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권도자료 ▒

택견

천하한량 2008. 7. 25. 01:33
 

택견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 무예이다.
반만년 우리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흥망성쇠를 같이하며 전래된 택견은, 개항과 더불어 밀려온 서구
문물과 일제의 강압으로 인해 우리의 세시풍속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초대 인간문화재(예능보유자) 신한승 선생(莘漢承 1928~1987)에 의해 전국
방방곡곡의 택견이 충주에서 체계적으로 정립되었고, 1983년 6월 1일 무예로서는 국내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어있다.
활개짓, 얼름새, 본대뵈기, 그명칭들만으로도 친근함이 느껴지는 택견은 한말까지 민중들의 민속
경기로서 대중적 인기를 누렸을 뿐더러,생활무예로서 유사시 국난극복의 실질적인 원동력이 되기도
했었다.
택견은 타 무술에서처럼 형을 중시하여 동작을 길게 흘리지도 않고, 타 무도처럼 절도 있게 짧게
끊어대지도 않는다. 또한 동물을 흉내내지도 않으며 인정 없이 무조건 질러대지도 않는다.
택견은 언제나 항상 우리 산하의 모습처럼 부드럽게 춤을 추듯 굼실대다 순간 몸을 놀려 탄력 있게
공방을 이루어 낸다. 처마끝 풍경을 울리고 달아나는 바람처럼 여유 있게 우쭐대며 가볍게 상대를
제압한다.
또, 공방의 어느 한 가지에만 치우치지도 않고, 단순한 자세로 멈추어 있지도 않는다. 그리고 또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듯 의도 없이 기교를 부리며, 넘어진 상대를 배려하는 인간애도 숨어있다.
그래서 능청스럽게 굼실대는 그 독특한 몸짓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우리 조상들의 슬기가 담겨있고
,여유 있고 민첩한 몸놀림엔 우리 선조들의 운치와 멋이 배어 있는 것이다. 택견은 차라리 무술의
도을 넘어 예술의 경지로 승화되었다 할 만하다.
이렇듯 택견은 조상들의 얼과 혼이 담겨 있는 소중한 전통문화유산인 것이다. 즉, 우리 선조들의
민족정신과 삶의 이치를 몸짓으로 담아 전승하고 있는 우리 역사의 훌륭한 자랑이다.

 

 

 

 

 


 


  무릇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건 그 민족 고유의 정서와 애환이 담긴 군사체육과 상무정신이 없는 곳이
없다.우리 민족 또한 문화민족이였던 만큼 고래로부터 수많은 체육적 활동이 있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때문에 무예는 예로부터 그 민족의 역사적 배경안에서 ,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생존과
자주권 수호를 위한 열 다만 우리 민족이 무예를 천시한 까닭으로 산중무술이었다
거나 비전의 무예였던 까닭으로 그 인지도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모든 무예들이 그 유래에 대한 확실한 근거나 자료 없이 전통만을 주장하는 것이
공통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난무하는 이런 무예들이 정말 전통무예일까? 우선 전통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아야 할 것 같다. 사전에서의 전통의 의미는 “계통을 받아 전하는 것” 또는 관습
중에서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특히 높은 규범적 의의를 지닌 것”을 말한다. 그리고 사학자 이기백은
“전통은 과거에서 이어온 것을 말하는데,그것을 객관화하고 비판해서 현재의 문화 창조에 이바지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만을 전통이라 부를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전통무예는 분명 과거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무예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적 배경안에서
어떤 계통을 잇고 있어야 한다. 다만 그 기준은 그 무예가 가지고 있는 계통이 얼마나 객관적이고
역사적 타당성이 있는냐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전통무예에는 우리 선조들의
정서와 얼과 혼이 깃들여 있어야 하는 것이다. 비록 모든 무예의 원초적 공통점(상대제압)때문에
그 동작들이 대동소이하더라도, 적어도 이웃나라의 그것들과는 뚜렷이 구별될 수 있는 우리
민족만의 독특한 몸놀림이 지켜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역사적이든 설화적이든 근거 있는 유래와 함께 예술성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전통무예들은 이런 점에서 그 전통성에 큰 허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다.
씨름이나 국궁처럼 누구든지 굳이 전통무예임을 말하지 않아도 인정할 정도의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부족한 것이다. 다만 세월이 흘러 세대가 바뀌며 그러한 무예들이 우리 사회와
문화 영역의 일부분이 되면서 점차 전통무예화 되어 갈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무예들이 스스로 우리 사회와 문화의 현실에서 얼마만큼 미래지향적이고 창조적이
면서도 생산적인 활동을 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많은 무예들의 철학화와
조직화 및 대중화의 노력은, 무예를 우리 시대의 훌륭한 문화적 전통의 소산으로 창출해 가는
바람직한 현상이며 또한 올바른 전통무예를 계승 발전시키는 자세라 하겠다.
 
