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이상재선생은 구원(久遠)의 청소년으로서,
해학과 풍자를 지닌 참다운 레지스탕스로서,
그리고 긴 안목의 소유자이며 애국으로 일관한 청빈한 시민이었다.
또한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는 불요불급의 의지인이요,
독실한 신앙인이기도 했다.
월남을「민중의 영원한 반려」라는 짧은 한마디로 요약한 사학자 박유봉(朴有鳳)은
『그가 지금도 우리의 마음 속에 위대한 인물로 살아있는 것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가장 필요한 국민의 철학,
즉 희망과 자주성을 갖게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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