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남이상재 ▒

월남 이상재선생 1881년 일본에 신사유람단 판견시 박정양의 수행원으로 시찰

천하한량 2006. 12. 20. 02:00

                       신사유람단 수행

 

 

               

 
 

 

 

 

 

 

 

1881년 정부가 일본에 신사유람단을 파견할 때 선생은 단장

 

박정양의 수행원으로 일본을 시찰, 개화사상을 갖게 된 것이

 

다. 이후 선생은 우정국 주사(郵政局 主事)를 거쳐 주미(駐美)

 

서기관 등을 역임하며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로 잡기위해 관계

 

에 몸을 담는다.

 

 

그러나 부친상을 당해 고향에 내려가 관직을 떠났던 그가 박

 

정량의 청으로 다시 맡은 관직이 학부학무국장과 외국어학교

 

장. 이때 젊은이들을 가르치던 선생은 많은 생각을 했다.

 

 

나라를 자주독립으로 지키며 바로 잡을 수 있는 확고한 길은

 

무엇인가. 민족자주의식 고취, 백년대계를 위한 교육, 민권을

 

보호하기 위한 언론활동 등이 그 길이라고 생각했음이 분명하

 

다.  독립운동가로서의 그의 후반인생이 일제와의 끊임없는

 

저항으로 점철되었음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