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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牧隱詩藁) 제35권 번역

천하한량 2010. 1. 8. 03:43

 

목은시고(牧隱詩藁) 35

장단음(長湍吟)

기 사년 12 6일에 순위부(巡衛府)의 제공(提控)인 박() 이 와서 내교(內敎)를 전하였는데, 그 내용은 나에게 장단(長湍)의 새로운 거소(居所)로 나가서 지내라고 명하는 것이었다. 이에 내가 대궐을 향하여 숙배(肅拜)를 하고는 두 분 시중(侍中)에게 글을 올린 다음에 제공과 작별을 하고 말에 올랐다. 대덕산(大德山) 아래에 이르렀을 때 날이 벌써 저물었으므로 감응사(感應寺)에 들어가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하였다. 문생(門生) 유경(劉敬)이 두주(斗酒)를 가지고 와서 위로해 주기에 연거푸 몇 잔을 마셨더니 약간 취기가 돌았다. 잠자리에 들어서 새벽까지 잠에 떨어졌다가 승려가 아침 예불을 하며 치는 쇳송 소리를 듣고서 시를 지었다.

7일 길 가는 도중에

현령(縣令) 문군(文君)이 내방하다.

맹유()가 개경으로 돌아가다.

송헌(松軒) 시중(侍中)에게 부쳐 보내 은혜에 사례하였다.

성랑(省郞) 제형(諸兄)에게 부치다.

절구를 권()에게 부쳐 몸소 따라오는 일을 늦추게 하다.

16일에 삼랑(三郞)이 주식(酒食)을 보내다.

적성(赤城)의 유찬(兪瓚) 판사(判事)가 동아와 우엉을 보내왔기에 우스개 시를 지어서 감사드리다.

유감(有感)

수봉(琇峯)이 찾아왔다가 돌아가다.

18일에

자영(自詠)

삼랑(三郞)이 부꾸미와 병술을 보내다.

자해(自解)

20일에 눈앞의 일을 소재로 하여 시를 짓다.

맹균(孟畇)이 왔다가 또 가다.

윤가관(尹可觀)의 부인 권씨가 쌀과 오이장아찌를 보내오다.

김 상장(金上將)이 오다.

청원을 허락받지 못하고서 혼자 읊다.

안심(安心)

28일에

욕어(欲語)

29일에

송헌(松軒)에게 부치다.

경오년 1 7일에 적성(赤城) 유 판사(兪判事)가 술 한 병에다 달떡과 부침개를 한 그릇에 넣고 여기에 또 생선 한 마리를 보내오다.

1 7

권총()이 와서 작별 인사를 하다.

이형(姨兄)인 덕원군(德原君) 김창(金敞)이 족손(族孫)인 총지(摠持)의 승록(僧錄)을 대동하고 술과 음식을 가지고 와서 나를 먹여 주다.

사람을 기다려도 오지 않기에

집사람이 오다.

입춘(立春) 전날에

입춘(立春) 첩자(帖字)

송헌에게 부치다.

유감(有感)

적성(赤城)의 유 판사(兪判事)가 약밥을 보내왔기에

정오가 될 무렵에 용철(龍鐵)이 약밥을 보내오다.

이웃집 늙은이인 이 상서(李尙書)와 박 중랑(朴中郞), 김석(金碩), 김언(金彦), 이우중(李祐仲), 손숙휴(孫叔畦)가 윷놀이를 하기에 옆에 앉아서 구경하다.

말 타고 사냥하러 가는 모습을 보고서

옴병에 걸려 마음이 편치 못하기에 며칠 동안 시를 읊지 못하다.

문생(門生)인 길 주서(吉注書)가 집에서 보임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가 늙고 어린 가족들을 데리고 선주(善州)로 돌아갈 적에 나를 찾아와 작별 인사를 하고는 하룻밤을 묵고 가다.

23일에 송헌(松軒)에게 부쳐 올리다.

정 이상(鄭二相)에게 부치다.

중화당(中和堂) 동네의 권 밀직(權密直)이 술 한 병과 쇠고기와 백미 스무 말을 보냈기에 붓을 달려 사례하다.

낭장(郞將) 이연(李延)의 집에서 향도(香徒)를 모아 놓고 술자리를 벌였는데, 노부(老夫)도 가서 그 사이에 끼어 있다가 약간 취기가 돌기에 먼저 나왔다.

마음에 관한 시 한 수를 지어서 송헌(松軒)에게 부쳐 올리다.

자영(自詠)

적 성()의 유 선생(兪先生)을 방문했으나 그를 만나지는 못하고, 마중 나온 부인을 따라 손님의 자리에 들어섰더니, 술과 음식을 매우 풍성하게 차려 놓고 대접을 하였다. 그러고는 또 후원(後園)의 작은 동산에 올라가서 사방을 한번 바라보라고 청하면서, 이것이 바로 남편의 뜻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노부(老夫)에게 그 형승(形勝)을 알게 하고자 함이었다. 이에 돌아와서 이날의 일을 기록하였다.

경복(敬僕)이 왔기에 이 시를 짓고는 중동(中童)에게도 보여 주다.

자영(自詠)

밭 가는 이들이 장차 들판에 가득하겠기에 나 자신을 비웃으면서 한 수 짓다.

이 판서(李判書) 가 두 단지의 술과 백미 열 말을 보냈기에, 이렇게 감사하는 시를 지어서 맹균(孟畇)에게 읊어 드리도록 하였다.

4 2일에 은계(隱溪)가 나를 찾아와 유숙하면서 입으로 읊기를한평생 행동거지 인연 따라 되는 대로, 빈부와 부침 모두 하늘에 맡겨 버렸구려. 나는 알지 그대는 누항에 편할 수 없는 것을, 성군이 남면하여 존현을 의논케 하리니.[平生行止任隨緣 貧富升沈付與天 知子不能安陋巷 聖君南面議尊賢]”라고 하였다. 그 말뜻을 살펴보니 노부가 감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답하지 않을 수도 없기에 화운(和韻)하여 두 수를 이루었다.

이날 문생인 조 밀직(趙密直)이 술과 음식을 보냈기에 앞의 운을 써서 시를 지은 뒤에 인편에 부쳐 보냈다.

중동(中童)을 데리고 인장(隣長) 박영기(朴英起)와 함께 장단(長湍) 석벽(石壁)의 철쭉꽃을 구경하다.

장 단 현령(長湍縣令) 문군(文君)과 석벽에서 다시 노닐었다. 문군의 마중을 받고 물이 한데 모이는 상류까지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고 음식을 먹으며 즐기다가 늦게야 돌아왔는데, 이 자리에 맹균(孟畇)과 유기(柳沂)가 참석하였다. 이날 문생인 맹사성(孟思誠)과 이치(李稚)가 와서 소식을 알려 주기를, 대성(臺省)이 전의 일을 또 논핵하여 함창(咸昌)으로 부처(付處)하였다고 하였다.

8일에 집사람이 왔다. 이는 남쪽으로 떠나는 나를 전송하기 위함이었다.

집사람을 데리고 석벽에서 노니는 중에 이웃집 박씨가 물을 건너다 말에서 떨어져 삿갓을 잃었다.

서촌(西村)의 김룡(金龍) 내관(內官)이 술과 음식을 가지고 찾아오다.

중동(中童)을 급히 보내 나의 뜻을 담은 이 시를 송헌(松軒)에게 올리게 하였나니, 가슴속에서 일어나는 회포를 가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환암(幻菴)이 보낸 서신을 받고는 짤막한 시로 답해 올리다.

 

 

기사년 12월 6일에 순위부(巡衛府) 제공(提控) 박(朴) 위생(爲生) 와서 내교(內敎) 전하였는데, 내용은 나에게 장단(長湍) 새로운 거소(居所) 나가서 지내라고 명하는 것이었다. 이에 내가 대궐을 향하여 숙배(肅拜)를 하고는 두 분 시중(侍中)에게 글을 올린 다음에 제공과 작별을 하고 말에 올랐다. 대덕산(大德山) 아래에 이르렀을 때 날이 벌써 저물었으므로 감응사(感應寺)에 들어가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하였다. 문생(門生) 유경(劉敬)이 두주(斗酒)를 가지고 와서 위로해 주기에 연거푸 몇 잔을 마셨더니 약간 취기가 돌았다. 잠자리에 들어서 새벽까지 잠에 떨어졌다가 승려가 아침 예불을 하며 치는 쇳송 소리를 듣고서 시를 지었다.

 


불등이 깜박이는 속에 새벽의 닭 울음소리 / 佛燈明滅曉雞呼
신세 예나 이제나 바다 속의 물거품 하나 /
身世依然海一漚
홀연히 들리는 쇳송 소리에 깊이 느껴지는 마음 / 忽聽磬聲深有感
봉황이 쇠한 세상인걸 어찌 창오를 바라리오 /
鳳衰何必望蒼梧
오방의 문생
모두 뛰어난 인재로서 / 五牓門生摠俊才
봉소와 오대
에도 많이들 끼어 있지 / 多參鳳沼與烏臺
오늘 전별이 왜 없냐고 말씀하지 마오 / 莫言今日無相送
염유
의 술을 몇 잔이나 얻어 마셨는걸 / 得此髥劉酒數杯

 

[주C-001]기사년 …… 것이었다 : 목은의 나이 62세 되던 공양왕(恭讓王) 1(1389) 12월에 이성계(李成桂) 일파의 탄핵을 받고 아들 종학(種學)과 함께 파직된 뒤에 장단의 별장으로 가서 연금 생활을 하게 된 것을 말한다.
[주D-001]내 …… 하나 :
경 륜을 펴 보지도 못한 채 의미 없이 세월만 허송하면서 덧없이 생을 마치게 되었다는 뜻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해일구(海一漚)는 불교에서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으로, 《능엄경(楞嚴經)》 권6무상한 인생을 대각의 경지에서 보면, 바다 속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물거품과 같다.[空生大覺中如海一漚發]”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봉황(鳳凰)이 …… 바라리오 :
법 도가 무너진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순() 임금과 같은 성군(聖君)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뜻과 함께, 과거에 목은 자신을 알아주었던 공민왕에 대한 애틋한 정이 담겨 있는 표현이다. 봉황은 치세(治世)에만 나타나고 난세(亂世)에는 숨는 법인데, 봉황과 같은 공자가 어째서 이 난세에 나왔느냐고 초광(楚狂) 접여(接輿)가 탄식하면서봉황이여 봉황이여, 어쩌면 그토록 덕이 쇠하였는가.[鳳兮鳳兮 何德之衰]”라고 노래한 내용이 《논어(論語)》 미자(微子)에 나온다. 창오(蒼梧)는 순 임금이 묻힌 산 이름인데, 목은이 세상을 떠난 공민왕을 사모하면서창오를 바라볼 때마다 슬픔에 잠기시리라.[一望蒼梧一悵然]”라고 남을 위해 지어 준 시구가 《목은시고》 제6권 〈전양가총공(前兩街聰公) 운운〉 시에 나온다.
[주D-003]오방(五牓) 문생 :
목은이 다섯 차례 과거 시험을 주관하여 배출한 문생들을 말하는데, 그 숫자가 모두 132인에 이른다고 한다.
[주D-004]봉소(鳳沼) 오대(烏臺) :
중서성(中書省)과 어사대(御史臺)를 가리킨다.
[주D-005]염유(髥劉) :
수염 많은 제자 유경(劉敬)이라는 뜻이다.

7일 길 가는 도중에

 


장년엔 나도 호원하다 사람들 비난을 받았는데 /
壯歲人譏我好圓
궁한 줄 알게 된 오늘날엔 문득 망연하군그래 / 知窮今日却茫然
묘당에 다행히 이 몸을 알아주는 분 계시니 / 廟堂賴有知音在
별장에 물러가 안거하며 좌선이나 배워야지 /
別墅安居學坐禪

 

[주D-001]장년(壯年)엔 …… 받았는데 : 목 은이 한창 나이 때에는 하는 일도 없이 호강을 하면서 편히 산다는 기롱을 받기도 했다는 말이다. 호원(好圓)은 화호월원(花好月圓)의 준말로, ()나라 조단례(晁端禮)가 지은 〈행향자(行香子)〉의바라건대 꽃은 항상 피어 있고 사람은 늘상 건강하고 달은 언제나 둥글기만을.[願花長好 人長健 月長圓]”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2]별장에 …… 배워야지 :
처 벌을 받고 장단에 내려가 있는 동안, 불교의 승려들이 안거하는 셈 치고서 느긋하게 지내겠다는 뜻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안거는 승려들이 사찰 밖으로 나가지 않고 좌선을 하며 공부에 매진하는 것을 뜻하는 불교 용어로 결제(結制)라고도 하는데, 음력 4월 보름부터 시작하는 석 달 동안의 결제를 하안거(夏安居)라고 하고, 10월 보름부터 석 달 동안 행하는 결제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한다.

현령(縣令) 문군(文君)이 내방하다.

 


내가 어제 왔다는 말을 현령이 듣고서는 / 縣令聞予昨日來
향긋한 떡 푹 찌고 술 가득 부어 권하누나 / 爛蒸香餠勸深盃
외진 곳을 참으로 내가 좋아하는 걸 모르고서 / 不知地僻眞吾好
쇠한 나이에 시기받은 걸 이상하게 여기겠지 / 應訝年衰被衆猜
표전 올려 북궐을 떠나자 원망이 일어났고 / 怨起上牋辭北闕
나라 걱정에 남대로 가면서 화가 싹텄다오 / 禍萌憂國去南臺

그저 술에 흠뻑 취해 풍광과 하나 되면 그 뿐 / 但將酩酊消光景
혼자 공연히 느티나무 치받고 죽을 필요 있나 /
何用區區枉觸槐

 

[주D-001]표전(表牋) …… 싹텄다오 : 북궐(北闕)은 고려 조정을, 남대(南臺)는 목은이 사신으로 다녀온 명나라의 남경(南京)을 가리킨다.
[주D-002]혼자 …… 있나 :
일 종의 결벽증 환자처럼 자기 혼자서만 나라를 걱정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 너무 심하게 자책할 필요는 없다는 뜻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춘추 시대 진 영공(晉靈公)이 포학한 데다 사치를 일삼자 대부(大夫) 조돈(趙盾)이 자주 충간(忠諫)을 하니 영공이 이를 싫어하여 역사(力士)인 서예(鉏麑)를 시켜서 죽이게 하였다. 이에 서예가 새벽에 조돈의 집에 가니, 방문이 활짝 열려 있는 가운데 조돈이 조회 시간을 기다리며 조복(朝服)을 입고 앉은 채로 잠시 잠이 들어 있었으므로, 서예가 이것을 보고 한참 동안 탄식하다가임금에 대해 공경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있는 이는 백성의 주인이니, 백성의 주인을 죽이는 것은 충성스럽지 못한 일이다. 그러나 임금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신의가 없는 일이다. 이 두 가지 죄 중에 한 가지를 범하기보다는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不忘恭敬 民之主也 賊民之主 不忠 棄君之命 不信 有一於此 不如死也]” 하고는 스스로 느티나무에 머리를 들이받고 죽은[觸槐而死] 고사가 전한다. 《春秋左傳 宣公2年》

맹유()가 개경으로 돌아가다.

 


큰 키로 대관에 임명된 네가 기쁘면서도 / 喜汝長身拜大官
날마다 목숙 밥상만 대할까 걱정이로구나 /
還憂苜
日堆盤
모쪼록 아첨하지 말고 가법을 잘 지켜서 / 且須無諂遵家學
충과 효의 명성이 길이 끊기지 않기만을 / 忠孝脩名永不刊

 

[주D-001]날마다 …… 걱정이로구나 : 청 백한 관원은 가난하게 살기 마련이라는 뜻의 동정심과 함께 조정에서 축출당한 목은 자신 때문에 손자가 앞으로 더욱 소외되지나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담겨 있는 표현이다. 목숙()은 거여목이라는 식물 이름으로 보통 사료(飼料)나 비료(肥料)로 쓰는데, ()나라 설영지(薛令之)가 동궁(東宮)의 관원으로 있으면서 청백한 관리로 생활하기 힘든 것을 슬퍼하면서아침 해가 둥그렇게 떠올라서는, 선생의 밥상을 환히 비춰 주누나. 밥상 위에 무엇이 있느냐고요, 난간에서 자라난 목숙나물이라네요.[朝日上團圓照見先生盤 盤中何所有 苜長欄干]”라고 시를 지은 고사가 전한다. 《唐摭言 卷15
[주D-002]아첨하지 말고 :
《논어》 학이(學而)가난해도 아첨하지 않는다.[貧而無諂]”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송헌(松軒) 시중(侍中)에게 부쳐 보내 은혜에 사례하였다.

 


나의 죄 죽어 마땅한데 임금님 인자하시어 / 臣罪當誅聖主仁
경기에 물러나 몸 편히 살도록 해 주셨네 / 屛居關內得安身
하늘이 주신 행운을 어떻게 얻었느냐고요 / 問渠何以逢天幸
그거야 바로 송헌이 나의 친구이시니까 / 只爲松軒是故人

 

[주C-001]송헌(松軒) : 이성계의 당호이다.

성랑(省郞) 제형(諸兄)에게 부치다.

 


나는 현릉 한 시대의 소인유로서 / 玄陵一代小人儒
중서 간대부의 화려한 직위 역임하고 / 揚歷中書諫大夫
요행으로 시중의 지위에 올라왔을 뿐 / 得至侍中僥倖耳
사문을 위해 애쓴 일이 뭐가 있었으리 / 斯文何事苦相圖

대학과 중용으로 증자와 자사를 배웠건만 / 中庸大學學曾思
사람들은 말하기를 너는 영왕의 제자라고 / 人道瀛王是汝師

장락이 나온 이후로 나만 그렇진 않을 텐데 / 長樂邇來非獨我
누가 다시 귀거래사 읊기라도 하였던가 / 有誰重賦去來辭


지난해에는 아이가 황천으로 떠나더니 /
去年長子入黃泉
올겨울엔 둘째 애가 해변으로 귀양 갔네 /
仲氏今冬謫海

듣자니 삼랑이 지금 탄핵을 받고 있다는데 / 聞說三郞方被劾
천운을 어떡하겠는가 천운을 어떡하겠는가 / 奈何天也奈何天

이 세상의 영고성쇠 고리처럼 돌고 돌아 / 世間榮悴似循環
푸르른 송백이 또 모진 추위를 맞았구나 / 松柏蒼蒼又苦寒
우선은 중니의 구괘 해설을 배우면서 /
且學仲尼陳九卦
흰머리 내 신세를 장단에다 부치련다 / 白頭身世付長湍

벼슬길은 예나 이제나 위태로운 길 / 官途今古足危機
쇠년에 시비 일어난 것이 괴이하리오 / 何怪衰年惹是非
천지처럼 크나큰 성은에 재배하면서 / 再拜聖恩天地大
만산 잔설 속에 사립문 닫고 있노라 / 萬山殘雪掩柴扉

탄핵한 내용이 사람을 언뜻 경악게도 하겠지만 / 彈章大勢乍驚人
찬찬히 읽고 생각하면 모두가 사실과 어긋난 것 / 熟讀深思摠失眞
오직 글자 앞세워서 노옹을 족치려 한다마는 /
捉敗老翁唯四字
승려를 오히려 왕륜사로 쫓아낸 격은 아닐는지 /
黜僧還恐似王輪

장단 태수가 잔 물고기 잡아서 보냈나니 / 長湍太守送纖鱗
만식
하다가 웬일인고 더욱 맛이 감치도다 /
食還驚味更珍
성랑의 은혜 매우 중함을 비로소 알겠노니 / 始識省郞恩甚重
배고픔 참고 봉직하는 사람이 왜 없으리오 / 忍飢供職豈無人

천자가 나를 불러 진미 하사하셨을 땐 / 天子呼來賜八珍
시중의 광채가 신하들 사이에 찬란했는데 /
侍中光彩動朝臣
한번 보시게 의복은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
請看倚伏難逃處
적적하게 황촌에서 야인과 짝하고 있으니 / 寂寂荒村伴野人


갑인년 현릉 때에 책문 올려 시험 보고 / 玄陵策上甲加寅
신조 때에 급제하여 처음 출신하다니요 /
放牓辛朝始出身
지금 황야로 떠나와서 앉아서 헤아려 봐도 /
坐數至今荒野去
조정 가득 고관 중에 이런 사람은 없으리다 / 滿廷靑紫絶無人


송헌이 국정을 맡는데 나는 떠돌이 신세라니 / 松軒當國我流離
꿈속에서도 이런 생각을 그 누가 했으리오 / 夢裏誰曾有此思
지금 두 분 정씨가 또 대의에 참여한다는데 / 二鄭況今參大議
우리 가족이 모여서 살날은 과연 언제일꼬 / 一家完聚果何時

네놈이 가문 믿고 안심할지도 모르겠다만 / 汝恃家門逞汝顔
애비가 빙산인 알기나 했겠느냐면서 /
那知汝父是氷山
탄핵하여 가차 없이 곧장 죽이려 대들 테니 /
彈文直欲殺無赦
천지간에 함께 살아만 있어도 다행이리라 / 尙幸並生天地間


죄를 덮어씌우려면 어찌 말이 없으랴만 /
欲加之罪豈無辭
사훼의포
를 한다 해도 온 세상이 다 아는 일 / 似毁疑褒世所知
필경엔 하늘이 아시리니 내 무엇을 걱정하랴 / 畢竟有天吾不患
살진 고기 푹 익혀서 대폿잔이나 기울이리라 / 爛烹肥肉倒深巵

 

[주D-001]소인유(小人儒) : 목은 자신의 겸칭이다. “군자다운 유자가 되어야지, 소인과 같은 유자가 되면 안 된다.[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고 공자가 제자 자하(子夏)에게 일러 준 말이 《논어》 옹야(雍也)에 나온다.
[주D-002]대학(大學)과 …… 제자라고 :
목 은 자신은 유가(儒家)의 법도를 실천하려고 노력해 왔건만, 조정의 당인(黨人)들은 우왕(禑王)과 창왕(昌王)이 왕씨(王氏)가 아니고 신씨(辛氏)라는 설을 지어낸 뒤에, 목은이 왕씨를 섬기다가 신씨를 섬기는 등 의리도 없고 염치도 모르는 자라고 비평한다는 말이다. 오대(五代) 시대의 재상(宰相) 풍도(馮道)가 일생 동안 후당(後唐), 후진(後晉), 거란(契丹), 후한(後漢), 후주(後周) 등 다섯 나라의 조정에서 여섯 명의 임금을 섬긴 것을 자랑하며 장락로(長樂老)라고 자호(自號)하였는데, 영왕(瀛王)은 그의 시호(諡號)이다. 《新五代史 卷54 馮道列傳》
[주D-003]장락(長樂)이 …… 하였던가 :
당인들의 말이 옳다면 그들 역시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야 할 텐데, 과연 그렇게 한 사람이 있기나 했더냐는 뜻으로, 자신을 비평하는 사람들의 위선과 논리적 허점을 지적한 말이다.
[주D-004]지난해에는 …… 떠나더니 :
목은의 첫째 아들 종덕(種德)이 창왕(昌王) 1(1388)에 곤장을 맞다가 죽은 것을 말한다.
[주D-005]올겨울엔 …… 갔네 :
둘째 아들 종학(種學)이 순천(順天)으로 유배된 것을 말하는데, 이로부터 3년 뒤 이성계(李成桂)가 태조로 즉위한 해의 8월에 장사(長沙)로 배소(配所)를 옮기던 중 목이 졸려 살해되었다.
[주D-006]삼랑(三郞) :
셋째 아들 종선(種善)을 가리킨다.
[주D-007]우선은 …… 배우면서 :
가 급적 원망하는 마음을 줄이면서 주어진 상황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주역(周易)》 계사전 하(繫辭傳下)의 제7장에, 공자가 아홉 개의 괘를 나열하고 이에 대해서 각각 간단한 해설을 붙인 내용이 나오는데, 그중에 어렵고 힘든 처지를 상징하는 곤괘(困卦)와 관련하여곤괘를 보고서 원망하는 마음을 줄여야 한다.[困以寡怨]”고 덧붙인 내용이 보인다. 그 뒤 송()나라 때 진단(
)이 이 7장의 내용을 기초로 해서 괘의 이름과 체()와 용()을 해석하여 이른바삼진 구괘(三陳九卦)’용도(龍圖)’를 발표하였는데, 송유(宋儒)들이 대체로 이 학설을 수용하였다.
[주D-008]오직 …… 한다마는 :
이 성계 일파가, 우왕은 공민왕의 아들이 아니라 신돈(辛旽)의 아들이니 우왕과 그 아들 창왕은 왕씨가 아니라는 이른바우창비왕(禑昌非王)’의 설을 제기하며 폐가 입진(廢假立眞)을 명분으로 삼아 우왕과 창왕을 잇따라 폐위시키고 공양왕(恭讓王)을 옹립한 뒤에, 목은을 이 죄목으로 탄핵한 것을 말한다.
[주D-009]려를 …… 아닐는지 :
고 려 시대 최고의 사찰이라 할 왕륜사(王輪寺)로 승려를 쫓아낸 것처럼, 목은이 그동안 벼슬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던 소원을 이번 기회에 이루게 해 주었다는 뜻의 냉소적인 표현이다. 개성 송악산에 있는 왕륜사는 원래 고려 태조 왕건이 창건한 사찰로, 역대의 왕들이 여기에서 불사(佛事)를 성대히 거행하였으며, 특히 공민왕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았다.
[주D-010]만식(食) :
배가 고플 때에는 무엇을 먹든지 고기 맛과 같다는만식당육(
食當肉)’의 준말로 시장이 반찬이라는 뜻인데, 보통 채소와 나물이나 먹는 담박한 식생활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주D-011]천자(天子)가 …… 있으니 :
창 왕(昌王) 1(1388) 10월에 목은이 하정사(賀正使)로 명나라에 사신 갔다가 이듬해 4월에 명 태조의 후대를 받고 귀국했는데, 그해 11월에 공양왕이 즉위하면서 우왕과 창왕이 유배된 뒤를 이어, 12월에는 목은 자신도 파직되어 장단(長湍)으로 옮겨진 것을 말한다. 의복(倚伏)은 화()와 복()을 가리키는 말로, 《노자(老子) 58장의화 속에 복이 기대어 있고, 복 속에 화가 엎드려 있다.[禍兮福之所倚福兮禍之所伏]”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12]갑인년 …… 없으리다 :
갑 인년은 공민왕이 9월에 세상을 떠나고 곧바로 우왕이 즉위한 해이다. 따라서 우왕이 당인(黨人)들의 말대로 신돈(辛旽)의 아들로서 성이 신씨(辛氏)라고 한다면, 갑인년에 과거에 응시했다가 우왕의 시대로 넘어와서 합격자 발표가 이루어져 급제한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왕씨의 임금에게 시험을 보고 나서 신씨의 임금에게 등용되었다는 말이 되는데, 지금 조정의 고관들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과연 한 사람이라도 있겠느냐는 뜻의 신랄한 비판이 담겨 있다.
[주D-013]네놈이 …… 다행이리라 :
현 재 탄핵을 받고 있는 셋째 아들 종선(種善)의 안위(安危)를 걱정한 말이다. ()나라 양국충(楊國忠)이 현종(玄宗)의 총애를 받아 우상(右相)이 된 뒤에 그의 권세가 천하를 뒤흔들자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몰려들었는데, 어떤 사람이 진사(進士) 장단(張彖)에게 양국충을 찾아가 보라고 권하자, 장단이 말하기를, “당신들은 그를 태산처럼 의지할지 모르지만 나는 빙산으로 여기고 있다. 만약 밝은 해가 떠오르기만 하면 당신들의 의지처를 잃지 않을 수 있겠는가.[君輩依楊右相如泰山 吾以爲氷山耳若皎日卽出 君輩得無失所恃乎]” 하고는 숭산(崇山)으로 들어가 숨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資治通鑑 唐紀 玄宗天寶11載》
[주D-014]죄를 …… 없으랴만 :
처 벌할 작정만 한다면야 트집 잡을 핑곗거리가 없을까 걱정할 것이 없으리라는 말이다. 춘추 시대 진()나라 혜공(惠公)이 자신의 즉위를 도와준 이극(里克)을 죽이려 하자, 이극이나에게 죄를 주려고 작정만 하신다면야, 어찌 트집 잡을 말이 없겠습니까.[欲加之罪 其無辭乎]”라고 말하고는 자결했던 고사가 있다. 《春秋左傳 僖公10年》
[주D-015]사훼의포(似毁疑褒) :
자 신의 호오(好惡)에 따라 멋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뜻하는데, ()나라 왕안석(王安石)이 지은 〈답소주장전신서(答韶州張殿臣書)〉의남 모르게 필묵을 손에 쥐고서 전인의 선악을 평가할 경우,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의심스러운 점도 선이라고 표창을 할 수 있고,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비슷하기만 해도 악이라고 헐뜯을 수가 있는 것이다.[陰挾翰墨 以裁前人之善惡 疑可以貸褒 似可以附毁]”라는 말을 요약한 것이다.

절구를 권()에게 부쳐 몸소 따라오는 일을 늦추게 하다.

 


밝은 태양은 하늘 복판 가까이 / 白日近亭午
푸른 하늘엔 조각구름도 없도다 / 靑天無片雲

안심하고 성군의 교화 노래하면서 / 安心歌聖化
나 대신 사문에 감사의 뜻 전하기를 / 爲我謝斯文

 

[주D-001]밝은 …… 없도다 : 태양은 임금을, 구름은 간신을 비유한 말이다.

16일에 삼랑(三郞)이 주식(酒食)을 보내다.

 


나는 다행히 면해서 하늘에 감사를 드린다만 / 幸免吾今謝上天
형은 남쪽으로 가서
내 마음 망연하도다 / 汝兄南去我茫然
탄핵을 받으며 문 닫고 있다 들은 듯도 한데 / 似聞閉戶臺評裏
주식만 보내고 오지 못했으니 더욱 가련하구나 / 送饌不來尤可憐

 

[주D-001]네 …… 가서 : 종선(種善)의 형 종학(種學)이 순천(順天)으로 귀양 간 것을 말한다.

적성(赤城)의 유찬(兪瓚) 판사(判事)가 동아와 우엉을 보내왔기에 우스개 시를 지어서 감사드리다.

 


큼지막한 동아는 얼려서 얼음을 만들고 / 碩大冬瓜凍作氷
우엉은 씻어서 깎아 조찬으로 쪄낼 만도 /
牛蒡洗削可朝蒸
경저에서 먹여 준 비어 홀연히 생각나네요 / 忽思京邸肥魚饋
나는 채식만 하는 중이 절대로 아니거든요 / 自信吾非蔬筍僧

 

[주D-001]우엉은 …… 만도 : 동 아의 동()에서 빙()의 이미지를 추출해 낸 것처럼, 우엉의 우()에서 증()의 영상을 떠올려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청렴하고 검소하기로 이름났던 당 덕종(唐德宗) 연간의 재상 정여경(鄭餘慶)이 사람들을 회식(會食)에 초청하자 모두 놀라워하면서 아침 일찍 그의 집에 모여들었는데, 정여경이 주방장에게 음식을 주문하면서푹 쪄서 털만 제거하고 목은 부러뜨리지 말라.[爛蒸去毛 勿拗折項]”고 하자, 사람들 모두가 거위[]나 오리[] 요리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밥상을 받고 보니 그것이 찐 호리병박이었기 때문에 실망을 하면서도 억지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난증호로(爛蒸葫蘆)’의 고사가 전한다.

