회를 주선하였는데, 형제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나와 한맹운(韓孟雲)에게 말을 보내어 참석하라고 초청하였다. 그 자리에 갔더니 밀직(密直) 정포은(鄭圃隱)이 먼저 와 있었으며 그 뒤에 지문하(知門下) 박 학사(朴學士)가 또 왔다. 이에 폭음을 하고는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는데, 이날은 윤월(閏月) 그믐날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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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의 성대한 모임 세상에 많지 않건마는 / 斯文盛會世無多
동정에게는 언제나 옥가가 모여드는구나 / 每向東亭簇玉珂
날 가는 줄도 모르는 도리 문정의 이야기요 / 桃李門庭移日語
가는 구름도 멈칫하는 기라 현관의 노래로세 / 綺羅絃管遏雲歌
앞 자리 가득한 준재들 지금 이처럼 훌륭한데 / 滿前才俊今如許
쇠한 몸 상석에 앉았으니 이를 어떡하면 좋지 / 居右衰遲我奈何
곤드레만드레 깊은 밤에 버들골에 돌아와서 / 泥醉夜深歸柳里
은하수 끌어다 속된 생각 말끔히 씻어 버렸도다 / 洗空塵慮挽天河
[주D-001]옥가(玉珂) : 옥으로 만든 말방울이라는 뜻으로, 현달한 관원의 수레라는 의미이다.
[주D-002]날 …… 이야기요 : 좌 주(座主)와 문생들이 한데 모여 화기애애하게 즐기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는 말이다. 당(唐)나라 적인걸(狄仁傑)의 문생인 요원숭(姚元崇) 등 수십 인이 모두 명사(名士)가 되었으므로, “천하의 복사꽃과 오얏꽃이 모두 공의 문에서 나왔다.[天下桃李 悉在公門矣]”고 일컬어졌다는 고사가 전한다. 《資治通鑑 唐紀23》
[주D-003]가는 …… 노래로세 : 풍악이 멋지게 울려 퍼졌다는 말이다. 진(秦)나라의 명창 진청(秦靑)이 노래를 부르자, 가던 구름도 그 소리를 듣고 멈춰 섰다는 ‘향알행운[響遏行雲]’의 일화가 전한다. 《列子湯問》
서봉(西峯)에서 돌아오는 길에 1수(一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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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옹은 늘그막에 형제도 드문 터에 / 牧翁垂老弟兄稀
봄바람 속에 또 이별까지 했음에랴 / 況是春風又別離
흐르는 물처럼 곤곤히 흘러가는 광음이요 / 流水光陰俱袞袞
뜬구름처럼 흐늘흐늘 정처 없는 신세로다 / 浮雲身世儘依依
가로수 노란 버들 잎에 꾀꼬리 노래하려 할 때 / 絲黃陌柳鸎將囀
푸른 한 점 고향 산 향해 말은 벌써 달려갔네 / 寸碧鄕山馬已馳
모를레라 어느 날에나 고향으로 돌아갈지 / 不識歸來在何日
술잔 앞에 손잡으며 눈물로 옷을 적셨노라 / 樽前握手淚沾衣
박 판서 밀양(朴判書密陽)이 찾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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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를 지어도 게을러서 전하지 못했는데 / 吟得新詩懶不傳
놀랍게도 문밖에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네 / 忽驚門外有跫然
사방이 환한 배꽃 속의 조용한 모정에서 / 梨花開遍茅亭靜
돌샘의 물 길어 와 노비가 차를 끓였다오 / 老婢煎茶汲石泉
공은 칠순이 가까운데 여전히 확삭옹이라면 / 公近七旬猶矍鑠
나는 지금 병이 많아 구련과 같다고나 할지 / 我今多病似拘攣
주고 뺏는 하늘의 마음 역시 엿보기 어려워 / 天心與奪亦難料
벼슬길 먼저 채찍 들어 부끄럽기 그지없네 / 愧殺宦途先着鞭
[주D-001]확삭옹(矍鑠翁) : 원 기 왕성하여 씩씩한 노인을 말한다. 동한(東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62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말에 뛰어올라 용맹을 보이자, 한 무제(漢武帝)가 “이 노인이 참으로 씩씩하기도 하다.[矍鑠哉是翁也]”라고 찬탄했던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주D-002]구련(拘攣) : 신경이 마비되어 팔다리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병을 말한다.
[주D-003]벼슬길 …… 그지없네 : 목 은이 먼저 조정에서 현달하여 고관이 된 것이 부끄럽다는 뜻의 겸사이다. 동진(東晉)의 유곤(劉琨)과 조적(祖逖)이 벗으로 지내면서 중원(中原)을 회복할 뜻을 지니고 있었는데, 조적이 조정에 기용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유곤이 “나는 항상 그가 나보다 먼저 채찍을 들게 될까 걱정해 왔다.[常恐祖生先吾着鞭耳]”고 말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卷62 劉琨列傳》
삼가 주상 전하께서 천동(泉洞)으로 이어(移御)할 길일(吉日)을 잡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병든 신하로서는 어떻게 도와 드릴 길이 없기에 그저 봉인(封人)이 축하한 일만을 본떠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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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에선 현묵으로 정신을 보양하시고 / 深宮玄默保精神
하늘엔 별들이 대궐을 밝게 감싸는 밤 / 列宿煌煌遶紫宸
누가 알랴 남의 말 많이도 듣는 목은자가 / 誰識多言牧隱子
세 번 축원한 화 봉인과 원래 똑같은 줄을 / 自同三祝華封人
달빛을 띤 앵계의 물은 동리를 울릴 것이요 / 鶯溪帶月鳴東里
구름에 쌓인 용수의 산은 북두를 옹위할 터 / 龍岫籠雲拱北辰
백발로 어서 출사하여 원로 뒤를 따라가서 / 白髮纓冠逐諸老
수로의 향 연기 속에 다시 몸을 머물러야지 / 獸爐煙裏更留身
[주D-001]현묵(玄默) : 도가(道家)의 청정 무위(淸靜無爲)와 같은 뜻인데,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장양부(長楊賦)〉에 “임금은 현묵으로 정신을 삼고 담박함으로 덕을 삼는다.[人君以玄默爲神 澹泊爲德]”는 말이 나온다.
[주D-002]화 봉인(華封人) : 화(華) 땅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가 요(堯) 임금에게 수(壽)와 부(富)와 다남(多男)의 세 가지 일을 축원한 이야기가 《장자》 천지(天地)에 나온다.
[주D-003]백발로 …… 머물러야지 : 얼 른 조정의 반열에 나아간 다음, 다시 대궐 뜰에 혼자 남아서 축원하는 말씀을 올리고 싶다는 뜻이다. 임금에게 혼자서 아뢰어야 할 사항이 있을 경우에 다른 신하들이 모두 떠난 뒤에 홀로 남아 있는 것을 유신(留身)이라고 한다. 수로(獸爐)는 대궐 뜰에 놓인 짐승 모양의 화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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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사 푸르른 솔 새로운 빛을 떨쳤나니 / 報恩松翠動新光
장수들이 뜨락 가득 도량을 열었음이로다 / 諸將盈庭設道場
다시 사당 향할 때 얼마나 슬픔 더했을까 / 更向廟中增怵惕
하늘 위에서 복을 듬뿍 내릴 줄 알겠도다 / 便知天上降休祥
군왕이 복 받으면 국가의 기초가 굳건하고 / 君王受福邦基固
장상이 기쁨을 교환하면 세도가 편안한 법 / 將相交懽世道康
하는 일 없이 남은 술 받는 게 자괴스럽다만 / 自愧閑居拜餘瀝
흥안의 후사가 바로 우리 응양 장군이시니까 / 興安後嗣是鷹揚
[주C-001]3월 …… 받다 : 참고로 《목은시고》 제25권에 〈중방의 장수들이 보은사 조진전에서 초례를 지내고 나서 남은 술 두 병을 보냈기에 삼가 받아서 보니……[伏蒙重房諸將送報恩寺祖眞殿醮酒兩甁……]〉라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주D-001]흥안(興安) : 흥안부원군에 봉해진 초은(樵隱) 이인복(李仁復)을 가리키는데, 목은이 스승으로 섬기면서 존경한 인물이다.
어 제 쌍청(雙淸) 안공(安公)이 나와 한유항(韓柳巷)을 초청하여 함께 술 마시며 연구(聯句)를 지었는데, 나의 아들 종학(種學)도 ‘쌍청정상인여옥(雙淸亭上人如玉)’이라고 읊는 등 몇 개의 대구(對句)를 응수하여 올려 바쳤다. 날이 저물 즈음에 다 함께 도 영공(陶令公)의 저택을 방문하였으니, 이는 가례(嘉禮)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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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삼짇날 남쪽 동네 놀러 가니 / 三月三日南里游
가랑비는 점점이 구름은 둥실둥실 / 微雨點點雲浮浮
쌍청정 위에 모인 옥 같은 인물들 / 雙淸亭上人如玉
배꽃 꺾어 모두들 머리에 꽂았어라 / 折得梨花俱揷頭
권커니 잣거니 한 잔 또 한 잔의 술 / 一杯一杯不停手
풍광에 보답하려고 잠깐 술잔 쉴 뿐 / 爲報風光須少留
풍광은 곤곤해라 가고 또 오건마는 / 風光袞袞自相代
벗들은 영락해라 옛 추억만 남았구나 / 故交零落難追求
명절날 멋진 경치 한번 취하지 않는다면 / 良辰美景不一醉
가슴속의 이 감회를 어느 때나 잠재우리 / 胸中感慨何時休
비파줄 울리는 속에 아녀들의 노랫소리 / 琵琶絃上兒女語
청아하고도 그윽한데 귀가 시끄러울 리야 / 入耳不煩淸且幽
심야까지 앉아서 읊조리는 걸 마다할까 / 肯辭吟哦坐深夜
마침 저구 부를 명안의 때도 만났는걸 / 適値鳴雁歌睢鳩
말 나란히 함께 오니 찬란하게 문에 가득 / 聯鞍共至爛盈門
붐비는 귀빈의 수레 보니 모두가 공후로세 / 賓軒雜沓皆公侯
헤어져 돌아오며 왼쪽 마을 거쳐 올 제 / 歸途分馬左經里
서쪽 봉우리 걸린 달 마치 은빛 갈고리 / 西峯掛月如銀鉤
옷 벗고 눕자마자 깊은 잠 속에 빠졌는데 / 解衣奠枕便熟睡
이윽고 절간 누각에서 울리는 새벽 종소리 / 俄頃曉鍾鳴寺樓
홀연히 꿈에서 깨어나 화서에서 돌아오니 / 怳然夢從華胥回
인간 세상 그사이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 人間俯仰眞悠悠
유유히 붓을 들어 유력한 일을 기록하노니 / 悠悠援筆紀游歷
목옹이 늙었어도 풍류는 남아 있다 하리 / 牧翁老矣猶風流
[주D-001]마침 …… 만났는걸 : 혼 인의 의식이 행해지는 것을 말한다. 남녀의 혼인을 노래한 《시경》 패풍(邶風) 포유고엽(匏有苦葉)에 “기럭기럭 기러기 울음소리 속에, 아침 햇살이 환하게 비쳐 오네. 총각이 아내에게 장가들려면, 얼음이 녹기 전에 해야 하고말고.[雝雝鳴雁 旭日始旦 士如歸妻 迨氷未泮]”라는 말이 나온다. 저구(雎鳩)는 《시경》 주남(周南)의 편명으로, 군자가 자기의 짝인 요조 숙녀를 찾아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주D-002]찬란하게 문에 가득 : 역 시 성대한 혼인의 의식을 뜻하는 말이다. 《시경》 대아(大雅) 한혁(韓奕)에, 한(韓)나라 제후가 장가드는 광경을 묘사하며 “한나라 제후가 그들을 돌아보니, 찬란하게 문 안에 가득했다오.[韓侯顧之 爛其盈門]”라고 표현한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03]화서(華胥) : 황 제(黃帝)가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보았다는 이상 국가(理想國家)의 이름이다. 황제가 이 나라를 여행하면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이상적인 정치가 실현되는 꿈을 꾸고는, 여기에서 계발(啓發)되어 천하에 크게 덕화(德化)를 펼쳤다는 전설이 전한다. 《列子 黃帝》
앵도화(櫻桃花)를 노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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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냘픈 몸매 간들간들 활짝 핀 앵도화여 / 櫻桃花發弄輕盈
잠 깬 난간 위에 눈앞을 환히 비치도다 / 睡起晴軒照眼明
두란도 예전엔 여름철 절물로 바쳐져서 / 蚪卵異時供夏薦
서풍도 시원한 비궁 깊이 모셔졌었느니 / 閟宮深處暑風淸
[주D-001]두란(蚪卵)도 …… 모셔졌었느니 : 두란 즉 올챙이알같이 생긴 앵두도 옛날에는 나라의 사당에 절물(節物)로 올려지는 대접을 받을 때가 있었다는 말이다.
