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교회 이성순 장로님..............
이렇게 소개하면 그게 누구냐고 반문할 분들이 많을것같아 그의 닉네임을 불러본다.
시라소니.........
싸움에 관한한 역대 최고의 파이터로 자타가 인정하는 동양최고의 주먹 시라소니 이성순......
필자가 그를 처음 접한것은 초딩 3년때 친구 한놈이 울나라에서 누가 젤 쌈을 잘하느냐고 물어봐서 어리버리하게 딴전 피우자 그 친구 입에서 나온 한마디....
"시라소니야! 임마..."
그렇게 그를 알게 된후 필자는 여러 자료 및 서적을 통해 그에게 접근을 시도했고 이렇게 작은 자리를 마련해 그의 이야기를 쓸까한다.
그는 이북사람이다.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1914년이라는 자료도 있고 17년이라는 자료도 있는데 지금까지 생존해 계셨더라면 80 후반은 족히 되셨을걸로 추정된다. 그의 형들은 일본 와세다 대학을 나온 엘리트도 있었고 전 일본 빙상대회에서 챔프를 먹었던 형도 있었다. 그런 형들에 비해 시라소니는 체구도 작을뿐더러 특출한 재주도 없었다.
그의 외모를 설명하자면 넙적한 얼굴에 흉터로 도배질된 이마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반쯤 감긴 졸린눈 (고행석의 불청객 아시죠? 구영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까지 외모또한 아니올시다다. 그런 그가 아버지 눈에는 탐탁치 않게 보였던게 당연하고 그런 시라소니는 겉돌게 된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그저그런 어린시절을 보내던 그는 우연히 체구가 작은 사람이 덩치 큰 대,여섯 명을 박치기로 때려눕히는걸 목격하게 된다. 그 후 집 뒷마당에 모래 주머니를 묶어놓고 박치기 수련에 들어간다. 그의 말년시절 누가 그에게 물었다고 한다.
"장로님..... 박치기에서 제일 중요한게 뭡니까?"
"음....기거이 당연히 뇌가 흔들리디 않아야 되디......."
"자기가 먼더 박아놓구 자빠지면 우습지 않갔네...."
그렇게 박치기를 연마한 후, 그는 십대시절 그의 말에 의하면 하루도 싸움을 거르지 않고 밥먹다시피 아니 그 이상 싸움을 해댔다구 한다. 그런말이 있지 않은가....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어본다고.... 싸움도 해본사람만이 할수 있는것이니....
또한 그를 싸움의 천재로 만든 스승이 있었으니 도비노리라 해서 밀수품을 봇짐에 메고 세관의 눈을 피해 달리는 기차에 무임승차하는 기술인데 이것이야말로 시라소니의 스승이라고 할수있다. 훗날 박치기와 함께 그의 전매특허가 된 무릎치기 역시 도비노리에서 터득된 기술 중 하나이다.
상상을 해보라! 달리는 기차에 속도를 맞추어 달려가며 몸을 낮춘 후 한손으로 난간을 잡고 그 속도를 이용 몸을 튕기며 귀신처럼 올라타는 모습을..........
이렇게 싸움실력을 키워가던 시리소니는...... 잠깐 여기서 그의 닉네임에 대해 알아보자. 시라소니는 삵쾡이과의 동물로써 혼자 다니기를 좋아하며 빠르기 또한 비호같은 잡식성 동물이다. 그 당시 시라소니가 밀수품을 흘리고라도 오는날이면 그의 매형은 그를 심하게 꾸짖었다.
"에라! 시라소니 같은놈같으니...."
번역하자면 칠칠치 못한놈 정도로 쓰면 무리가 없겠다.
그후 그의 아호처럼 시라소니는 늘 그의 곁에 있었다. 그는 시라소니라는 닉네임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어디서나 자기를 소개할때가 되면 본명대신 시라소니라고 내뱉었다고 한다.
신의주에서 싸움으로 성가를 드높이던 그에게 신의주는 너무 좁았다. 그는 평양으로 원정 가 당시 최고의 이북주먹이라는 평가를 받던 박두성을 단번에 때려눕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시라소니는 이북 최고의 주먹으로 인정 받음과 동시에 그의 주먹인생의 전성기의 불꽃을 점화시킨다.
그후 그는 중원으로 날아간다. 중국에서 그의 활약은 말 그대로 독야청정 이름있는 거물주먹만 골라 때려잡았고 맞짱승부(1:1대결)에서 시라소니를 잡을려면 총이 아니면 못 잡는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얼마나 그가 대단했냐면 그의 닉네임을 흉내낸 가짜 시라소니들이 그의 닉네임을 팔며 설쳐댔다고 할 정도이니 할말 다한것 아닌가........
실제로 중국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그는 스무명이 넘는 중국 깡패들과의 대결에서도 물러섬이 없이 다 때려눕혀 그의 주먹인생에 꽃을 피우게 된다. 칼을 들었건 덩치가 거인이건 그의 박치기에 걸리면 열이면 열 다 골로 갔으며 그가 맞짱승부를 펼칠때 한눈을 팔았다가는 싸움구경을 못한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그렇다면 그의 강점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시라소니를 평가할때 그의 동물적인 감각을 첫손에 꼽는다. 예를 들어 선반에 놓인 물건이 떨어진다고 치면 그는 보통 사람보다 먼저 그 일을 눈치챈다는 것이다. 고로 싸움이 벌어질때도 임기응변이라는 측면에서 그를 당해낼 자가 없었다.
그의 최고 무기 박치기에 대해 알아보자. 보통 박치기가 아닌 [공중걸이 박치기]라 명명된 그의 박치기는 거리를 두고 몸을 날려 상대방의 이마를 박살내는데 목표물이 빗나갈 경우 걸릴때까지 머리를 뒤로 젖혀 기어이 박살냈다고 한다.
그 광경을 본 이들은 흡사 총에 맞은 이가 나가떨어지는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의 박치기는 김두한의 피스톤펀치, 홍영철의 발차기와 함께 당대 최고가는 기술로 손꼽혔다.
그가 싸울때 몸을 옆으로 돌려 상대방을 특유의 졸린 눈으로 응시하다 비호같이 몸을 날려 박치기와 무릅치기로 상대방을 넘기는 일은 그의 싸움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싸움을 즐겼다. 하나의 스포츠로 생각 자신의 단점들을 고쳐나갔으며 심지어 몸이 아플때는 실력을 발휘못해 패할것을 두려워해 몸이 나을때까지 몸을 숨겼다고 전해진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건 양복입는것과 자신의 싸움에 누가 끼어드는것을 특히나 싫어했으며 싸움얘기가 나올때면 만사 제쳐두고 그 얘기에 몰입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싸움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그가 중원을 제패한 후 일이 꼬여 일본 옥살이를 한적이 있는데 그게 그의 유일한 감옥생활이다. 그 흔한 전과 하나 없었으며 조직 또한 가져본적이 없다. 늘 혼자 다니며 자신의 실력을 발휘했으며 그때마다 기상천외의 기술로 상대방을 무너뜨렸다.
시라소니는 고향에 있다가 월남하게 된다. 월남 전 그는 일이 꼬여 손가락을 자르게 된다. 여자와 잠을 자는데 들이닥친 그의 정부가 휘두른 칼은 시라소니의 심장을 노렸으나 그는 귀신같이 낌새를 채고 몸을 돌려 칼을 잡으려까지 했다. 그러나 그때 칼이 왼쪽 손가락을 스치며 덜렁거릴정도로 깊은 상처를 주었다.