유감(有感)

 


욕실에서 그 누가 옷 벗지 않을 수 있었기에 / 室誰能不脫衣
함께 목욕하고서는 알몸을 보였다 흉보는고 / 奈何同浴臝

들어간 시기에 늦고 이른 차이는 있다 해도 / 縱然其入有早

누가 마르고 비대한지 서로들 보고 아는 법 / 均是相觀知瘦肥
다른 이들은 때 씻고서 한창 스스로 나서는데 / 諸子滌瑕方自進
유독 이 몸은 때 많으니 누구에게 의탁하랴 / 獨吾染垢欲誰歸
조정에서 갱신할 길 나에게 허락해 준 지금 / 聖朝方許更新路
장단 땅에 오뚝 앉아 푸른 산 마주 대하노라 / 危坐長湍對翠微

우리 부자의 이별은 그 죄가 나에게 있나니 / 父子分離罪在身
숭인의 위급을 구한
과 무슨 관계 있으랴 / 何關急難救崇仁
유방 유취
따지는 것은 모두가 한가한 일 / 流芳遺臭渾閑事
옛 병과 새 시름이 주인을 귀찮게 만드누나 / 舊病新愁惱主人
술잔에 막걸리 가득 부어 세월을 잊을 수도 / 白酒滿盃忘歲月
청산이 문 앞에 서 있으니 풍진을 떨칠 수도 / 靑山當戶遠風塵
나를 자주 찾아 주는 장단의 우리 현령 / 長湍縣令頻相訪
지친을 뛰어넘는 그 후의 잊지 말아야지 / 厚意須知過至親

 

[주D-001]숭인(崇仁)의 …… : 목 은이 하정사(賀正使)로 명나라에 갈 때 이숭인(李崇仁)이 부사(副使)로 따라갔다가 창왕 1(1389) 4월에 귀국하였는데, 그해 10월에 이르러 이숭인이 부사의 신분으로 상인들처럼 물건을 매매하여 고려 사대부의 위신을 추락시켰다는 이유 등으로 탄핵을 받고 유배되자, 목은이 그를 구하기 위해 사직소를 올리고 장단(長湍)으로 내려갔던 일을 말한다. 그리고 그해 11월에 공양왕이 즉위한 뒤를 이어 12월에 목은 역시 아들 종학과 함께 탄핵을 받고 파직되기에 이른다.
[주D-002]유방(流芳) 유취(遺臭) :
후세에 향기로운 미명(美名)을 전하는 것과, 냄새 나는 악명(惡名)을 남기는 것을 말한다.

수봉(琇峯)이 찾아왔다가 돌아가다.

 


먼 하늘 저쪽으로 새는 날아가 사라지고 / 遠天看鳥沒
지는 햇빛이 돌아가는 스님을 전송하네 / 落日送僧歸
알괘라 이 근방에 신도의 집이 있으리니 / 知有檀家近
사립문 막 닫힐 때쯤 달빛이 또 환하리라 / 月明初掩扉

 

18일에

 


현릉 시대의 장상 중에 몇 분이나 남았는고 / 玄陵將相幾人存
벽에 걸린 초상화도 색깔이 이미 흐릿해라 / 壁上圖形亦已昏
병이 많은 목은은 사이만 자꾸 반복하고 / 多病牧隱頻仕已
경세제민하는 분은 지금 송헌 한 사람뿐 / 至今經濟獨松軒

송헌의 충의심 드높아라 하늘에까지 잇닿아서 / 松軒忠義薄雲天
한강이며 당량
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도다 / 漢絳唐梁與比肩
태평 시대의 진짜 기상을 알아보고 싶으신가 / 欲識太平眞氣像
문 닫고 베개 높이 편안히 잠드는 모습 보소 / 閉門高枕得安眠

잠이나 즐기며 할 일 없으니 얼마나 좋은지요 / 安眠喜我已無爲
뜬세상 공명 따위는 완전히 생각이 끊어졌소 / 浮世功名絶不思
다만 유감은 다생에 덜 고친 훈습이 남아 있어 / 只恨多生餘習在
때때로 감흥이 일면 곧바로 시를 짓는 버릇 / 時時遇興卽題詩

 

[주D-001]사이(仕已) : 관 직에 나아가고 그만두는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나라의 영윤인 자문은 세 차례나 출사(出仕)하여 영윤이 되었지만 기뻐하는 빛이 없었고, 세 차례나 그만두었어도 노여워하는 빛이 없었다.[令尹子文 三仕爲令尹 無喜色 三已之 無慍色]”는 말이 나온다.
[주D-002]한강(漢絳)이며 당량(唐梁) :
사직(社稷)을 지킨 충신으로 일컬어지는 한나라 강후(絳侯) 주발(周勃)과 당나라 양국공(梁國公) 적인걸(狄仁傑)을 가리킨다.

자영(自詠)

 


이름은 장락이라 해도 실제론 항상 가난한데 / 名爲長樂實長貧
분전을 하는 이때에도 쫓겨난 신하의 신세로세 / 又値分田作逐臣

유무를 민면하는 것이 어찌 좋은 계책일까 / 俛有無非上策
빈핍에 안념하는 것도 전생의 인연이리라 / 安恬貧乏亦前因

도심은 흐르는 물과 같아 멈추는 때가 없건마는 / 道心流水無時駐
세태는 뜬구름과 같아 날마다 변덕을 부리누나 / 世態浮雲與日新
적송
과 노닐고 싶어도 될 수가 있겠는가 / 欲與赤松游豈得
상산
도 천고토록 풍진에 뒤덮여 어두운걸 / 商山千古暗風塵

지척 간에서 하늘의 위엄 직접 뵙고 나올 때 / 面奉天威咫尺間
전각 모서리 새벽 햇빛이 쇠한 얼굴 비췄네 / 觚稜曉日暎衰顔
고심하며 단지 삼걸을 안배하기만 원했는데 / 苦心只願安三傑
장고토록 우둔한 자들을 기용할 줄 알았으랴 / 長古那知起庶頑
황량한 들판의 색과 함께 몸은 초췌해져 가고 / 野色荒涼身共悴
오열하는 냇물과 함께 눈물만 줄줄 흐르누나 / 溪聲嗚咽淚同潸
질정할 신명이 계신 것이 그래도 다행이니 / 質諸尙幸神明在
우선은 조용히 좋은 때 오길 기다려야겠지 / 且得從容待好還

 

[주D-001]이름은 …… 신세로세 : 목 은은 자신이 유가(儒家)의 법도를 실천하려고 노력해 왔건만, 조정의 당인(黨人)들은 우왕(禑王)과 창왕(昌王)이 왕씨(王氏)가 아니고 신씨(辛氏)라는 설을 지어낸 뒤에, 목은이 왕씨를 섬기다가 신씨를 섬기는 등 의리도 없고 염치도 모르는 자라고 비평하였다. 그리고 목은은 대대로 아첨하여 작록을 유지하면서 항상 호강을 해 왔으니 장락로(長樂老)와 같다고 사람들이 비난을 하지만 실상은 늘 빈한한 생활을 면치 못했는데, 지금 신하들에게 전토(田土)를 나눠 주는 좋은 때를 만났는데도 조정에서 쫓겨난 신세라서 그 땅마저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장락로(長樂老)는 오대(五代) 시대의 재상(宰相) 풍도(馮道)가 일생 동안 후당(後唐), 후진(後晉), 거란(契丹), 후한(後漢), 후주(後周) 등 다섯 나라의 조정에서 여섯 명의 임금을 섬긴 것을 자랑하며 장락로라고 자호(自號)하였다는 데에서 온 말이다. 《新五代史卷54 馮道列傳》
[주D-002]유무(有無)를 …… 인연이리라 :
없 는 살림에 잘 살아 보려고 입을 악물고서 몸부림치는 것도 온당한 방법이 못 되니, 차라리 빈한하고 궁핍한 생활을 전생의 인연으로 알고 체념하고서 마음 편히 사는 것이 좋으리라는 뜻이다. 《시경(詩經)》 패풍(
) 곡풍(谷風)집안에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고 하면서, 잘 살아 보려고 애면글면 노력하였네.[何有何無 黽勉求之]”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적송(赤松) :
고대 전설상의 선인(仙人)인 적송자(赤松子)를 말하는데, 장량(張良)이 유방(劉邦)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뒤에 권세에 미련을 두지 않고 적송자와 노닐기 위해 신선술을 닦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주D-004]상산(商山) :
()나라 말과 한()나라 초기에 이른바 사호(四皓)가 숨어 살았다는 산 이름인데, 나중에 이들이 장량의 권유를 받고서 산에서 내려와 태자를 보좌했던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72 王貢兩龔鮑傳序》
[주D-005]삼걸(三傑) :
당 대의 걸출한 인사들을 가리킨다. 한 고조(漢高祖)가 천하를 통일한 뒤에 장량(張良)과 소하(蕭何)와 한신(韓信)을 일컬으면서이 세 사람은 모두가 인걸이다.[此三者 皆人傑也]”라고 말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史記 卷8 高祖本紀》

삼랑(三郞)이 부꾸미와 병술을 보내다.

 


막걸리 맛은 시원하고 부꾸미는 향긋하고 / 芳醪味冽餠生香
신장을 보해서 늙은이 수명을 연장할 만도 / 可引頹齡補腎腸
대간의 탄핵받아 여기에 오진 못했어도 / 縱被臺彈來不得
난곡이 내 옆에 있는 것이 분명하도다 / 分明鸞鵠在吾傍

 

[주C-001]삼랑(三郞) : 목은의 셋째 아들 종선(種善)이다.

자해(自解)

 


자괴하노라 국록을 축내며 처자를 살찌우다가 / 自愧素飡妻子肥
천하의 악이 모두 모일 알지를 못했으니 / 不知天下惡皆歸

인경으로 장성께서 후세에 드리운 포폄이여 / 麟經將聖垂褒貶
봉소의 제랑이 배운 실력을 발휘해 주었도다 / 鳳沼諸郞學發揮

그늘진 골에 눈 덮인 세월 얼마나 흘렀던가 / 陰壑雪堆驚歲月
높은 산에 해가 솟아서 연무를 흩어 버렸도다 / 高山日出散煙霏
조물의 의도가 무엇인지 끝내 알기 어려워라 / 化工用意終難料
이젠 여강의 낚시터에 앉을 수 있게 되었으니 / 會得驪江坐釣磯

 

[주D-001]자괴하노라 …… 못했으니 : 벼 슬을 일찌감치 그만두지 못한 채 하는 일도 없이 말도 많은 관직에 몸을 담고 있던 탓으로 상대편 당인(黨人)들로부터 온갖 악평을 뒤집어쓰게 되었다는 말이다. 《논어》 자장(子張)폭군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주왕의 악행이 이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군자는 하류에 있는 것을 싫어하나니, 그곳에 있으면 천하의 악이 모두 그에게로 모여들기 때문이다.[紂之不善 不如是之甚也 是以君子惡居下流 天下之惡皆歸焉]”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인경(麟經)으로 …… 주었도다 :
공 자(孔子)의 춘추 필법(春秋筆法) 정신을 본받아서 조정의 관원들이 목은 자신에 대하여 정당하게 평하면서 변호해 주었다는 말이다. 인경은 기린이 잡힌 대목에서 공자가 붓을 내려놓았다는 고사에서 나온 것으로 《춘추(春秋)》를 가리킨다. 장성(將聖)은 공자를 가리킨다. 《논어》 자한(子罕)에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우리 선생님은 실로 하늘이 이 세상에 내려 성인이 되게끔 하신 분이다.[固天縱之將聖]”라고 말한 내용이 나온다.

20일에 눈앞의 일을 소재로 하여 시를 짓다.

 


삼랑이 약만 보내고 오지는 못했으니 / 三郞送藥不能來
네가 얼마나 애가 탈지 또한 알겠도다 / 看汝操心亦苦哉
다시 의원 구하려 해도 누가 돌아보랴 / 更欲求醫誰肯顧
다만 운명을 믿고서 슬퍼하지 말지어다 / 唯當信命莫相哀
젊어서 벽수 노닐 적엔 바람 머금은 나무요 / 少游璧水風涵樹
늙어 금릉 구경할 속에 매화였지 / 老賞金陵雪凍梅

어디에 있든 이 마음은 항상 편안하나니 / 到處此心安便是
장단의 이 모옥도 바로 봄날의 누대란다 / 長湍茅屋卽春臺

 

[주D-001]젊어서 …… 매화였지 : 소년기에 중국에 가서 공부할 때와 노년에 사신으로 가서 명 태조를 만났을 때의 풍경을 회상한 것이다. 벽수(璧水)는 주대(周代) 귀족 자제들의 교육 기관으로서 중국의 태학(太學)을 뜻한다.
[주D-002]봄날의 누대 :
《노자(老子) 20장에사람들 마냥 흥겨운 것이, 풍성한 음식 상을 받은 듯도 하고, 봄날의 누대에 오른 듯도 하다.[衆人
煕煕 如享太牢 如登春臺]”는 말이 나온다.

맹균(孟畇)이 왔다가 또 가다.

 


고공은 청요의 관직으로 대관을 또 논박하니 / 考功淸要駁臺官
그 직책에 어떤 이가 간담이 떨리지 않으리오 / 守職何人不膽寒
네가 모습은 의젓해도 입에선 아직 젖내가 나니 / 醞藉汝今猶乳臭
그래서 노옹이 성랑의 탄핵을 받아 주고 있단다 / 老翁甘受省郞彈

병났다는 내 소식 듣고 특별히 와서 보고는 / 聞吾病發特來看
보통 때처럼 날 대하고 그냥 훌쩍 돌아갔네 / 見我如常却去還
생각나네 선흥사로 임금님 피신하셨을 때 / 坐想禪興龍遯野
석양에 새 한 마리 아득히 사라지던 일이 / 斜陽飛鳥渺茫間

 

[주C-001]맹균(孟畇) : 목은의 첫째 아들인 종덕(種德)의 둘째 아들 이름이다. 우왕(禑王) 11(1385)의 진사(進士) 출신으로, 이때 관직이 고공사 좌랑(考功司左郞)이었다.

윤가관(尹可觀)의 부인 권씨가 쌀과 오이장아찌를 보내오다.

 


평일에는 인척들이 사이가 무척 좋다가도 / 平日姻家密且親
위급할 땐 얼굴을 보이는 사람도 없으니 / 危時見面也無人
누가 조석으로 먹을 것 가져다 주겠는가 / 誰將食物供朝夕
부인의 뜻이 매우 진실된 것을 알겠도다 / 可見夫人意甚眞

호부를 리에 우리 무덕장군 /
武德將軍佩虎符
술잔 들고 연구 지으며 우리 유자를 사랑했지 / 擧盃聯句愛吾儒
마흔 넘기고 신선 되어 하늘로 떠났지만 / 年過不惑登仙去
그 풍채는 지금도 바다 모퉁이 비치도다 / 風采依然照海隅

 

[주C-001]윤가관(尹可觀) : 응 양 대호군(鷹揚大護軍) 윤보(尹寶)의 아들로, 관직이 봉익대부(奉翊大夫) 밀직부사(密直副使) 상호군(上護軍)에 이르고, 경상도 순문사(慶尙道巡問使)를 지내기도 하였다. 부인 권씨는 이 시의 분위기로 볼 때 무덕장군(武德將軍)의 딸이 아닐까 싶다.
[주D-001]호부(虎符)를 …… 무덕장군 :
호 부는 동호부(銅虎符)의 준말로, 한대(漢代)에 구리로 범 모양처럼 만든 군대 출동용 부절(符節)을 말한다. 무덕장군은 목은의 장인인 권중달(權仲達)의 첫째 아들이 아닐까 한다. 《목은시고》 제29권 〈유감(有感)〉에주광(酒狂)으로 소문난 우리 무덕장군, 마흔 겨우 넘기고는 신선 되어 하늘로. 지금 어린아이들이 대나무처럼 서 있는데, 부인이 또 황천으로 따라갔으니 어떡하나.[武德將軍號酒顚 年餘四十便登仙 更憐稚子今如竹 又況賢妻已及泉]”라는 말이 나오고, 또 《목은시고》 제23권 〈단오날에 성묘할 제물을 우리 집에서 마련할 차례가 되었기에 삼가 준비하였는데[端午拜掃奠物吾家承次謹備] 운운〉 시에술을 너무도 좋아한 우리 무덕장군, 벌써 죽어 백양나무에 추풍이 몇 번 불어왔네. 지금은 판서가 홀로 집안일 주관하는 가운데, 사위 중에는 나하고 늙은 민공만 살았다오.[武德將軍酷愛酒白楊幾見秋風起 如今判書獨當門 我與老閔能生存]”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무덕장군은 권중달의 첫째 아들로서 40여 세의 나이에 일찍 죽었고, 그의 바로 아래 동생인 권 판서(權判書) 계용(季容)이 그 대신에 가문을 계승하여 주관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싶다.

김 상장(金上將)이 오다.

 


위급할 때 형제의 정을 알게 되는 법 / 危途見得弟兄情
그래도 잔생은 태평을 만나 다행이오 / 尙幸殘生値太平
함녕에 가서 함께 웃고 얘기하고 싶어라 / 欲向咸寧同笑語
사람들 말이 영존도 건강이 좋으시다니까 / 令尊人道尙身輕


이번 인사에서 대관에 임명된 우리 상장 / 上將今批得代官
시친의 기한이 가까우니 정안을 정리해야겠지 /
侍親期近理征鞍
이 몸도 사직소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 乞身我欲還鄕去
술자리 서로 어울리며 추운 겨울 깔보고파 / 樽酒相從傲歲寒

 

[주D-001]함녕(咸寧)에 …… 좋으시다니까 : 목 은의 외가가 있는 함창(咸昌)에 가서 어울려 노닐고 싶다는 말이다. 함녕은 함창의 옛 이름이다. 영존(令尊)은 상대방 부친에 대한 경칭으로, 목은의 외숙인 김요(金饒)를 가리킨다. 목은이 외숙의 부탁을 받고 지은 〈청향정기(淸香亭記)〉가 《목은문고》 제5권에 실려 있는데, 김 상장은 바로 이 외숙의 아들이 아닌가 싶다.
[주D-002]대관(代官) :
지방 수령 대신 일을 분담하여 처리하는 벼슬아치를 말한다.
[주D-003]시친(侍親)의 …… 정리해야겠지 :
김 상장이 어버이를 봉양할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말 타고 돌아다니는 일은 이제 그만두고 고향에 가서 벼슬하며 어버이 가까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청원을 허락받지 못하고서 혼자 읊다.

 


한 몸이 온통 병마에 시달리는 속에 / 一身渾是病
말년에 스스로 위기를 초래하였도다 / 末路自來危
-원문 빠짐- / 寡助□生□
-
원문 빠짐- / 多□□□

그곳 산속에는 구름이 어둑하고 / 山中雲暗處
지금 강 위에는 달빛이 밝으련만 / 江上月明時
표연히 떨치고 떠나가지 못하다니 / 不得飄然去
유한한 생의 비애를 절감하겠도다 /
始憐生有涯

 

[주D-001]원문 빠짐 : 빠진 글자가 많아서 확언할 수는 없지만, 혹시위급한 상황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거의 없고, 오해하거나 의심하는 사람만 많다.”는 뜻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주D-002]유한한 …… 절감하겠도다 :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우리의 생은 유한한데, 욕망은 무한하다.[吾生也有涯而知也無涯]”는 말이 나온다.

안심(安心)

 


마음 가라앉히고 붙박인 듯 앉았나니 / 安心且堅坐
지금은 여강을 찾지 않아도 되겠네 / 不用望驪江
지붕까지 이어진 감악산 구름이요 / 紺嶽雲連屋
창문에 부서지는 장단의 달빛이라 / 長湍月照窓
이젠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여생이여 / 殘生已無幾
맑은 경치와 벗 삼아 살면 그만이지 / 淸景可爲雙
생선을 맛보는 건 부족함이 없다마는 / 豈乏蝦魚喫
항아리 가득 술을 한번 마셔 봤으면 / 唯消酒滿缸

 

28일에

 


끝없이 변하는 세상 속에 매우 위태로운 이 몸 / 世變無涯跡甚危
순순히 받아들여야지 무얼 또 의혹을 하겠는가 / 吾今順受復奚疑
천지는 원래 널리 감싸는 도량을 지녔으니 / 乾坤自有包荒量
뇌우로 때를 씻어 줄 날이 어찌 없으리오 / 雷雨寧無滌垢時
바람이 급하게 울부짖는 적막한 강산이요 / 寂寞江山風吼急
태양도 느리게 가는 태평 시대의 여항이라 / 太平閭巷日行遲
우선은 장단에서 배불리 밥을 먹으면서 / 且須飽喫長湍飯
붓 가는 대로 팔구의 시나 지어 보련다 / 信筆題成八句詩

 

욕어(欲語)

 


얘기하고 싶어도 들어 줄 사람 뉘 있으며 / 欲語誰與聆
나들이하고 싶어도 뒤따를 사람 뉘 있으랴 / 欲行誰與從
홀로 서서 읊조리고 휘파람 부니 / 獨立且吟嘯
만리 밖에서 슬픈 바람이 불어오네 / 萬里來悲風
하늘 끝으로 사라지는 백조 한 마리 / 天涯去白鳥
강 위에 가로 걸친 푸르른 산봉우리 / 江上橫靑峯
담연히 사방 한 치 마음속에서 / 淡然方寸間
멀리 떠오르는 격양옹의 모습이여 / 緬懷擊壤翁
줄고 늘게 하는 것도 단지 일물이거니 / 消長只一物
나의 도가 궁했다고 탄식할 있으리오 / 何嗟吾道窮

 

[주D-001]격양옹(擊壤翁) : ()나라의 철인 소옹(邵雍)의 별칭이다. 《이천격양집(伊川擊壤集)》이라는 시문집이 전한다.
[주D-002]줄고 …… 있으리오 :
세 상이 이렇게 된 것도 소옹이 주장한 원회운세(元會運世)의 설처럼 어쩔 수 없이 돌아오는 시운(時運)의 탓일 것이니, 굳이 자신의 불우한 신세를 한탄하면서 슬퍼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소옹은 하나의 태극(太極)에서 음양(陰陽)과 사상(四象)과 팔괘(八卦)와 육십사괘 등으로 발전하는 것처럼, 이 세계 역시 원회운세의 주기에 따라 생성하고 소멸하는 현상을 보인다는 일원소장지수(一元消長之數)를 발표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1() 30, 1() 12, 1() 30, 1() 12회로서, 모두 12 9600년이 되는 이 1원 동안에 우주가 한 번 생겨났다가 없어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 노()나라 애공(哀公)이 사냥을 나가서 기린을 잡자, 공자가나의 도가 궁해졌다.[吾道窮矣]”고 탄식한 고사가 전하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이 말이 곤경에 처한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史記 卷47 孔子世家》

29일에

 


짧은 낮 슬픈 바람 한 해도 다 저무는데 / 短景悲風歲欲除
쫓겨난 신하는 전려를 물을 길도 없어라 /
逐臣無計問田廬
남대는 길이 멀어도 다행히 표문을 올렸는데 / 南臺路遠幸進表
북궐은 하늘이 높아서 글도 올리지 못했다오 / 北闕天高休上書

은총을 한껏 받을 때는 위학과도 같았건만 / 寵已極焉同衛鶴
밑천이 드러나면서 검려 신세로 전락했네 / 技之盡矣卽黔驢
그래도 하늘이 나를 알아주시지 않겠는가 / □然知我有天在
모쪼록 믿을지니 그 마음 태허와 같은 것을 / 須信此心如太虛

 

[주D-001]쫓겨난 …… 없어라 : 국 가를 경륜하는 원대한 계획은 고사하고, 한집안이라도 안정시켜 단란하게 살아 볼 계책조차 전무하다는 말이다. 전려(田廬)는 밭과 집이라는 뜻으로 전사(田舍)와 같은 말이다. 삼국 시대 위()나라 진등(陳登)에게 허사(許汜)가 찾아왔을 때 진등이 그를 무시하고 대우하지 않자, 허사가 이에 불만을 품고는원룡은 호기가 아직도 남아 있다.[元龍豪氣不除]”고 유비(劉備)에게 하소연하니, 유비가당신은 국사(國士)의 명성을 지닌 사람인 만큼 세상을 구할 생각을 해야 할 것인데, 그저 밭이나 집을 구하려고만 하는 등 취할 말이 없었으므로 원룡이 꺼린 것이다.[君求田問舍 言無可采 是元龍所諱也]”고 대답한 고사가 전한다. 《三國志 卷7 魏書 陳登傳》
[주D-002]남대(南臺)는 …… 못했다오 :
멀리 남경(南京)에 가서 명 태조(明太祖)에게 표문을 올리기까지 하였는데, 정작 가까운 개경의 대궐에는 글을 올리지도 못했다는 말이다.
[주D-003]위학(衛鶴) :
터무니없이 분수에 넘치게 받는 은총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춘추 시대 위()나라 의공(懿公)이 학을 좋아해서 대부의 수레에 태우기까지 했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春秋左傳閔公2年》
[주D-004]검려(黔驢) :
보 잘것없는 실력이 들통나서 여러 사람들의 조롱과 놀림을 받게 된 것을 뜻하는 말이다. 호랑이가 검주(黔州)의 당나귀를 처음 보고서는 체구가 크고 울음소리가 커서 잔뜩 겁을 내며 무서워하다가, 나중에 당나귀의 재주가 발길질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고는 마침내 잡아먹었다는 이야기가 유종원(柳宗元)의 글에 나온다. 《柳河東集 卷19 三戒ㆍ黔之驢》

송헌(松軒)에게 부치다.

 


흰머리 내 신세 석양에 접어들었으니 / 白頭身世已殘陽
관직 없고 땅 없어도 아무 상관없소이다 / 無職無田亦不妨
단지 하나 산 놀러 다니는 고흥은 남았으니 / 只有游山高興在
귀찮겠지만 조정에서 한번 상량해 주셨으면 / 敢煩廊廟一商量

 

경오년 1 7일에 적성(赤城) 유 판사(兪判事)가 술 한 병에다 달떡과 부침개를 한 그릇에 넣고 여기에 또 생선 한 마리를 보내오다.

 


동글동글한 것이 흡사 하얀 달 / 團團疑皓月
하나하나 새로 짠 기름에 부쳤구려 / 箇箇煮新油
술 없이 지낸 지 이미 오래인데 / 久矣已無酒
생선까지 맛보다니 얼마나 행운이오 / 幸哉仍有魚
옛날과 같지 않은 이 세상 인심 속에 / 世情非復舊
우리 우정은 그래도 처음과 같소그려 / 交道尙如初
작은 일 같아도 이것이 바로 큰일 / 細事所關大
나의 시엔 허튼소리 하나 없다오 / 吾詩無一虛

 

1 7

 


새해 정월 이렛날 광흥창으로 달려가서 / 新春七日廣興倉
동복이 들레며 녹봉을 황망히 받아왔네 / 童僕喧嘩受祿忙
서른다섯 해 처자만 배불리 먹였을 뿐 / 三十五年妻子飽
선왕에 조금도 보답 못 해 얼굴이 화끈 / 愧無寸效報先王

 

권총()이 와서 작별 인사를 하다.

 


여주의 원님으로 다스렸던 자네 부친 / 黃驪太守乃翁爲
늙으신 지금에도 백성들이 사모하이 / 父老而今有去思
자제가 원님이 되었으니 얼마나들 기뻐할까 / 得見郞君應喜甚
더욱 힘 기울여서 상처를 치료해 주시도록 / 更須努力藥瘡痍

 

이형(姨兄)인 덕원군(德原君) 김창(金敞)이 족손(族孫)인 총지(摠持)의 승록(僧錄)을 대동하고 술과 음식을 가지고 와서 나를 먹여 주다.

 


우리 형은 고희의 연세에 아직도 강건해서 / 吾兄七十尙强康
머리엔 백발이 가득해도 뺨엔 광채가 난다오 / 白髮盈簪頰有光
말 달려 멀리 왔건마는 조금도 피곤한 기색 없이 / 馳馬遠來無小困
승려 데리고 후히 먹이며 번번이 먼저 맛보시네 / 携僧厚餉輒先嘗
언제나 그리운 고향 산천 역력히 떠오르다가도 / 江山歷歷眞懷土
술만 취하면 망망한 천지가 바로 나의 고향이라 / 天地茫茫卽醉鄕
아침 햇빛 창을 비추자 서둘러 돌아가시는데 / 初日入窓催返轡
병부는 빈 침상 누웠으니 부끄러워 어떡하나 / 病夫羞赧臥空床

 

[주D-001]먼저 맛보시네 : 병 든 이종 동생을 위해서 자기가 먼저 음식 맛을 보는 등 끔찍하게 아껴 주는 성의를 보였다는 말이다. 《예기(禮記)》 곡례 하(曲禮下)임금이 병들어서 약을 먹을 경우에는 신하가 먼저 그 약을 맛보고, 아비가 병들어서 약을 먹을 경우에는 자식이 먼저 그 약을 맛본다.[君有疾飮藥 臣先嘗之 父有疾飮藥 子先嘗之]”는 말이 있다.

사람을 기다려도 오지 않기에

 


새해 들어 집 생각 나지 않은 날 있으리오 / 新年無日不思家
공부가 전혀 안 됐으니 싱숭생숭할 수밖에 / 豈有功夫管物華
고적해라 왕래도 끊어진 작은 이 마을에 / 寂寂小村來往斷
오늘도 저녁 해가 서쪽 산으로 지는구나 / 西山依舊夕陽斜

배불리 먹고 편히 거하니 나라에 감사드려야지 / 飽食安居謝國家
강산은 어제와 같은데 머리엔 백발만 늘어나네 / 江山如昨鬢添華
풍아를 본떠 왕의 교화 노래 지어 부르려고 / 欲追風雅歌王化
지금 또 길게 읊조리며 붓에 먹을 적셨다오 / 時復長吟點筆斜

 

집사람이 오다.

 


젊어서는 벼슬살이로 부부가 각각 하늘 끝 / 少年游宦各天涯
꿈속에서나 서로 만나 정답게 얘기했을 뿐 / 夢裏相逢話所思
오늘도 예전과 같을는지 또 어찌 알겠는가 / 今日那知是前日
마음이 기쁜 한편으로 슬며시 또 의심되네 / 縱然心喜又心疑

 

입춘(立春) 전날에

 


내일은 입춘이 돌아오는 날 / 明日當立春
오늘은 바로 섣달 그믐날 밤 / 今日卽除夜
그간에 소식을 가끔씩 듣고는 있었지만 / 寒暄隔無多
찬자를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
何幸見粲者
만물을 기르는 천지의 덕에 힘입어서 / 生物荷天地
자애로운 바람이 조야에 또 불어오리 / 仁風扇朝野
아무쪼록 바라건대 금슬이 어울리듯 하며 /
尙冀如鼓琴
시골집에서 노년을 편히 보낼 수 있었으면 / 安閑老田舍

 

[주D-001]찬자(粲者)를 …… 다행인지 : 아 내를 만난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시경》 당풍(唐風) 주무(綢繆)오늘 밤 얼마나 좋은 밤인고, 아름다운 님의 모습 보게 됐으니.[今夕何夕見此粲者]”라는 말이 나오는데, 주희(朱熹)의 집전(集傳)이것은 남편이 부인에게 말한 것이다.” 하였다.
[주D-002]아무쪼록 …… 하며 :
가 족이 한데 모여 오순도순 단란하게 살고 싶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시경》 소아(小雅) 상체(常棣)아내와 자식들이 화합하며 즐겁게 사는 것이, 마치 거문고와 비파 가락이 서로 어울려 조화되는 것과 같다.[妻子好合如鼓瑟琴]”는 말이 나온다.

입춘(立春) 첩자(帖字)

 


조정에 도가 있어 푸른 봄날 좋은 이때 / 朝廷有道靑春好
문항에도 사가 없이 해가 길다 하였는데 / 門巷無私白日長

이 시의 참 기상을 확인하고 싶으시면 / 欲識此詩眞氣像
지금 세상 우리 동방 보시면 되리이다 / 請看今世我東方

이는 성중(城中)에서 지은 것이다.


청산은 약속한 항상 앞에 있고 / 靑山有約長當戶
유수는 무심하게 못으로 흐른다 하였는데 / 流水無情自入池

목옹이 읊조리는 곳을 알아보고 싶으시오 / 欲識牧翁吟嘯處
시흥이 일렁이는 호탕한 봄바람 속이라오 / 春風浩蕩動新詩

이는 별서(別墅)에서 지은 것이다.

 

[주D-001]조정(朝廷)에 …… 하였는데 : ()나라 설능(薛能)의 〈헌복야상공(獻僕射相公)〉 시에朝廷有道靑春好門館無私白日閒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古今事文類聚新集 卷7 律詩 薛許昌》
[주D-002]청산(靑山)은 …… 하였는데 :
소식(蘇軾)의 시구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 권11 조동년초당(刁同年草堂)에 나온다.

송헌에게 부치다.