민중립(閔中立)이 찾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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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 고을 처갓집에서 노농에게 배우다가 / 作贅楊川學老農
어버이 뵈려고 이따금씩 성에 들어오기도 / 覲親時或入城中
조각배 타고 곧장 뒤따라가고도 싶나니 / 扁舟直欲相隨去
가어가 혼동과 같다는 말을 또 들었음에랴 / 聞說嘉魚似混同
도는 형체가 없어도 미세한 곳에 드러나고 / 至理無形微處顯
우리 인생 재미는 담박할 때에 더 진한 법 / 浮生有味淡時濃
쇠한 내가 바라는 것은 윤리를 밝히는 일 / 吾衰所願明倫耳
부모님 살아 계시니 몸을 잘 보전하시게나 / 具慶堂前善保躬
[주D-001]노농(老農) : 경험이 풍부한 농부를 뜻한다. 《논어》 자로(子路)에, 번지(樊遲)가 오곡과 채소 심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자, 공자가 “그 일에 관한 한 나는 경험이 많은 농부[老農]나 원예사[老圃]보다 못하다.”고 한 내용이 나온다.
[주D-002]혼동(混同) : 혼동강(混同江) 즉 흑룡강(黑龍江)을 말하는데, 우어(牛魚)라는 크고 맛좋은 고기가 그곳에서 잡히기 때문에 역대의 제왕들이 낚시를 즐겼다는 기록이 전한다. 《欽定日下舊聞考 卷149》《本草綱目 牛魚》
[주D-003]도는 …… 드러나고 : 《중용장구(中庸章句)》에 “도라는 것은 숨어 있을 때보다 더 잘 드러나는 때가 없으며, 미세한 곳보다 더 잘 드러나는 곳이 없다.[道也者 莫見乎隱 莫顯乎微]”는 말이 나온다.
연도(燕都)를 추억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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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 생각에 빠져 머리만 괜히 긁적긁적 / 沈思往事苦搔頭
꿈을 꾸면 신선들이 지금도 나하고 노니는데 / 夢裏神仙與我遊
하늘 위에서 배회한 시간 겨우 한나절이건만 / 天上徘徊才半日
인간 세상은 적막하게 또 천년이 지나간 듯 / 人間寂寞又千秋
꾀꼬리 노래 제비 춤에 끝없는 나의 시름이여 / 鸎歌燕舞愁無盡
범과 용 모두 피곤에 지쳐 싸움도 끝난 이때 / 虎困龍疲戰已休
멀리 난파의 봄빛 지금쯤 한창 푸를 텐데 / 遙想鑾坡春色綠
목동의 피리 소리만 절로 풍류에 넘치리라 / 牧童吹笛自風流
[주D-001]지난 …… 노니는데 : 이 제는 꿈속에서나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 볼 뿐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연경(燕京)의 아련한 추억이 자꾸만 떠오른다는 말이다. 《시경》 패풍(邶風) 정녀(靜女)에 “그리워하면서도 볼 수가 없는지라, 머리만 긁적이며 서성일 따름.[愛而不見 搔首踟躕]”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2]범과 용 : 원(元)과 명(明)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3]멀리 …… 텐데 : 난파(鑾坡)는 한림원(翰林院)의 별칭인데, 목은이 원나라 제과(制科)에 급제한 뒤 한림원의 관직을 제수받은 경력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감회(感懷) 1수(一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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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욱한 봄 그늘 속에 새소리도 하 많은데 / 春陰漠漠鳥聲多
숲에는 붉고 흰 꽃 언덕에는 초록빛 가득 / 紅白生林綠滿坡
만물은 시절을 만끽하며 한껏 흐드러지는데 / 物意隨時任流蕩
사람의 마음은 예부터 때를 잃었다 탄식하네 / 人情自古嘆蹉
종기라 해서 만나 봐도 나를 알진 못하나니 / 鍾期旣遇莫知我
이광이 제후 못 된 것을 남에게 또 물으리요 / 李廣不封何問他
이 풍진 세상은 분분하게 시비만 일어나니 / 塵世紛紛是非耳
안락한 소공의 오두막이나 찾아가고 싶어라 / 欲尋安樂邵公窩
[주D-001]종기(鍾期) : 춘추 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의 연주를 제대로 감상하며 평가해 주던 종자기(鍾子期)의 준말로, 친구를 제대로 알아주는 지기(知己)의 대명사로 쓰이는 말이다.
[주D-002]이광(李廣)이 …… 것 : 조 정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불우한 관직 생활을 뜻한다. 이광은 한(漢)나라의 명장(名將)으로, 흉노(匈奴)를 격파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 그의 부하 장수들 모두가 제후로 봉해지는 상황에서도 정작 그만은 그러한 은총을 받지 못했으므로, 운명의 탓으로 돌리며 탄식을 금하지 못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卷109 李將軍列傳》
[주D-003]안락한 소공의 오두막 : 비 록 누추하긴 해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송(宋)나라의 철인(哲人) 소강절(邵康節)이 낙양(洛陽)에 거주할 적에 비바람도 제대로 막지 못하는 오두막 한 채를 허름하게 지어 안락와(安樂窩)라고 이름하고는, 가끔 쌀독이 비어 굶는 생활을 하면서도 유유자적하며 스스로 안락 선생(安樂先生)이라고 일컬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宋史 卷247 邵雍列傳》
유항(柳巷)이 나를 찾아와서 성북(城北)으로 놀러 가자고 하였는데, 몸이 노곤해서 사양을 하고는 홀로 슬픈 생각이 들기에 긴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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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 속에 복사꽃 오얏꽃 성안에 가득 / 春風桃李花滿城
붉고 흰빛 흐드러져 얼마나 눈부신지 / 朱朱白白何光榮
맑은 하늘 구름 없이 햇빛도 오색영롱 / 天晴無雲日五色
어디를 봐도 찬란하게 정채를 발하누나 / 遍地燦爛皆精英
재성보상이 사람의 일에 속한다 하더라도 / 裁成輔相在人事
기교가 천기를 뺏는 것은 진정 놀라운 일 / 巧奪天機眞可驚
초라한 내 집에도 봄 경치 유려하지마는 / 短籬破屋亦流麗
높이 솟은 누각에는 더욱 선명하지 않소 / 高樓傑閣尤鮮明
부자 동네나 가난한 집이나 같은 봄을 주면서도 / 富里貧家同一春
수용은 다르게 하는 것이 하늘의 공평함일지도 / 受用則異天心平
하늘의 복 듬뿍 받은 세신의 집안 출신으로 / 天之所厚在世臣
혁혁해라 지위도 높고 공과 이름도 온전한 분 / 赫赫高位全功名
어진 형에 든든한 아우 그리고 아들 조카들 / 昆令季强多子姪
봄놀이 달놀이 즐기면서 풍악 소리 드높나니 / 賞春賞月絃歌聲
고대광실 짓누르는 수덕궁(壽德宮) 동네에서 / 朱門高壓壽德洞
일흔 나이 넘겨서도 강건한 자태를 뽐낸다오 / 年過七十强而精
곤궁함 속에서 멋진 시구 나온다 누가 말하는고 / 誰言秀句出寒餓
창화하는 솜씨를 보소 곧장 소황과 다투는걸 / 唱和直與蘇黃爭
목동은 어려서부터 결사에 끼이긴 하였지만 / 牧童雖少忝結社
질그릇 소리만 요란하니 진땀이 흐를 수밖에 / 汗發瓦缶徒雷鳴
아침부터 술병에 걸려 발목이 홀연히 잡히다니 / 朝來酒病忽相祟
말없이 앉아 하루 종일 감회에 젖는 이 마음이여 / 默坐竟日聊含情
서린이 취해서 돌아오며 높은 고개 지날 때쯤엔 / 西隣醉歸穿嶺高
누대 위의 초승달이 초경의 하늘에 걸려 있겠지 / 樓上新月懸初更
[주D-001]재성보상(裁成輔相)이 …… 일 : 천 지의 조화를 돕는 것이 또한 사람의 일이라고는 하더라도,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이 기교를 부려 자연의 풍광까지도 차이나게 하는 것을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는 말로, 유항과 목은 자신의 생활 수준을 비교하면서 빈부의 차이에 따라 봄 경치를 즐기는 것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뜻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재성보상은 《주역》 태괘(泰卦) 상(象)에 나오는 말로, 지나친 것을 억제하고 모자란 것을 보충해서 천지간에 조화가 이루어지도록 돕는 성인 혹은 임금의 일을 말하는데, 《목은시고》 제24권 〈얼음을 보고 드높이 읊다.[對氷高詠]〉에 “재성보상하는 일은 결국 사람의 힘이거니, 사계절이 화창해야 태평 시대를 보고말고.[財成輔相終人力 玉燭調時見太平]”라는 구절이 나온다. 또 《목은시고》 제3권 〈빈 상인이 소장한 신룡도에 제하여 동년인 증 조교와 함께 읊다.[題玢上人所畜神龍圖 與同年曾助敎同賦]〉에 “사람의 기교가 자연의 솜씨를 뺏는 줄 잘 알겠거니, 가짜 진짜 분간하려 해도 호리의 차이로세.[端知人巧奪天工 眞假欲辨毫釐中]”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2]곤궁함 …… 다투는걸 : 곤 궁해야만 뛰어난 시가 나온다는 말이 있지만, 부유하게 사는데도 멋진 문장 솜씨를 선 보이고 있으니 그 말도 옳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의 〈매성유시서(梅聖兪詩序)〉에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궁해진 뒤에야 시가 멋들어지게 되는 것이다.[非詩能窮人 殆窮者而後工也]”라는 말이 나온다. 소황(蘇黃)은 송나라 문장가인 소식(蘇軾)과 황정견(黃庭堅)의 병칭이다.
[주D-003]질그릇 …… 수밖에 : 목 은 자신의 시문이 형편없다는 뜻의 겸사이다. 《초사(楚辭)》에 나오는 굴원(屈原)의 복거(卜居)에 “웅장한 소리를 내는 황종은 버림을 받고, 질그릇 두드리는 소리만이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黃鐘毁棄 瓦釜雷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호연(李浩然)이 옛날 살던 곳으로 돌아가려 하기에 나도 따라가고 싶어서 긴 노래가 터져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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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부도 크고 재주도 엄청난 우리 호연 / 浩然志雄才又雄
시대와 맞지 않음을 늙어서 비로소 알았나니 / 老矣始知時不容
가족을 껴안고 오랜 세월 고궁을 하며 / 携持婦兒長固窮
거장들을 흘겨보면서 고담준론을 펼쳤다오 / 高談睥睨諸鉅公
봄바람 불어와 흙도 풀어져 보드라운 때 / 春風吹來土脈融
시골에 돌아가 노농을 또 찾아보려 하나니 / 又欲歸田尋老農
벼슬길 막힌 한산한 직책 다행으로 여기면서 / 自幸虛職籍不通
잔두에 얽매인 저 추풍들을 조소하고 있다오 / 笑彼棧豆縻追風
청산은 울긋불긋 구름은 옅었다 짙어졌다 / 靑山丹丹雲淡濃
여기에 또 여강 물은 얼마나 유유히 흘러갈까 / 驪江之水何溶溶
강변에 머무는 야승 또한 시어가 꽤나 묘한데 / 江邊野僧詩語工
여러 허물을 보여 줘도 마음은 텅 비었으리니 / 示有諸過心則空
대지팡이와 짚신으로 날마다 따라 노닐면서 / 芒鞋竹杖日相從
유리잔 가득 술 마시며 도선을 해 봄 직도 / 逃禪引滿琉璃鍾
늙은 목은은 그동안 해 오던 노력도 흐지부지 / 老牧邇來廢前功
흑과 백의 중간에 서서 옛 자취 탐색하는 중 / 黑白中間探舊蹤
지금은 너무도 쇠해져서 병까지 걸린 몸이지만 / 甚矣衰也病在躬
원래는 호걸의 기상으로 유종을 옆에서 도왔다오 / 自有豪傑扶儒宗
바람이 범을 따르는 듯 구름이 용을 따르는 듯 / 風從虎兮雲從龍
벽옹을 활짝 열자 물고기 뛰고 소리개 날고 / 魚躍鳶飛開辟雝
사문이 이에 만세토록 동방을 비추게 되었는데 / 斯文萬世耀天東
내 몸의 거취는 이제 와선 터럭처럼 가볍다 할까 / 我身去就鴻毛同
터럭은 비교라도 되지만 나는야 있는 듯 없는 듯 / 毛輶有倫我在有無中
남은 인생 슬프도다 하루살이나 똑같으니 / 殘生哀哉如蠛蠓
호연이여 어서 가서 낚시 도구를 챙기시라 / 浩然往矣修釣筒
나도 복사꽃 물길 따라 그대 찾아 떠나리니 / 我行亦趁桃花紅
[주D-001]고궁(固窮) : 의 리를 고수하면서 곤궁한 처지를 편안하게 여기는 것을 말하는데, 《목은문고》 제1권 〈둔촌기(遁村記)〉에 그에 관한 행적이 자세히 보인다.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군자는 아무리 곤궁해도 이를 편안히 여기면서 의리를 고수하지만, 소인은 곤궁하면 제멋대로 굴게 마련이다.[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02]노농(老農) : 경험이 풍부한 농부를 뜻한다. 《논어》 자로(子路)에, 번지(樊遲)가 오곡과 채소 심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자, 공자가 “그 일에 관한 한 나는 경험이 많은 농부[老農]나 원예사[老圃]보다 못하다.”고 한 내용이 나온다.
