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의 한말(韓末)과 일제(日帝) 암흑시대를 숨가쁘게 동시호흡한 이상재 선생은
개화의 의지속에 국정개혁을 도모하고 자주독립의 신념으로 애국청년을 지도하고
조선일보(朝鮮日報)사장으로 일제의 우민정책을 질타하며
때때로 대중 앞에서 사자후를 토하는 등 열렬한 삶을 살다
1927년 3월 29일 서울의 한 구석에서 78세로 생을 마감했다.
4월 7일, 사상 처음으로 거행된 사회장(社會葬)에는
일제의 경계와 감시 속에서도 전국에서 10만의 군중이 참집했고,
국내 1배29개 사회단체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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