 

 
현대에 있어 일반적이 관점에서의 진정한 전통무예라 함은 예전에 우리 선조들이 수련했던 체술이
단절없이 현재까지 전해지는 경우라야 할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전통무예라 자부하는 문파는 그
전하는 방식에 따라 대체로 세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단절되었던 전통무예를 옛 문헌을
통해 재현한 경우와 중국과 일본 등지의 외래무술의 영향을 받아 우리 식으로 체계화(전통성을
접목한)한 전통무예, 그리고 풍속이나 인맥을 통해 단절 없이 전수되는 전통무예이다.
첫번째의 경우엔 마상무예나 경당 등과 같은 무예들이 있고, 두번째의 경우엔 태권도, 합기도 등이
해당되며, 세번째의 예가 택견이나 씨름, 국궁 등이 바로 이에 속한다.
 

 

  전통무예 택견의 시원을 살펴보고자 함에, 그 역사적 근거와 자료 부족으로 아득하고 묘연하기만
하다. 체육활동이 인류의 생활과 더불어 행해진 것이라면, 무예는 원시인들의 생존을 위한 본능에서
출발한 것이다.
때문에 원시적 이동과정과 형태에서 수렵이나 섭취 등의 의식주 해결과 이민족과의 갈등으로 인하여
자아 방위적인 강인한 체육적 요소가 필요하였다.또한 구석기 및 신석기 시대를 거치며 씨족사회
에서 부족국가로, 부족국가에서 고개국가형태로의 변천에 따라 그 용모가 더불어 발전하게 되었다.
결국 역사의 시작과 함께 무예는 그 자체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더욱 커지게 된 것이다.
우리 민족도 고대국가의 체제가 더욱 정비되면서 무예가 군사체육으로서의 비중이 가중되었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그리스에 제천경기와 같이 제천행사에 무예의 시범적 경기도 있었음직
하며, 그것은 곧 무예를 통한 유희적 행사인 것인다."라며 무예의 기원을 설명하였다. 나현성은
<한국 체육사 연구>에서 "원시인들의 생활은 한마디로 생존을 위한 본능적 충동에서 출발되었고,
….." 시대가 흘러 제천 행사에서 "그들은 기원 내지는 감사의 제례의식으로 가무.음주하였으며
무예의 시범 경기, 즉 제례경기로 수박, 격검, 사예,기마,씨름 등의 행하여 졌다."는 데서 무예의
기원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신철호의<한국무술의 기원>에서는 초기의 고대국가 형태가
싹트기 시작한 구석기 시대에서 설명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전통무예 택견의 기원은 제천행사가 있었던 제정일치의 지배자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한 B.C 2333을 전후한 시기에서 찾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한나라가 건국되기 위해서는 분명 힘이 있어야 했다.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무술이란 국가의 흥망성쇄와 밀접한 관계로서 국가의 수문장이요,
반석의 역할을 해왔음을 알수 있다.
각 나라마다 그 특유의 무술이 있음을 뽐내지만 우리의 택견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온후하고,
호전적인 무술은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비추어 보아도 없을 것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무술인 우슈는
공격이나 방어보다는 그 기법이 형(型) 위주로 짜여져 있음을 알수 있고 일본의 가라대는 방어보다는
공격 일변도의 스포츠 형태로 되어 있는가하면 서양의 무술들은 대개가 무술적인 요소보다 스포츠
중심으로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각양각색의 무술 가운데 우리의 민족무술 택견은
어떤 형태로 변천해 왔는가 알아보자. 서양의 무술들이 정신적인 면보다는 기술적인 면에
치중했다면
민족무술인 택견은 정신적인 면을 더 중시했다고 본다. 택견이 오랜 역사속에서 현재까지 맥이
끊이지 아니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외공적인 기술보다는 내공적인 정신의 힘이 더 컸기
때문이리라.
제1단계의 수련은 기술의 수련이며 제2단계의 수련은 기술수련을 넘어선 정신수련이라 하겠다.
이와같이 무술이란 한낱 격투기-즉, 싸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무술의 경지는 인간의 완성으로
가는 첩경이라 할수 있다. 그러기에 내적정신이 필요했던 것이다. 참된 정신이 없다면 그것은 한낱
영혼이 없는 몸(육체)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도 안되며 몸과 마음이
결합하여 심오한 인격형성이 곧 무술의 경지라 본다. 바로 이것이 무술과 일반 격투기 또는
스포츠와의 차이라 하겠다. 그럼 2천년 동안 면면히 이어 내려온 우리 민족무술 택견의 정신은
어디서 찾을수 있겠는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의 기록을 보면, 고구려의 강성은
