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도쿄올림픽 유치 급부상… 태권도 퇴출설 확산
종주국 위상 흔들… 올 10월 코펜하겐서 최종 판가름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49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제무대에서 국기(國技) 태권도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국내외 스포츠계에선 “오는 2016년 하계 올림픽 때 태권도가 일본의 가라테(空手道)에 밀려 퇴출될 것”이란 전망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1994년 9월 4일 파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15년 만에 맞이하는 최대 위기다. 태권도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시범종목으로 첫선을 보였고 2000년 호주 시드니올림픽 때부터 정식종목이 됐다.
더군다나 2016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시카고(미국), 마드리드(스페인),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와 함께 일본 도쿄가 강력한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도 태권도를 위협하고 있다. 일본이 올림픽 유치에 실패해도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그에 대한 보상 형식으로 태권도를 퇴출시키고 가라테를 정식종목으로 채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 유지 여부는 오는 10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될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판가름 날 예정이다.
- ▲ 올림픽 태권도 photo 조선일보 DB / 아시안게임 가라테 photo 조선일보 DB
‘재미없는 경기’ 낙인… 판정 시비도 문제
공정성 높이는 전자호구 도입도 지지부진
‘태권도 퇴출설’은 한두 번 나온 얘기가 아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종목 선정 과정에서도 태권도 퇴출문제가 불거졌지만 2005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전문가들이 꼽는 태권도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재미없다’는 것이다. 유도나 레슬링 같은 다른 격투 종목에 비해 박진감과 흥미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일부 네티즌은 “하얀색 태권도복을 입은 선수들이 경기장만 이리저리 맴돌며 아래위로 뜀박질만 한다”며 “스카이 콩콩 같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또 선수들도 기계적인 득점 규정에 묶이다 보니 크고 화려한 발기술보다는 상대방에 발만 갖다 대는 소극적인 경기를 펼치게 된다.
대한태권도협회도 올해부터 흥미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의식해 경기방식을 일부 개선하기도 했다. 예컨대 △경기장 규격을 종전의 10×10m 사각경기장에서 8×8m로 축소하고 △10초룰(심판 신호 후 10초 안에 공격해야하는 규정)을 8초로 줄이고 △공격 부위별 차등점수제(몸통 1점, 몸통 뒷차기 2점, 머리 3점)와 △비디오 판독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러한 개선책이 태권도 경기의 흥미를 크게 되살렸다는 평가는 나오지 않았다.
심판들의 석연찮은 판정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한 경기당 투입되는 심판은 주심 1명에 부심 4명. 하지만 경기가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석연찮은 판정이 난무해 승부조작의 가능성마저 불거지는 형편이다. 육안으로 보는 경기에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빠르게 진행되는 경기를 심판들이 종종 제지해 경기의 흐름이 자주 끊어진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펜싱과 같이 전자호구를 채택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지만 아직 지지부진하다. 전자호구 착용 문제는 2005년 올림픽 종목 퇴출설이 나돌 때부터 거론되던 사안이다. 당초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선보이기로 했으나 올해 초에야 비로소 대한태권도협회가 전자호구 시스템에 관한 지침을 마련한 상태다. 전자호구 시스템을 테스트하고 있는 국민체육진흥공단 산하 한국체육과학연구원(KISS) 황종학 박사는 “대한태권도협회에서 더 높은 기술 수준을 요구하는데 이를 만족시키는 업체가 없는 것 같다”며 “하지만 지난 베이징올림픽 때 심판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을 가격하는 사건도 발생해 올해 세계선수권대회부터는 기술적 결함이 조금 있더라도 전자호구를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국기원 등 잇따른 비리로 공신력 급격히 추락
유럽연맹은 국기원 단증 거부하고 자체 발급
‘재미없는 경기’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태권도의 구심점인 국기원과 국내 태권도 관련 기관들의 국제적 위상도 실추되고 있다. 현재 국기원과 대한태권도협회가 추정하는 전세계 태권도 수련인구는 188개국에 6000만명 수준. 하지만 국기원과 대한태권도협회, 세계태권도연맹 등 한국인이 수장으로 있는 태권도 기관들이 각종 비리사건과 추문에 연루돼 국제적 공신력이 떨어지자 종주국을 인정치 않고 개별 국가별로 태권도를 발전시키자는 분화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의혹으로만 떠돌던 국기원의 태권도 등록비와 심사비 횡령 문제가 불거지고, 2005년 세계 태권도계의 ‘대부(代父)’로 군림해 온 김운용씨가 개인비리 혐의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서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나자 일부 국가에서는 한국 국기원의 존립 자체에 의문을 품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유럽태권도연맹(ETU)은 2005년부터 국기원에서 발급하는 단증을 거부하고 자체 단증을 발급하고 있다. 국기원에서 발급하는 태권도 단증은 세계태권도연맹에서 공인하는 유일한 단증으로 국기원 공인이 없으면 올림픽 등 각종 선수권대회에 출전 자격이 제한된다. 국기원 이종갑 홍보과장은 “현재 세계태권도연맹(WTF) 산하 5개 대륙연맹 중 자체 단증을 발급하고 있는 곳은 유럽연맹 단 1곳”이라며 “이들은 국제 태권도 무대에서의 정치적 장악력을 높이고 세계태권도연맹으로부터 지원되는 지원금을 더 받아내기 위한 협상용으로 자체 단증을 발급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저변도 축소… 승단 신청자 매년 급감
전국 1만여개 태권도장 영세화로 존립 위기
국내 태권도의 저변을 늘리는 것도 시급한 과제로 거론된다. 현재 국기원이 파악하는 국내 태권도 수련인구는 726만명가량. 매년 30만명씩 늘고는 있으나 이전에 비해 성장세는 크게 둔화됐다. 국방부·국정원 등에서 의무적으로 신청하는 수련자를 제외할 경우 성장세는 더욱 꺾일 수밖에 없다. 승단 신청자도 2004년 44만명을 정점으로 매년 1000명 이상씩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출산율 저하도 태권도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태권도 수련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5% 이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권도장은 지난 2001년 7868개에서 현재 1만개 이상으로 계속 늘어나 경영환경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전국 39개(4년제 23곳, 2년제 16곳)에 달하는 태권도학과 졸업생들이 호구지책으로 태권도장을 개업하고 있기 때문에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멈추기 힘든 구조다.
