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하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 ||||||||||||||||||||
| ||||||||||||||||||||
1. 일제의 금강하구 개조 ※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장항제련소가 가동되기 시작한 1936년은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켜 대륙을 향해 한창 침략의 손길을 뻗치던 때였다. 일제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운 후 1937년 7월 베이징 남서쪽인 노구교에서 일으킨 군사행동은 중국을 향한 선전포고였다.
조선제련주식회사로 출발한 장항제련소는 해방과 함께 ‘장항제련소’로 국가에서 운영하였으며 1962년에 한국광업제련공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72년 민간기업이 인수하여 민영화하였으며 1982년 울산에 온산동제련소가 태어나면서 이에 합병되었다. 주로 금과 구리를 제련하던 장항제련소는 설립 당시 연간 1천5백톤의 소규모 제련 능력을 갖고 있었으나 해방 후 계속 확장되어 1974년 1만 5천톤, 1976년 5만톤 규모로 확장되었다. 국내 유일의 비철금속제련소인 장항제련소는 60, 70년대에 경제개발을 추진하던 당시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로 인해 장항항은 1964년 국제 무역항으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장암리 암발병, 다이옥신 영향” 제련 후 발생한 찌꺼기인 슬러그는 공장부지와 접하고 있는 금강하구에 버려졌다. 이는 납, 비소, 구리, 아연 등 중금속으로 범벅이 된 것이었다. 또한 굴뚝을 통해 배출된 아황산가스와 다량의 중금속이 인근 가옥과 토양 위로 내려앉았다. 이는 해방이 된 이후에도 계속되었음을 장암리 주민들이 증언하고 있다. 작년 10월 한국방송공사(KBS) 환경스페셜 제작팀이 제작하여 방송한 ‘산업화의 그늘 중금속’ 편에 따르면 1945년 해방 당시 제련소 주변의 해안선과 최근 해안선의 모습은 상당히 다르다. 두 항공 사진을 비교해 보면 해안을 매립한 흔적이 확연히 드러난다. 현재에도 공장터 밖 해안에는 제련 슬러그가 켜켜이 쌓여있다. 굴뚝을 통해 배출된 중금속은 마서면 일대의 벼농사에까지 피해를 주었으며 금강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 부여에 있는 토마토 농장에까지 피해를 입히기도 하였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6.25 전쟁 이후 쏟아진 탄피나, 포탄피, 전선피복 등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어 별도의 소각로에서 태워졌다. 국내 유일의 제련소이다 보니 구리가 함유된 온갖 고철은 장항제련소로 총집합하였다. 1958년 장항제련소에 입사하여 1984년도까지 일한 장암리에 거주하는 박 아무개(68)씨에 따르면 “전선피복이 화물차에 실려와 먼지 속에서 하역작업을 하고 나면 쓰디쓴 담배가 꿀맛처럼 달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또한 그는 월남전에서 발생한 탄피 등이 관물함에 실려 들어와 별도의 용광로 속에서 순도가 낮은 조동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폴리염화비닐(PVC)은 전선피복재료로 널리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회수되어 폐기 소각처리될 때에는 염화수소 등의 유해가스와 다이옥신을 발생시킨다. 장암리에서 발생한 많은 암 환자들은 이같은 다이옥신에 의해 발병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이에 대한 조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토양 정밀조사와 주민 역학조사 작년 5월 장암리 주민들의 집단 암발병 사실이 <뉴스서천>에 의해 처음 보도되며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충남도는 작년 7월부터 11월까지 4개월여에 걸쳐 토양 오염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는 제련소 연돌(굴뚝)을 중심으로 반경 1.3km 이내 40개 지점에서 장암리 주민들도 시료 채취에 참여하여 카드뮴, 구리, 비소, 납, 아연, 니켈 등 6개 항목에 대해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37개 지점에서 대책기준을 초과했으며 구리는 최고 8배, 비소 22배, 납 4.3배까지 대책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염원과의 거리별로 보면 500m까지 구리, 아연, 카드뮴, 비소, 납, 니켈 등 6개 항목이 대책기준을 초과했으며 800m까지는 구리, 비소, 납, 니켈의 4개 항목이, 1,300m까지는 비소 1개항목이 대책기준을 초과했다 이처럼 토양오염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자 정부는 지난 3월 18일 엘에스니꼬동제련을 중심으로 한 장암리 일원의 토양오염 정밀조사에 들어갔다. 