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권도자료 ▒

그레이시 유술(쥬지추)

천하한량 2008. 7. 25. 01:45
1993년 11월은 현대격투역사에서 의미있는 시간임에 분명하다. 바로 THE 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약칭 UFC)이라는 무한격투 시합이 개최된 때이기 때문이다.미국 콜로라도에서 처음으로 열린 이 대회는 눈을 찌르는 것과 물어뜯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공격을 가해도 좋다는 무제한 격투시합이었다. 이전에도 이종격투시합이나 무한격투 시합이 있었지만 UFC만큼 룰에 대한 제한이 자유로운 대회는 고 대 그리스,로마시대 이후 처음이라 해도 좋았었고(브라질을 제외하고) 초기에 참가한 선수들의 대부분이 하이레벨의 격투인들이 아니었음에도 세계 격투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무척 센세이셔널한 대회였다. 약간의 룰과 심판이 있다고는 하나 거의 스트리트 파이팅과 다를 바가 없던 이 시합에 가라데,킥복싱,프로레슬러,유도등이 참가해서 유혈이 낭자한 경기를 펼쳤다.그때 이 들을 모두 손쉽게 물리치고 첫 챔피언에 오른 이가 바로 호이스 그레이시 (ROYCE GRACIE)로 엘리오 그레이시(HELIO GRACIE)의 여섯 번째 아들이었다.

처음 UFC대회가 열릴 때만 해도 호이스가 우승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을 하지 못했었다. 단 그레이시 가문만 빼고는 말이다.. 왜냐하면 UFC 초창기에는 비교적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들도 있었지만, 켄 샘락이라는 출중한 실력의 프로 격투가가 있었고 또하나 패트릭 스미스라는 한때 앤디훅(K-1 챔피언을 차지한적 있던 영웅적인 가라데 선수.2000년에 사망하였음)을 ko패 시킨 헤비급 킥복서도 출전했었기 때문이다.(물론 앤디훅을 패트릭이 다운시킨 것은 그 후의 일이다) UFC에 참가했던 거구의 선수들에 비해 호이스는 신장은 조금 큰 편이었지만(183cm) 근육은 볼품없이 빈약했고 외모도 연약해 보였다. 그런 그가 별다른 데미지를 입지 않고 쉽게 거구들을 제압하여 삼회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자 사람들은 호이스와 그의 기술에 열광하고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전 무술이라면 가라데나 킥복싱처럼 오직 치고받는 것만 전부인줄 알았지 바닥에서 구르며 엉켜싸우는 그래플링의 기법에는 생소했었고, 그건 그 대회에 참가한 대부분의 타격기 선수들도 비슷했다.

그런 상황에서 호이스는 유도와는 비슷하지만 상당히 다른 그래플링 방식을 선보이면서 이런 것이 브라질 쥬지추이며 발리투도룰(vale tudo:모든걸 허용한다의 포루투갈어)의 실전 격투라는걸 보여주었다. 그 이후 일본이나 미국의 격투계에서는 그래플링에 관해 중점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더 많은 발리투도룰의 대회의 등장과 그래플러들이 활발히 시합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UFC에서 호이스와 브라질 유술의 등장은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그레이시 쥬지추(유술의 일본발음)의 본고장인 브라질에서는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브라질 유술의 대표격인 그레이시 가문의 유술은 역사가 칠십년이상에 달하며 그것을 실질적으로 체계화하고 개발한 엘리오 그레이시는 브라질에서도 유명한 '그랜드 마스터'이기 때문이었다.

그레이시 유술로 대표하는 브라질 주지츄를 이해하려면 근대 유도의 성립과 유술을 브라질에 전한 마에다 미츠요(前田光世), 그리고 그것을 배운 브라질인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근대 유도의 성립에 대해서는 유도의 역사란에서 자세히 기술하도록 하고, 마에다 미츠요나 그레이시 유술에 대해서는 그레이시 주지추의 역사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그레이시 유술의 성립과 특징에 대해서만 간단히 설명 하겠다.
그레이시 유술을 설명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마에다 미츠요,혹은 마에다 에사이,브라질에서의 애칭인 '콘데 콘마'로 통하는 일본인이다. 그는 원래 스모와 일본 고류유술을 배운사람으로 도쿄에 올라와 고도깡(講道館)에서 가노 지고로에게 근대유도를 수학후 일본내에서도 삼위안에 드는 강호로 성장한다. 그후 그는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불분명 하지만 미국등 세계를 돌며 프로레슬링이나 복싱등의 이종격투전을 벌이며 실전에서의 유도의 강함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유도의 스포츠화와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던 본산 고도깡의 규칙을 어기면서 까지 이종격투전을 펼치던 그는 결국 파문을 당하게 되고, 유도가 뿌리내리지 못했던 당시 브라질에 흘러들어가 유도를 유술(주지추)이라 부르며 가르치게 되었다.