[주D-003]잔두(棧豆)에 …… 추풍(追風)들 : 잔두 즉 말구유에 담긴 콩 먹이를 탐내어 외양간을 떠나지 못하는 말처럼, 사소한 명리(名利)에 얽매여서 벼슬살이를 하는 관원들을 말한다. 추풍은 명마(名馬)의 이름이다.
[주D-004]도선(逃禪) : 좌 선하다가 도망쳐 나오는 것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시에 “소진은 수놓은 부처 앞에 오래 재계를 하다가도, 취하면 가끔 좌선하다 도망쳐 나오길 좋아했네.[蘇晉長齋繡佛前 醉中往往愛逃禪]”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2 飮中八仙歌》
[주D-005]유종(儒宗) : 목은의 은문(恩門)이기도 한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을 높여서 부른 말이다.
[주D-006]바람이 …… 듯 : 군 신(君臣)이 서로 감응하여 의기투합한 것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특히 목은이 공민왕의 지우(知遇)를 받은 것을 말한다.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 구오(九五)에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르나니, 성인이 나오시면 만물이 모두 우러러보게 마련이다.[雲從龍 風從虎 聖人作而萬物覩]”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7]벽옹(辟雝)을 …… 날고 : 성 균관(成均館)의 개혁을 통해 유학(儒學)의 교화가 성대하게 펼쳐지게 된 결과 만물이 모두 제자리를 얻고 즐거워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시경》 대아(大雅) 한록(旱麓)의 “소리개는 하늘 높이 솟구치고, 물고기는 못 속에서 뛰노누나.[鳶飛戾天 魚躍于淵]”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것이다. 목은은 공민왕 연간에 시정 오사(時政五事)와 시정 팔사(時政八事) 등의 상소를 올려 교육 개혁을 건의하는 한편, 성균관의 좨주(祭酒)와 대사성(大司成)을 맡아 직접 교육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또 성균관을 중건하고 문묘(文廟)의 석전(釋奠) 의례를 제정하는 한편, 경학(經學)의 대가들을 교관(敎官)으로 임명하여 사장(詞章)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성리학(性理學)을 위주로 하는 사서오경재(四書五經齋)를 운영하는 등 획기적인 교육 개혁을 단행하였다.
사관(史官)이 모두 다른 일이 있어서 내가 대신 관각 안에서 숙직을 하였는데, 오경(五更)에 일어나니 달빛이 휘영청 밝기에 제공(諸公)의 운(韻)을 써서 시를 지었다. 이때는 바야흐로 주금(酒禁) 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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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금한 금년은 예년과 사뭇 달라 / 酒禁今年異昔年
도성 가득 성현을 의심하고 시기하네 / 滿城疑聖又猜賢
흰머리로 난파에 다시 숙직을 하다 보니 / 白頭更向鑾坡直
휘영청 달빛에 뼛골은 오싹 정신은 청랑 / 骨冷魂淸月照天
[주D-001]도성 …… 시기하네 : 청 주(淸酒)와 탁주(濁酒)를 각각 성인과 현인이라는 은어(隱語)로 사용하기 때문에 주금(酒禁)을 이렇게 비유해서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백(李白)이 아성(亞聖)으로 일컬어지는 안회(顔回)가 밥을 짓던 중에 티끌이 묻은 밥이 아까워서 먹다가 동료들에게 의심을 받은 고사와, 현인으로 일컬어졌던 윤길보(尹吉甫)의 아들 백기(伯奇)가 계모의 옷에 붙은 독벌[毒蜂]을 떼어 내려다가 참소를 받은 고사를 소재로 해서, “티끌이 묻은 밥을 걷어 내고 독벌을 떼어 내려고 하였건만, 사람들은 성인을 의심하고 현인을 시기했네.[拾塵掇蜂 疑聖猜賢]”라는 시구를 지었는데, 목은이 이를 전용(轉用)해서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李太白集 卷8 雪讒詩 贈友人》
[주D-002]난파(鑾坡) : 당(唐)나라 한림학사(翰林學士)들이 머물던 금란파(金鑾坡) 위의 금란전(金鑾殿)으로, 보통 관각(館閣)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D-003]휘영청 …… 청랑(淸朗) : 마 치 선경(仙境)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이다. 한유(韓愈)가 이상향인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읊은 시에 “달 밝은 밤 이끌려서 텅 빈 옥당에 묵었더니,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뼛골은 오싹 정신은 청랑.[月明伴宿玉堂空 骨冷魂淸無夢寐]”이라고 한 표현이 나온다. 《韓昌黎集 卷3 桃源圖》
장방평(張方平) 상서(尙書)를 오랫동안 보지 못하던 차에 그가 오늘 내 집을 찾아왔기에 기뻐서 시를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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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타고 까마득히 만리 하늘 올라가서 / 渺渺張槎萬里天
절동 지방 명산대천 모두 구경했겠네요 / 浙東看盡好山川
약해를 가져온 것은 바로 예전과 똑같은데 / 携來若海直如舊
사성은 고인이 되었으니 생각하면 서글퍼져 / 惆悵司成已上仙
[주D-001]장사(張槎) : 장건(張騫)의 뗏목이라는 말로, 사신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한 무제(漢武帝) 때에 장건이 뗏목을 타고 은하수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인데, 그의 성씨가 또한 장씨이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주D-002]약해(若海) : 안 개 낀 바다처럼 호한하다는 호약연해(浩若煙海)의 준말로, 수많은 서책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혹은 호여연해(浩如煙海)라고도 하는데, 송(宋)나라 유극장(劉克莊)의 시에 “엄청나게 많은 서책이 산처럼 쌓였는데, 종이 위의 옛사람은 불러도 돌아오지 않네.[浩如煙海積如山 紙上陳人叫不還]”라는 표현이 나온다. 《後村集 卷4 題齋壁》
3월 8일에 주상 전하가 천동(泉洞)으로 이어(移御)하여, 고(故) 재상 허강(許綱)의 저택을 궁궐로 삼았다. 새벽에 일어나 낯을 씻고 머리를 빗은 다음에, 제군(諸君)의 반열에 나아가려 하면서 한 수를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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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하도다 바닷가 봉해진 강역이여 / 表海封疆大
웅장하도다 도읍지 개성의 지형이여 / 開城體勢雄
용이 서렸나니 지킬 곳이 예 아닌가 / 龍盤知有守
후손에게 무궁토록 은택을 끼치리라 / 燕翼及無窮
어딜 봐도 대지에 부옇게 뜬 봄의 기운 / 遍地春浮氣
새벽에 맑은 티끌이 바람 따라 일어나네 / 淸塵曉起風
군에 봉해진 은혜 특별하기도 하건마는 / 封君蒙異渥
축원하는 나의 노래 멋지지 못해 부끄럽소 / 頌禱愧非工
[주D-001]용이 서렸나니 : 도성의 웅장한 지세를 말할 때 흔히 “용이 서린 듯하고 범이 웅크린 듯하다.[龍盤虎踞]”는 표현을 쓰는데, 제갈량(諸葛亮)이 말릉(秣陵) 즉 남경(南京)의 형세를 살펴보고 이렇게 말한 것에서 유래한다.
비를 노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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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는 부슬부슬 그쳤다 또 내렸다 / 小雨濛濛止又來
백화는 난만해라 무덕무덕 비단일세 / 群花爛熳錦成堆
높은 누각에 올라 구경하려 하던 차에 / 欲登高閤將游目
문득 지은 시 벌써 환골탈태 됐군그래 / 便得新詩已奪胎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을 하늘 가득 봄빛이여 / 春色滿天收不盡
이 경치 물 따라 흘러가면 되돌리기 어려우리 / 年光逐水換難回
공부를 생각나게 하는 아침에 붉게 젖은 모습 / 曉看紅濕思工部
아직도 남은 꽃향기가 사방팔방에 퍼지누나 / 賸馥遺芳徧八垓
[주D-001]공부(工部)를 …… 모습 : 가 랑비에 살포시 젖어 평소보다 무겁게 축 늘어져 있는 붉은 꽃가지들을 보고는, 두 공부(杜工部) 즉 두보(杜甫)의 시에 “아침에 일어나 붉게 젖어 있는 곳을 보라, 금관성에 꽃이 무겁게 매달려 있으리니.[曉看紅濕處 花重錦官城]”라는 구절을 연상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10 春夜喜雨》
꽃구경하는 벗님네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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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시를 잘하는 꽃구경 벗님네들 / 看花有伴盡能詩
도처에 사람 만나면 함께 술잔 든다오 / 到處逢人共擧巵
자운의 적막을 굳이 고집할 필요 있소 / 不與子雲同寂寞
장수의 지리를 배우는 것이 훨씬 낫지 / 却從莊叟學支離
며칠 동안 광풍으로 붉은꽃 나무에 나부끼고 / 狂風累日紅飄樹
간밤의 비 맑게 개자 초록빛이 못에 가득 / 宿雨初晴綠滿池
무상한 인생 백년 세월 이제 반이 넘은 때 / 浮世百年今過半
사양 마오 수레 달리며 밤에 줄짓는 일을 / 莫辭飛蓋夜追隨
[주D-001]자운(子雲)의 적막(寂寞) : 세 상과 어울리지 못한 채 늘 빈궁한 속에서 오직 저술에만 몰두하는 것을 말한다. 자운은 한(漢)나라 학자 양웅(揚雄)의 자(字)인데, “평소 가난한 살림살이에 술을 좋아했는데도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었다.[家素貧耆酒人希至其門]”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 그의 〈해조(解嘲)〉에 “적막이야말로 덕을 지키는 집이 된다.[惟寂惟寞 守德之宅]”는 말이 나오고, 또 〈해난(解難)〉에 “적막을 주인으로 삼는다.[寂寞爲尸]”는 말이 나오는 등 적막이라는 말을 꽤나 애용하였으므로, 그가 왕망(王莽) 때에 천록각(天祿閣) 위에서 몸을 던져 자결하려다가 부상을 당했을 때에도 “오직 적막했기 때문에 잘못 알고서 누각 위에서 몸을 던졌다.[惟寂寞 自投閣]”는 조롱을 받기도 하였다. 《漢書 卷87上 揚雄傳》
[주D-002]장수(莊叟)의 지리(支離) : 장 수는 장자(莊子)를 말하고, 지리는 지리소(支離疏)의 준말이다. 지리소는 장자가 꾸며 낸 인물로, 몸은 비록 불편해도 정신은 충실하게 유지하면서 국가의 명에 시달림을 받지 않는 자유인의 비유로 곧잘 쓰이는데, 《장자》 인간세(人間世)에 “꼽추인 지리소는, 국가에서 무사를 동원할 적에도 활개를 치고 다니며, 큰 공사를 일으킬 적에도 병신이라고 제외되는데, 병자에게 곡식을 나눠 줄 때면 으레 3종(鍾)의 곡식과 열 다발의 땔나무를 받곤 하였다.”는 말이 나온다.