의사는 한달정도 있으면 낫는다고 충고했으나 성질급한 시라소니는 자르면 어떻겠냐고 물어본다.
이에 의사왈........
"자르면 회복은 좀 빠르죠....."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라소니는 오른손으로 덜렁거리던 손가락을 잡아 찢었다. 그로 인해 시라소니는 그후 항상 왼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서울에 있던 주먹들은 그를 스카웃하러 안달이 났지만 그를 스카웃한건 평안도 사내 정팔이었다. 그는 직접 친서를 보내 고향에서 편히 쉬던 시라소니를 월남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그가 보낸 내용은 간단하다.
"형님 고향사람들이 싸우고 난리가 아닙네다. 형님이 오셔서 정리좀 해주시라우요."
"기래.... 기럼 내가 가야디...."
이렇게 순진한게 바로 시라소니다. 이익이고 이득이고 고향사람들 얘기라면 발벗고 나서는 그이기에 정팔의 이 계략은 보기좋게 맞아 떨어진다.
참고로 정팔의 소속은 이화룡과 함께 명동파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종로파와 동대문파가 이남출신인데 반해 명동파는 십중팔구 이북사내들로 이루어진 조직이었다. 평안남도를 총괄한 대동강 동지회의 이화룡 평안북도를 총괄하는 압록강 동지회의 정팔.......
물론 시라소니는 평안북도 출신으로 정팔은 그점까지 계산 그의 수중(?)에 시라소니를 넣게된다. 그러나 시라소니가 누구인가? 누구에게도 간섭받는걸 허용안하며 조선팔도가 내땅이라는 개념을 가진 이. 싸움의 천재에게 그런 계산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가 월남하자 서울에 모여있던 이름깨나 날리던 주먹들이 긴장하게 된다. 이미 주먹계의 전설로 자리잡은 그는 신화이자 주먹계 최고의 실력파로 자타가 공인하던 차였다. 그는 맨발대장(김성순)에게 맞상대를 걸어 그를 때려눕히며 화려한 신고식을 하게된다.
그리고 그 유명한 김두한과의 우미관에서의 일화로 인해 김두한에게 형님소리까지 들으며 최강의 자리를 굳혀나갔다. 명동보스 이화룡조차 그에게 절절맸으며 동대문황제 이정재에게도 형님소리를 듣는 자가 바로 시라소니였다.
여기서 우미관 일화를 한번 짚고 넘어가보자.
사건은 대충 이렇다. 시라소니의 절친한 친구 이영환과 함께 들른 술집이 하필이면 김두한의 안방중의 아랫목자리인 우미관이었으니.............
이영환은 난처해하며 둘을 소개시키기에 이르렀다.
"어...이쪽은 김두한이라고 성순이 니두 알디?"
"기럼....내레 말은 많이 들었쑤다."
"기리고 이쪽은 이성순이라구......."
"예? 이성순씨 처음 듣는 이름인데.... 예... 하여간 반갑습니다."
"텀 듣긴 이 틴구가 시라소니야!"
이순간 김두한의 안색이 변하며 푹언이 쏟아진다.
"그래 개x끼 잘 걸렸다. 네가 죽을려구 환장을 했구나. 지발로 호랭이굴로 왔다 이거지."
씩씩거리며 열통을 내는 그를 시라소니는 뚫어지게 쳐다보다 한마디 내던진다.
"어~ 기래 인사치구는 화끈해서 좋구만 기래두 첨보는 사람에게 너무하지 않네. 내두 님자랑 함 붙어보구 싶었쑤다. 그래 함 붙어보자우...."
바로 웃통을 벗는 시라소니..........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김두한의 안방에서 쫄기는 커녕 당당히 맞짱승부를 먼저 걸어오는 그를 보며 이미 목숨따윈 두렵지 않다는 그를 보며 모두 긴장해 있을 즈음에.....
김두한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제가 농담한겁니다.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동생으로 받아주십시요."
주먹세계에서는 한번 형님이면 영원한 형님이다. 물론 싸움이 벌어졌으면 어땠었을까 그후 말들이 많았지만 결코 시라소니에게 유리한 싸움판은 아니었다. 홈어드벤테이지도 없는 막힌 공간에서 그것도 수십명의 김두한 패거리에 휩싸인 상태에서 실력발휘를 바라는건 무리가 아니었을까?
하여간 이 사건은 시라소니를 현재까지 최고의 주먹으로 만든 결정타임에는 분명하다. 김두한도 무릎을 꿇고 형님으로 모신다는 사람.......
그가 바로 시라소니였다. 명동파도 넘나들고 동대문파도 넘나들수 있었던 유일무이한 사내 시라소니.................
하지만 시라소니가 너무 자기 실력을 과신하며 독불장군의 이미지를 풍기며 그 당시 최고의 자리에 있던 동대문 황제 이정재를 얕보게 됐으니 이로 인해 시라소니의 주먹인생도 내리막길을 걷게된다. 고향사람들을 돕기위해 이정재에게 동대문 점포를 내놓으라며 회의 도중에도 불쑥 그의 자리에 뭉게앉는 시라소니를 동대문 참모들이 곱게 볼리 없었다.
듣기좋은 콧노래도 한두번이고 사람이 좋게 대하는것도 한두번......... 하루는 사람을 보내 돈을 보내라고 종이에 휘갈겨 심부름을 시킨적도 있었으니...........
참고있던 이정재가 드디어 울분을 토하게 된다.
"이참에 박살내자.........."
이정재는 자기를 업신여기는 시라소니를 박살내기위해 치사하지만 무기와 그의 최정예 참모들을 동원 시라소니 사냥에 나선다. 그때가 53년 8월............
아주 더운 여름날 시라소니는 이정재 사무실을 찾게 되고 십여명의 참모등과 맞짱 승부를 벌이게 된다.주먹계 최고의 사건으로 이름이 나있는 이 사건은 시라소니가 40대에 벌인 유일한 승부이자 그의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며 그가 주먹계에 남아있으며 마지막으로 남긴 승부임과 동시에 많은 주먹들도 이 승부를 한국주먹역사 최고의 빅게임으로 거론하곤 한다.
시라소니가 사무실 계단을 올라서자 김동진이 막아선다.
"퍽................"
시라소니의 번개같은 박치기 한방에 나가 떨어진 건 김동진이었다. 혼절이라고 아는가?
그 상태로 십여분간 누워있을 김동진을 뒤로한 채 사무실 문을 열었다. 이미 싸움의 천재 시라소니는 모든 걸 간파하고 있었다. 회장실에는 이정재는 없고 놈들이 자신을 잠재우려 모였다는 걸......
씨름선수 출신 이기만, 차력사 고일심, 돌대가리 이석재, 철권 김양수 등 말 그대로 동대문 사단 최고의 주먹들이 이 날의 불청객 시라소니를 반기고 있었다. 시라소니는 5분여간 말 그대로 한대도 안 맞으며 놈들을 두들겨 나갔다. 40대 나이쯤은 싸움의 천재에게 먹히지 않는다. 중원을 잠재운 실력 그대로 날고 때려 박으며 놈들을 때려 잡았다. 어느 정도 잠재운 후 시라소니는 한마디 외쳤다.