 


남은 인생 절간에서 부쳐 살고 싶은데 / 欲乞殘生寄梵宮
묘당의 친구는 나의 소원 들어주시려나 / 廟堂親舊肯吾從
세상일은 만사가 갈가리 찢기고 말았으니 / 立身已致萬事裂
목숨 바쳐 삼세의 공이나 직관해 보려 하오 / 舍命直觀三世空
강물 위엔 동글동글 선탑을 비추는 달빛이요 / 江上團團禪榻月
누대 속엔 살랑살랑 낚싯줄 간지르는 바람이라 / 樓中細細釣絲風
어느 날에나 평소의 소원 이룰 수 있을는지 / 得償素願知何日
앉아서 청산을 대하니 얼굴만 붉어지오그려 / 坐對靑山面發紅

 

유감(有感)

 


대륜은 하느님이 짝을 내려 주는 것 / 大倫天作合
철명의 말씀이 실로 거짓이 아니로세 / 哲命實非虛

남녀가 짝하는 것이 생민의 시작이니 / 配匹生民始
건곤이 자리를 정하는 것과 같다 하리 / 乾坤定位初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별을 슬퍼하나 / 幾人嗟死別
우리 부부는 가난해도 함께 살고 있다오 / 獨我共貧居
둘이서 늙도록 같이 살며 선행을 쌓아 / 積善保偕老
남은 경사를 후손에게 전해 주었으면 / 庶幾流慶餘

 

[주D-001]대륜(大倫)은 …… 아니로세 : 부 부의 인연은 그저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걸맞은 짝을 택해서 하늘이 내려 준다는 뜻으로, 목은 부부야말로 천생배필(天生配匹)이라는 말이다. 《맹자(孟子)》 만장 상(萬章上)남녀가 같은 방에서 거처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큰 윤리이다.[男女居室 人之大倫也]”라는 말이 나오고, 《시경》 대아(大雅) 대명(大明)문왕 초년에 하느님이 배필을 내려 주셨다.[文王初載 天作之合]”는 말이 나온다. 또 《서경(書經)》 소고(召誥)사람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하늘이 거기에 걸맞게끔밝은 명[哲命]’을 내려 준다.”는 말이 나온다.
[주D-002]남녀가 …… 하리 :
남 녀가 결혼하여 자식을 낳는 것 역시 하늘과 땅이 만물을 내는 것처럼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는 말이다.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건괘와 곤괘가 정해지고, 낮고 높은 것이 베풀어지니 귀하고 천한 것이 자리를 잡게 된다.[天尊地卑 乾坤定矣 卑高以陳 貴賤位矣]”는 말이 나오고, 서괘전(序卦傳)천지가 있은 다음에 만물이 있고, 만물이 있은 다음에 남녀가 있고, 남녀가 있은 다음에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은 다음에 모든 인간 생활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말이 나온다.
[주D-003]둘이서 …… 전해 주었으면 :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선행을 쌓은 집안은 자손에까지 경사가 미치게 마련이다.[積善之家必有餘慶]”라는 말이 나온다.

적성(赤城)의 유 판사(兪判事)가 약밥을 보내왔기에

 


까마귀 울기 전에 찰밥을 향기롭게 쪄서 /
秫飯蒸香鴉未鳴
집집마다 서로 보냄은 인정에 합당한 일 / 家家相送當人情
궁벽한 시골 적막한데 어느새 대보름 명절인가 / 窮村寂寞驚佳節
씹어서 음미하노라니 벗님의 우정이 새록새록 / 咀嚼深知舊故情

 

[주D-001]까마귀 …… 쪄서 : 예로부터 까마귀를 신령스러운 새라 하여 대보름날을 까마귀 제삿날[烏忌之日]로 정하고 찰밥을 지어서 제사한 습속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정오가 될 무렵에 용철(龍鐵)이 약밥을 보내오다.

 


보내온 약밥에 꿀물도 적당히 엉겨 붙었는데 / 送來藥飯蜜調凝
말 들으니 남산 무당의 집에서 쪄낸 것이라나 / 云是南神宅裏蒸
이것을 보니 더더욱 속이 상하는 뜬 세상일 / 對物倍傷浮世事
서역 승처럼 먹지 않고 살아갈 없을는지 -
서역 승은 지공(指空)을 말한다. / 不如不食學西僧

 

[주D-001]서역(西域) …… 없을는지 : 《목은문고》 제14권 〈서천(西天) 제납박타 존자(提納薄尊者)의 부도명(浮屠銘) 병서(幷序)〉에 지공(指空)이 천력(天曆) 이후로 먹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은 것이 무려 십여 년이나 되었다.”는 말이 나온다.

이웃집 늙은이인 이 상서(李尙書)와 박 중랑(朴中郞), 김석(金碩), 김언(金彦), 이우중(李祐仲), 손숙휴(孫叔畦)가 윷놀이를 하기에 옆에 앉아서 구경하다.

 


동방의 풍속이 예로부터 세시를 중히 여겨 / 風俗由來重歲時
흰머리 할범 할멈들이 아이처럼 신이 났네 / 白頭翁媼作兒嬉
둥글고 모난 윷판에 동그란 이십팔 개의 /
團團四七方圓局
정과
의 전략 전술에 변화가 무궁무진하이 / 變化無窮正與奇
졸이 이기고 교가 지는 게 더더욱 놀라우니 / 拙勝巧輸尤可駭
강이 삼키고 약이 토함도 기약하기 어렵도다 / 强呑弱吐亦難期
노부가 머리를 써서 부려 볼 꾀를 다 부리고 / 老夫用盡機關了
가끔씩 다시 흘려 보다 턱이 빠지게 웃노매라 / 時復流觀笑脫

 

[주D-001]둥글고 …… : 윷판의 바깥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고, 안쪽의 모진 것은 땅을 본뜬 것이며, 윷판의 중심에 있는 점은 북극성을 상징하고,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점들은 28(宿)를 상징한다고 한다.
[주D-002]정(正) 기(奇) :
병법(兵法)의 용어로, 각각 정도(正道)와 편법(便法)에 의한 작전을 말한다.

말 타고 사냥하러 가는 모습을 보고서

 


평산에 눈 그치고 사방이 온통 새하얀 빛 / 平山雪霽白皚皚
사냥개 끌고 몇 사람이 말을 타고 오는구나 / 牽狗時看數騎來
어디에서 새벽부터 교활한 토끼를 쫓으려나 / 何處凌晨逐狡

많이 잡기 내기하며 얼근히 취해서 돌아오리 / 競誇多獲半酣廻

 

옴병에 걸려 마음이 편치 못하기에 며칠 동안 시를 읊지 못하다.

 


옴병이 극성을 떨며 내 마음까지도 흔들어서 / 疥發相攻擾我心
며칠 동안 고통 속에 시 읊는 일도 중지했네 / 苦哉連日輟長吟
셋째 애가 뽕나무 잿물에 적셔서 닦아 주니 / 三郞特浸桑灰洗
선인이 정수리에 침 놓는 것보다 훨씬 낫군 / 絶勝仙人頂上針

 

문생(門生)인 길 주서(吉注書)가 집에서 보임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가 늙고 어린 가족들을 데리고 선주(善州)로 돌아갈 적에 나를 찾아와 작별 인사를 하고는 하룻밤을 묵고 가다.

 


태학에서 유학할 때 경서에 통했다 이름나고 / 從游泮水號通經
급제해서 주서 머리가 아직도 검었다오 /
及第注書雙鬢靑
가족들 데리고 고향 갈 때 나에게 작별을 고하면서 / 辭我携家故鄕去
내 말을 들으려 하는 것이 정녕한 뜻이 있는 듯도 / 且聆吾語若丁寧
독서했으면 고인의 발자취 따라야 하고말고 / 讀書須踐故人跡
대책문은 천자의 뜰에나 올리도록 해야겠지 / 對策要登天子庭
높은 벼슬 굴러 온들 급하게 여길 것 있으리오 / 軒冕倘來非所急
기러기 한 마리 아득히 하늘 끝으로 사라지네 / 飛鴻一箇在溟溟

 

[주D-001]급제해서 …… 검었다오 : 창왕 1(1389)에 야은(冶隱) 길재(吉再) 37세의 나이로 문하주서(門下注書)에 임명되었는데, 그 이듬해에 이 시에 나오는 것처럼 노모 봉양을 이유로 고향인 선산(善山)으로 돌아갔다.

23일에 송헌(松軒)에게 부쳐 올리다.

 


적현
에서도 이 몸이 자유스럽지 못했으니 / 赤縣吾猶不自由
하늘 끝 귀양살이 그 시름이 또 어떻겠소 / 天涯謫客可知愁
편할 대로 떠나게끔 잘 좀 주선해 주신다면 / 善謀若許從便去
백만년 더 사시도록 응당 축수를 올리리다 / 祝壽應添百萬籌

 

[주D-001]적현(赤縣) : 중국을 가리킨다. 전국 시대 제()나라 추연(鄒衍)이 중원(中原) 지방을신주적현(神州赤縣)’이라고 이름하였다.

정 이상(鄭二相)에게 부치다. 3(三首)

 


나는 비방을 해명할 생각도 이미 없소이다 / 我已無心賦解嘲
장차 무슨 면목으로 다시 조정에 나가리까 / 將何面目復趨朝
외로이 배 타고 여강으로 올라가고픈 생각뿐 / 孤舟可泝驪江去
양쪽 기슭 높은 산에 눈도 녹으려 할 터이니 / 兩岸高山雪欲消

병든 내가 머나먼 길 중국으로 떠날 적에 / 病我朝天道路

공이 멀리 전송하며 하룻밤 함께 보냈지요 / 煩公遠送宿婆娑
그 당시 내 마음속의 생각을 말한다면 / 當時一寸心中地
어찌 내 몸 위했겠소 나라 걱정뿐이었다오 / 豈爲吾身爲國家

영왕의 자리를 구가하다 즉진하려 한다면서 /
久假瀛王欲卽眞
성랑이 나를 탄핵하여 한가한 사람 만들었네 / 省郞彈我作閑人
하지만 이 몸은 예나 이제나 단표의 누항 생활 / 看來依舊單瓢巷
세상을 떠나 즐기는 것 또한 절륜하다 하리이다 / 所樂超然亦絶倫

 

[주D-001]영왕(瀛王)의 …… 한다면서 : 오 대(五代) 때에 다섯 조정을 섬기면서 부귀영화를 계속 누렸던 풍도(馮道)처럼, 목은이 눈치를 보며 아첨하여 한때 임시로 고관의 자리를 빌려서 차지하고 있다가 이제는 아예 정식으로 영원히 자기의 소유로 하려 한다는 비방을 받았다는 말이다. 오대 시대의 재상(宰相) 풍도가 일생 동안 후당(後唐), 후진(後晉), 거란(契丹), 후한(後漢), 후주(後周) 등 다섯 나라의 조정에서 여섯 명의 임금을 섬긴 것을 자랑하며 장락로(長樂老)라고 자호(自號)하였는데, 영왕(瀛王)은 그의 시호(諡號)이다. 《新五代史 卷54 馮道列傳》 구가(久假)는 오래도록 빌려 쓴다는 뜻인데, “춘추 시대에 오패가 인의의 이름을 오래도록 차용하면서 돌려 주지 않았다.[五覇假之也 久假而不歸]”는 말이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온다. 즉진(卽眞)은 임시로 맡은 대리 직책에서 정식으로 그 자리에 취임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2]단표(簞瓢) 누항(陋巷) 생활 :
안 빈낙도(安貧樂道)의 생활을 뜻한다. 《논어》 옹야(雍也), 공자가한 그릇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누추한 골목에서 사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한결같이 변치 않으니 참으로 어질다.[一簞食一瓢飮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고 칭찬한 말이 나온다.

중화당(中和堂) 동네의 권 밀직(權密直)이 술 한 병과 쇠고기와 백미 스무 말을 보냈기에 붓을 달려 사례하다.

 


지금 얻기 어려운 살진 쇠고기 / 肥肉今難得
옛날에 음미했던 향기로운 술 / 芳醪昔所嘗
여기에 서신에다 하얀 쌀까지 / 侑緘加白粲
띳집에 갑자기 광채가 발하네요 / 茅屋頓生光

 

[주C-001]중화당(中和堂) 동네 : 개 경 송악산 아래에 있는 자하동(紫霞洞)을 말한다. 채홍철(蔡洪哲)이 이곳에 중화당을 지어 빈민을 구료(救療)하는 한편, 8인의 원로들을 초청하여 기영회(耆英會)를 조직하고 스스로 자하동곡(紫霞洞曲)을 지은 고사가 있다. 《東史綱目 第14上 忠惠王 後1年》

낭장(郞將) 이연(李延)의 집에서 향도(香徒)를 모아 놓고 술자리를 벌였는데, 노부(老夫)도 가서 그 사이에 끼어 있다가 약간 취기가 돌기에 먼저 나왔다.

 


장단 북쪽 마을에 자리한 금퇴 / 長湍北里有金堆
결사하고 분향한 일 어언 몇 년인가 / 結社燒香歲幾回
봄바람 쫓아가서 윗자리 차지하고 앉아 / 趁取春風參上座
동이째 가져와서 새로 빚은 술 맛봤다오 / 携來樽酒澍新

국상이 지금 동석했다 누가 의식이나 할까 / 誰知國相今同席
그저 이웃집 늙은이로 함께 술잔 들 뿐인걸 / 我以隣翁共擧杯
연포
하며 가만히 읊는 기막힌 이 낙이여 / 軟飽微吟眞樂甚
풍악 소리를 어찌 꼭 누대에 울려야 하리 / 管絃何必動樓臺

 

[주D-001]금퇴(金堆) : 제왕의 능묘를 뜻하는 금속퇴(金粟堆)의 준말로, 공민왕의 능인 현릉(玄陵)을 가리킨다.
[주D-002]연포(軟飽) :
술 을 마시는 것을 뜻한다. 소식(蘇軾)의 시에석 잔을 연거푸 연포한 뒤에, 베개 하나 베고 달콤한 꿈나라로.[三杯軟
後 一枕黑甛鄕]”라는 구절이 있는데, 자주(自註)절강(浙江) 사람들은 음주(飮酒)를 연포라 한다.”고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38 發廣州》

마음에 관한 시 한 수를 지어서 송헌(松軒)에게 부쳐 올리다.

 


사방 한 치 허령한 우리 마음은 / 方寸虛靈地
밝고 밝게 상제께서 임하시는 곳 / 明明上帝臨
돌아다보면 지나간 과거를 포괄하고 / 廻看包往古
똑바로 보면 닥칠 일도 환히 안다오 / 直視燭來今
서로 비춰 줄 때는 거울과 같고 / 照處眞如鏡
함께할 때에는 쇠를 자를 수도 /
同時可斷金
어떡하면 한 동이 술을 마시면서 / 何當一樽酒
서로 마주 보며 마음을 논해 볼까 / 相對細論心

 

[주D-001]허령(虛靈) : 물 들지 않은 본래의 마음을 형용하는 말로, 텅 빈 가운데 신령스럽기 그지없어서 어느 것이나 환히 알아 감응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의허령 불매(虛靈不昧)’라는 표현이 《대학장구(大學章句)》 명덕(明德)에 대한 주희(朱熹)의 해설에 나온다.
[주D-002]함께할 …… 수도 :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그 단단함이 쇠도 자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말에서는 난초 향기가 풍겨 나온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는 말이 나온다.

자영(自詠)

 


요전에 내 늙은 것 가련하게 여기다가 / 昔日憐吾老
봄을 만나 만물이 피어 나니 느꺼워져 / 逢春感物生
눈물이 쏟아지니 두 눈이 어둠침침 / 淚多雙眼暗
욕심이 적어지니 한 몸이 가뿐사뿐 / 慾少一身輕
애가 타도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여 / 耿耿思鄕意
끝이 없어라 도성을 떠난 이 정회여 / 悠悠去國情
창문 닫고 잠자리에 들려고 하니 / 閉窓將就睡
침상에 또 들려오네 바람 소리가 / 枕上又風聲

 

적 성()의 유 선생(兪先生)을 방문했으나 그를 만나지는 못하고, 마중 나온 부인을 따라 손님의 자리에 들어섰더니, 술과 음식을 매우 풍성하게 차려 놓고 대접을 하였다. 그러고는 또 후원(後園)의 작은 동산에 올라가서 사방을 한번 바라보라고 청하면서, 이것이 바로 남편의 뜻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노부(老夫)에게 그 형승(形勝)을 알게 하고자 함이었다. 이에 돌아와서 이날의 일을 기록하였다. 3(三首)

 


장단의 남쪽이요 적성의 서쪽 변두리 / 長湍南畔城西
산은 띳집을 옹위하고 물은 둑에 멈춰 있네 / 山擁茅茨水泊堤
그 안에 주인의 삼경이 들어 있나니 / 中有主人三徑在
이웃에 살며 손 잡고 함께 걷고 싶어라 / 卜隣吾欲共携提

주인이 동정함이렷다 내 늙어 관직은 없어도 / 主人憐我老無官
나라 위한 일편단심 아직도 지니고 있는 것을 / 一片丹心尙不刊
그래서 등산해 잠시라도 눈 들어 보게 하였나니 / 故請登山暫游目
구름 끝 솟구친 곡봉의 푸른 빛 한번 보시라고 / 鵠峯蒼翠聳雲端

맛깔진 음식은 매끄럽고 진국술은 향기롭고 / 美食醇醪滑更香
정말 보약인 것처럼 위 속에 술술 들어가네 / 眞如補藥入中腸
여종이 명을 전하면서 어서 많이 드시라고 / 女奴傳命勤相勸
약간 취해 돌아오니 오늘도 해가 뉘엿뉘엿 / 微醉歸來又夕陽

 

[주D-001]삼경(三徑) : 은 자가 산책하는 오솔길을 말한다. 서한(西漢) 말의 장후(蔣詡)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온 뒤에, 산보하는 길 세 개[三徑]를 만들어 놓고 오직 절친한 벗인 양중(羊仲)ㆍ구중(求仲) 두 사람과 소요하며 즐겼던 고사가 전한다. 《三輔決錄 逃名》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도호젓한 오솔길은 황폐해졌어도, 솔과 국화는 그대로 남아 있네.[三徑就荒 松菊猶存]”라는 명구가 나온다

경복(敬僕) 왔기에 시를 짓고는 중동(中童)에게도 보여 주다.

 


네가 가면 나는 항상 생각나는데 / 汝去我常思
너는 이 할아비를 생각한 적 있느냐 / 汝曾思我無
네가 와서 이 할아비 무척 기쁘니 / 汝來我喜甚
너도 나를 보고 기뻐할 줄 알겠도다 / 知汝喜見吾
너의 얼굴 보들보들 예쁘기도 한데 / 婉婉汝眉目
이 할아비는 수염이 온통 희끗희끗 / 星星我髭鬚
공부하는 것을 보면 자못 총민하니 / 學問頗聰敏
네 머리가 어떤지는 알 수 있겠다만 / 可見汝頭顱
열심히 노력 않고 근신을 하지 않아 / 只恐不勤謹
끝내 인의의 길에서 헤맬까 걱정이라 / 終迷仁義塗
문장으로는 혹 속된 선비가 된다 해도 / 文章或俗士
도덕으로는 참 유자가 되어야 하고말고 / 道德爲眞儒
너는 앞으로 성인의 가르침 궁구하며 / 汝且究聖訓
낮이고 밤이고 사색하고 음미를 하라 / 索玩忘朝脯
중동은 너보다 겨우 한 살 더 많지만 / 中童長一歲
꽤나 심오한 곳을 탐구할 줄 아니 / 頗能探奧區
서로들 권면하여 큰 뜻을 세우고서 / 相勉立大志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알도록 할지니라 /
擧一反三隅
공적과 명성은 천명에 달려 있거니와 / 功名在天命
우선 지향할 목표는 바로 요순 시대 / 且可歸唐虞
지어지선
에 항상 뜻을 두어야만 / 所止在至善
비로소 참된 장부라 할 수 있으리라 / 始爲眞丈夫

 

[주C-001]경복(敬僕)이 …… 보여 주다 : 경 복과 중동(中童)은 목은의 손자로, 둘째 아들 종학(種學)의 아들이다. 《목은시고》 제17권 〈경복이 필묵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敬僕弄筆墨]〉에중손이 지금 이와 같으니, 나의 노년 위로받기에 충분하도다.[仲孫今若此自足慰殘陽]”라는 말이 나오고, 또 《목은시고》 제13권 〈경복이 남쪽 마을에 가 있으면서 불러도 오지 않다.[敬僕在南里招之不來]〉에중손 두 병아리가 남쪽 마을에 가 있다.[仲孫二雛在南里]”는 말과계림 택주는 바로 중손의 외갓집이다.[雞林宅主是母家]”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1]하나를 …… 할지니라 :
《논어》 술이(述而)한 모퉁이를 가르쳐 주었는데도 나머지 세 모퉁이를 알아채어 반응하지 못한다면 더 가르쳐 줄 것이 없다.[擧一隅不以三隅反則不復也]”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02]지어지선(止於至善) :
사람들 모두가 지극한 선에 머무르게 한다는 뜻으로, 유가(儒家)의 이상향이라 할 대동사회(大同社會)를 의미하는데, 《대학장구》 제1장의 삼강령(三綱領) 중에 이 말이 나온다.

자영(自詠) 1(一首)

 


꿈속에선 요행히 재상의 지위에 올랐는데 / 夢中僥倖到黃扉
깨고 보니 변함없이 하나의 평민 신분일세 / 覺後依然一布衣
깨운 고기 씹는 소리 여윈 불쌍도 한데 /
喧枕枯箕憐馬瘦
담장 주위 노제라도 사람들 배불리 먹었으면 /
繞墻老薺望人肥
남쪽 바다 순천에서 아이는 없이 지내겠지 /
順天南海兒無恙
동산에 부슬비 내리건만 나는 여태 돌아가네 /
零雨東山我未歸
언제쯤일까 금계 한 소리에 새벽이 열리면서 / 何日金雞一聲曉
은퇴하여 농사나 지으며 위기를 피할 날은 / 乞身耕牧避危機

 

[주D-001]잠 …… 한데 : 말 이 사람들에게 여물을 얻어 먹지도 못해 바짝 야윈 채 불쌍하게도 고기(枯箕) 즉 마른 삼태기를 씹어 먹는 소리가 잠을 깨웠다는 말로, 마을 전체가 기근을 당한 비참한 상황을 형용한 말인데, ()나라 황정견(黃庭堅)의 〈6 17일 낮잠에서 깨어[六月十七日晝寢]〉라는 시에말이 마른 삼태기 깨물어 먹는 소리에 깬 낮잠이여, 그동안 꿈속에 비바람 치며 강 물결 뒤집혔는데.[馬齧枯箕諠午枕 夢成風雨浪翻江]”라는 표현이 나온다.
[주D-002]담장 …… 먹었으면 :
구황 식물인 노제(老薺) 즉 황새냉이 등의 나물이 담장 주위에 많이 돋아났으니 사람들이 이것이라도 배불리 먹고 허기를 면하면 좋겠다는 말이다.
[주D-003]남쪽 …… 지내겠지 :
순천으로 유배된 둘째 아들 종학(種學)의 근황을 상상한 것이다.
[주D-004]동산(東山)에 …… 돌아가네 :
고 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감회를 읊은 것이다. 《시경》 빈풍(豳風) 동산은 주공(周公)을 따라 멀리 전쟁터에 나갔던 군사가 고향에 돌아온 심정을 읊은 시인데, 그중에내가 동산에 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했었는데, 동쪽에서 돌아올 적에 부슬비 자욱이 내렸다네.[我徂東山慆慆不歸 我來自東 零雨其濛]”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05]금계(金雞) :
전설상의 황금 닭으로, 이 닭이 부상(扶桑)의 산 위에서 한 번 울면 천하의 닭이 모두 따라 울면서 새벽이 밝아 온다고 한다. 《神異經 東荒經》

밭 가는 이들이 장차 들판에 가득하겠기에 나 자신을 비웃으면서 한 수 짓다.

 


한평생 내 운명을 하늘에 모두 맡겼다만 / 平生行止付於天
노년에 자꾸 어긋나니 스스로도 가련해라 / 垂老參差自可憐
은퇴하여 살아갈 집을 일찍이 찾긴 하였다만 / 乞退雖然曾問舍
배고픔을 참을지언정 감히 밭을 구하리오 / 忍飢安敢更求田

물은 땅의 형세에 따라 마르기도 넘치기도 / 水隨地勢乾仍溢
소는 사람 소리 듣고 이리 왔다 저리 갔다 / 牛解人聲往復旋
불일간에 들판 가득 봄갈이 시작될 터인데 / 不日春耕將徧野
노부는 무엇을 하며 금년을 또 보낼거나 / 老夫何以度今年

 

[주D-001]은퇴하여 …… 구하리오 : 세 상을 경륜하는 큰 뜻은 펼치지 못한 채, 그저 개인적인 일에나 신경을 쓰는 초라한 신세를 자조(自嘲)한 것이다. 삼국 시대 위()나라 진등(陳登)에게 허사(許汜)가 찾아왔을 때 진등이 그를 무시하고 대우하지 않자, 허사가 이에 불만을 품고는원룡은 호기가 아직도 남아 있다.[元龍豪氣不除]”고 유비(劉備)에게 하소연하니, 유비가당신은 국사(國士)의 명성을 지닌 사람인 만큼 세상을 구할 생각을 해야 할 것인데, 그저 밭이나 집을 구하려고만 하는 등 취할 말이 없었으므로 원룡이 꺼린 것이다.[君求田問舍 言無可采 是元龍所諱也]”고 대답한 고사가 전한다. 《三國志 卷7 魏書 陳登傳》

이 판서(李判書) 구직(丘直) 가 두 단지의 술과 백미 열 말을 보냈기에, 이렇게 감사하는 시를 지어서 맹균(孟畇)에게 읊어 드리도록 하였다.

 


늘씬한 키가 간짓대 같아 조정 반열에 우뚝 / 長身直幹秀朝班
공무에 엄격해서 사적인 청탁은 어림도 없지 / 莅事精强不得閑
빈궁한 사람 구해 주던 일 지금은 드물기만 하니 / 記舊贐窮今世少
먹을 것 없는 이 몸을 동정할 사람이 뉘 있으랴 / 有誰憐我食方艱

향기로운 두 단지 술에 정미를 한 하얀 쌀 / 朋酒吹香白粲精
명실상부하게 정과 기가 온몸에 도는구나 / 生精行氣實符名
쫓겨난 중에 기쁘게도 어진 분 음식을 받았으니 / 謫中喜得仁人饋
취하고 배부른 태평의 노래
를 부르게 해야겠네 / 醉飽應敎詠太平

 

[주D-001]취하고 …… 노래 : 《시경》 대아(大雅) 기취(旣醉)는 태평 시대의 기상을 읊은 시로, 음식을 대접한 주인에게 손님이 감사드리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에술로 벌써 취하였고, 덕으로 이미 배불렀네.[旣醉以酒 旣飽以德]”라는 구절이 나온다.

4 2일에 은계(隱溪)가 나를 찾아와 유숙하면서 입으로 읊기를한평생 행동거지 인연 따라 되는 대로, 빈부와 부침 모두 하늘에 맡겨 버렸구려. 나는 알지 그대는 누항에 편할 수 없는 것을, 성군이 남면하여 존현을 의논케 하리니.[平生行止任隨緣 貧富升沈付與天 知子不能安陋巷 聖君南面議尊賢]”라고 하였다. 그 말뜻을 살펴보니 노부가 감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답하지 않을 수도 없기에 화운(和韻)하여 두 수를 이루었다.

 


일찍이 망념을 정화하고 세상 인연을 쉬신 분 / 早澄諸念息諸緣
학의 자태 구름 자취로 한 하늘 함께하시누나 / 鶴態雲蹤共一天
이 어른과 같은 경지를 어찌 이루기 쉽겠는가 / 能致此翁誠不易
우리 당도 지금부턴 우리의 현인으로 모셔야만 / 從今吾黨識吾賢

목옹도 늙어 가며 속진의 인연이 줄어들어 / 牧翁垂老少塵緣
음풍농월이나 하며 더욱 자연을 즐긴다오 / 賞月吟風更樂天
더구나 소도를 갖고 날마다 애용함이리까 / 況有小圖爲日用
그대와 나는 십성과 삼현인 것이 분명하오 / 分明十聖與三賢

 

[주C-001]은계(隱溪) : 성이 임씨(林氏)인 승려의 시호(詩號)이다. 《목은문고》 제8권에 〈은계(隱溪) 임 상인(林上人)을 보내면서 지어 준 글〉이 실려 있다.
[주C-002]존현(尊賢) :
《중 용장구(中庸章句)》에 나오는 구경(九經) 중의 하나이다. 구경은 천하 국가를 경영하는 아홉 가지 강령(綱領)으로, 수신(修身)ㆍ존현(尊賢)ㆍ친친(親親)ㆍ경대신(敬大臣)ㆍ체군신(體君臣)ㆍ자서민(子庶民)ㆍ내백공(來百工)ㆍ유원인(柔遠人)ㆍ회제후(懷諸 侯)를 말한다.
[주D-001]소도(小圖) :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와 같은 소폭의 불화(佛畫)를 가리킨다.
[주D-002]십성(十聖) 삼현(三賢) :
수 행의 경지를 뜻하는 불교 용어이다. 십성은 이미 큰 지혜를 발해서 범부의 성품을 떠난 십지 보살(十地菩薩)을 가리키고, 삼현은 어느 정도 비슷하게 알기는 하나 아직 범부의 성품을 떠나지 못하고 십주(十住)ㆍ십행(十行)ㆍ십회향(十廻向)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수행인을 가리킨다.

이날 문생인 조 밀직(趙密直)이 술과 음식을 보냈기에 앞의 운을 써서 시를 지은 뒤에 인편에 부쳐 보냈다.

 


나는 후회하노라 연목구어를 했던 일을 / 我悔求魚木上緣
부휴
의 인생이 어찌 감히 천명을 면하리오 / 浮休有命敢逃天
사문의 골육도 지금은 예전과 같지 않으니 / 斯文骨肉今非古
공처럼 어질게 마음 쓰는 이가 몇이나 될까 / 用意如公有幾賢

 

[주D-001]연목구어(緣木求魚) : 나무 위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으려 하는 것처럼, 원래 되지도 않을 일을 성사시키려고 무리하게 추진해 온 것을 말한다.
[주D-002]부휴(浮休) :
잠시 이 세상에 왔다가 금세 떠나가야만 하는 무상한 인생을 비유한 말로, 《장자》 각의(刻意)삶이란 물 위에 떠 있는 거품과 같고, 죽음이란 그 거품이 꺼지는 것과 같다.[其生若浮其死若休]”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03]골육(骨肉) :
부자(父子)와 같은 좌주(座主)와 문생의 관계를 말한다.

중동(中童)을 데리고 인장(隣長) 박영기(朴英起)와 함께 장단(長湍) 석벽(石壁)의 철쭉꽃을 구경하다.

 


푸른 병풍 가로 걸친 장단의 석벽 위에 / 長湍石壁翠屛橫
비단을 펼친 듯 환하게 철쭉이 피었도다 / 躑躅花開錦

장사꾼 배를 잠시 빌려 흐름 따라 내려가니 / 暫借商船順流下
한 시절의 정경 모두 이름 붙이기 어렵도다 / 一時情景儘難名

 

장 단 현령(長湍縣令) 문군(文君)과 석벽에서 다시 노닐었다. 문군의 마중을 받고 물이 한데 모이는 상류까지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고 음식을 먹으며 즐기다가 늦게야 돌아왔는데, 이 자리에 맹균(孟畇)과 유기(柳沂)가 참석하였다. 이날 문생인 맹사성(孟思誠)과 이치(李稚)가 와서 소식을 알려 주기를, 대성(臺省)이 전의 일을 또 논핵하여 함창(咸昌)으로 부처(付處)하였다고 하였다.