더군다나 일선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방과후 교육 등의 명목으로 원가에도 못 미치는 2만~3만원가량의 수업료만 받고 태권도 교육과정을 우후죽순으로 도입하면서 영세 태권도장은 폐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현재 승단 심사비와 도복비를 제외한 태권도장의 평균 수련료는 월 10만원가량이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태권도장의 영세화와 경영위기에 따른 대책마련에 착수했지만 특별한 방법이 없는 상태다.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산업과의 관계자는 “지난해 국기원과 태권도장의 요청으로 ‘IT기반 태권도장 경영표준모델’을 개발하려고 했으나 예산확보에 실패한 상태”라며 “올해는 어렵고 내년에나 예산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태권도 문화산업화도 쿵푸·가라테에 뒤져
전북 무주군 태권도공원 조성은 5년째 제자리
태권도의 산업화도 한 발 늦었다는 평가다. 1994년 파리 IOC총회에서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지 15년이 넘었지만 태권도를 문화산업화하려는 시도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쿵푸(功夫)나 일본의 가라테 같은 전통무술들이 할리우드를 비롯한 세계 영화나 드라마 시장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예컨대 중국의 쿵푸는 홍콩과 할리우드에서 ‘쿵푸허슬(2004)’ ‘쿵푸팬더(2008)’ 등의 각종 영화로 제작돼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다. 중국 우슈(武術)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소림사(少林寺)는 무협소설과 중국 드라마·영화의 소재로 자주 활용되고 있고 최근 홍콩의 자본과 결합해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 소재로 재탄생해 전세계로 팔려 나가고 있다. 관광객 유치에도 성공을 거둬 최근에는 홍콩에 소림사 분원을 내겠다는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다.
이에 반해 전북 무주에 들어서기로 한 태권도 공원은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태권도 성역화를 목표로 모두 6000억원을 쏟아 붓는 대규모 사업이지만 지난 2004년 공원 입지가 선정된 이후 5년째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오는 9월 4일(태권도의 날) 착공해서 2013년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건설 경기 악화로 인해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또 태권도 공원이 완공되더라도 태권도 수련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이 아닌 전북 무주에 자리잡고 있어 부수 효과를 어느 정도나 올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태권도 공원 조성을 주관하는 태권도진흥재단 김병용 홍보교류팀장은 “올림픽 종목 유지 여부 등 국기(國技) 태권도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며 “태권도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 [태권도 조선] - 태권도 전문 온라인 미디어
신재민 차관은 30일 문화부 기자실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국기원은 태권도 진흥법에 따라 사단법인에서 법정법인으로 전환하고 무주 태권도공원으로 옮겨 가야 하는데 정관 개정조차 하지 않고 분규만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신차관은 또 “법이 만들어졌는데 누구 하나 양보도 없이 추태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과연 이러면서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에 남기를 바라는지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국기원은 지난 해 6월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이 발효되면서 사단법인에서 문화부 소속 법정법인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파벌싸움으로 인한 내홍속에 엄운규 원장이 자진 사퇴한 뒤 8개월째 원장이 공석인 상태고 새로운 정관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 19일에는 국기원 임직원들이 태권도 정상화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자 이에 반대하는 일부 국기원 이사와 서울시태권도협회 관계자들이 난입해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신재민 차관은 “학교 같으면 관선이사라도 보낼 수 있는데 태권도는 현재 법률적으로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뒤 “가끔은 민간이 자율로 하는 것이 효율이 너무 떨어져 안타깝고 무력감도 느낀다”고 우려를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