조사는 제련소 굴뚝 중심으로 반경 2.5km까지 확대하여 2,000여 곳에서 시료를 채취해 실시됐으며 이 결과에 따라 정부는 장암리 일원의 오염된 토양을 매입하고 주민들을 이주시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제련소 주변 장암·송림·화천리에는 총 731만 5,000㎡로 1,100여 가구에 약 3,00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환경관리공단 등에 따르면, 땅을 파서 걷어내야 할 오염된 토양은 70만㎥ 정화비용은 1200억~4000억원가량이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굴뚝에서 반경 2㎞ 안의 농경지를 정부가 매입하는 데만 총 1500억원 가량 들 것으로 보인다. 한편 환경부는 주민들에 대한 역학조사에 들어갔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으로부터 조사를 의뢰받은 충북대학교 의과대학은 지난 6월 18일부터 7월 3일까지 장항읍 송림리, 장암리, 화천리 일대 노출지역 주민 600명과 대조지역으로 비인면, 문산면 일대 주민 400여명을 대상으로 장항제련소가 주민들에 미친 건강영향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는 혈액 속의 납, 수은, 카드뮴, 아연, 니켈, 구리와 소변 속의 카드뮴, 비소, 수은 등의 중금속 검사가 이루어졌다. 지난 28일 인천시 경서동에 있는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이같은 중금속 검사에 따른 중금속 노출수준 평가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이 자리에는 군의 환경보호과 관계자와 장암리 주민 대표, 환경부 관계자 등이 참여했을 뿐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장암리 주민대표에 따르면 장암리를 중심으로 중금속 노출 수준이 월등히 높았으며 공장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종발표와 이에 대한 설명회는 12월 중에 서천에서 있을 예정이라 한다. 그러나 다이옥신 부분은 제외한 것이어서 결과와 관계없이 논란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부메랑이 되어 날아온 환경파괴 장항제련소의 용광로는 1989년에 폐쇄되어 전기로로 대체되어 순도 95% 정도의 조동(粗銅)을 수입하여 전기분해 방법으로 순도 99% 이상의 순동을 생산하는 습식제련 방식으로 바꾸었다. 용광로의 폐쇄요인은 아황산가스로 농작물피해 등 환경공해가 날로 심한데다가 공해보상비 및 공해배출 부과금 등 14억 원을 부담해야 하는 등 환경관련법이 강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올들어 제련소는 이마저 울산시 온산제련소로 옮겨가고 현재는 300여명의 직원들이 스테인레스관, 동관 등을 생산하고 있다. 군민들 가운데 상당수는 제련소가 한창 가동될 때 서천 경제도 가장 활기를 띤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산업화 과정에서 공을 세운 점도 있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참담한 것이었다. 제련소가 가장 많은 직원을 고용한 때는 1980년도 안팎으로 1,200명 정도였다. 당시 3만여 인구에 비하면 결코 작은 수는 아니다. 그러나 장항의 번성을 좌우한 것은 금강하구라는 천혜의 자원을 배경으로 한 수산업이었다. 금강하굿둑이 막히기 시작하며 수산업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오히려 제련소가 불러온 환경파괴가 부메랑이 되어 오늘 서천 주민들의 가슴에 꽂히고 있다. 이를 두고 중앙정부와 제련소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 하고 있는 양상이다. 해방 이후 1972년도까지 국영으로 운영되었으며 이후에도 정부가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이상 중앙정부가 책임이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군은 중앙정부를 향한 주민들의 요구와 함께 해야 한다. |
'▒ 한산자료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1.500백년 전통주인 한산소곡주 담그기 체험 (0) | 2008.11.08 |
---|---|
모시된장 잡솨봐~ (0) | 2008.11.08 |
한산권역 거점면 개발사업 기본계획 공청회 (0) | 2008.11.03 |
충남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찾아서.. (0) | 2008.10.28 |
맑은 가을 모교의 전경 (0) | 2008.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