 


장단의 현령은 풍류의 정취도 넉넉해서 / 長湍縣令足風情
노생 위로하려고 술병 들고 꽃구경 왔네 / 携酒看花慰老生
배를 타니 기분은 벌써 하늘 위에 앉은 듯 / 已信船如天上坐
사람도 거울 속을 지나는 착각이 들었다오 / 又疑人向鏡中行
그물에 물고기 펄떡펄떡 누가 즐겁지 않으리오 / 錦鱗掛網誰不樂
술단지에 밥알이 둥둥 흥분을 가누지 못하였소 / 綠蟻盈甌吾欲狂
해 저물어 집에 와서는 깊이 자성을 하였나니 / 日暮還家深自省
조물이 주고 또 뺏는 것을 다시 확인했으니까 / 乘除造物更分明

 

8일에 집사람이 왔다. 이는 남쪽으로 떠나는 나를 전송하기 위함이었다.

 


백년해로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마음이니 / 百年偕老是人情
늙어서 먼 길 보내는 그 심정이 어떠하랴 / 衰老何心送遠行
머리 위의 하늘을 피해 도망칠 수 없으니 / 頭上有天逃不得
후일에 다시 모여 함께 살 수나 있을는지 / 那知後日復相幷

 

집사람을 데리고 석벽에서 노니는 중에 이웃집 박씨가 물을 건너다 말에서 떨어져 삿갓을 잃었다.

 


어떤 그림도 비교가 안 될 한 구역의 이 형승 / 一區形勝畫難如
나의 남은 흥취를 부인도 맛보게 하려 했는데 / 欲使夫人賞我餘
이웃 노인이 어쩌자고 이 즐거움을 방해하노 / 隣老奈何妨此樂
감흥이 모조리 사라져서 오두막으로 돌아왔소 / 苦無情興返吾廬

 

서촌(西村)의 김룡(金龍) 내관(內官)이 술과 음식을 가지고 찾아오다.

 


소년 시절 남천할 때 모신 공이 중했는데 / 少年功重侍南遷
중년에 돌연한 상선으로 마음이 상했었지 / 中歲心傷忽上仙
늙어 농장에 돌아가서 세상일을 잊으신 분 / 歸老田莊忘世事
이분의 어진 행실을 어떤 사람이 따르리오 / 何人能及此公賢
항아리에서 막 떠낸 술엔 흰 밥알 둥둥 뜨고 / 浮蛆美酒初離甕
평원의 날쌘 토끼가 화살에 맞아 안주감으로 /
平原忽應絃
특별히 노옹을 찾은 것이 더욱 뜻이 있나니 / 特訪老翁尤有意
현릉의 재상이 지금 연기처럼 흩어졌으니까 / 玄陵宰相散如煙

 

[주D-001]남천(南遷) : 홍건적의 침입을 피하여 공민왕이 개경을 떠나 청주(淸州)를 거쳐서 안동(安東)까지 파천(播遷)했던 일을 가리킨다.
[주D-002]돌연한 상선(上仙) :
홀연히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말로, 공민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뜻한다.

중동(中童)을 급히 보내 나의 뜻을 담은 이 시를 송헌(松軒)에게 올리게 하였나니, 가슴속에서 일어나는 회포를 가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은 풍진 밖에 노닐고 있건마는 / 心在風塵外
육신은 아직도 오랏줄에 묶여 있네 / 身居縲

묻노라 어떤 이가 나의 뜻을 이뤄 줄꼬 / 問誰成我志
충심으로 날 위해 꾀해 줄 이 누구일까 / 謀我有誰忠
우로의 은혜에 젖어 볼 길이 없어 / 雨露霑濡闊
강산을 그저 왔다갔다 반복하기만 / 江山往復重
송헌은 기꺼이 몸을 돌봐 주리니 / 松軒肯相恤
끝내 길이 막혀 통곡하지는 않으리라 / 終不哭途窮

 

[주D-001]송헌(松軒)은 …… 않으리라 : 이 성계의 도움을 받아 목은이 위기에서 빠져나오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삼국 시대 위()나라 완적(阮籍)이 울분을 달래려고 혼자 수레를 타고 나갔다가 길이 막히면 문득 통곡하고 돌아왔다는궁도곡(窮途哭)’의 고사가 전하는데, 이후 곤경(困境)에 떨어져 희망이 없는 상태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함창음(咸昌吟)

경오년 8 13일에 함창에 도착했다. 압송관(押送官)인 근시(近侍) 낭장(郞將) 주인기(朱仁起)가 돌아가는 편에 두 분 시중(侍中)에게 부쳐 올렸다.

출척사(黜陟使) 영공(令公)에게 부쳐 올리다.

중구일(重九日) 뒷날에 청주(淸州)로 가는 사람이 있기에 절구 한 수를 읊어서 종학(種學) 첨서(簽書)에게 내가 평안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라고 전해 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그 사람이 끝내는 그곳에 가지 못하였다.

백 손(伯孫) 맹균(孟畇)이 나를 따라서 남쪽으로 왔는데, 그의 누이가 병들어 매우 위태로운 상태라고 집사람이 소식을 전해 왔다. 이에 내가 맹균에게 권하기를, “형제는 천륜(天倫)인데, 한번 세상을 떠나면 다시 만나 볼 길이 없으니, 너는 급히 가서 보도록 하라. 나는 여기에 있어도 네가 보다시피 친척들이 향리에 가득하여 날마다 상종하고 있으니 걱정할 것이 뭐가 있겠느냐. 나는 이제 늙어서 다른 소망은 없다만, 단지 너의 조모(祖母)가 아직도 오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릴 뿐이다.” 하였다. 이에 맹균이 하직 인사를 하고 떠났는데, 하룻밤을 혼자 묵다 보니 느낌이 없지 않기에 다음 날 술에 취한 김에 시 한 편을 지어서 기록하였다.

동년(同年)인 경산부(京山府)의 김 판서(金判書) 에게 부치다.

희제(戲題)

하광조(河光祖) 서령(署令)에게 지어 준 시

출척사 영공(令公)에게 부쳐 올리다.

출척사에게 부치다.

권신재(權愼齋)에게 부치다.

희제(戲題)

유감(有感)

기사(紀事)

오천(烏川)에게 부치다.

송헌(松軒)에게 부치다.

삼봉(三峯)에게 부치다.

도당(都堂)에 올리다.

유감(有感)

나의 우거(寓居)

유 진천군(柳晉川君)에게 부치다.

이첨(李詹) 승지(承旨)에게 부치다.

충주목(忠州牧)으로 있는 황 동갑(黃同甲)에게 부치다.

여흥(驪興)의 권 지군(權知郡)에게 두 수 부치다.

칠석일(七夕日)에 주인인 대선사(大禪師)가 음식상을 차려 주기에 노부(老夫)가 취해 누워서 절구를 읊조리고는 다음 날에 기록하여 올렸다.

이날 감군(監郡) 정공(鄭公)이 술을 가지고 찾아왔기에 그다음 날에 시를 지어 감사드렸다.

감군공(監郡公)이 보리 두 섬과 참깨 다섯 말을 보내오다.

정산(定山)을 겸임하고 있는 이산(尼山)의 신 감무(申監務)에게 부치다.

구좌(久坐)

상주(尙州) 교수관(敎授官) 이여신(李汝信)이 찾아왔는데, 그는 나의 문생이다.

매미 소리를 듣고

일찍 일어나서 소나무를 바라보고는 느낌이 있기에

안동(安東) 권신재(權愼齋)가 글을 보내며 차운한 시를 함께 보여 주기에 다시 그 운을 써서 부쳐 올리다.

대우탄(大雨歎)

이백(李白)의 시를 읽고

이승길(李承吉) 중랑(中郞)이 새로 빚은 술을 가지고 와서 대접한 것이 두 차례나 되기에 단가(短歌)를 지어서 애오라지 이에 보답하려 하였다.

우제(偶題)

음소(吟嘯)

기쁜 일을 기록하다.

해주(海州)의 족장(族長)에게 받들어 부치다.

답답한 마음을 풀다. 김 상장(金上將)이 술을 들고 찾아와서는 밤이며 완두콩 등을 먹여 주었다.

8 3일에 상주(尙州)의 유학 교수관(儒學敎授官)이 번육(膰肉)을 보내오다.

7일에 출척사(黜陟使) 영공(令公)이 덕통(德通)을 지나간다는 말을 들었는데, 병 때문에 직접 나가서 뵙지 못하고 대신 글로 써서 부쳐 올렸다.

잠 시자(岑侍者)가 개천사(開天寺)로 돌아가겠다고 하직 인사를 하기에 붓을 달려 환암 국사(幻菴國師)에게 부쳐 올렸다.

백 련회(白蓮會) 자리가 파한 뒤에 박 영공(朴令公)을 머무르게 하여 중추절을 함께 보내다가 자정이 지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동이 트기 전에 공이 떠났는데도 나는 한창 잠에 곯아 떨어져서 그 사실을 알지도 못하였다. 이에 새벽에 일어나서 읊다.

양산 대선사(陽山大禪師)가 송이버섯을 보냈기에 감사의 뜻을 표하다.

첨서(簽書)에게 부치다.

어떤 일에 느낀 점이 있어서

송헌(松軒)에게 부쳐 올리다.

포은(圃隱)에게 부쳐 올리다.

경오년 8 13일에 함창에 도착했다. 압송관(押送官)인 근시(近侍) 낭장(郞將) 주인기(朱仁起)가 돌아가는 편에 두 분 시중(侍中)에게 부쳐 올렸다.

 


늙어가며 언제나 떠도는 내 신세도 / 老來常作客
운명일 뿐이지 어찌 사람 탓이겠소 / 命也豈關人
가는 곳마다 청산은 좋기도 하오마는 / 到處靑山好
시를 읊노라니 백발만 새로 돋아나오 / 吟詩白髮新
묘당이 우로를 내려 준 그 덕분에 / 廟堂垂雨露
향리도 풍진을 벗어나게 됐소그려 / 鄕里隔風塵
세상의 맛이 모조리 소진된 그중에도 / 世味都消盡
취해서 보료에 토한 일은 잊기 어렵구려 /
難忘醉吐茵

 

[주D-001]취해서 …… 어렵구려 : 함 께 어울리며 무례하게 굴었는데도 관대하게 용납해 준 옛날의 추억은 잊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나라의 승상 병길(丙吉)이 타고 다니는 수레의 보료 위에 마부가 술에 취해서 토했는데도 병길이 너그럽게 용서해 준 고사가 있다. 《漢書 卷74 丙吉傳》

출척사(黜陟使) 영공(令公)에게 부쳐 올리다.

 


부생은 살 같은 세월 속에 매번 쫓겨 다니다가 / 浮生年矢每相催
공의 감당나무 그늘 아래 다시 오게 됐소 /
公在棠陰我又來
상당의 물난리는 참으로 우연의 소치오만 /
上黨水災眞偶致
장단의 풍경도 언뜻 시기를 받을 만하였다오 / 長湍風景忽如猜
이 몸은 이제 늙어 상읍에 외로이 거하면서 / 索居桑邑吾今老
금릉의 사자가 오기만을 발돋움하고 바라보오 /
跂望金陵使者廻
땅이 외져서 영공의 깃발이 지나는 것도 몰랐는데 / 地僻不知旌旆過
어느 날에나 하느님이 함께 술 들게 해 주실지 / 天敎何日共銜盃

 

[주D-001]공의 …… 됐소 : 출 척사의 관할 구역에 목은이 오게 되었다는 말이다. 주 무왕(周武王) 때 소공(召公)이 서백(西伯)으로 정사를 베풀다가 감당(甘棠)나무 그늘 아래에서 휴식을 취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여, 감당나무가 선정(善政)을 행하는 지방 장관을 형용하는 표현으로 쓰이게 되었다. 《詩經 召南甘棠 序》 《春秋左傳 昭公2年》
[주D-002]상당(上黨)의 …… 소치오만 :
목 은이 공양왕 2(1390)에 윤이(尹彝)와 이초(李初)의 일과 관련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고 청주(淸州) 감옥으로 이송되어 혹독한 신문을 받았는데, 이때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면서 하천이 범람하여 성문이 무너지고 관사가 물에 잠기는 등 물난리가 발생하였으므로, 청주의 노인들도 처음 보는 일이라고 놀라워하는 가운데, 결국은 이 수재로 말미암아 신문이 중지되어 풀려났던 일을 말한다. 상당은 청주의 옛 이름이다.
[주D-003]상읍(桑邑) :
상재향(桑梓鄕) 즉 뽕나무와 가래나무가 있는 고향 마을이라는 뜻이다.
[주D-004]금릉(金陵)의 …… 바라보오 :
윤이(尹彝)와 이초(李初)의 사건에 대한 명나라의 명확한 판정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금릉은 당시 명나라의 임시 수도인 남경(南京)을 가리킨다.

중구일(重九日) 뒷날에 청주(淸州)로 가는 사람이 있기에 절구 한 수를 읊어서 종학(種學) 첨서(簽書)에게 내가 평안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라고 전해 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그 사람이 끝내는 그곳에 가지 못하였다.

 


고향에 돌아온 다음 날에 중추절을 지내고 / 還鄕明日作中秋
어제는 또 국화꽃을 머리에 잔뜩 꽂았노라 / 又把黃花揷滿頭
천지처럼 큰 임금님 은혜 새삼 느끼노니 / 始識主恩天地大
늙어서 유락하는 것도 풍류가 아니겠느냐 / 老來流落亦風流

 

백 손(伯孫) 맹균(孟畇)이 나를 따라서 남쪽으로 왔는데, 그의 누이가 병들어 매우 위태로운 상태라고 집사람이 소식을 전해 왔다. 이에 내가 맹균에게 권하기를, “형제는 천륜(天倫)인데, 한번 세상을 떠나면 다시 만나 볼 길이 없으니, 너는 급히 가서 보도록 하라. 나는 여기에 있어도 네가 보다시피 친척들이 향리에 가득하여 날마다 상종하고 있으니 걱정할 것이 뭐가 있겠느냐. 나는 이제 늙어서 다른 소망은 없다만, 단지 너의 조모(祖母)가 아직도 오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릴 뿐이다.” 하였다. 이에 맹균이 하직 인사를 하고 떠났는데, 하룻밤을 혼자 묵다 보니 느낌이 없지 않기에 다음 날 술에 취한 김에 시 한 편을 지어서 기록하였다.

 


세교는 이륜을 중히 여기고 / 世敎重彝倫
인정은 은의를 숭상하나니 / 人情尙恩義
이 두 길을 행여 벗어난다면 / 兩塗或泛駕
금수와 본시 다르지 않을 터 / 禽獸固無異
그래서 옛날 요순 시대부터 / 爰從堯舜來
대소에 아름답게 여겼느니라 / 小大斯爲美

지친들끼리 서로 해친 일들이 / 至親有相殘
역사 책에 즐비하게 전해지기에 / 纍纍照靑史
늙은 내가 항상 마음 아파하면서 / 老我常痛心
책을 덮고 탄식하여 마지않았나니 / 掩卷歎不已
척령의
를 읊어 노래하다 보면 / 吟哦
領詩
지는 해에 슬픈 바람 이는 듯하였도다 / 落日悲風起
유씨 집안에 출가한 너의 누이는 / 汝之柳氏妹
일단 문상의를 면하긴 했다 해도 / 旣免聞床蟻
병마에 얽힌 것이 일 년이 되어 가니 / 纏綿歲將周
병세가 자못 쾌하다곤 하지 못할 텐데 / 其勢殆不利
더구나 지금 너에게 특별히 알려 왔으니 / 況今特來報
빨리 가 봐야지 어찌 가만히 있겠느냐 / 汝行安可止
할아비가 혼자서 거한다는 이유로 / 毋以我獨居
우우의 정의
를 저버리지 말지어다 / 而墜友于意
이에 흔연히 행장 꾸려 떠났나니 / 欣然騰裝去
나의 손자는 과연 삼한의 군자로다 / 三韓一君子
일단 쫓겨난 할아비를 시봉한 뒤에 / 旣侍祖翁貶
친누이가 죽을까 걱정하며 떠났으니 / 又恐親妹死
이는 천리가 마음에 발한 것으로서 / 天理發於心
천년만년토록 전해질 일이로다 / 流光千萬祀
이에 내가 이 시를 지어 읊어서 / 我且題此詩
뒷날 사관의 자료로 제공하노라 / 採擇從史氏

 

[주D-001]그래서 …… 여겼느니라 : 《논어》 학이(學而)선왕들의 법도를 보더라도 이렇게 하는 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그래서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모두 이에 따른 것이다.[先王之道斯爲美 小大由之]”라는 말을 요약한 것이다.
[주D-002]척령(鴒) :
형 제간의 우애(友愛)를 읊은 노래이다. 《시경》 소아(小雅) 상체(常棣)저 할미새 들판에서 호들갑 떨 듯, 급한 때는 형제들이 서로 돕는 법이라오. 항상 좋은 벗이 있다고 해도, 그저 길게 탄식만을 늘어놓을 뿐이라오.[
鴒在原 兄弟急難 每有良朋 況也永歎]”라는 구절이 있다.
[주D-003]문상의(聞床蟻) :
몸 이 허약해져 꼼짝하지 못한 채 병석에 누워 있는 것을 말한다. ()나라 은중감(殷仲堪)의 아버지가 심장이 두근거리는 병을 앓으면서 병석에 누워 있을 적에, 침상 밑의 개미 기어가는 소리를 듣고는 소가 싸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聞床下有蟻動 謂是牛鬪]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84 殷仲堪列傳》
[주D-004]우우(友于) 정의(情意) :
형제간의 우애를 말한다. 우우는 《서경》 군석(君奭)우우형제(友于兄弟)’라는 말을 줄인 것이다.

동년(同年)인 경산부(京山府)의 김 판서(金判書) () 에게 부치다.

 


지척에 있어도 천리나 매한가지 /
咫尺同千里
천지간에 이 한 몸 그저 늙어갈 뿐 / 乾坤一老身
어느 날에나 서로 만날 수 있을는지 / 相逢是何日
함께 급제한 분들을 앉아서 헤어 보오 / 坐數榜中人

 

[주D-001]지척(咫尺)에 …… 매한가지 : 가까이 있으면서 한번 만나 보지도 못한다는 말이다. 소식(蘇軾)의 시에지척에 있어도 서로 만나지 못하니, 천리 떨어진 것이나 실로 똑같도다.[咫尺不相見 實如千里同]”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6 潁州初別子由》

희제(戲題)

 


마을 사람들 앞 다투어 적선옹을 비웃나니 / 鄕人爭笑謫仙翁
촌 노래 들 피리 속에서 곤드레 취했다고 / 泥醉村歌野笛中
설령 조정에 돌아간들 무슨 소용 있겠나 / 縱使得還何所用
치아도 다 빠지고 눈빛도 흐리멍덩한걸 / 齒牙落盡眼朦朧

 

하광조(河光祖) 서령(署令)에게 지어 준 시 소서(小序)

 

 

내 가 나이 열예닐곱 살 때에 구재(九齋)에서 노닐면서 진양 하씨(晉陽河氏) 형제를 처음 알게 되었다. 장공(長公)은 그때 이미 과거에 급제하여 전교랑(典校郞)의 관직을 맡고 있었으니 이른바 성상재(城上齋)라는 것이요, 제공(弟公)은 제생(諸生)의 제삼좌(第三坐)로서 내가 바로 그 위에 거했으니 이른바 행이좌(行二坐)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밤낮으로 읊고 노래하는 가운데 매우 친하게 정이 들면서 우정이 돈독해졌기 때문에, 내가 존공(尊公)을 뵙기를 부친처럼 하였고 그 형을 보기를 나의 형처럼 하였으며, 존공 또한 나를 아들처럼 대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내가 하씨네 자손들을 만나게 되면 미상불 감회에 젖게 되는데, 수명이 얼마 되지도 않는 이 인간 세상에서 조부와 아들과 손자를 모두 알게 되었으니 어찌 막연하게 지낼 수가 있겠는가. 지금 내가 함창(咸昌)에 유배되어 있는 때에 광조(光祖)가 출척사(黜陟使)의 막료(幕僚)로서 조정의 은혜로운 사면령(赦免令)을 받들고 왔는데, 나에게 자()를 지어 달라고 청하기에 내가 광조(光祖)라고 지어서 책임을 메웠다. 그런데 그가 또 나의 시를 청하였는데 내가 거절할 수가 없기에 세교(世交)를 서술하고 몇 구절을 엮어서 그를 권면하였으니, 이 또한 옛사람들이 충고를 했던 의리에 따른 것이었다.


하씨는 진양의 빼어난 가문으로 / 河氏晉陽秀
이름난 분들이 줄을 지어 나왔다네 / 纍纍多聞人
나도 밀직공을 생전에 뵈었는데 / 密直我及見
풍채와 의표가 진신들을 압도했지 / 風儀傾搢紳
맏자제는 일찌감치 이름을 드날리며 / 震器早有譽
해치관
쓰고 조신 중에 우뚝하였고 / 獬冠竦朝臣
부절을 나눠 받고 부월을 손에 쥐고서 / 分符且持斧
궁한 백성 살리고 폭도를 제압하였다오 / 惠窮仍威嚚
공로를 쌓으면 후손이 크게 빛나는 법 / 積勞發必大
두 아들이 바야흐로 벼슬길에 올랐는데 / 二子方致身
광조를 내가 이번에 처음 만나 보았지만 / 光祖我始見
평소 친했던 사람처럼 어찌나 반가운지 / 懽然如素親
후생은 실로 앞날이 두려운 존재로서 / 後生實可畏
풍진 없는 막부에 지금 속해 있는 /
幕府無風塵
힘쓸지어다 다시 더욱 노력을 하여 / 勉哉更努力
공업이 날로 새롭게 될 수 있도록 / 功業須日新
늙은 내가 삼세를 목도하게 되었으니 / 老我見三世
시어가 어찌 참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詩語寧不眞

 

[주D-001]진양(晉陽) : 진주(晉州)의 옛 이름이다.
[주D-002]해치관(獬豸冠) :
해치(獬豸)의 가죽으로 장식한 관을 말한다. 해치가 곡직(曲直)을 잘 분별하여 사악(邪惡)한 자에게 달려들어 물어 뜯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법관(法官)들이 해치관을 만들어서 머리에 썼다는 고사가 전한다. 《淮南子 主術訓》
[주D-003]풍진(風塵) …… :
인 재가 많기로 유명한 출척사(黜陟使)의 막부에서 현재 막료로 활동 중이라는 말이다. 남조 제(南朝齊)의 왕검(王儉)이 위장군(衛將軍)에 임명되었을 때 그 막부에 인재들이 많았으므로 사람들이 그 막부를 티끌 없이 깨끗한 연화지(蓮花池)라고 일컬었는데, 당시 문명(文名)을 떨치던 유고지(庾杲之)가 그 막부로 들어가자 소면(蕭緬)녹수에 떠다니며 홍련에 기대었구나.[泛綠水 依芙蓉]”라고 찬미했던 고사가 전한다. 《南齊書 卷34 庾杲之列傳》

출척사 영공(令公)에게 부쳐 올리다.

 


황상의 은총이 대궐에 드리워지며 / 聖恩垂紫闥
아름다운 은혜가 문인을 빛냈도다 / 嘉惠賁文茵
용약 중국으로 조회하러 가면서도 / 踊躍朝天去
다만 꺼림한 것은 임금님 헤어지는 것 / 唯慊別主人

 

[주D-001]문인(文茵) : 수레에 까는 호피(虎皮) 무늬의 방석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출척사가 타고 다니는 수레의 뜻으로 쓰였다.

출척사에게 부치다. 신미년 6월에 다시 함창(咸昌)으로 유배되고 나서 짓다.

 


익재 선생 문하의 장원랑이신 분 / 益齋門下壯元郞
남긴 자취 이어서 장차 묘당의 반열로 / 得繼遺蹤列廟堂
늙고 병든 나는 문득 타향의 나그네 신세 / 老病却爲流落客
감당
의 이슬방울 행여 적실 수 있을는지 / 幸逢恩露滴甘棠

 

[주D-001]감당(甘棠) : 출 척사를 가리킨다. 주 무왕(周武王) 때 소공(召公)이 서백(西伯)으로 정사를 베풀다가 감당나무 그늘 아래에서 휴식을 취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여, 감당나무가 선정(善政)을 행하는 지방 장관을 형용하는 표현으로 쓰이게 되었다. 《詩經 召南 甘棠 序》 《春秋左傳 昭公2年》

권신재(權愼齋)에게 부치다.

 


조정의 청요직을 두루 역임하신 뒤에 / 歷徧省臺淸要
향리에 은퇴하여 한가히 노닐고 계시니 / 退來鄕里優遊
응당 웃으시리 목동이 차서 넘쳐 흘러 / 應笑牧童滿溢
여름날에 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것을 / 暑天走汗交流

 

[주D-001]차서 넘쳐 흘러 : 분수에 넘치는 복을 받은 죄로 벌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희제(戲題)

 


좋은 술이 가을에 많이도 익었으니 / 名酒秋多熟
선창의 야밤중에 함께한들 어떠하리 / 禪窓夜可參
잠에 떨어지면 항상 아침이 될 때까지 / 耽眠每達旦
두 뺨은 그때까지 술기운으로 불그레 / 兩頰尙紅酣

 

유감(有感)

 


소년 시절에 붕우들이 서로 모여 앉아서는 / 少年朋友盍簪時
간담을 털어놓으면서 궤수는 절대 없었는데 / 吐膽輸心絶詭隨
하루아침에 이해가 걸리자 평소의 바꾸다니 / 利害一朝移素志
밀치기도 하는 판에 어찌 이별을 서운해 하랴 / 推擠寧肯惜分離

 

[주D-001]궤수(詭隨) : 옳고 그른 것을 따지지 않고 함부로 남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시경》 대아(大雅) 민로(民勞)잘잘못 가리지 않고 제멋대로 남을 따르지 말 것이요, 어질지 못한 자를 삼가야 할 것이다.[無縱詭隨 以謹無良]”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하루아침에 …… 서운해 하랴 :
한 유(韓愈)의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에, “선비는 곤궁할 때에 절의를 알게 된다.[士窮乃見節義]”고 전제한 다음에, 평소에는 손을 잡고 간담을 꺼내 보여 주면서 하늘을 가리켜 절대로 배반하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하다가, 하루아침에 조그마한 이해관계가 걸리기만 하면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시치미를 떼고는, “친구가 함정에 떨어져도 손을 내밀어 구해 주려고 하지는 않고 오히려 밀쳐 버리는가 하면 돌멩이를 던지기까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落陷穽 不一引手救 反擠之 又下石焉者皆是也]”라고 한탄한 글이 나온다.

기사(紀事)

 


유 정승 댁 노복이 여기에 두 집 있는데 / 柳相蒼頭有二家
은근도 해라 물 건너서 수박을 보내왔네 / 勤渠涉水送西苽
이런 문안 받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나 / 問安伊使尤難得
순박한 유풍이 아름다워 찬탄할 만하도다 / 淳朴遺風可歎嘉

 

오천(烏川)에게 부치다.

 


그동안 도성에서 잠시 바쁘게 뛰어다닐 때는 / 向來京輦奔波
지위에 따른 과전을 나도 잘못 많이 받았지요 / 職貽科田誤我多
지금 평민의 신세되니 얼마나 기분이 시원한지 / 一箇白丁眞灑落
일천년 전 자지가에 화답을 하고픈 심정이오 / 欲賡千載紫芝歌

중추절 무렵엔 녹문으로 올라갈까 하였는데 / 擬向中秋上鹿門
도리어 우리에 갇힌 원숭이 신세가 됐소그려 / 此身還似檻來猿

어느 분이 꺼내 주어 임천 속으로 가게 할까 / 何人放出林泉去
산북 산남 어디든지 마음껏 뛰어다니도록 / 山北山南恣意奔

 

[주C-001]오천(烏川) : 영일(迎日)의 옛 이름으로, 본관이 이곳인 정몽주(鄭夢周)를 가리킨다.
[주D-001]자지가(紫芝歌) :
은 자(隱者)의 노래를 뜻한다. ()나라 말기에 상산사호(商山四皓)가 진 시황(秦始皇)의 학정(虐政)을 피해 남전산(藍田山)에 숨어 살면서색깔도 찬란한 영지버섯이여, 그것만 먹어도 배고픔이 사라지지.[曄曄紫芝 可以療飢]”라는 내용의 자지가를 지어 불렀던 고사가 전한다. 《高士傳 卷中》
[주D-002]중추절(中秋節) …… 됐소그려 :
세 상을 피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숨어 살고 싶었는데, 다시 자유를 구속당한 채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말이다. 녹문(鹿門)은 동한(東漢) 말의 고사(高士) 방덕공(龐德公)이 처자를 데리고 약초를 캐며 숨어 살았던 양양(襄陽)의 산 이름이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또 남조 송(南朝宋)의 시인 포조(鮑照)가 노병(老兵)의 입을 빌어 비참한 생활상을 읊은 시 〈동무음(東武吟)〉에예전엔 토시 위의 새매와 같았는데, 지금은 우리에 갇힌 원숭이 신세로세.[昔如韝上鷹 今似檻中猿]”라는 구절이 나온다. 《文選 卷28

송헌(松軒)에게 부치다.

 


교외 들판에 가을이 드니 풍경도 달라졌나니 / 秋入郊原淑景移
경치가 맑아도 좋지만 비가 내려도 묘하다오 / 物華晴好雨仍奇
태평스러운 낭묘에는 멋진 모임도 많을 텐데 / 太平廊廟多高會
흥취 날 때면 연꽃 보러 누구와 또 가시는지 / 每趣看蓮又是誰

함창에 세 번째 오니 감흥이 더욱 새로운데 / 三到咸昌興更新
예나 이제나 어조와는 또한 친하게 지낸다오 / 依然魚鳥亦相親
한산 땅에 나의 조상님들 무덤이 있으니 / 韓山有我先墳在
중추에 맞춰 양친을 성묘할 수 있었으면 / 欲及中秋拜兩親

 

삼봉(三峯)에게 부치다.

 


나는 유자로서 일찍이 명을 알았고 / 爲儒早知命
불교를 배워서 육신도 잊게 되었소 / 學佛又忘身
도미원에서 머리를 돌려 바라보니 / 回首都迷院
삼각산이 배웅해 주는 듯도 합디다 / 三峯似送人
세상 욕심은 가을 터럭만큼 작다면 / 世利秋毫小
교분은 죽의 거죽보다 끈끈하다 하리 / 交情粥面濃
중간에 우리 사이 틀어 것이야 대수리오 / 任敎中齟齬
강물은 백번 꺾여도 동쪽을 향해 흐르는걸 / 百折水流東

 

[주D-001]중간에 …… 흐르는걸 : 목은과 삼봉(三峯)의 관계가 그동안 갈등을 빚는 일도 없지 않았으나, 두 사람 사이의 교분만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말인데, 삼봉 정도전(鄭道傳)이 목은을 몇 차례나 탄핵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도당(都堂)에 올리다.

 


몸은 진흙에 붙은 버들개지 같아도 /
身似粘泥絮
마음은 비에 젖은 연꽃과 함께하오 / 心同帶雨蓮
묘당이 혹 옛 추억을 기억해 주신다면 / 廟堂如見記
편의에 따라 살도록 주선 좀 해 줬으면 / 貼字許從便
영해에 내려가서 친구도 찾아보고 / 寧海尋親舊
한산 땅에서 조상님들도 성묘하고 / 韓山拜祖先
그리고 때로는 벽사에서 노닐면서 / 有時游甓寺
정성을 바쳐 요년을 축수하리이다 /
瀝懇祝堯年

 

[주D-001]몸은 …… 같아도 : 자 유를 구속당한 채 마음대로 출입하지 못하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진흙에 붙은 버들개지는 원래 마음이 안정되어서 외물(外物)에 동요되지 않는 선승(禪僧)의 경지를 비유한 말인데, 목은이 이것을 다른 의미로 전용한 것이다. ()나라 시승(詩僧) 삼료(參寥)가 기녀의 유혹을 물리치면서고맙구려 술잔 앞의 요조한 여인이여, 초 양왕 들뜨게 한 그윽한 꿈을 선사하니. 하지만 선승의 마음은 진흙에 붙은 버들개지라서, 봄바람 따라 위아래로 흩날리지 않는다오.[多謝尊前窈窕娘 好將幽夢惱襄王禪心已作沾泥絮 不逐東風上下狂]”라고 지은 시가 송나라 조영치(趙令畤)의 《후청록(侯鯖錄)》 권3에 나온다.
[주D-002]정성을 …… 축수하리이다 :
임금이 복을 많이 받기를 빌겠다는 말이다. 화봉인(華封人)이 요() 임금에게 수()와 부()와 다남(多男)을 기원했다는 이야기가 《장자》 천지(天地)에 나온다.

