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월남이 학부(學部)학무국장과 관립외국어학교교장을 겸임하며
민족을 이끌어갈 동량을 키워나갈 때는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 외세에 빌붙어 매관매직을 일삼던 김홍육(金鴻陸) 일파가
고종에게 보자기에 싼 뇌물을 바쳤다.
이를 본 선생은 『상감 계신 방이 왜 이리 추운가』라고 일갈한 뒤
서슴없이 그 뇌물을 보자기째 날로에 처넣어 태워버렸다.
그리곤 통곡하며 왕앞에 엎드려 대죄(待罪)를 했다.
그러나 고종은 도리어 눈물을 지으며 이상재 선생의 손목을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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