"덩대(정재) 비겁하구만... 내레 기냥 가지만 오늘 잊지 않갔어.... 똑바루 전하라우..."
그리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가 계단을 내려가자 한 사내가 눈에 띄었다. 등을 돌린 그 사내를 간과한건 시라소니 주먹역사상 최대의 실수였다. 그는 몸을 돌려 시라소니의 정강이를 찍어댔다.
뼈까지는 아니더래도 살이 한움큼 찍혀나갔다. 하지만 시라소니는 그 발로 그놈을 짖이겨 내며 분이 덜 풀렸는지 다시 사무실로 기어들어갔다. 만약 그때 안찍혔더라면 아니 사무실로 다시 안 들어갔더라면... 역사에서 만약은 존재하지 않지만 너무 아쉬운 순간이었다.
그는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닥치는대로 박살내었다. 책상을 넘나들며 벽을 이용 신출귀몰한 솜씨로 실력발휘를 유감없이 해주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동대문사단 최고의 주먹들을 상대로 시라소니 한명이 십여명의 일급주먹들을 상대로 한수위의 기량을 발휘해 나갔다.
그러나 그도 사람..............
시간이 지나며 그에게 불리함이 찾아왔다. 피를 질질 흘리며 주먹을 날리던 그도 지쳐가기 시작했다. 또한 2층 사무실은 이미 잠궈진지 오래다. 안 잠긴 상태였다면 시라소니는 그들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탈출했을 것이다.
이기만의 삽자루에 뒤통수를 후려맞고 시라소니는 심하게 흔들렸다. 손도끼에 다리를 다시 찍히며 그는 무릎을 꿇고 만다. 그는 쓰러지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동시에 심한 발길질과 손도끼와 삽자루 세례는 그의 몸을 난타했으며 어떤놈은 아령을 그의 얼굴에 던지려했다. 주먹계의 원로 김사범의 만류로 다행히 아령은 내려져 그는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쓰러져갔다. 그가 쓰러지자 김사범은 명동파에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동양 최고의 주먹이 쓰러졌다. 와서 송장 치워 가시오" 라고..........
명동파에 손에 의해 병원으로 실려가는 그의 몸에선 피가 뚝뚝 떨어졌다.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으며 죽은 사람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를 처음 본 의사조차 웬 송장이냐고 짜증을 냈다곤한다. 하지만 검진 후..........
"살아있네.... 이런 사람은 처음 보오...몸이 쇳덩이라도 되나보지..."
그가 박살나자 주먹계가 술렁거렸고 이정재는 그가 살았다는 소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당시 그는 왼쪽다리 뻬고는 다 박살난 상태였다. 얼굴은 다 찢기구 사지 육신 멀쩡한 데라곤 왼다리뿐이었다.
하지만 이정재의 심복 이석재는 그런 왼다리 마저 두려웠다. 병문안 차 방문한 그에게 시라소니는 대뜸..........
"덩대한테 전하라우.....왼다리 빼구 다 작살났다구...."
"예...형님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는 눈치를 줘 간호사와 시라소니의 자리를 지켜주던 명동주먹들을 내보냈다. 그리곤 난데 없이 선물이라 하며 쇠몽둥이를 들어 남은 왼다리마저 박살내려했다. 어떤이는 이 당시 왼다리를 박살냈다고 하는데 필자가 단언컨데 박살내지 못했다. 그가 주저하며 내리칠 때 시라소니가 몸을 일으켜 몽둥이를 막았고 시라소니의 비명에 명동주먹들이 방문을 열어 거사는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그후 6개월...............
시라소니는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나았다. 다른 사람 같으면 향냄새를 맡거나 불구자가 되었을만도 한데 그는 깨끗이 난 상태로 병원문을 나선다.
그가 팔당으로가 공수훈련때 입던 군복을 꾸려 칼 던지기와 사격연습을 시도한다. 물론 표적은 이정재다. 그는 복수를 꿈꾸며 와신상담 이를 갈았다. 반드시 복수한다. 깨끗이 박살낸다. 못하면 시라소니가 아니지.....
그는 보름정도 몸을 만든 후 서울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정재는 그 당시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있던 부하만도 어마어마한 상태에다 권력의 줄까지 잡고 있었다.
시라소니가 복수를 꿈꾸며 집에서 칩거를 하자 주먹계에선 이런말이 나왔다.
"시라소니는 끝났다."
한편 시라소니도 과소평가되지 않았다. 그는 갇힌 공간에서 십여명의 주먹들과 맨손으로 싸웠다. 그 점이 그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그는 이정재를 쏠 기회가 있었는데 일이 꼬이려는지 성사되지 못했다.
그는 장면 총리의 요짐보 (보디가드)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그전에는 조봉암의 요짐보로도 활동한 적이 있었다. 또한 인천으로 활동지를 옮겨 인천 주먹계를 통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정재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그는 점점 피폐해져갔다. 술로써 날을 지새우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았다. 한때는 술에 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있자 행려병자로 오인 병원에 강제 입원키도 했는데 그 당시 그는 더이상 주먹황제가 아니었다. 삐쩍마른 행려병자에 불과했다.
온갖 몹쓸병은 다 걸린 그를 보고 의사는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장티푸스에 아주 심한 위궤양 속은 썩을대로 썩어있었다. 하지만 약물을 일주일 가량 투여하자 그의 몸은 놀라울정도로 회복세를 보인다.
"말로만 듣던 시라소니! 신체구조부터 다르구만....."
한때 중원을 날라다니며 이름을 드 높인 시라소니가 누구때문에 이렇게 되었는가?
그의 내리막은 53년 8월 동대문 사무실 린치후 부터라고 보는 게 정확할것이다. 그 중심엔 이정재가 있었다. 하지만 약한 너무나도 약하게 변한 시라소니는 이정재에게 복수의 칼날을 세웠지만 이루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시라소니가 부인(이진옥씨)을 도와 교회일을 도와줄 때 박정희 정권이 출범하고 깡패 소탕령이 내려진다. 시라소니는 주먹계에서 손을 뗀지 오래인 자기에게 검거령이 떨어지자 황당해 한다.
그렇게 중부 경찰서로 끌려온 시라소니는 대질심문을 받는자리에서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이정재..................
그가 소탕령의 중심에 걸려 또한 예전 동대문 린치 사건때문에 둘은 마주보게 된다. 그렇게 죽이고 싶던 이정재..........
그가 너무나 약한 모습으로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정재씨 이 앞에 있는 이성순씨가 예전 53년 8월 당신 조직에서 린치하신분이 맞죠?
피해자의 한마디가 너무나 중요한 시점이었다.
'네......' 가장 쉬운 이 말 한 마디면 이정재는 나락으로 떨어지게된다.
시라소니가 입을 열었다.
"아니요..그런일 없습네다. 이 사람하고는 아무 상관 없습네다. 내레 당하긴 했는데 이 사람하고는 상관도 없을뿐더러 많이 안 다쳤습네다."
이정재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주먹계에서 최고로 치는 의리...........
바로 시라소니는 자신이 그토록 죽이고 싶어했던 이정재를 감싸안아 주었다.
둘은 유치장에 같이 앉았다.
"형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요."
"내레 잊은지 오래다. 야! 거 나가면 술이나 한잔 사라우........."
