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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모시축제마라톤대회’ 개최 박충규 한국산악마라톤연맹 회장

천하한량 2008. 3. 24. 21:26
한산모시축제마라톤대회’ 개최
“적은 예산으로 전국에 서천 알릴 터”
■ 화양 출신, 박충규 한국산악마라톤연맹 회장

 

서남옥 기자 onark2@newssc.co.kr

 

 

   
▲ 2007년 서울동아국제마라톤 대회에서 장애인 페이스메이커로 달리고 있는 박충규 회장
해를 거듭할수록 거꾸로 나이를 먹는 듯 본인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서브 스리 10회 달성 기록을 남긴 ‘한국산악마라톤연맹’의 박충규(57세, 서울 거주) 회장은 화양면 기복리가 고향이다. 비록 고향에는 조카들만 거주하고 있지만 화금리와 군사리에는 손위 누이들이 살고 있다.

박 회장은 어려서부터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한산중학교 시절부터 장거리 선수로 활약했다. 80년 아시안 게임 이후 마라톤 붐이 조성되면서 박 회장도 다시 마라톤을 시작했다. 하프코스 완주 200번, 풀코스 완주도 무려 40여회가 넘는다.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의 꿈인 서브 스리(3시간 이내 완주)도 10번이나 달성했다.

지난해 동아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는 장애인 페이스메이커로 출전해 2시간 56분을 기록, 명예의 전당에 이름도 올랐다. 개인 최고 기록은 2005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올린 2시간 54분 43초이다.

박 회장은 “산악마라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좋은 운동”이라며 “삼림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흙길을 달리므로 콘크리트나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하는 마라톤보다 덜 피로하고 피로도 쉽게 풀린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등산보다 조금 더 속도를 내면 산악마라톤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며 달리기의 결정체이자 모험심과 극기를 기를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꾸려가고 있는 ‘한국산악마라톤연맹’은 2006년 6월 동호인들이 모여 아직 초창기인 산악마라톤을 전국에 알리자는 데 뜻을 모으고 2007년 2월 카페를 개설했다. 이후 꾸준한 활동을 펼쳐오다 같은 해 12월 누리집도 만들었다.

박 회장은 간혹 산악마라톤이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 오히려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연을 보호하는데 앞장서게 된다고 말했다. 산을 오르다보면 대형유류차가 난방용 기름을 산사에 배달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면서 산사에서만이라도 아궁이에 나무를 때는 방법을 써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름을 쓰다가 화재가 나면 대형화재로 번져 산림과 생태계 훼손이 심각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박 회장은 이미 군과도 일정에 관한 협의를 마친 상태에서 ‘19회한산모시문화제’를 기해 큰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6월 15일 개최 예정인 ‘한산모시축제마라톤대회’가 바로 그것. 산악마라톤 외에도 하프, 10km단축, 5㎞단축, 사이클 등을 계획 중이다.

성공적 개최를 위해 ‘한산모시축제마라톤조직위’가 결성됐으며 기업체와 동문회가 협찬을 약속했다. 특히 한산면 출신인 황인용 모아런 대표가 자금 조달을 맡아 고향을 위해 많은 협조를 할 예정이다. 그러나 군은 예산이 보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별다른 지원약속이 없었다.

박 회장은 “서면을 중심으로 하는 먹을거리 축제도 좋지만 화양과 마산, 신성리 갈대밭과 금강변을 묶으면 산과 들, 강을 골고루 갖춘 산악마라톤 최적지가 된다”며 “대회 참가자를 천명으로 잡았을 때 그에 따른 가족과 친지 등을 합하면 기천명의 사람이 서천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매년 한산모시축제마라톤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므로 그야말로 아주 적은 예산으로 전국에 서천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지난 해 모시문화제에서 식비로 지출한 돈이 기천만원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정도 예산만 마라톤대회에 지원해주면 서천과 한산모시문화제 홍보 효과가 톡톡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건강과 고향홍보를 위한 좋은 일도 돈이 있어야...” 박 회장의 탄식이다.

박 회장은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맏딸은 대학 졸업 후 이태리 연수를 거쳐 디자이너로 활약하고 있다. 둘째 딸 역시 대학 졸업 후 월간지 기자로 언론계에서 일하고 있다. 셋째이자 유일한 아들만 대학 졸업 후 강태공처럼 세월을 낚고 있다며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3남매 키우고 가르치느라 키가 작다는 농담을 곁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