유감(有感)

 


내가 잘못해도 정말 크게 잘못했지 / 我有一大錯
천균
을 가볍게 들어 올리려 하였으니 / 欲擧千鈞輕
일에 임해 두려워하는 자세가 부족했고 /
爲欠臨事懼
게다가 사람을 보는 눈이 밝지 못했도다 / 又昧知人明
이제 와서 후회한들 또 어찌하겠는가 / 縱悔亦已矣
만번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으면 다행이지 / 萬死幸一生
나 홀로 앉아 근심하고 두려워하면서도 / 獨坐每惕若
입을 오므려 때때로 소리 내어 읊노매라 / 縮口時出聲

 

[주D-001]천균(千鈞) : 무거운 물건을 말한다. 1균은 30()에 해당한다.
[주D-002]일에 …… 부족했고 :
일 의 성격과 자신의 능력을 헤아리지도 않고서 무모하게 덤벼들었다는 말이다. 공자가 자로(子路)에게맨주먹으로 범을 치고 맨발로 강을 건너면서 죽어도 뉘우치지 않는 자와는 내가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일을 앞에 두었을 때 두려워할 줄을 알고 계획을 잘 세워서 일을 잘 마무리하는 사람과 함께할 것이다.[暴虎馮河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라고 충고한 말이 있다. 《論語 述而》

나의 우거(寓居)

 


이 몸이 보리사에 부쳐 살면서 / 我寓菩提寺
서쪽의 방장실을 독점했다나요 / 獨占西上方
계곡 물은 몰아치는 빗소리를 띠고 있고 / 溪聲帶雨急
나무 그림자는 서늘한 바람에 젖어 있네 / 樹影涵風涼
육경
이 고요한 속에 돋아나는 멋진 흥치 / 境寂有佳致
마음이 텅 빈 속에 발산하는 묘한 향기 / 心空生妙香
여기에 백의대사가 또 굽어보시니 / 白衣大士在
부디 백성들에게 편안함 안겨 주셨으면 / 庶與斯民康

 

[주D-001]육경(六境) : 불교 용어로, 인식의 대상이 되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여섯 경계를 말한다.
[주D-002]백의대사(白衣大士) :
불 교의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가리킨다. 항상 흰옷을 걸치고 흰 연꽃 가운데에 앉아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 성품이 대자대비(大慈大悲)하여 고통 받는 중생들이 자기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그 소리를 듣고서 바로 구제해 준다고 한다.

유 진천군(柳晉川君)에게 부치다.

 


세상만사 사전에 정해진 대로 / 事事由前定
때때로 옛 벗님을 추억할 따름 / 時時憶舊知
성 동쪽 답청했던 곳을 찾아서 / 城東踏靑處
또 한 번 시를 읊을 수 있을는지 / 倘得更吟詩

 

[주D-001]답청(踏靑) : 봄에 파랗게 난 풀을 밟고 거닌다는 뜻으로, 보통 청명절(淸明節)에 야외에 나가서 산책하며 노니는 것을 말한다.

이첨(李詹) 승지(承旨)에게 부치다.

 


뒤섞여 빛나는 성좌들은 북두를 향하건만 / 錯落星躔拱北辰
외로운 신하는 하늘 밖으로 멀리 쫓겨났네 / 天涯遠謫是孤臣
한 치 마음 밤낮으로 어느 쪽을 향하냐면 / 寸心日夜歸何處
임금님 축수하기 위해 대궐 있는 곳으로만 / 只向丹墀祝聖人

아득히 먼 하늘은 아무 말이 없고 / 杳杳天無語
가냘픈 나의 명도 이제는 다하였소 / 悠悠命已窮
조정에서 다시 만나긴 어려울 듯도 / 朝中難再會
지하에서나 서로 만날 수 있을는지 / 地下倘相逢

원래 일이란 변고가 많은 탓이지 / 自是事多變
계책이 불충해서 그런 건 아니라오 / 非由謀不忠
뒷날 역사 책에 어떻게 기록될지 / 異時靑史上
나 혼자 얼굴이 늘상 붉어진다오 / 我獨面長紅

 

충주목(忠州牧)으로 있는 황 동갑(黃同甲)에게 부치다.

 


세 번째 오게 된 중원 땅에 내리는 흰 눈 / 三到中原雨雪來
동갑을 만나면 언제나 철철 넘치는 술잔 / 每逢同甲勸深盃
순식간에 사라지는 나그네 길의 쓰라린 맛 / 頓忘客路艱辛味
뺏고 또 주는 조물의 솜씨 역시 묘하다니까 / 造物乘除亦妙哉

 

여흥(驪興)의 권 지군(權知郡)에게 두 수 부치다.

 


멀리 귀양 가면서 벌써 몇 차례 들른 이곳 / 遠謫經過數
뜨내기 인생도 이제는 늙고 병든 나머지라 / 浮生老病餘
행여 남 계점사를 만날 기회 있거들랑 / 如逢南計點
나 대신 고맙다고 말이나 전해 주었으면 / 爲我謝勤渠

흐르는 강물 진압하는 전탑의 절간 /
甓寺鎭流水
불경을 담은 궤짝에도 먼지만 수북 / 經函棲素塵
이 절에 관심을 더욱 기울여 주시기를 / 更宜深照

옛날에 선인의 복을 여기서 빌었더라오 / 曾此祝先人

 

[주D-001]계점사(計點使) : 각 지방의 호구(戶口)와 토지를 점검하기 위하여 중앙에서 파견된 관원이다.
[주D-002]흐르는 …… 절간 :
신륵사(神勒寺)가 여강(驪江)을 굽어보며 서 있다는 말이다. 이 절에 흙벽돌로 쌓은 다층(多層)의 전탑(塼塔)이 많기 때문에 벽사(甓寺)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칠석일(七夕日)에 주인인 대선사(大禪師)가 음식상을 차려 주기에 노부(老夫)가 취해 누워서 절구를 읊조리고는 다음 날에 기록하여 올렸다.

 


하늘 위에서는 견우와 직녀가 상봉하고 / 天上佳期牛女
인간 세상에선 승려와 유자가 만났도다 / 人間高會釋儒
헤어졌다 만나는 건 예로부터 어려운 일 / 離合古來難事
술잔 주거니 받거니 한껏 즐겨야겠지요 / 獻酬要盡懽娛

부슬부슬 내리던 산비 홀연히 말끔 / 山雨霏霏忽霽
시내에 솔솔 일던 바람 아연히 서늘 / 溪風細細俄涼
몸이 상쾌해진 것만도 이미 기쁜데 / 已喜致身蕭爽
빙수까지 들이켜니 얼마나 즐거운지 / 樂哉倒此氷醬

십우의 가송
을 바야흐로 배우는 때에 / 方學十牛歌誦
오마
가 찾아올 줄 어찌 생각하였으리 / 何期五馬來尋
채식이든 육식이든 도와는 상관없을 터 / 素肉本非關道
먼지 낀 마음이나 닦으면 되지 않으리까 / 且須淨掃塵心

 

[주D-001]십우(十牛) 가송(歌誦) : 불교의 선()을 닦아 가는 순서와 관련, 소를 주제로 해서 열 가지 단계로 구분하여 각각 게송(偈頌)을 붙인 이른바십우도(十牛圖)’ 혹은심우도(尋牛圖)’를 말한다.
[주D-002]오마(五馬) :
고을을 다스리는 관원을 말한다. ()나라 때 태수(太守)가 다섯 필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탔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날 감군(監郡) 정공(鄭公)이 술을 가지고 찾아왔기에 그다음 날에 시를 지어 감사드렸다.

 


목은 선생은 조정에서 쫓겨난 신하의 신분 / 牧隱先生是逐臣
정공은 총재의 후예로서 백성을 돌보는 중 / 華宗
宰政憂民
먼 시골에 술 들고 와서 위로를 해 주다니 / 遠村携酒來相勞
용두회
의 회원인 것도 감안을 했으리라 / 應念龍頭會裏人

 

[주D-001]용두회(龍頭會) : 문과 장원 급제자들의 모임을 말한다.

감군공(監郡公)이 보리 두 섬과 참깨 다섯 말을 보내오다.

 


늙은 목은은 절에서 놀면서 먹기만 하니 / 老牧今游食
참새나 같은
과 똑같다 할 것인데 / 眞如雀鼠僧
원님이 먹을 것 대 주는 신도가 되셨으니 / 遨頭作檀越
길이길이 경권을 쪄서 밥먹어도 되겠구먼 /
經卷可長蒸

 

[주D-001]참새나 같은 : 수행은 하지 않고 절에 빌붙어 살면서 양식만 축내는 땡추중을 비유한 말인데, 관가에서 환자(還上)를 보관 중에 참새와 쥐가 먹어서 손실이 발생한 곡식을 작서모(雀鼠耗)라고 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2]길이길이 …… 되겠구먼 :
생 활 걱정 없이 독서나 실컷 하면 좋겠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부처가 제자 아난(阿難)에게음욕을 끊고 선정을 닦지 않는 자는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자와 같다.[若不斷淫修禪定者 如蒸沙石 欲其成飯]”고 경계시킨증사작반(蒸沙作飯)’의 고사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돌려서 말한 것이다. 《楞嚴經 卷6

정산(定山)을 겸임하고 있는 이산(尼山)의 신 감무(申監務)에게 부치다.

 


들리나니 초여름 매미 첫 번째 소리 / 聞得新蟬第一聲
눈속에 가로 걸렸나니 한산 가는 길 / 韓山歸路眼中橫
성묘하려고 중추절에 맞춰서 떠날 생각 / 拜墳欲及中秋去
서로 만나 밝은 달 감상할 수 있을 듯도 / 準擬相逢賞月明

 

구좌(久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허리 다리 쑤시기에 / 久坐腰脚酸
외출해 볼까 하였더니 말이 발병 났다네요 / 欲出馬蹄病
걸어서 가려 하니 진흙탕 길이 겁나는데 / 徒步畏泥塗
삯 주고 교군꾼 부릴 여유가 또 있으리오 / 輿夫無從倩
그야말로 진퇴유곡의 궁지에 떨어진 몸 / 進退諒惟谷
사이의 땅으로 쫓겨난 것을 감수할밖에 /
終甘四夷屛
초가을 서늘 기운 점점 지내기 좋아지니 / 新涼漸可人
몸만 건강하다면 언제든 소원을 이룰 수도 / 身健隨所請
높다란 언덕 위이든 깊숙한 골짜기 속이든 /
經丘與尋壑
마음 내키는 대로 티끌세상 벗어나 보리라 / 縱意出塵境

 

[주D-001]사이(四夷)의 …… 밖에 : 조 정에서 쫓겨나 유배객(流配客)이 된 운명을 달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대학장구》에오직 인덕의 소유자만이 악인들을 추방하여 유배하되 사방 오랑캐 땅으로 쫓아내어 중국에 함께 살지 못하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唯仁人 放流之 諸四夷 不與同中國]”라는 말이 나온다. ()은 병()과 같다.
[주D-002]높다란 …… 속이든 :
동 진(東晉)의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어떤 때는 수레를 타고 또 어떤 때는 거룻배를 저으면서, 깊숙한 골짜기를 찾아도 가고 높다란 언덕에 올라 거닐어 보기도 한다.[或命巾車或棹孤舟 旣窈窕以尋壑 亦崎嶇而經丘]”는 말이 나온다.

상주(尙州) 교수관(敎授官) 이여신(李汝信)이 찾아왔는데, 그는 나의 문생이다.

 


묘당에서 오늘날 유관을 소중하게 여겨 / 廟堂今日重儒冠
각 고을에 교수관을 새로 설치하였다네 / 新置諸州敎授官
문생이 여기에 뽑힌 것이 가장 기쁘나니 / 最喜門生膺此選
좌주가 상관케 한 것을 응당 알지로다 / 應知座主本相觀
먼 옛날 요순의 성세가 이제 돌아오고 / 唐虞盛世回千古
수사
의 유풍이 우리 동방에 입혀지겠지 / 洙泗遺風被九韓
투각한 자운도 배향이 되지 않았던가 / 投閣子雲猶配食
입언의 어려움을 거듭 탄식하게 하네 / 令人三歎立言難

 

[주D-001]상관(相觀) : 스 승이 제자들을 절차탁마(切磋琢磨)시킨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태학(太學)에서의 네 가지 학습법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서로 보고 발전하게 하는 것을 연마시킨다고 한다.[相觀而善之謂摩]”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여러 제자들 중에서 똑똑한 사람 하나를 뽑아서 스승에게 대표로 질문을 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이 문답(問答)을 듣고서 이해하게 하는 학습법을 말한다.
[주D-002]수사(洙泗) :
공자의 고향으로 유가(儒家)를 뜻한다.
[주D-003]투각(投閣)한 …… 하네 :
()가 자운(子雲)인 한()나라 학자 양웅(揚雄)이 그의 문생의 일에 연루되어 누각 위에서 몸을 던져 자결하려고까지 하였으나, 결국은 그의 위대한 저술로 인해 후세에 이름이 전해지고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되기에 이르렀는데, 목은 자신은 정도전(鄭道傳) 등 다른 문생들의 탄핵을 받아 위기에 빠진 가운데 저술마저 보잘것없으니 거듭 탄식만 나온다는 말이다. 양웅은 평생토록 가난하게 살면서 오직 저술에 몰두하여 《태현경(太玄經)》과 《법언(法言)》 등 많은 명저(名著)를 남겼는데, 그에게서 문자를 배운 유분(劉棻)이 왕망(王莽)에게 체포되어 치죄(治罪)를 받게 되자, 자기도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여긴 나머지 교서(校書)를 하고 있던 천록각(天祿閣)에서 뛰어내려 빈사 상태에 빠졌다가 용서를 받았던투각(投閣)’의 고사가 전한다. 《漢書卷87下 揚雄傳》 입언(立言)은 이른바삼불후(三不朽)’의 하나로 훌륭한 저술을 남기는 것을 말하는데, 《춘추좌전(春秋左傳)》 양공(襄公) 24년 조()덕을 세우는 것이 최상이요, 공을 세우는 것이 그다음이요, 훌륭한 저술을 남기는 것이 그다음인데, 이 세 가지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없어지지 않으니, 이를 일러 썩지 않는다고 한다.[太上有立德其次有立功 其次有立言 雖久不廢 此之謂不朽]”는 노()나라 숙손표(叔孫豹)의 말이 실려 있다.

매미 소리를 듣고 2(二首)

 


해마다 여름과 가을이 교대할 즈음에는 / 年年夏秋交
지독한 무더위 끝에 조금씩 서늘서늘 / 暑極生微涼
이런 때에 건강법을 챙기지 못한 나머지 /
養未得法
비위가 상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도다 / 遂致脾胃傷
기운이 평온할 때에도 짜증나는 법인데 / 氣平尙鄭仲
더구나 몸이 노곤해서 쓰러지려 함이리오 / 況乃困欲僵
연일 배탈 설사에 심하게 시달리다 보니 / 連朝泄痢甚
무너진 담장처럼 일어나지도 못하겠네 / 已覺如頹墻
그런데 홀연히 매미 소리 내 마음 위로하니 / 蟬聲忽適意
더 이상 저 하늘을 부르지 않아도 되겠도다 / 不復呼彼蒼

가을을 슬퍼하는 것은 본디 남아의 /
悲秋男兒事
어느새 속절없이 늙은이로 변한 이 몸 / 倏忽成老翁
그런데 천공께선 또 무슨 생각 있어 / 天公復何意
매미 소리 한가운데 나를 앉게 했노 / 坐我蟬聲中
대궐 위로 올라가서 호소할 길도 없으니 / 君門天無階
무슨 수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볼거나 /
何由駕飛鴻
귀를 막고 듣지 않으려 아무리 애를 써도 / 掩耳欲不聽
쇠한 몸 기롱당하는 것을 더욱 느끼기만 / 更覺欺衰躬
만물에도 좋은 때가 각자 있지 않겠는가 / 萬物各得時
나는 우선 열심히 술이나 마시며 취하련다 / 我且勤醉醲

 

[주D-001]가을을 …… : 1년 동안 성취한 일도 없이 세월만 흘러서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가을이 되었으니, 뜻을 지닌 장부로서는 탄식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주D-002]무슨 …… 볼거나 :
멀리 날아가는 기러기처럼 세상을 떠나 은둔하며 환란을 피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일찍 일어나서 소나무를 바라보고는 느낌이 있기에

 


창문을 여니 아침 안개 걷힌 가운데 / 開窓罷朝霧
푸른 솔이 짝 맞춰 서서 각각 나란히 / 靑松各離立
정결한 그 자태 새로 목욕한 듯하고 / 潔淨如新沐
엄숙한 그 모습 공손히 읍하려는 듯도 / 矜莊欲祗揖
부끄러워라 진용을 치켜들고 다닐 /
愧吾抗塵容
높은 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 高風不可及
어찌 적송자 따라 노닐고 싶지 않으랴만 / 豈不願從游
몸이 늙고 쇠해서 곡기를 끊기 어려워라 / 老衰難絶粒

아 옛날에 모범을 보인 우리 유후여 / 留侯千載人
길이 사모하며 괜히 눈물만 뿌리노라 / 永慕空雨泣

 

[주D-001]부끄러워라 …… : 아 직도 세상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조정에서 자신을 불러 주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달려가려고 하는 마음이 부끄럽다는 말이다. 남조 송(南朝宋)의 공치규(孔稚珪)가 함께 은자 생활을 하다가 벼슬길에 나선 주옹(周顒)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지은 〈북산이문(北山移文)〉에그동안 입고 있던 마름풀 옷을 불살라 버리고 연잎 옷을 찢어 버린 채, 먼지 낀 얼굴을 뻣뻣이 치켜들고서 속된 모습으로 마구 달려 나갔네.[焚芰製而裂荷衣 抗塵容而走俗狀]”라고 비평한 말이 나온다.
[주D-002]어찌 …… 어려워라 :
()나라의 개국공신 장량(張良)이 유후(留侯)의 봉작(封爵)을 받고 나서, “바라건대 인간 세상의 일을 버리고 신선인 적송자를 따라 노닐고 싶다.[願棄人間事 欲從赤松子遊耳]”고 말하고는 벽곡(辟穀)과 도인(導引)의 술법을 행한 고사가 전하는데, 목은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는 말이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안동(安東) 권신재(權愼齋)가 글을 보내며 차운한 시를 함께 보여 주기에 다시 그 운을 써서 부쳐 올리다.

 


명리는 참으로 일장춘몽과 같은 것 / 名利眞同春夢
강산은 점차 가을 놀이에 좋은 시절 / 江山漸好秋游
술 마실 땐 달을 마주해야 하겠지만 / 飮酒應須對月
시야 시냇물이 있어야 지으리까 /
賦詩何必臨流

 

[주D-001]시야 …… 지으리까 : 꼭 전원에 돌아가지 않아도 시는 얼마든지 지을 수 있다는 말이다.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동산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물 가에서 시를 짓노매라.[登東以舒嘯 臨淸流而賦詩]”라는 구절이 나온다.

대우탄(大雨歎)

 


한밤중에 꿈 깨고 보니 일어나는 풍우성 / 夜半夢回風雨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자꾸만 엎치락뒤치락 / 展轉不眠多反側
솔소리인가 물소리인가 이 무슨 소리인가 / 松聲水聲是何聲
홀연히 빈 섬돌에 후두둑 빗방울 떨어지네 / 忽聽空階有點滴
올해 우리나라에 올가뭄 꽤나 심하다가 / 今年此邦頗早旱
내가 처음 도착한 밤부터 비가 내리더니 / 有雨是我初來夕
급류가 밭을 갉아 먹고 저지대는 침몰하여 / 暴流嚙田卑者沒
벼 곡식이 손상을 받아 참으로 애석했었지 / 嘉禾損傷眞可惜
하지만 십여 일 날이 개어 햇곡식 먹게 되자 / 天晴旬餘得嘗新
헛농사 안 지었다 농민이 기뻐들 하였나니 / 農家喜不虛費力
곡식 얻는 일 쉬우리라 나도 다행으로 알며 / 我方自幸易匃求
시골 중과 노닐면서 함께 먹으려 하였는데 / 欲與野僧共游食
오늘 그만 예전처럼 비가 억수로 쏟아지니 / 乃何今日又如初
나도 몰래 가슴속에 온갖 감회가 쌓이누나 / 俄然百感堆胸臆
늙은 아내나 자식들 모두 전답이 없으니 / 老妻愚子皆無田
가난한 집에 예비 식량이 언제 있었으리 / 家貧何曾有畜積
나와 같은 서민들이 응당 또 많을 텐데 / 細民如我應更多
아 하늘은 어찌하여 이토록 캄캄한가 / 嗚呼嗚呼天昏黑
캄캄한 이 하늘에 언제나 햇빛이 날꼬 / 天昏黑放新晴在幾刻
눈물 떨구며 목이 메어 통곡도 안 나오네 / 淚落呑聲哭不得

 

이백(李白)의 시를 읽고

 


하늘을 찌르는 호기를 스스로 가눌 수 없어 / 豪氣凌雲不得
하늘 가득 불꽃을 튀기며 문장을 토해 냈네 / 滿天光焰吐文章

그림자나 메아리를 찾으려 해도 간 곳 없이 / 欲尋影響竟無處
푸른 하늘만 눈에 가득 한갓 애를 긋노매라 / 極目太淸空斷腸

 

이승길(李承吉) 중랑(中郞)이 새로 빚은 술을 가지고 와서 대접한 것이 두 차례나 되기에 단가(短歌)를 지어서 애오라지 이에 보답하려 하였다.

 


찌는 날씨에 무쇠도 녹고 옥돌도 녹는 이때 / 炎天金流玉亦鑠
담궈 둔 술도 맛이 변해 떠 먹기가 어려운데 / 昔酒味變難可酌
중랑은 무슨 기술로 이렇게 새로 술을 빚어 / 中郞何術釀得新
하늘처럼 맑은 빛에 풍경이 무젖게 하였는가 / 淸如太空涵靑春
멀리서부터 향기 솔솔 맛은 더욱 진국이라 / 香自遠兮味更醇
한잔 마시고 한잔 자꾸 거듭하다 보니 / 一杯一杯辭不得
얼근히 취해서 무회씨의 백성이 되었도다 / 陶然便作無懷民

강호와 묘당이 비록 다르다 할지라도 / 江湖廟堂雖兩地
오나 가나 근심 걱정이 바로 나의 뜻 / 進退俱憂是吾志

어떡하면 백성들을 취향 속으로 옮겨와서 / 安得移民醉鄕裏
태평 시대를 노래하며 지내게 할 수 있을까 / 歌呼嗚嗚無外事
백발의 몸이 쫓겨와서 노닐고 있으니 / 白頭流竄卽行樂
기룡이 구학에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오 / 何異夔龍在丘壑

 

[주D-001]한잔 …… 되었도다 : 좋 은 술에 취하고 보니 마치 평화스러운 태고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말이다. 전설상 상고 시대의 제왕인 갈천씨(葛天氏)와 무회씨(無懷氏)의 시대에는 풍속이 순박해서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었다는 내용이 도잠의 〈오류선생전찬(五柳先生傳贊)〉에 나온다.
[주D-002]강호(江湖)와 …… :
조 정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느라 노심초사한다는 말이다. ()나라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옛사람들은 높이 묘당에 있을 때에는 백성을 걱정하였고, 멀리 강호에 있을 때에는 임금을 걱정하였다. 따라서 조정에 나아가서도 걱정이요 물러나서도 걱정이었으니 어느 때에 즐거워할 수가 있었겠는가. 이는 필시 천하의 근심은 누구보다도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모두가 즐거워한 뒤에 즐거워하겠다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居廟堂之高 則憂其民 處江湖之遠 則憂其君 是進亦憂 退亦憂 然則何時而樂耶 其必曰先天下之憂而憂後天下之樂而樂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백발의 …… 다르리오 :
조 정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경치 좋은 곳에 소풍을 와서 노니는 것과 뭐가 다르겠느냐는 말이다. 기룡(
)은 순() 임금의 악관(樂官)이었던 기()와 간관(諫官)이었던 용()의 병칭으로, 임금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신하를 뜻한다.

우제(偶題) 3(三首)

 


예전부터 담박한 경지 지켜 왔나니 / 淡泊昔相守
시와 비 양쪽을 지금 모두 잊었노라 / 是非今兩忘
고아한 시는 두보와 이백이 모범이요 / 正音師甫白
그윽한 뜻은 복희와 황제에 가깝도다 / 幽意到羲黃
비 올 때는 베갯머리에 냇물 소리 급하고 / 雨枕溪聲急
날 개면 창가에 나무 그림자 선들선들 / 晴窓樹影涼
누대 위에 올라서면 더욱 한적하다마다 / 登樓更閑適
푸른 산빛 뚝뚝 듣어 옷을 물들이는걸 / 山翠滴衣裳

따위 재상이야 원래 유감도 없다마는 /
彼相元無憾
우리 임금님만은 아직도 감히 못 잊겠네 / 吾君未敢忘
소싯적에 잘잘못을 따질 줄 알고부터 / 少曾分皁白
얼마나 오래 흘리며 싸워 왔던가 /
久矣戰玄黃
구름과 비 갑자기 자주 오락가락하는 속에 / 雲雨俄多變
하늘과 땅에 또 한번 서늘 기운이 도는도다 / 乾坤又一涼
무엇이 더 좋으리오 태평스러운 이 시절에 / 何如太平日
은자의 옷 잔뜩 취해 춤을 추는 이 일보다 / 沈醉舞霓裳

한마디 속에도 천금의 중함이 있거니 / 說有千金重
먹여 은혜라도 어찌 잊으리오 / 恩何一飯忘

평소에는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하다가도 / 持身愼平素
위급한 상황에선 나라를 구해야 하고말고 / 遇事濟蒼黃
산색이 어우러진 오밀조밀 골짜기요 / 谷密山光合
달빛이 서늘도 한 높은 이 다락이라 / 樓高月色涼
지금은 세상 생각 모두 떨쳐 버리고서 / 卽今塵慮盡
곧장 연잎 을 지어 입고 싶구나 / 便欲製荷裳

 

[주D-001] 따위 …… 없다마는 : 목 은이 국가를 제대로 부지하지도 못하는 재상의 자리를 그만두고 물러난 것이야 아무런 유감도 없다는 뜻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논어》 계씨(季氏)나라가 위태로운 데도 붙잡아 주지 못하고 넘어져 쓰러지는 데도 일으켜 주지 못한다면, 그 따위 재상을 어디에다 쓰겠는가.[危而不持 顚而不扶 則將焉用彼相矣]”라는 공자의 질책이 나온다.
[주D-002]얼마나 …… 싸워 왔던가 :
《주역》 곤괘(坤卦) 육오(六五)용이 들판에서 싸우니 피가 흘러 사방에 넘쳐 흐른다.[龍戰于野 其血玄黃]”는 말이 나온다.
[주D-003]한마디 …… 잊으리오 :
지 금까지 베풀어 준 국가의 은혜를 잊지 말고서 어떻게 해서든 보답해야 마땅하다는 평소의 생각을 토로한 것이다. ()나라 창업의 삼걸(三傑) 중 하나인 한신(韓信)이 가난할 때 빨래하는 아낙으로부터 밥 한 그릇을 얻어 먹고는내가 반드시 당신에게 중하게 보답하겠다.[吾必有以重報母]”고 약속했는데, 나중에 초왕(楚王)이 되고 나서 그 말을 이행하며 천금(千金)으로 갚아 주었던일반천금(一飯千金)’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주D-004]연잎 :
은사(隱士)가 입는 옷을 말한다. 《초사(楚辭)》 이소(離騷)마름과 연 잎으로 저고리를 만들고, 부용을 엮어 바지를 만들어 입는다.[製芰荷以爲衣兮 集芙蓉以爲裳]”라는 표현이 나온다.

음소(吟嘯)

 


천연의 묘한 경지에 들어 마음 가라앉으면 / 天然入妙我心降
힘도 이에 따라 세발솥 불끈 만도 /
筆力從他鼎可扛
공부의 꽃향기에 젖어 살고도 싶소마는 / 所欲霑芳杜工部
장강의 수척함을 배워 본들 어떠리오 / 何妨學瘦賈長江

우로에 몸 흠뻑 적시나니 바다와 같은 꽃이요 / 渾身雨露花如海
강산에 얼굴 마주하나니 항아리 가득 술이로세 / 對面江山酒滿缸
태평 시대를 누리면서 시 읊고 파람을 부노니 / 得意太平吟嘯處
화려하다느니 방하다느니 따지지 마시기를 /
不論華麗與涼厖

 

[주D-001] 힘도 …… 만도 : 기 상이 웅장하고 힘 있는 시문이 나온다는 말이다. 《사기(史記)》 권7 항우본기(項羽本紀)항우는 힘이 세어서 세 발 달린 솥을 두 손으로 불끈 들 만하였다.[力能扛鼎]”고 하였는데, 한유(韓愈)의 시에용무늬 새겨 백곡을 담은 세 발 달린 큰 솥을, 홀로 불끈 들 만한 필력을 그대는 가졌다오.[龍文百斛鼎 筆力可獨扛]”라는 표현이 보인다. 《韓昌黎集 卷5 病中贈張十八》
[주D-002] 공부(杜工部)의 …… 어떠리오 :
두 공부는 검교 공부 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을 지낸 두보(杜甫)의 별칭이고, 가 장강(賈長江)은 장강 주부(長江主簿)를 지낸 가도(賈島)의 별칭이다. 소식(蘇軾)이 〈제유자옥문(祭柳子玉文)〉에서 당나라 시인을 비평한 대목에원진(元稹)은 경조 부박하고 백거이(白居易)는 비천 저속하며, 맹교(孟郊)는 썰렁하고 가도는 수척하다.[元輕白俗 郊寒島瘦]”라고 한 말이 나온다.
[주D-003]화려하다느니 …… 마시기를 :
시 가 잘됐다느니 못됐다느니 비평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춘추 시대 진()나라의 태자(太子) 신생(申生)이 출정할 때, 왕이 잡색의 옷을 입혀 보내자, 호돌(狐突)잡색 옷은 냉정하게 대하는 마음을 나타낸 것[尨涼]”이라면서 탄식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방량(尨涼) 혹은 양방(涼尨)이 폄하(貶下)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은 방()과 통한다. 《春秋左傳 閔公2年》 또한 소식(蘇軾)의 시에누차 무딘 칼을 잡고 명검의 대열에 끼었는데, 다시 화곤의 때를 만나 방량을 비치게 되었도다.[屢把鉛刀齒步光 更遭華袞照厖涼]”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화곤과 방량이 각각 포상(褒賞)을 받는 상대방과 초라한 자기 신세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蘇東坡詩集卷11 景純復以二篇 云云》

기쁜 일을 기록하다.

 


태평을 알리는 기쁜 소식 홀연히 접했나니 / 忽得涼書報太平
동문에 납시어 충성한 사람들 상주셨다네 / 東門駕幸賞忠誠
우리 삼한에 예로부터 이런 일이 흔했던가 / 三韓此事從來少
대필
이 만고토록 임금님 명성을 전하리라 / 大筆光垂萬古名

 

[주D-001]대필(大筆) : 명 문장가를 뜻한다. ()나라 왕순(王珣)의 꿈에 어떤 사람이 서까래처럼 큰 붓[大筆如椽]을 건네주자, 꿈을 깨고 나서는내가 솜씨를 크게 발휘할 일이 있을 모양이다.[當有大手筆事]”고 하였는데, 과연 얼마 뒤에 애책문(哀冊文)과 시의(諡議) 등을 모두 왕순이 도맡아 지었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卷65 王珣列傳》

해주(海州)의 족장(族長)에게 받들어 부치다.

 


서쪽 창가 곤히 누워 나들이도 못 하는 몸 / 困臥西窓不出游
풀벌레 우는 가을날에 절간은 적요할 뿐 / 寂寥僧院草虫秋
남쪽 누대 바로 아래는 산이 일천 겹 / 南樓直下山千疊
머리 들어 때때로 해주 하늘 바라보오 / 矯首時時望海州

 

답답한 마음을 풀다. 김 상장(金上將)이 술을 들고 찾아와서는 밤이며 완두콩 등을 먹여 주었다.

