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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칼을 쥐자 검도가, 칼을 버리자 유도·합기도가 되다

천하한량 2008. 7. 5. 16:13
사무라이… 칼을 쥐자 검도가, 칼을 버리자 유도·합기도가 되다
조민욱 기자 mwcho@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이탈리아 중부의 리보르노 시에 있는 공수 부대에서 77세 일본인 할머니가 각종 무술을 가르치고 있다. 193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위대한 사무라이인 우에시다 기소마루 문하생"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6월25일 보도)

일본 무술가 인명록과 인터넷에는 우에시다 기소마루라는 인물이 없다. 다만 우에시바 기쇼마루(植芝吉祥丸 1921~1999)는 아이키도(合氣道)의 2대 장문인을 지낸 인물로 일본 무술계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기사를 보도한 이탈리아 언론 사이트에 접속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가 우에시바 기쇼마루(Ueshiba Kisshomaru)에게서 아이키도를 연마했다"고 나와 있었다.

쇼군의 두 검술 사범, 야규류와 잇토류

17세기 일본을 통치한 도쿠가와(德川) 쇼군(將軍) 가문의 검술 사범으로는 두 개 유파가 있었다. 야규(柳生)류와 잇토(一刀)류다. 야규류는 죽도를 쓰며 잇토류는 목검으로 실전 검기(劍氣)를 가르쳤다. 쇼군들은 야규류를, 쇼군의 친위 무사들은 잇토류를 선호했다.

야규의 창시자 야규 무네요시(宗嚴)는 상대를 베지 않고 제압하는 무검(無劍)의 경지를 터득했다. 그는 검술 사범이 되어달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家康)의 청을 고령을 이유로 사양하는 대신 다섯째 아들 무네노리(宗矩)를 천거한다. 무네노리는 오사카 전투에서 적병 수십 명이 본진을 급습했을 때 이에야스의 아들 앞에 버티고 서서 눈 깜짝할 사이에 적 7명을 베어 이름을 떨친다.

▲ Getty Images 멀티비츠
잇토류는 현대 검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잇토류의 시조 이토 잇토사이(伊藤一刀齊)는 서른세 번의 진검 승부에서 57명을 베었고, 목검 승부로는 67명을 제압했다. 그가 사용한 일본도는 항아리 뒤에 숨은 도적을 베었다는 가메와리토(甁割刀)라는 명검이다. 잇토류의 정통 계승자가 그 검을 이어받는다.

19세기 중엽에는 718개의 검술 유파가 번성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검술은 검도로 이름을 바꾼다. 당시 경시청에서 각 유파 고수 25명을 초빙한 뒤 기술들을 통합해 열 개의 본(本)을 만든 것이 현대 검도의 시발점이다.

한번에 50명과 싸워 7명 참살하기도

사무라이들은 갑옷을 입고 전투를 벌이다 칼이나 창이 부러지면 맨손으로 상대의 관절을 꺾거나 던졌다. 이런 기술을 유술(柔術) 또는 야와라(柔)라고 한다.

19세기까지 일본 각지에 179개의 유술 유파가 있었다. 그중 가장 강력하고 신비로운 유파가 다이토류(大同流) 합기유술(合氣柔術)이다. 일본에서 가장 무력이 강했던 아이즈(會津) 지방 최상층 사무라이들에게만 비전되던 다이토류는 다케다 소가쿠(1860~1943)에 의해 공개된다.

다케다는 150cm 단신으로 근대 일본 무술계를 호령했다. 그는 손발이나 몸의 어느 한 부분이 상대와 접촉하면 상대가 아무리 거구라 해도 순식간에 관절을 제압하고는 부러뜨린다. 검의 달인이기도 했던 그는 한번은 50명이 넘는 패거리와 진검 승부를 벌여 7명을 참살한 적도 있다.

다케다의 제자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 1883~1969)다. 우에시바는 다이토류를 사람들이 안전하고 쉽게 익힐 수 있도록 바꿔 아이키도라는 새 유파를 만든다. 다이토류는 상대 관절을 완전히 꺾거나 뼈를 으스러뜨리지만 아이키도는 상대를 부드럽게 제압한다. 이탈리아 언론에 등장한 우에시바 기쇼마루는 모리헤이의 셋째 아들이다.
▲ 일본 요코하마의 한 도장에서 검객이 옛 사무라이들의 검술을 연마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창이나 활이 아닌 일 본도를 다루는 검객만을 엄밀한 의미에서 사무라이라고 했다. / AP

사무라이 맨손 무술이 유도로 발전

유술이 근대 이후 유도로 바뀌었다. 유도의 아버지로 불리는 가노 지고로(嘉納治五郞 1860~1939)는 고토칸(講道館) 도장을 세워 유술 유파들을 차례로 제압한 뒤 각 유파의 기술들을 통합하여 유도를 만든다. 도쿄대 체육과 교수였던 그는 1909년 IOC 위원이 되어 유도를 스포츠로서 세계에 알린다. 그는 흰색 도복과 1단에서 5단까지의 단(段)제도를 도입했다.

고토칸에는 사천왕으로 불리는 4명의 걸출한 인물이 있었는데, 그중 사이고 시로(西鄕四郞 1866~1922)는 유도 역사상 최강의 인물이다. 그의 필살기는 상대 중심을 무너뜨리고는 자기 발가락으로 상대의 발을 꽉 잡고 한 바퀴 돌려 땅바닥에 메치는 기술로 야마아라시(山嵐:산폭풍)라고 불린다.

가노 지고로의 또 다른 제자 마에다 미쓰요(前田光世 1878~1941)는 유술을 브라질에 전하여 브라질 쥬주츠라는 이종격투기를 만든다. 쥬주츠는 유술의 일본어 발음이다. 2000전 1998승 2패. 마에다는 생전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2000여 번의 시합에 나서 오로지 두 번만 패해, 이종격투기의 신화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