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맥경화에 해외차입 매일 피말려”- 2007년이 저물고 있다. 글로벌 신용경색,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미국산 쇠고기 수입, 코스피지수 2000 돌파 등 올 한해를 달군 이슈들을 경제 현장의 사람들을 통해 점검하는 시리즈를 10회에 걸쳐 싣는다. “2004년 이후 올해 중반까지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차입하려면 돈을 빌려줄 은행들을 고를 수 있는 유리한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터지면서 ‘갑’과 ‘을’의 관계가 바뀌었지요. 지금은 해외 금융기관이 원하는 조건을 다 들어줘야 돈을 빌릴 수 있는 상황에 몰려 있습니다.” 지난 7일 서울 을지로 본점에서 만난 하나은행 김승환 자금기획부장(44). 김부장은 이날 오후 외국은행으로부터 중장기 차입금 3억달러가 입급된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8월초 프랑스 최대은행인 BNP파리바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을 편입한 3개 펀드의 환매를 중단하자 국제 금융시장은 급격한 신용경색에 빠졌고, 국내 은행들의 해외차입도 막히게 됐다. 그나마 신용경색은 9월 중순쯤 어느 정도 완화됐다. 그때부터 김부장은 연말 자금수요에 대비한 중장기 해외차입을 준비해야 했다. 다른 때에 비해 협상속도를 높인 김부장은 지난 10월30일 해외차입에 대한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미국의 투자은행(IB)인 메릴린치의 스탠리 오닐 회장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사퇴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은 다시 꽁꽁 얼어붙었다. 김부장은 “계약체결이 하루만 늦었어도 해외차입이 무산됐거나 최소한 막대한 추가이자를 부담해야 했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김부장은 글로벌 신용경색이 본격화한 지난 8월초 이후 지금까지 밤 10시 이전에 퇴근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신용경색 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는 미국 금융시장을 분석하느라 새벽까지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것이 다반사여서 편두통까지 생겼지요.” 김부장은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을 점검해 자금담당 부행장(CFO)은 물론 금융감독원에도 일일 보고를 올렸다. 특히 해외 금융기관들이 차입금을 회수하려 하거나 만기연장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난감한 상황에 처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김부장은 해외 금융기관에 직접 전화를 걸어 “10년 넘게 거래해왔는데 유동성(자금) 사정이 나빠졌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다시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냐”며 ‘호소반, 협박반’의 협상을 벌여 간신히 만기 연장을 받아내곤 했다. 그야말로 피말리는 날들이 계속된 것이다. 글로벌 신용경색 여파로 국내 시중은행들은 올해 지독한 자금난을 겪었다. 시중자금이 은행에서 주식시장 쪽으로 옮겨가면서 신용경색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이 연초 10조원에서 현재 26조원으로 불어났습니다. 또 주식형펀드 잔액도 연초 230조원대에서 300조원대로 70조원이나 증가했습니다. 증시 쪽으로 유입된 대부분의 자금은 은행권의 정기예금 등에서 빠져나간 것이지요.” 돈줄이 막히자 은행들은 양도성예금증서(CD)나 은행채를 대거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했다. 김부장은 “하나은행은 올들어 대출확장을 자제한 덕분에 CD 발행 증가 규모가 1조원가량에 그쳤지만 다른 은행들은 10조원 가까이 증가한 곳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김부장은 은행들의 자금난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중 자금이 증시로 쏠리는 현상은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고,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도 최소한 내년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금융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은행 자금담당 직원들은 고생을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글 김준기·사진 김정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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