 


훤과 적이 다른 길이 아닌 것을 아는 터에 / 看來喧寂不殊塗
구태여 창을 들고 유생을 쫓으려 하겠는가 / 胡乃操戈欲逐儒

나는 노년에 절간에 깊이 앉아 사람을 피하는데 / 景深居避人處
사람들은 성불도 앞에서 큰소리 떠들어 대는구나 / 高聲大叫成佛圖
동자에게 슬며시 일러 관아에 심부름 보냈더니 / 閑敎童子入州府
족친이 술병을 들고 오니 속으로 얼마나 좋은지 / 靜愛族親携酒壺
물가에 짓고 사는 것이 평소의 소원이었으니 / 築室臨流眞素願
어찌 호호탕탕한 오호를 찾아야 하겠는가 / 何須浩蕩歸五湖


또 짓다.

두꺼운 밤 껍질 벗겨내니 반질반질 윤이 나고 / 剝去重皮粲有光
완두콩 꼬투리 삶아 오니 비릿비릿 향내 나네 / 烹來長殼嫩生香
잔 앞에 나란히 차려 놓자 부호라도 된 듯한데 / 樽前並進如豪富
숲 아래 먼저 맛을 보니 노광이 부끄럽군그래 / 林下先嘗愧老狂
폐합의 논두렁에선 누런빛 들판에 반사되고 / 吠蛤稻畦黃暎野
준치의 토란밭에선 초록빛 마당에 비치는 때 / 蹲鴟芋圃綠連場

이제부터는 야금야금 미천한 이 몸 배불리며 / 從今細嚼微軀飽
절물을 읊고 시 짓느라 날마다 바쁘겠네그려 / 詠物新吟逐日忙

 

[주D-001]훤(喧)과 …… 하겠는가 : 시 끄러움과 고요함이 사실은 둘이 아닌 것을 안다면, 굳이 한쪽만을 좋아해서 추구할 필요가 없으리라는 말이다. ()과 훤은 불교 선종(禪宗)의 이른바수파불리(水波不離)’의 수와 파에 해당하고, 천태종(天台宗)의 이른바본적상섭(本迹相攝)’의 본과 적에 해당한다. 예컨대 정지해 있는 물과 움직이는 물결이 현상의 측면에서는 다르지만 본체의 측면에서는 같으니 불일불이(不一不異)라고 할 수 있는 것과 같다는 식의 불교 이론이다. 창을 들고 유생을 쫓았다는조과축유(操戈逐儒)’의 고사는 《열자(列子)》 주 목왕(周穆王)에 나온다. ()나라 양리(陽里)에 사는 화자(華子)의 건망증을 고칠 사람이 없던 중에 어떤 유생이 찾아와서 완전히 낫게 하자, 화자가 오히려 화를 내면서창을 들고 유생을 쫓아내었는데[操戈逐儒生]’, 그 이유를 물으니건망증에 걸렸을 때에는 천지가 있는 것조차 몰랐는데, 지금은 존망 득실과 희로애락 등 온갖 복잡한 상념이 일어나니 어느 한순간인들 망각의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라고 대답했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주D-002]물가에 …… 하겠는가 :
지 금 물가에 지은 절간 안에서 생활하면서 평소의 소원을 풀고 있으니, 구태여 범려(范蠡)처럼 오호(五湖)까지 찾아갈 필요는 없다는 뜻의 자위하는 말이다. 춘추 시대 월()나라 대부 범려가 구천(句踐)을 도와서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패자(覇者)가 되게 한 뒤에 벼슬을 그만두고는 일엽편주(一葉片舟)를 타고 오호로 나가서 성명(姓名)을 모두 바꾸고 숨어 살았던 고사가 전한다. 《吳越春秋 卷10 句踐伐吳外傳》
[주D-003]먼저 맛을 보니 :
김 상장이 깍듯하게 목은을 대접했다는 말이다. 《예기(禮記)》 곡례 하(曲禮下)임금이 병들어서 약을 먹을 경우에는 신하가 먼저 그 약을 맛보고, 아비가 병들어서 약을 먹을 경우에는 자식이 먼저 그 약을 맛본다.[君有疾飮藥臣先嘗之 父有疾飮藥 子先嘗之]”는 말이 있다.
[주D-004]폐합(吠蛤)의 …… :
누 렇게 익은 벼와 파랗게 자란 토란 등을 수확할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폐합은 개구리 울음소리를 뜻하는 시어(詩語), 소식(蘇軾)의 시에벼에 선들바람 불자 개구리들의 합창 소리, 버들잎 늙어 가자 반쯤은 벌레 먹은 책장.[稻涼初吠蛤 柳老半書蟲]”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7 宿餘杭法喜寺後綠野堂 云云》 준치(蹲鴟)는 토란의 별명으로, 그 모양이 마치 올빼미가 웅크리고 앉은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史記 卷129 貨殖列傳》

8 3일에 상주(尙州)의 유학 교수관(儒學敎授官)번육(膰肉)을 보내오다.

 


벽옹의 정제 때에는 의관으로 끼었고 / 璧雍丁祭厠衣冠
돌아와선 반궁의 초헌관으로 참여했지 / 歸忝泮宮初獻官

어찌 뜻했으랴 궁촌에서 신령님 은사 받아 / 豈意窮村拜神賜
상산의 번육이 술상을 환하게 비춰줄 줄을 /
商山膰肉照杯盤

 

[주C-001]번육(膰肉) : 사당에서 제사 지낸 고기를 말한다.
[주D-001]벽옹(璧雍)의 …… 참여했지 :
목 은이 번육을 받고는 감회에 젖어, 옛날 원()나라의 태학(太學)에서 정제(丁祭)를 거행할 적에 제생(諸生)의 신분으로 끼었던 일과 고려에 돌아와서 성균관의 초헌관으로 의식을 거행했던 일을 추억한 것이다. 정제는 1년에 두 차례씩 공자(孔子)의 문묘(文廟)에 올리는 석전(釋奠)을 말하는데, 중추(仲秋) 8월의 첫째 정일(丁日)과 중춘(仲春) 2월의 첫째 정일에 지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주D-002]상산(商山)의 …… 줄을 :
상산은 상주의 옛 이름인데, 목은이 유배당한 함창(咸昌)은 상주군의 관할 지역이었다.

7일에 출척사(黜陟使) 영공(令公)덕통(德通)을 지나간다는 말을 들었는데, 병 때문에 직접 나가서 뵙지 못하고 대신 글로 써서 부쳐 올렸다.

 


깃발 날리며 덕통을 지나신다는 말을 듣고 / 聞說旌旗過德通
뛸 듯 신이 나면서 찾아뵙고자 하였는데 / 躍然乘興欲趨風
마침 병이 도져서 멀거니 바라만 보았으니 / 適因微疾空瞻望
어느 날이나 술잔 앞에서 담소를 나눌는지 / 何日樽前笑語同

 

[주C-001]덕통(德通) : 함창의 속원(屬院)이다.

잠 시자(岑侍者)가 개천사(開天寺)로 돌아가겠다고 하직 인사를 하기에 붓을 달려 환암 국사(幻菴國師)에게 부쳐 올렸다.

 


길고 긴 날 사람도 볼 수 없는 곳 / 永日無人處
높은 다락에 성불도만 덩그럴 뿐 / 高樓成佛圖
홀연히 잠 시자를 만나고 보니 / 忽逢岑侍者
쇠한 유생 얼굴이 달아올랐소 / 面赤愧衰儒
현성도 구름 사이의 번갯불이요 / 賢聖雲間電
허공 역시 바다 위의 물거품이라 / 虛空海上漚

어느 때나 방장실로 찾아뵙고서 / 何時造方丈
마주 보며 호로병 술 함께할는지 / 相對共胡盧

 

[주D-001]현성(賢聖)도 …… 물거품이라 : 세 상만사가 덧없음을 표현한 말이다. 불교에서 득도(得道)하기 이전의 범부가 유루지(有漏智)로써 선근(善根)을 닦는 경지를 현()이라 하고, 득도하여 범부의 성품을 벗고 무루지(無漏智)로써 바른 이치를 증득(證得)해 나아가는 경지를 성()이라 한다. 허공(虛空) 역시 불교에서 말하는 6()의 하나로, 일체 만물이 존재하는 공간을 뜻한다.

백 련회(白蓮會) 자리가 파한 뒤에 박 영공(朴令公)을 머무르게 하여 중추절을 함께 보내다가 자정이 지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동이 트기 전에 공이 떠났는데도 나는 한창 잠에 곯아 떨어져서 그 사실을 알지도 못하였다. 이에 새벽에 일어나서 읊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 개의 나라 나왔던고 /
天下紛紛過幾秦
이 작은 마을 고즈넉해서 풍진을 멀리 벗어났네 / 小村幽寂遠風塵
백련결사 속에서 진짜 부처를 찾아보고 / 白蓮社裏求眞佛
명월의 술잔 앞에서 옛 벗을 마주하였다오 / 明月樽前對故人
풍류가 전배와 같다는 것을 다만 느꼈을 /
但覺風流似前輩
내 신세 처량한 것은 아예 알지도 못하였소 / 那知蕭索屬吾身
공은 급히 떠났는데 나는 여전히 단꿈 속에 / 公馳去矣猶酣夢
밥 먹고 누에 오르면 흥이 또 새로워지겠지 / 食罷登樓興更新

 

[주D-001]어지러운 …… 나왔던고 : 인 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성군(聖君)의 치세(治世)는 적은 반면 난세(亂世)가 계속 이어져 왔다는 말이다. ()나라 때 무릉(武陵)의 어부가 복숭아꽃이 떠내려오는 물줄기를 따라 계속 올라가 보니 포악한 진()나라 시대에 난리를 피해서 들어온 사람들이 이상향(理想鄕) 속에 살고 있더라는 도잠(陶潛)의 유명한 〈도화원기(桃花源記)〉가 전하는데, 이를 소재로 하여 송()나라 왕안석(王安石)이 지은 〈도원행(桃源行)〉에순 임금 같은 성군이 한 번 가면 어찌 다시 나오리오, 어지러운 세상 속에 그동안 몇 개의 진나라 나왔던고.[重華一去寧復得 天下紛紛經幾秦]”라는 시구가 보인다.
[주D-002]풍류가 …… :
동진(東晉)의 고승 혜원(慧遠)이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서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고 승속(僧俗) 18()과 노닐었던 고사와 흡사했다는 말이다. 《蓮社高賢傳 慧遠法師

양산 대선사(陽山大禪師)가 송이버섯을 보냈기에 감사의 뜻을 표하다.

 


우리 일숙보리는 옛적부터 안 분인 듯 / 一宿菩提似舊知
헤어진 다음 날에 송이버섯을 보냈구려 / 別來明日送松芝
선사의 인품과 비슷한 담담함 속의 이 맛이여 / 淡中有味同風調
비 맞으며 미투리 신고 다시 찾아가 뵙고 싶소 / 踏雨靑鞋更訪師

 

[주D-001]일숙보리(一宿菩提) : 일 숙각(一宿覺)과 같은 말로 경지가 높은 선승(禪僧)을 뜻한다. 보리(菩提)는 깨달음의 뜻을 지닌 산스크리트어의 음역어(音譯語)이다. ()나라 영가 현각 선사(永嘉玄覺禪師)가 육조(六祖) 혜능(慧能)을 찾아갔을 때 그의 깨달음의 경지가 육조와 계합(契合)이 되자 육조가 하룻밤 만이라도 머물다 가라고 청했기 때문에 그를 일숙각이라고 불렀다는 고사가 전한다. 《景德傳燈錄卷5 溫州永嘉玄覺禪師》

첨서(簽書)에게 부치다.

 


어찌 차마 들으리오 쓸쓸히 내리는 밤비 소리 / 夜雨蕭蕭不忍聞
새벽 창가에 시름겹게 마주한 만산의 구름이라 / 曉窓愁對萬山雲
그런데 한바탕 큰바람이 홀연히 불어 닥쳤으니 / 須臾一陣長風起
대궐에서 성군을 축수할 희망을 가져 보자구나 / 快望丹霄祝聖君

 

[주C-001]첨서(簽書) : 목은의 둘째 아들 종학(種學)을 가리킨다.

어떤 일에 느낀 점이 있어서

 


친족들은 하나의 몸을 나눠 받았으니 / 親族分一身
멀고 가깝고 간에 정이 넘쳐야 할 텐데 / 遠近情意眞
평안할 때는 우르르 몰려오려 하다가도 / 平安諒欲會
환난을 당하면 되레 성내며 미워하는구나 / 患難還恚嗔
하늘이 맺어 준 친속들도 이와 같은데 / 天屬尙如此
상관이 없는 사람들은 또 어떠하겠는가 / 何況越與秦
내 마음은 저 옛날로 되돌아가고 싶어 / 我心欲返古
풍속이 순박하게 되기를 기대했었는데 / 庶令風俗醇
이젠 늙어서 어찌하지도 못하는 터에 / 老矣今已矣
뭣 때문에 이 일로 정신만 수고롭히는가 / 徒此勞精神

 

송헌(松軒)에게 부쳐 올리다.

 


우리 동방이 맞은 운세 일지방중이요 / 三韓迓命日方中
우리의 우정은 백절필동하는 물이로세 / 百折交情水必東
요기가 절로 사라지고 화기가 일렁이는 것은 / 乖氣自消和氣動
승상부에 맑은 바람이 계시기 때문 아니겠소 / 只緣黃閣有淸風

 

[주D-001]일지방중(日之方中) : 《시경》 패풍() 간혜(簡兮)에 나오는 말로,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것처럼 전성기를 맞은 것을 말한다.
[주D-002]백절필동(百折必東) :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변치 않고 계속 유지되는 것을 말한다. 《순자(荀子)》 유좌(宥坐)강물은 일만 번 꺾여져도 반드시 동쪽으로 향한다.[其萬折也必東]”는 말이 나온다.

포은(圃隱)에게 부쳐 올리다.

 


큰일을 하실 우리 공이 묘당에 거하시니 / 公大有爲居廟堂
쇠해서 쓸모없는 나는 가향에서 늙어도 그만 / 吾衰無用老家鄕
소중화관이 처음 지어진 때처럼 되었으니 / 小中華館如初作
도사를 오래 묻혀 있게 해서야 되리이까 / 陶舍寧敎久閉藏

 

[주D-001]소중화관(小中華館)이 …… 되리이까 : 도 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이 목은과 함께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태조(太祖)의 환대를 받고 귀국했고 보면, 과거에 빛났던 소중화관의 명성을 되찾게 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니, 현재 유배 중인 도은을 구해 주어 국가를 위해 계속 일하게 할 수 없겠느냐는 뜻의 간곡한 요청으로 보인다. 고려 문종(文宗) 30(1076)에 공부 시랑(工部侍郞) 최사량(崔思諒)이 사신으로 송()나라에 가서 사은하고 방물을 바치자, 신종(神宗)이 고려를 문물 예악의 나라라고 칭찬하며 후하게 환대하고는 고려 사신의 하마소(下馬所)를 소중화지관(小中華之館)이라고 명명하게 한 고사가 전한다. 《東史綱目 卷7下 文宗30年》

 

 

금주음(衿州吟)

홍 무(洪武) 임신년(1392, 공양왕4) 여름 414일에 상이 사순랑(司楯郞)을 보내 하교하시기를, “두 아들은 사실과 다르게 일을 말한 죄에 저촉되었으므로 지금 모두 관례대로 폄직(貶職)한다. 경의 마음이 어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양강(兩江) 밖으로 나가서 거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에 신() 색이 기쁜 마음에 땅을 구르고 춤을 추면서 사은하고는 곧장 출행하였는데, 보현원(普賢院)에 이르렀을 때 비가 오기에 조금 머물렀다.

임진(臨津)에 도착하여 김귀련(金龜聯) 판사(判事)의 농장에서 묵다.

15일에 행주(幸州) 유 영공(柳令公)의 농장에서 묵다.

16일에 공암(孔巖) 나루를 건너다.

이날 광주(廣州)의 마을에 도착하였으니, 이곳은 나의 하인과 하녀가 거주하는 곳이다. 여기에서 며칠 동안 머물면서 단가(短歌)를 지어 불렀다.

우제(偶題)

현 판서(玄判書)에게 부치다.

동년(同年)인 강 판사(姜判事)의 벽에 쓰다. 그가 나에게 진맥(診脈)을 해 달라고 부탁하기에 장난삼아 이렇게 지었다.

강 동년(姜同年) 정헌(靜軒) 선생에게 부쳐 올리다.

우거(寓居)하는 시골집에 제()하다.

제형(弟兄)

남경 윤(南京尹)에게 부치다.

박돈지(朴惇之)가 생선을 보내 준 것에 대해 사례하며 아울러 소회를 피력하다.

집 북쪽의 자그마한 동산에 올라가서 사방을 바라보다.

송헌(松軒)에게 부쳐 올리다.

현 판서(玄判書)가 메기를 보낸 것에 사례하면서 느껴지는 점이 있기에 시 세 수를 짓다.

관악산(冠嶽山) 선각암(禪覺菴)의 철 수좌(澈首座)가 장아찌와 석이버섯[石茸]을 보내오다.

즉사(卽事)

관악산 신방사(新房寺)의 주지(住持)는 무급(無及)의 도반(道伴)이다. 그가 삭방(朔方)에서 돌아와 이 절간에 머물면서 노숙(老宿) 아무 아무와 함께 먹을 것을 가지고 나를 찾아와 먹여 주었다.

5 17일에 숙휴(叔畦) 진사(進士)에게 급히 글을 보내 서울에 들어와서 일을 주관하게 하다. 의지할 곳 없이 영락한 내 신세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을 스스로 비웃으며 한 수를 지어 읊다.

중 현대부(中顯大夫)로 안산(安山)을 맡고 있는 정사운(鄭士雲)이 백미(白米) 열 말과 건어(乾魚) 열 마리와 술 두 병을 보내면서, 남 계정사(南計定使)의 부탁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정 안산은 경기 지방에 이제 막 부임하였고 남군은 양광도(楊廣道)의 계정사로 나가 있으니 이들이 어떻게 서로 소식을 통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고 보면 두 사람이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분명하기에, 장난삼아서 단율(短律)을 지어 보았다.

날이 맑게 갠 것을 기뻐하며 숙휴(叔畦)를 위로하다.

즉사(卽事)의 시 세 수를 지어 직설적으로 서술하였으니 이는 허언(虛言)이 아니다.

경치를 대하면서 느낌을 토로하다.

현 판서(玄判書)를 통해서 띠풀로 지붕을 덮은 새 집을 구하다.

남재(南在)가 순채(蓴菜)와 술과 주지(奏紙)를 보내오다.

광주 목사(廣州牧使) 최서(崔恕)에게 부치다.

어제 안양(安養)의 도생(道生) 승통(僧統)이 술과 음식을 가지고 찾아와서 나를 위로하였는데, 오늘 아침에는 또 종이를 보내왔기에, 내가 시를 지어서 사례하였다.

사방에 구름이 없는 것을 보고는 느낌이 들기에 짓다.

잠시 뒤에 흰 구름이 조각조각 하늘을 가득 덮기에 또 한 수를 지어 읊다.

양성(陽城)의 감무(監務)인 고() 아무가 백미 다섯 말과 술 두 병을 보내왔다. 그는 한식날에 한산(韓山)으로 성묘를 갔다가 돌아올 적에 사평원(沙平院)까지 나를 호송했던 자이다.

신정(新亭)

얼 마 전에 동년(同年)인 정헌공(靜軒公)을 방문했더니, 그가 말하기를, “나의 아들인 청곡(靑谷) 스님이 가까운 시일 안에 북쪽으로 올라오겠다고 편지를 보내 알려 왔으니, 공도 반드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 내가 이 말을 듣고는 그가 얼마나 기뻐하는지를 알 수 있었는데, 어제 풍문으로 듣건대 청곡이 온 지 며칠이 지났다고 하였다. 그런 중에 요행히 그가 보낸 순채(蓴菜) 항아리 하나를 선물로 받게 되었는데, 이는 애오라지 봉양하는 하나의 음식 맛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판 조계사(判曹溪事)인 죽암(竹菴) 진공(軫公)이 내원(內院)에서 물러 나와 주석(住錫)하고 있는 억정사(億政寺)로 돌아갈 적에 암곶(岩串)에 머물면서 반야탕(般若湯)과 소채오성(蔬菜五星)을 가지고 와서 나의 삼출(三黜)을 위로해 주었는데, 이때 마침 나의 새 집이 이루어졌으므로 해 그림자가 옮겨갈 때까지 함께 앉아 있다가 떠났다.

죽암(竹菴)을 초청해서 변변찮은 음식이나마 대접하고 있던 차에, 박 판서(朴判書)와 강 판사(姜判事)와 현 판서(玄判書)가 마침 왔기에, 함께 담소하며 한껏 즐기다가 자리를 파하였다. 이에 앞 시의 운을 써서 시를 짓다.

손님들이 떠난 뒤에 홀로 앉아 강변의 경치를 음미하면서 차마 떠나지를 못하고 있던 차에, 권 홍주(權洪州)가 마침 찾아왔기에 다시 술을 청해서 조금 마시다.

이 튿날 죽암이 떠날 적에 시간에 맞춰서 전송하지 못하였다. 박 판서와 함께 권 홍주의 임시 거처에 가서 아침밥을 먹었다. 더위가 심하기에 강에 배를 띄웠는데 부인의 배가 또 와서 조금 술을 마시다가 저물녘에 헤어졌다. 이날 현 판서와 용산(龍山)의 신 판서(辛判書)도 술과 음식을 가지고 왔으니, 이는 권 홍주를 전별하기 위함이었다.

다음 날에 몸이 고단해 누워서 작은 소리로 읊다.

기탄(岐灘)의 장교(長橋)에서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판서(判書) 박 장원(朴壯元)을 전송하다.

 

 

금주음(衿州吟)

 

 

 

홍 무(洪武) 임신년(1392, 공양왕4) 여름 4 14일에 상이 사순랑(司楯郞)을 보내 하교하시기를, “두 아들은 사실과 다르게 일을 말한 죄에 저촉되었으므로 지금 모두 관례대로 폄직(貶職)한다. 경의 마음이 어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양강(兩江) 밖으로 나가서 거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에 신() 색이 기쁜 마음에 땅을 구르고 춤을 추면서 사은하고는 곧장 출행하였는데, 보현원(普賢院)에 이르렀을 때 비가 오기에 조금 머물렀다.

 


임금님은 연민의 뜻을 보여 주셨건만 / 國主垂憐愍
집사람은 습관이 되어 또 이별이라네 / 家人慣別離
창황 중이라 전송하는 사람도 없이 / 蒼黃無客送
쓸쓸하게 손자만 하나 따라올 따름 / 寂寞有孫隨
달빛 아래 번득이는 응양의 검이요 / 明月輝鷹劍
푸른 이끼 개먹어 드는 하마비로세 / 靑苔蝕馬碑
비가 와서 잠깐 쉴 수 있게 되었나니 / 雨來成小歇
하늘도 위로하며 천천히 가라는 듯 / 天亦慰遲遲

 

[주D-001]응양(鷹揚) : 사순랑(司楯郞)을 가리킨다.

임진(臨津)에 도착하여 김귀련(金龜聯) 판사(判事)의 농장에서 묵다.

 


얼음과 눈의 계절에 지난 적이 있으니 / 氷雪曾過此
강과 산이 어쩌면 나를 알아볼 듯도 / 江山似識予
땅이 비옥하니 농사짓기에 그만이요 / 地腴耕稼好
사는 사람 적은 데다 왕래도 드물기만 / 人少往來疏
도연명의 차조를 외람되게 그리워할 /
枉慕淵明秫
제갈량의 초려가 너무도 부끄럽소이다 /
深慚葛亮廬
김 판사여 이 몸이 한 말씀 부탁하리이까 / 寄言金判事
나에게 금서의 을 꾸어 줄 수 있으신지 / 借我樂琴書

 

[주D-001]도연명(陶淵明)의 …… : 술 도 잘 마시지 못하는 목은이, 차조로 술을 빚어서 즐겨 마셨던 도연명을 자격도 없이 괜히 사모한다는 말이다. ()나라 도연명이 팽택 현령(彭澤縣令)이 되었을 때, 너무도 술을 좋아한 나머지 공전(公田)에다 모두 술을 빚기에 좋은 차조만을 심게 했던 일화가 전한다. 《宋書 卷93 隱逸列傳陶潛》
[주D-002]제갈량(諸葛亮)의 …… 부끄럽소이다 :
군 주의 극진한 대우를 받고 조정에 나와서 경륜을 폈던 제갈량과는 달리 벼슬길에 자진해서 나와 곤욕을 당하고 있는 목은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는 말이다. 후한(後漢) 말에 제갈량이 남양(南陽) 융중(隆中)에서 농사지으며 은거하고 있다가, 세 번이나 초가집을 찾아온 유비(劉備)의 정성에 감동되어 세상에 나왔던 이른바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고사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三國志 卷35 蜀書 諸葛亮傳》
[주D-003]금서(琴書) :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보내는 전원의 흥취를 말한다. 도잠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친척들과의 정담을 즐거워하고, 거문고와 책 즐기면서 시름을 해소한다.[悅親戚之情話樂琴書以消憂]”는 말이 나온다.

15일에 행주(幸州) 유 영공(柳令公)의 농장에서 묵다.

 


언젠가 말씀하셨지요 산꼭대기의 절간 하나 / 曾說山頭寺
바다 모퉁이 하늘가에 멀리 굽어본다면서 / 遙臨海角天
무더위 피하러 오라고 이 몸에게 권했는데 / 勸予來避暑
손가락을 꼽아 보니 벌써 몇 해나 지났구려 / 屈指已經年
지금 아름다운 술이 정신을 유쾌하게 하고 / 美酒精神暢
정성 어린 음식 모두 구복을 편케 하는 데다 / 嘉飡口腹便
하녀가 또 열심히 옆에서 시중을 들어 주니 / 女奴勤接待
주인이 얼마나 어지신지 새삼 깨닫겠소이다 / 更覺主人賢

 

16일에 공암(孔巖) 나루를 건너다.

 


만 그루 솔 언덕 아래 자리한 이씨네 마을 / 萬松崗下李家村
건네줄 사람 없는 터에 내 집을 찾아 줬네 / 欲渡無人枉叩門
공암을 건너고서도 가슴이 아직 두근두근 / 過了孔巖心尙悸
작은 배에 바람 급해 물결이 뒤집혔으니까 / 小舟風急浪花翻

 

[주C-001]공암(孔巖) 나루 : 양천(陽川) 북쪽 10리 지점에 있는데, 북포(北浦)라고도 한다. 물속에 바위가 우뚝 서 있고 그 바위에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날 광주(廣州)의 마을에 도착하였으니, 이곳은 나의 하인과 하녀가 거주하는 곳이다. 여기에서 며칠 동안 머물면서 단가(短歌)를 지어 불렀다.

 


금주의 북쪽이요 과주의 서쪽인 /
衿州之北果州西
그중에 광릉 마을 한 구역이 있나니 / 中有廣陵村一區
얕은 산이 고리처럼 키 작은 병풍 이루고 / 淺山環合成短屛
초가집 몇 채가 그림처럼 점점이 박혔어라 / 茅茨數點如畫圖
촌사람 살아가는 모습 너무나도 삭막하니 / 村人生理甚蕭索
내가 설명하려 해도 덧붙일 말이 있으리오 / 我欲言之難注脚
곡식 항아리도 없이 사방에 벽만 서 있으니 / 壁空何曾有

장자의 학철부어와 다를 것이 뭐 있으랴 / 不異莊鱗居轍涸
서쪽 산기슭에 수염 긴 군자가 거주하며 / 西崖長髥君子居
노인 봉양할 곡식을 왕왕 내주곤 하는데 / 養老往往推所儲
한산의 축객이 처음 말을 내렸을 적에도 / 韓山逐客初下馬
배려하는 그 마음씨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 便荷用意何勤渠
천리에 겨우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하듯 / 千里一士比肩立
돕고 일이 많은데도 만나기 힘든 세상이라 / 相須之殷相遇疏

내가 짧은 노래 지어 이 정회를 펴노라니 / 我作短歌舒此情
하늘땅 위아래에 바람 소리만 들리누나 / 天高地下唯風聲

 

[주D-001]금주(衿州)의 …… : 금주는 금천(衿川), 과주는 과천(果川)의 옛 이름이다.
[주D-002]학철부어(涸轍鮒魚) :
곤경에 처해서 다급하게 구원을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 《장자》 외물(外物), 수레바퀴 자국[涸轍]에 고인 얕은 물속에서 메말라 죽어가며 헐떡이는 붕어[鮒魚]가 물을 조금만 부어 주면 살 수 있겠다고 애원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D-003]천리에 …… 세상이라 :
서 로 도우면서 살아가야 할 이 세상에서 정작 사람다운 사람을 만나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말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 관세(觀世)천리를 가야 겨우 하나의 선비를 만나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가 있고, 몇 세대를 지나야만 겨우 성인 한 분이 나와서 전성의 자취를 잇는다.[千里而有一士 比肩也 累世而有一聖人 繼蹤也]”라는 말이 나오고, 한유(韓愈)의 〈여우양양서(與于襄陽書)〉에 선배와 후배 상호 간의 바람직한 관계를 강조하는 가운데 그렇게 되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하면서어쩌면 그토록 서로들 상부상조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한데도, 서로들 만나 바람직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드물기만 한 것인가.[何其相須之殷 而相遇之疏也]”라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우제(偶題)

 


대성의 탄핵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중에 / 省擊臺彈直到今
오천의 뜻밖의
가 사람 마음 놀라게 하네 / 烏川奇禍駭人心
왕래하며 굽신거린들 해로울 것이 있으랴 /
往來屑屑何妨事
송헌이 나를 깊이 아껴 줌을 다시 느끼겠네 / 更感松軒愛我深

 

[주D-001]오천(烏川) 뜻밖의 : 목 은이 이 〈금주음(衿州吟)〉을 짓던 공양왕 4 4월에 정몽주(鄭夢周)가 선죽교(善竹橋)에서 이성계(李成桂)의 아들 이방원(李芳遠)의 사주를 받은 조영규(趙英珪) 등에 의해 참살당한 일을 말한다. 오천은 정몽주의 관향으로 영일(迎日)의 옛 이름이다.
[주D-002]왕래하며 …… 있으랴 :
조 정의 명령에 따라 이곳저곳으로 유배다니며 조롱을 받는 신세라 할지라도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뜻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동한(東漢)의 왕량(王良)이 벼슬에 급급하다가 처음으로 조정의 부름을 받고 가던 중에 친구의 집을 방문하자, 그 친구가충성스러운 말이나 기이한 계책도 없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다니, 어쩌면 그렇게도 왔다 갔다 굽신거리며 거리낌이 없을 수 있단 말인가.[不有忠言奇謀而取大位 何其往來屑屑不憚煩也]”라고 비난하며 물리쳤다는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27 王良列傳》

현 판서(玄判書)에게 부치다.

 


한강의 남쪽 둔덕 광주의 시골 마을 / 漢江南畔廣州村
적막하게 몇 집만이 대문을 마주할 뿐 / 寂寞數家相對門
서쪽 이웃에 군자의 댁이 안 계셨던들 / 不有西隣君子宅
노부가 어떻게 아침저녁을 때웠으리오 / 老夫何以度朝昏

낭묘에서 함께 노닐던 일이 꿈속만 같은데 / 廊廟同遊似夢中
금주의 북쪽 들판에서 홀연히 상봉하다니요 / 衿州北野忽相逢
사람과 말이 먹을 것을 폐 좀 끼쳐야 하겠는데 / 盤飡棧豆煩供給
조물은 하나의 독옹을 불쌍히 여겨 주겠지요 / 造物應憐一禿翁

 

[주D-001]독옹(禿翁) : 벼슬도 위세도 없는 노인을 뜻하는 말이다.

동년(同年)인 강 판사(姜判事)의 벽에 쓰다. 그가 나에게 진맥(診脈)을 해 달라고 부탁하기에 장난삼아 이렇게 지었다.