이 브라질에서 마에다 미츠요는 일본식(혹은 콘데 콘마식 실전유술이라고 해야 하나?)유술을 카를로스에게 전했고, 카를로스가 제자들에게 유술을 가르치는걸 보고 배운 엘리오 그레이시가 일본 유술을 보다 합리적이고 세련되게 다듬어 체계화 시킨 것이 그레이시 유술이라고 한다. 엘리오 그레이시는 상당히 단신에다 몸이 몹시 허약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몸집이 작은 사람도 기술의 힘으로 큰 힘을 제압할 수 있는 합리적인 무술을 연구하였고, 사람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실전적인 유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후 엘리오는 도장에 찾아오는 어떤 사람하고도 실전 대결을 펼쳤고 작은 체구의 그는 항상 이겼다. (그가 패한건 일본의 전설적인 유도인 기무라 마사히코와의 일패였다고 한다. 당시 그는 팔이 부러지는 중상중에도 네시간여동안이나 기무라와 사투를 벌였다고 한다. )왜소한 몸의 엘리오가 싸움에서 거구들을 제압하는 걸 본 브라질인들은 그에게 열광했고 유술이 브라질에 널리 퍼지는데 결정적 공헌을 하게 된다.

알다시피 당시 세계격투계는 쿵푸 영화나 가라데,태권도식 무술이 맹위를 떨쳤고 젊은이들은 화려한 발차기나 손기술에 매료되어 도장을 찾았다. 당시에 유도역시 스포츠화하면서 실전의 기술들을 상당수 버리고 메치기등의 화려함을 쫓고 있었다. 그런가운데 그레이시 유술은 항상 타 유파와의 격투나 실전에서의 유용성을 연구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고, 유도의 꽃이라는 화려한 메치기 등을 버리고 조르기나 누르기, 관절기 혹은 현대유도에서 사라진 타격까지 도입하여 오늘날의 그레이시 유술을 만들어내었다.
오늘날의 무술은 너무나 강자를 위한 격투라는 생각이 든다.요즘 일류격투가들을 둘러보면 누구나 할거없이 거구에다 헤비급이며 근육질이다. 물론 무술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 체격이 커지고 근육질이 되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술을 수련한 사람이 자신이 왜소하다면, 설령 무술을 하지 않더라도 체격이 크고 근육질의 사람한테는 대부분 질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잘 못 된거같다.무술을 하건 안하건 체격이 자신보다 월등히 큰 사람한테는 당연히 진다는 것이 상식화 되있단 말이다. 설령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수련에 의한 자신이 아닌 시쳇말로 '깡'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요즘의 무술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힘만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혹은 그와는 반대로 내적인 강함이나 화려한 기교만을 추구하기도 한다.) 힘이 센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공격한다면 무슨 무술이 필요하겠는가? 원래 무술이란 육체적으로 열세인 사람이 자신보다 힘센 사람을 유용하게 제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것이 무술의 진수라고 한다면 현대 격투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대표적인 유파로 그레이시 유술을 들고 싶다. 굳이 호이스나 힉슨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그레이시 유파만큼 타유파와의 대결에 적극적이고 대부분 승리하며 또한 그들 유파의 철학을 분명하게 전파하는 유파란 거의 없다고 본다.
요즘들어 무한격투룰의 시합들이 점차 고급화되고 선수들의 질도 향상하면서 그레이시가의 선수들이 항상 이길수만은 없게 되었다. 그레이시 가문의 형제들이 분명 훌륭한 선수들임에는 분명하지만 기술로만 커버할 수 없는세계가 격투에서도 분명 존재하고 그들역시 언제까지나 최고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만일 그들이 전부 시합에서 패배한다고 해도 그레이시 유술을 폄하하거나 깎아내릴 의향은 전혀없다. 또한 언제까지 그레이시 무술만이 최고라고 찬양하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그레이시 유술이란 어차피 모든 무술이 가야할 방향을 올바르게 제시한 '모범적인' 하나의 무술일 뿐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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