그렇게 시라소니는 나갔다. 또한 시라소니가 갇히자 교회 신자들이 와서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런 도움인지 하여간 그는 금새 나왔고 이정재도 따라 나올줄 알았지만 이정재는 동대문 주먹사단의 오야붕이었다. 그는 주먹의 대명사로 박정희 정권에게 점찍혀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후........그의 남은 왼다리를 박살내려던 돌대가리 이석재하고의 조우도 있게된다. 그는시라소니가 언제고 자기를 복수해올거라고 믿은 나머지 항상 비수를 가슴에 품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비수를 버리고 시라소니를 찾아가게 된다.
"형님 죽을죄를 졌습니다. 절 죽여주십시요."
시라소니는 눈물로 회개하는 그를 일으켜세운다.
그 후 시라소니는 주먹과 연을 끊는다. 그후 그는 철저하게 목회자의 길을 걷는다. 항상 손에 성경책을 끼고 외출하던 그는 존경받는 장로님으로 영락교회에 죽기전까지 다니게 된다. 그는 어느날 "주먹으로 흥한자 주먹으로 망한다"라는 주제로 그의 인생을 얘기해 교회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설교를 마친 후 그의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그는 그렇게 주먹과 담을 쌓고 살아가다..................
1983년 1월 25일 생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69세때다.
그의 죽음은 신문에는 보도되지 않았으나 주간지에는 주먹황제 박치기왕 잠들다라는 제목으로 톱기사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사진첩과 그의 손때가 묻는 성경책 그리고 다 쓰러져 가는 금호동 판잣집 한 채뿐.......
그는 그렇게 세상과 이별을 고했다.
드라마같은 아니 영화같은 삶을 살다간 시라소니 이성순..............
난 그의 싸움을 찬양하거나 미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대신 그가 영웅이 사라진 지금이 아닌 훨씬 전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만이 맴돌 뿐이다.
그는 등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공격을 안 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자랑삼아 떠들고 다니지도 않았다. 누가 자기 얘기라도 할라치면 얼굴이 붉어져 자리를 피했으며 아는 사람이 아프다면 자기가 못 먹어도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아직도 인천 부둣가에 가면 시라소니 뜬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떠돈다고 한다. 또한 조직 이름중에 시라소니파라는 이름도 수십개라고 한다.
필자가 영락교회 앞을 찾아간 적이 있다. 기분이 묘했다. 여기가 시라소니가 다니던 아니지..... 이성순 장로님이 계시던 교회구나라구 생각하니 기분이 참 묘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영웅.............
시라소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인것 같다.
에피소드...........
그는 싸움의 천재인가 보다 총알 두방 가지고 산으로 올라가 멧돼지를 잡은적도 있었다.
칼도 잘썼다고 전해져 친구 머리에 사과를 올려놓고 단도를 던져 꽃게 하는 장난도 쳤다
고 한다.
그는 대식가이다. 들리는 얘기로는 김밥 6인분을 먹구 밥을 두어그릇 더 먹었다구 한다.
힘을 쓰려면 먹어야지 암.............
그의 점프력에 대해 말들이 많다. 앉아서 3미터를 뜬다고도 하고 탁구대를 세로로 넘었다고도 한다. 한번은 미군장교와 내기를 했는데 돌을 던져 10개중 일곱개를 맞추자 시라소니도 끼어들었는데 아홉개를 맞춰 미군 장교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 한번은 미군장교가 미군병사 다섯명을 엎드리게 한후 뛰어넘자 시라소니는 아홉명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선 거의 제자리에서 풀쩍 뛰어넘자 미군장교가 입을 못 다물었다는 후문............
그가 박치기만 잘 하는 줄 아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는 사실 펀치도 무지 셌다고 한다.
전성기 시절엔 주먹으로만 십여명을 때려잡았다고 한다. 그의 주먹이 어찌나 빠른지 옆에서 얼핏 보면 한손만 쓰는걸로 보여졌다고 한다.
그의 온몸은 흉터 투성이다. 혹자가 본바에 의하면 누더기 같았다고 한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의 운동신경은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일본 경찰에게 쫓길때 기차안에서 밖으로 뛰었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일본경찰이 밖을 쳐다보자 그가 우뚝 서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다른 주먹들이 쓴 책에도 많이 나와있는 유명한 일화이다.
그가 싸움도중 가장 무서울 때는 갑자기 등을 돌릴 때라고 한다. 벽쪽을 향해 미친듯이 뛰어가 한발루 벽을 튕기며 몸을 돌려 공중걸이 박치기를 하는 기술..........회전때문인지 그 위력이 배가 돼 그 기술에 걸리면 게임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한다.
황병관이라는 레슬링 선수가 있었다. 그는 평생 팔씨름을 해 져본적이 없는 천하장사중에 장사였는데 어느날 삐쩍마른 시라소니가 승부를 걸어왔다.
황병관은 코 웃음을 쳤다.
"길고 짧은건 대봐야 아는거 아니네 붙어보자우..."
그렇게 둘의 팔씨름은 시작됐는데 결과는 십여분정도의 혈투(?)후 무승부......
훗날 황병관은.............
"내레 장사들하구 다 팔씨름 해봤지만 안넘어간 건 성순이형 하나야!"
그만큼 시라소니는 뚝심도 강한걸로 보여진다.
또한 그는 누가 자기보다 세다는 말을 들으면 붙어봐야 직성이 풀렸다고 한다. 그래야 자기 실력을 확인하는걸 취미로 삼았다구 하는 시라소니 이성순............
그는 두명의 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신숙씨와 이애숙씨인데 필자의 바램으로는 한번쯤은 꼭 만나고픈 분들이다. 만약 아들을 두셨다면 어땠을까? 싸움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셨을텐데......
학생주먹의 대명사 유지광(동대문 사단의 핵심멤버)이 쓴 대명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국 주먹사엔 무수한 인물이 명멸해 갔다. 믿지못할 힘의 장사도 있었고 기라성 같은 싸움실력을 가진이도 많았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 시라소니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다.
힘에서는 첫째가 아닐지 몰라도 싸움기술 및 경력으로 따지면 그가 조선 최고의 주먹임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명동 보스 이화룡이 중국에서 날아다닐때 노름판 돈을 휩쓴 적이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들어와서 그 딴돈을 가져가더랜다. 그리고는 사라지려하자 사람들은 이화룡이 그 사내를 혼내줄줄 알았다. 하지만 이화룡은 가만히 있었다. 이미 자신이 그의 적수가 아님을 너무나도 잘 아는 그는 꼬리를 내렸다.
그럼 그 사내는 누구인가?
맞다. 시라소니다. 그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화룡은 그의 상대가 못됐다고 한다. 그는 좌우명이 있다고 한다. 물론 싸움에 들어가기 전에는 항상 그 좌우명을 생각하며....
"살려고 하는자는 죽을것이요 죽으려고 하는자는 살것이다."
끝으로 그의 키와 몸무게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것이다. 이 또한 두가지로 나뉘어 지는데 정설로 돼있는 그의 신체 사이즈는 169에 63키로그램이었다고 한다. 또 한쪽의 얘기로는 180의 거구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일화를 보노라면 그가 일대 졸개들에게도 만만해 보여 자주 시비거릿감이 되었던걸로 봐서 전자가 아닌가 싶다.
끝으로 시라소니의 절친한 친구이신 장천용 선생님의 아드님이신 장호근씨가 쓴 [시라소니]라는 책을 많이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장호근 선생님은 시라소니에 관한 한 거의 독보적인 자료를 가지고 계신 분이시며 생전 시라소니와도 많은 만남을 가졌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소개하면 그게 누구냐고 반문할 분들이 많을것같아 그의 닉네임을 불러본다.
