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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참 싸다” 대서양을 건너 ‘유럽쇼핑’ 대이동

천하한량 2007. 12. 13. 05:36

8일 오후 뉴욕의 쇼핑 중심지인 맨해튼 5번가(街). 거리가 인파(人波)로 넘쳐 발 디딜 틈이 없다. 옴짝달싹 못하고 아우성치는 사람들 통행을 위해 교통 경찰이 나왔을 정도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가 유럽에서 몰려온 쇼핑객들이다. 80년 역사의 관광버스 업체를 운영하는 마이클 앨비치(Alvich)씨는 “맨해튼에서 이렇게 많은 유럽인들을 본 건 내 평생 처음”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 공항. 뉴욕발(發) 루프트한자(Luf thansa) 여객기에선 쇼핑백을 앞뒤로 주렁주렁 매단 사람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미국 출장에서 돌아왔다는 크리스티안 그루겔(Grugel)씨는 “디지털 카메라와 아이팟(iPod) 플레이어, 노트북 PC, 양복 두 벌을 구입했다”며 “물가가 독일의 3분의 2 수준이더라”고 말했다.

유럽인들 사이에 미국 쇼핑 붐(Boom)이 일고 있다. 이른바 ‘바이 인 아메리카(Buy-in-America)’ 열풍이다. 달러 약세와 유로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미국 물가가 유럽보다 크게 싸졌기 때문이다. 관광객들 쇼핑뿐만 아니라, 미국 현지 쇼핑몰 사이트를 이용한 ‘인터넷 달러 쇼핑’ 열기도 뜨겁다.

▲ 블룸버그
◆유럽인들 ‘바이 인 아메리카(Buy-in-America)’열풍

유럽 쇼핑객들의 최고 인기 품목은 전자 제품과 의류. 몇몇 제품의 가격을 비교해 보면 왜 유럽인들이 달러 쇼핑에 열광하는지 알 수 있다.

캐논의 디지털카메라(400D)는 유럽 가격이 580유로(79만원)인데 미국 가격은 630달러(59만원)에 불과하다. 또 아이팟(80GB)은 유럽에서 349유로(48만원)지만 미국에서는 349달러(33만원)로 30% 이상 저렴하다. 레노보의 노트북PC ‘T61p’ 모델은 유럽 가격이 3220유로(437만원), 미국 가격은 2530달러(235만원)로 거의 두 배 차이다.

이 같은 가격차의 가장 큰 원인은 달러화 가치 하락 때문이다. 쇠퇴하는 달러를 대체해 유로가 세계 경제의 기축(基軸) 통화로 각광 받으면서 달러와 유로화의 가치 차이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1달러당 0.80유로였던 달러·유로화 환율은 현재 ‘1달러=0.68유로’ 수준이다. 똑같은 1000달러짜리 물건이 1년 전에는 800유로였지만, 지금은 680유로로 15%나 싸진 것이다.

여기에다 경기침체 조짐에 전전긍긍하는
미국 유통업체들이 연말 쇼핑시즌을 맞이해 대거 ‘재고품 떨이’를 하고 있다. 소비세율도 미국이 8% 내외, 유럽이 20% 내외로 미국이 더 싸다. 유럽인들 눈에는 미국 전체가 ‘세일 중’인 셈이다.

뉴욕 관광청 관계자는 “
영국·독일·이탈리아·프랑스·스웨덴·핀란드 등이 해외 관광객 상위권을 거의 싹쓸이하고 있다”며 “덕분에 해외관광객이 10% 가량 늘면서 뉴욕 시내 숙박시설이 완전히 동났다”고 말했다.
◆한국도 인터넷으로 美 쇼핑 열풍

미국에 못 간 유럽인은 아마존 닷컴(amazon.com) 등
미국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달러 쇼핑’을 즐기고 있다. 해외로 배송이 안 되는 제품도 있지만, 미국 내 가상 주소를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통해 수월하게 해외 배송을 받을 수 있다. 독일의 전자전문지 ‘CHIP’에 따르면, 전자제품의 경우 운송료와 관세를 포함해도 미국 온라인 쇼핑몰 가격이 유럽 현지보다 6~30% 가량 싼 것으로 조사됐다.

전자상거래 전문가 닐스 헬드(He ld)씨는 “인터넷 쇼퍼(shopper)들은 가격에 매우 민감한데, 이 정도 가격 차이면 안 사고는 못 배기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난 석 달간 미국의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한 유럽인은 3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약(弱)달러에 올라탄 인터넷 달러 쇼핑 붐은 한국으로도 넘어올 기세다. 관세청과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 등에 따르면, 올해 1~10월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온 소포의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늘어난 67만4000여 건에 달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미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한 물품으로 분석되고 있다.

1달러가 990원대였던 지난해 초와 비교해, 현재 1달러의 가치는 920원대로 약 7% 하락했다. 게다가 한국 시장은 ‘브랜드 프리미엄’이 유독 비싼 편. 최근 첫 아이를 출산한 주부 조모(32)씨는 “지난 여름휴가 때 미국에 가 보니 유명 브랜드의 유아용 의류 가격이 국내의 절반이더라”며 “운송료를 빼도 국내 가격의 60~70% 정도면 살 수 있을 것 같아 필요한 아이 옷가지를 모두 미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할 작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