[주D-003]사양 …… 일을 : 풍 광 좋은 이 시절을 놓치지 말고 밤까지 실컷 노닐어 보자는 말이다. 삼국(三國) 시대 위(魏)나라 조식(曹植)의 시에 “서원에서 노니는 청명한 이 밤, 수레 달리며 서로들 줄지어 따르누나.[淸夜遊西園 飛蓋相追隨]”라는 구절이 나온다. 《文選 卷20 公宴》
엊저녁에 하성(夏城)의 성 선생(成先生)이 기로회(耆老會)를 마련하고는 문에 와서 초청하였으므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시 한 수를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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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날씨 흐려 병든 뼈 욱신거리더니 / 昨夜天陰病骨酸
아침에 더욱 느끼겠네 기거하기 어려움을 / 曉來更覺起居難
기로를 모시려 하는 것이 어찌 술 때문이랴 / 欲陪耆老非耽酒
아동을 곧장 불러 의관을 반듯이 차렸노라 / 旋喚兒童爲整冠
도리가 활짝 피는 것은 열흘을 못 넘겨도 / 桃李盛時無十日
풍운의 이 경회는 삼한에 길이 전해지리 / 風雲慶會亘三韓
세월이 자꾸만 바뀌는 것이 유수와 같으니 / 年光荏苒如流水
꽃 앞에서 옥쟁반 씻는 일 무슨 해가 되리 / 豈害花前洗玉盤
[주D-001]풍운의 이 경회 : 훌륭한 임금과 신하가 만난 성대한 시대라는 뜻으로,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 구오(九五)에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雲從龍 風從虎]”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2]세월이 …… 되리 : 무 상한 세월 속에서 꽃 피는 계절을 맞아 연회에 참석해서 풍류를 즐겨 보는 것도 나쁠 것이 없으리라는 말이다. 두보(杜甫)의 시에 “대숲에 차려진 주방에선 옥쟁반을 씻고, 꽃 옆에 모여 선 말들은 모두가 황금 안장.[竹裏行廚洗玉盤 花變立馬簇金鞍]”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11 嚴公仲夏枉駕草堂兼携酒饌》
하성(夏城)의 자리에 나아갔더니 시중(侍中) 제로(諸老)가 모두 참석한 가운데 오직 곡성(曲城) 한 분만 병으로 빠졌으므로 다음 날에 졸구(拙句) 한 수를 지어서 기록해 증정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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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이 지금 태평 시대를 누리고 있는지라 / 三韓當此太平期
명절의 멋진 경치도 전보다 좋게 보이기만 / 美景良辰勝舊時
더구나 일년 중에 봄날의 호시절 맞았으니 / 況是一年春好處
원로들 모여 날마다 즐기는 것도 무방할 터 / 不妨諸老日相追
기쁜 마음 북돋우는 피리와 가야금 연주요 / 管絃節奏懽情得
병든 치아 씹기 편한 산과 바다의 진미였네 / 山海珍羞病齒宜
세상일은 진선진미가 원래 어려운 것인가 봐 / 世事由來難盡美
곡성이 몸이 불편해서 상귀를 벗하고 계셨으니 / 曲城微恙伴床龜
[주D-001]상귀(床龜) : 침 상을 받친 거북이라는 뜻으로 은자(隱者)의 와구(臥具)를 가리킨다. 옛날 남방(南方)의 한 노인이 자기 침상을 거북이로 받쳐 놓고 20여 년을 지내다가 죽었는데, 그때까지도 거북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史記 卷128 龜策列傳》
시골 사람이 말을 타고 구정(毬庭)을 지나가던 중에 어사(御史)를 만나 체포되었는데, 나에게 구제해 달라고 글을 요청하기에 급히 붓을 들어 용서를 청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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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사람의 교만함이 또한 정도를 넘었도다 / 野人驕亦甚
말을 타고서 궁궐 문을 버젓이 지나가다니 / 騎馬過宮門
게다가 홀연히 청총이 지나는 걸 봤는데도 / 忽値靑驄過
아랑곳하지 않다니 그 사람 정말 바보로세 / 不知眞彼昏
정상을 살피면 고의가 아닌 과실범이 분명하니 / 原情應誤犯
형법을 적용한다 해도 가볍게 논죄해야 할 터 / 按法在輕論
만번 용서를 비나니 부디 가엾게 봐주시어 / 萬乞垂憐察
앞에 불러다 좋은 말로 한마디 해 주시기를 / 呼前一賜言
[주D-001]청총(靑驄) : 푸 른 털과 흰 털이 뒤섞인 부루말을 가리키는데, 종종 어사(御史)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후한(後漢) 환전(桓典)이 시어사(侍御史)가 되어 권세가들도 두려워하지 않고 법대로 엄격히 처리하자, 그가 타고 다니는 청총마가 보이기만 하면 사람들이 모두 피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後漢書 卷37 桓典列傳》
감회를 서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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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 너무도 쇠해서 물 새는 배와 같은지라 / 甚矣吾衰似漏舟
환단의 헝겊으로 막고 물속에 둥둥 떠다닐 뿐 / 還丹爲袽泛中流
밝은 달 싣고 올 때에나 서로 걸맞다 할까 / 載來明月偏相稱
미친 바람 혹 만나면 걱정이 태산 같을밖에 / 遇着狂風大可愁
선서의 향당이 겁해에 떠서 손짓하고 / 善逝香幢浮劫海
장생의 패궐이 영주를 밝혀 준다 해도 / 長生貝闕照瀛洲
두 곳으로는 떠나 볼 생각 원래 없어서 / 兩途自是無心去
수사 따라 되돌아오니 머리칼은 이미 가을 / 洙泗沿回鬢已秋
[주D-001]이 …… 뿐 : 몸 이 쇠하고 병들었기 때문에 약을 먹고서야 겨우 지탱하고 있다는 말이다. 《주역》 기제(旣濟) 육사(六四)에 “물 새는 곳을 헝겊으로 막고 종일토록 조심한다.[繻有衣袽 終日戒]”고 하였는데, 정전(程傳)에 “배에 새는 곳이 있으면 헝겊 조각으로 막는다.[舟有罅漏則塞以衣袽]”고 해설한 말이 나온다. 환단(還丹)은 복용을 하기만 하면 바로 신선이 된다는 환혼단(還魂丹)의 준말로, 보통 중병을 치료하는 양약(良藥)의 뜻으로 쓰인다.
[주D-002]선서(善逝)의 …… 손짓하고 : 부 처의 배가 고해(苦海) 위에 떠서 깃발을 나부끼며 중생들을 고통 없는 피안(彼岸)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뜻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선서는 부처 십호(十號)의 하나로, 피안의 세계로 잘 떠나서 다시는 생사의 고통을 받지 않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향당(香幢)은 향기로운 깃발이라는 뜻이고, 겁해(劫海)는 고통으로 가득 찬 끝없는 바다라는 뜻인데, 《화엄경(華嚴經)》 2권에 “부처가 끝없이 광대한 겁해에서 중생을 위하여 깨달음을 구하였다.[佛於無邊大劫海爲衆生 故求菩提]”는 말이 나온다.
[주D-003]장생(長生)의 …… 해도 :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술법을 터득한 신선들이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영주(瀛洲)에서 보라색 조개와 주옥으로 장식된 궁궐에서 산다는 말로, 도교(道敎)의 가르침을 가리킨다.
[주D-004]수사(洙泗) : 중국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두 개의 강물 이름으로, 공자의 고향에 가깝고 또 공자가 그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유가(儒家)의 대명사로 쓰인다.
강릉 부사(江陵府使) 유호(柳瑚)가 부임하면서 작별을 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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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으로 말하면 앞에는 바다 뒤에는 산천 / 江陵控海負山川
양 옆을 끼고 멋진 경치 이루 셀 수 없는 곳 / 無數奇觀夾兩邊
백성들이 오고의 노래 부르게만 한다면야 / 儻使居民歌五袴
다시 신선 찾아 다른 데 갈 필요 있으리요 / 更從何地覓神仙
[주D-001]백성들이 …… 한다면야 : 지 방 백성들에게 선정(善政)을 베풀어 칭송을 받는 것을 말한다. 동한(東漢)의 염범(廉范)은 자(字)가 숙도(叔度)인데, 촉군 태수(蜀郡太守)로 부임하여, 금화(禁火)와 야간 통행금지 등 옛 법규를 개혁하여 주민 편의 위주의 정사를 펼치자, 백성들이 “우리 염숙도여, 왜 이리 늦게 오셨는가. 불을 금하지 않으시어 백성 편케 되었나니, 평생 속옷도 없다가 지금은 바지가 다섯 벌.[廉叔度 來何暮 不禁火民安作 平生無襦 今五袴]”이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後漢書 卷31 廉范列傳》
3 월 12일에 육우(六友) 김경지(金敬之)와 도은(陶隱) 이자안(李子安)의 초청을 받고 한 청성(韓淸城)과 함께 정포은(鄭圃隱)의 산정(山亭)에서 꽃구경을 하기로 하였는데, 포은이 사명(使命)을 받고 출타 중이었으므로 봉선사(奉先寺)의 송강(松岡)으로 가게 되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포은이 돌아왔고, 판사(判事) 권주(權鑄)와 판사 민제(閔霽)와 판사 이호연(李浩然)과 판사 이사영(李士穎)이 또 왔는데, 이들은 모두 경지와 미리 약속을 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아들 종학(種學)을 급히 보내 동년(同年) 정원재(鄭圓齋)를 불러오게 하였으며, 동년인 판서 박진록(朴晉祿)과 판사 이석지(李釋之)와 계우(契友)인 판서 최원유(崔元儒)와 우윤(右尹) 이서원(李舒原)도 모두 경지의 초청을 받고 자리에 모였다. 소나무 아래에 바람이 많이 불었으므로 장막을 치고 피하면서 연구(聯句)를 짓고 술잔을 주고받노라니 해가 벌써 지려 하였다. 이 판사가 저녁밥을 차려 주어 배불리 먹고 취한 뒤에 달빛을 타고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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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헤어진 뒤 머리칼 어느새 희끗희끗 / 天下分離鬢二毛
소강의 시대에 소요유를 함께 즐기지 않으리요 / 小康胡不共逍遙
명절 때마다 여러분과 함께 모이는 이 자리에 / 良辰每與諸公會
노물이 맨 먼저 육우의 부름을 받았다나요 / 老物先承六友招
홀로 우뚝 선 듯해서 솔에 청풍이 불어오나 봐 / 松樹來風如特立
햇빛 비치는 숲의 꽃은 전혀 나부끼지 않는데 / 林花映日未全飄
후생이 두려워할 만하니 이 몸은 슬슬 떠나가서 / 後生可畏吾將去
거룩한 조정을 찬미하며 시나 한 수 읊어야겠네 / 只把新詩美聖朝
[주D-001]소강(小康)의 시대 : 요순(堯舜)의 태평 시대와 같은 대동사회(大同社會)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시대로, 우(禹)ㆍ탕(湯)ㆍ문(文)ㆍ무(武)의 시대같이 소란하던 세상이 어느 정도 안정된 시기를 말하는데, 《예기》 예운(禮運)에 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주D-002]육우(六友) : 김 구용(金九容)의 당호(堂號)로, 자(字)는 경지(敬之)이다. 육우는 소강절(邵康節)의 풍(風)ㆍ화(花)ㆍ설(雪)ㆍ월(月)에 강(江)과 산(山)을 합한 것인데, 《목은문고》 제3권 〈육우당기(六友堂記)〉에 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주D-003]홀로 …… 봐 : 한유(韓愈)의 〈백이송(伯夷頌)〉에 “우뚝 서서 홀로 걸어간 사람[特立獨行]”이라는 말이 나오고, 또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백이는 성인 가운데 맑은 분이다.[伯夷聖之淸者也]”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송헌(松軒) 이 아상(李亞相)이 집에 찾아와서 술자리에 초청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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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 가득 도리꽃 비단 병풍 속에 / 滿城桃李錦屛中
창백한 얼굴에 흰머리 늙은이는 / 一箇蒼顔白髮翁
좋은 사람 만나면 손잡고 따라가서 / 邂逅可人携手去
말발굽 닿는 대로 낙화를 밟는다오 / 馬蹄隨處踏殘紅
누차 산천의 맹서에 참여한 우리 송헌 / 松軒累與山川誓
보전도 원래 필묵의 공이 있어서였지 / 寶典元憑翰墨功
부끄러워라 불경 뒤에 졸문을 써 놓고는 / 自愧鄙詞題卷尾
명사들을 따라가서 춘풍에 또 취하다니 / 又隨群彦醉春風