 


그대 육맥이 약속 시간 맞추는 듯하니 /
看君六脈至如期
몸도 마음도 건강한 것을 또한 알겠도다 / 身健心和亦可知
여기에 또 무량수불에게 귀의하고 있으니 / 又況歸依無量壽
금생에서 백년의 수명은 너끈히 누리리라 / 此生應享百年

 

[주D-001]그대의 …… 듯하니 : 무 슨 일이 있어도 약속 시간을 철저히 지키면서 도착하는 사람처럼 맥박이 정확하게 뛰고 있다는 말이다. 육맥(六脈)은 한의학에서 말하는 여섯 개의 맥박으로, ()ㆍ침()ㆍ허()ㆍ실()ㆍ삭()ㆍ지(), 혹은 심()ㆍ간()ㆍ신()ㆍ폐()ㆍ명문(命門)의 총칭이다.

강 동년(姜同年) 정헌(靜軒) 선생에게 부쳐 올리다.

 


원조인 염정께서는 아직도 천상의 신선이요 / 遠祖廉貞尙在天
정헌은 사람들 말하기를 지상의 신선이라네 / 靜軒人道地行仙
한 구역 꽃나무들 역시 속세 벗어난 별천지 / 一區花木非塵世
길손이 와서 회포 풀 땐 술이 또 샘물 솟듯 / 客至開懷酒似泉

하늘 끝 머나먼 귀양 길 묻노라 몇 번인고 / 遠謫天涯問幾回
사람들 말엔 남대로 떠날 화가 싹텄다나 /
禍胎人道去南臺
이 모두 운명이니 내가 또 무엇을 한탄하리 / 是皆命也吾何恨
매양 술잔 앞으로 나가 입 벌리고 웃는다오 / 每向樽前笑口開

 

[주D-001]사람들 …… 싹텄다나 : 《목 은시고》 제35권 〈현령(縣令) 문군(文君)이 내방하다.〉에표전 올려 북궐을 떠나자 원망이 일어났고, 나라 걱정에 남대로 가면서 화가 싹텄다오.[怨起上牋辭北闕 禍萌憂國去南臺]”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북궐은 고려 조정을 가리키고 남대는 목은이 사신으로 다녀온 명나라의 남경(南京)을 가리킨다.

우거(寓居)하는 시골집에 제()하다.

 


위태하든 순탄하든 양쪽 모두 느긋하니 / 危途順境兩閑閑
조물도 나는 어쩔 수 없다며 웃고 말리라 / 造物依然笑我頑
귀에 들어온 싫은 소리 이미 잊어버렸는데 / 已忘惡聲初入耳
얼굴에 무안한 기색 재차 뜨게 할까 보냐 / 肯敎慚色再浮顔
서쪽 재엔 금주 길의 흰 구름 가로 걸리고 / 白橫西阪衿州路
동쪽 문엔 관악산의 푸른 산빛이 뚝뚝 듣네 / 翠滴東門冠岳山
보리밭과 벼 논에 새 비가 넉넉히 내렸으니 / 麥隴稻田新雨足
이제부터는 세상 속에서 달리길 원치 않노라 / 從今不願走塵間

 

제형(弟兄)

 


아우와 형은 다른 고을에 각각 거하고 / 弟兄居異縣
지아비와 지어미는 양강에 가로막혔네 / 夫婦隔重江
땅이 가까워도 천리 거리나 떨어진 듯 / 地近同千里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하늘이 멀기만 / 天遙共一邦
언제나 그리워라 마음은 하나로 합하건만 / 永懷心合一
홀로 거하는 몸은 그림자와 짝을 이룰 뿐 / 獨處影成雙
내가 어떻게 사는지 그대들 알기나 하오 / 汝輩知吾否
물고기 살지고 항아리에 술 가득한 생활을 / 魚肥酒滿缸

 

남경 윤(南京尹)에게 부치다.

 


강산에는 풍경이 멋지게 펼쳐지고 / 江山風景好
천지에는 성상의 은혜가 깊은 이때 / 天地聖恩深
단지 괴이한 건 부엌 연기가 냉냉한 것 / 只怪廚煙冷
부윤은 사방 한 치 내 마음을 알아주리 / 應知一寸心

 

박돈지(朴惇之)가 생선을 보내 준 것에 대해 사례하며 아울러 소회를 피력하다.

 


오경에 닭이 울고 비는 쓸쓸히 내리고 / 五更雞叫雨蕭蕭
옛 병과 새 시름이 다 함께 적요한 때 / 舊病新愁共寂寥
생선과 함께 전해 온 서신을 홀연히 보았나니 / 忽見飛魚傳尺素
무료함 위로해 주려는 고인의 정이 후하도다 / 故人情重慰無聊

성상의 은혜 관대하여 강가에 누운 이 몸 / 聖恩寬大臥江濆
그래도 신분은 여전히 삼한부원군이라오 / 猶是三韓府院君
시렁 위에 걸려 있는 하나의 허리띠 서대 / 犀帶一腰懸架上
멀리 곡봉의 구름을 바라다 보게 하는구려 / 令人遙望鵠峯雲

 

[주D-001]서대(犀帶) : 서각(犀角) 즉 무소뿔로 장식한 관대(官帶), 1품 이상의 관원이 허리에 둘렀다.

집 북쪽의 자그마한 동산에 올라가서 사방을 바라보다.

 


크도다 하늘과 땅 무궁한 이 속에서 / 大哉天地儘無窮
흰머리 쇠한 얼굴 늙어가는 목옹이여 / 白髮蒼顔是牧翁
상책이 뭔지 몰랐던 녹록했던 장년이요 / 碌碌壯年迷上策
공든 탑 무너져 내린 유유한 노년이로다 / 悠悠
節棄前功
장강의 한 물줄기는 평야를 가르며 흘러가고 / 長江一派分平野
중첩한 산들은 천 겹으로 먼 하늘과 잇닿았네 / 疊嶂千層接遠空
씻고 털고 싶은 고흥도 발동한다마는 / 濯足振衣高興發
촌심은 끝내 팔선궁으로 향하는걸 어떡하나 / 寸心終向八仙宮

 

[주D-001]발 …… 어떡하나 : 속 세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다가도 결국에는 임금님이 계신 개경으로 마음이 달려가는 것을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나라 좌사(左思)의 〈영사 팔수(詠史八首)〉 가운데천 길 산등성이에서 옷 먼지를 털어내고, 만 리 장강 흐르는 물에 발을 씻노매라.[振衣千仞岡 濯足萬里流]”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또 김관의(金寬毅)의 《편년통록(編年通錄)》에, 개경(開京)의 곡령(鵠嶺) 즉 송악(松嶽)을 가리켜서팔진선이 머물렀던 곳[此八眞仙住處也]’이라고 한 기록이 보인다. 《高麗史 高麗世系》

송헌(松軒)에게 부쳐 올리다.

 


서울을 나서자 길을 잃고 허둥지둥 / 出京迷道路
가는 곳마다 먹을 것도 부족한 신세 / 到處少資糧
산중의 고을 하나 행여 내려 주신다면 / 儻賜山中郡
마음 편히 늘그막을 보낼 수 있으련만 / 安心送夕陽

 

현 판서(玄判書)가 메기를 보낸 것에 사례하면서 느껴지는 점이 있기에 시 세 수를 짓다.

 


예전엔 봉황이 금란에 드는 같더니만 / 昔如鳳鳥入金鑾
지금은 메기가 죽간을 타고 오른다 할까 / 今似鮎魚緣竹竿

외물을 대해 감흥이 이는 건 바로 군자의 일 / 對物興懷君子事
터 잡고서 편안하게 살 만한 곳도 없다니 원 / 卜居無處可求安

나의 숙환을 의관이 자세히 이르면서 / 久病醫官語我詳
비늘 없는 물고기는 약과 상극이라나요 / 無鱗魚與藥相妨
고맙게 보낸 그대의 뜻 어찌 모르겠소마는 / 感君來意何容負
젓가락 들고 맛보려니 조금은 겁이 나는구려 /
還敎少忌嘗

중화를 사모해 온 우리 동방의 풍속이여 / 東方風俗慕中華
이웃이 순박해서 원하면 쉽게도 구하오만 / 淳朴比隣願易求
금주의 봉익대부 현공과 같은 이 있으리까 / 誰似衿州玄奉翊
달마다 비는 날 없이 진수성찬을 보내시니 / 月無虛日送珍羞

 

[주D-001]예전엔 …… 오른다 할까 : 화 려했던 옛날의 영광스러운 시절과 고난에 찬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비교해서 술회한 것이다. 금란(金鑾)은 당()나라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들이 머물던 금란파(金鑾坡) 위에 있는 금란전(金鑾殿)을 말하는데, 보통 관각(館閣)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비늘도 없이 미끄럽기만 한 메기가 대나무를 타고 올라간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아무리 힘을 들여 풀려고 해도 잘 풀리지 않는 고난에 찬 상황을 비유할 때점어죽간(鮎魚竹竿)’의 표현을 곧잘 쓴다. ()나라 매성유(梅聖兪)가 시로 이름을 날리면서도 30년 동안 관직을 얻지 못하다가 만년에 《당서(唐書)》를 편수하게 되었을 때, 아내에게 말하기를, “자유스럽던 원숭이가 푸대 속에 들어가 구속당하는 것 같다.[可謂猢入布袋矣]”고 하면서 호소하자, 아내가 말하기를, “당신의 벼슬살이는 메기가 대나무를 타고 오르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君於仕宦 亦何異鮎魚上竹竿耶]”고 대꾸했다는 고사가 구양수(歐陽脩)의 《귀전록(歸田錄)》 권2에 나온다.

관악산(冠嶽山) 선각암(禪覺菴)의 철 수좌(澈首座)가 장아찌와 석이버섯[石茸]을 보내오다.

 


나는 강 위에 뜬 달을 읊조리고 / 我吟江上月
스님은 영마루의 구름 속에 눕고 / 師臥嶺頭雲
지나온 자취는 같지 않다 해도 / 蹤跡雖然異
스님의 소문은 얻어 들은 듯도 / 音聲似得聞
다행히도 크나큰 은혜를 받았으니 / 幸今垂茂渥
지금부턴 맑은 향기에 읍해야지요 / 從此揖淸芬
어느 날에나 이 육신이 강건해져서 / 何日身强健
풍창에서 밤 늦도록 얘기해 볼는지 / 風窓語夜分

 

즉사(卽事)

 


전자의 창에서 굽어보면 구자의 뜨락 / 田字窓臨口字庭
밥 짓는 내가 조석으로 헛청을 에워싸네 / 炊煙朝暮鎖虛廳
문만 나서면 긴 휘파람 불 수 있다마다 / 出門可是舒長嘯
눈 가득 관악이 분수에 넘치게 푸르니까 / 滿眼冠山分外靑

관악산 신방사(新房寺)의 주지(住持)는 무급(無及)의 도반(道伴)이다. 그가 삭방(朔方)에서 돌아와 이 절간에 머물면서 노숙(老宿) 아무 아무와 함께 먹을 것을 가지고 나를 찾아와 먹여 주었다.

 


신도가 스님을 먹이는 것이 원래 정상인데 / 檀越齋僧是故常
산승이 속인을 먹이다니 놀라서 넘어질 만 / 山僧饗俗可驚惶
흰 눈처럼 쌓인 만두 푹 쪄낸 그 빛깔 하며 / 饅頭雪積蒸添色
기름이 엉긴 두부 지져서 익힌 그 향기라니 / 豆腐脂凝煮更香
다생의 인연이 많으리니 이 어찌 우연이리오 / 緣厚多生非偶値
한 그릇 밥의 은혜 어떻게 갚을 수 있을는지 / 恩深一飯恐難當
나의 새겨서 천고토록 전하고 싶어라 / 欲書此語傳千古
길도 넘게 하늘에 치솟은 석벽 위에다가 / 石壁天齊萬仞强

 

[주D-001]나의 …… 위에다가 : ()나라 원결(元結)의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에하늘 높이 치솟은 저 석벽 위에다가 갈고 다듬어서 이 노래를 새기나니 어찌 천만년만 전할 뿐이겠는가.[石崖天齊 可磨可鐫 刊此頌焉 何千萬年]”라는 말이 나온다.

5월 17일에 숙휴(叔畦) 진사(進士)에게 급히 글을 보내 서울에 들어와서 일을 주관하게 하다. 의지할 곳 없이 영락한 내 신세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을 스스로 비웃으며 한 수를 지어 읊다.

 


필부가 천하를 소유할 수도 있고 /
匹夫有天下
만승이 독부로 전락할 수도 있나니 /
萬乘爲獨夫
세상의 형세가 예나 이제나 같은 법인데 / 大勢今古同
황차 선비의 무리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
何況士之徒
아침에는 떼를 지어 꽤나 몰려오더니만 / 侁侁朝頗衆
저녁이 되자 의지가지없는 외로운 홀몸 / 孑孑夕已孤

황탄하는 자들이 어찌 없기야 하겠냐만 / 豈無況嘆者
말하려 하다가도 겁을 먹고는 우물쭈물 / 欲言還囁

숙휴와 같은 약재가 어떻게 일을 주관하랴 / 弱材豈幹事
소부일 하늘을 솟구칠 재능이 된다만 /
小賦非凌虛
대궐 문에 나아가 호소하는 사람이 없다면 / 無從叫閶闔
가슴속의 참된 정을 어떻게 펼쳐 보이리오 / 心腹安可敷
운명이요 그리고 하늘의 뜻이라 한다면 / 命也又天也
나의 처신도 신중히 정해야만 할 터인데 / 且愼吾所趨
장한이 떠올린 농어회도 기약하기 어렵고 / 悠悠張翰鱸
왕교가 물오리도 멀리 아득하기만 / 杳杳王喬鳧

무가 무불가
의 경지만 이룰 수 있다면야 / 無可無不可
자리 옆에서 서늘 바람이 금방 일어나련마는 / 涼風生座隅

 

[주C-001]5월 …… 하다 : 숙 휴(叔畦)는 목은의 둘째 아들 종학(種學)의 둘째 아들인데, 목은이 그로 하여금 왕에게 호소해서 부친의 구명(救命)을 요청하도록 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종학은 결국 이해 7월에 공양왕이 폐위되고 이성계가 즉위한 뒤를 이어 8월에 장사(長沙)로 유배지를 옮겨 가던 중 거창(居昌) 무촌역(茂村驛)에서 권신들의 사주를 받은 손흥종(孫興宗)에 의해 목이 졸려 피살되는 비운을 맞는다.
[주D-001]필부(匹夫)가 …… 있고 :
신 분이 낮은 사람도 임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다. 《맹자》 만장 상(萬章上), ()이나 우()와 같은 덕을 지니고서 천자의 천거를 받을 경우에는필부도 천하를 소유할 수가 있는 법이다.[匹夫而有天下者]”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만승(萬乘)이 …… 있나니 :
만 승의 천자도 포악무도하게 굴면 백성들의 따돌림을 받는 외로운 신세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독부(獨夫)는 하늘도 버리고 백성도 버려 외롭게 된 통치자라는 뜻인데, 《서경》 태서 하(泰誓下)에 폭군 주()를 독부로 명명하고 그의 죄악상을 나열한 내용이 나온다.
[주D-003]황차 …… 무엇하겠는가 :
목은 역시 독부(獨夫)처럼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는 뜻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주D-004]아침에는 …… 홀몸 :
목 은이 일찍이 가르친 문생들이 셀 수도 없이 많건마는, 고난을 당하는 노년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종적을 감추고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목은은 성균관 유생이나 제자들을 지칭할 때에 신신(侁侁)이라는 문자를 애용하는데, 예컨대훌륭한 인재를 많이 얻어 명성을 전하기 어렵다.[侁侁難得播芳塵]”든가수많은 유생들이 서울에 가득하게 되었다.[侁侁靑衿盈國都]”든가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자리[侁侁函丈間]” 등의 표현이 그것이다.
[주D-005]황탄(況嘆)하는 …… 우물쭈물 :
평 소 친하게 지내던 벗들도 목은이 위급한 때를 당해서는 선뜻 나서서 도와주며 장부의 기상을 보여 주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황탄은 친구를 뜻하는 말인데, 《시경》 소아(小雅) 상체(常棣)좋은 벗들이 있다 해도, 길게 탄식만 해 줄 뿐이로세.[每有良朋 況也永嘆]”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 한유(韓愈)의 〈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에, 대장부가 못 되는 자들의 행태를 표현하면서발은 나아가려 하다가도 머뭇거리고, 입은 말하려 하다가도 겁먹고 우물쭈물하네.[足將進而
趑趄 口將言而囁]”라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주D-006]소부(小賦)일 …… 된다만 :
겨우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할 정도의 실력만 갖추었을 뿐, 사람을 설득하고 감동시켜 구명(救命)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은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말이다. 소부는 율부(律賦) 등 진사시의 응시 과목을 가리킨다.
[주D-007]장한(張翰)이 …… 아득하기만 :
고 향에 돌아가서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는 기약도 없고, 그렇다고 자그마한 고을의 수령으로 나가서 의식을 해결하며 조용히 살아갈 희망도 없다는 말이다. ()나라 때 사람 장한이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고는 고향인 오() 땅의 순챗국[蓴羹]과 농어회[鱸膾] 생각이 홀연히 떠올라서 벼슬을 당장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92 張翰列傳》 또 후한(後漢) 때 사람 왕교(王喬)가 섭현(葉縣)의 수령으로 나간 뒤에 서울에 올 때마다 예전에 상서(尙書)의 관속(官屬)으로 있을 적에 받았던 신발을 물오리로 변하게 하여 그 위에 올라타고 왔다는 전설이 전한다. 《後漢書 卷82上 王喬列傳》
[주D-008]무가 무불가(無可無不可) :
꼭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도 없고, 꼭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없다는 뜻으로, 하나에 집착하는 완고한 태도를 버리고 융통 자재한 중용의 자세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논어》 미자(微子)나는 이와 달라서, 가한 것도 없고 불가한 것도 없다.[無可無不可]”라고 한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중 현대부(中顯大夫)로 안산(安山)을 맡고 있는 정사운(鄭士雲)이 백미(白米) 열 말과 건어(乾魚) 열 마리와 술 두 병을 보내면서, 남 계정사(南計定使)의 부탁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정 안산은 경기 지방에 이제 막 부임하였고 남군은 양광도(楊廣道)의 계정사로 나가 있으니 이들이 어떻게 서로 소식을 통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고 보면 두 사람이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분명하기에, 장난삼아서 단율(短律)을 지어 보았다.

 


양광과 안산은 도가 서로 같지 않으니 / 楊廣安山道不同
정 승선과 남 칙사가 소식을 통했으랴 / 鄭承南敕兩無從
우정이 예전부터 분명히 두터웠으리니 / 必然昔日交情厚
덕분에 한산자도 덩달아 복이 터졌어라 / 也是韓山福氣濃
하얀 눈이 쌓인 듯한 향기로운 백미요 / 米白有香還似雪
앙금도 없이 창공처럼 맑은 술이로세 / 酒淸無滓却如空
게다가 건어는 또 시제 지내기 충분하니 /
魚又足供時祭
만년에 배려해 주시는 조물주가 고맙도다 / 末路安排感化工

 

날이 맑게 갠 것을 기뻐하며 숙휴(叔畦)를 위로하다.

 


가는 비 비낀 바람 속에 너를 떠나보냈다만 / 細雨斜風送汝行
송악은 맑은 기색으로 기쁘게 너를 맞으리라 / 松山霽色喜相迎
순손 효자에게 두 가지 마음이 없다는 것을 / 順孫孝子心無二
상제 황천이 거울처럼 환히 살펴 주시리라 / 上帝皇天鑑甚明
의심이 많아서 날뛰게 만들까 두렵기도 하다마는 / 尙恐疑多成跋扈
모두 말하길 난세가 극하면 태평 시대 돌아온다고 / 皆言亂極復昇平
천추토록 종묘사직의 위령이 굽어보시리니 / 千秋宗社威靈在
일월을 꿰는 충성의 명예 보전하게 되리로다 / 貫日忠當保令名

 

즉사(卽事)의 시 세 수를 지어 직설적으로 서술하였으니 이는 허언(虛言)이 아니다.

 


강 구름은 비 그치자 바람 쫓아 날아가고 / 江雲罷雨逐風飛
물에 삐죽 벼 싹은 한결 살 붙어 푸릇푸릇 / 針水新苗綠更肥
이 몸은 금년에도 농사를 못 짓게 생겼으니 / 我又今年耕不得
추수 잘 될 곳으로 몸 빌어 돌아가야지 뭐 / 秋收好處乞身歸

기러기 보소 발자국 남기고 구름 속으로 훨훨 /
鴻留泥爪入雲飛
자고로 고상한 사람은 숨어서 살지려 하였다오 /
自古高人遁要肥
신룡을 꾀어 잡는 것도 욕심이 있기 때문이니 /
釣得神龍由有欲
한번 볼지어다 옷소매 떨치고 돌아간 사호를 /
且看四皓拂衣歸

뜨락에 사람은 드물고 제비는 비행 연습하고 / 庭宇人稀燕習飛
방죽에 비가 넉넉하자 물은 불기 시작하고 / 陂塘雨足水初肥
욕기의 고상한 흥치 유연히 발동하는 이때 / 浴沂高興悠然動
혼자 탄식하노라 누구와 풍영하고 돌아올지 / 自歎與誰風詠歸

 

[주D-001]기러기 …… 훨훨 : 세 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아무 미련 없이 훌쩍 떠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소식(蘇軾)의 시에인생 길 이르는 곳 무엇과 비슷하다 할까, 눈 밭의 기러기 발자국과 같다 하리. 우연히 발톱 자국 남겨 놓았을 뿐, 날아가면 어찌 다시 동쪽 서쪽 헤아리랴.[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蹈雪泥 泥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計東西]”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3 和子由池懷舊》
[주D-002]자고로 …… 하였다오 :
은둔하며 여유롭게 사는 생활을 찬미한 것이다. 《주역》 돈괘(遯卦) 상구(上九)살지는 은둔이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肥遯 無不利]”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신룡(神龍)을 …… 때문이니 :
《시 경》 빈풍(豳風) 낭발(狼跋)을 해설한 송()나라 범조우(范祖禹)의 글에신령스러운 용으로 말하면, 물에 잠길 수도 있고 날아다닐 수도 있으며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으니, 그 변화는 실로 헤아릴 수가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꾀어 잡아서 개나 양 같은 가축처럼 기를 수가 있는 것은 용에게 욕심이 있기 때문인데, 가축처럼 기를 수 있게 되면 이제는 젓을 담가서 먹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욕심을 가지고 있는 부류는 누군가에 의해서 제어당하기 마련이라 하겠다.[神龍 或潛或飛 能大能小 其變化不測 然得而畜之 若犬羊然 有欲故也 唯其可以畜之 是以亦得醯而食之 凡有欲之類 莫不可制焉]”라는 내용이 나온다.
[주D-004]한번 …… 사호(四皓) :
()나라 말기에 동원공(東園公)ㆍ기리계(綺里季)ㆍ하황공(夏黃公)ㆍ녹리선생(
里先生) 등 이른바 사호가 폭정을 피해 상산(商山)에 들어가서 은거한 고사를 말하는데, 이때 그들이 지어 불렀다는 노래 가사 중에색깔도 찬란한 영지버섯이여, 배고픔을 충분히 달랠 수 있지. 요순의 시대는 멀기만 하니, 우리들이 장차 어디로 돌아갈거나. 고관대작들을 보게나, 근심이 얼마나 많은가. 부귀하면서 사람들을 두려워하기 보단, 빈천해도 내 뜻대로 사는 것이 더 낫도다.[曄曄紫芝 可以療飢 唐虞世遠 吾將何歸 駟馬高蓋 其憂甚大 富貴之畏人 不如貧賤之肆志]”라는 구절이 나온다. 《高士傳 卷中》
[주D-005]욕기(浴沂)의 …… 돌아올지 :
공 자의 제자 증점(曾點)늦은 봄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벗 대여섯 명과 아이들 육칠 명을 데리고 기수에 가서 목욕을 하고 기우제 드리는 곳에서 바람을 쏘인 뒤에 노래하며 돌아오겠다.[暮春者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고 자신의 뜻을 밝히자, 공자가 감탄하며 허여한 내용이 《논어》 선진(先進)에 나온다.

경치를 대하면서 느낌을 토로하다.

 


내 마음 편치 못한 것을 조물이 불쌍히 여겼는지 / 造物憐吾意不平
멋진 경치 두 개를 동시에 감상하라고 하셨나봐 / 故敎淸景一時幷
동남쪽은 바람 불어 찬비가 날려서 어두운데 / 風吹凍雨東南暗
서북쪽은 구름 사이로 석양이 새어서 환하구만 / 雲漏夕陽西北明
머리 위의 하늘은 원래 말없이 잠잠하건마는 / 頭上有天元默默
가슴속은 만 가지 일로 왜 이리도 바쁜지 원 / 胸中萬事自營營
시 짓는 목적이 인간 세상에 전하려 함이리요 / 題詩豈爲傳人世
아손에게 남겨 주어 이 행색 기억케 함일 따름 / 留與兒孫記此行

 

현 판서(玄判書)를 통해서 띠풀로 지붕을 덮은 새 집을 구하다.

 


물 굽어보는 작은 동산 사방이 통한 곳에 / 小山臨水四方通
새 집 엮어 임금님 계신 곡봉을 바라보고파라 / 欲結新亭望鵠峯
햇볕 쬐고 비 젖는 일은 조금 피해야 하겠는데 / 日炙雨霑須小避
흰 띠풀 집을 누가 기꺼이 삼중대광에게 빌려 줄까 / 白茅誰肯借三重

 

남재(南在)가 순채(蓴菜)와 술과 주지(奏紙)를 보내오다.

 


천품이 정결도 채륜의 문객이요 /
蔡倫門客天姿潔
풍미가 맑기도 장한의 수선일세 /
張翰水仙風味淸
여기에 또 청주 종사가 다행히 와 계시니 / 賴有靑州從事在
화기를 합성해서 진정을 쏟아내 봐야지 / 合成和氣寫眞情

 

[주C-001]주지(奏紙) : 주문(奏文)을 올릴 때 쓰는 귀한 종이를 말한다.
[주D-001]천품(天稟)이 …… 문객이요 :
종이를 말한다. 후한(後漢) 화제(和帝) 때 채륜(蔡倫)이 종이를 처음 발명했다.
[주D-002]풍미(風味)가 …… 수선(水仙)일세 :
순 채를 말한다. ()나라 장한(張翰)이 낙양에서 벼슬살이를 하다가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인 오()의 순챗국과 농어회 맛이 생각나서 벼슬을 그만두고 곧장 내려갔던 고사가 있고, 또 순채가 수련(水蓮)에 속하는 수초(水草)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世說新語 識鑑》
[주D-003]청주 종사(靑州從事) :
술을 말한다. ()나라 환온(桓溫)의 주부(主簿)로 있던 사람이 술맛을 잘 감정하였는데, 맛 좋은 술은청주 종사라고 부르고 나쁜 술은평원 독우(平原督郵)’라고 불렀던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術解》

광주 목사(廣州牧使) 최서(崔恕)에게 부치다.

 


이 몸이 지금 광주 촌사에 병들어 누워 / 我今病臥廣州村
원님의 은혜로 채소를 많이도 받아 먹는데 / 菜把多蒙地主恩
길이 멀어 찾아뵙기 어려운 것이 다만 유감 / 只恨路遙難上謁
편주 타고 어느 날에나 창문에 배를 볼는지 /
扁舟何日泊倉門

 

[주D-001]편주(扁舟) …… 볼는지 : 언 제나 병이 다 나아서 은인을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편주는 편작(扁鵲)의 배, 창문(倉門)은 창공(倉公)의 문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편작과 창공 모두 명의(名醫)로서 사람의 병고(病苦)를 구제해 주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어제 안양(安養)의 도생(道生) 승통(僧統)이 술과 음식을 가지고 찾아와서 나를 위로하였는데, 오늘 아침에는 또 종이를 보내왔기에, 내가 시를 지어서 사례하였다.

 


어제는 청주 종사를 데리고 와서 / 昨與靑州從事來
나를 얼근히 기분 좋게 하시더니 / 熏然令我好懷開
산중에서 선생을 또 보내셨으니 / 楮生又自山中至
취한 뒤의 시를 한번 보시려 함이렷다 / 應要新詩醉後裁

 

[주D-001] 선생(楮先生) : 종이를 가리킨다. 한유(韓愈)가 〈모영전(毛穎傳)〉에서 처음 이 표현을 사용한 뒤로 종이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사방에 구름이 없는 것을 보고는 느낌이 들기에 짓다.

 


흰 구름 다 날아가고 바람도 없이 조용한데 / 白雲飛盡靜無風
가없이 펼쳐진 청천에 태양이 이제 복판으로 / 何限靑天日欲中
새벽의 청명한 기운
이 원래 작지 않은데 / 平旦淸明元不小
우리들은 수양하는 공이 없으니 가련토다 / 可憐吾輩養無功

 

[주D-001]새벽의 청명한 기운 : 유 가(儒家)에서 주장하는 이른바 야기(夜氣)를 말한다. 야기는 밤 사이에 생겨나는 천지의 맑은 기운으로, 유가에서는 이를 흔히 사람의 양심에 비겨서 중하게 여기는데,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우산지목(牛山之木)의 비유로 자세히 나온다. 이 시에서 태양은 양심을, 바람과 구름은 번뇌를 상징한다.

잠시 뒤에 흰 구름이 조각조각 하늘을 가득 덮기에 또 한 수를 지어 읊다.

 


흰 구름이 실바람 타고 하늘 가득 조각조각 / 白雲片片逐微風
태양을 쳐다보니 이제 막 복판을 지났어라 / 仰見日輪才過中
물욕이 다시 싹트는 것도 순식간의 일이거니 / 物欲復萌俄頃耳
우리가 어찌 잠시라도 공부를 폐하면 되겠는가 / 我曹焉可廢前功

 

양성(陽城)의 감무(監務)인 고() 아무가 백미 다섯 말과 술 두 병을 보내왔다. 그는 한식날에 한산(韓山)으로 성묘를 갔다가 돌아올 적에 사평원(沙平院)까지 나를 호송했던 자이다.

 


고군은 한 번 보자 잘 알던 사람만 같아 / 高君一見似深知
담소하고 농담도 하면서 꽤나 흥겨웠지 / 談笑詼諧頗好奇
산이 들어찬 김제에서 동행하기 시작하여 / 山密金堤初接伴
냇물이 가로 흐르는 사평원에서 헤어졌지 / 水橫沙院却分離
교분이야 심천을 꼭 따질 것이 있겠는가 / 交情不必論深淺
세태는 누구 할 것 없이 성쇠를 따르는걸 / 世態無非逐盛衰
이런 사람이 세상에 어찌 많을까 탄식하며 / 三歎斯人天下少
웅얼거리며 읊다 보니 시 한편을 또 지었네 / 吟哦又是一篇詩

 

신정(新亭)

 


새 집이 누추해도 소요하기엔 충분해서 / 新亭雖少足婆娑
만년의 풍류를 남몰래 혼자서 뻐기노라 /
節風流默自誇
풍수지리 따져서 방향을 정한 적 있으리요 / 背向何曾從地理
그저 심상히 도성이나 바라보고 싶을 따름 / 尋常只欲望京華
높고 낮은 봉우리들은 태곳적부터의 병풍이요 / 高低列岫屛風古
휘어 꺾이는 긴 강물은 한 폭의 누인 비단이라 / 曲折長江匹練斜
청천과 우천의 경치 아무리 보아도 부족하니 / 晴好雨奇看不足
오늘부터는 여기가 바로 내가 사는 집이로다 / 直從今日此爲家

 

얼 마 전에 동년(同年)인 정헌공(靜軒公)을 방문했더니, 그가 말하기를, “나의 아들인 청곡(靑谷) 스님이 가까운 시일 안에 북쪽으로 올라오겠다고 편지를 보내 알려 왔으니, 공도 반드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 내가 이 말을 듣고는 그가 얼마나 기뻐하는지를 알 수 있었는데, 어제 풍문으로 듣건대 청곡이 온 지 며칠이 지났다고 하였다. 그런 중에 요행히 그가 보낸 순채(蓴菜) 항아리 하나를 선물로 받게 되었는데, 이는 애오라지 봉양하는 하나의 음식 맛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어제 듣건대 청곡 상인이 왔다고 하니 / 昨聞靑谷上人來
색동옷 입고 춤추며 노래자 본받으렷다 /
應舞斑衣學老萊
입맛 돋우는 순채를 나도 우연히 얻었으니 / 偶得蓴絲助淸供
추위도 녹일 겸 술 몇 잔 권해야 하겠구먼 / 壓寒須勸酒三盃

 

[주D-001]색동옷 …… 본받으렷다 : 춘추 시대 초()나라의 은사(隱士)인 노래자(老萊子)가 나이 70에도 어버이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색동옷을 입고서 춤을 추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初學記 卷17 孝子傳》

판조계사(判曹溪事)인 죽암(竹菴) 진공(軫公)이 내원(內院)에서 물러 나와 주석(住錫)하고 있는 억정사(億政寺)로 돌아갈 적에 암곶(岩串)에 머물면서 반야탕(般若湯) 소채오성(蔬菜五星)을 가지고 와서 나의 삼출(三黜)을 위로해 주었는데, 이때 마침 나의 새 집이 이루어졌으므로 해 그림자가 옮겨갈 때까지 함께 앉아 있다가 떠났다.