시라소니.........
싸움에 관한한 역대 최고의 파이터로 자타가 인정하는 동양최고의 주먹 시라소니 이성순......
필자가 그를 처음 접한것은 초딩 3년때 친구 한놈이 울나라에서 누가 젤 쌈을 잘하느냐고 물어봐서 어리버리하게 딴전 피우자 그 친구 입에서 나온 한마디....
"시라소니야! 임마..."
그렇게 그를 알게 된후 필자는 여러 자료 및 서적을 통해 그에게 접근을 시도했고 이렇게 작은 자리를 마련해 그의 이야기를 쓸까한다.
그는 이북사람이다.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1914년이라는 자료도 있고 17년이라는 자료도 있는데 지금까지 생존해 계셨더라면 80 후반은 족히 되셨을걸로 추정된다. 그의 형들은 일본 와세다 대학을 나온 엘리트도 있었고 전 일본 빙상대회에서 챔프를 먹었던 형도 있었다. 그런 형들에 비해 시라소니는 체구도 작을뿐더러 특출한 재주도 없었다.
그의 외모를 설명하자면 넙적한 얼굴에 흉터로 도배질된 이마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반쯤 감긴 졸린눈 (고행석의 불청객 아시죠? 구영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까지 외모또한 아니올시다다. 그런 그가 아버지 눈에는 탐탁치 않게 보였던게 당연하고 그런 시라소니는 겉돌게 된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그저그런 어린시절을 보내던 그는 우연히 체구가 작은 사람이 덩치 큰 대,여섯 명을 박치기로 때려눕히는걸 목격하게 된다. 그 후 집 뒷마당에 모래 주머니를 묶어놓고 박치기 수련에 들어간다. 그의 말년시절 누가 그에게 물었다고 한다.
"장로님..... 박치기에서 제일 중요한게 뭡니까?"
"음....기거이 당연히 뇌가 흔들리디 않아야 되디......."
"자기가 먼더 박아놓구 자빠지면 우습지 않갔네...."
그렇게 박치기를 연마한 후, 그는 십대시절 그의 말에 의하면 하루도 싸움을 거르지 않고 밥먹다시피 아니 그 이상 싸움을 해댔다구 한다. 그런말이 있지 않은가....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어본다고.... 싸움도 해본사람만이 할수 있는것이니....
또한 그를 싸움의 천재로 만든 스승이 있었으니 도비노리라 해서 밀수품을 봇짐에 메고 세관의 눈을 피해 달리는 기차에 무임승차하는 기술인데 이것이야말로 시라소니의 스승이라고 할수있다. 훗날 박치기와 함께 그의 전매특허가 된 무릎치기 역시 도비노리에서 터득된 기술 중 하나이다.
상상을 해보라! 달리는 기차에 속도를 맞추어 달려가며 몸을 낮춘 후 한손으로 난간을 잡고 그 속도를 이용 몸을 튕기며 귀신처럼 올라타는 모습을..........
이렇게 싸움실력을 키워가던 시리소니는...... 잠깐 여기서 그의 닉네임에 대해 알아보자. 시라소니는 삵쾡이과의 동물로써 혼자 다니기를 좋아하며 빠르기 또한 비호같은 잡식성 동물이다. 그 당시 시라소니가 밀수품을 흘리고라도 오는날이면 그의 매형은 그를 심하게 꾸짖었다.
"에라! 시라소니 같은놈같으니...."
번역하자면 칠칠치 못한놈 정도로 쓰면 무리가 없겠다.
그후 그의 아호처럼 시라소니는 늘 그의 곁에 있었다. 그는 시라소니라는 닉네임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어디서나 자기를 소개할때가 되면 본명대신 시라소니라고 내뱉었다고 한다.
신의주에서 싸움으로 성가를 드높이던 그에게 신의주는 너무 좁았다. 그는 평양으로 원정 가 당시 최고의 이북주먹이라는 평가를 받던 박두성을 단번에 때려눕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시라소니는 이북 최고의 주먹으로 인정 받음과 동시에 그의 주먹인생의 전성기의 불꽃을 점화시킨다.
그후 그는 중원으로 날아간다. 중국에서 그의 활약은 말 그대로 독야청정 이름있는 거물주먹만 골라 때려잡았고 맞짱승부(1:1대결)에서 시라소니를 잡을려면 총이 아니면 못 잡는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얼마나 그가 대단했냐면 그의 닉네임을 흉내낸 가짜 시라소니들이 그의 닉네임을 팔며 설쳐댔다고 할 정도이니 할말 다한것 아닌가........
실제로 중국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그는 스무명이 넘는 중국 깡패들과의 대결에서도 물러섬이 없이 다 때려눕혀 그의 주먹인생에 꽃을 피우게 된다. 칼을 들었건 덩치가 거인이건 그의 박치기에 걸리면 열이면 열 다 골로 갔으며 그가 맞짱승부를 펼칠때 한눈을 팔았다가는 싸움구경을 못한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그렇다면 그의 강점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시라소니를 평가할때 그의 동물적인 감각을 첫손에 꼽는다. 예를 들어 선반에 놓인 물건이 떨어진다고 치면 그는 보통 사람보다 먼저 그 일을 눈치챈다는 것이다. 고로 싸움이 벌어질때도 임기응변이라는 측면에서 그를 당해낼 자가 없었다.
그의 최고 무기 박치기에 대해 알아보자. 보통 박치기가 아닌 [공중걸이 박치기]라 명명된 그의 박치기는 거리를 두고 몸을 날려 상대방의 이마를 박살내는데 목표물이 빗나갈 경우 걸릴때까지 머리를 뒤로 젖혀 기어이 박살냈다고 한다.
그 광경을 본 이들은 흡사 총에 맞은 이가 나가떨어지는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의 박치기는 김두한의 피스톤펀치, 홍영철의 발차기와 함께 당대 최고가는 기술로 손꼽혔다.
그가 싸울때 몸을 옆으로 돌려 상대방을 특유의 졸린 눈으로 응시하다 비호같이 몸을 날려 박치기와 무릅치기로 상대방을 넘기는 일은 그의 싸움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싸움을 즐겼다. 하나의 스포츠로 생각 자신의 단점들을 고쳐나갔으며 심지어 몸이 아플때는 실력을 발휘못해 패할것을 두려워해 몸이 나을때까지 몸을 숨겼다고 전해진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건 양복입는것과 자신의 싸움에 누가 끼어드는것을 특히나 싫어했으며 싸움얘기가 나올때면 만사 제쳐두고 그 얘기에 몰입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싸움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그가 중원을 제패한 후 일이 꼬여 일본 옥살이를 한적이 있는데 그게 그의 유일한 감옥생활이다. 그 흔한 전과 하나 없었으며 조직 또한 가져본적이 없다. 늘 혼자 다니며 자신의 실력을 발휘했으며 그때마다 기상천외의 기술로 상대방을 무너뜨렸다.
시라소니는 고향에 있다가 월남하게 된다. 월남 전 그는 일이 꼬여 손가락을 자르게 된다. 여자와 잠을 자는데 들이닥친 그의 정부가 휘두른 칼은 시라소니의 심장을 노렸으나 그는 귀신같이 낌새를 채고 몸을 돌려 칼을 잡으려까지 했다. 그러나 그때 칼이 왼쪽 손가락을 스치며 덜렁거릴정도로 깊은 상처를 주었다.