[주D-001]누차 …… 있어서였지 : 송 헌 이성계(李成桂)가 무장(武將)으로서 국가에 공을 세워 여러 차례 공신으로 봉해졌을 뿐만 아니라, 문예 방면에도 관심이 깊어서 불경을 간행하기도 하였다는 말이다. 한 고조(漢高祖)가 공신에게 나라를 봉해 주면서 “황하가 말라붙어 허리띠처럼 되고 태산이 닳아 없어져 숫돌처럼 될 때까지 그대에게 봉한 나라를 영원히 보존시켜 후손에게 미치게 하리라.[黃河如帶 泰山若礪 國以永存 爰及苗裔]”라고 맹서한 고사가 있다. 《史記 卷18 高祖功臣侯者年表序》 또 보전(寶典)은 불경(佛經)을 가리키는데, 《목은시고》 제30권에 〈어제 상의(商議) 이송헌(李松軒)이 화엄경(華嚴經)의 발문(跋文)을 부탁하면서 술자리를 베풀다.〉라는 제목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을 사ㆍ기유ㆍ신해 삼과(三科)의 제생(諸生)이 나를 좌주(座主)라고 하면서 술과 음식을 갖춰 대접하였다. 이에 익재(益齋) 선생의 사자(嗣子)인 개성공(開城公)을 초청하고, 또 동년(同年)인 안 대부(安大夫)와 정 정당(鄭政堂) 및 선군(先君)의 문생인 박 정당(朴政堂)과 한 첨서(韓簽書)를 초청하여 자리를 빛내게 하였다. 그리고 이 반주(李班主)가 초은(樵隱)의 손자이기 때문에 초은의 제생도 초청을 받고 참석하였으며, 대이부(大姨夫)인 민 개성(閔開城)과 처제(妻弟)인 권 대부(權大夫)도 합석하였다. 삼과의 제생은 나이 순서에 따라 한데 모여 앉았다. 내관(內官)이 왕명을 받들고 와서 궁중의 술을 하사하였으므로 절하고 마시면서 밤까지 자리가 이어졌다. 여관(旅館)에서 내가 이미 취했으므로 자세히 말해 주지는 못하고 대략 충효(忠孝) 두 글자를 들어서 힘쓰도록 당부하였다. 다음 날 대궐에 가서 사은(謝恩)하고는 마음속으로 느껴지는 점이 있기에 그 감정을 노래로 표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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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릉 한 시대의 문장의 종장이신 / 玄陵一代文章宗
익재와 초은 두 분은 참으로 영웅 / 益齋樵隱眞英雄
나로 말하면 개 꼬리에 불과하건만 / 在於穡也狗尾耳
담비를 잇고는 또한 자칭 종공이라네 / 續貂亦自稱宗工
삼과 급제자들 하늘이 기대함이 있어 / 三科群士天有期
장차 변화해서 범처럼 용처럼 될 터인데 / 變化如虎仍如龍
나이 순서에 따라 합좌한 건 오늘이 처음 / 序齒交坐始今日
흰머리의 좌주가 그 가운데 앉았도다 / 白頭座主居其中
정신도 쇠퇴하고 더구나 병도 많은 이 몸 / 精神衰耗況多病
봉군 되어 녹받으니 임금 은혜 두터워라 / 封君受祿君恩濃
광암 생각할 때면 눈물이 비처럼 흐르는데 / 每思光巖淚如雨
천지에 봄바람 부는 것을 또 보게 되었구나 / 又見天地吹東風
봄바람 호탕하게 음악 소리와 조화되고 / 東風浩蕩樂聲合
이어지는 춤사위에 유리잔엔 술이 가득 / 迭舞行酒琉璃鍾
미옥과 같은 귀빈들이 자리를 메운 가운데 / 嘉賓滿座並美玉
개성의 연구는 특히 역옹을 생각나게 했소 / 開城聯句思櫟翁
중관이 왕명 받들고 궁중의 술을 하사함에 / 中官奉旨賜內醞
절하고 마시며 축수했네 화숭처럼 되시기를 / 拜飮祝壽如華嵩
즐겁되 넘치지 않고 화기를 예로 절제하여 / 樂而不淫和以節
뜻과 기운 조화되니 얼마나 중도에 맞았던고 / 志氣浹洽何渢渢
노옹이 너무도 기뻐서 속마음 토로하였노니 / 老翁喜甚吐肝肺
사문의 혈맥이 끝없이 후세에 전해지기만을 / 斯文血脈傳無窮
집안의 일로 말하면 그 이름을 효라 하고 / 在於家門名曰孝
국가의 일로 말하면 그 이름을 충이라 하니 / 在於邦國名曰忠
충과 효는 애당초 나뉠 수 없는 개념이나 / 忠之與孝本一物
물이 곳에 따라 모습이 다름과 같다 하리 / 如水隨地形不同
내가 지금 취해서 해 줄 말을 다 못하니 / 我今醉矣言莫盡
그대들은 책 속에서 정통의 설을 찾도록 / 汝向書中尋正宗
영대가 말끔해져야만 방촌이 진실해져서 / 靈臺灑灑方寸赤
전체와 대용이 다 함께 막힘없이 통하리라 / 全體大用俱流通
나는 본시 혼미하고 그지없이 협소해서 / 我自昏迷狹且小
끓는 물 퍼내 식히니 부끄럽기도 하다마는 / 揚湯止沸面發紅
두려운 우리 후생들 내 기대 얕지 않으니 / 後生可畏望不淺
모쪼록 노력해서 중흥의 공을 세울지어다 / 努力樹立重興功
[주D-001]익재(益齋)와 초은(樵隱) : 이제현(李齊賢)과 이인복(李仁復)의 호이다.
[주D-002]나로 …… 종공(宗工)이라네 : 목 은이 자격도 없으면서 두 분의 뒤를 이어 문장의 종장으로 행세하는 것이 부끄럽다는 뜻의 겸사이다. 진 혜제(晉惠帝) 때 봉작(封爵)을 남발하는 바람에 관(冠)의 장식으로 쓸 담비 꼬리가 부족하자 개 꼬리로 이를 대신했으므로, “담비가 부족하자 개 꼬리로 이었다네.[貂不足狗尾續]”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晉書 卷59 趙王倫列傳》
[주D-003]광암(光巖) : 광암사(光巖寺)를 가리킨다. 현릉과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공민왕의 명복을 비는 사찰이다.
[주D-004]역옹(櫟翁) : 이제현의 또 다른 호이다.
[주D-005]화숭(華嵩) : 화산과 숭산의 병칭으로, 숭고하고 원대함을 나타낼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주D-006]즐겁되 …… 절제하여 : 《논 어》 팔일(八佾)에 “시경(詩經)의 관저편은 즐거우면서도 넘치지 않고, 애처로우면서도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關雎樂而不淫 哀而不傷]”는 말이 나오고, 학이(學而)에 “화기만 알아서 화기 위주로만 하고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역시 행해질 수 없다.[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는 말이 나온다.
[주D-007]끓는 …… 하다마는 : 펄 펄 끓는 물을 퍼냈다가 다시 부어서 끓지 않게 하려는 것처럼, 임시방편으로 일을 처리하여 눈앞의 급한 일만 우선 모면하려고 하는 것이 부끄럽다는 말이다. 한(漢)나라 매승(枚乘)의 〈상서간오왕(上書諫吳王)〉에 “끓는 물을 식히려 할 경우, 한 사람이 불을 때고 있으면 백 사람이 아무리 퍼냈다가 다시 담는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으니, 장작에 붙은 불이 꺼지도록 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欲湯之滄 一人炊之 百人揚之 無益也 不如絶薪止火而已]”라는 말이 나온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백련회(白蓮會)에 갔다가 돌아와서 느낌이 있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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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시중 어르신이 노닐러 나오시질 못해 / 兩侍中翁不出遊
성대한 모임에 아무래도 풍류가 줄어들었네 / 便敎高會減風流
국가가 중히 의지함을 어찌 말로 다하리요 / 國家倚重寧容說
술자리 한가한 시간 쉽게 내시지 못했으리 / 樽酒投閑未易求
세월 따라 한만 남으며 새 시름이 생기는데 / 舊恨新愁隨歲月
꽃은 지고 여린 초록빛 숲 언덕에 가득해라 / 殘紅嫩綠滿林丘
끝내 알겠나니 향화의 인연 얕지 않다는 걸 / 終知香火緣非淺
가을날 국화 감상할 때를 다시 기다려야지 / 更待黃花賞素秋
현화사(玄化寺)의 생공(生公)이 모친을 뵈러 남원(南原)으로 가면서 나를 찾아와 작별을 고하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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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법에 능한 데다 경과에 급제한 우리 생공 / 生公書法入經科
황하 물 쏟듯 하는 유식의 현담은 또 어떻고 / 唯識玄談似決河
남쪽 전라도 땅으로 자모를 뵈려고 떠나는 길 / 南適全羅謁慈母
돌밭에 해마다 가뭄 들어 벼 곡식이 없음이라 / 石田連歲旱無禾
푸른 숲 나는 꾀꼬리 소리 다시금 구르는 때 / 靑林又見流鶯囀
여윈 말에 흰쌀을 바리로 싣고서 떠나시네 / 白粲還將瘦馬駄
사중은 보답해야 할 줄 어느 뉘가 모르리요 / 四重恩誰不知報
천 리 길 급히 달려가는 스님이 부럽기만 하오 / 羨師千里爲奔波
[주D-001]경과(經科) : 고려 때 과거의 하나인 강경과(講經科)의 준말이다.
[주D-002]유식(唯識) : 일 체의 제법(諸法)은 심식(心識)의 표현인 만큼 마음 밖의 대상 역시 내심(內心)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의 불교 용어인데, 이를 주장하는 불교 종파를 유식종ㆍ유가종(瑜珈宗) 혹은 법상종(法相宗)ㆍ자은종(慈恩宗)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목은시고》 제12권 〈회포를 서술하다.〉에 “현화사 가서 유식학(唯識學)을 묻고도 싶고, 그길로 황해도 들어가 수묵을 구하고도 싶네.[欲問瑜珈向玄化因求水墨入黃延]”라는 구절이 보인다.
[주D-003]사중은(四重恩) : 불교 용어로, 부모(父母)와 중생(衆生)과 국왕(國王)과 불(佛)ㆍ법(法)ㆍ승(僧) 삼보(三寶)의 은혜를 말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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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일어났는데도 몸이 여전히 노곤하더니 / 起晏身猶困
드높이 읊조리니 기운이 비로소 안온해지네 / 吟高氣始平
남쪽 누각과 마주한 산 좋기도 하고 / 南樓對山好
북쪽 창가에 부는 바람 맑기도 하군 / 北牖有風淸
창 사이엔 아른아른 아지랑이 그림자요 / 野馬牕間影
베개 위엔 꾀꼴꾀꼴 새들의 노랫소리 / 林鶯枕上聲
흐르는 물 따라 세월은 유유히 지나는데 / 悠悠逐流水
이름을 숨기고 살 만한 곳 어느 곳일까 / 何處可逃名
흰 구름을 보고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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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간에 기대어 파람 불며 백운을 바라보다가 / 嘯倚晴軒看白雲
남쪽 이랑 농사일 어떨지 홀연히 생각났네 / 忽從南畝念耕耘
모두 풍족해야 할 백성의 생활과 국가 재정 / 民生國用須皆足
하늘의 뜻도 사람 마음과 본래 다르지 않겠지 / 天意人心本不分
푸른 바다 푸른 하늘 다 함께 아득하고 / 蒼海碧天俱杳杳
초록 등라 밝은 달빛 분분히 뒤엉킨 곳 / 綠蘿明月共紛紛
늙은 나도 너를 본받아 표연히 떠나고파 / 老吾欲學飄然去
임금님 보좌할 뭇 인재들 원래 있으니까 / 自有群英佐大君
김공립(金恭立)이 복직(復職)을 해서 어버이를 영예롭게 해 드리려고 나에게 말 한마디를 해 달라고 청하였는데, 내 말을 누가 들어 주기나 하겠는가. 이에 시 한 수를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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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버려진 나의 말을 누가 들어 주겠는가 / 久廢言誰聽
처음 태어날 때 천명이 절로 부여되었는걸 / 初生命自貽
나의 거취도 갑작스럽게 이뤄진 것이 아니거니 / 行藏非造次
청탁하는 일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 請托漸乖違
하늘이 어떻게 하든 간에 내 어찌 관여하랴마는 / 天也吾何與
지금이 어떤 때인지는 나도 알 수 있고말고 / 時乎予可知
봄바람이 불어오다 다하려 하는 이때 / 春風吹欲盡
어버이 생각하는 그대가 애석할 뿐이로다 / 惜汝念庭闈
[주D-001]처음 …… 부여되었는걸 : 왕 이 새로 즉위하여 행하는 정사가 벌써 바람직하지 못하니 앞으로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서경》 소고(召誥)에 “왕께서 이제 처음 정사를 행하게 되셨습니다. 아, 이는 마치 처음 태어난 자식이 처음부터 선을 행하면 하늘이 밝은 명을 부여해 주시는 것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이 밝은 명을 내려 주실지, 길흉을 명하실지, 오랜 햇수를 주실지는 지금 우리의 처음 정사에 달렸다고 할 것입니다.[王乃初服 嗚呼 若生子 罔不在厥初生 自貽哲命 今天其命哲 命吉凶 命歷年 知今我初服]”라고 소공(召公)이 성왕(成王)에게 말한 내용이 나온다.
흰 머리카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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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을수록 점덤 더 드물어지는 흰 머리칼 / 白髮梳來漸漸稀
눈처럼 분분히 옷 위에 잘도 달라붙누나 / 紛紛如雪巧粘衣
노처는 대머리 되겠다 자못 의아해하는데 / 老妻頗訝頭將禿
동자의 말로는 얼굴이 아직도 살졌다나 / 童子猶言面尙肥
푸른 산빛 비칠 때면 그렇게 쇄락하다가도 / 映得靑山何洒落
밝은 달빛 덮어쓰면 다 함께 희미해지기만 / 披從明月共熹微
인간 세상 오색이 사람 눈 흐리게 않던가 / 人間五色迷人眼
너와 함께 흰색으로 돌아가기만 바라노라 / 只願期將與爾歸
[주D-001]인간 세상 …… 않던가 : 《노자(老子)》 12장에 “오색이 사람 눈을 멀게 한다.[五色令人目盲]”는 말이 나온다.