선배제도의 창설로 시작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앞,뒤로 대치하고 있는 고구려로서는 의당히
어느 나라보다도 강인한 무술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용감하고 상무정신이 투철했던 고구려는 이와
같이 문무에 힘쓰는 훌륭한 선배제도가 있었기에 국민들의 협동심과 애국심을 배양하는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삼국통일의 근간이 되었던 신라의 화랑도를 보더라도 원근산수에 탐험하여 자연과
벗하여 학문에 힘쓰고 무술을 연마하여 환난시에는 나라를 구제하고 화평시에는 신의로서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해왔음을 알수 있다.
이와 같이 택견의 정신은 곧 고구려의 선배정신과 신라의 화랑도 정신, 그를 바탕으로 한 고려의
호국정신으로 이어져 조선의 선비정신을 이어받아 참의 정신을 실현해 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럼 이 "참"이란 무엇인가? 어찌보면 그 뜻은 너무도 광범위할지 모르지만 한마디로
전통문화의 계승을 의미한다 하겠다. 수많은 왜적의 침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국민의 힘을 단합시킬 수 있는 한국고유의 전통문화가 꿋꿋이 살아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와 더불어 나라마저 빼앗겨버린 우리 민족이이었지만 일제는 우리
정신까지는 빼앗지 못했던 것이다. 역사를 더듬어 보더라도 문화마자 빼앗겨 버린 민족은 서서히
정벌국에 동화되어 갔음을 알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많은 외침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오늘의
한국을 이룩한 것이다. 어느 민족보다도 내란(당파싸움)이 많았던 민족! 집안 싸움으로 인해 씻을 수
없는 그 치욕의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서서히 동이 터오듯이 남북분단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 국민 모두가 전통문화를 뿌리로 한 우리겨레의 선비정신인 "참"의
정신을 이어받아 새로운 한국인의 표상을 세워야 할것이다. 참이란 거짓되지 않고 자연의 순리에
어긋남이 없이 맑고 깨끗한 정직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택견 본연의 정신인 참 실현에 어긋나지 않도록 우리 국민 모두가 굳건한 기상을 갖기
위해서도 2천년동안 전승되어 온 민족무술 택견을 익혀 문화재 택견의 원형을 계승하고 국민의 힘을
단합할 수 있는 민족정신의 지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서기 택견은 주먹질이나 급소 공격이 배제된 경기화 된 택견으로,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
택견의 전수 체계는 서기택견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1) 혼자 익히기 (맨 처음 익히기)
→ 가장 기초되는 자세와 동작을 연습하는 수련과정
ㆍ 기본자세 : 활개짓, 품밟기, 호흡법
ㆍ 서서 익히기 : 발차기, 걸이
ㆍ 나가며 익히기 : 상기 기초동작을 보법에 실어 수련하는 과정
(2) 마주 메기기 (기초동작)
→ 상대와 반약속 하에 공격과 방어를 연습하는 수련과정
ㆍ 막음질, 얼러 메기기 : 발질과 손 공격에 대한 방어연습(구분동작)
ㆍ 마주 차기, 마주 걸이 : 상, 하체를 공격과 방어(연속동작)
(3) 견주기 (실전 응용기)
→ 실제 상대와 겨루는 형식이다. 예로부터 동리간의 시합으로 대중화되었다.
따라서 살상력이 높은 급소 치기나 주먹질 등은 삼간다.
ㆍ 대걸이 : 손발을 이용하여 걸이기술만을 하는 견주기
ㆍ 맞서기 : 상대를 발질과 걸이로 제압하는 견주기
(4) 본대 뵈기
→ 예로부터 동리간에 택견 시합을 함에 한 선수씩 차례로 견주기에 임한다.
이때 어느 한쪽 마을 선수가 먼저 이긴 경우, 자신의 승리를 과시하기 위한 축제로서 경기장을 돌며
실력을 뽐내는 것이 본래의 본대뵈기였다.
현재는 타 무예의 품세와 같은 형으로 체계화한 수련과정이며, 본대뵈기를 불뵈기와 막뵈기로
구분한다.
붙뵈기는 아래와 같이 형식을 갖춰 보이는 수련과정이고, 형이나 틀이 없이 그때그때 생각나는 수를
구사하는 것이 맛뵈기이다.
ㆍ 앞의 거리 여덟 마당 : 초보자가 한동(1단)이 되기까지의 수련과정
승자가 본대를 보이며 경기장을 여덟 마당을 돌 때까지 다음 도전자가 나오지 않으면 그마을이 승리
팀이 된다. 보통 너덧 마당에서 승부가 결정지어 지며, 여덟 마당까지 가는 일은 드물었다.
ㆍ 뒤의 거리 네마당 : 한동 이상의 유동자의 수련과정
승부가 끝난 후 승리한 마을 청년들은 기쁨의 표현으로 재주를 부려 가며 또 한번 자신들의 기량을
보여 준다.
ㆍ 별거리 첫마당 : 한동 이상의 수련자에게 기초적인 결련수를 넣어 배우게 하는 거리이다.
작고한 신한승 선생이 수제자들에게 네마당까지 완성하도록 유언하였다.