의사는 한달정도 있으면 낫는다고 충고했으나 성질급한 시라소니는 자르면 어떻겠냐고 물어본다.
이에 의사왈........
"자르면 회복은 좀 빠르죠....."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라소니는 오른손으로 덜렁거리던 손가락을 잡아 찢었다. 그로 인해 시라소니는 그후 항상 왼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서울에 있던 주먹들은 그를 스카웃하러 안달이 났지만 그를 스카웃한건 평안도 사내 정팔이었다. 그는 직접 친서를 보내 고향에서 편히 쉬던 시라소니를 월남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그가 보낸 내용은 간단하다.
"형님 고향사람들이 싸우고 난리가 아닙네다. 형님이 오셔서 정리좀 해주시라우요."
"기래.... 기럼 내가 가야디...."
이렇게 순진한게 바로 시라소니다. 이익이고 이득이고 고향사람들 얘기라면 발벗고 나서는 그이기에 정팔의 이 계략은 보기좋게 맞아 떨어진다.
참고로 정팔의 소속은 이화룡과 함께 명동파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종로파와 동대문파가 이남출신인데 반해 명동파는 십중팔구 이북사내들로 이루어진 조직이었다. 평안남도를 총괄한 대동강 동지회의 이화룡 평안북도를 총괄하는 압록강 동지회의 정팔.......
물론 시라소니는 평안북도 출신으로 정팔은 그점까지 계산 그의 수중(?)에 시라소니를 넣게된다. 그러나 시라소니가 누구인가? 누구에게도 간섭받는걸 허용안하며 조선팔도가 내땅이라는 개념을 가진 이. 싸움의 천재에게 그런 계산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가 월남하자 서울에 모여있던 이름깨나 날리던 주먹들이 긴장하게 된다. 이미 주먹계의 전설로 자리잡은 그는 신화이자 주먹계 최고의 실력파로 자타가 공인하던 차였다. 그는 맨발대장(김성순)에게 맞상대를 걸어 그를 때려눕히며 화려한 신고식을 하게된다.
그리고 그 유명한 김두한과의 우미관에서의 일화로 인해 김두한에게 형님소리까지 들으며 최강의 자리를 굳혀나갔다. 명동보스 이화룡조차 그에게 절절맸으며 동대문황제 이정재에게도 형님소리를 듣는 자가 바로 시라소니였다.
여기서 우미관 일화를 한번 짚고 넘어가보자.
사건은 대충 이렇다. 시라소니의 절친한 친구 이영환과 함께 들른 술집이 하필이면 김두한의 안방중의 아랫목자리인 우미관이었으니.............
이영환은 난처해하며 둘을 소개시키기에 이르렀다.
"어...이쪽은 김두한이라고 성순이 니두 알디?"
"기럼....내레 말은 많이 들었쑤다."
"기리고 이쪽은 이성순이라구......."
"예? 이성순씨 처음 듣는 이름인데.... 예... 하여간 반갑습니다."
"텀 듣긴 이 틴구가 시라소니야!"
이순간 김두한의 안색이 변하며 푹언이 쏟아진다.
"그래 개x끼 잘 걸렸다. 네가 죽을려구 환장을 했구나. 지발로 호랭이굴로 왔다 이거지."
씩씩거리며 열통을 내는 그를 시라소니는 뚫어지게 쳐다보다 한마디 내던진다.
"어~ 기래 인사치구는 화끈해서 좋구만 기래두 첨보는 사람에게 너무하지 않네. 내두 님자랑 함 붙어보구 싶었쑤다. 그래 함 붙어보자우...."
바로 웃통을 벗는 시라소니..........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김두한의 안방에서 쫄기는 커녕 당당히 맞짱승부를 먼저 걸어오는 그를 보며 이미 목숨따윈 두렵지 않다는 그를 보며 모두 긴장해 있을 즈음에.....
김두한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제가 농담한겁니다.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동생으로 받아주십시요."
주먹세계에서는 한번 형님이면 영원한 형님이다. 물론 싸움이 벌어졌으면 어땠었을까 그후 말들이 많았지만 결코 시라소니에게 유리한 싸움판은 아니었다. 홈어드벤테이지도 없는 막힌 공간에서 그것도 수십명의 김두한 패거리에 휩싸인 상태에서 실력발휘를 바라는건 무리가 아니었을까?
하여간 이 사건은 시라소니를 현재까지 최고의 주먹으로 만든 결정타임에는 분명하다. 김두한도 무릎을 꿇고 형님으로 모신다는 사람.......
그가 바로 시라소니였다. 명동파도 넘나들고 동대문파도 넘나들수 있었던 유일무이한 사내 시라소니.................
하지만 시라소니가 너무 자기 실력을 과신하며 독불장군의 이미지를 풍기며 그 당시 최고의 자리에 있던 동대문 황제 이정재를 얕보게 됐으니 이로 인해 시라소니의 주먹인생도 내리막길을 걷게된다. 고향사람들을 돕기위해 이정재에게 동대문 점포를 내놓으라며 회의 도중에도 불쑥 그의 자리에 뭉게앉는 시라소니를 동대문 참모들이 곱게 볼리 없었다.
듣기좋은 콧노래도 한두번이고 사람이 좋게 대하는것도 한두번......... 하루는 사람을 보내 돈을 보내라고 종이에 휘갈겨 심부름을 시킨적도 있었으니...........
참고있던 이정재가 드디어 울분을 토하게 된다.
"이참에 박살내자.........."
이정재는 자기를 업신여기는 시라소니를 박살내기위해 치사하지만 무기와 그의 최정예 참모들을 동원 시라소니 사냥에 나선다. 그때가 53년 8월............
아주 더운 여름날 시라소니는 이정재 사무실을 찾게 되고 십여명의 참모등과 맞짱 승부를 벌이게 된다.주먹계 최고의 사건으로 이름이 나있는 이 사건은 시라소니가 40대에 벌인 유일한 승부이자 그의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며 그가 주먹계에 남아있으며 마지막으로 남긴 승부임과 동시에 많은 주먹들도 이 승부를 한국주먹역사 최고의 빅게임으로 거론하곤 한다.
시라소니가 사무실 계단을 올라서자 김동진이 막아선다.
"퍽................"
시라소니의 번개같은 박치기 한방에 나가 떨어진 건 김동진이었다. 혼절이라고 아는가?
그 상태로 십여분간 누워있을 김동진을 뒤로한 채 사무실 문을 열었다. 이미 싸움의 천재 시라소니는 모든 걸 간파하고 있었다. 회장실에는 이정재는 없고 놈들이 자신을 잠재우려 모였다는 걸......
씨름선수 출신 이기만, 차력사 고일심, 돌대가리 이석재, 철권 김양수 등 말 그대로 동대문 사단 최고의 주먹들이 이 날의 불청객 시라소니를 반기고 있었다. 시라소니는 5분여간 말 그대로 한대도 안 맞으며 놈들을 두들겨 나갔다. 40대 나이쯤은 싸움의 천재에게 먹히지 않는다. 중원을 잠재운 실력 그대로 날고 때려 박으며 놈들을 때려 잡았다. 어느 정도 잠재운 후 시라소니는 한마디 외쳤다.
"덩대(정재) 비겁하구만... 내레 기냥 가지만 오늘 잊지 않갔어.... 똑바루 전하라우..."