염 시중(廉侍中)의 죽음을 애도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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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외로 시중 자손을 낸 데다가 / 天生內外侍中孫
총재의 가문에 또 납채를 한 집안이라 / 納采仍於冢宰門
그 부귀 그 영광을 누구라서 견주리요 / 富貴光榮誰並美
공명과 덕업으로 홀로 존귀하였도다 / 功名德業獨爲尊
두 조정의 재상으로 백성들이 의지했고 / 兩朝宅揆民多賴
세 아들이 등과하자 세상이 떠들썩하였지 / 三子登科世共喧
몇 달만 지나면 팔순을 기념했으련만 / 未到八旬唯數月
바람에 나부끼는 만장 더욱 슬프도다 / 倍傷丹旐逐風飜
[주D-001]세 아들 :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염제신(廉悌臣)의 아들인 염국보(廉國寶)와 염흥방(廉興邦)과 염정수(廉廷秀)를 말한다.
곡성(曲城)의 상(喪)으로 인하여 사흘 동안 시 짓는 일을 중단하다가 오늘에야 율시 한 수를 지어 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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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멈춘 삼일 동안 읊는 일도 중지한 채 / 停朝三日輟吟哦
상여 나가는 노래에 그저 마음만 아팠노라 / 只得傷心薤露歌
산맥이 북에서 내려와 복된 땅을 이룬 곳 / 複嶺北來中福地
평원 밖으로 긴 냇물이 동쪽으로 흐르도다 / 長川東去外平坡
적요해라 별원에는 꽃나무 그대로 남았는데 / 寂寥別院留花木
우뚝 솟은 봉분 하나 벽라 덩굴을 비추누나 / 突兀高墳照薜蘿
원로의 죽음은 바로 세도와 관련되건마는 / 耆舊凋零關世道
세월은 어쩌자고 이토록 무심히 흐르는고 / 流光苒苒欲如何
도중(途中)에 지은 시 세 수를 추가해서 기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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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정(桃源亭)
백악 송림에 노닐던 자취 이미 옛날 일 / 栢嶽松林迹已陳
흰머리로 오늘 다시 도원정을 지나가네 / 白頭今日過桃源
성 동쪽 산과 냇물 한결 맑고 수려한데 / 城東山水增淸秀
길 위의 모래 바람이 안개를 또 쓸어 가네 / 路上風沙掃翳昏
피진의 일 배우고자 공연히 흥을 부치노니 / 欲學避秦空托興
위를 논할 것 있나 오래 말 잊고 살았는걸 / 不須論魏久忘言
안중에 선인의 자취 방불하게 보이는 듯 / 眼中髣髴先人跡
멀리 상상되네 금강산 높은 산머리가 / 遙想金剛嶽頂尊
점심밥을 먹으면서 정당(政堂) 이원구(李元紌)와 대부(大夫) 권계용(權季容)이 자리에 있었다.
냇가에 말 풀어놓고 점심을 먹으려니 / 放馬川邊進午飡
음식상에 떨어져 비치는 천마산의 빛 / 天磨山色落杯盤
정당의 멋쟁이 풍채도 응당 녹아 없어지고 / 政堂風彩應相爍
헌부의 서릿발 위엄도 별로 차갑지가 않네 / 憲府霜威不甚寒
어찌 가문 생각해서 비통하게 느끼리요 / 豈爲家門情惻楚
단지 사직 위해서 눈물 줄줄 흘릴 따름 / 只緣社稷涕汍瀾
약간 취하고 나니 인간사 모두 잊고 싶어 / 微酣欲忘人間事
하루 종일 이유 없이 코만 시큰하네그려 / 盡日無端鼻孔酸
송산(松山)을 바라보며
사계절 변함없는 푸르른 저 송악처럼 / 松山蒼翠四時同
국가의 운세 역시 만세토록 풍성하리 / 國祚明知萬世豐
모두 대신의 경세제민 덕분이라 하겠지만 / 盡是大臣經濟力
공을 다시 논하자면 시중공에게 많다 하리 / 論功多在侍中公
[주D-001]피진(避秦)의 …… 살았는걸 : 도 잠(陶潛)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선조들이 진나라의 난리를 피해 처자와 고을 사람들을 데리고 무릉도원인 이 절경에 들어와서 살기 시작했다.[先世避秦時亂 率妻子邑人 來此絶境]”는 말과 “한나라 시대가 있었던 것도 모르니 위진 시대야 더 논할 것이 없었다.[乃不知有漢 無論魏秦]”는 말이 나온다.
[주D-002]안중에 …… 산머리가 : 목은의 부친 이곡(李穀)이 금강산으로 향하는 도중에 도원(桃源)의 역정(驛亭)에서 묵으면서 지은 〈숙도원역(宿桃源驛)〉이라는 시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 시는 《가정집(稼亭集)》 제19권에 실려 있다
절간(絶磵) 윤공(倫公)이 청룡사(靑龍寺)에서 노닐다가 돌아와서는 호로(瓠蘆)에 순채(蓴菜)를 담아 건네주면서 환암(幻菴)의 서신을 또 전해 주었다. 이에 너무도 기쁜 나머지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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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가에 곤히 누워 낮꿈을 즐기던 끝에 / 困臥南牕午夢餘
홀연히 맑고 쾌해지며 눈이 번쩍 뜨였다오 / 忽然淸快眼光舒
호로 속을 뒤집어 쏟으니 계응의 순채요 / 壺中倒載季鷹菜
궤안 위에 봉함을 뜯으니 청룡의 글이로세 / 案上拆開靑龍書
연기 낀 나무 바람 속 꽃은 절서가 신속한데 / 煙樹風花節序速
구름 낀 산속 녹맥에서는 소식이 뜸하여라 / 雲山鹿陌音問疏
여강 동쪽 언덕 위에 절간이 하나 있으니 / 黃驪東岸有梵刹
고기잡이 구경하며 달밤에 얘기 나눴으면 / 夜話月明看釣魚
[주D-001]계응(季鷹)의 순채(蓴菜) : 계응은 진(晉)나라 장한(張翰)의 자(字)이다. 그가 낙양(洛陽)에서 벼슬살이를 하다가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인 오(吳) 땅의 순챗국과 농어 회 맛이 생각나서 벼슬을 그만두고 곧장 내려갔다는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識鑑》
[주D-002]청룡(靑龍)의 글 : 목은과 절친한 벗인 환암의 서신이라는 말인데, 《목은문고》 제13권 〈호법론(護法論) 뒤에 쓰다.〉에 환암이 충주(忠州) 청룡사(靑龍寺)에 있다는 말이 나온다.
[주D-003]녹맥(鹿陌) : 녹야(鹿野)와 같은 말로, 승려인 환암의 거처를 가리킨다. 석가(釋迦)가 성도(成道)한 뒤에 녹야원(鹿野苑)에서 처음으로 사제(四諦)의 법문을 설했다고 한다. 《雜阿含經 卷23》
일찍 일어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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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하늘 우러러 바라보니 오늘도 다시 푸르기만 / 瞻望長空更杳然
엷은 구름 흰 띠를 끌며 끊겼다 이어졌다 할 뿐 / 微雲曳素斷還連
누가 이 고민을 알까 비 내릴 뜻이 전혀 없으니 / 絶無雨意誰知悶
하늘의 마음을 알 수가 있나 혼자서만 가련토다 / 懸隔天心自可憐
사농공상(士農工商) 중에 근본은 바로 농업이요 / 的的四民農是本
여덟 가지 정사 중에도 양식 마련이 우선이라 / 明明八政食居先
공자님도 특별히 날씨를 춘추에 기록하셨는데 / 獜經更有宣尼筆
목로가 시를 읊으려니 오장이 타들어 가는구나 / 牧老吟詩五內煎
[주D-001]여덟 가지 …… 우선이라 : 《서 경》 홍범(洪範)에 “다음 세 번째는 농사에 팔정을 쓰는 것이다.……팔정 중에 첫째는 양식이요, 둘째는 재물이요, 셋째는 제사요, 넷째는 사공이요, 다섯째는 사도요, 여섯째는 사구요, 일곱째는 손님 접대하는 일이요, 여덟째는 군사이다.[次三農用八政……八政 一曰食 二曰貨 三曰祀 四曰司空 五曰司徒 六曰司寇 七曰賓 八曰師]”라는 말이 나온다.
요통(腰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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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글쭈글한 얼굴이야 내가 어찌 상관할까 / 面皺吾何與
거울도 볼 생각 없어 먼지 속에 파묻혔네 / 塵埋鏡欲消
허리가 쑤시는 것은 절로 참기 어려워서 / 腰酸自難忍
기왓장 뜨겁게 달궈 자꾸만 지져 댄다오 / 火烈瓦頻燒
일백 년은 지나갈 듯한 기나긴 하루요 / 百歲經長日
일천 산을 넘어가는 지루한 밤이로세 / 千山度永宵
만약 나라는 존재를 잊을 수만 있다면야 / 若爲忘有我
만물과 어울려 소요할 수도 있으련마는 / 與物共逍遙
유의(有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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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 내려가 한강에서 노닐어 보았으면 / 有意南游漢上流
높이 올라 긴 파람 부니 생각이 유유해라 / 登高舒嘯思悠悠
지금은 그저 축항사두 생각이 앞선다마는 / 只緣縮項槎頭耳
그곳에 가도 강산은 절로 누대를 채우겠지 / 到處江山自滿樓
천명은 기꺼이 순응해야 원래 당연한 일 / 天命固宜甘順受
오생의 행휴를 굳이 탄식할 것이 있으리요 / 吾生何必嘆行休
밝은 달밤 조각배 타고 멀리 떠나면 될 걸 / 扁舟明月終長逝
구구하게 사수시 읊다니 정말 우습구나야 / 笑殺區區賦四愁
[주D-001]축항사두(縮項槎頭) : 살 지고 맛좋은 물고기 이름으로, 사두축경편(槎頭縮頸鯿)이라고도 한다. 등이 활처럼 휘고 청색을 띠고 있으며 회 맛이 특히 좋다고 하는데, 당(唐)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의 〈현담작(峴潭作)〉과 두보(杜甫)의 〈해민(解悶)〉에 소개되면서 유명해졌다.
[주D-002]오생(吾生)의 행휴(行休) :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만물이 때를 만난 것을 부러워하며, 나의 삶이 장차 멈출 것에 감개(感慨)하노라.[羨萬物之得時 感吾生之行休]”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3]사수시(四愁詩) : 후한(後漢)의 장형(張衡)이 하간왕(河間王)의 상(相)으로 나가서 동서남북 사방을 바라보며 울적한 심정을 토로한 시이다. 《文選 卷29》
꾀꼬리 소리를 듣고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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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창가 꾀꼬리 소리 교묘하기 마치 생황 / 北牕鶯語巧如簧
취한 꿈 막 깨고 나니 해는 어느새 뉘엿뉘엿 / 醉夢初回欲夕陽
기억나네 상림에서 옛날에 한번 들었던 일 / 記得上林曾一聽
오색 구름 깊은 궁중 백화 향기 그윽한 곳 / 五雲深處百花香
젊어서 강 마을에 초당 하나 얽었을 때 / 少向江村構草堂
푸른 버들이 위아래로 연못을 비추었지 / 綠楊高下暎池塘
그때 들었던 꾀꼬리 소리와 흡사하건만 / 綿蠻恰似當時聽
한스러워라 내 머리는 서리 내린 듯하니 / 只恨吾頭白似霜
낮 베개에 홀연히 들리는 벗 찾는 소리 / 午枕忽聞求友聲
쇠잔한 인생 그림자만 벗하니 가엾어라 / 自憐孤影伴殘生
일찍이 들으니 지지에 깊은 뜻 있다는데 / 曾聞知止有深意
대학 공부는 언제나 성취할 수 있을는지 / 大學功夫何日成
[주D-001]낮 베개에 …… 가엾어라 : 새 들도 벗을 찾는데, 목은 자신은 정다운 벗도 없이 홀로 지내니 딱하기도 하다는 말이다. 《시경》 소아(小雅) 벌목(伐木)은 친구 간의 우정을 노래한 시인데, 그중에 “새들이 정답게 지저귀나니, 각자 자기 벗을 찾는 소리로다.[嚶其鳴矣 求其友聲]”라는 구절과, “저 새들을 보게나 저들도 벗을 찾지 않나. 하물며 사람인 우리들이 벗을 찾지 않을쏜가.[相彼鳥矣 猶求友聲 矧伊人矣 不求友生]”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2]일찍이 …… 있을는지 : 《시 경》 소아 면만(綿蠻)에 “날렵하게 나는 저 꾀꼬리, 언덕 모퉁이에 머무네.[綿蠻黃鳥 止于丘隅]”라고 한 것과 관련하여, 공자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새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可以人而不如鳥乎]”라고 언급한 일이 있으며, 또 《대학장구》에 “머물 곳을 안 뒤에야 지향할 목표가 정해지고, 지향할 목표가 정해진 뒤에야 마음이 고요해지고, 마음이 고요해진 뒤에야 외물에 동요되지 않을 수 있다.[知止而後有定 定而後能靜 靜而後能安]”는 말이 나온다.