 
  결련 택견은 실전 기례로서 一擊必倒, 一擊必殺의 기술이다. 본래 이것은 살수로서 활수를 익힌 다음
배우는 것이었으나, 현재는 활수의 전수가 거의 안되고 있으며 살수도 12가지 정도가 전할뿐이다.
과거에 한량들의 비기로서 원수를 갚는다거나 첩 내기의 수단으로 이용하여 미풍약속을 해치는
까닭에법으로 금지하기도 했다.
현재는 유동자에 한해 수련할 수 있는 과정으로 삼고 있다.
 
 

맨손무술로 대표되는 택견에도 여러 가지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이 전수되었다. 모든 무예의 도는
한가지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 그 운용법이나 근본 원리가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다만 택견에서의
무기술은모두 다 체계적으로 전수되지 못했고, 무엇보다 택견의 문화재 지정 전후에 여러 가지 상황
에서 미처 정립 되지 못했던 것 뿐이다.
아쉽게도 그나마 이 무기술들은 택견의 일부 유동자에게만 전수되었고, 일반 수련자들은 육모술
외에는접할 기회가 없다. 유동자들이 체계적으로 전수되지 않은 무기술을 지도하길 꺼려하기 때문
이다. 차후 이런 무기술의 연과 개발을 통한 수련 체계의 정립과 전수관 택견인들의 과제이다.
(1) 육모술
옛날 포졸들이 지니고 다니던 육모방망이의 운용술이다.
육모를 좌우 엄지손가락을 타고 누운 8자 (∞) 모양으로 자유롭게 돌리며 퉁기듯 치고 막고 찌르는
방식으로 범인 체포와 호신용으로 쓰인다.
과거에 한량들은 중금이나 단소와 같은 악기로 육모를 대신하기도 했는데 현재 택견의 가장 일반화
된 대표적인 무기술이다.
(2) 수리검
손안에 들어갈 만큼 작은 검으로 보통 던져서 상대를 절명케 한다.
택견에서 쓰는 수리검은 환두소도형으로 수술이 달렸고 길이가 10cm 정도이다.
수리검을 던질 경우, 처음엔 굴러가듯 돌다가 어느 거리부터는 나선형으로 회전하여 표적에 꽂힌다.
고 신한승선생은 수리검을 항상 소지하고 다니셨는데, 대통령을 만날 때도 유일하게 소지가 허락
됐었다.
(3) 부채
흔히 볼 수 있는 합죽선으로 펼치고 합치는 순간의 탄력으로 상대의 시선을 가리는 순간 급소를
공략하는 기예이다. 고도의 노련미와 숙련을 필요로 하며, 최후의 수로서 한 팔은 상대에게 주고
남은 한 팔로상대를 제압하는 전략의 개념과 통한다.
제대로 전수한 이가 드물어 현재 작고한 신한승의 제자 중 한 두 사람만이 그 운용법을 기억하고
있다.
(4) 봉
중국무술과 합기동 등의 봉술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되는데, 중국과 일본의 봉과는 달리 무겁고 탄력
이없는 재질의 나무를 쓰되 길이가 길다. 국내에서는 기후의 문제로 탄력이 있는 나무를 구하지
못한것이 원인이다. 한쪽이 굵고 무겁고 반대쪽은 가늘고 가볍다.
(5) 검
중국의 검술과 일본의 검술과는 그 운용법이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으나, 제대로 전수 받지 못하여
기본 동작 몇 가지 외에는 그 전모를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