 


공은 벌열 출신으로 금선을 좋아하여 / 公生閥閱樂金仙
조계의 일미선 맛을 꿰뚫어 맛보신 /
勘破曹溪一味禪
일만 승려의 영수로서 벽립만인의 기상이요 / 領袖萬僧如壁立
육조대사를 본받아 의발의 전수를 그쳤도다 /
規模六祖止衣傳
염부제
의 세상 위에 명성은 한껏 드높고 / 閻浮世上聲名極
반야의 탕 가운데에 기미도 온전하시도다 / 般若湯中氣味全
추억건대 옛날 그때 만금대 위의 달이 / 回首萬金臺有月
청천에 걸려 밤마다 우리를 따라다녔었지 / 相隨夜夜掛靑天

 

[주C-001]반야탕(般若湯) 소채오성(蔬菜五星) : 반야탕은 술을 뜻하는 불가(佛家)의 은어이고, 소채오성은 오성의 무늬로 장식된 반합(飯盒)에 담아서 보낸 채소 음식을 말한다.
[주C-002]삼출(三黜) :
원 칙대로 행동하다가 조정에서 미움을 받고 계속해서 쫓겨난 것을 말한다. 《논어》 미자(微子)도에 입각해서 사람을 섬긴다면 어디 간들 세 번 쫓겨나지 않겠는가. 만약 도를 굽혀서 사람을 섬긴다면 굳이 부모의 나라를 떠날 이유가 있겠는가.[直道而事人 焉往而不三黜 枉道而事人 何必去父母之邦]”라는 유하혜(柳下惠)의 말이 나온다.
[주D-001]금선(金仙) :
대각 금선(大覺金仙)의 준말로, 부처를 가리킨다.
[주D-002]조계(曹溪)의 …… :
죽 암이 선종(禪宗)의 이른바 순일무잡(純一無雜)한 최상승선(最上乘禪)의 경지를 이루었다는 말이다. 육조대사(六祖大師)로 불리우는 당()나라 혜능(慧能)이 조계산(曹溪山) 보림사(寶林寺)에서 선종의 정통으로 일컬어지는 남종(南宗)을 개창하였기 때문에 조계가 선종의 별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일미선(一味禪)은 불립문자(不立文字)의 돈오(頓悟)를 목표로 참선하는 것을 말하는데, ()나라 선사(禪師) 마조 도일(馬祖道一)이 여러 문파의 오미선(五味禪)에 대해서 자신의 가풍을 단번에 돈오하게 하는 일미선이라고 일컬으면서 선풍(禪風)을 날렸던 고사가 전한다. 《禪宗正脈 卷2
[주D-003]벽립만인(壁立萬仞) :
선종(禪宗)의 용어로, 범부들의 분별하는 지식을 가지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고절(孤絶)한 정신의 경지를 뜻하는데, 은산철벽(銀山鐵壁)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주D-004]육조대사(六祖大師)를 …… 그쳤도다 :
의 발(衣鉢)은 불가(佛家)에서 전법(傳法)의 표시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전하던 가사(袈裟)와 바리때를 말하는데, 진리라는 것은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면서 혜능이 일찍이 의발의 전수를 중지하게 한 고사가 그의 언행록인 《육조법보단경(六祖法寶壇經)》에 나온다.
[주D-005]염부제(閻浮提) :
염부나무가 무성한 땅이라는 뜻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 세상의 총칭이다.

죽암(竹菴)을 초청해서 변변찮은 음식이나마 대접하고 있던 차에, 박 판서(朴判書)와 강 판사(姜判事)와 현 판서(玄判書)가 마침 왔기에, 함께 담소하며 한껏 즐기다가 자리를 파하였다. 이에 앞 시의 운을 써서 시를 짓다.

 


연단을 해서 신선이 된다는 보장이 없듯 / 鍊丹未必得爲仙
면벽을 한다고 좌선을 배울 수 있으리오 / 面壁安能學坐禪
눈앞에 그윽한 정취 충분하면 그만이니 / 只要眼前幽事足
하필 죽은 뒤에까지 명예를 전해야 하리 / 何須身後令名傳
귀한 손님을 만난 것만도 참으로 행운인데 / 嘉賓邂逅眞爲幸
멋진 경치가 벌여 섰으니 또한 완전하구만 / 美景森羅不亦全
저물녘에 말 타고 떠나며 아쉽게 헤어질 때 /
解携騎馬去
석양의 하늘에 떠 있는 조각구름 외로운 새 / 片雲孤鳥夕陽天

 

손님들이 떠난 뒤에 홀로 앉아 강변의 경치를 음미하면서 차마 떠나지를 못하고 있던 차에, 권 홍주(權洪州)가 마침 찾아왔기에 다시 술을 청해서 조금 마시다.

 


나를 우수에 젖게 하는 홍주 목사 부임 소식 / 聞君出牧使吾憂
보릿가을에 신정에서 길게 휘파람 부노매라 / 長嘯新亭麥已秋
덧없는 세상의 공명이야 헌신짝과 같다지만 / 浮世功名同幣

남녀노소 온 가족이 편주에 의지하다니 원 / 全家老少寄扁舟
이 몸은 지금 자취가 흡사 어리에 갇힌 새의 신세 / 我今跡似籠中鳥
누구였더라 옛날에 마음을 물새와 함께했던 이는 / 誰昔心同海上鷗
그대는 순리 열전에 다시 끼일 수 있는 사람 / 將子更參循吏傳
착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시름에 젖게 마시기를 / 莫敎閭巷小民愁

 

이 튿날 죽암이 떠날 적에 시간에 맞춰서 전송하지 못하였다. 박 판서와 함께 권 홍주의 임시 거처에 가서 아침밥을 먹었다. 더위가 심하기에 강에 배를 띄웠는데 부인의 배가 또 와서 조금 술을 마시다가 저물녘에 헤어졌다. 이날 현 판서와 용산(龍山)의 신 판서(辛判書)도 술과 음식을 가지고 왔으니, 이는 권 홍주를 전별하기 위함이었다. 3(三首)

 


죽암은 새벽닭이 울 때 벌써 행장을 꾸렸는데 / 竹菴行色趁晨雞
우활한 유자는 곤죽이 되도록 취했으니 우스워라 / 可笑迂儒醉似泥
낯 씻고 머리 빗고 나니 동쪽 산에 해가 세 길 / 盥櫛東峯日三丈
지금 나의 신세가 깨어 거거한 듯하군그래 /
只今身世夢蘧蘧

둥실둥실 강 복판에 떠 있는 일엽편주 / 泛泛江中一葉舟
미풍이 얼굴을 스치니 홀연히 가을인 듯 / 微風拂面忽疑秋
반쯤 취해 뒤돌아보니 멀리 구름 낀 산 / 半酣回眺雲山遠
그동안 쌓인 시름이 감쪽같이 사라지네 / 消盡從前萬斛愁

좌상의 제군 모두 마음에 드는 중에 / 座上諸君盡可人
사대부를 압도하는 장원의 풍채로세 / 壯元風采壓簪紳
거년에 이 몸과 함께 남대로 떠나기도 / 去年伴我南臺去
오늘의 배는 실로 전국을 마셨다 하리 /
今日一杯眞飮醇

 

[주D-001]지금 …… 듯하군그래 : 옛 날 장자(莊子)가 꿈에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며 즐겁게 노닐다가 꿈을 깨고 보니 엄연히 현실 속의 자기로 되돌아온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말이다. 《장자》 제물론(齊物論)에 호접몽(蝴蝶夢)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중에얼마 있다가 호랑나비 꿈을 깨고 보니, 엄연히 사람의 몸을 갖춘 나 자신이더라.[俄然覺 則蘧蘧然周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오늘의 …… 하리 :
훈 훈한 분위기 속에서 마음이 한껏 즐거워지는 술자리였다는 말이다. 삼국 시대 오()나라 정보(程普)가 주유(周瑜)와의 두터운 교분을 비유하면서주공근과 사귀다 보면 마치 전국술을 마신 것처럼 나도 모르게 절로 훈훈하게 취해 온다.[與周公瑾交 若飮醇醪不覺自醉]”고 했던음순자취(飮醇自醉)’의 고사가 전한다.

다음 날에 몸이 고단해 누워서 작은 소리로 읊다.

 


풍악 울리는 그림 배 속에 모인 현사들 / 畫舫絃歌集衆賢
병 많은 백발 노인도 마음이 흐뭇했지 / 白頭多病亦欣然
돌아와 피곤해 누우니 다시 허전한 가슴이여 / 歸來困臥飜惆悵
열흘 내내 통음하다니 소년과 진배없군그래 / 痛飮連旬是少年

 

기탄(岐灘)의 장교(長橋)에서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판서(判書) 박 장원(朴壯元)을 전송하다.

 


술에 곯아서 몸뚱이는 환자가 다 되었어도 / 酒困身成病
시에 미쳐 뼈다귀는 신선이라도 되려는 듯 / 詩魔骨欲仙
사람의 삶이 어찌 이를 면할 수 있으랴만 / 人生難免此
우리들은 이런 것은 그래도 초탈했소이다 / 吾輩亦飄然
자디잔 풀잎은 바다처럼 들판에서 일렁이고 / 細草野如海
길다란 다리는 무지개처럼 하늘에 걸렸어라 / 長橋虹掛天
시골집이 가까우니 얼마나 다행이오 / 幸哉田舍近
다음에 만날 약속 행여 늦지 마시기를 / 後會莫遷延

 

 

여흥음(驪興吟)

6 7일에 강 동년(姜同年)과 현 인장(玄隣長)에게 부치다.

14일에 군수(郡守)가 찾아온 것을 감사하다.

16일에 문생인 서 양근(徐楊根)이 서늘한 대자리 넉 장을 보내왔기에, 이 시를 지어서 전일에 한 명의 승통(僧統)을 데리고 찾아와 준 것까지 아울러 감사하였다.

여 흥 군수(驪興郡守)가 배를 끌고 와서는 노부(老夫)에게 뱃놀이를 함께 하자고 초청하였는데, 강 복판에 이르러서 사방을 돌아보니 실로 즐길 만한 곳이었다. 흥에 겨워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노자암(鸕鶿岩)까지 가서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배를 돌려 흐름을 타고 내려오니 정말 통쾌하였다. 진국인 술 맛과 신선한 물고기 회 그리고 혼자서 불고 혼자서 퉁기는 연주 솜씨는 실로 뒤에까지 운치가 남았는데, 저녁 늦게 누대 위에 돌아오니 마치 신선 놀이를 하다가 집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다음 날에 붓을 잡고 이 일을 기록하였다.

보리 대선사(菩提大禪師)에게 부치다.

첨서(簽書)에게 보여 주다.

상원 선사(上院禪師)에게 부치면서 아울러 김석해(金石諧) 좌윤(左尹)에게도 소식을 전하다.

병률(甁栗)의 김 판사(金判事)에게 받들어 부치면서 아울러 권 판사(權判事)에게도 소식을 전하다.

향교(鄕校)의 김 소윤(金少尹)과 황 소윤(黃少尹)에게 부치다.

권대로(權大老)와 이극명(李克明) 상서(尙書)에게 부치다.

지 군(知郡) 박공(朴公)의 모친은 바로 나의 좌주(座主)인 송당(松堂) 선생의 따님이시다. 지군이 모셔 와서 봉양하며 효도를 극진히 하는 가운데, 나도 다행히 맛은 없으나 음식 몇 가지를 얻어 대접해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주인이 나를 데리고 배에 올라 피서(避暑)를 하였는데, 저물 때까지 있다가 집에 돌아왔다.

문 생(門生)인 권 첨서(權簽書)가 오고, 또 그의 사위인 박모(朴某)의 부친이 천녕(川寧)에서 술을 들고 찾아와 위로해 주었다. 내가 바야흐로 봉암(鳳巖)에 있으면서 옛 산하(山河)를 돌아보며 술 한 잔 들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에 박공(朴公)이 찾아왔으므로 흔연히 농담을 하며 수작(酬酌)을 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가고 난 뒤에 군수(郡守)가 나를 초청했으므로 또 술을 마시고 크게 취하였다.

강릉(江陵) 정 영공(鄭令公)이 안부를 묻고 선물을 보내 준 것에 대해 삼가 사례하다.

칠석(七夕)

종선(種善)에게 부쳐서 보여 주다.

연림(蓮林) 밖으로 찾아 나서다.

흥법사(興法寺)의 당두(堂頭)가 장차 내원당(內院堂)으로 들어갈 즈음에 벽사(甓寺)를 찾아왔기에, 내가 고경(古鏡) 늙은이를 데리고 그와 함께 배를 띄우고서 군지(郡池)에서 연꽃을 감상하였다.

환암(幻菴)에게 부쳐 올리다.

7월 보름 백중날의 일을 기록하며 감회에 젖다.

대서(代書)하여 이 향상(李向上)에게 받들어 답하다.

여흥음(驪興吟)

 

 

 

6 7일에 강 동년(姜同年)과 현 인장(玄隣長)에게 부치다.

 


어찌 주워 담을까 이틀 동안 흘린 군침 / 饞涎兩日不能收
길을 낀 누런 구름 일렁이는 맥추로다 / 俠路黃雲動麥秋
시종 생각나오 연형 그리고 인장과 함께 / 終憶年兄與隣長
때로 강루에 기대어 파람 길게 불던 일이 / 有時長嘯倚江樓

 

14일에 군수(郡守)가 찾아온 것을 감사하다.

 


늘그막의 정경이 모조리 따분하기만 / 老來情況儘悠悠
홀로 누대에 기대면 먼 강물 긴 산뿐 / 水遠山長獨倚樓
풍류 넘치는 우리 어진 태수가 없었던들 / 不有風流賢刺史
한잔으로 일천 시름을 날릴 수 있었으랴 / 一杯安得散千愁

 

16일에 문생인 서 양근(徐楊根)이 서늘한 대자리 넉 장을 보내왔기에, 이 시를 지어서 전일에 한 명의 승통(僧統)을 데리고 찾아와 준 것까지 아울러 감사하였다.

 


문풍이 지금까지 끊어지지 않았나니 / 文風今不絶
예로부터 국맥이 굳건해지는 근본이라 / 國脈古來凝
강루의 모임을 극진하게 주선해 주고 / 須盡江樓會
좋은 스님과 함께 노닐게도 해 주었지 / 同遊有好僧
이제는 나를 화문석 위에 앉게 하고서 / 坐我金花上
채색 꽃이 삼면에서 피어나게 하였구나 / 綵花三面浮
선들바람 건듯 불어 자리에 가득하니 / 涼風俄滿座
무더운 이 유월도 맑은 가을날이로세 / 六月亦淸秋

 

여 흥 군수(驪興郡守)가 배를 끌고 와서는 노부(老夫)에게 뱃놀이를 함께 하자고 초청하였는데, 강 복판에 이르러서 사방을 돌아보니 실로 즐길 만한 곳이었다. 흥에 겨워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노자암(鸕鶿岩)까지 가서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배를 돌려 흐름을 타고 내려오니 정말 통쾌하였다. 진국인 술 맛과 신선한 물고기 회 그리고 혼자서 불고 혼자서 퉁기는 연주 솜씨는 실로 뒤에까지 운치가 남았는데, 저녁 늦게 누대 위에 돌아오니 마치 신선 놀이를 하다가 집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다음 날에 붓을 잡고 이 일을 기록하였다.

 


한 조각 강과 산이 옥인의 솜씨인 듯한데 / 一片江山似玉人
우리 원님 소쇄하니 자연히 서로 친할밖에 / 遨頭蕭灑自相親
혼자 불고 퉁기는 솜씨는 양부가 무색하고 / 孤吹隻弄鄙兩部
진국 술에 신선한 회는 실로 팔진미였도다 / 醇飮鮮飡眞八珍
건듯 장풍이 불어오니 뼛속까지 서늘한 기운 / 忽有長風涼到骨
무더위에 땀이 물러가니 뻐길 만하지 않은가 / 可誇大暑汗收身
돌아와서도 호기를 좀처럼 떨치기 어렵나니 / 歸來豪氣難除却
신선은 세상 밖에서 노닌다 누가 말했는고 / 誰道仙遊更隔塵

 

[주D-001]양부(兩部) : 왕실의 연회 때에 연주하는 악대(樂隊)를 말하는데, 앉아서 연주하는 좌부악(坐部樂)과 서서 연주하는 입부악(立部樂)으로 편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보리 대선사(菩提大禪師)에게 부치다.

 


한산의 부자가 스님에게 얼마나 소중하기에 / 韓山父子是何人
뜨락의 이끼를 밟으며 첩건을 더럽히셨을까 / 踏破庭苔汚

매번 느끼는 것은 선옹의 마음이 하도 커서 / 每感禪翁心量大
절대로 화내지 않고 웃음을 머금으시는 것 / 斷然含笑不生嗔

 

[주D-001]한산(韓山)의 …… 더럽히셨을까 : 대 선사의 신분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은 부자를 위해 집까지 직접 왕림해 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는 뜻이다. 첩건()은 면포(棉布)로 만든 두건으로, 승려를 표현할 때 쓰는 시어(詩語)이다. ()나라 장훤(張萱)의 《의요(疑耀)》 목면(木棉)조계(曹溪)의 육조대사(六祖大師) 혜능(慧能)이 전해 받은 의발(衣鉢)이 바로 백첩포()인데, 이는 서역(西域)의 목면(木棉)으로 짠 것으로 실제로는 갈()과 비슷하다.”는 말이 나온다. 또 두보(杜甫)가 승려에게 준 〈대운사찬공방(大雲寺贊公房)〉 시에밝게 빛나는 하얀 첩건[光明白]”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소식(蘇軾)의 시 〈증월장로(贈月長老)〉와 〈지장(紙帳)〉에오늘 밤에 손님을 많이 데리고 와서, 스님의 하얀 첩건을 더럽히게 해서 유감이오.[今宵恨客多 汚子白]”라는 표현과승려가 쓰는 하얀 첩포의 두건처럼 깨끗하다.[潔似僧巾白]”라는 표현이 각각 나온다.

첨서(簽書)에게 보여 주다.

 


윗집과 남루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나니 / 逍遙上室與南樓
절간의 솔바람 소리 세상 밖의 가을이로다 / 碧洞松風物外秋
운명은 하늘에 달렸다고 스스로 믿어야 할지니 / 有命在天須自信
다른 수가 있겠느냐 맘 편히 갖는 게 약이니라 / 安心是樂更何求

 

상원 선사(上院禪師)에게 부치면서 아울러 김석해(金石諧) 좌윤(左尹)에게도 소식을 전하다.

 


세상 도망쳤어도 사중은 잊기 어려워서 / 逃世難忘四重恩
송문 가까이 노친의 모옥을 마련했구려 / 老親茅屋近松門

이웃에 또 털보 노인이 살고 계시니 / 隣家又有髥翁在
담소하며 술잔을 나눈들 어떠하리오 / 談笑何妨共酒樽

 

[주D-001]세상 …… 마련했구려 : 출 가를 한 승려의 신분이지만 부모님 은혜를 잊을 수 없어서 사찰 가까이 모시고 산다는 말이다. 사중은(四重恩)은 불교 용어로, 부모(父母)와 중생(衆生)과 국왕(國王)과 불()ㆍ법()ㆍ승() 삼보(三寶)의 은혜를 말하고, 송문(松門)은 사찰의 별칭이다.

병률(甁栗)의 김 판사(金判事)에게 받들어 부치면서 아울러 권 판사(權判事)에게도 소식을 전하다.

 


평야에 산은 멀고 큰 내가 가로지르는 곳 / 野平山遠大川橫
남쪽 언덕엔 새 누대 북쪽 언덕엔 옛 누대라 / 南岸新樓北舊樓
다행히 나도 요즘에 와서 몸이 자유스러워졌으니 / 幸我邇來身自在
물고기 살지고 벼 익은 곳에서 노닐 수 있으련만 / 魚肥稻熟便高遊

 

향교(鄕校)의 김 소윤(金少尹)과 황 소윤(黃少尹)에게 부치다.

 


학당을 볼 수 있게 되어 눈이 배나 반가웠는데 / 得見黌堂眼倍明
더구나 마중까지 해 준 훈훈한 시골 인심이랴 / 況於迎勞敍鄕情
지금 마침 가을바람이 이는 때를 만났으니 / 如今正値秋風起
함께 노닐며 태평가를 불러 볼까 생각하오 / 準擬同遊詠太平

 

권대로(權大老)와 이극명(李克明) 상서(尙書)에게 부치다.

 


푸르른 시내는 이 몸이 일찍이 건넜던 곳 / 澗碧我曾涉
감도 붉게 익었으리니 나 돌아가고 싶소 /
紅吾欲歸
시골 사람 대부분 잘 아는 사이일뿐더러 / 野人多熟識
골짜기 새들도 놀라서 날아가지 않으리니 / 谷鳥不驚飛

 

지군(知郡) 박공(朴公)의 모친은 바로 나의 좌주(座主)송당(松堂) 선생의 따님이시다. 지군이 모셔 와서 봉양하며 효도를 극진히 하는 가운데, 나도 다행히 맛은 없으나 음식 몇 가지를 얻어 대접해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주인이 나를 데리고 배에 올라 피서(避暑)를 하였는데, 저물 때까지 있다가 집에 돌아왔다.

 


문생이 적은 것이 꽤나 한스러웠는데 / 頗恨門生少
택상
의 예언이 바야흐로 이루어졌도다 / 方看宅相成
음식은 맛없어도 은혜와 의리는 두텁기만 / 淡飡恩義厚
강을 환히 비치는 저 해는 알아주시리라 / 白日照江明

 

[주C-001]송당(松堂) : 김광재(金光載)의 호이다. 충혜왕 복위 2(1341)에 김광재가 판전교사(判典校事)로 성균관시(成均館試)를 주관할 때, 목은이 14세의 나이로 시과(詩科)에 합격하였다.
[주D-001]택상(宅相) :
외 손(外孫)이 귀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나라 위서(魏舒)가 어려서 외가(外家)인 영씨(寧氏)에게 양육되었는데, 집 터의 풍수를 보는 이[相宅人]장차 귀한 외손이 나올 것이다.[當出貴甥]”라고 예언한 대로, 뒤에 위서가 사도(司徒)의 지위에까지 올라 현달했다는 고사가 전하는데, 지군이 송당의 외손이기 때문에 이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晉書卷41 魏舒列傳》

문 생(門生)인 권 첨서(權簽書)가 오고, 또 그의 사위인 박모(朴某)의 부친이 천녕(川寧)에서 술을 들고 찾아와 위로해 주었다. 내가 바야흐로 봉암(鳳巖)에 있으면서 옛 산하(山河)를 돌아보며 술 한 잔 들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에 박공(朴公)이 찾아왔으므로 흔연히 농담을 하며 수작(酬酌)을 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가고 난 뒤에 군수(郡守)가 나를 초청했으므로 또 술을 마시고 크게 취하였다.

 


배 위에서 술병을 나란히 눕혀 놓은 뒤에 / 舟上甁連臥
누대에서 뻔질나게 잔을 또 주고받았도다 / 樓中斝更飛
천일 동안 취했던 전설
을 이루고 싶었는데 / 欲成千日醉
여름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을 씻어 주다니 원 / 灑面暑風淸

 

[주D-001]천일 …… 전설 : 중산(中山) 사람인 적희(狄希)가 만든 천일주(千日酒)를 마시고는 과연 천 일이 지난 뒤에야 무덤 속에서 술이 깨어 일어났다는일취천일성(一醉千日醒)’의 이야기가 전한다. 《博物志卷5

강릉(江陵) 정 영공(鄭令公)이 안부를 묻고 선물을 보내 준 것에 대해 삼가 사례하다.

 


홑몸으로 벽사에 누워 있으면서 / 單身臥甓寺
강릉 영공의 후의를 듬뿍 받았네 / 厚意荷江陵
정말로 종류도 많은 해산물이여 / 海味眞多品
몇 겹의 산을 넘어서 가져왔으리 / 山行知幾層
지금은 내객이 생선 냄새도 맡겠소만 / 腥宜及來客
평소엔 승려처럼 고기 없는 밥이었소 / 素可共居僧
직접 얼굴 뵙고서 감사드려야 마땅한 일 / 會面當陳謝
바람을 맞으며 감격을 가눌 수 없소이다 / 臨風感不勝

 

[주D-001]벽사(甓寺) : 전탑(塼塔)이 있는 사찰이라는 뜻으로, 여주(驪州) 신륵사(神勒寺)의 별칭이다.

칠석(七夕)

 


하늘 위에선 그래도 가끔씩 만나건만 / 天上頻遭値
인간 세상은 이별에 이골이 났는지라 / 人間慣別離
여흥
에 몸 부친 흰머리 나그네 / 呂興白頭客
홀로 앉아서 그저 시만 읊노라 / 獨坐只吟詩

 

[주D-001]여흥(呂興) : 여흥(驪興)과 같은 말로, 여주(驪州)를 가리킨다.

종선(種善)에게 부쳐서 보여 주다.

 


무엇을 한탄하랴 운명인 것을 / 命也夫何恨
나는 이제 자유롭게 되었도다 / 吾今得自由
남쪽에 한번 가서 보고 싶구나 / 南游欲相見
더구나 지금은 계응의 가을이니 / 況此季鷹秋

 

[주D-001]계응(季鷹) : ()나라 장한(張翰)의 자()이다. 그가 낙양(洛陽)에서 벼슬살이를 하다가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인 오() 땅의 순챗국과 농어회 맛이 생각나서 벼슬을 그만두고 곧장 남쪽으로 내려갔던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識鑑》

연림(蓮林) 밖으로 찾아 나서다.

 


흥에 겨워 승려를 데리고 연꽃을 감상하렸더니 / 乘興携僧欲賞蓮
바람이 불어 배가 도시 앞으로 나가질 않는구먼 / 風吹船却莫能前
얕은 산 해질 녘 취기에 두 뺨이 불그스레 / 淺山落日紅酣處
삿갓 쓰고 소 탄 사람 그림 그려 전할 만도 / 蓆笠騎牛畫可傳

 

흥법사(興法寺)당두(堂頭)가 장차 내원당(內院堂)으로 들어갈 즈음에 벽사(甓寺)를 찾아왔기에, 내가 고경(古鏡) 늙은이를 데리고 그와 함께 배를 띄우고서 군지(郡池)에서 연꽃을 감상하였다.

 


연꽃이야말로 진정한 군자가 아니던가 / 蓮也眞君子
우뚝 있는 모습이 절로 존경스러워 / 亭亭勢自尊

어찌 수풀 너머 고요함만을 욕심내랴 / 豈耽林外靜
고을 속의 소란함도 피하지 않는다오 / 不避邑中喧

축객인 나는 연꽃을 만나 흔연하건만 / 逐客欣相遇
선을 닦는 늙은이는 아무 말이 없구먼 / 禪翁默不言
향기를 음미하다 보니 뭔가 얻음이 있는 듯도 / 嗅香如有得
한평생의 혼미함을 말끔히 씻을 수 있겠도다 / 洗盡一生昏

 

[주C-001]당두(堂頭) : 주지(住持)의 별칭이다.
[주D-001]연꽃이야말로 …… 존경스러워 :
()나라 주돈이(周敦
)의 〈애련설(愛蓮說)〉에, “연꽃은 꽃 중의 군자[蓮 花之君子也]”라는 말이 나오고, 멀수록 더욱 맑은 향기를 풍기면서, 깨끗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香遠益淸亭亭淨植]”는 말이 나온다.
[주D-002]어찌 …… 않는다오 :
연꽃이 그렇다는 말이다.

환암(幻菴)에게 부쳐 올리다.

 


배 안에 있다가 새로 지은 조그마한 띳집으로 / 舟中新作小茅亭
앉아서 구름 산 보노라면 사면이 온통 푸르름 / 坐對雲山四面靑
환옹께서 석장 날려 한번 들러 주신다면 / 倘得幻翁飛錫過
백년 곯은 술기운이 한꺼번에 깨련마는 / 百年沈醉一時醒

 

7월 보름 백중날의 일을 기록하며 감회에 젖다.

 


우란분의 법회는 서역에서 나왔나니 / 盂蘭盆法出西天
진단의 번역은 해도현이라 하나니라 / 震旦翻爲解倒懸

온 나라가 뒤질세라 분주히 치달리는 때에 / 擧國奔馳唯恐後
아직도 이 몸은 여전히 떠돌이라 부끄럽네 / 愧吾流落尙如前
두 병에 꽂힌 꽃은 참으로 볼품없다마는 / 兩甁花蘂眞無幾
한 가닥 향 연기는 대천 세계에 퍼지리라 /
香烟徧大千
다행히 조사당에 천신할 멥쌀을 얻어 와서 / 幸得祖堂新粳米
나도 한낮에 백의선에게 절하고 올렸노라 / 日中拜獻白衣仙

 

[주D-001]우란분(盂蘭盆)의 …… 하나니라 : 우 란분은 ullambana라는 산스크리트 어의 음역(音譯)으로, 중국에서 해도현(解倒懸) 혹은 구도현(救倒懸)으로 번역되었는데, 그 뜻은 거꾸로 매달린 것 같은 고통에서 구원해 준다는 의미이다. 옛날 목련 존자(目蓮尊者)가 부처의 말에 따라 음력 7월 보름 백중날에 백미(百味)와 오과(五果)를 장만하여 불()ㆍ법()ㆍ승() 삼보(三寶)에 공양함으로써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진 망모(亡母)의 고통을 구해 주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뒤에는 각 사찰에서 이날에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승려들을 공양하고 조상의 명복을 비는 행사로 바뀌었다. 진단(震旦)은 마하진단(摩訶震旦)의 준말로, 인도에서 중국을 높여 일컬은 칭호이다.
[주D-002]천신(薦新) :
계절마다 새로 나오는 먹을 것을 먼저 신위(神位)에 올리는 일을 말한다.
[주D-003]백의선(白衣仙) :
백의선인(白衣仙人)의 준말로, 불교의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가리킨다. 항상 흰옷을 걸치고 흰 연꽃 가운데에 앉아 있는 데에서 유래한 것인데, 백의대사(白衣大士) 혹은 백의관음(白衣觀音)이라고도 한다.

대서(代書)하여 이 향상(李向上)에게 받들어 답하다.

 


은어는 비를 얻어 장천을 거슬러 올라오고 / 銀魚得雨遡長川
솔 아래 새 버섯은 맛이 온전해지려는 때 / 松下新芝味欲全
양곡
의 만두 쪄 내오면 맛이 또 그만이리니 / 暘谷饅頭蒸得好
가을쯤엔 남쪽으로 나도 놀러갈 생각이오 / 南游準擬及秋天

 

[주D-001]양곡(暘谷) : 《서 경》 요전(堯典)에 나오는 전설 속의 해 뜨는 곳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해가 뜨는 동해안의 어떤 고을, 특히 동경(東京)으로 불렸던 경주(慶州)를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또한 《목은시고》 제26권 〈경주로 부임하는 윤 밀직을 봉송하다.[奉送尹密直赴雞林]〉에아득한 옛날 영천에 봉황의 상서가 찾아왔듯, 망망대해 양곡에도 날뛰는 고래가 사라지리.[渺渺穎川來瑞鳳 茫茫暘谷息長鯨]”라고 하여 경주를 양곡으로 표현한 대목이 보인다.

 

 

 

 

2010-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