3월 25일에 비 오는 것을 기뻐하며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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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곳에서 운행하는 하늘의 도여 / 杳杳運天道
끝없이 나의 행위를 살펴야 할지로다 / 悠悠觀我生
쇠잔한 민생은 그저 배부르면 그만인데 / 殘生但求飽
단비가 내려 밭갈이를 또 재촉하는구나 / 好雨又催耕
나는야 약으로 지탱하는 쇠하고 병든 몸 / 藥物扶衰病
시나 지어 읊으면서 태평 시대 기릴밖에 / 詩聯表太平
녹음이 짙게 드리운 고요한 정원에서 / 綠陰庭院靜
오똑이 앉아 대낮의 닭 소리 듣노매라 / 危坐聽鷄聲
성곽 위에는 검은 구름이 짓누르고 / 城上濃雲壓
밭두둑 사이엔 물소리 다시 졸졸 / 田間新水生
농사나 배우려 했던 이 누구였더라 / 問誰曾學稼
나는 귀농도 못했으니 유감이로세 / 恨我未歸耕
감추어진 바위산 안개 봉우리요 / 巖岫煙鬟隱
평평해진 방죽 물 거울 수면이라 / 陂塘鏡面平
흰머리로 끝없이 펼쳐지는 감회를 / 白頭無限意
시 읊는 내 목소리에 부쳐 보노라 / 寄我詠詩聲
단비가 홀연히 제때에 내렸으니 / 忽逢時雨至
민생도 이제는 여유가 생기겠군 / 便覺裕民生
무성한 초원에 말을 놓아먹이고 / 豐草馬初牧
고지대에서도 밭 갈 마음 내겠네 / 高田人欲耕
시내에 뜬 꽃잎들은 어디론가 흘러가고 / 溪浮花已盡
구름 이는 나무들은 키가 모두 똑같아라 / 雲起樹俱平
단청 그림 연상되는 이 풍경 위에 / 更似丹靑妙
누가 빗소리 음악을 또 덧붙였는고 / 誰添點滴聲
[주D-001]아득한 …… 할지로다 : 천 도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우리의 행위와 부합하여 어김없이 운행하고 있으니, 특히 임금으로서는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여 어긋남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주역》 관괘(觀卦) 구오(九五)에 “자신의 행위를 살피는 임금이니, 군자면 허물이 없으리라.[觀我生 君子 无咎]”라는 말이 나오고, 그 상(象)에 “자신에게서 나온 행위의 선악을 알려거든 백성의 선악을 보면 된다.[觀我生 觀民也]”는 말이 나온다.
[주D-002]농사나 …… 누구였더라 : 공자에게 농사에 대해서 물어보았다가 소인이라는 평을 받은 제자 번지(樊遲)를 가리키는데, 목은이 번지의 입장에서 그를 변호해 준 말이 《목은문고》 제5권 〈포은재기(圃隱齋記)〉에 나온다.
춘음(春陰)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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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그늘은 아득아득 낮 바람은 산들산들 / 春陰漠漠午風輕
환한 뜨락에 푸르름 짙고 붉음은 쇠잔하고 / 綠暗紅殘小院明
언뜻 내리는 가랑비 보아도 보이지 않는데 / 微雨乍來看不見
홀연히 들리나니 꾀꼬리 소리 두세 마디 / 忽聞黃鳥兩三聲
하늘이 만년에 호젓한 거처 정해 준 덕에 / 天敎晚歲卜居幽
책만 널려 있을 뿐 세상일 모두 잊었어라 / 書冊紛紛萬事休
마루 뒤 마루 앞 많이도 서 있는 늙은 나무 / 堂北堂前多老樹
가장 높은 가지 위에선 구구구 비둘기 소리 / 最高樹上有鳴鳩
봄이 질 때야 원정이 채소 씨를 뿌리다니 / 春盡園丁種菜遲
묵은 뿌리에 싹 났어도 아직은 여리기만 / 宿根雖出未敷㽔
늙은 이 몸 애당초 경영할 줄도 모르면서 / 老翁本不知區畫
밥상에 봄채소 좀 올려 보라고 채근하네 / 却要盤飡□□□
유감(有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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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봄바람 맞으면서 한번 새로 웃나니 / 坐對東風一笑新
천지는 그래도 노쇠한 이 몸 포용해 주시니까 / 乾坤容此老衰身
문장 같은 작은 기예 점점 세속을 닮아 가고 / 文章小技漸趨俗
기두 같은 헛된 이름 실로 남에게 누 끼치네 / 箕斗虛名眞累人
흐르는 물 뜬구름이야 남기는 자취 있으랴만 / 流水浮雲沒蹤跡
지는 꽃 우는 새는 지금 정채(精彩)를 발하는 중 / 落花啼鳥有精神
여생에 다시 느끼나니 임금님의 중한 은혜 / 餘生更感君恩重
강변 농촌 오두막 있어 굶고 살진 않을 테니 / 江上田廬不患貧
[주D-001]문장 …… 기예 : 문 장을 짓는 것은 성인의 도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작은 기예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자신의 문장을 낮춰서 표현할 때 조충소기(雕蟲小技)라는 말을 흔히 쓴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문장은 하나의 작은 기예일 뿐, 도에 비교하면 귀할 것이 하나도 없다.[文章一小技 於道未爲尊]”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15 貽華陽柳少府》
[주D-002]기두(箕斗) …… 이름 : 실 제 내용은 없이 이름만 지닌 것을 말하는데, 《시경》 소아(小雅) 대동(大東)의 “남쪽 하늘에 기성이 떠 있어도 나락을 까불질할 수 없고, 북쪽 하늘에 북두성이 있어도 술을 떠 마실 수 없네.[維南有箕 不可以簸揚 維北有斗 不可以挹酒漿]”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에 “그대의 묘한 재질은 종묘의 제기와 같은데, 나의 헛된 이름은 기두와 영락없네.[嗟君妙質皆瑚璉顧我虛名俱箕斗]”라는 구절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28 次韻三舍人省上》
동년(同年) 박 밀직(朴密直) 진록(晉祿) 을 경하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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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하늘을 비치는 듯한 우리 국간의 문장 / 菊澗詞華月照天
계수 가지 꺾을 적에 내가 앞선 게 부끄러워 / 同攀丹桂媿吾先
몇 년 동안 질병으로 중간에 막히긴 하였지만 / 數年疾病雖中否
양부의 빛나는 자리 이미 좌측으로 옮기셨는걸 / 兩府光榮已左遷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장년과 같은 엄친의 얼굴 / 最幸嚴顔如壯歲
화려한 잔치에 기쁨의 눈물 멀리서도 알겠도다 / 遙知喜淚洒華筵
사문의 흥망성쇠야 염려할 것이 뭐 있으리요 / 斯文興替何須念
총재가 오늘 아침에 또 현인을 추천하였으니 / 冢宰今朝又進賢
[주D-001]국간(菊澗) : 박진록의 당호(堂號)이다. 《목은문고》 제3권에 목은이 그를 위해 지어 준 〈국간기(菊澗記)〉가 있다.
[주D-002]계수 가지 …… 부끄러워 : 함 께 급제할 적에 목은이 그보다 좋은 성적을 얻은 것이 계면쩍다는 말이다. 진(晉)나라 극선(郄詵)이 현량(賢良) 대책(對策)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한 뒤에 “계림의 나뭇가지 하나를 잡아 꺾고, 곤산(昆山)의 옥돌 조각을 손에 쥐었다.[桂林之一枝昆山之片玉]”고 자신을 지칭한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52 郤詵列傳》
[주D-003]양부(兩府)의 …… 옮기셨는걸 : 좌 천은 보통 벼슬이 강등되는 것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특별히 영전(榮轉)의 뜻으로 쓴 것이 주목된다. 《노자(老子)》 31장에 “군자가 평시에는 왼쪽을 귀하게 여기다가, 전시에는 오른쪽을 중시한다.[君子居則貴左用兵則貴右]”는 말과, “길한 일에는 좌측을 윗자리로 여기고, 흉한 일에는 우측을 숭상한다.[吉事尙左 凶事尙右]”는 말이 나온다.
즉사(卽事) 3수(三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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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 청향이 큰 손님 같다면 / 黃卷淸香如大賓
청산 유수는 단정한 사람이라 / 靑山流水是端人
게다가 중성현으로 일을 삼는데 / 更將中聖賢爲事
흠이라면 귀신 울릴 시를 못 짓는 것 / 只欠新詩泣鬼神
기러기 손님 올 때면 고향 생각 동하는데 / 鄕情每動鴈來賓
말 빌려 주던 세상 멀어진 것이 놀라워라 / 世遠堪驚馬借人
조각배 구해서 곧장 돌아가고 싶은 마음 / 欲買扁舟便歸去
강 귀신에게 어찌 꼭 돛 바람 물어볼까 / 風帆何必問江神
녹명 부른 소싯적에 잔치 손님 되었는데 / 鹿鳴少也讌嘉賓
관직 지닌 지금도 주인의 은혜 입고 있네 / 爵秩今猶荷主人
하얀 귀밑머리에 두 눈도 자꾸만 어른거려 / 兩眼昏花雙鬢白
태평가 부르려 해도 기운이 좀 빠지는구먼 / 太平歌頌少精神
[주D-001]황권(黃卷) …… 사람이라 : 맑 은 향기와 같은 성현의 말씀이 담겨 있는 경서를 마치 큰 손님을 맞는 것처럼 공경히 대하고, 푸른 산과 흐르는 물 등 자연을 단정한 벗으로 여겨 사귄다는 말로, 하는 일 없이 한유하게 지내는 목은의 심정을 표현한 말이다. 《논어》 안연(顔淵)에 “문밖을 나가서는 큰 손님을 대하는 것처럼 하고,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드는 것처럼 해야 한다.[出門如見大賓使民如承大祭]”는 공자의 말이 나오고,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윤공타는 단정한 사람이니, 그가 취한 벗도 반드시 단정한 사람일 것이다.[夫尹公之他端人也 其取友必端矣]”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중성현(中聖賢) : 술 을 마시고 취하는 것을 말한다. 주객(酒客)들이 청주(淸酒)를 성인(聖人)에 비유하고 탁주(濁酒)를 현인(賢人)에 비유하곤 하는데, 삼국 시대 위(魏)나라 서막(徐邈)이 금주령을 어기고 술을 마시다 적발되자 “성인에게 도취되었다.[中聖人]”고 익살을 부린 고사가 전한다. 《三國志 卷27 魏書 徐邈傳》
[주D-003]기러기 …… 동하는데 : 만 추(晚秋)의 계절이 오면 객지 생활이 새삼 고달프게 느껴지면서 고향이 더 그리워진다는 말이다. 《예기》 월령(月令)에 “늦가을에는 기러기가 손님으로 찾아온다.[季秋之月 鴻鴈來賓]”고 하였는데, 그 주(註)에 “기러기는 북쪽이 고향인 만큼 중국에 오는 것이 마치 객지에 온 손님과 같다고 한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주D-004]말 …… 놀라워라 : 세 상에 아름다운 풍속이 없어지고 인심이 야박해진 것을 말한다.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그래도 예전에는 말을 가진 사람이 남에게 타도록 빌려 주곤 하였는데, 지금은 그런 미풍이 없어지고 말았다.[吾猶及有馬者借人乘之 今亡矣夫]”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05]녹명(鹿鳴) …… 되었는데 : 향 시(鄕試)에 입격(入格)했을 때부터 벌써 나라의 특별한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당(唐)나라의 공사(貢士) 제도를 보면, 11월에 각 군현(郡縣)에서 과거 시험을 보이고 나서, 여기에 급제한 사람에게 향음주례(鄕飮酒禮)를 베풀어 주며 《시경》 소아(小雅)의 녹명(鹿鳴)을 노래하게 하는 관례가 있었는데, 한유(韓愈)의 〈송양소윤서(送楊少尹序)〉에 “양후(楊侯)가 이제 막 관례(冠禮)를 마치고는, 향리에서 과거에 급제한 뒤에 녹명을 부르면서 왔다.[擧於其鄕歌鹿鳴而來]”는 대목이 나온다.
[주D-006]관직 …… 있네 : 조 정의 고관이 된 지금도 임금의 보살핌을 계속 받고 있다는 말이다. 남조(南朝) 시대 송(宋)나라 포조(鮑照)의 〈의고(擬古)〉 3수 중 두 번째 시에 “임금님 은혜를 이미 받은 위에, 영윤의 보살핌을 또 받았도다.[旣荷主人恩 又蒙令尹顧]”라는 표현이 나온다.