그리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가 계단을 내려가자 한 사내가 눈에 띄었다. 등을 돌린 그 사내를 간과한건 시라소니 주먹역사상 최대의 실수였다. 그는 몸을 돌려 시라소니의 정강이를 찍어댔다.
뼈까지는 아니더래도 살이 한움큼 찍혀나갔다. 하지만 시라소니는 그 발로 그놈을 짖이겨 내며 분이 덜 풀렸는지 다시 사무실로 기어들어갔다. 만약 그때 안찍혔더라면 아니 사무실로 다시 안 들어갔더라면... 역사에서 만약은 존재하지 않지만 너무 아쉬운 순간이었다.
그는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닥치는대로 박살내었다. 책상을 넘나들며 벽을 이용 신출귀몰한 솜씨로 실력발휘를 유감없이 해주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동대문사단 최고의 주먹들을 상대로 시라소니 한명이 십여명의 일급주먹들을 상대로 한수위의 기량을 발휘해 나갔다.
그러나 그도 사람..............
시간이 지나며 그에게 불리함이 찾아왔다. 피를 질질 흘리며 주먹을 날리던 그도 지쳐가기 시작했다. 또한 2층 사무실은 이미 잠궈진지 오래다. 안 잠긴 상태였다면 시라소니는 그들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탈출했을 것이다.
이기만의 삽자루에 뒤통수를 후려맞고 시라소니는 심하게 흔들렸다. 손도끼에 다리를 다시 찍히며 그는 무릎을 꿇고 만다. 그는 쓰러지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동시에 심한 발길질과 손도끼와 삽자루 세례는 그의 몸을 난타했으며 어떤놈은 아령을 그의 얼굴에 던지려했다. 주먹계의 원로 김사범의 만류로 다행히 아령은 내려져 그는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쓰러져갔다. 그가 쓰러지자 김사범은 명동파에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동양 최고의 주먹이 쓰러졌다. 와서 송장 치워 가시오" 라고..........
명동파에 손에 의해 병원으로 실려가는 그의 몸에선 피가 뚝뚝 떨어졌다.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으며 죽은 사람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를 처음 본 의사조차 웬 송장이냐고 짜증을 냈다곤한다. 하지만 검진 후..........
"살아있네.... 이런 사람은 처음 보오...몸이 쇳덩이라도 되나보지..."
그가 박살나자 주먹계가 술렁거렸고 이정재는 그가 살았다는 소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당시 그는 왼쪽다리 뻬고는 다 박살난 상태였다. 얼굴은 다 찢기구 사지 육신 멀쩡한 데라곤 왼다리뿐이었다.
하지만 이정재의 심복 이석재는 그런 왼다리 마저 두려웠다. 병문안 차 방문한 그에게 시라소니는 대뜸..........
"덩대한테 전하라우.....왼다리 빼구 다 작살났다구...."
"예...형님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는 눈치를 줘 간호사와 시라소니의 자리를 지켜주던 명동주먹들을 내보냈다. 그리곤 난데 없이 선물이라 하며 쇠몽둥이를 들어 남은 왼다리마저 박살내려했다. 어떤이는 이 당시 왼다리를 박살냈다고 하는데 필자가 단언컨데 박살내지 못했다. 그가 주저하며 내리칠 때 시라소니가 몸을 일으켜 몽둥이를 막았고 시라소니의 비명에 명동주먹들이 방문을 열어 거사는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그후 6개월...............
시라소니는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나았다. 다른 사람 같으면 향냄새를 맡거나 불구자가 되었을만도 한데 그는 깨끗이 난 상태로 병원문을 나선다.
그가 팔당으로가 공수훈련때 입던 군복을 꾸려 칼 던지기와 사격연습을 시도한다. 물론 표적은 이정재다. 그는 복수를 꿈꾸며 와신상담 이를 갈았다. 반드시 복수한다. 깨끗이 박살낸다. 못하면 시라소니가 아니지.....
그는 보름정도 몸을 만든 후 서울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정재는 그 당시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있던 부하만도 어마어마한 상태에다 권력의 줄까지 잡고 있었다.
시라소니가 복수를 꿈꾸며 집에서 칩거를 하자 주먹계에선 이런말이 나왔다.
"시라소니는 끝났다."
한편 시라소니도 과소평가되지 않았다. 그는 갇힌 공간에서 십여명의 주먹들과 맨손으로 싸웠다. 그 점이 그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그는 이정재를 쏠 기회가 있었는데 일이 꼬이려는지 성사되지 못했다.
그는 장면 총리의 요짐보 (보디가드)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그전에는 조봉암의 요짐보로도 활동한 적이 있었다. 또한 인천으로 활동지를 옮겨 인천 주먹계를 통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정재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그는 점점 피폐해져갔다. 술로써 날을 지새우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았다. 한때는 술에 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있자 행려병자로 오인 병원에 강제 입원키도 했는데 그 당시 그는 더이상 주먹황제가 아니었다. 삐쩍마른 행려병자에 불과했다.
온갖 몹쓸병은 다 걸린 그를 보고 의사는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장티푸스에 아주 심한 위궤양 속은 썩을대로 썩어있었다. 하지만 약물을 일주일 가량 투여하자 그의 몸은 놀라울정도로 회복세를 보인다.
"말로만 듣던 시라소니! 신체구조부터 다르구만....."
한때 중원을 날라다니며 이름을 드 높인 시라소니가 누구때문에 이렇게 되었는가?
그의 내리막은 53년 8월 동대문 사무실 린치후 부터라고 보는 게 정확할것이다. 그 중심엔 이정재가 있었다. 하지만 약한 너무나도 약하게 변한 시라소니는 이정재에게 복수의 칼날을 세웠지만 이루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시라소니가 부인(이진옥씨)을 도와 교회일을 도와줄 때 박정희 정권이 출범하고 깡패 소탕령이 내려진다. 시라소니는 주먹계에서 손을 뗀지 오래인 자기에게 검거령이 떨어지자 황당해 한다.
그렇게 중부 경찰서로 끌려온 시라소니는 대질심문을 받는자리에서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이정재..................
그가 소탕령의 중심에 걸려 또한 예전 동대문 린치 사건때문에 둘은 마주보게 된다. 그렇게 죽이고 싶던 이정재..........
그가 너무나 약한 모습으로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정재씨 이 앞에 있는 이성순씨가 예전 53년 8월 당신 조직에서 린치하신분이 맞죠?
피해자의 한마디가 너무나 중요한 시점이었다.
'네......' 가장 쉬운 이 말 한 마디면 이정재는 나락으로 떨어지게된다.
시라소니가 입을 열었다.
"아니요..그런일 없습네다. 이 사람하고는 아무 상관 없습네다. 내레 당하긴 했는데 이 사람하고는 상관도 없을뿐더러 많이 안 다쳤습네다."
이정재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주먹계에서 최고로 치는 의리...........
바로 시라소니는 자신이 그토록 죽이고 싶어했던 이정재를 감싸안아 주었다.
둘은 유치장에 같이 앉았다.
"형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요."
"내레 잊은지 오래다. 야! 거 나가면 술이나 한잔 사라우........."
