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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대한검도 7단인 어느 농사꾼 이야기

천하한량 2008. 11. 12. 16:02

20년째 대한검도 7단인 어느 농사꾼 이야기

 

 검에 미쳐 반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이제 농기구를 손에 들고 있다. 어찌된 영문일까. 현재 제주나마스떼 농장 대표로 있는 고동수(54) 사범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7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한 음식점에서 그를 만났다. 대한검도의 야인으로 불리는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술 한잔 기울이며 진솔하게 들어보았다.

 

검을 잡게 된 계기를 물었다.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어린이 잡지 ‘소년중앙’ 때문이다”며 미소 짓는다. 고 사범은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1960년도 였던 것 같다”며 “그 잡지에서 무술 9단 특집연재를 했는데, 검도는 서정학 9단, 유도는 석진경 9단, 태권도는 최홍희 9단을 취재한 내용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어린 마음에 3분 모두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검을 들고 있던 서정학 사범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그런 모습이 어린 나에게 각인이 되었고, 훗날 검을 들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고동수 사범이 처음 검을 잡은 것은 1972년 송성식 사범 문하에 들어가면서 부터다. 이후 1975년에 인천체전 출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검도 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지도자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했다. 서울 성동고등학교 검도 지도사범, 1982년 경기도 실업팀 선수 및 코치. 1984년 부천시청 창단 멤버로 동 팀 코치와 감독을 2002년까지 역임했다.

 

 고동수 사범은 35세에 대한검도 7단을 받았다. 당시로서는 최연소 나이였다. 그만큼 그의 실력은 출중했다.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동수 사범은 진정한 검도인으로서 실력과 인품을 두루 갖춘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고 사범의 검도에 대한 열정은 단지 검을 휘두르고 가르치는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1997년 ‘월간 검도세계’를 창간한다. 검도세계는 정통 검도 소식과 정보에 목 말라 있던 검도인들에게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또 검도인들이 모여 만들었기에 어떤 매체보다도 생동감 있는 검도사진과 기사를 생성해 냈다는 평가 받았다.

 

 검도세계에서 고동수 사범은 발행인 겸 사진 기자 역할을 했다. 그가 찍은 사진은 검도계 최고의 사진들로 인정받는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눈에 가는 사진 대부분은 고동수 사범이 찍은 것이다. 고 사범은 “사진 초짜였던 내가 잘 찍을리 있겠는가. 단지 검도를 했기에 순간을 잘 포착했을 뿐이다”고 겸손해 했다.
 

대한검도 자격정지 그리고 제주도 행


 검도인들의 응원을 등에 입고 순탄한 운영을 해 오던 검도세계는 ‘대한검도회’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내용을 실었다는 이유로 압력을 받는다. 이에 굴하지 않고 언론으로서의 정론을 펼치던 검도세계의 집필진들은 대한검도회로부터 대거 징계를 받는다. 당시 집필진 대부분 대한검도회 소속이었다. 검도세계는 대한검도회와 힘겨운 법정싸움까지 벌이며 버텨왔지만 끝내 2003년을 기점으로 정간되었다.

 

 현재 고동수 사범은 자격정지를 받고 20년째 7단에 머물러 있다. 또 대한검도회에서 자격요건이 안된다는 이유로 지도자 생활을 못하게 막고 있다. 고 사범은 “검도세계는 정론을 펼쳤고, 검도를 바른길로 인도하기위해 노력했다고 자부한다”고 강조했다.

 

 대한검도회를 향한 쓴 소리도 잊지 않았다. “8단 승단을 받은 후배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런 분들 밑에서 승단을 받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검도를 위해 자신를 희생하려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단지 사리사욕을 위해 제도권에 머무르고 계신 분들도 있는 것 같아 검도인의 한사람으로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자격정지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없냐고 물었다. 고 사범은 “대한검도회에서 방문사과와 인터넷에 반성문을 올리고, 더불어 법적인 문제로 인해 들어간 돈을 갚으면 자격정지를 풀어주겠다고 한다”면서 “아마도 난 평생 7단으로 머물러 있을 것 같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이런 검도계에 염증을 느낀 고 사범은 2003년 제주도 행을 결정한다.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당시 경기도검도회부회장이면서 부천시청 코치로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징계가 경기도와 팀에 불이익을 주면 안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여주었다.

 

고동수 사범은 “내가 제주도로 간 것은 단지 그곳이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더 이상 지저분한 꼴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며 “난 언제나 떳떳하다. 하지만 현재는 그런 곳에 다시 소속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제주도 생활을 물었다. 그는 “농사를 지어보니 정말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더라. 농사꾼들이 정말 존경스럽다”며 “지금은 힘든 시기가 지나고 농장이 많이 안정됐다. 표고버섯이나 작두콩이 필요하면 우리 농장에서 주문하라”고 말하며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해서 뼈 속부터 검도인 고동수 사범이 검을 놓고 있을 리 없다. 고동수 사범은 현재 제주도에 있는 체육센터에서 사회인들을 지도하고 있다. 무보수로 말이다. 그는 “누굴 가르친다기보다는 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검도의 매력을 알게 해주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검도계로 돌아와야 하지 않냐는 질문에 고동수 사범은 “지금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평생을 검으로 살아갈 사람이 언젠가는 돌아가지 않겠냐”며 말끝을 흐렸다. 진정한 검도인 고동수 사범. 그의 검도계 복귀를 바라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출처: http://www.mookas.com/media_view.asp?news_no=7495

기사제공= 무카스뉴스/ 신준철 기자 sjc@mook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