앉아서 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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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길고 일은 없어 앉아서 시만 읊조리다 / 日長無事坐長吟
비 그친 텅 빈 집에서 푸른 숲 보고 있었다오 / 雨罷虛堂對碧林
마음이 가는 곳이 있어 활발히 움직이던 차에 / 心有所之方活動
졸음이 갑자기 덮쳐 와서 그만 꿈나라 속으로 / 氣來相襲便昏沈
졸리면 매번 꾸벅꾸벅 옆 사람이야 웃건 말건 / 低昻每任傍人笑
항상 걱정은 게으른 모습 상제께서 혹 보실까 / 怠惰常驚上帝臨
건곤의 기운 통하는 경지 알아보고 싶으시요 / 欲識乾坤交泰處
훈훈한 남풍이 오현금 속에 불어오고 있더이다 / 熏風吹入五絃琴
[주D-001]건곤(乾坤)의 …… 싶으시요 : 《주역》 태괘(泰卦) 상(象)에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통하는 것이 태괘이다. 제왕은 이로써 천지의 도를 북돋우고, 천지의 일을 도와 백성을 좌우한다.[天地交泰 后以 財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以左右民]”는 말이 나온다.
[주D-002]훈훈한 …… 있더이다 : 순 (舜) 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어 남풍가(南風歌)를 부르면서 “훈훈한 남쪽 바람이여, 우리 백성의 수심을 풀어 주기를. 제때에 부는 남풍이여, 우리 백성의 재산을 늘려 주기를.[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이라고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禮記 樂記》
성남(城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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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 남쪽 외따로 떨어진 하나의 구역 / 城南一區僻
고요함 좋아해 내 마음도 가라앉누나 / 愛靜我心降
나이 많은 나무는 지붕 위로 우뚝 솟고 / 老樹高於屋
뭇 산봉우리들은 창문에 바짝 다가서고 / 群峯近在牕
들 구름도 곡령으로 돌아가는 이때 / 野雲歸鵠嶺
뜨락의 달빛이 지금 여강에도 비추겠지 / 庭月照驪江
홀로 서서 긴 휘파람 불어제치니 / 獨立舒長嘯
맑고 호쾌한 기분이 가슴에 절로 가득 / 淸豪自滿腔
느껴지는 점이 있기에 유항(柳巷)에게 증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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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목은 쇠해 빠져 머리는 서리 내린 듯 / 老牧摧頹鬢似霜
다락에 기대어 읊조리며 아득히 굽어보오 / 倚樓吟嘯俯蒼茫
꽃은 지고 새는 울고 봄도 막을 내리려 하니 / 落花啼鳥春將盡
날은 따뜻 바람은 훈훈 낮 시간 길어지겠구려 / 暖日和風晝漸長
계찰은 주나라 예악을 두루 살펴보았고 / 季札徧觀周禮樂
연명은 진나라 문장을 혼자 차지했지 않소 / 淵明獨擅晉文章
여생에 흥을 의탁함이 어찌 이유가 없으리까 / 餘生托興非徒耳
그래서 매번 그대에게 주정을 부리는가 보오 / 每向西隣發酒狂
[주D-001]계찰(季札)은 …… 살펴보았고 : 춘추 시대 오(吳)나라 공자 계찰이 열국(列國)에 사신으로 나가서 풍속을 살폈는데, 특히 노(魯)나라에서 주(周)나라의 음악을 듣고 관찰하며 적절한 평가를 내린 일화가 유명하다. 《史記卷31 吳太白世家》
총지종(摠持宗) 도대 선사(都大禪師)에게 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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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산의 윤필암은 고찰(古刹) 연화사 / 九龍潤筆古蓮花
백련사와는 고개 하나 노을을 격했을 뿐 / 與白蓮分一嶺霞
북의 신수 남의 혜능 다른 족속 아닌데 / 北秀南能非異族
동쪽 언덕 서쪽 기슭 어찌 남의 집이리요 / 東崖西麓豈他家
유자가 불도를 믿는다면 모른 체해선 안 될 텐데 / 儒門信道難乖矣
스님이 위세를 부린다면 그것이 또한 될 말이요 / 僧籙揚威亦是邪
단지 원하는 것은 담장을 지금부터 헐고 / 但願從今撤屛牆
왕래하며 밤도 굽고 차도 끓여 드시기를 / 往來燒栗或烹茶
[주D-001]윤필암(潤筆菴) : 윤 필은 글을 지어 주는 대가로 받는 일종의 사례금으로써 집필료(執筆料)를 말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8 지평현(砥平縣) 불우(佛宇) 조에 “이색이 왕명을 받들고 나옹의 부도명을 지어 주자, 문도들이 윤필의 재물을 마련하여 사례하였는데, 이색이 그것을 받지 않고 허물어진 절을 수리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윤필암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李穡以王旨撰懶翁浮屠銘 其徒致潤筆物 穡不受使修廢寺 因名之]”라고 하여 윤필암의 유래를 설명한 대목이 나온다. 목은은 나옹의 사리탑이 있는 신륵사(神勒寺)와 회암사(檜巖寺)를 비롯해서, 나옹의 문도들이 묘향산ㆍ금강산ㆍ소백산ㆍ사불산(四佛山)ㆍ치악산(雉岳山)ㆍ용문산(龍門山)ㆍ구룡산(九龍山) 등 일곱 곳에 진당(眞堂)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했을 때에도 모두 기문(記文)을 써 준 인연을 갖고 있다.
[주D-002]백련사(白蓮社) : 목은이 백련회(白蓮會)를 결성하고 원로 및 동료들과 모임을 갖던 사찰을 말한다.
[주D-003]북의 …… 혜능(慧能) : 중 국 선종(禪宗)의 2대 종파인 북종(北宗)의 시조 신수(神秀)와 남종(南宗)의 시조 혜능을 말한다. 달마(達磨)가 중국에 건너온 뒤로 5대를 거쳐서 혜능이 영남(嶺南)에서 돈오(頓悟)를 주장하였고 신수가 영북(嶺北)에서 점수(漸修)를 주장하였으므로 흔히 남돈 북점(南頓北漸)이라고 일컫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의 선불교는 혜능의 남종을 이어받은 것이다.
하재탄(何哉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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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엔 왜적이 죽주를 범하더니 / 往年倭子犯竹州
올해에는 왜적이 다시 춘주를 침입 / 今年倭子侵春州
두 고을 간의 역정은 사오 일 거리 / 兩州驛程四五日
그 중간에 우뚝 솟은 여강의 누대 / 半途突兀驪江樓
여강의 동쪽 언덕에는 벽탑이 서 있고 / 江之東岸甓塔立
그 아래 깊은 소는 물고기들이 뛰노는 곳 / 下有深潭魚所游
대장경 봉안한 건물 도인이 새로 지어 / 道人新起大藏殿
지붕 모롱이 단청빛이 모래섬에 휘황 / 觚稜金碧輝芳洲
대장경 열람하며 남은 날을 보내려고 / 我欲看經送餘日
내가 벌써 염도에서 조각배를 구했지 / 已向鹽島求扁舟
뱃길은 모름지기 좋은 시절을 따라가야 / 舟行要趁好時節
춘풍 속에 낙화가 둥둥 뜬 지금이 적격 / 惠風和暢殘花浮
아뿔싸 홀연히 들리는 위급한 경보 / 忽聞急警心不樂
이 역시 운명이니 누구를 탓할쏜가 / 此亦命也將誰尤
인생의 공명에는 실로 운수가 작용하니 / 人生功名信有數
늘그막에 소중한 건 유유자적하는 것 / 所貴晚景能優游
흥이 나면 갔다가 다하면 돌아오고 / 乘興而往盡而返
삶은 부유요 죽음은 휴식으로 알지니 / 生也若浮死若休
구하는 것이 있으면 어찌 자유인이겠나 / 如其有求不自由
그들은 모두 대수요 나는 고작 비부인걸 / 彼皆大樹吾蚍蜉
내 몸은 본래 천지로부터 나뉘었으니 / 吾身本從天地分
뒤섞여 갈피를 못 잡으면 부끄러운 일 / 紛紛擾擾眞堪羞
그런데 어찌하여 절규를 하게 되었는고 / 何哉何哉至於大叫
순 임금 창오의 구름이 정녕 시름겨워서 / 虞舜蒼梧雲正愁
[주D-001]벽탑(甓塔) : 여주(驪州) 신륵사(神勒寺)의 벽돌로 된 전탑(塼塔)을 말한다. 그래서 신륵사를 벽사(甓寺)라고도 한다.
[주D-002]흥이 …… 돌아오고 : 진 (晉)나라 왕휘지(王徽之)가 눈 내린 밤 산음(山陰)에서 술을 마시다가, 불현듯 섬계(剡溪)에 있는 벗 대규(戴逵)가 보고 싶어지자, 밤새도록 배를 타고 그 집 앞에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왔는데, 그 이유를 묻자 “흥이 일어나서 갔다가 흥이 다해서 돌아왔다.[乘興而行 興盡而返]”고 대답한 고사가 있다. 《世說新語 任誕》
[주D-003]삶은 …… 알지니 : 《장자(莊子)》 각의(刻意)에 “삶이란 부유(浮游)하는 것과 같고, 죽음이란 휴식하는 것과 같다.[其生若浮 其死若休]”는 말이 나온다.
[주D-004]그들은 …… 비부(蚍蜉)인걸 : 혼 자 잘난 체하며 으스대는 조정의 권신(權臣)들 때문에 국가의 정책 결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소외된 목은의 심정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유(韓愈)의 시에 “왕개미가 큰 나무를 흔들어 대다니, 자기 분수를 모르는 것이 가소롭도다.[蚍蜉撼大樹 可笑不自量]”라는 구절이 나온다. 《韓昌黎集 卷5 調張籍》
[주D-005]그런데 …… 시름겨워서 : 목 은 자신을 인정하고 능력을 발휘하게 해 준 공민왕을 생각하면 자기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온다는 말이다. 두보(杜甫)의 시에 “머리 돌려 순 임금 향해 절규하노니, 창오의 구름이 정녕 시름겨워서.[廻首叫虞舜 蒼梧雲正愁]”라는 구절이 나온다. 창오는 순 임금이 묻힌 산의 이름이다. 《杜少陵詩集 卷2 同諸公登慈恩寺塔》
서린(西隣)의 길창군(吉昌君)이 칠원(漆原) 시중(侍中)을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하면서 시중의 아우인 밀직공(密直公)과 나를 불러 합석하게 하였다. 이에 돌아와서 홀로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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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상 겸미는 부양을 하려는 뜻 / 午飡兼味在扶襄
꽃나무 정원 속에 흰 해도 하 길어라 / 花木園中白日長
동방의 달존 모두 손꼽을 정도인데 / 東國達尊皆可數
칠원 홀로 서 계시니 더욱 마음 아파 / 漆原孤立更堪傷
머나먼 바닷길 금릉에 가는 행차여 / 金陵行李海天濶
옥서의 제명도 이젠 잡초에 묻혔으리 / 玉署題名煙草荒
좋은 이웃을 내가 택했다 감히 말하랴 / 敢道里仁能自擇
노년의 생활을 그저 하늘에 감사드릴 뿐 / 老來行止謝蒼蒼
[주D-001]점심상 …… 뜻 : 겸미(兼味)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차린다는 뜻으로 진수성찬을 의미하고, 부양(扶襄)은 부지(扶持)하고 찬양(贊襄)한다는 뜻으로 칠원부원군을 지지(支持)하며 찬조(贊助)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2]옥서(玉署)의 …… 묻혔으리 : 중 원 천하가 명나라의 수중에 들어갔으니, 옛날 원나라 제과(制科)에 급제하여 벼슬했던 화려한 추억도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는 말이다. 당(唐)나라 때 진사과에 합격한 사람들이 자은사(慈恩寺)의 대안탑(大雁塔) 아래에 이름을 기록하여 기념하는 것을 제명(題名)이라고 하였다. 옥서는 한림원(翰林院)의 별칭이다.
저녁이 서늘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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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빛 가득 동산숲에 저녁이 되니 서늘서늘 / 綠滿園林生晚涼
꾀꼬리 고운 노래 속에 오늘도 해가 뉘엿뉘엿 / 黃鸝恰恰又斜陽
겹옷 입고 경쾌히 날 듯 정신도 씩씩해지고 / 袷衣輕擧精神健
시구도 원만히 이루어져 흥미가 진진하도다 / 詩句圓成興味長
외면에서는 벼슬길의 티끌과 먼지가 일어나도 / 宦路塵埃外面起
마음속엔 신선 누대의 바람과 이슬이 들었어라 / 仙臺風露中心藏
늙은 목은도 지금 보니 역시 소쇄옹이라 할까 / 老牧於今亦蕭灑
신선 물병 차고 다니며 마실 것도 없군그래 / 不須更佩飡玉漿
201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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