그렇게 시라소니는 나갔다. 또한 시라소니가 갇히자 교회 신자들이 와서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런 도움인지 하여간 그는 금새 나왔고 이정재도 따라 나올줄 알았지만 이정재는 동대문 주먹사단의 오야붕이었다. 그는 주먹의 대명사로 박정희 정권에게 점찍혀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후........그의 남은 왼다리를 박살내려던 돌대가리 이석재하고의 조우도 있게된다. 그는시라소니가 언제고 자기를 복수해올거라고 믿은 나머지 항상 비수를 가슴에 품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비수를 버리고 시라소니를 찾아가게 된다.
"형님 죽을죄를 졌습니다. 절 죽여주십시요."
시라소니는 눈물로 회개하는 그를 일으켜세운다.
그 후 시라소니는 주먹과 연을 끊는다. 그후 그는 철저하게 목회자의 길을 걷는다. 항상 손에 성경책을 끼고 외출하던 그는 존경받는 장로님으로 영락교회에 죽기전까지 다니게 된다. 그는 어느날 "주먹으로 흥한자 주먹으로 망한다"라는 주제로 그의 인생을 얘기해 교회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설교를 마친 후 그의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그는 그렇게 주먹과 담을 쌓고 살아가다..................
1983년 1월 25일 생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69세때다.
그의 죽음은 신문에는 보도되지 않았으나 주간지에는 주먹황제 박치기왕 잠들다라는 제목으로 톱기사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사진첩과 그의 손때가 묻는 성경책 그리고 다 쓰러져 가는 금호동 판잣집 한 채뿐.......
그는 그렇게 세상과 이별을 고했다.
드라마같은 아니 영화같은 삶을 살다간 시라소니 이성순..............
난 그의 싸움을 찬양하거나 미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대신 그가 영웅이 사라진 지금이 아닌 훨씬 전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만이 맴돌 뿐이다.
그는 등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공격을 안 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자랑삼아 떠들고 다니지도 않았다. 누가 자기 얘기라도 할라치면 얼굴이 붉어져 자리를 피했으며 아는 사람이 아프다면 자기가 못 먹어도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아직도 인천 부둣가에 가면 시라소니 뜬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떠돈다고 한다. 또한 조직 이름중에 시라소니파라는 이름도 수십개라고 한다.
필자가 영락교회 앞을 찾아간 적이 있다. 기분이 묘했다. 여기가 시라소니가 다니던 아니지..... 이성순 장로님이 계시던 교회구나라구 생각하니 기분이 참 묘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영웅.............
시라소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인것 같다.
에피소드...........
그는 싸움의 천재인가 보다 총알 두방 가지고 산으로 올라가 멧돼지를 잡은적도 있었다.
칼도 잘썼다고 전해져 친구 머리에 사과를 올려놓고 단도를 던져 꽃게 하는 장난도 쳤다
고 한다.
그는 대식가이다. 들리는 얘기로는 김밥 6인분을 먹구 밥을 두어그릇 더 먹었다구 한다.
힘을 쓰려면 먹어야지 암.............
그의 점프력에 대해 말들이 많다. 앉아서 3미터를 뜬다고도 하고 탁구대를 세로로 넘었다고도 한다. 한번은 미군장교와 내기를 했는데 돌을 던져 10개중 일곱개를 맞추자 시라소니도 끼어들었는데 아홉개를 맞춰 미군 장교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 한번은 미군장교가 미군병사 다섯명을 엎드리게 한후 뛰어넘자 시라소니는 아홉명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선 거의 제자리에서 풀쩍 뛰어넘자 미군장교가 입을 못 다물었다는 후문............
그가 박치기만 잘 하는 줄 아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는 사실 펀치도 무지 셌다고 한다.
전성기 시절엔 주먹으로만 십여명을 때려잡았다고 한다. 그의 주먹이 어찌나 빠른지 옆에서 얼핏 보면 한손만 쓰는걸로 보여졌다고 한다.
그의 온몸은 흉터 투성이다. 혹자가 본바에 의하면 누더기 같았다고 한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의 운동신경은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일본 경찰에게 쫓길때 기차안에서 밖으로 뛰었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일본경찰이 밖을 쳐다보자 그가 우뚝 서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다른 주먹들이 쓴 책에도 많이 나와있는 유명한 일화이다.
그가 싸움도중 가장 무서울 때는 갑자기 등을 돌릴 때라고 한다. 벽쪽을 향해 미친듯이 뛰어가 한발루 벽을 튕기며 몸을 돌려 공중걸이 박치기를 하는 기술..........회전때문인지 그 위력이 배가 돼 그 기술에 걸리면 게임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한다.
황병관이라는 레슬링 선수가 있었다. 그는 평생 팔씨름을 해 져본적이 없는 천하장사중에 장사였는데 어느날 삐쩍마른 시라소니가 승부를 걸어왔다.
황병관은 코 웃음을 쳤다.
"길고 짧은건 대봐야 아는거 아니네 붙어보자우..."
그렇게 둘의 팔씨름은 시작됐는데 결과는 십여분정도의 혈투(?)후 무승부......
훗날 황병관은.............
"내레 장사들하구 다 팔씨름 해봤지만 안넘어간 건 성순이형 하나야!"
그만큼 시라소니는 뚝심도 강한걸로 보여진다.
또한 그는 누가 자기보다 세다는 말을 들으면 붙어봐야 직성이 풀렸다고 한다. 그래야 자기 실력을 확인하는걸 취미로 삼았다구 하는 시라소니 이성순............
그는 두명의 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신숙씨와 이애숙씨인데 필자의 바램으로는 한번쯤은 꼭 만나고픈 분들이다. 만약 아들을 두셨다면 어땠을까? 싸움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셨을텐데......
학생주먹의 대명사 유지광(동대문 사단의 핵심멤버)이 쓴 대명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국 주먹사엔 무수한 인물이 명멸해 갔다. 믿지못할 힘의 장사도 있었고 기라성 같은 싸움실력을 가진이도 많았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 시라소니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다.
힘에서는 첫째가 아닐지 몰라도 싸움기술 및 경력으로 따지면 그가 조선 최고의 주먹임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명동 보스 이화룡이 중국에서 날아다닐때 노름판 돈을 휩쓴 적이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들어와서 그 딴돈을 가져가더랜다. 그리고는 사라지려하자 사람들은 이화룡이 그 사내를 혼내줄줄 알았다. 하지만 이화룡은 가만히 있었다. 이미 자신이 그의 적수가 아님을 너무나도 잘 아는 그는 꼬리를 내렸다.
그럼 그 사내는 누구인가?
맞다. 시라소니다. 그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화룡은 그의 상대가 못됐다고 한다. 그는 좌우명이 있다고 한다. 물론 싸움에 들어가기 전에는 항상 그 좌우명을 생각하며....
"살려고 하는자는 죽을것이요 죽으려고 하는자는 살것이다."
끝으로 그의 키와 몸무게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것이다. 이 또한 두가지로 나뉘어 지는데 정설로 돼있는 그의 신체 사이즈는 169에 63키로그램이었다고 한다. 또 한쪽의 얘기로는 180의 거구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일화를 보노라면 그가 일대 졸개들에게도 만만해 보여 자주 시비거릿감이 되었던걸로 봐서 전자가 아닌가 싶다.
끝으로 시라소니의 절친한 친구이신 장천용 선생님의 아드님이신 장호근씨가 쓴 [시라소니]라는 책을 많이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장호근 선생님은 시라소니에 관한 한 거의 독보적인 자료를 가지고 계신 분이시며 생전 시라소니와도 많은 만남을 가졌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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